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롱베이의 신비에서 메콩강의 생동감까지. 천 년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베트남Vietnam(월남越南)

[세계지역문화탐방]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인구 약 1억 명의 다민족 국가이다. 중국의 천 년 지배, 프랑스의 식민 통치, 베트남 전쟁을 거쳐 1976년 통일되었으며, 54개 민족이 공존하고 불교⋅유교⋅가톨릭 등 다양한 종교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1986년 도이머이(Đổi Mới) 정책 이후 연평균 6~7%의 고성장을 이루며, 제조업⋅수출⋅관광업을 중심으로 급속한 경제 발전을 달성했다. 사회주의 체제 아래에서도 시장 경제를 적극 도입하였고, 젊은 인구와 높은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특징이다.
강한 민족적 자긍심과 애국심, 근면성을 바탕으로 전통과 현대화가 조화를 이루며,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신흥 경제국이다.



한눈에 보는 베트남



2025년 개편된 베트남 행정구역

베트남은 2025년 7월 1일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했다. 기존 63개의 성省⋅시市(57개 성 + 6개 중앙직할시)에서 34개(28개 성 + 6개 중앙직할시)로 축소되었다. 성과 중앙직할시는 1단계 행정구역이고 그 아래에 2단계 기초 행정구역으로 방坊(Phường), 사社(Xã), 특구(Đặc khu)가 있다. 방은 도시 지역의 하위 행정구역으로 한국의 동洞과 같다. 사는 농촌 지역의 하위 행정구역으로 우리의 면面에 해당한다.
행정구역과는 별도로 베트남에서는 크게 3대(북부, 중부, 남부) 분류와 일기예보나, 관광 등에서 쓰이는 8대 지역 구분법이 있다.




국명



대월에서 월남으로

베트남의 정식 국호는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이다. 베트남어의 어순에 따라 ‘공화’, ‘사회주의’가 ‘베트남’보다 먼저 온다. 베트남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대월大越(Đại Việt)이라는 이름이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대월이 월남越南으로 바뀐 것은 1806년 응우엔 왕조 때부터다. 원래 ‘남월南越’로 정했으나 청淸나라에서 과거의 남월(기원전 203~기원전 111)과 같다고 반대하여 결국 월남으로 타협했다. 베트남어는 ‘수식어’가 ‘피수식어’ 앞에 오는 우리말과 달리, ‘피수식어’가 ‘수식어’ 앞에 오는 독특한 어순을 가진다. 따라서 ‘남쪽의 비엣족’이라는 의미를 가진 ‘남월’을 ‘월남’으로 바꾸어도 그 의미는 그대로 보존된다. 이 ‘월남’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베트남Việt Nam’으로 국호가 이어지고 있다.


위치

베트남은 인도차이나반도의 오른쪽에 남중국해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은 S 자형 지형을 가졌다.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의 길이는 약 1,650킬로미터에 이르며, 동서로 가장 좁은 곳은 불과 50킬로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국토 전체가 바다와 맞닿아 있어 예로부터 해상 교역과 교류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다. 북부에는 홍강 삼각주, 남부에는 메콩강 삼각주가 펼쳐져 있어 비옥한 토지를 자랑한다.

수도 하노이Hà Nội 같은 주요 도시들이 이 하천 유역에 자리 잡고 있으며, 특히 메콩강 유역은 세계적인 쌀 생산지로 꼽힌다. 내륙에는 안남Annam산맥과 고원 지대가 펼쳐져 커피 재배지로도 유명하다. 최서단에는 휴양지로 잘 알려진 푸꾸옥Phú Quốc섬이 있다.

베트남 하면 흔히 ‘밀림’을 떠올리지만, 현재 국토에서 숲이 차지하는 비중은 37%에 불과하다. 19세기까지만 해도 대부분 지역이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었으나, 개간과 전쟁 중 살포된 고엽제로 산림이 크게 훼손된 결과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형으로 북부는 아열대 몬순 기후, 남부는 전형적인 열대 몬순 기후로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다. 기후와 지형의 차이는 다양한 문화적 풍경과 생활 양식을 만들어 냈고, 풍부한 자연환경은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더했다.

