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람을 많이 살리려면

[종도사님 말씀]
道紀135년 양력 2월 6일, 증산도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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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운수는 좋건마는 목 넘기기가 어렵다.
마음을 굳게 지켜서 목 넘기기를 잘하라.'고 하셨다.
개벽철에 죽고사는 문제가 다 심법노름이다.


희망의 목소리


조금 전 제주도 김병남 신도의 세 자녀가 성구 암송하는 모습을 봤다. 그 똘망똘망한 목소리와 표정, 또 몸으로 연출하면서 누구도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힘차게 외치는 상제님의 말씀을 들으며, 본부에 와서 교육받는 즐거움을 누구도 다 느꼈을 것이다. 증산도 희망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었다.

오늘은 의통성업 성취를 위한 기초 작업으로, 태을궁에서 '제 1차 15진주 50수 도체조직을 위한 천지서약서'를 직접 쓰고 상제님 태모님 전에, 또 천지신명 전에 맹세를 했다.

오늘 이 시간을 계기로 지금까지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어떻게 해면 세상 사람을 많이 살려낼 수 있는지, 모든 문제의 근본은 어디에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세월이 흐를수록 또 현장 체험을 많이 하면 할수록, '사람을 진리로써 건져내지 못하는 핵심 이유는 오직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모든 문제는 자신이 성실한 신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 살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데에서 출발한다.

준비가 되면 자신감을 회복해서, 사람 살리는 일꾼 신앙이 생활화되고 체질화된다. 그러면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을 더 적극적으로 살려내려고 하는 생각에 몰두하게 된다. 몰두(沒頭)라는 건 빠질 몰(沒) 자다. 오직 사람 살리는 생각, 그 일념에 빠지게 된다는 말이다. 그 기운으로 모든 것을 이루는 것이다.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그런데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횡설수설하며 엉터리 포교를 한다. 포교할 때 전하는 자기 얘기를 녹음해서 조용할 때 한번 들어 보라. 아마도 말이 안 되는 곳이 여러 군데 있을 것이다. 더러는 말을 한 자신도 못 알아듣는 곳이 있을 것이다. 그걸 문장으로 써놓으면 더 알기 어렵고….

내가 전도(傳道)를 할 때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를 알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남에게 전해준 이야기를 문자화해서 곰곰이 생각해보고 들여다보면, 정말로 엉터리가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그 때부터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깊이 반성하게 된다. 그렇게 좌절을 당해보고 망신을 당해봐야 한다.

자신의 진리 이해도와 그것을 전하는 표현력은 어느 정도인가? 내가 사람들에게 도담(道談)을 하면, 상대방이 정말로 집중해서 재미있게 들어줄 수 있는 설득력이 나에게 있는가?

이런 진리 이해도와 표현력은 결국 준비하는 만큼 향상된다.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도 아침보다는 저녁, 저녁보다는 동트는 새벽에 뭔가가 달라져 있어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의식과 생각이 집중되고 사람 살리는 힘이 더 강해져야 된다. 만약 10년 전이나 5년 전이나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면, 역사의 운명이 뒤틀리는 시간대로 들어서는데도 변화된 것이 없다고 하면, 그건 얘기가 안 된다.


"운수는 가까워 오고 도는 멀리 가리니 …"


도전 7편 17장을 보자. "운수는 가까워 오고 도(道)는 멀리 가리니, 마음을 굳게 가져 목 넘기기를 잘 하라."이런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크게 네 구로 돼 있는데, 각 구절구절이 다 무서운 말씀이다. 자, 이 성구 말씀을 다 함께 읽어보자.

"운수는 가까워 오고 도(道)는 멀리 가리니 마음을 굳게 가져 목 넘기기를 잘 하라." (道典 7:17:1)

(복창) "운수는 가까워오고 도는 멀리 가리니 마음을 굳게 가져 목 넘기기를 잘하라."

