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은 생에 할 일이 생겼어요 / 나의 길을 찾았습니다 / 빛꽃 수행을 널리 전하고 싶어
[입도수기]
제 남은 생에 할 일이 생겼어요
육사 출신 군인으로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 왔으나, 고교 시절부터 가슴속에 품은 질문,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전역 후 상고사 연구 모임과 활동에 전념하다 상생방송 패널 활동 팀을 만나면서 빛꽃 체험 행사, 북콘서트 등에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만난 증산도 진리의 위대함에 놀랐으며, 남은 생을 바쳐 해야 할 일이 생겨 너무 좋습니다.
전역 후 상고사 연구 모임과 활동에 전념하다 상생방송 패널 활동 팀을 만나면서 빛꽃 체험 행사, 북콘서트 등에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만난 증산도 진리의 위대함에 놀랐으며, 남은 생을 바쳐 해야 할 일이 생겨 너무 좋습니다.
정병욱 (남, 71세) / 대구수성도장 / 도기 155년 음력 9월 입도
1만 년 역사를 이어 오신 여정에 감사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한민족 1만 년 역사를 이어 여기까지 오신 여정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경북 경주에서 4남 중 둘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라 화랑도의 숭고한 정신을 자연스럽게 접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나라를 위한 삶의 연속으로 뼛속까지 화랑의 정신으로 각인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대령으로 전역하였습니다. 현역 시절 여러 가지 임무를 띠고 나라를 위한 일들을 다방면으로 수행하였습니다. 이후에는 인천국제공항 보안 총책임자로 있으면서 세상 사람들에게는 남 부러울 게 없는 선망의 대상이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언제나 가슴속 한편에 맴돌았던 의문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그 질문들이 저를 떠나질 않았습니다.
상고사 연구 모임에서 활동하다
그 답답함의 해답을 찾기 위해 역사를 뒤지기 시작한 지 20여 년, 서울에서 모든 직장을 은퇴한 후 제가 찾은 곳은 상고사 연구 기관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던 일 중 특히 『환단고기』에 대한 고찰은 제 생애 최고의 선물인 듯했습니다. 그래서 파고 파고 깊이 파며 고귀한 한문화 역사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은 제 삶의 가치이자 살아오는 힘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역사적 가치를 주변인들과 국민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사명이 저를 이끌어 역사 운동도 적극적으로 이어 갔습니다.
저는 박정학 박사의 한배달, 송부웅 원장의 ‘국사광복회’에서 행한 상고사 공부와 연구 토론회에 심취하여 한국상고역사교육원 부원장을 역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한배달을 중심으로 자칭 역사의병대를 창립하여 동북아역사재단 단죄와 이덕일 교수 역사 재판 승리를 위한 투쟁 활동을 적극적으로 이어 갔습니다. 그러나 건강이 악화되어 대구로 이사를 오면서 활동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대구에서 역사 공부 모임을 찾다가
대구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기관이나 모임을 목마르게 찾던 중 3년 전 경산 자인 단오제에서 한 장군 추모 기념 행사에 참가했는데, 주변을 거닐다가 상생방송에서 나온 패널을 보았고 역사 찾기 활동과 『환단고기』 소개를 듣고 너무나 반가워서 회원 등록 명부에 이름과 연락처를 기꺼이 남겼습니다.
이후 대구수성도장의 김미화 포감으로부터 계룡산 태라천궁 착공식에 참가를 요청하는 메시지를 받고 흔쾌히 다녀왔고, 『환단고기』 역주자이신 안경전 종도사님의 〈환단고기 북콘서트〉 강연도 유튜브로 빠짐없이 보았습니다.
증산도 진리의 위대성에 놀라고
이후 2024년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선仙포럼 빛과 꽃을 마시다” 행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안경전 종도사님께서 직접 주관하신다고 하여 참석을 하였는데, 빛 체험 행사를 보고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6월에 있었던 〈개벽 문화 북콘서트〉에도 참여하려 했으나 건강상 참여를 못 하였습니다.