역사 history



베트남의 고대 역사

동남아시아의 길목, 남중국해와 접한 나라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은 스스로 용의 아들이자 선녀의 손자라고 부른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역사 기록이 긴 베트남의 건국 신화를 보면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한 명인 염제 신농씨炎帝神農氏의 3세손 제명帝明으로부터 시작한다.

제명은 무선務成의 딸과 혼인 해 아들 녹속祿續을 낳는다. 녹속은 경양왕涇陽王(Kinh Dương Vương)으로 남방으로 다스리다 동정군洞庭君의 딸인 용녀龍女(용왕의 딸)과 혼인해 낙룡군雒龍君(Lạc Long Quân)을 낳았다. 용왕의 피를 이어받은 낙룡군은 하늘과 바다의 기운을 가진 어우꺼와 혼인하여 100개의 알이 들어 있는 삼(알을 싸고 있는 막과 태반) 하나를 낳았다.

그 알에서 100명의 아들이 나왔는데 이들이 백월족百越族의 선조이다. 이들 중 장남이 흥브엉Hùng Vương(웅왕雄王)이며 그는 반랑국(Văn Lang, 文郎, 문랑)을 세워 베트남 최초의 왕이 된다. 반랑국은 2,500년 동안 이어져 왔다. 이 시기는 청동기,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하며, 동고銅鼓(청동북)는 이 시기 문화를 상징하는 유물로 동남아 전역에서 발견된다. 반랑은 동서북남으로는 각각 남해, 파촉, 동정호, 호손국胡孫國(점성)과 접한 15개 부락으로 구성되었다. 중국의 양자강 이남에 해당하는 이 지역은 반랑의 영토 개념이라기보다는 백월족*의 거주지라고 볼 수 있다.
*백월족百越族 - 고대 중국의 양자강(장강) 이남 지역부터 베트남 북부 지방에 걸쳐 넓게 퍼져 살았던 월족越族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중국 한족漢族과는 달리 벼농사를 짓고 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몸에 문신을 하고 단발과 치아를 염색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후 반랑국이 멸망하고 어우락Âu Lạc(기원전 257 ~기원전 179) 왕조가 세워진다. 어우락 왕조는 어우족과 락족이 연합하여 건국되는데 건국자는 안 즈엉An Du’o’ng이다. 베트남이 중국과 처음 관계를 갖게 된 것도 어우락 시대이다. 중국의 진秦이 남진하여 광동廣東과 광서廣西 지역으로 내려오면서 서로 군사적으로 대립하는 관계였다.


남월南越의 건국, 베트남의 기원

진이 멸망할 무렵 하북河北 출신으로 진의 관리였던 찌에우다趙佗가 오늘날의 광서와 광동 일대를 중심으로 남월南越(기원전 203~기원전 111)을 세웠다. 그는 기원전 206년에 세워진 북쪽의 한漢나라와 대립을 하면서 남진 정책을 추진, 기원전 179년 어우락을 합병했다.

남월은 어우락을 합병한 후, 중국식 군현郡縣 제도를 도입했다. 오늘날에도 베트남의 지방 행정 단위는 중국처럼 성省-현縣으로 되어 있다. 지금 우리가 월남이라고 부르는 베트남 국가의 명칭이 남월에서 온 것이다.


중국 지배 시기

이어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기원전 111년에 남월을 병합하면서 베트남은 자연스럽게 한에 병합되었다. 1117년에 걸친 중국의 지배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베트남 지배는 그들의 저항 때문에 순탄하지 않았다.

최초로 중국의 지배에 반기反旗를 든 사람은 쯩Trưng 자매이다. 기원후 40년의 일이다. 베트남인 투쟁사의 첫머리를 장식한 이들의 반란에는 여자들이 많이 참여했다. 여자가 반란의 수장首長이 되어 중국에 반기를 드는 사건은 그로부터 약 200년 후인 248년에도 있었다. 바로 찌에우 어우Triệu Ấu의 반란이다. 이 두 사건은 부권父權 사회인 중국의 오랜 지배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의 모권母權 사회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쯩 자매는 1세기 후반 후한의 지배하에서 세금징수권을 되찾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다. 언니 쯩짝(Trưng Trắc)과 쯩니(Trưng Nhị) 자매는 쯩 여왕(徵女王, Trưng Nữ vương, 쯩느브엉)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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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왕조 시대

베트남이 중국에서 독립한 것은 응오吳 왕조(939~968) 때이다. 중국에서 당唐이 망하고, 오대십국五代十國으로 분열되어 있던 시기였다. 당시 베트남은 오대십국 중 하나인 남한南漢의 지배하에 있었다. 베트남은 바익당白藤강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남한을 물리쳐 1,000년 넘게 이어져 왔던 복속의 사슬을 끊었다.

