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연개소문〉의 환단고기 코드 (1)

[진리코드로 문화 읽기]
한재욱 / 본부도장




작품 소개


TV 드라마 〈연개소문〉은 7세기 당唐 태종의 침략을 격퇴한 고구려의 영웅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생애를 그린 SBS 대하 사극이다. 2006년 7월 8일부터 2007년 6월 17일까지 100부작으로 방영했다. SBS에서 유현종 작가가 1975년부터 1978년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원작의 저작권을 구입했다. 그러나 실제 드라마 극본을 쓴 이환경 작가는 소설 연개소문이 실제와 다르다는 이유로 직접 집필했다.

이환경 작가는 대한민국의 사극 드라마 작가이자 소설가이다. 2001년 제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분을 수상하기도 한 사극, 시대극 전문 작가이다. 대표 작품으로는 〈무풍지대〉, 〈파천무〉, 〈용의 눈물〉, 〈태조 왕건〉, 〈제국의 아침〉, 〈야인시대〉, 〈영웅시대〉, 〈연개소문〉, 〈무신〉 등이 있다.

이환경 작가처럼 한국인의 역사 인식에까지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 작가는 드물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방대한 시대를 다루며 나말羅末 여초麗初(태조 왕건)와 여말麗末 선초鮮初(용의 눈물)의 왕조 교체기에 초점을 둔 대체 불가능한 걸작들을 하나씩 남겼을뿐더러, 현대극에 있어서도 〈야인시대〉를 통해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까지 격동의 시대를 모두 다루었다.

드라마 연개소문은 『환단고기桓檀古記』의 많은 내용들이 녹아 들어가 있다. 우리 민족의 국통 맥과 강단 사학에서 언급하지 않는 많은 역사를 적극적으로 작품에 반영하였기에 이를 내용별로 소개해 보려 한다.


연개소문(603∼657)에 대한 인물평


연개소문은 불교⋅도교 등 외래 종교 사상을 배격하고 고유한 신교神敎 문화의 상무尙武 정신을 크게 떨친 희대의 대영걸이다. 지금도 연개소문은 대만에서 ‘중국을 응징한 무서운 혁명가’로 추앙받고 있다. 『환단고기』에는 연개소문의 혈통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조대기 왈
朝代記에 曰,
연개소문 일운개금 성 연씨 기선 봉성인야
“淵蓋蘇文은 一云蓋金이니 姓은 淵氏오 其先은 鳳城人也라
부왈태조 조왈자유 증조왈광 병위막리지
父曰太祚오 祖曰子遊오 曾祖曰廣이니 並爲莫離支라”
『조대기朝代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연개소문은 일명 개금이라고도 한다. 성은 연씨이고, 선조는 봉성 사람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태조이고, 할아버지는 자유, 증조부는 광인데 모두 막리지를 지냈다.”
- 『환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太白逸史」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또한 드라마 해설에서는 이밀李密이란 인물과의 대화 장면을 통해 연개소문이 지은 병법서를 이렇게 소개한다.

이밀李密이 이토록 놀라고 있는 이 책! 그것은 바로 연개소문이 썼다고 전해지는 「김해병서金海兵書」이다. 지금은 실체가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사의 기록 열전 편에 보면 왕이 지방에 병마사로 가는 인사들에게 「김해병서」를 한 권씩 하사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 때까지는 이 병서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상고사』를 쓴 단재 신채호申采浩 선생은 김해가 연개소문의 자字라고 했다. 즉 「김해병서」는 연개소문이 쓴 병법서였던 것이다. 전하는 말로는 연개소문이 당나라의 최고 명장으로 불리는 이정李靖을 이 책으로 가르쳤고 훗날 이정은 자신이 저술한 중국의 7대 병법서 중 하나인 「이위공병법」 원본에 이 사실을 낱낱이 기록해 놓았다고도 전한다.
- 〈연개소문〉 드라마 해설


실제 연개소문은 당대 최고 병법가이기도 하다. 중국 역사상 최고 영주英主 중의 한 사람으로 숭앙받는 당 태종도 고구려를 정벌하려다 연개소문의 신출귀몰한 전략에 말려들어 끝내 절명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단재 신채호는 “당 태종 때의 명장인 이정李靖은 연개소문에게서 병법을 배워 당나라 제1의 명장이 되었고, 그가 지은 『이위공병법李衛公兵法』은 중국에서 이름 높은 7대 병법서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 원문에는 연개소문에게 병법을 배운 이야기를 자세히 쓰고, 그뿐 아니라 연개소문을 숭상한 고어가 많다.”라고 하였다(『조선상고사』, 신채호).