이후에 증산도 도장에 방문하여 노 수호사님, 김 포감님과 차담을 나누었고, 주기적으로 도장에 찾아가 환단고기와 삼신 수행법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중에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께서 직접 그리신 우주 일 년 도표에 대해 들으면서 증산도 진리의 위대성에 놀라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도사님께서 전 세계를 다니시며 하신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상생방송으로 보면서 팬이 되었습니다.
수호사님께서 주신 『춘생추살』을 읽으니 그 책은 자체가 생활의 도였습니다. 하루하루 도장에 방문했다가 집으로 갈 때는 아쉽기도 하고, 내가 찾던 공부가 여기에 다 있었네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생사의 순간 체험이 의미하는 것
10년 전 뇌졸중으로 두 번이나 생사를 오락가락하는 순간을 맞은 적이 있었습니다. 쓰러져 의식을 잃었던 순간에 꿈결같이 나타난 어떤 사람이 갈림길에 서 있던 저에게 당신은 아직 때가 안 되었으니 버스를 타고 가라고 했습니다. 막연히 기다리는데 정말 버스가 왔고, 저는 옆에 있던 동료에게 같이 타고 가자는 말을 했지만 그는 한사코 거절하더니 다른 사람들이 줄지어서 가던 길로 가 버리고 저만 타고 왔습니다.
그러던 순간, 눈을 살며시 떠 보니 응급실 옆을 막 지나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아 살았구나! 죽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도 그 기억은 너무나 생생해서 잊히지 않습니다.
이제 제가 해야 할 일이 생긴 것이 너무나 기쁘고 좋습니다. 시천주주와 태을주를 들으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입도식을 하면서 빛꽃을 내려 받았는데, 빛꽃 수행을 하면 몸 안의 모든 찌꺼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낍니다.
저는 앞으로 『도전道典』을 중심으로 진리 공부를 더 열심히 하려 합니다. 그리고 증산도에서 역사의 뿌리를 찾고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일에 남은 생을 바칠 것이며, 내 생명의 뿌리를 찾아 신선이 되는 길을 가겠습니다. 보은!
나의 길을 찾았습니다
한평생 원불교와 기독교, 선불교를 거친 수십 년간의 공부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의문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조상 신명제를 모시던 날 갑자기 한 송이 꽃이 보였는데, 이후 상생방송에서 바로 그 꽃 선정화를 보았고, 『도전道典』을 읽어 보니 이것은 꼭 필요한 진리이고 내가 원하던 길이었습니다.
그러다 조상 신명제를 모시던 날 갑자기 한 송이 꽃이 보였는데, 이후 상생방송에서 바로 그 꽃 선정화를 보았고, 『도전道典』을 읽어 보니 이것은 꼭 필요한 진리이고 내가 원하던 길이었습니다.
박차우 (여, 83세) / 고양마두도장 / 도기 155년 음력 9월 입도
눈물 속에 되돌아본 나의 삶
저는 시조님의 영정을 모시는 제실祭室이 있고 큰 사당, 작은 사당에 조상님들을 모시는 대종가집 5남 4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저의 친정은 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제사와 명절 차례를 한결같이 모시며 유교의 전통을 따르는 집안입니다.
지난 2019년 12월 어느 날, 새벽에 잠이 오질 않아 캄캄한 밤에 우두커니 앉아 생각에 잠긴 시간이 있었습니다. ‘내가 걸어온 길이 80년을 맞이하면서 이렇게 눈물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기쁨과 눈물, 슬픔 등 희로애락이 모두 섞인 눈물을 흘리고 나니 오히려 눈이 부드럽고 밝아진 것 같았습니다.
