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데몬 헌터스〉 리뷰 (1)
[진리코드로 문화 읽기]
한재욱 / 본부도장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는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Sony Pictures Animation사社에서 제작한 미국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대한민국의 K-POP 아이돌을 소재로 하는 최초의 해외 제작 애니메이션이다. 전 세계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 넷플릭스 93개국 Top 10 진입 등 글로벌 흥행을 이어 가고 있으며 수록곡들은 빌보드Billboard와 스포티파이Spotify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며 한국 콘텐츠의 세계적 영향력을 다시 한번 보여 주고 있다.
감독 매기 강Maggie Kang의 표현에 따르면 ‘Korea’를 만들기 위해 정말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케이팝K-pop의 모든 것부터 남산을 위시한 서울이라는 도시와 음식 문화까지, 한국계 제작진들에 의하면 제작 과정 중 한국적인 요소를 넣으면서도 그 역사성을 지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어필을 했다고 한다. 케이팝으로 수놓은 OST(Original Soundtrack, 영화 삽입곡 모음)는 현재 스포티파이와 빌보드를 강타했다. 적어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중 이런 성공은 없었다. 전통적인 선악 구조를 살짝 비트는 동시에 케이팝과 케이컬처K-culture를 정교하게 끼얹은 결과라는 평가에 이견을 내걸 이는 없을 것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오징어게임〉 시즌 3 공개일은 한 주 차이로 시너지를 일으킨 것으로 본다. 감독은 매기 강과 크리스 아펠한스Chris Appelhans 공동 감독이다. 매기 강의 한국 이름은 강민지, 한국계 미국인이다. 다섯 살 때 아버지 회사 일로 캐나다 토론토에 갔는데 1~2년만 체류할 줄 알았으나 5년 뒤 아예 캐나다로 이민을 하였다. 초등학생 때 여름방학은 모두 한국에서 보냈기에 한국 문화에 친숙하다. 크리스 아펠한스는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모린 구Maurene Goo 작가의 남편이고 구 작가 역시 2019년 K-POP 아티스트를 소재로 한 『Somewhere Only We Know』라는 소설을 냈으며 현재 이 작품도 넷플릭스에서 드라마화가 확정되어 제작 준비 중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줄거리는 이렇다. 오랜 세월 동안 악마들은 인간을 공격하고 그 영혼을 먹어 치우며 악마왕 귀마를 먹여 살렸다. 이에 세 명의 여성 헌터(악마 사냥꾼)가 나타나 악마들을 물리치고, 그들을 인간 세계에서 봉인하기 위해 혼문魂門이라는 장벽을 만들었다. 이 유산은 노래를 통해 혼문을 유지하는 다음 세대로 전해졌다. 현재의 사냥꾼 세대는 ‘헌트릭스HUNTRIX’라는 3인조(루미, 미라, 조이) K-pop 걸 그룹인데, 이들은 온갖 장애와 콤플렉스 등 난관들을 이겨 내며 ‘사자 보이즈SAjA Boys’라는 5인조 K-pop 보이 그룹 악령들과 맞서 싸워 결국 승리한다는 스토리다.
여기에 등장하는 태초의 헌터는 무당으로, 굿에 동원되는 춤과 노래로 악령을 쳐서 물리친다는 설정이 시대를 내려와 오늘날의 아이돌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사실 ‘무당 팔자가 연예인 팔자’라는 말은 예전부터 많이 사용되던 표현이다. 한국의 전통 무당은 애초에 고을의 사또나 부잣집 등이 비용을 대고 마을의 축제 분위기를 조성해서 굿을 치렀는데, 현대 아이돌도 지자체 등에서 출연료를 주고 축제 공연을 여는 것과 비교하면 묘하게 비슷한 면모도 있다.
본고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작품을 2회에 걸쳐 분석할 예정이며, 이번 호에서는 세 명의 샤먼, 목소리와 주문, 혼문, 서낭당, 헌터들의 무기에 담긴 원형 문화 코드들을 살펴보려 한다.
샤먼Shaman 복장으로 세 명의 여전사가 나타나 목소리로 데몬Demon들을 물리치는데, 샤먼들이 쓰는 무구巫具들을 쓴다. 목소리는 한을 달래고 풀어 주던 무악巫樂의 형태로, 씻김굿처럼 보이는 무무巫舞와 무가巫歌를 떠올리게 한다.
고대 신화와 역사를 들여다보면, 지금으로부터 5~6천 년 전에 이미 인류의 시원 문명이 지구촌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를 보통 ‘신성神聖 시대’라 부른다. 오늘의 인류가 누리는 문화의 순수 원형이 그대로 살아 있던 그 당시, 인류는 무병장수를 누렸다.
