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로 문화읽기 | 콩, 인류를 살리다_1부

[칼럼]
한재욱 / 본부도장

작품 소개


다큐멘터리 3부작 〈콩, 인류를 살리다〉는 2011년 2월 3~4일에 광주MBC에서 제작 방송된 작품이다. 제작진은 이 프로그램을 위해 미국과 인도네시아, 벨기에, 독일 등 해외 8개국을 방문해 한반도와 만주를 통해 뻗어 나간 콩의 길을 추적했다.

제1부 ‘한민족의 콩(2월 3일 밤 11시 5분 방송)’에서는 우리 민족과 콩의 관계를 비롯해 콩이 갖고 있는 우수한 효능, 된장이나 간장으로 발효 시 콩 자체의 성분과는 또 다른 발효 식품을 조명한다.

제2부 ‘소이 로드(2월 3일 밤 12시 방송)’에서는 프랑스 출신으로 한국에서 15년간 살고 있는 한식 칼럼니스트 벤자민 주아노 씨와 함께 콩을 주제로 한 한국 음식의 맛을 소개한다.

제3부 ‘생명을 살리는 콩(2월 4일 밤 11시 5분 방송)’에서는 드라마 〈대장금〉에 출연했던 탤런트 양미경 씨가 출연하며 콩과 발효 식품의 기능적인 면을 집중 조명한다.

제작진은 이번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직접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콩 성분이 인체에 미치는 실험을 진행했으며, 콩 추출물을 이용한 해외 의약품 제조 사례 등도 소개한다. 다큐멘터리 연출자 이연수 PD는 “세계적인 콩 수출 대국인 미국은 일찌감치 콩의 중요성을 깨닫고 70년에 걸쳐 한반도에서 수천 종 이상의 재래종 콩과 야생 콩을 수집해 연구해 왔다.”며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미국 농무성을 어렵게 설득해 한반도 야생 콩을 중심으로 한미 정부의 콩 육종 방향을 담아냈다.”고 밝혔다.

다큐멘터리 자체가 좋은 내용이고 관련되어 소개할 내용이 많아 2회에 걸쳐 다음과 같은 목차로 정리해 보려 한다.

콩의 원산지는 한국


다큐멘터리는 두만강에서 시작한다. 두만강 주변에 사는 조선족의 두부 문화를 보여 주는데 이 두부는 늙은 어미가 만들었다고 해서 노老두부 또는 모母두부라 불린다. 조선족들은 어릴 때부터 쌀이 모자랄 때는 콩을 갈아서 콩죽을 만들어 학교에 도시락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이곳에 야생 콩이 지천으로 널려 있음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에서 다루진 않지만 두만강豆滿江이란 글자를 풀어 보면 콩 두豆, 가득할 만滿으로 콩이 강에 가득 있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만주가 거대한 콩밭을 이루고 있었고, 이 콩들을 나르는 배들이 두만강에 가득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두만강 인근 지역인 북한의 회령 오동 고조선 유적지에서는 기원전 1300년경의 청동기 유물과 함께 콩, 팥, 기장이 나왔다.

다큐멘터리에서는 미국 일리노이주에 소재한 미국 농무성 콩 육종 연구소를 소개하는데 여기에는 한국의 콩들이 보관돼 있다. 미국에서 보관 중인 콩 종자 중 25%가 한국에서 가져온 것이고, 나머지도 중국, 만주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이곳은 우리가 보관하고 있는 콩, 콩과 작물, 야생 콩 종자 보관소입니다. 대부분은 한국에서 가져왔습니다. 1970년에 한국 정부의 콩 종자 유출이 관대할 때 가져온 것입니다. 한국산 품종은 미국의 대두 산업에 엄청난 기여를 했습니다.”
- [다큐멘터리] 랜달 넬슨 책임연구원


그림에서 보다시피 1920년대 미국의 콩 종자 수집 당시, 콩의 기원이 되는 야생 콩은 아시아 동부, 특히 만주 한반도 일대에 집중돼 있다. 이렇게 콩의 원산지는 만주와 한반도로 알려져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산이나 들 심지어 멀리 떨어진 다도해의 섬에도 매우 다양한 야생 콩이 어디든 자생하고 있다. 전남대 정규화 교수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떤 식물의 근원지를 뭘 중심으로 보냐면 그 대상 식물의 유전적인 다양성이 얼마나 큰가에 중심을 두고 근원지를 결정합니다. 야생 콩은 우리나라의 다양성이 어떤 다른 나라보다도 크다는 것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다큐멘터리] 전남대 생명화학공학부 정규화 교수


콩 원정대 이야기


미국은 농업 유전자원遺傳資源 확보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인지하고 전 세계에 사람을 파견해 다양한 유전자원을 확보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는데, 특히 콩에 대한 조사를 오래전부터 해 왔다. 여기에선 다큐멘터리에서 다루지 않은 이른바 콩 원정대에 대해 정리해 보겠다.

