세상사람을 많이 살리려면

[종도사님 말씀]
道紀135년 양력 2월 6일, 증산도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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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이야말로 증산도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포교를 하신 분이다.
당신님이 직접 장터에 가셔서, 깊은 산속에서, 때로는 한 가정에
직접 찾아가서 포교를 하셨다.

상제님은 항상 기도하는 사람, 길 찾으려고 하는 사람을 정확하게 보시고 그런 사람을 도문으로 인도하셨다.
이렇게 사람을 바르게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상제님께서는 성도들을 어떻게 포교하셨는가?


여기서 상제님께서 어떻게 성도들을 포교하셨는가를 알아보자.

도전 3편을 보면, 상제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일꾼을 쓰셨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상제님이야말로 증산도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포교를 하신 분이다. 당신님이 직접 장터에 가셔서, 깊은 산속에서, 때로는 한 가정에 직접 찾아가서 포교를 하셨다.

도전 3편을 보면, 도통문을 여신 신축(1901)년으로부터 상제님께서 성도들을 만나시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 쭉 나와 있다. 어천하시던 도기 39년 기유(1909)년까지, 전기 3년, 중기 3년, 후기 3년까지의 내용이 쭉 나와 있다.

김호연 성도

도전 3편 앞부분을 보면 상징적인 두 인물이 나온다. 도전 3편 3장을 보면 누가 나오는가? 남자 어린이인 복남이가 나오고, 3편 4,5,6장으로 가면 여자 어린이인 호연이가 나온다.

이 나이 어린 호연이를 쓰기 위해 상제님께서 직접 그 부모를 포교했다. 도전 3편 4장을 함께 보자.

1 상제님께서 전주 남문 안에 살고 있는 최상문(崔祥文)의 집에 자주 왕래하실 때

2 한 동네에 사는 김택룡(金澤龍), 신봉기, 박이동 등 여러 사람이 찾아와 상제님을 뵈니라.

3 택룡은 남문 밖으로 흐르는 전주천(全州川) 건너 반석리(半石里)에 살았는데 본시 상문과 절친한 친구로 상제님을 여러 번 뵙고 친면으로 지내니라.

4 기해(己亥 : 道紀 29, 1899)년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택룡과 함께 상문의 집에 계실 때 택룡의 세 살 된 딸이 남천교(南川橋)를 건너 "아부지! 아부지!" 하며 상문의 집으로 들어오거늘

5 그 모습을 보니 오악이 뚜렷하고 실로 영악하게 생겼더라.

6 이 아이의 이름은 정숙(貞淑)이요, 외할머니의 바느질 솜씨가 좋아 항상 아래위 구색을 맞춰 옷을 기가 막히게 잘 입혀 놓으니 동네에서는 이 아이를 '꽃순이'라 부르더라.

7 또 택룡의 집안은 전라감사를 지냈으며 딸이 귀한지라 정숙은 어려서부터 곱게 자라니라.

8 상제님께서 아장아장 걸어 들어오는 정숙을 보시고 "이리 오나, 이리 오나." 하여 무릎에 앉히시고는 도리질을 가르쳐 주시고 노래도 가르쳐 주시니

9 이로부터 정숙이 상제님께 노래 배우는 것을 좋아하여 상문의 집에 자주 드나들며 "아자씨! 아자씨!" 하고 쫓아와 상제님의 무릎에만 앉거늘

10 정숙이 오지 않는 날은 상제님께서 친히 택룡의 집을 찾으시어 재롱을 받으시니라.

11 하루는 상제님께서 정숙을 무릎에 앉히시고 "어디, 도리질해 보아라. 도리도리!" 하시며 정숙의 머리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시니 정숙이 상제님의 두 귀를 잡거늘

12 상제님께서도 정숙의 귀를 마주 잡으시고 함께 도리질을 하며 노래부르시니라.