미국, 멕시코, 티베트 등을 누비며 인류의 샤머니즘 문명을 연구해 온 독일의 홀게르 칼바이트Holger Kalweit는 황금의 장수 문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천지 만물과 교감하는 신성을 가진 이들을 화이트 샤먼White Shaman이라 불렸고, 화이트 샤먼은 인류를 위해서 봉사하고 신의 마음을 열어 주는 존재였다. 이 화이트 샤먼은 본래 삼신을 모시는 자인 삼시랑三侍郞, 삼랑三郞을 뜻한다. 『환단고기桓檀古記』에는 삼신三神을 받들고 그 삼신과 하나 된 사람을 삼랑이라고 정의한다. 본래 삼랑선은 마고성에서 환국으로 넘어온 동방 1만 년 원형 신선 문화의 주제이다.
그러나 선천 상극相克 질서를 바탕으로 인류 문명이 발달하면서 샤먼은 죽은 인간의 혼백이나 지상에 떠도는 다양한 영적 존재와 인간들을 매개시켜 주는 세속의 무, 블랙 샤먼Black Shaman으로 속화되었다. 이 영화는 재미를 위해 간략한 설명으로 시작하지만, 우리 문화의 뿌리를 블랙 샤먼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어서 우려도 된다. 우리 문화의 원형은 화이트 샤먼이며 역사적으로는 삼신상제님을 모신 천제天祭 문화다.
이 영화는 태고의 여자 삼신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는데, 그 근원은 마고성의 세 분이시다. 헌트릭스의 ‘루미Rumi’는 ITZY, BLACKPINK, TWICE를 참고했다. ‘미라Mira’는 화사와 안소연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조이Zoey’는 귀여운 분위기를 원해서 많은 K-POP 아이돌의 외모를 참고했다.
세 주인공 이전의 선대 헌터들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도 세대마다 새로 3인조가 선발되어 춤과 노래의 힘으로 사람들의 유대를 연결하여 악령을 막아 낼 장벽인 ‘혼문’을 세우는 임무를 전승해 간다. 여기에 한국 대중가요 역사상의 걸 그룹 발전사를 접목하여 표현했는데, 선배 세대들의 모티브는 한반도 최초의 걸 그룹 〈저고리 시스터즈〉, 최초의 한류 가수로 분류되는 〈김시스터즈〉, 댄스 뮤직을 주 콘셉트로 삼은 최초의 걸 그룹이라 할 수 있는 〈세또래〉로 추정된다.
또한 헌트릭스 바로 이전 세대의 퇴마사 〈선라이트 시스터즈〉들은 1990년대 후반의 1세대 걸 그룹으로 표현되는데, 〈S.E.S〉에 대한 레퍼런스라고 한다. 제작진이 태고 역사 문화까지 조사해서 이런 설정을 만들진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세 분 여신의 이미지를 잘 반영한 셈이다.
영화에서는 목소리에 어둠을 몰아내는 힘이 있다고 하며, 사람들의 영혼에 불을 지피고 그 힘이 모여 세상을 지키는 ‘혼문魂門’이라는 빛실의 방패로 삿된 세력을 막아 낸다. 이런 소개는 목소리라고 하는 요소가 주문 수행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삼신의 신성과 생명과 지혜가 인간의 마음과 영혼 속에 내려올 때는 ‘빛(Light)과 소리(Sound)’로 나타난다. 인간의 눈으로 들어올 때는 빛으로, 귀로 들어올 때는 소리로 전해 온다. 신의 뜻이 시각(visualization)과 청각(auralization), 음양 짝의 두 가지 방식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신의 뜻이 청각화되어 나타난 것, 그것이 바로 주문이다. 주문은 곧 ‘신의 소리’요 ‘우주의 노래’, ‘신의 노래’인 것이다.
- 『환단고기桓檀古記 역주본』 해제
극 중 최종 보스인 귀마가 “너희 목소리는 날 꺽지 못해!”라며 최후의 공격을 하는데, 각성한 루미는 도깨비 문양이 새겨진 사인검四寅劍으로 귀마를 공격한다. 이때 남산타워 아래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서 혼이 빛나고 주인공들의 노래 목소리와 동조가 되어 눈부신 빛실의 그물망을 만든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영화 〈아바타〉에서 원주민들이 신단수 아래에 모여 신녀의 주문과 하나 되어 번쩍번쩍 빛을 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노래는 주문이 되어 모두의 가슴속에 빛을 모으고 그렇게 모인 빛은 혼문이 되어 귀마를 소멸시킨다.