또 도전 4편 32장을 보면 이 목 넘기는 문제에 대해 상제님께서는 "운수는 좋건마는 목 넘기기가 어려우리라."(道典 4:32:7)고 말씀하신다.

지금 이 우주가 봄여름 선천을 문 닫고, 새 우주를 여는 가을철의 문턱으로 막 들어서려 하는 결정적인 운명의 시간대를 맞고 있다. 증산 상제님께서 이 땅에 오신 135년 전에 이미 후천 기운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05년 전인 도기(道紀) 31년 음력 7월 7일, 상제님께서 모악산 대원사 칠성각에서 중통인의(中通人義)의 대도통문을 열어놓으신 그 해로부터 인간 역사 속에서 가을천지의 운이 활짝 열렸다.

증산 상제님은 상극도수(相克度數)에서 빚어진 인간과 신명의 말할 수 없는 천추의 깊은 원(寃)과 한(恨)을 풀어 헤쳐, 선천 역사를 정리하고 후천 오만년 상생의 통일 문명을 여는 준비 과정으로 9년 천지공사를 집행하셨다. 상제님께서 그 천지공사를 마치고 어천하신 도기 39년, 서력 1909년 이후부터 인간 역사는 인간 세상에 내려오신 조화옹 하느님의 이상향에 따라 둥글어가기 시작했다.

또 상제님의 반려자 되시는 태모 고수부님은, 상제님 어천 2년 후 도통을 받으시고, 상제님의 9년 천지공사를 성사재인시키는 일꾼의 길을 더 구체적으로 열어주시고, 만유생명의 어머니로서 병인(丙寅, 도기 56, 1926)년부터 10년 천지공사를 행하셨다.

그 태모님께서는 10년 천지공사를 마치시고 "상씨름 판에는 콩밭에서 엉뚱한 인물이 나온다."고 말씀하신다. 또 고민환 성도가 태모님께서 선화하신 후, "나는 태전 갈라오!" 하고 퉁명스럽게 자기 불평줄을 아뢰자, 태모님은 그 뜻을 당신 성신(聖神)의 조화로 의도하신 것 마냥 빙긋이 웃으시면서 "다시 만날 터인데 무얼."그러신다. 이 말씀이 11편 태모님편의 총 결론이다. '우리들 모두가 앞으로 태전에서 만나지 않느냐. 너희 아버지와 성도들, 또 나와 너희들, 천지 안의 만 백성과 신명들이 모두 태전 콩밭에서 앞으로 하나가 되지 않느냐' 그런 말씀이다.

진리 보는 눈과 귀가 활짝 열리고 또 심법이 트이면, 상제님 태모님의 진리 말씀, 도수 세계를 좀더 살아 있는 언어로 구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힘이 붙는다.


죽고사는 문제가 『도전』 공부에


상제님께서 '운수는 좋건마는 목 넘기기가 어렵다. 마음을 굳게 지켜서 목 넘기기를 잘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개벽철에 죽고사는 문제가 다 심법 노름이라는 말씀이다.

심법의 요체에 대해서는 포교오십년공부종필 도수로 나온 이 완간본 도전 속에 실감나게 나와 있다. 『도전』 완간본이 출간되어, 비로소 상제님 태모님의 심법을 체험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린 것이다. 그러니까 죽고사는 문제가 도전 공부에 걸려 있다는 말이다.

'운수(運數)는 가까워오고 도(道)는 멀리 간다.' 이 말씀의 참 뜻이 무엇인가?

'운수가 가까워 온다'는 말씀의 의미는 비교적 알기 쉽다. 가을 천지개벽의 예정된 시간은, 내가 알든 모르든 천도(天道)에서 정해진 대로 일점일획의 어김없이 꼭 그 시간에 당도한다.

그런데 도(道)는 멀리 간다고 하셨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세상 사람을 하나라도 더 많이 살려내려고 포교를 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하지만 지식적으로 단순히 신앙만 오래했다고 해서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은 아니다. 이 말씀의 참 뜻을 깨치려면, 사람을 살려내기 위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고 도담(道談)도 많이 나눠봐야 한다.