13 정숙이 상제님께서 춤을 추라 하시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라 하시면 노래를 하며 갖은 재롱을 부리니

14 딸이 없던 상문은 정숙이 오면 "친구 딸이 내 딸이다." 하며 정숙을 먼저 차지하려고 야단이더라.

15 상제님께서도 "빨리 커라. 어서 커라. 엿 같으면 늘이자." 하시며 정숙을 유달리 예뻐하시고 귀히 여기시니라. (道典 3:4:1∼15)


8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상제님께서 아장아장 걸어 들어오는 정숙을 보시고 …' 그 다음에 있는 상제님 말씀을 다함께 읽어보자.

"이리 오나, 이리 오나" 하여 무릎에 앉히시고는 도리질을 가르쳐 주시고 노래도 가르쳐 주시니, 이로부터 정숙이 상제님께 노래 배우는 것을 좋아하여 상문의 집에 자주 드나들며 "아자씨! 아자씨!"하고 쫓아와 상제님의 무릎에만 앉거늘 정숙이 오지 않는 날은 상제님께서 친히 택룡의 집을 찾으시어 재롱을 받으시니라.

11절을 보면, 상제님께서 어린 아기인 호연의 혼속에 포교 기운을 넣어주고 계신다. '도리도리'는 아이 엄마가 아기들을 기를 때 언어 중추를 자극해서 언어에 눈뜨게 하는 길잡이 문화언어의 하나다.

상제님과 어린 호연이 서로 두 귀를 마주잡고, 함께 '도리도리'를 하며 노래도 부르셨다. 이 '도리도리'는 문자 그대로 '도(道)의 이치(理)'다. 그러면 도리도리의 결론이 뭔가? 이번에 가을개벽을 한다는 것이다. 그 가을천지사업에 상제님께서 호연을 여자 증언자로 삼아 큰 도수를 붙이신 것이다.

3편 6장 3절을 보면, 이제 이 아이가 천하 선녀가 되어서 할아비 같은 늙은이들한테도 절을 받는다고 하신다. "참으로 크게 될 아이니, 나에게 맡기라." 그런 말씀을 하신다.

이 말씀처럼, 후천 인간은 그 누구도 호연이보다 더 클 수가 없다. 김호연 성도는 후천 5만년 선문명(仙文明)의 뿌리, 선문명의 어머니인 대선모(大仙母)라고 하잖는가. 후천 인류가 모두 후천 조화선경의 대선모인 이 호연이 밑에 가서 무릎을 꿇는다.

3편 4장 말씀을 보면, 상제님께서 이 어린 여자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서, 도리도리를 하시며 "빨리 커라, 어서 커라. 엿 같으면 늘이자."하신다. 아이는 또 상제님 귀를 잡고 재롱을 부리고…. 그 모습을 한번 생각해 봐라.

이 상황은 명백히 상제님께서 포교를 하고 계신 것이다. "이 아이가 그렇게 크게 될 참이니까 그대의 딸을 나에게 천지사업으로 바쳐라", 집에 찾아가서 부모를 설득해서 이렇게 분명하게 약속을 받으신다.

그 뒤에 약속 대로 상제님께서 딸을 데려가고 하니까, 호연이의 어머니가 딸을 안 뺏기려고 나중에는 딸을 마루 밑에 감춰버리기도 했다.

그러니까 상제님께서 김형렬 성도를 보내서 "호연이를 데리고 와라."하신다. 김형렬 성도가 호연을 잡으려고 마루 밑에 간짓대를 넣어 이리저리 더듬어 보는데, 호연이가 또 아주 깜찍해서 안 나온다. 그래서 나중엔 상제님이 직접 가셔서 조화로 기운을 탁 불어넣으니까, 호연이가 할 수 없이 나오거든. 그렇게 해서 상제님이 호연이를 품에 안고 오셨다. 상제님도 그렇게 힘들게 포교를 하셨다.