신출귀몰神出鬼沒한 신도神道 조화는 청탁 오음淸濁五音의 주문 소리에 응하도다!
- 『도전道典』 6:137:7
조화롭게 노래하는 헌트릭스의 목소리는 『도전道典』 6편 137장의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신도神道 조화가 맑은 소리, 탁한 소리,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라는 다섯 가지 음률의 주문 소리에 응한다고 하신 말씀이 영화에서 혼문을 소환하고 삿됨을 물리치는 내용과 이어진다.
환웅께서 바깥일을 꺼리고 삼가 문을 닫고 수도하셨다(폐문자수閉門自修). 주문을 읽고 공덕이 이뤄지기를 기원하셨다(주원유공呪願有功).
- 『환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三聖紀」 상上
환웅께서 웅족熊族과 호족虎族을 신령한 주문의 도술로써(내이주술乃以呪術) 환골換骨케 하여 정신을 개조시키셨다(환골이신換骨移神).
- 『환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三聖紀」 하下
주원유공呪願有功은 우주 최초의 노래, 우주의 근원이 되는 노래를 부르면서 공덕을 이루셨다는 것인데, 이것은 대우주의 광명, 오환吾桓이 됐다는 것이다. 환국⋅배달⋅조선의 문화 유적으로 밝혀진 홍산紅山 지역에서 반가부좌를 틀고 있는 여신상과 하단전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입을 벌려 주문을 읽는 남신상이 발견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등장하는 ‘혼문魂門’은 혼魂(영혼)과 문門(관문)의 조합으로, 영혼과 악령의 세계를 연결하거나 통제하는 관문을 의미한다. 악령들이 인간 세계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보호 장벽이자 방패이다. 혼문은 단순한 마법적 방어막이 아니라, 케이팝 걸 그룹 ‘헌트릭스’의 노래와 팬들의 사랑, 지지 행위를 통해 유지되고 강화된다. 즉, 팬들이 헌트릭스의 음악과 콘텐츠를 더 좋아하고 열광할수록 혼문이 강해지고, 악귀의 침입을 막는 힘이 커진다.
이런 설정은 실제 케이팝 팬덤의 소비와 응원(음원 스트리밍, 앨범 구매, SNS 활동 등)이 아이돌의 ‘존재의 힘’이 되는 현실을 판타지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한국적 신화와 팬덤의 정서적 연결을 상징하며, 아이돌과 팬의 관계, 그리고 집단적 응원의 힘이 현실과 판타지 모두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드러내는 장치로 잘 녹여 냈다.
헌터의 역사를 훑는 장면에서 황금 혼문의 범위가 주변으로 펼쳐지는 와중에 삼팔선三八線 구간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는 것은 분단된 나라의 모습을 반영한 불완전한 혼문의 모습이라는 팬들의 분석이 많다. 초대부터 시작해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작은 고을에서 시작된 혼문이 세대를 거쳐 점차 세계로 영향력을 뻗어 가는 K-POP의 위상으로 연출된 것도 호평을 받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실제 펼쳐진 혼문은 황금 혼문이 아니라 무지개 혼문이다. 황금 혼문은 완성된 혼문이겠지만, 주인공 루미는 남주인공 진우가 악령이 된 것은 원한과 죄책감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다양성多樣性을 갖춘 무지개 혼문이 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선과 악으로 갈라 선은 악을 물리쳐야만 하는 단편적인 내용이 아니라 원寃과 한恨이 복잡하게 꼬인 인연의 실타래를 푸는 해원解寃의 개념을 어느 정도 반영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심야자 귀신지추기야 문호야 도로야
心也者는 鬼神之樞機也요 門戶也요 道路也라
마음이란 귀신鬼神의 문지도리요 드나드는 문호요 오고 가는 도로이라.
- 『도전道典』 4:100:6
혼문이 혼을 통제하는 문이라면 이런 『도전道典』 말씀과도 이어질 수 있다. 문지도리는 문짝과 문틀에 고정되어 문을 회전시켜 열고 닫는 축이다. 마음이 그 문의 축이요, 드나드는 출입문이요, 길이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증산도 『도전道典』에서의 혼문은 인간의 마음이 될 수 있다.
셀린Celine은 헌트릭스의 정신적 지주로 과거 헌트릭스처럼 아이돌 그룹 ‘선라이트 시스터즈’의 멤버이자 퇴마사였다. 제주도에서 서낭당을 지키며 살고 있다. 이런 설정은 아마도 제주도가 한국에서도 무속 신앙이 매우 강하게 남아 있는 지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무당을 ‘심방’이라고 부르며 마을의 제의와 축제, 공동체 신앙의 중심인물로 존중받는다.