(사)한국콩연구회 홈페이지에는 미국 콩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모스William J. Morse(1884~1959)가 잘 소개되어 있다. 1929년 미국 농무부에 근무하던 윌리엄 모스는 콩의 다양한 유전자원을 찾아 ‘동양의 식물 탐험대(일명 콩 원정대)’를 꾸려 동양에 왔다. 이들은 1929년 3월 13일 베이스캠프인 도쿄東京에 도착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일본에서 보내며 가끔 만주 지역을 돌아본다. 그러던 중 1930년 8월 22일 한국 여행을 시작하고 9월 29일 다시 만주로 돌아간다. 1931년 2월 17일 그들은 다시 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콩 원정대가 일본, 한국, 중국 등에서 보낸 총 2년 중 조선에서 보낸 시간은 두 달이 채 안 된다.

재미있는 것은 콩 원정대가 약 9,000여 점의 자원을 확보했고 그중 콩에 대한 것이 4,578점이었는데, 그 가운데 조선이 3,379점(73.8%), 일본 577점, 만주 511점, 중국 111점이었다. 이들이 체류한 기간은 약 2년이고 그중 한국에 머문 것은 약 5주, 그런데 수집한 콩은 한국이 73.8%였다는 것이다. 모스가 기록하고 있는 내용 중에는 한국이 일본의 통제하에 있었기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있었는데도 우리나라에 머문 길지 않은 시간에 수천 점의 콩 종자를 수집할 수 있었다는 부분이 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요인은 우리나라의 마을마다 주기적으로 열리는 장터에서 쉽게 다양한 콩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모스는 한 농부에게서 수백 점의 콩을 얻을 수 있었으며, 조선에서 얻은 것만으로도 훌륭한 책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록했다. 이후로 윌리엄 모스는 1907년부터 1949년 사이에 콩이 미국 농업의 중심 작물로 성장하기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여 ‘미국 콩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는 미국대두협회 회장을 3번이나 역임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옥수수 생산국이자 세계 2위의 대두 생산국이다. 2021년 미국 전체 대두 생산량은 44억 4,000만 부셸Bushel(1억 2,000만 톤)이고 대두 수출량만 5,700만 메트릭 톤Metric Ton으로 전 세계 수출의 35.9%를 차지한다. 미국에서 콩은 사람뿐 아니라 자동차를 위한 식량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에탄올 10%를 가솔린에 넣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콩기름을 원료로 한 바이오디젤은 대체 에너지원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대기 오염을 감소시키고 이산화탄소를 60% 이상 줄여 공해 억제에 도움이 되고 차량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미국은 이 모든 것을 한국에서 가져온 콩 종자의 힘으로 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디언 문화를 보면 언어에서 우리와 한 형제다. 나는 제일 재밌게 들은 게 영국 사람들이 인디언을 만나서 물었다는 거야. 옥수수를 보고 이게 뭐냐. 콘이다. 그런데 이게 우리말의 콩에서 왔다는 거야.” - 종도사님 말씀(환단고기 북콘서트 미국 편 2부)


미국은 또한 세계에서 가장 큰 옥수수 생산국이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인디언은 동북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그들이 기르던 옥수수를 보고 뭐냐고 물었을 때 ‘콘’이라 대답했다고 하는데, 이는 우리말의 콩에서 왔다는 말씀이다. 콩의 기원과 관련해 어원까지도 한국과 관련이 있다.

한국인과 콩


“동북아시아에서 동이족이 옛날에 엘리트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콩 때문입니다. 콩을 처음 식용으로 사용했고, 충분한 단백질 공급을 받았기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 사람보다 동이족들의 기골이 장대했고, 지능적으로 우수했고, 동북아시아 국가 형성 시기, BCE 3천 년 전후에 동이족들이 동북아시아를 제패했던 것은 콩을 식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 [다큐멘터리] 고려대 명예교수 이철호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다』라는 책에는 조선조 말 동양을 여행한 스웨덴 여기자 아손 그렙스트A:son Grepst가 조선 사람을 관찰한 기록이 잘 묘사돼 있다. 같은 동양 사람들인데 일본이나 중국 사람들에 비해 조선 사람들이 훨씬 체격이 크고 건장하다는 것이다. 아손 기자뿐만 아니라 조선조 말 한국을 방문한 영국의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여사,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등의 여행자들도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다른 동양 사람들에 비해 이렇게 조선인들이 크고 근골격이 뛰어난 이유는 단백질 함량이 높은 콩을 즐겨 먹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콩 발효 식품인 된장에는 근골격 형성에 필요한 질 좋은 단백질 함량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쌀과 보리로 탄수화물을 섭취하고 부족한 단백질은 콩으로 충당해 한민족의 국가를 형성하고 민족 동질성을 이어 올 수 있었다.