“개소문아 새기거라. 우리 민족은 지금 네가 살고 있는 그 이전 8천 년경(현재로부터는 9천여 년)에 사백력 땅 천해 근처에서 그 역사를 시작하였느니라.”- 조의들의 스승 조실



국통 맥國統脈과 민족정신



연개소문이 조의 수련을 마치고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 앞에 서서 스승의 가르침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작가는 우리 민족의 국통 맥을 훑어 낸다. 연개소문이 조실 어른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백두산에서 모든 조의를 가르치는 스승이라고 나온다. 이 스승의 말이다.

“개소문아 새기거라. 태초에 땅과 하늘이 열렸느니라. 우리 민족은 지금 네가 살고 있는 그 이전 8천 년경(현재로부터는 9천여 년)에 사백력 땅 천해 근처에서 그 역사를 시작하였느니라. 나라 이름을 환국桓國이라 하였고 환인桓因님들이 7대에 걸쳐 3,301년 동안 다스리셨느니라. 그 뒤를 이어 태백산 환웅桓雄님께서 배달국을 세우시고 신시에 도읍을 정하셨으니 그 대가 18대에 1,565년 동안이었느니라. 그러나 나라가 오래고 세월이 길다 보면 분열이 일어남은 자연의 이치, 배달국倍達國 14대 환웅 치우천왕蚩尤天王 대에 이르러 서토에서는 황제헌원黃帝軒轅이 무리를 이끌고 일어나 우리의 땅을 넘보니 치우께서 노하시어 그와 싸우기를 무려 일흔세 차례. 결국은 그를 사로잡아 엄히 꾸짖고 신하로 삼았느니라.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렀느니 이후로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조선朝鮮을 세우시고 평양에 도읍을 정하시어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셨으니 조선은 무려 47대 임금에 2,096년의 역사가 이어졌고, 잠시 북부여北夫餘에 이어 추모왕鄒牟王 대의 대고구려大高句麗가 일어나니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900여년 전에 일이니라. 그 사이에 천지는 서토와 요동으로 갈라져서 서로가 세력의 존재를 위해 싸웠고 그 와중에 숱한 위기를 극복하고 고구려의 영토를 넓힌 젊은 영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이니라. 개소문, 네가 이후로 크게 흠모하고 그 뜻을 넓게 살펴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할 것이니라.” - 조의들의 스승 조실의 대사


연개소문이 생존하던 시기는 현재로부터 1,400여 년 전이다. 환국桓國이 2025년으로부터 9,200여 년 전이므로 당시로서는 8천 년 전이라고 하는 게 맞는 대사다. 연개소문 역할을 한 유동근 씨는 아무 대사 없이 광개토태왕비를 어루만지며 감격에 겨워 눈시울을 붉히는 연기를 훌륭히 해냈다. 태왕비를 배경으로 해를 향해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는데 다리가 세 개인 것으로 보아 삼족오三足烏를 상징적으로 등장시켰다.

“장졸들은 들어라. 이 요하 건너 저 중원 땅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그 수백 수천 년 전부터 본래 우리 선조들의 땅이었다. 그것은 단군 임금과 치우천왕 그리고 광개토태왕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 요하를 넘어 저 서토로 들어갈 것이다. 천하의 주인 자리가 누구인지 이제 저들한테 분명하게 보여 줄 때가 왔다.” - 연개소문


연개소문이 요택으로 도망가는 당 태종 이세민을 추격하며 대반격을 하는 장면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국통 맥 관점으로 해설해 보면 조의선인의 스승에게서 전수받은, #환국⋅배달⋅조선부터 이어 온 우리 국통 맥의 정신#을 장졸들에게 그대로 전해 주고 있는 것이다.


