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속에서 신앙을 만나고, 신앙 속에서 진정한 희망을 얻다

[상생 인터뷰]

[들어가는 글]
이번 호에는 광주오치도장 포정 유영희 도생의 삶과 신앙 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싣습니다. 이 인터뷰를 통해, ‘삶의 고비마다 진리를 선택한 사람의 이야기’가 얼마나 큰 울림을 줄 수 있는지 담고자 했습니다. 신앙의 초입에서부터 도장 책임자로 성장하기까지의 여정 속에서,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상제님과 함께 살아왔는지 그 감동을 함께 나눠 봅니다.



Q 먼저 본인 소개와 함께 오늘 인터뷰에 임하는 마음을 전해 주시겠어요?



반갑습니다. 저는 광주오치도장에서 상임포정으로 봉직하고 있는 유영희라고 합니다. 오늘은 제가 겪은 삶의 여정과 증산도 신앙을 만나고 변화된 과정들을 솔직히 말씀드리려 합니다.


Q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환경에서 자라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전라남도 화순 백아산 자락 아래에 있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며, 부모님이 농사짓는 모습을 보고 자랐지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진 않았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땔감을 마련하고 농사일을 돕는 게 일상이었고, 늘 바쁘게 움직이시는 어머니의 부지런한 모습이 제 마음속 깊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 성장 환경 덕분에 저는 어려운 환경을 ‘힘들다’고 인식하기보다는,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을 먼저 느끼며 자랐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 제게는 자연 섭리를 몸으로 체득하며, ‘사는 것’에 대해 배우던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Q 결혼 이후 삶에 어떤 전환점이 있었는지 들려주세요.



성인이 되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중, 당시 중등 교사 발령 대기 중이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갔습니다. 저의 계획대로 인생이 풀리는 듯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남편이 교사 임용을 포기하고 보험회사로 직장을 옮기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남편은 점차 가정에 무관심해졌고,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않아 경제적 어려움이 시작됐습니다. 저는 큰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생계를 위해 미용 일을 배웠고, 몇 년 후에는 미용실을 열었습니다. 그사이 둘째 아이도 태어났지만, 남편은 점점 더 집 밖으로만 도는 생활을 이어 갔고, 가족은 점점 어려운 상황에 빠졌습니다.

Q 그런 위기 상황에서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끼셨나요?



아이들과 하루하루 버티는 삶 속에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난 왜 이렇게 사는 걸까? 내가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닌데….’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그저 아이들, 남편과 함께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바랐을 뿐인데, 그마저도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미용실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에게 속 이야기를 털어놓곤 했습니다. 그러면 손님들은 “어디 점집이 잘 본다더라.”, “거기 가 보면 맞춰 준다더라.”라며 함께 가자고 하기도 했고, 어느 날은 정말 혼자 점집에 가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절감하였고, 신神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Q 증산도를 만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무렵, 옆집에 살던 분이 조상님께 공을 들여야 한다며 천도식을 권해 주셨고, 주문을 써 주시면서 읽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고, 단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간절히 주문을 외웠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동생이 저를 찾아와 제가 태을주를 읽는 모습을 보고 “그건 대순진리회의 수행이다.”라고 말하면서, 증산도 진리와 청수 모시는 법, 태을주 기도법 등을 자세히 알려 주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전까지는 종교를 가져 본 적이 없었으며, 절에 가도 절할 줄 몰랐고 교회에 가도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다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자.’는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어머니께서 매일 청수를 모시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란 기억 덕분에 증산도 진리가 자연스럽게 제게 다가왔습니다.

Q 신앙을 시작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신앙하게 된 과정도 궁금합니다.



도장에서 입도 공부를 하며 상제님의 도를 배워 갈수록 진리에 대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동생에 대한 신뢰도 깊었지만, 무엇보다 진리를 접하며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결국 저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이들까지 함께 입도하여 신앙을 시작하였습니다.
선령신이 짱짱해야 나를 따르게 되나니”라는 『도전道典』 2편 78장 말씀을 떠올리며, ‘어머니의 평생 정성과 기도가 우리 가족이 신앙할 수 있는 큰 힘이었구나.’라는 걸 깊이 깨달았습니다.