이후의 역사를 베트남에서는 ‘독립 왕조 시대’라고 한다. 이 기간에 중국의 베트남 침략은 일곱 차례 있었다. 그중 세 차례는 몽골의 침략이다. 자신들로부터 벗어났음에도 중국은 베트남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천 년의 수도 하노이Hà Nội 시대를 연 리李 왕조는 베트남 최초의 장기長期 왕조이다. 이때부터 유학이 표면화되기 시작하여 공자孔子를 제사하는 문묘文廟와 국립 대학인 국자감國子監이 세워지고 과거 제도가 시행되었다.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는 응우옌阮 왕조(1802~1945)이다. 16~18세기 동안의 지난한 분쟁 과정을 거쳐 세워진 응우옌 왕조는 지금의 영토 형태로 전국을 통합한 최초의 왕조였다. 하지만 응우옌 왕조는 쇄국鎖國 정책을 추구하다가 1885년 프랑스 제국주의에 주권을 빼앗겼다. 그 이유로 오늘날까지도 대중으로부터 가장 비판을 많이 받는 왕조다.

프랑스, 일본, 미국을 거쳐 완전 통일까지
프랑스령 식민 시대(1859~1954)에 베트남은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 이후 일본군 무장 해제를 위해 연합군이 진주하면서 베트남은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분할된다. 1955년 남부에 미국의 지원을 받는 베트남이 성립되면서 대미 항쟁이 시작된다. 드디어 1975년 4월 30일 남부의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베트남은 완전 통일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은 1117년간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서 독립을 지켜 냈고 근대에 와서는 외국 제국주의의 침략을 이겨 낸 투쟁의 역사가 있다. 외세와 싸우며 나라의 독립을 지켜 냈다는 면에서 우리나라 역사와 매우 닮아 있다.


정치 제도



공산당 일당 체제

베트남 공산당(Đảng Cộng sản Việt Nam)이 국가 운영의 전권을 장악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사회주의 인민공화국, 실질적으로는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다. 그러나 중국이나 북한과 달리 권력의 집중이 비교적 약하고 집단 지도 원칙이 작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총비서, 국가주석, 총리의 권력 분점과 정치국⋅중앙위원회 합의 구조는 권위주의적 일당제 속에서도 독특한 정치적 균형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집단 지도 체제의 전통

베트남 정치 체제를 이해하는 핵심은 ‘집단 지도 체제’다. 중국이나 북한처럼 권력이 한 개인에게 집중되기보다는 총비서, 국가주석, 총리 등이 권력을 분점分占하고 정치국과 중앙위원회가 합의제合議制 방식으로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이는 호찌민이 흐루쇼프Khrushchyov의 스탈린 격하 운동을 받아들여 개인숭배보다는 집단 지도 원칙을 강조한 결과로, 오늘날까지 제도화되어 있다.


국가 운영의 틀

베트남의 국가주석은 임기 5년으로 국회에서 선출되며, 국가를 대표하고 외교 및 국방을 총괄한다. 헌법상 군 통수권을 가진다. 총리는 내각을 이끌며 행정과 경제 운영을 책임진다. 국회는 단원제(500명 의원, 임기 5년)로 헌법 개정, 입법, 예산 승인 권한을 갖지만, 공산당 정책을 추인하는 역할이 주를 이룬다. 개혁 개방 이후 지방 권력이 강화된 점도 베트남 정치의 독특한 면모다.

주요 도시



하노이Hà Nội: 베트남 북부의 수도首都로, 고대 사원과 프랑스 식민지 시대 건축물, 호안끼엠Hoàn Kiếm 호수와 올드 쿼터(구시가지)가 유명하며,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문화와 역사 체험이 가능하다. 현 수도이자 정치⋅교육⋅문화의 중심지로 홍강 삼각주에 위치해 있다.

호찌민시Thành phố Hồ Chí Minh: 과거 사이공Sài Gòn으로 불린, 베트남 최대의 경제 도시. 메콩강 삼각주에 자리하며 무역⋅비즈니스의 중심지로 기능한다. 외국인 투자 기업의 본사가 밀집해 있으며 글로벌 도시로 빠르게 성장 중이다.

