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B다시보기 | 상징으로 보는 여행22회 - 사막의 나라 이집트

[STB하이라이트]

강사: 오동석 인문여행작가

지구의 3분의 1은 사막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사막의 나라인 이집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이집트 문명과 사하라 사막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 유역에서 형성된 문명으로 서기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 왕조의 수립 뒤 알렉산더 대왕까지 이어집니다. 적도 남쪽 빅토리아 호수에서 시작한 6,600km의 나일강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서 사하라 사막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이집트 문명이라고 하는 엄청난 문명을 이뤄 냈습니다.

사하라 사막은 면적이 940만㎢에 달하는 크기로 미국 땅만큼 넓습니다. 이 사진은 사하라로 가는 길입니다. 제가 오래전에 찍은 사진인데 사하라 사막은 여름에 가면 정말 덥습니다. 사막은 밤에 온도가 많이 내려가기 때문에 새벽엔 엄청 춥습니다. 사막에서의 야영은 권하지 않습니다.

이 사진은 이집트 아스완이란 도시입니다. 아스완은 이집트 남동부에 있는 아스완주의 주도이며, 나일강 물을 조절하기 위해 1902년에 완공한 아스완 댐이 있는 곳입니다. 다음 사진은 이집트의 룩소르Luxor입니다. 야외 박물관이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신전이 정말 많은 곳입니다.

투탕카멘


투탕카멘Tutankhamen은 이집트 신왕국 제18대 왕조의 소년 파라오입니다. 투탕카멘은 9세에 파라오로 등극하고 18세 무렵 사냥을 나갔다가 다리를 다쳐서 상처가 곪아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투탕카멘은 투탕카멘의 무덤 발굴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투탕카멘의 저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집트의 모든 파라오 무덤에는 “왕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는 죽음의 날개에 닿으리라.”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고 하는데 10년 동안 투탕카멘 무덤 발굴에 참여했던 10여 명의 사람이 죽게 됩니다.

이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는 무게가 11kg에 미이라의 어깨에 걸쳐져 있던 마스크로 1925년 하워드 카터가 발견한 유물입니다. 파란색은 하늘과 영생을 금은 신의 피부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독수리와 코브라의 조각상이 머리 쪽에 달려 있는 이유는 정신적인 의미를 제외하면 독수리는 나일강 상류에 많고, 코브라는 나일강 하류에 많기 때문에 나일강의 모든 지역을 통치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도굴의 역사입니다. 보물을 탐하는 도굴꾼들과 무덤을 지키려는 두 세력 간의 싸움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승리하는 쪽은 도굴꾼입니다. 그런데 투탕카멘의 무덤은 파라오의 무덤 중 유일하게 도굴을 당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대 이집트의 문화와 삶은 현재의 삶보다 사후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살아 있는 삶의 기간이 워낙 짧아서 죽음 이후의 삶을 걱정했기 때문에 모든 문화가 죽음 이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덤과 신전이 모두 죽음 이후의 삶에 초점을 맞춰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파라오로 등극하면 수십 년에 걸쳐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집트 간략사


고대 이집트는 2,600년간 30개의 왕조가 있었습니다. 이 왕조들은 고왕국, 중왕국, 그리고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신왕국과 후기왕국으로 구분이 됩니다. 가장 얘기를 많이 하는 이집트의 역사는 대부분 신왕국 이야기입니다. 2,600년간의 왕조 시대 이후에는 2,000년간 페르시아, 알렉산더 대왕, 로마, 동로마, 아랍 등과 같은 외세의 지배를 받는 시기로 넘어갑니다.

이집트 고왕국 시대의 중심은 나일강 하류 지역이었습니다. 나일강 하류 지역은 나일강을 타고 흘러오는 양질의 토양으로 인해 삼각주가 형성되어 매년 풍년이었다고 합니다. 또 나일강 하류 지역은 ‘하下이집트’라고도 부르며, 해가 지는 나일강 서쪽으로 피라미드가 밀집해 있기도 합니다.

이후에 힉소스인이라 부르는 아시아 기마 민족이 최신식 무기와 마차로 무장해서 이집트를 침략하면서 나일강 하류 지역을 모두 차지해 버립니다. 이로 인해 이집트인들은 상류 쪽으로 올라와서 테베라고도 부르는 룩소스에 정착해서 새로운 국가 체계를 만들게 됩니다. 이 룩소스 지역은 나일강 상류에 있다고 해서 ‘상上이집트’로 부릅니다. 이 상이집트에 온 이후로는 피라미드를 만들지 않고 굴을 파서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굴을 파서 만든 무덤들은 투탕카멘의 무덤을 제외하고 모두 도굴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집트인들은 이후 신왕국 시대에 힉소스인들을 모두 몰아내고 이집트 전역에 걸쳐 어마어마한 신전들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이 한 번쯤 들어 본 인물들인 람세스 2세, 투탕카멘, 아케나텐, 하쳅수트가 신왕국 시대 인물입니다. 룩소르는 이집트 신왕국의 수도로 룩소스 신전, 카르낙 신전, 멤논의 거상 등을 포함한 유적들이 위치해 있고 서안 지역에는 왕가의 계곡과 왕비의 계곡이 있습니다.

멤논의 거상


룩소르의 동쪽에서 배를 타고 서쪽으로 건너가면 제일 먼저 멤논Memnon의 거상이라 부르는 거대 암석상을 만나게 되는데 사실 멤논이 아니라 아멘호테프 3세Amenhotep Ⅲ의 조각상입니다. 멤논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티오피아의 왕으로 새벽의 여신 에오스와 티토노스 사이에 난 아들인데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Achilleus에게 죽임을 당하는 인물입니다. 아멘호테프 3세는 이집트 신왕국 제18왕조의 파라오로 이집트가 가장 번성했던 시대의 왕이며,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지배했던 왕입니다.

멤논의 거상을 포함한 나일강 서쪽의 신전들은 장례식용 기념 신전으로 ‘장제전葬祭殿’이라고 합니다. 거상들은 완벽히 동쪽을 향하고 있는데 무게가 720톤에 달합니다. 사진의 좌측 거상은 남쪽의 화강암으로 만들었고, 우측 거상은 북쪽의 화강암으로 만들었습니다.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모두 지배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거상을 멤논의 거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멘호테프 3세의 오른쪽 조각상이 기원전 27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갈라진 틈에서 바람이 불 때면 정체 모를 구슬픈 소리가 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마치 이 소리가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에게 죽임을 당한 멤논이 새벽의 여신이라고 하는 자신의 어머니인 에오스를 찾는 소리처럼 들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멤논의 거상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집트 문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신을 모시는 제례에서 인류 문화가 시작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