김형렬 성도

또 상제님은 도통문 여신 그 다음 해인 임인(1902)년 음력 4월 4일 원평장터에서 김형렬 성도를 만나셨다. 그리고 13일 후 금산사 돌무지개문 위에서 해가 어둑어둑할 때 하운동 제비창골로 큰 소리로 김형렬 성도를 불러, 김형렬 성도가 금산사 입구에서 상제님을 모시고 집으로 가셨다.

그리고는 형렬의 집 감나무 아래에서, 세 번 다짐을 받으시고 김형렬 성도를 도문으로 인도하셨다. 그 뒤에 김갑칠 성도가 들어오고 김자현 성도가 들어온다. 당시 김자현 성도는 다리가 다 썩는 병을 앓고 있었는데, 상제님께서 그걸 고쳐주시고 김자현 성도를 포교를 하셨다.

김경학 성도와 최창조 성도

그리고 천지공사 중기를 넘어 후기로 들어가면, 후천 5만년 밑자리가 되는 인물들을 착착 만나신다. 후천 5만년 문명을 여는 대학교 총장 김경학 성도도 정미(1907)년에 들어온다.

김경학 성도는 그 전부터 천주님을 모시고 싶은 마음으로 90일 동안 '시천주 조화정' 공부를 했다. 그 때 상제님께서 김경학 성도를 천상으로 불러 올려서 소원성취를 해 주고, "네 평생에 제일 좋은 꿈을 꾼 것을 기억하느냐?"(道典 3:174:5)고 물으신다. 상제님은 이렇게 김경학 성도의 정신을 깨주시며 포교를 하신다.

또 김경학 성도가 "새울에 사는 최창조 성도가 선생님을 모시고 싶어합니다."하니, "그놈은 돈이 많으니까 선폐금을 많이 바치라고 해라." 하신다. 상제님은 이런 식으로 심법을 묶어 최창조 성도를 포교하셨다.

차경석 성도

그 다음 극적인 포교 상황을 하나 보자.

상제님께서 정미(1907)년 5월 17일 김형렬 성도 집을 떠나 그 아랫마을 물방앗간으로 가셨다. 그 물방앗간 맞은편 주막에서 정읍사람 차경석 성도를 만나시는데, 상제님은 차경석 성도를 포교하기 위해 열흘 동안 밤낮으로 공을 들이신다. 그러고서 마지막날 차경석 성도에게 "5월말에 집으로 갔다가 6월 초하룻날 다시 찾아와라. 모든 걸 다 정리하고서 찾아와라."하시어, 차경석 성도의 인생을 정리하게 만드셨다.

상제님은 천지의 일꾼으로 길러내는 포교를 하고 계신 것이다. 차경석 성도에게 강력한 충격을 줘서 모든 일을 정리하고 6월 초하룻날 다시 찾아오게 만드신다(道典 3:182). 그리고 다시 3일 동안 차경석의 심법을 깨고 정신을 흔들어놓고 다짐을 받으신다.

박공우 성도

그리고 나서 6월 초사흗날 정읍 대흥리로 가시는데, 중간에 예비 우주 개벽대장 박공우 성도를 만나신다. 차경석 성도의 친구인 박공우 성도의 집에 가셔서 자고 나서, 이튿날 상제님께서 대흥리로 가실 때 공우를 돌아보시며 "만날 사람 만났을 적에…." 하시니, 박공우가 문득 동학가사에 있는 '만나기만 만나 보면 너의 집안 운수로다.'라는 구절이 깨달아져 그 즉시 상제님을 따라나섰다.

당시 박공우 성도는 49일 동안을 시천주(侍天主) 공부를 하면서 천주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상제님 모시는 공부를 하고 있었단 말이다. 그러니까 상제님은 항상 기도하는 사람, 길 찾으려고 하는 사람을 정확하게 보시고 그런 사람을 도문으로 인도하셨다.