더 나아가 든 생각은 이러했습니다. 아! 이때다. 눈이 어두워지기 전에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가 보자. 길에도 여러 갈래로 나뉜 길, 용도에 맞는 길이 다양하게 있듯이, 나도 나의 길을 따라서 왔으니 걸어왔던 나의 길에 대해 모든 면에서 회고하는 글을 쓰면서, 앞으로 하고픈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며 가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보였던 그 꽃
제가 지나온 길을 더듬어 보면, 18세 때 원불교에 입교하고 일원상一圓相의 진리 공부, 30년 수행 공부를 하면서도 ‘나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나?’의 문제였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삼생과 윤회를 믿는데, 희망과 목적지에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원불교를 중단하고 기독교를 신앙하면서 장로교, 침례교, 왕국회관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모두 달랐습니다.
그러다 2020년 10월부터 제 건강에 이상이 왔습니다. 몸무게가 11킬로그램이나 빠지고 식욕 부진과 변비, 우울증이 왔고 오른쪽 눈의 시력이 나빠져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일 후회된 일은 원불교 용어인 영육쌍전靈肉雙全을 못 한 것입니다. 조상님께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정신과 육체를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하고 떠나자! 나는 할 일이 있어, 꼭 해야 돼! 그러기 위해서 내 육신을 살리자.’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지인으로부터 선불교 안내를 받았습니다. 거기에서 처음 접하는 공부는 「천부경」이었는데, 모든 진리는 천부경 81자 속에서 시작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못 해서 아쉬웠던 조상 신명제를 모시는 계기가 되어서, 친가 조부모님과 부모님, 외가 외조부님과 외조모님, 시댁 조부모님과 부모님, 그리고 남편과 못다 살고 가신 영가 등을 모시고 21일간 집에서 정성 기도 후 본성제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본성제가 마지막 끝날 때 저에게는 갑자기 연꽃 한 송이가 보였습니다. 단아한 모습의 여성 한 분이 꽃 속에서 피어나듯이 보이고,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도 보이는데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어 답답했습니다.
내가 본 꽃이 상생방송에
그러던 어느 날 잠에서 깨어 TV 채널을 차례대로 돌려 보던 중 300번 채널에서 제가 보았던 꽃과 꽃 속의 여성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상생방송에서 본 그 꽃은 바로 ‘선정화’였습니다. 또한 상생방송에서 주문 읽는 게 나오는데 제가 7세 때 아버님께서 읽으시던 시천주주와 신성주가 떠올랐습니다. 아버님께서 그때 증산교를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생방송을 계속 보면서 ‘이것이 영육쌍전이구나, 내 소원을 이룰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몸에 신경을 썼더니 건강도 좋아졌기에 서점에서 『도전道典』을 구입해 읽던 중, 이것은 꼭 필요한 진리이고 내가 원하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고양마두도장에 전화하고 방문을 하였습니다. 도장에서 진리 공부와 수행을 하고서 입도를 하였는데 내가 원하던 본향을 찾아온 것 같습니다. 수호사님도 옛날부터 모시던 분같이 느껴지고, 도생님들도 한 가족 같은 느낌이었어요. 새로 태어난 것 같아 행복합니다.
빛꽃 수행을 널리 전하고 싶어
젊은 시절 사업 관계로 만나 친해진 인도자와 오랜 인연을 유지했는데, 삶의 고난과 건강 문제로 시련을 겪었을 때 선려화 치유 행사 참여를 권유받았습니다.
선려화 행사에서 빛꽃 수행을 하던 중 전날 밤 꿈에서 본 꽃이 보이는 체험을 했고, 독서클럽에 가입해 올바른 역사와 수행 문화를 배우며 증산도 진리의 진면목을 깨닫고 공감했습니다.
선려화 행사에서 빛꽃 수행을 하던 중 전날 밤 꿈에서 본 꽃이 보이는 체험을 했고, 독서클럽에 가입해 올바른 역사와 수행 문화를 배우며 증산도 진리의 진면목을 깨닫고 공감했습니다.