제주도는 ‘신들의 섬’이라고 불릴 만큼 신앙적 요소가 일상에 깊게 녹아 있다. 작품에서 나무를 중심으로 여러 무덤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선대 헌터들을 모시는 성지, 일종의 소도蘇塗로 생각할 만하다. 시작 부분에 보면 셀린이 서낭당 나무 앞에서 헌트릭스에게 헌터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이 서낭당 나무 문화는 솟대 문화에서 온 것이다.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삼신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올렸다. 상고 시대 우리 조상들은 아무 데서나 천제를 올린 것이 아니라 ‘소도蘇塗’라는 특정 장소에서 올렸다. 배달倍達을 세운 환웅천황桓雄天皇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 ‘백두산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내려왔는데, 그 신단수를 중심으로 천제를 올리고 신의 도시인 신시神市가 세워졌다.
소도의 풍습 중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것이 바로 솟대[입목立木]이다. 배달의 초대 환웅천황이 신성한 나무를 신단수로 삼아 그 앞에서 천제를 올린 것이 고조선 시대에는 솟대로 변한 것이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하기 전까지 각 동네 어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서낭당 나무도 솟대와 같이 신단수를 대신한 것으로 그 마을의 수호목守護木 구실을 하였다. 이 작품은 이런 설정까지도 잘 담아냈다.
미라의 무기인 곡도曲刀는 가야의 곡도를 모티브로 한 콘셉트 아트가 공개되었다. 흔히 월도月刀라고 부른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는 이러한 월도로 추정되는 철기 유물이 발굴된 바 있다.
루미가 사용하는 사인검四寅劍은 조선 시대 조종조(태조 재위 시기)부터 왕실에서 제작하여, 조선 왕조 내내 궁중과 민간에서 만들었던 벽사용辟邪用 도검으로, 순양純陽의 기운이 깃들어 사귀邪鬼를 베고 재앙을 물리친다는 칼이다. 북두칠성과 28수가 새겨져 있다.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에 만들어졌기에 사인검이라 불린다. 극 중 악령화되었던 진우는 자신을 죄를 뉘우치고 한 맺힌 마음을 풀면서 루미에게 자신의 혼의 힘을 넘기는데, 이때 루미의 사인검은 진화해서 도깨비 문양이 새겨진다. 루미는 이 검으로 최종 보스인 귀마를 물리친다. 이렇게 제작진은 짧은 내용에 정말 많은 상징을 담아냈다.
다음 호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숨어 있는 노리개와 원방각, 우물 정 자, 단청, 꽃살, 호작도, 저승사자 논란, 한국의 굿과 콘서트, 화랭이와 삼랑 등의 코드들로 작품에 입혀진 한국의 원형 문화를 찾아보려 한다. ■
케데헌의 제작진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는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Sony Pictures Animation사社에서 제작한 미국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대한민국의 K-POP 아이돌을 소재로 하는 최초의 해외 제작 애니메이션이다. 전 세계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 넷플릭스 93개국 Top 10 진입 등 글로벌 흥행을 이어 가고 있으며 수록곡들은 빌보드Billboard와 스포티파이Spotify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며 한국 콘텐츠의 세계적 영향력을 다시 한번 보여 주고 있다.
감독 매기 강Maggie Kang의 표현에 따르면 ‘Korea’를 만들기 위해 정말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케이팝K-pop의 모든 것부터 남산을 위시한 서울이라는 도시와 음식 문화까지, 한국계 제작진들에 의하면 제작 과정 중 한국적인 요소를 넣으면서도 그 역사성을 지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어필을 했다고 한다. 케이팝으로 수놓은 OST(Original Soundtrack, 영화 삽입곡 모음)는 현재 스포티파이와 빌보드를 강타했다. 적어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중 이런 성공은 없었다. 전통적인 선악 구조를 살짝 비트는 동시에 케이팝과 케이컬처K-culture를 정교하게 끼얹은 결과라는 평가에 이견을 내걸 이는 없을 것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오징어게임〉 시즌 3 공개일은 한 주 차이로 시너지를 일으킨 것으로 본다. 감독은 매기 강과 크리스 아펠한스Chris Appelhans 공동 감독이다. 매기 강의 한국 이름은 강민지, 한국계 미국인이다. 다섯 살 때 아버지 회사 일로 캐나다 토론토에 갔는데 1~2년만 체류할 줄 알았으나 5년 뒤 아예 캐나다로 이민을 하였다. 초등학생 때 여름방학은 모두 한국에서 보냈기에 한국 문화에 친숙하다. 크리스 아펠한스는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모린 구Maurene Goo 작가의 남편이고 구 작가 역시 2019년 K-POP 아티스트를 소재로 한 『Somewhere Only We Know』라는 소설을 냈으며 현재 이 작품도 넷플릭스에서 드라마화가 확정되어 제작 준비 중이다.