살수대첩과 을지문덕 장군




드라마는 수隋나라 30만 대군을 물리친 살수대첩薩水大捷의 영웅 고구려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살수대첩薩水大捷. 서기 612년 7월의 일이다. 오늘날까지 을지문덕의 이름을 남기게 한 전무후무한 대전이다. 우중문于仲文이 이끄는 30만 별동군이 평양성 30리 밖까지 이르기는 했으나 이미 오랜 굶주림과 누적된 피곤으로 인하여 전투력이 상실되었다. 그리고 되돌아가다가 살수薩水에서 수공水攻을 만났으니 어찌 온전할 수 있었겠는가? 이 살수대첩에 대해서는 훗날 조선조 후기의 실학자이며 역사가인 안정복安鼎福이 지은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도 다음과 같이 크게 칭송하고 있다. “예로부터 전쟁의 승패는 군 병력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다. 을지문덕 장군이 기회를 틈타 전력을 다해 적을 공격하기를 마치 마른 나뭇가지를 불 지르고 썩은 나뭇등걸을 뽑아 제치듯 하여 그들을 천하의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외적들이 후세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를 함부로 침범하지 못한 것은 을지문덕 장군이 남긴 공적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 드라마 해설


살수는 일명 살하수薩賀水로 ‘물이 살살 흐르는 강’이란 뜻이다. 고대에 살수는 네 곳이 있는데 ①개평현蓋平縣 주남하州南河, ②요동반도의 대양하大洋河, ③청천강淸川江, ④청주 무심천無心川 등이다. 한국 강단 사학계는 살수를 청천강으로 보고 있지만, 조선 후기 문신 이덕수李德秀는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대첩을 거둔 곳을 대양하라 하였고 독립운동가였던 정인보鄭寅普는 주남하라 하였다. 모두 현재의 한반도를 벗어난 중국 땅이다. 수양제의 대침공을 살수대첩으로 물리친 상황을 『환단고기』는 이렇게 기록한다.

홍무이십삼년 수군일백삼십여만 병수륙이래공
弘武二十三年에 隋軍一百三十餘萬이 並水陸而來攻이어늘
문덕 능이기계 출병초격지 추지살수 수대파지
文德이 能以奇計로 出兵鈔擊之하고 追至薩水하야 遂大破之하니
수군 수륙구궤 생귀요동성금창려자 근이천칠백인
隋軍이 水陸俱潰하야 生歸遼東城今昌黎者가 僅二千七百人이라.
홍무 23(단기 2945, 612)년에, 수나라 군사 130여 만 명이 바다와 육지로 쳐들어왔다. 을지문덕이 출병하여 기묘한 계략으로 그들을 공격하고 추격하여 살수薩水에 이르러 마침내 크게 격파하였다. 수나라 군대는 바다와 육지에서 함께 궤멸되어, 살아서 요동성(지금의 하북성 창려)으로 돌아간 자가 겨우 2천7백 명이었다.
- 『환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太白逸史」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 당시 수나라가 동원한 병력에 대하여 민족주의 사학자 장도빈張道斌은 “이때 여麗⋅수隋 전쟁은 실로 세계 유사有史 이래 최대 전쟁이었으니 동양 역사상에 그런 대전쟁이 없었고, 서양 역사상에 페르시아 대 희랍 전쟁(BCE 492~BCE 480)을 최대 전쟁이라 하나 페르시아의 동원이 170만이었다. 그런데 이때 수의 동원은 『수서隋書』, 『자치통감資治通鑑』 등 중국 역사에 명백히 육군 정병 130만 3천8백 명, 해군 10만 명, 운수대運輸隊는 육군 정병의 배倍라고 하였으니 그때 수의 동원이 300만 명이었던 것이 정확하다 할 것이다. 그러니 이 수많은 적을 격멸한 고구려의 병력은 수隋나라 이상의 강력한 군대인 것을 알 수 있으니 ‘당시에 우리 민족이 실로 세계 최강국’인 것을 알 수 있다”(장도빈, 『대한역사』)라고 하였다.


조의선인



강성한 제국 고구려는 조의선인皂衣仙人 제도에서 비롯했다. 조의(조의선인)는 신라의 화랑花郞과 같은 고구려의 신교 낭가郞家이다. 조의선인은 삼신상제님의 진리, 즉 한민족의 국교인 신교神敎 사상으로 무장한 무사단武士團으로, 개인적인 성숙보다는 국가와 민족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내던져 살신성도殺身成道하는 것을 삶의 이상과 목적으로 삼았던 ‘한민족 역사 개창의 주역들’이었다.

실제로 『환단고기』에 의하면 고구려 국상國相 을파소乙巴素는 나이 어린 준걸들을 뽑아 선인도랑仙人徒郞이라 하고, 무예를 관장하는 자를 조의皂衣라 하였다. 을지문덕, 연개소문 같은 고구려의 영걸은 모두 조의선인皂衣仙人으로 뽑힌 인물이었다. 이들은 평상시에는 무예를 연마하고 신교의 진리를 터득하며 심신과 학문을 닦는다. 그러나 일단 국가의 유사시에는 군대 조직에 편제되어 직접 전쟁터로 나가 나라의 위기를 구하는 선봉이 되었다.