하이퐁Hải Phòng: 북부의 산업⋅물류 허브. 전략적 항구 도시로서 국제 교역의 관문 역할을 한다. 도선Đồ Sơn 해변과 혼다우Hòn Dấu 해변, 깟바Cát Bà섬 생물권보전지역 등이 유명하다.

다낭Đà Nẵng: 중부 최대 해안 도시로 관광과 첨단 산업을 겸비한 곳이다. 아름다운 해변과 바나 힐Bà Nà Hills, 골든 브리지Golden Bridge라는 독특한 건축물이 관광 명소로 꼽히며, 자연 경관과 현대 휴양지가 어우러져 가족 여행객에게 인기가 높다.

하롱베이Hạ Long Bay: 하롱만湾(베트남어: Vịnh Hạ Long)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카르스트 석회암 절경이 유명하며 유람선 투어로 섬과 동굴 탐방이 가능한 베트남 대표 생태 관광지 중 하나이다.

베트남 민족 구성



베트남은 복잡한 민족民族 구성을 지닌 나라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민족만 54개#에 이르며, 이 가운데 절대다수는 낑Kinh족, 곧 비엣Việt족이다. 비엣족은 사실상 베트남인의 정체성을 대표하며, ‘베트남’이라는 국호 역시 ‘비엣족’과 ‘남쪽’이라는 의미가 합쳐진 결과다.

반면, 나머지 53개 소수 민족은 인구의 14~15퍼센트에 불과하며, 그중 가장 많은 타이Tày족조차 2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이들 소수 민족은 북부 산악 지대와 중부⋅남부 고원 지역에 주로 거주하며,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 생활 양식을 지켜 왔다.

베트남은 주변 동남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소수 민족에 대한 동화와 탄압의 역사를 겪었다. 베트남의 다민족 사회는 한편으로는 풍부한 문화적 자산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정체성과 사회 통합을 둘러싼 끊임없는 긴장의 원천이다. 낑족 중심의 국가 발전이 소수 민족의 권리와 문화를 어떻게 존중하면서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그것은 오늘날 베트남이 직면한 중요한 과제다.


언어



50여 개가 넘는 다양한 소수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 사회인 베트남인들을 하나로 묶어 내는 중요한 매개체가 있으니, 바로 베트남어다. 베트남어는 오스트로아시아어족 비엣므엉Việt-Mường 어군에 속한다. 이 어족은 말레이시아 네그리토, 인도 동부 카시족, 캄보디아인 등이 사용하는 언어와 같은 계통이다. 즉 베트남어는 지리적 경계를 넘어 동남아시아 전역과 인도차이나반도 일부를 관통하는 거대한 언어적 맥락 속에 놓여 있다.

특징적인 점은 베트남어가 성조聲調 언어라는 것이다. 여섯 개의 성조(음조音調)를 구분하며, 같은 음절이라도 성조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오늘날 베트남어는 라틴 문자를 기반으로 한 ‘꽉응으Quốc Ngữ’가 표준 문자 체계로 쓰인다.

베트남어 어휘의 60% 이상이 한자漢字 계통에서 비롯되었다.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호찌민胡志明, 쩐흥다오陳興道—만 보아도 그 흔적은 분명하다. 또한 이름 문화에도 한자의 자취가 남아 있다. 여성은 중간 이름에 티Thị(氏)를 자주 쓰며, 남성은 반Văn(文)을 많이 사용한다.

현대에 들어 소수 민족들조차 점점 베트남어를 상용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는 언어적 통합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고유 언어 보존 문제라는 과제를 남기고 있다.

주요 인물



#쯩Trưng 자매 : 현재 #베트남에서 민족 영웅으로 숭배#되고 있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는 쯩 자매를 뜻하는 하이바쯩Hai Bà Trưng(𠄩婆徵)군郡이 있고 베트남 곳곳에 이들 자매의 상이 세워져 있다. 남쪽의 대도시 호찌민 최대 번화가에 하이바쯩 거리와 쯩짝의 남편에게서 이름을 따 온 티삭Thi Sách 거리가 나란히 있을 정도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쯩 자매가 갖는 의미는 크고도 깊다. 하노이의 메링Mê Linh(麊泠)현縣에는 쯩 자매의 사당이 있다.