Q 신앙의 길이 늘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이후에도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남편이 시작했던 사업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집과 사업장이 압류되었고, 대출이 있던 미용실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보았습니다. 도장 중심의 신앙을 제대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은 미용 일을 다시 하라고 했지만, 저는 건강상의 이유를 핑계 삼아 도장 활동에 집중했습니다. 성금을 모시고 기도를 드리며 하루하루 신앙을 실천했고, 처음에는 적은 월급과 빠듯한 생활이 힘들었지만, ‘줄여서 사는 연습’을 통해 점차 안정감을 찾았습니다.


Q 신앙을 하면서 마음가짐이나 자세에서 변화된 점이 있다면요?



가장 큰 변화는 ‘신앙의 자세’였습니다. 직장에서 어떤 동료는 이사할 때 교회 근처를 먼저 확인한다며, 매일 새벽 기도를 하고 성금을 정성껏 모셔야 일이 잘 풀린다고 하더군요. 그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비록 타 종교지만, 그런 자세를 보며 ‘나도 상제님을 모시면서 저들보다 못해서야 되겠나.’라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도장 근처로 이사를 결심했고, 새벽마다 도장 봉청수와 100배례, 수행을 한 다음 아이들을 챙겨 학교에 보내고 출근하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성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유가 있어서 모시는 것이 아니라, 생긴 돈에서 먼저 상제님 일에 쓰고 나머지로 생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Q 책임자로 봉직하시면서 느끼거나 배운 점은 무엇이 있었을까요?



저는 포감과 재정을 맡으며 다양한 간부 도생님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어느 분은 포교에 집중하시고, 어떤 분은 수행 중심으로 이끌어 가시고… 성향은 달랐지만 저는 각자의 장점을 배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책임자가 되고 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할 땐 이렇게 했는데, 왜 저 사람은 못 할까?’ 이런 마음도 생겼고, 저도 모르게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음을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진짜 간부란, 보직에 맞게 상황을 보고 듣고 평가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책임지는 사람이란 걸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간부 한 분 한 분의 특성과 장단점, 건강 상태까지도 고려하며 함께 가는 마음으로 신앙하려 합니다.


Q 도장 활동과 포교, 수행에서의 노력도 남다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초기엔 전단지 활동과 가판대 활동을 통해 도장에 여러 사람을 인도했지만 수렴이 잘되지 않아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종도사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우주 일 년 도표를 천 번, 만 번 그려 봐야 한다.”

도장 인도부터 서두를 것이 아니라, 진리의 기초를 먼저 전해야 한다는 말씀이 마음에 박혔습니다.

그래서 틈틈이 우주 일 년, 생장염장, 무극-태극-팔괘, 천간지지 등 기본 교리를 반복해서 공부했고, 『도전』을 한 장씩이라도 읽고 수행하면서 신앙의 기운을 다지려 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신앙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신앙은 남을 보고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상제님과 태모님,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사모님을 ‘받들고 모시는’ 것이 신앙입니다. 책임자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고, 서로 장점을 바라보며 협력한다면 도장은 반드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제가 열심히 신앙하면 남편과 아이들도 반드시 함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되었고, 지금은 신앙에 대한 이해와 지지가 가족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기도와 배례, 그리고 『도전』 말씀 속에서 답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그렇게 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도장 중심 신앙은 제 삶을 바꾼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유영희 포정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신앙이란 특정한 ‘믿음의 형식’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바로잡는 힘임을 느끼게 됩니다. 좌절과 눈물 속에서도 오직 상제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 하나로 기도하고, 도장에 몸을 기대며 살아온 시간들은 결국 그녀의 가정과 도장, 나아가 자신까지 변화시키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신앙은 남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제님을 모시는 자세로 하는 것입니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상제님 신앙을 중심에 두고 하루하루를 다져 나간다면, 어떤 삶의 파고도 분명 이겨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모든 도생님들께 깊은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가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