작품 소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줄거리는 이렇다. 오랜 세월 동안 악마들은 인간을 공격하고 그 영혼을 먹어 치우며 악마왕 귀마를 먹여 살렸다. 이에 세 명의 여성 헌터(악마 사냥꾼)가 나타나 악마들을 물리치고, 그들을 인간 세계에서 봉인하기 위해 혼문魂門이라는 장벽을 만들었다. 이 유산은 노래를 통해 혼문을 유지하는 다음 세대로 전해졌다. 현재의 사냥꾼 세대는 ‘헌트릭스HUNTRIX’라는 3인조(루미, 미라, 조이) K-pop 걸 그룹인데, 이들은 온갖 장애와 콤플렉스 등 난관들을 이겨 내며 ‘사자 보이즈SAjA Boys’라는 5인조 K-pop 보이 그룹 악령들과 맞서 싸워 결국 승리한다는 스토리다.
여기에 등장하는 태초의 헌터는 무당으로, 굿에 동원되는 춤과 노래로 악령을 쳐서 물리친다는 설정이 시대를 내려와 오늘날의 아이돌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사실 ‘무당 팔자가 연예인 팔자’라는 말은 예전부터 많이 사용되던 표현이다. 한국의 전통 무당은 애초에 고을의 사또나 부잣집 등이 비용을 대고 마을의 축제 분위기를 조성해서 굿을 치렀는데, 현대 아이돌도 지자체 등에서 출연료를 주고 축제 공연을 여는 것과 비교하면 묘하게 비슷한 면모도 있다.
본고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작품을 2회에 걸쳐 분석할 예정이며, 이번 호에서는 세 명의 샤먼, 목소리와 주문, 혼문, 서낭당, 헌터들의 무기에 담긴 원형 문화 코드들을 살펴보려 한다.
홀로 어둠을 밝히랴, 우리 노래 부르리라, 굳건한 이 소리로 이 세상을 고치리라.
- 선대 헌터 셀린의 세계관을 설명할 때의 가사
- 선대 헌터 셀린의 세계관을 설명할 때의 가사
세 명의 샤먼
세상은 너희를 팝스타로 알겠지만... 그들의 목소리엔 어둠을 몰아내는 힘이 있었어... 우리 음악은 영혼에 불을 지피고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 주지. 그 결속력 덕분에 최초의 헌터들은 세상을 지킬 방패를 만들었어. 그게 혼문이야. 세대가 바뀔 때마다 세 명의 새로운 헌터가 선정되어 우리의 최종 임무를 수행해. 우리 세상에서 악령과 귀마를 영원히 몰아낼 결코 뚫리지 않는 강한 장벽을 만드는 것, 그게 황금 혼문이지. - 헌트릭스의 멘토인 셀린
샤먼Shaman 복장으로 세 명의 여전사가 나타나 목소리로 데몬Demon들을 물리치는데, 샤먼들이 쓰는 무구巫具들을 쓴다. 목소리는 한을 달래고 풀어 주던 무악巫樂의 형태로, 씻김굿처럼 보이는 무무巫舞와 무가巫歌를 떠올리게 한다.
고대 신화와 역사를 들여다보면, 지금으로부터 5~6천 년 전에 이미 인류의 시원 문명이 지구촌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를 보통 ‘신성神聖 시대’라 부른다. 오늘의 인류가 누리는 문화의 순수 원형이 그대로 살아 있던 그 당시, 인류는 무병장수를 누렸다.
그때는 인간들을 가르치는 위대한 영적 스승이 있었으며 그들의 수명은 수백 세에 달했다.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며 자연과 하나 되어 조화로운 삶을 산 그 신인들을 광명의 대무大巫, ‘화이트 샤먼White Shamans’이라 한다.
- 『샤먼, 치유자 그리고 주술사들』, 홀게르 칼바이트Holger Kalweit 지음
- 『샤먼, 치유자 그리고 주술사들』, 홀게르 칼바이트Holger Kalweit 지음
미국, 멕시코, 티베트 등을 누비며 인류의 샤머니즘 문명을 연구해 온 독일의 홀게르 칼바이트Holger Kalweit는 황금의 장수 문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천지 만물과 교감하는 신성을 가진 이들을 화이트 샤먼White Shaman이라 불렸고, 화이트 샤먼은 인류를 위해서 봉사하고 신의 마음을 열어 주는 존재였다. 이 화이트 샤먼은 본래 삼신을 모시는 자인 삼시랑三侍郞, 삼랑三郞을 뜻한다. 『환단고기桓檀古記』에는 삼신三神을 받들고 그 삼신과 하나 된 사람을 삼랑이라고 정의한다. 본래 삼랑선은 마고성에서 환국으로 넘어온 동방 1만 년 원형 신선 문화의 주제이다.
