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시간 여행 - 오늘의 우리말 [혼나다]

[STB하이라이트]


“너 이러다 혼난다.”, “정말 혼났네.”와 같은 표현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잘못을 꾸짖는 말로 자연스럽게 쓰이지만, 정작 어떤 의미에서 비롯되었는지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습니다. 이 단어는 ‘혼 + 나다’, 즉 혼이 몸에서 빠져나가다라는 뜻에서 출발하였습니다. 놀람이나 공포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을 그대로 묘사한 표현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인간이 혼魂과 백魄 곧 속사람과 겉사람으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혼은 하늘의 생기에서, 넋(백)은 땅의 정기에서 비롯된다 여겼으며, 살아 있는 동안 두 존재는 ‘혼줄’이라는 생명선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사람이 죽으면 임종 직후 바로 초혼招魂이나 고복皐復이라는 의식을 했습니다. 지붕에 올라가 망자의 옷을 흔들며 이름을 부르고 “복復”을 세 번 외치면서 끊어진 혼줄을 다시 이어 보려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관은 언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혼비백산魂飛魄散은 혼이 날아가고 넋이 흩어질 만큼 놀란 상태를 나타내고, ‘혼쭐나다’라는 표현은 혼과 몸을 잇는 생명선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을 의미했습니다. 옛날 서당에서 훈장에게 꾸지람을 들을 때나 관청에서 형벌을 받는 순간을 떠올려 보면, 왜 그런 표현이 생겨났는지 짐작하실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정말로 “혼이 빠져나갈 정도의 두려움”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혼나다’는 단순히 야단을 맞는다는 가벼운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혼이 나간 것 같다.”, “영혼 없는 소리 하지 마.”와 같은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합니다. 이런 표현들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우리 조상들이 믿었던 속사람과 겉사람의 관계, 그리고 그들을 연결하는 혼줄에 대한 관념이 지금도 우리 언어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 시간에 다루었던 ‘신나다’와 오늘의 ‘혼나다’가 모두 조상들의 영적 세계관에서 비롯되었음에도 정반대의 경험을 가리킨다는 사실입니다. ‘신나다’는 신이 몸에 들어와 생기는 기쁨을, ‘혼나다’는 혼이 빠져나가 생기는 고통을 표현합니다. 재미있는 건 둘 다 평상시와는 다른 특별한 상태를 나타낸다는 점입니다. 신이 나도 일상의 평범함을 벗어난 상태이고, 혼이 나도 속사람과 겉사람의 정상적인 결합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하니까요.

혼나다. 이 한마디 속에는 우리 조상들의 생과 사, 몸과 마음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인간의 이원적 존재 구조, 영적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녹아 있는 의미 깊은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