진리를 전하는 것이 얼마나 재밌고 신명나는 일인가!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해서 인간으로서 가장 보람있고 위대한 일이 아닌가!


준비를 철저히 해야


지금은 여름철 말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하추교역의 운명의 시간대이다. 이것을 세운과 도운의 총결론으로 잘 알고 있다. 상씨름판의 실제 개벽상황으로 들어서는 문턱을 넘고 있는 이 긴박한 시간대에, 오히려 도(道)는 멀리 간단 말이다. 반면에 운수는 바짝 조여들어 오고.

『이것이 개벽이다』 책을 보면 '목 넘기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앞으로는 인종씨만 남는다. "장차 십 리 길에 사람 하나 볼 듯 말 듯한 때가 오느니라"(道典 2:45:3), "내 자식이라고 다 사는 게 아니다"(道典 7:24:6)라는 상제님 말씀으로도, 목 넘기기가 극히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방안떨이가 동네떨이요, 동네떨이가 고을떨이요, 고을떨이가 천하떨이니라. 너희들, 도시 송장 어찌할 것이냐. 시골 송장은 오히려 가소롭다."(道典 7:49:2∼3)는 말씀도 있다.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이 천지에 사무친단 말이다.

천지대세가 넘어가는 건 사실 하룻저녁 일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실제 개벽상황은 불과 몇분 몇초만의 게임이다. 앞으로 대세가 넘어갈 때는 와지끈 하면서 몇 차례 흔들리고 마는데, 그러면 이미 때가 늦는다.

지금 일주일을 늦게 뛰고, 한달을 늦게 뛰면, 앞으로 너무도 큰 차이가 벌어진다. 실제 사람을 살려내는 숫자, 공덕의 열매가 너무 큰 층차가 벌어져 영원히 따라잡을 수가 없다.

오직 준비를 철저히 함으로써만, 상제님 말씀이 더 간절히 들리고 요점이 머릿속에서 탁 탁 정리가 잘 된다.


도(道) 기운이 몸으로 출렁출렁 와야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한다. "아 뭐, 태을궁에 가면, 태사부님 말씀이 늘 비젓비젓하고, 사부님 말씀도 들어보면 늘상 유사하다 …." 왜 그런가? 한마디로 영대(靈臺)가 트이지 않아서 그렇다. 말씀을 그냥 소리로만, 문자 뜻으로만 들으니까 말씀 기운을 몸으로 받지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도기(道氣), 도의 기운이 몸으로 출렁출렁 와야 되는데, 그걸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필기를 하지 않는다. 도기를 느끼는 사람은 몸이 피곤해도 반드시 노트에 적는다. 왜? 내 몸으로 말씀을 받아 적으면서 내 의식 속으로 말씀 기운이 들어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아, 여기서 내 정신이 활딱 열렸다! 이 말씀에서 나의 신앙관이 다시 비약을 했다! 여기서 우주일년의 그 대의를 보는 눈이 트였다!' 그걸 느끼니까 그 부분에 줄을 긋게 된다.

그런데 세속의 습성이 몸에 밴 사람은 '저 정도는 나도 상식으로 다 아는 것이다. 벌써 다섯 번도 더 들었어. 저건 뭐 초등학생도 다 알 수 있는 건데 …'이렇게 생각한다.

옛날 중국의 유명한 문인이 나무 위의 새 둥지 같은 곳에 머무르고 있는 한 선사(禪師)를 찾아갔다. 그 선사에게 "부처의 가르침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니, "제악막작(諸惡莫作)하고 중선봉행(衆善奉行)하라. 시제불교(是諸佛敎)니라. -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착한 일을 받들어서 행하라. 이것이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이니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유명한 문인이 콧방귀를 뀌면서 "그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거요." 그랬다.

그런데 그걸 못 해서 다 거꾸러지고, 도(道)가 안 열리고, 부처가 안 된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