샤만의 어원은 고조선의 삼한三韓이다. 발음도 삼한 → 삼안 → 샤만으로 자연스럽게 전음될 수 있어 샤만과 삼한은 원래 같은 음이다.
- 우리 민족의 고유사상(『잃어버린 배달사상과 동양사상의 기원』 보급판) 중에서
- 우리 민족의 고유사상(『잃어버린 배달사상과 동양사상의 기원』 보급판) 중에서
그러나 선천 상극相克 질서를 바탕으로 인류 문명이 발달하면서 샤먼은 죽은 인간의 혼백이나 지상에 떠도는 다양한 영적 존재와 인간들을 매개시켜 주는 세속의 무, 블랙 샤먼Black Shaman으로 속화되었다. 이 영화는 재미를 위해 간략한 설명으로 시작하지만, 우리 문화의 뿌리를 블랙 샤먼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어서 우려도 된다. 우리 문화의 원형은 화이트 샤먼이며 역사적으로는 삼신상제님을 모신 천제天祭 문화다.
굳건한 이 소리로 이 세상을 고치리라.
환인은 주원유공呪願有功, 우주 최초의 노래를 불러서 공덕을 이루셨다.
샤만의 어원은 단군조선의 삼한三韓이다. 발음도 삼한 → 삼안 → 샤만으로 전음되었다.
환인은 주원유공呪願有功, 우주 최초의 노래를 불러서 공덕을 이루셨다.
샤만의 어원은 단군조선의 삼한三韓이다. 발음도 삼한 → 삼안 → 샤만으로 전음되었다.
세 분의 여신
세 명으로 구성된 여자 삼신은 여신 문화의 근원이다. 켈트, 그리스, 로마에도 여자 삼신이 있었다. - 로버트 그레이브스Robert Graves 교수(환단고기 북콘서트 자료 중)
인류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1만 년 이전의 지구촌에 원형 문화가 있었고 그 문화에 세 분의 여신女神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 세 명의 여자 삼신은 바로 마고성麻姑城의 마고대성麻姑大成 할머니와 두 딸 궁희穹姬, 소희巢姬 마마에서 왔다.
- 〈환단고기 북콘서트〉 중
- 〈환단고기 북콘서트〉 중
이 영화는 태고의 여자 삼신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는데, 그 근원은 마고성의 세 분이시다. 헌트릭스의 ‘루미Rumi’는 ITZY, BLACKPINK, TWICE를 참고했다. ‘미라Mira’는 화사와 안소연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조이Zoey’는 귀여운 분위기를 원해서 많은 K-POP 아이돌의 외모를 참고했다.
세 주인공 이전의 선대 헌터들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도 세대마다 새로 3인조가 선발되어 춤과 노래의 힘으로 사람들의 유대를 연결하여 악령을 막아 낼 장벽인 ‘혼문’을 세우는 임무를 전승해 간다. 여기에 한국 대중가요 역사상의 걸 그룹 발전사를 접목하여 표현했는데, 선배 세대들의 모티브는 한반도 최초의 걸 그룹 〈저고리 시스터즈〉, 최초의 한류 가수로 분류되는 〈김시스터즈〉, 댄스 뮤직을 주 콘셉트로 삼은 최초의 걸 그룹이라 할 수 있는 〈세또래〉로 추정된다.
또한 헌트릭스 바로 이전 세대의 퇴마사 〈선라이트 시스터즈〉들은 1990년대 후반의 1세대 걸 그룹으로 표현되는데, 〈S.E.S〉에 대한 레퍼런스라고 한다. 제작진이 태고 역사 문화까지 조사해서 이런 설정을 만들진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세 분 여신의 이미지를 잘 반영한 셈이다.