이렇게 사람을 바르게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력을 다 탕진할 정도로 1년 동안 죽도록 뛰었는데, 실제로 정신이 깨져 입도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그건 내가 준비가 안 돼 있고 진리를 제대로 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해들은 사람도 진리를 잘 모르니까 신앙인으로 성숙이 안 된 것이다. 도를 전할 때는 세속 인간들의 묵은 기운을 깨트려줘야 되는데, 지식 전수하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교리만 얘기해서는 절대 안 된다.

안내성 성도

상제님은 정미(1907)년에 차경석 성도와 박공우 성도, 즉 1변도운과 3변도운의 초석이 되는 이 두 일꾼을 만나 쓰시고, 그해 음력 6월 22일 역사적인 한 인물을 또 만나신다. 그 무더운 복더위 날 정읍 새재 산 중턱에서 만난 분이 누구냐? 바로 안내성(安乃成) 성도다.

도전을 보면 안내성 성도에 대해 잘 나와 있다. 3편 189장을 보면, 안내성 성도는 금강산 어느 절에 들어가 3년 동안 불목하니 노릇을 하며 '앞으로 미륵존불이 출세해야 세상이 밝아진다.'는 말을 듣고, '아하! 여기에 뭔가 있구나!'하고 크게 깨치고 스승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안내성 성도는 도솔천 하나님, 미륵불과 인연이 있는 분이다. 그래서 미륵불을 찾는 구도의 행각에 나선 것이다. 상제님 성도로서 진표율사와 같은 구도행각을 한 이가 바로 안내성 성도이다.

안내성 성도는 청국, 지금의 중국까지 들어가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스승을 찾는다. 북경에 갔다가 남경에도 가고, 다시 북경으로 갔다. 거기서 "천하를 건질 천 선생(天先生)은 조선에서 나오니 공연히 여기서 헤매지 말고 당신 나라로 돌아가라."(道典 3:189:13)는 얘기를 듣는다. 아마 상제님께서 북경의 그 사람을 통해서 안내성 성도를 다시 환고향하게 만드신 것으로 보인다.

그 얘기를 듣고 안내성 성도가 조선으로 돌아와, 하루는 진주 촉석루에서 낮잠을 자는데 드디어 상제님께서 한소식을 전해주신다. 그 말씀이 3편 190장에 나온다. 3절을 보면, '이 때 홀연 정신이 황홀한 가운데 하늘에서 한 선관의 음성이 들리더라'는 말씀이 있고, 5절을 보면, "석가모니는 지나간 부처니 염불은 그만하고 이제부터 너는 천 선생을 찾아 모시도록 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바로 여기서 상제님을 만나기 일보직전의 운명의 시간, 인연의 시간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또 상제님은 이 말씀에서 불교에서 섬긴 부처를 정의해 주셨다. "석가모니는 지나간 부처다"라고.

안내성 성도는 이런 체험을 하고 '지성이면 감천이라. 내가 틀림없이 선생님을 만나겠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러고서 오매불망, 지극정성을 다하여 선생님을 찾아다니다가, 정미(1907)년 6월 22일날 정읍 새재 숲속에서 상제님을 뵙는다. 그 때 상제님께서 "저놈, 저 미친놈! 내가 어째서 네 선생이냐, 이 강도놈아!" 하시고는, 막 돌멩이를 던지시고 그러셨다. 땡볕이 비치는 대낮이지만, 깊은 숲속은 약간은 어두울 것 아닌가. 거기서 지금 이런 천지역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구도자가 상제님께 매달리는데, 상제님께서 "야, 이 도적놈아 강도놈아!"하시면서 박대를 하시며 돌멩이를 던지시는 것이다. 그게 사실은 상제님께서 안내성 성도를 포교하고 계신 것이다.

그런데 상제님이 던지시는 돌을 맞아도 시원하다고 그러잖아. 전혀 아프지도 않고. 그게 상제님께서 꾸짖으면서 동시에 기운을 넣어주시는 것이다.