장옥경 (여, 63세) / 안양만안도장 / 도기 155년 음력 10월 입도
오래 전에 맺은 인연
저는 젊은 시절 군포시 산본 백화점에서 강기옥이란 브랜드 옷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계속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1997년 어느 날, 우연히 가게로 찾아오신 차영희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점점 알아 가며 서로의 마음을 터놓았고 정말 좋은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가까이 지내기 시작한 지 2년 정도가 되었을 즈음 어느 날부터 수행을 하자면서 만날 때마다 꾸준히 수행 이야기를 조금씩 해 주셨습니다.
조금은 궁금해지기도 했고 가랑비에 옷 젖듯이 권유를 하였으므로, 어느 날 도장에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책임자셨던 지승용 수호사님께서 증산도에 관해 이야기해 주셨고 태을주 수행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태을주 수행을 하면서 드디어 2004년 8월 13일 입문을 하였습니다.
그때 제 몸 상태는 혈압과 심혈관 쪽이 나빠져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태을주 수행을 하기 시작하면 목이 조여 와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도장에 가는 횟수가 점점 줄었고 서서히 수행도 안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린 자연스럽게 만나도 사업적인 이야기만 하였습니다.
사랑을 주신 시아버님의 별세
그렇게 인도자와는 사업상 사이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고 삶에 큰 어려움이 없이 지내다가, 3년 전 저에게 큰 변화가 오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모셔 왔던 시아버님은 늘 며느리인 저를 무척이나 의지하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시아버님은 카리스마가 있고 엄격하신 분이라 가족 중 누구도 어려워했는데 유독 제게는 살갑게 대해 주셨습니다. 결정을 할 일이 있으면 자식들이 아니라 저의 의견을 물어보시고 제 의사를 수용하며 결정을 하시곤 했습니다.
그렇게 저를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 주셨던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이 너무 허전하고 많이 슬프고 아팠습니다. 그 슬픔으로 몇 번씩 쓰러지기도 하고 기절도 하면서 몸이 많이 힘들어졌습니다. 귀도 늘 아프고 어지럼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을 때, 차영희 사장님은 인천 송도에서 선려화 행사를 하는데 치유의 은혜를 받을 빛꽃 수행을 알려 주겠다 하시며 적극적으로 참석 권유를 하였고, 저는 망설임 없이 바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빛꽃 수행에서 꽃을 보다
송도에서 종도사님이 내려 주시는 빛의 유전자 혼줄과 신줄을 받아서 하는 수행, 빛꽃을 내려 주시며 하는 수행을 따라 하면서 놀라운 일들을 체험하였습니다. 바로 전날 밤 꿈에서 본 꽃이 보였습니다! 또 시아버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저를 바라보고 계셔서 눈물이 날 뻔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안양만안도장에 몇 번 방문해서 송영대 수호사님과 공부를 했습니다. 집이 일산으로 이사를 가서 안양은 꼬박 두 시간 거리였기 때문에 조금은 힘이 들기도 했습니다. 또 제가 하는 일이 너무 바빠 시간이 잘 나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도장이나 행사에 참여를 했다가 바쁘면 참여를 못 하기를 반복하였습니다.
독서클럽에서 깨달은 바른 역사 문화
차 사장님이 좋은 독서클럽을 권유하여 정보도 얻고 도움도 되겠다 싶어 가입을 하였고, 그 독서클럽에는 무조건 참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독서클럽 모임에 참여해 『환단고기』의 올바른 역사와 우리 민족의 철학과 수행 문화를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내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바로 알고 널리 알리는 일을 하는 애국자가 되어야겠구나!’ 하는 가슴 뭉클함과 더불어 증산도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곳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차 사장님과 송 수호사님의 권유로 ‘아~ 이젠 입도를 해야겠구나!’ 하고 결심하였습니다.
아직은 부족함이 많지만 역사와 진리 공부를 하며 종도사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조금이나마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시간을 좀 더 내어 도전 읽기와 진리 공부를 해 가면서 증산도 일꾼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사업상 많은 지인들이 있어 그들에게도 제가 체험한 빛꽃 수행과 『환단고기』의 올바른 역사, 그리고 상제님 진리를 전하여 함께 이 길을 갈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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