드라마에서는 조의들이 고구려의 핵심 군사로 나타나는데, 전쟁 전반에 걸쳐 당나라 후방의 식량 창고를 불태우고, 매복 공격으로 게릴라전을 하는 모습 등이 조의들의 결정적인 역할을 잘 보여준다. 고구려⋅수나라의 전쟁 당시에도 국가 총동원령에 의해 ‘조의 20만’이 직접 전쟁터에 나가 130만이나 되는 수의 대군을 궤멸시켜 인류 전쟁사에 기록을 세웠다.

『환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太白逸史」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에 의하면 연개소문도 홍무 14년(26세 영양제, 단기 2936, 603) 5월 10일에 태어났고 아홉 살에 조의선인에 뽑혔다. 드라마에서는 연개소문이 백두산에서 삼족오 깃발 아래 조의의 수련을 하고 모든 조의선인들을 이끄는 국선國仙으로 임명되는 장면이 장엄하게 그려진다.

“너는 그동안 네게 주어진 운명을 충분히 받았다. 또한 이곳에서 하늘의 이치를 배워 조의선문 공부 또한 크게 이루고 통하였다. 이후로는 고구려의 모든 조의가 네게 복종하고 따를 것이다. 조의의 두령을 이름하여 국선이라 하니 이제 너는 국선으로서의 책무를 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 조실 어른



천제天祭



“환웅천제와 단군왕검이시여. 하백의 손자이자 해와 달의 아들이신 추모성왕이시여. 그리고 대고구려의 열성조께 아뢰나이다. 후손 고원이 마침내 열성조의 유훈을 받들어 중원의 수나라 오랑캐를 치러 가나이다. 열성조시여. 단군의 나라이며 고조선의 후예이고 삼한의 주인이며 맏이인 고구려를 보호하소서. 후손과 고구려 군사들에게 두려움을 모르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후손과 고구려 군사들에게 패배를 모르는 강인함을 주시옵소서. 하늘님이시여. 단군의 후예를 굽어 살피소서. 굽어 살피시오소서.” - 영양태왕


이 드라마에는 유독 하늘에 제祭를 올리는 장면이 아주 많이 등장한다. 특히 수나라와 대전에서 영양태왕嬰陽太王이 태왕으로서 #천제#天祭를 올리는 모습을 강조한다. 이보다 먼저 출정 전에도 황금 갑옷을 입고 비장한 각오로 기도를 올리는 장면이 아주 강렬하다. 배우 이효정 씨의 울림 짙은 연기가 인상적이고 깊이 와닿는다.
광개토태왕비문에는 추모왕에 대해 이렇게 나온다.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며, 하백河伯의 따님을 어머니로 한 추모왕鄒牟王이다. (我是皇天之子 母河伯女郎鄒牟王)


하백은 본래 천하天河를 감독하는 수신水神으로 인류가 태어난 지구 어머니의 자궁 천해天海(천하天河)를 지키는 벼슬이다. 기존 국사 교과서에는 고구려 건국 신화로 되어 있으나 신시 배달에서는 웅녀가 황후가 되었고, 고조선에 와서는 하백의 따님이 황후가 되었으며,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어머니에게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비문의 앞에는 추모왕(고주몽高朱蒙)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하늘의 상제님을 대신해 천하를 다스리는 제왕을 천자天子라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동방의 제왕들은 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올렸다. 이 드라마의 대사에서도 앞에 환웅천제와 단군왕검, 고구려의 열성조를 언급하다가 최종적으로는 “하늘님이시여.”라고 말한다. 이것은 “상제上帝님이시여.”를 풀어 쓴 말인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영양태왕이 수나라와 초전에서 대승을 거두고서 이번에는 치우천황께 제를 올려야겠다고 말한다.

“아무튼 고생들이 많았네. 치우천황께 감사의 제를 올려야겠네. 제단을 마련하고 병사들을 위로하여 편히 쉬게 하라.” - 영양태왕


영양태왕은 최종적으로 수나라와 전쟁에 승전하고 나서도 제장들을 치하하며 추모성왕과 치우천황께 제를 올리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승리에는 고구려의 정신, 곧 환국⋅배달과 단군조선의 자손으로서의 정신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 드라마가 『환단고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다.