목소리로 세상을 지킨다
영화에서는 목소리에 어둠을 몰아내는 힘이 있다고 하며, 사람들의 영혼에 불을 지피고 그 힘이 모여 세상을 지키는 ‘혼문魂門’이라는 빛실의 방패로 삿된 세력을 막아 낸다. 이런 소개는 목소리라고 하는 요소가 주문 수행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삼신의 신성과 생명과 지혜가 인간의 마음과 영혼 속에 내려올 때는 ‘빛(Light)과 소리(Sound)’로 나타난다. 인간의 눈으로 들어올 때는 빛으로, 귀로 들어올 때는 소리로 전해 온다. 신의 뜻이 시각(visualization)과 청각(auralization), 음양 짝의 두 가지 방식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신의 뜻이 청각화되어 나타난 것, 그것이 바로 주문이다. 주문은 곧 ‘신의 소리’요 ‘우주의 노래’, ‘신의 노래’인 것이다.
- 『환단고기桓檀古記 역주본』 해제
극 중 최종 보스인 귀마가 “너희 목소리는 날 꺽지 못해!”라며 최후의 공격을 하는데, 각성한 루미는 도깨비 문양이 새겨진 사인검四寅劍으로 귀마를 공격한다. 이때 남산타워 아래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서 혼이 빛나고 주인공들의 노래 목소리와 동조가 되어 눈부신 빛실의 그물망을 만든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영화 〈아바타〉에서 원주민들이 신단수 아래에 모여 신녀의 주문과 하나 되어 번쩍번쩍 빛을 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노래는 주문이 되어 모두의 가슴속에 빛을 모으고 그렇게 모인 빛은 혼문이 되어 귀마를 소멸시킨다.
우리는 헌터, 강인한 목소리 노래로 악령을 물리쳐 망가진 세상을 바로잡네. 상처는 나의 일부, 어둠, 그리고 조화, 거짓 없는 내 목소리 여기에 울려 퍼져.
- 헌트릭스 노래
- 헌트릭스 노래
신출귀몰神出鬼沒한 신도神道 조화는 청탁 오음淸濁五音의 주문 소리에 응하도다!
- 『도전道典』 6:137:7
조화롭게 노래하는 헌트릭스의 목소리는 『도전道典』 6편 137장의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신도神道 조화가 맑은 소리, 탁한 소리,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라는 다섯 가지 음률의 주문 소리에 응한다고 하신 말씀이 영화에서 혼문을 소환하고 삿됨을 물리치는 내용과 이어진다.
환웅께서 바깥일을 꺼리고 삼가 문을 닫고 수도하셨다(폐문자수閉門自修). 주문을 읽고 공덕이 이뤄지기를 기원하셨다(주원유공呪願有功).
- 『환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三聖紀」 상上
환웅께서 웅족熊族과 호족虎族을 신령한 주문의 도술로써(내이주술乃以呪術) 환골換骨케 하여 정신을 개조시키셨다(환골이신換骨移神).
- 『환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三聖紀」 하下
주원유공呪願有功은 우주 최초의 노래, 우주의 근원이 되는 노래를 부르면서 공덕을 이루셨다는 것인데, 이것은 대우주의 광명, 오환吾桓이 됐다는 것이다. 환국⋅배달⋅조선의 문화 유적으로 밝혀진 홍산紅山 지역에서 반가부좌를 틀고 있는 여신상과 하단전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입을 벌려 주문을 읽는 남신상이 발견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혼문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등장하는 ‘혼문魂門’은 혼魂(영혼)과 문門(관문)의 조합으로, 영혼과 악령의 세계를 연결하거나 통제하는 관문을 의미한다. 악령들이 인간 세계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보호 장벽이자 방패이다. 혼문은 단순한 마법적 방어막이 아니라, 케이팝 걸 그룹 ‘헌트릭스’의 노래와 팬들의 사랑, 지지 행위를 통해 유지되고 강화된다. 즉, 팬들이 헌트릭스의 음악과 콘텐츠를 더 좋아하고 열광할수록 혼문이 강해지고, 악귀의 침입을 막는 힘이 커진다.
이런 설정은 실제 케이팝 팬덤의 소비와 응원(음원 스트리밍, 앨범 구매, SNS 활동 등)이 아이돌의 ‘존재의 힘’이 되는 현실을 판타지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한국적 신화와 팬덤의 정서적 연결을 상징하며, 아이돌과 팬의 관계, 그리고 집단적 응원의 힘이 현실과 판타지 모두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드러내는 장치로 잘 녹여 냈다.