바찌에우Bà Triệu : 앞서 언급한 찌에우 어우Triệu Ấu와 동일인이며, 본명은 찌에우 티 찐Triệu Thị Trinh이다. 3세기 초 중국 삼국 시대에 오吳나라의 지배에 맞서 오빠인 찌에우 꾸옥 닷Triệu Quốc Đạt과 함께 봉기했다. 여성 전사로서 베트남 민족 저항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현재 타인호아Thanh Hóa 지역에는 바찌에우를 기리는 사당이 있으며, 매년 그녀를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응오꾸옌Ngô Quyền(吳權) : 응오 왕조를 연 인물이다. 938년 바익당강白藤江 전투에서 남한南漢을 물리쳐 중국의 1,000년 지배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전투에서 보여 준 천재적인 전략은 지금도 회자된다. 그는 바익당강의 조수 간만의 차가 크다는 점을 이용했다. 썰물 때 강바닥에 쇠를 씌운 큰 나무 말뚝을 박아 두고, 밀물이 들어와 말뚝이 물에 잠겨 안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 베트남군이 가벼운 배로 적을 도발하여 말뚝이 박힌 곳까지 유인했다. 때마침 썰물이 시작되어 물이 빠지자, 거대한 남한의 군함들은 뾰족한 말뚝에 걸려 좌초되거나 파손되었다. 꼼짝 못 하게 된 적군을 베트남군이 기습하여 전멸시켰다.

쩐흥다오Trần Hưng Đạo(陳興道) : 13세기 쩐陳 왕조 시대의 인물로 몽골 제국의 대규모 침략을 세 차례에 걸쳐 막아 낸 뛰어난 군사 전략가다. 그 결과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몽골의 침입을 물리친 나라다. 베트남에서 한국의 이순신 장군과 같은 위상을 지닌 민족 영웅이다. 베트남 전역에는 그의 이름을 딴 ‘쩐흥다오 거리’가 가장 번화한 곳에 위치한다. 그는 죽은 뒤 신격화되어 ‘성조聖祖’ 또는 ‘흥다오 대왕’으로 불리며, 베트남의 무속 신앙에서 악귀를 쫓는 최고의 신으로 모셔진다.

호찌민Hồ Chí Minh(胡志明) : 20세기 중반에 등장한 호찌민은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초대 주석으로서 독립과 사회주의 혁명을 이끈 베트남의 상징적 지도자이며, “나는 조국과 결혼했다.”라는 신념으로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월남전 이전 수도였던 ‘사이공’의 도시 이름을 아예 호찌민시로 바꿔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현대 베트남의 최고 민족 지도자이다.


보응우옌잡Võ Nguyên Giáp(武元甲) : 현대사에서 호찌민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로 오늘날의 베트남 인민군을 만들어 낸 ‘베트남 군대의 아버지’이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전멸시켜 프랑스로 하여금 베트남에서 완전 철수를 하게 만들었다. 이어진 미국과의 전투에서도 총사령관으로 활약했다. 그가 내세운 삼불三不 전략은 “적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싸울 수 없다, 적은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싸울 수 없다, 적은 내가 예상한 방법으로 싸울 수 없다.”이다. 이 전략은 옛날 쩐흥다오의 전술을 현대로 계승한 것이다.


종교



베트남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공산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헌법상 종교宗敎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현재 총 15개의 종교가 정부의 인가를 받아 활동하며, 전통 민간 신앙에서 불교, 가톨릭, 개신교, 그리고 베트남 특유의 신흥 종교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공존한다.

무엇보다 베트남 종교의 밑바탕에는 조상 숭배와 민간 신앙이 있다. 인구의 70~75퍼센트는 특정 제도나 종교를 따르기보다는 집안 제단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샤머니즘적 의례를 실천하며 일상과 신앙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이러한 문화적 관습은 불교, 유교, 도교와 뒤섞여 베트남 고유의 정신적 풍토를 형성해 왔다. 오늘날 베트남의 종교 풍경은 전통과 현대, 체제와 신앙이 서로 타협하고 긴장하는 현장이다.