“제장들의 개선을 경하하느니라. 고구려의 열성조께 오늘의 대승을 먼저 아뢸 것이다. 고구리를 창업하신 추모성왕님과 열성조시여. 아국의 26번째 태왕이며 천손의 후예인 고원이 아뢰나이다. 역대 환국의 환인님들과 배달국의 환웅님들과 조선의 단군님들이시여. 기뻐하시옵소서. 특히나 모든 전쟁을 주관하시는 군신 치우천왕이시여. 우리 고구려가 저 수나라 오랑캐를 맞아 요하와 요택과 황해에서 열성조의 음덕을 빌어 대파를 하였기로 이에 고하나이다. 부디 바라옵건대 대고구려의 영광이 영원무궁케 하시옵소서.” - 영양태왕


임금이 출정 전, 초전에서 승리 후, 그리고 모든 전쟁이 끝나고도 일관되게 천제를 올린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천제를 임금뿐 아니라 연개소문을 포함한 장군들도 올린 것으로 그려진다. 아래 기도는 요동성주 온사문溫沙門 장군이 추모성왕과 치우천황께 올리는 기도이다.

“추모성왕이시여, 그리고 언제나 천손의 후예를 지켜 오신 호국의 신이며 군신이신 치우천황이시여. 감히 서토의 오랑캐들이 또다시 이 강토를 유린하고 있사옵니다. 소장! 장졸들과 더불어 목숨을 다하려 하오니 굽어살피시옵소서.”
- 온사문 장군


“배달의 겨레를 돌봐 오신 단군 열성조시여. 그리고 모든 전쟁의 영원불멸한 군신 치우천황이시여. 우리 고구려를 돌보소서. 오늘 이세민과 소장 중 하나는 반드시 죽게 해 주시오소서. 비나이다.” - 연개소문


드라마의 이 장면은 안시성安市城에서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연개소문이 올린 기도이다. 특히 군신軍神 치우천황蚩尤天皇께 기도를 올리는 장면이 많은데 배달국의 14세 자오지 환웅慈烏支桓雄, 일명 치우천황은 배달의 영토를 가장 넓게 개척하시고 서방 한족을 동방 신교로 다스려 천자 문화를 전해 준 대제왕이시며, 병법의 비조鼻祖이시다. 황제헌원과 벌인 10년 대전쟁 동안 연전연승하고 마지막 탁록대전涿鹿大戰에서 대승을 거둬 수천 년 동안 동방 한민족은 물론 서방 한족에게까지 숭배와 추앙의 대상이 되었다. 치우천황은 중국과 일본에 의해 뿌리부터 훼손된 한민족사의 격류 속에서 뒤안길로 묻혀 버린 위대한 성황, 불패의 무신이다.

이 작품 전체에서 수십여 회 천제와 기도를 올리는데 #환국 시대 이래 수천 년간 한민족은 천제를 올림으로써 하늘에 계신 상제님께 공경을 표현#해 왔다. 천제는 단군조선 22세 색불루索弗婁 단군 때의 제문祭文(서고문誓告文)에서 알 수 있듯이, ‘상제님께 폐백을 바쳐 나라의 부강과 백성의 번영을 기원하며 상제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국가 행사’였다(『환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太白逸史」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천제를 올린 뒤에는 모든 백성이 어울려 음주와 놀이를 즐기는 제전祭典의 장을 열었다. 천제는 제사와 놀이로써 모두가 한마음이 되는 ‘태일太一의 한마당’이었다. 광개토태왕께서도 마리산 참성단으로 말을 달려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드렸고, 을지문덕 장군 등도 마리산과 백두산에서 천제를 올렸다(『환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太白逸史」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드라마 연개소문은 이렇게 환단고기에 담긴 한국 역사의 맥과 신교 문화, 성인 제왕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

다음 회차에서는 이 작품에서 표현한 어아가於阿歌와 천부경天符經, 천지화랑天指花郞, 안시성 전투와 당 태종의 항복, 증산도 도전道典과의 관련성 등 흥미로운 주제들을 정리해 보려 한다. ■


“역대 환국의 환인님들과 배달국의 환웅님들과 조선의 단군님들이시여. 특히나 모든 전쟁을 주관하시는 군신 치우천왕이시여. 대고구려의 영광이 영원무궁케 하시옵소서.” - 영양태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