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품는 택국澤國, 공감과 융화의 힘

[상생 인터뷰]

태전도안도장 수호사로 봉직 중인 권영미 도생은 태전에서 긴 세월 동안 신앙의 중심을 지키며 포교와 도장 운영, 봉사와 수행에 헌신해 왔습니다.

도장 책임자가 된 것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권영미 수호사는 그 누구보다 깊은 신앙 연륜과 체험을 바탕으로 여성 일꾼으로서의 고민과 성장에 관한 얘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특히 이번 인터뷰는 단순한 경험담을 넘어, 한 신앙인의 선택과 다짐, 그리고 실패와 성찰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나아갈 길에 귀한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통해, 모두가 신앙의 길 위에서 다시 한번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 힘을 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Q 증산도를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정말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학교와 도서관만 오가며,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았죠. 그런데 대입 시험을 치르고 나서 친구 선배의 권유로 생전 처음 ‘다방’이라는 곳에 가 보았어요. 1984년 겨울, 대구 동성로에 위치한 장소였는데, 왕자 다방이나 공주 다방 같은 정겨운 이름으로 불리는 그런 곳이었죠. 그곳에서 증산도 선배님을 만난 거예요.

선배님은 그 자리에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고, 우주 일 년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요. 정말 제 가슴을 ‘꽝’ 하고 치는 충격이었어요. 제 안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그 순간 깨어난 것 같았습니다. 그날 밤은 한숨도 못 잤습니다. ‘아, 이게 내가 그토록 궁금해하고 답을 찾고 싶었던 진리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떠나질 않았습니다.


Q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고, 증산도를 만나며 어떻게 선택이 바뀌셨나요?




저희 아버지는 영화광이셨어요. 어릴 적부터 제 손을 잡고 개봉관에 데리고 다니며 온갖 영화를 보여 주셨죠. 그래서 저도 막연히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역사를 좋아하셨어요. 젊을 때부터 일본사, 한국사 할 것 없이 역사책을 좋아하시고 저에게도 역사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죠.

그런데 증산도 우주 일 년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제 마음속 선택은 자연스레 바뀌었습니다. 영화냐 역사냐, 그 갈림길에서 저는 역사를 선택했어요. 그리고 그 선택은 곧 증산도 신앙의 길로 이어졌습니다. 1985년 경북대학교 사학과에 진학하며 진리와 신앙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Q 대학 시절 신앙과 활동은 어떠셨나요?




저는 입도하고 나서 곧바로 도장에 나갔는데요, 당시 도장은 학생들이 중심이었어요. 저는 입도하자마자 총무를 맡았고, 도장 청소와 밥 준비, 천도식 준비까지 학생들이 모두 담당했습니다.

그때는 철학과, 사학과 친구들이 데모하러 다니던 시절이었어요. 저도 잠깐은 ‘현실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꿔야 하나, 아니면 가을개벽을 준비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했죠. 하지만 결국 저는 상제님, 태모님 신앙을 통해서 이 세상이 천지공사로 새로워져야 한다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도장과 동아리 활동에 모든 마음을 다 쏟았죠.


Q 가족 중에 입도하신 분이 있나요?




가장 먼저 친정어머니가 입도하셨습니다. 역사와 철학을 좋아하시던 어머니께 가장 먼저 이 진리를 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종도사님 시민회관 강연에 어머니를 모시고 갔고, 『이것이 개벽이다』 책을 드렸죠. 강연을 다 들으신 후 어머니가 제게 그러셨어요.

“너는 이 길을 가지 않기를 바랐는데, 결국 만났구나.”

그러면서 저희 할아버지도 이런 종교 생활을 한평생 하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아마 보천교 쪽의 신앙생활을 하셨나 봐요.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너는 그러지 않길 바랐는데 이건 운명인지 어쩔 수가 없네.”라는 말씀을 하시며 입도를 하셨습니다.


Q 태전으로 오게 된 사연과 이후 신앙 여정은?



사실 저는 결혼할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인연이 닿아서 결혼을 하였고, 그 인연으로 태전에 오게 됐어요. 처음에는 “3년만 살고 다시 대구로 돌아가자.”라는 약속을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30년이 훌쩍 지나 버렸네요.