쌀에 단백질이 8%가 들어 있다면 콩에는 단백질이 ​40%, 지방이 20%, ​탄수화물이 30%가 함유되어 있다. 곡식이라기보다 고기에 가까운 영양 성분으로 밭에서 나는 고기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식용 기름의 28% 이상이 콩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콩기름은 불포화 지방산이 86%로 혈중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킨다는 사실이 입증된 바 있다.

아무 데서나 잘 자라 주고, 손을 보지 않아도 열매를 잘 맺는 콩은 조상님들이 창조해 주신 훌륭한 민족 음식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사람들에게 두부를 주는 문화를 갖고 있는데, 흰색의 두부는 죄를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라는 의미도 있지만 일종의 영양 보충제였던 것이다. 오랜 시간 갇혀 지내다 보면 체력이 문제일 수밖에 없는데, 체력을 단시간 내에 복원하는 데 두부만 한 게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내려온 콩 문화는 우리 생활 속에 역사가 됐다.

메주와 된장


우리 민족은 콩을 발효시켜 메주를 발명했다. 중국의 장화張華가 쓴 『박물지博物志』를 보면 메주는 시豉라 불리었고, 이 시는 동이에서 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진수陳壽의 『정사正史 삼국지三國志』 중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는 “동이족(고구려인)은 장 담그는 솜씨가 훌륭하다.”, “발해의 명물은 된장이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구려 안악 3호분의 벽화를 보면 부엌의 아궁이에서 무쇠솥이 끓고 있습니다. 우물 주변으로는 옹기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이 옹기들은 된장과 같은 발효 식품을 저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 다큐멘터리


콩의 종주국답게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는 콩을 이용한 음식을 먹어 왔다. 그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기록이 있다. 북한의 황해남도 안악군에 위치한 안악 3호분의 벽화는 고구려의 생활 모습이 매우 잘 표현된 벽화로 꼽힌다. 디딜방아, 물 항아리, 옹기의 모습과 큰 시루로 음식을 만드는 모습이 보인다.

예부터 장 담그는 일은 집안의 1년 농사라 할 만큼 중요하게 여겨졌다.

“옛날 어머니들은 메주에 슨 흰 곰팡이를 보고 흰 꽃이 폈다고 좋아했습니다. 흰색과 푸른색, 검은색 곰팡이가 조화를 이룬 메주가 가장 잘 뜬 메주입니다. 각각의 곰팡이들은 메주의 맛과 효능을 한층 높여 줍니다. ”- 다큐멘터리


메주에 작용하는 대표적인 박테리아는 주로 푸른곰팡이(페니실리움), 황누룩곰팡이(아스퍼질러스 오리제), 검은곰팡이(아스퍼질러스 나이저) 등이 있다. 또한 메주는 보통 볏짚 위에 보관하거나 볏짚으로 새끼줄을 꼬아 매달아 놓는데, 장을 만드는 미생물 균인 바실러스 서브틸리스Bacillus Subtilis가 볏짚에서 잘 자라기 때문이다. 이 균은 발효를 촉진하고 된장의 향과 맛을 내는 균으로 수분을 포함하는 볏짚에서 배양이 잘 이루어져 시골에서는 종종 메주 아래 젖은 볏짚을 깔아 놓곤 했다.

필자는 어릴 적 할머니와 어머니가 장을 담글 때 장맛이 안 좋으면 집안에 우환이 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만큼 장 담그는 과정은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과정이다. 좋은 소금과 숯, 붉은 고추도 된장을 담글 때 빼놓을 수 없다. 붉은 고추를 된장 담글 때 넣는 것은 붉은색이 잡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도 있다. 장독에 좋은 소금과 숯, 붉은 고추를 넣고 두어 달 정도 숙성을 시키면 장 가르기를 한다.

장 가르기를 통해 된장과 간장이 나온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국인의 소박한 대표 식단이 차려진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친 보리밥과 된장국은 궁민의 음식이다. 된장은 이렇게 민초들의 삶 그 자체를 상징한다. 그러면서 된장국은 영양과 소화로도 손색없는 음식이다.

옹기의 나라, 장독대와 삼신


중국에서는 된장을 담글 때 비닐에 담거나 입구가 넓고 일자 형태를 한 항아리를 쓴다. 단순히 음식을 담는 그릇이다. 그에 비해 우리 옹기는 입구가 작고 옆면은 볼록하다. 오랜 시간 음식을 저장해 먹을 수 있는 형태이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우리나라의 전통 옹기 명인 이학수 씨가 1,200도의 고열에서 옹기를 만드는 장면을 보여 준다.

