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선 문명의 종주국 -정성과 기도의 수행은 내 안에 깃든 신성의 발견이고 확장이다
[이제는 삼랑선 문명 시대]
정성과 기도의 수행은 내 안에 깃든 신성의 발견이고 확장이다
상제의 손으로 직접 펼친 ‘선도’仙道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기도와 주문 등의 수행으로 참마음을 찾아 가을 천지의 조화성신인 지기에 화하라. 그 가운데 상제를 모시고 가을개벽기에 인류를 살리고 새 세상을 건설하는 상생의 공덕을 펼쳐서 인간 열매인 선仙으로 거듭나라.
신교神敎에서 연원한 선의 이념이 궁극적으로 여기서 실현된다.
선의 원형은 상제上帝 신앙과 하나로 결속돼 있으며, 성통性通과 공완功完의 조화로써 얻어지는 것이었다.
정성精誠과 기도祈禱의 수행은 내 안에 깃든 신성神性의 발견이고 확장이다. 그리하여 천지의 조화성신과 하나 되는 마음자리(일심一心)에서 상제를 섬기는 것이다. 저 ‘아주 오래된 것’의 궁극적 개화는 천명天命을 좇아 남 살리고 나 살리는 상생의 실천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닦은 바 근기根機와 세상살이를 다스리고 되게 하는 공덕功德이 하나로 만난다. 상제 신앙 안에서 성통과 공완이 일체가 되어, 선에 이르는 것이다. 즉 증산도에서 선은 천심天心 가진 자들이 지은 공덕의 대가로 주어지는 가을의 과실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천통天通, 감화통感化通의 성격을 갖게 된다.
이와 함께 성통공완하면 조천하게 될 것이고, 나의 영부靈符로 사람을 질병에서 건지고 나의 주문呪文으로 사람을 가르쳐서 나를 위하게 하면 또한 장생長生하여 덕을 천하에 펴리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이뤄진다. 시천주侍天主로써 선의 결실을 맺을 수 있고, “신선이 되어야 너희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으리니”(『증산도 도전道典』 11:199:9), 선을 성취해야 하느님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교神敎의 새로운 반복이다. 또 신교를 잇는 수운 동학東學에 심어진 뜻의 궁극적 완수다.
특기할 것은 기독교 역시 선천 종교로서 선仙에 속한다는 점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선도라는 것이다. 선도의 종지는 불멸의 생명인 선으로 화하여 영원한 기쁨과 평안을 찾는 데 있다. 기독교는 예수를 통해 신의 품으로 되돌아가 영생永生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하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특히 서양을 중심으로 발전하였기에 서선西仙으로 불리기도 한다.
신교와 수운의 선에서 차지했던 영부나 주문의 역할 혹은 의미가 상제의 도에서 고스란히 살아나고 있다. 신교에서 천부인天符印은 천명이 새겨진, 일종의 영부와 같은 것으로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수단이었으며 주문은 온전한 인간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느님이 수운에게 밝힌 바에 따르면 영부는 사람을 병에서 건지는 것이었고 주문은 사람을 가르쳐 하느님 자신을 위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부와 주문으로써 상제의 뜻을 잘 받들면 장생의 선이 약속됐다.
무병장생과 천지조화의 선으로 거듭나게 해 주고 의통과 더불어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주문, 조화의 주문이다. 그렇게 보면 신교의 시작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 시종여일하게 영부와 주문은 선약仙藥이었던 셈이다.
이제는 우리가 여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때다. 이 글에서 하늘이 신교에 심은 싹이 수운을 거쳐 증산도의 구원론에서 어떻게 열매 맺는지 살펴보았다.
무엇보다도 신교의 중핵을 차지하는 것은 다음의 가르침으로 요약된다. 인간을 위하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느님을 섬기고 본성을 틔워 상생 혹은 홍익인간의 공덕을 펼침으로써 완성된 인간, 열매 인간인 선仙으로 거듭나라는 것이다. 인간을 낳고 기른 천지天地와 천지의 주재자 상제上帝의 공도, 인간人間 삶의 성패도 거기에 걸려 있다.
이런 신의 뜻은 국조삼신 이래 동방 한민족을 이끌었던 삶의 지표로서 부침을 겪었지만 결코 사라짐이 없이 이어져 왔다. 그리고 하늘의 부름을 받아 신교의 도맥을 계승한 수운 최제우에 의해 한때 폭죽처럼 역사의 전면에서 발화되기도 했다. 그 불멸하는 동방의 이념은 상제의 강세와 함께 새롭게 출현하는 진리 안에서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이윽고 신교의 씨앗이 열매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도道 안에서 선仙의 새 생명을 얻을 때 천지와 하느님도 뜻을 이루고 인간은 하느님의 자식으로 새로 태어나 영원한 생명과 조화의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것이 천지와 하느님, 인간 모두가 바라는 바다.
도하지道下止,
도 아래, 열매 아래 머물러야 한다. ■
〈출처〉
* 『한민족 문화의 원형 신교』, 황경선, 2010, 상생출판
* 『한민족 문화의 원형 신교』, 황경선, 2010, 상생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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