경제



2025년 베트남 경제는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정부는 8.3~8.5퍼센트의 높은 GDP 성장률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2025년 1분기 GDP 성장률은 6.93퍼센트, 2분기에는 7.96퍼센트로 증가하며 최근 5년간 1분기 기준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주요 성장 동력은 제조업 회복, 내수 소비 확대, 외국인 직접 투자(FDI) 활발, 그리고 정부 주도의 인프라 투자와 디지털 경제 전환 정책이다.

다만, 대외 무역 긴장과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인건비 상승과 숙련 기술 인력 부족이라는 리스크도 존재한다. 베트남 경제는 안정적인 고성장과 투자 유치, 디지털 경제 전환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경제 기반을 강화#하고 있으며,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동남아시아에서 경쟁력 있는 경제로 평가받고 있다.

외교



대한민국과의 관계

베트남은 전 세계 대부분 국가와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2020년대 기준으로 190여 개국과 수교를 유지하는 등 광범위한 외교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 경제국과 밀접한 교역 및 협력 관계를 넓히면서 중국, 러시아 등 전통적 우방과 균형을 이루는 외교 노선을 펼친다. 세력 균형을 유지하며 어느 한쪽에 편향되지 않으려는 현실주의現實主義 전략이 핵심이다.

한국과는 1992년 외교 관계 수립 이후 30여 년 만에 양국 관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022년에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해 양국 간 신뢰와 협력의 폭이 크게 확대되었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는 2030년까지 양국 무역액 1,500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생산망 공동 개발, 상호 시장 개방, 베트남 기업의 한국 주도 글로벌 공급망 참여 확대 등이 추진되고 있다. 최근 박항서 감독의 감동적 리더십과 김상식 감독의 전략적 성과는 베트남 축구 부흥뿐 아니라 한국-베트남 관계 강화에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케이팝K-pop을 중심으로 한 한류는 베트남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임영웅을 비롯한 한국의 트로트 가수들이 현지 활동 없이도 높은 인지도를 쌓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베트남의 초중고에서 한국어가 제1외국어로 채택되고, 대학에 한국학(어) 강좌가 개설되는 등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다. 최근에는 베트남 정규 방송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어린이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되기도 하였다.


풍습



명절

베트남에서 가장 큰 명절은 뗏Tết으로 음력설에 해당한다. 뗏 명절은 보통 5일에서 10일 정도 이어지며, 이 기간 동안 가족과 조상을 기리는 특별한 행사가 많다. 설날 전에는 집 안 청소와 장식을 통해 지난 한 해의 불운을 털어 내고, 설날 당일에는 청소를 하지 않는다. 설날 당일에 청소를 한다는 것은 재산이 새어 나가는 나쁜 징조라 여긴다.

뗏 기간에는 불꽃놀이, 폭죽놀이, 닭싸움, 씨름, 인간 장기 등 전통놀이를 즐기며,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도 중요한 의식이다. 어린 사람들이 어른을 공경하고 효도를 실천하는 문화도 특징적이다. 추석은 한국만큼 중요하지 않으며, 대신 어린이날과 비슷하게 8월 15일 음력 추석에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가 많이 열린다.

음식과 식사 예절

베트남 음식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주요 음식으로는 퍼Phở(쌀국수), 쏘이Xôi(찹쌀밥), 바잉 뗏Bánh Tét(남부), 바잉 쯔엉Bánh Chưng(북부) 등이 대표적이다. 음식 예절에서는 반찬을 직접 입으로 가져가지 않고 접시에 덜어 먹으며, 국물 음식은 큰 숟가락으로 각자 그릇에 떠먹어야 하는 규칙이 있다. 음식을 먹을 때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씹는 것도 예의이다.


금기 사항

베트남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개고기 소비 국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개고기를 먹는 것이 특정 시기와 상황에 따라 금기시된다. 예를 들어 음력 달 초반(1~14일)에는 개고기를 피하고, 보름 이후의 시기에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믿는다.
또 설날 당일에 청소를 하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금기이다. 매월 5일, 18일, 23일과 같은 특정한 날에는 큰 일을 삼가며,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결혼식 날에 바로 만나지 않는 등의 가족 내 금기도 존재한다.
이 외에도 뗏 명절 전후로는 자녀에게 옷과 구두 선물을 주고, 새해를 맞아 살구꽃과 복숭아꽃을 집에 장식하는 풍습이 있다. ■

베트남의 주요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