상제님께서 성도들을 포교하시는 것을 보면, 그 성도들을 쓰시는 순서와도 관계가 있다. 먼저 만난 차경석 성도는 1변도운에 내세워 후천 5만년의 새 역사를 여는 주춧돌로 쓰시고, 그 다음 조금 늦게 만나신 박공우 성도는 3변 추수도운의 우주 개벽대장으로 쓰셨다. 그리고 안내성 성도는 1변도운에서 3변도운을 관통하여 후천 5만년 역사를 여는 성사재인의 지도자 도수를 맡은 일꾼으로 쓰셨다. 안내성(安乃成) 성도의 존명 자체가 제2변, 3변도운의 틀을 짜는 지도자의 성사재인 도수를 상징하고 있지 않은가. 또 이 분은 태을주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문공신 성도

그리고 그 뒤 정미(1907)년 가을에 만나신 진주도수의 상징이 누구냐? 바로 문공신 성도다. 상제님은 그 문공신 성도를 가을철 추수를 다 하고 보리갈이 할 때, 음력 9월에 만나신다. 천지도수에 딱 맞춰서 만나신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순창 회문산에서 공사 보실 때, 그 진주도수의 주인공을 만나시기 위해 3일 동안 계속 공을 들이셨다.

문공신 성도는 천주교도 믿어보고, 전도사 생활도 해 봤다. 또 열다섯 살 소년으로 동학 전쟁터에 참여해서 총도 쏴봤다. 그렇게 10대, 20대 때에 만고풍상을 다 겪어봤단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문공신 성도는 태인 관앙묘에 가서 '참 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지성으로 기도를 올렸다. 그때 엿새째 되는 날 관운장(關雲長)으로부터 "향남방(向南方)하라" 는 계시를 받는다.

그 후 집에 돌아와 보리갈이를 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아, 자네 소문 못 들었어? 저 순창 농바우에 큰 도인이 계신데 조화가 무궁무진하다고 그러대. 한 번 가봐." 그런다. 아니 천지개벽하는 소리 아닌가. 문공신 성도는 그 말을 듣고는, 농기구고 뭐고 싹 던져버리고서 집에 가서 옷 바꿔 입고는 즉시 농바우로 달려갔다.

포교 할 때는 이런 사람을 만나야 된다.

상제님은 그런 일꾼만 뽑아서 1차적으로 쓰신다. 이것이 성숙된 포교 아닌가.

이 문공신 성도가 도문에 들어오는 과정을 보면, 상제님께서 농바우 주막에서 공사를 보고 계신데, 자기가 보기에 노년의 제자들이 전부 공대하고 젊은 분은 막 호령을 하고 하니까, 단박에 '아, 저 분이구나!' 이렇게 알아봤다는 것 아닌가. 그리고 문공신 성도가 "원(願)이 제자 하겠습니다."하고 상제님께 막 달려든다. 거기서 상제님께서 주모를 시켜 "저놈에게 술 한 잔 줘라" 그러신다.

이 당시 문공신 성도 나이가 스물아홉 살이었다. 안내성 성도는 마흔 두 살의 노총각이고, 또 박공우 성도도 좀 젊긴 해지만 역시 노총각이었다.

이치복 성도

그리고 마지막 기유(己酉, 1909)년에, 진주도수를 성사재인(成事在人)시키는 주인공의 길을 열어주는 이치복(李致福) 성도가 들어온다. 이 이치복 성도는 제2변·3변도운의 진주도수, 상제님 천지사업을 마무리 짓는 인사의 주인공이 출세하는 도수의 다리를 놓은 분이다. 안내성 성도, 문공신 성도, 이치복 성도 이 세 분은 특히 태사부(太師父)님과 태상사부(太上師父)님의 도운과 직접 연관이 있다.

상제님은 제3자를 시켜서 누구를 도문으로 받아들이신 게 아니다. 도전을 보면, 상제님께서 수석성도 김형렬 성도를 여러 차례 직접 찾아가서 만나고, 또 김형렬 성도가 상제님을 찾아오게도 하셔서, 그 사람의 인생의 모든 것을 상제님을 위해 다 바치도록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