헌터의 역사를 훑는 장면에서 황금 혼문의 범위가 주변으로 펼쳐지는 와중에 삼팔선三八線 구간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는 것은 분단된 나라의 모습을 반영한 불완전한 혼문의 모습이라는 팬들의 분석이 많다. 초대부터 시작해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작은 고을에서 시작된 혼문이 세대를 거쳐 점차 세계로 영향력을 뻗어 가는 K-POP의 위상으로 연출된 것도 호평을 받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실제 펼쳐진 혼문은 황금 혼문이 아니라 무지개 혼문이다. 황금 혼문은 완성된 혼문이겠지만, 주인공 루미는 남주인공 진우가 악령이 된 것은 원한과 죄책감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다양성多樣性을 갖춘 무지개 혼문이 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선과 악으로 갈라 선은 악을 물리쳐야만 하는 단편적인 내용이 아니라 원寃과 한恨이 복잡하게 꼬인 인연의 실타래를 푸는 해원解寃의 개념을 어느 정도 반영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심야자 귀신지추기야 문호야 도로야
心也者는 鬼神之樞機也요 門戶也요 道路也라
마음이란 귀신鬼神의 문지도리요 드나드는 문호요 오고 가는 도로이라.
- 『도전道典』 4:100:6
혼문이 혼을 통제하는 문이라면 이런 『도전道典』 말씀과도 이어질 수 있다. 문지도리는 문짝과 문틀에 고정되어 문을 회전시켜 열고 닫는 축이다. 마음이 그 문의 축이요, 드나드는 출입문이요, 길이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증산도 『도전道典』에서의 혼문은 인간의 마음이 될 수 있다.
세 명으로 구성된 여자 삼신은 여신 문화의 근원이다.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빛실의 그물망 혼문을 완성해 세상을 지킨다.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빛실의 그물망 혼문을 완성해 세상을 지킨다.
서낭당
셀린Celine은 헌트릭스의 정신적 지주로 과거 헌트릭스처럼 아이돌 그룹 ‘선라이트 시스터즈’의 멤버이자 퇴마사였다. 제주도에서 서낭당을 지키며 살고 있다. 이런 설정은 아마도 제주도가 한국에서도 무속 신앙이 매우 강하게 남아 있는 지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무당을 ‘심방’이라고 부르며 마을의 제의와 축제, 공동체 신앙의 중심인물로 존중받는다.
제주도는 ‘신들의 섬’이라고 불릴 만큼 신앙적 요소가 일상에 깊게 녹아 있다. 작품에서 나무를 중심으로 여러 무덤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선대 헌터들을 모시는 성지, 일종의 소도蘇塗로 생각할 만하다. 시작 부분에 보면 셀린이 서낭당 나무 앞에서 헌트릭스에게 헌터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이 서낭당 나무 문화는 솟대 문화에서 온 것이다.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삼신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올렸다. 상고 시대 우리 조상들은 아무 데서나 천제를 올린 것이 아니라 ‘소도蘇塗’라는 특정 장소에서 올렸다. 배달倍達을 세운 환웅천황桓雄天皇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 ‘백두산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내려왔는데, 그 신단수를 중심으로 천제를 올리고 신의 도시인 신시神市가 세워졌다.
소도의 풍습 중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것이 바로 솟대[입목立木]이다. 배달의 초대 환웅천황이 신성한 나무를 신단수로 삼아 그 앞에서 천제를 올린 것이 고조선 시대에는 솟대로 변한 것이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하기 전까지 각 동네 어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서낭당 나무도 솟대와 같이 신단수를 대신한 것으로 그 마을의 수호목守護木 구실을 하였다. 이 작품은 이런 설정까지도 잘 담아냈다.
헌터들의 무기 속에 담긴 코드
미라의 무기인 곡도曲刀는 가야의 곡도를 모티브로 한 콘셉트 아트가 공개되었다. 흔히 월도月刀라고 부른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는 이러한 월도로 추정되는 철기 유물이 발굴된 바 있다.
루미가 사용하는 사인검四寅劍은 조선 시대 조종조(태조 재위 시기)부터 왕실에서 제작하여, 조선 왕조 내내 궁중과 민간에서 만들었던 벽사용辟邪用 도검으로, 순양純陽의 기운이 깃들어 사귀邪鬼를 베고 재앙을 물리친다는 칼이다. 북두칠성과 28수가 새겨져 있다.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에 만들어졌기에 사인검이라 불린다. 극 중 악령화되었던 진우는 자신을 죄를 뉘우치고 한 맺힌 마음을 풀면서 루미에게 자신의 혼의 힘을 넘기는데, 이때 루미의 사인검은 진화해서 도깨비 문양이 새겨진다. 루미는 이 검으로 최종 보스인 귀마를 물리친다. 이렇게 제작진은 짧은 내용에 정말 많은 상징을 담아냈다.
다음 호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숨어 있는 노리개와 원방각, 우물 정 자, 단청, 꽃살, 호작도, 저승사자 논란, 한국의 굿과 콘서트, 화랭이와 삼랑 등의 코드들로 작품에 입혀진 한국의 원형 문화를 찾아보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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