저의 신앙생활은 대구에서 시작해 대학 시절을 보냈지만, 그 이후의 모든 신앙 여정은 이 태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태전에 와서는 완전히 새로운 신앙을 배워야 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학생 중심의 도장에서 학생 포감을 했는데, 결혼하고 나니 바로 일반 도생 포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더군요. 처음엔 낯설고 적응이 쉽지 않았지만, ‘아, 이게 내가 성숙해지는 과정이구나.’ 하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저는 늘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절대 변두리 신앙을 해서는 안 된다. 보직이 있든 없든 나는 도장의 주인이다. 내가 먼저 나서서 봉사하고, 신앙의 중심에서 살아야 한다.”

그 마음으로 육아도 하고 직장 생활도 했으며, 그러면서도 도장에 늘 중심을 두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에게도 일선 봉직자로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Q 신앙생활 중에 큰 위기나 시련은 없으셨나요?



어려운 과정들이 없진 않았습니다. 2002년 태전둔산도장을 개창하고 2007년까지 천록 간부로 봉직하며 열심히 그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당시에는 도생님들이 매일같이 입도하던 때라 도장에서 포교와 교육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이었어요.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크고 작은 위기와 실수들이 있었고, 결국 봉직을 내려놓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큰 시련이 닥쳐 직장 생활을 시작했죠. 윤선생 영어교실 교사로 15년 가까이 일하며 도장 봉사와 직장을 병행했습니다. 그 시절 제 마음을 지켜 준 건 태상종도사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은 커다란 택국澤國이 되어야 한다. 천 가지, 만 가지를 다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큰 태평양 바다는 못 되더라도 커다란 못은 되어야 한다.”

그 말씀에 원망을 내려놓고, 포용하고 융화하는 마음을 배우며 다시 신앙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제게는 큰 깨달음의 과정이었어요.


Q 여성 일꾼으로서 느낀 점과 도장 운영의 조건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처음엔 정말 마음속으로 ‘내가 과연 이 역할을 해도 될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고 느꼈거든요.

그런데 도장 운영에는 포교, 교육, 수행, 재정, 조직관리, 이 다섯 가지가 모두 중요하고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저는 여성 일꾼으로서의 장점을 크게 느꼈습니다. 여성만이 가진 따뜻한 감성과 공감의 힘으로 도생님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도장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 수 있었어요.

저는 포교를 위해 페이스북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그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라는 한 권의 책 표제가 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둥글고 유연하게 익어 가고, 그 안에서 신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이 사십이 넘으면 집착, 기대, 모서리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글귀를 보고 또 마음을 다잡았어요. 특히 모서리를 없애 둥글게 되는 것, 융화와 화합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기도 했죠.


Q 마지막으로 후배 여성 일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2023년 프로 야구팀 LG 트윈스가 29년 만에 우승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LG 감독이 “두려움과 망설임은 최대의 적이다.”라는 얘기를 했어요. 우승 팀 감독이 했던 그 말씀이 제 가슴에 깊이 남았습니다. 29년 동안 패배를 반복했기 때문에 두려움과 망설임이 얼마나 컸겠어요. 그 구단의 모든 야구 선수들이 그렇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최대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감독은 단원들을 훈련시키고 다짐을 받고 했겠죠.

우리 도생님들도 사실 그 실패를 두려워해요. 하지만 우리도 이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같이 희망을 가졌으면 합니다. 지금 이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힘과 응원이 되어 줌으로써 신앙의 여정에 든든한 동반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권영미 수호사의 사례 발표는 삶의 굴곡 속에서 어떻게 다시 중심을 잡고, 어떻게 자신을 돌아보며 신앙의 길을 걸어왔는지를 보여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사람은 커다란 택국澤國이 되어야 한다”는 태상종도사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원망 대신 포용하고 갈등 대신 융화하며 다시 일어섰던 그 체험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이 서로를 품고 북돋으며 함께 성장해 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택국이 되어 이 진리의 길을 더욱 깊게 열어 가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