“선조들은 옹기를 숨 쉬는 그릇이라 했지요. 옹기를 빚는 진흙에는 수많은 모래 알갱이들이 섞여 있습니다. 이런 알갱이들은 고열로 구워지는 동안 표면에 수많은 숨구멍을 만들어 냅니다. 발효는 옹기의 통기성 때문에 가능합니다. 안과 밖으로 공기가 통할 수 있어 음식이 부패되지 않고 잘 익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발효 음식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흙에서 나온 숨 쉬는 옹기 덕분입니다.”
- 다큐멘터리


부산대 식품영양학과 박건영 교수는 된장을 옹기를 비롯해 여러 용기에 저장했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실험했다. 그 결과 똑같은 옹기여도 자연 유약을 바른 전통 옹기에서 발효가 가장 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 유약을 바른 옹기나 유리, 스테인리스 항아리 등에서는 부패에 관여하는 균도 훨씬 늘어나 물도 생기고 발효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전통 옹기에서는 나트륨 함량도 줄어들어 짠맛도 가장 적었다.

사계절이 뚜렷한 자연과 질 좋은 소금, 그리고 옹기가 만나 이뤄 낸 발효 과학의 결정체가 된장과 간장이다. 장독대와 옹기들은 김치, 간장, 된장, 고추장, 술과 같은 발효 식품을 담그는 데 가장 이상적인 설비요 도구로, 옹기는 숨 쉬는 그릇이다.

뒷마당 수돗가 위에 정갈하고 소박한 장독대가 있는데 할머니는 항아리 뚜껑을 열 때마다 “잘 계십니꺼?” 하고 마치 사람을 대하듯이 인사를 하셨습니다. 어깨를 다독이듯 된장 항아리며 고추장 항아리들을 어루만지며 살피시는 것을 작은 소녀의 가슴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상기시켜 주십니다.
“할무이, 누구하고 말해?”
“삼신께서 장을 담가 주시니까. 인사를 드려야제. 항아리 안에는 신명들이 사시지, 하모.” 하셨습니다. 항아리마다 신명님들이 존재하신다고 믿으신 할머니.
- 조양희, 『광채』, 상생출판, 2021년


이 책은 표지에 ‘우주의 주인이신 아버지께 드리는 손편지’라는 부재가 쓰여 있다. 대우주의 통치자 아버지 상제님께 올리는 글이라는 뜻인데, 우리네 조상들이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를 올렸던 그 대상이 상제님임을 할머니의 모습에서 잘 보여 주고 있다. 종도사님께서는 장독대에서 두 손을 비비며 칠성님께 빌었던 그 문화가 하나님 문화의 원형이라고 하셨다.

장 담그기 전 외할머니는 목욕재계하고 머리는 정갈하게 동백기름을 발라 따시고 은비녀를 꽂아 쪽을 지셨습니다. 외할머니께서 말씀하신, 삼신께서 하시는 일은 재료를 삭히는 것이지요. 숙성시키고 발효시키는 일을 하시는가 봅니다. 본래 콩은 없어지고 전혀 다른 맛을 내는 또 다른 형태인 된장으로 변화, 즉 개벽됩니다. 콩이 개벽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된장이 되겠습니까. 소금의 역할은 숙성을 시키는 것인가 봅니다.
- 조양희, 『광채』, 상생출판, 2021년


글을 보면 외할머니가 장을 담그기 전의 지극히 정성스러운 모습이 작가의 어린 시절 정서와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삼신께서 하시는 일은 숙성시키는 일’이라는 표현이다. 장이 숙성된다는 말이면서도 삼신이 하시는 일은 성숙하게 하신다는 말이어서, 우주 일 년의 성숙기인 가을개벽을 앞두고 중의적인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콩이 개벽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된장이 되겠습니까.’이다. 콩은 발효 음식으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진리적으로 태극太極의 의미도 가진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알아보겠다.

두유, 두부


콩 가공의 또 다른 형태인 두유豆乳에는 콩의 영양소가 그대로 들어 있다. 단백질 함량이 소고기와 비슷하고 일곱 가지 필수 미네랄이 들어 있어 세계 각국에서 두유를 개발해 왔다. 이 다큐멘터리는 두유에 대해서도 소개하는데, 부족한 부분을 보충 정리해 보았다.

‘베지밀’ 제품으로 유명한 (주)정식품의 고 정재원 회장은 1973년 국내에서 상업용 두유를 처음으로 개발했다. 정 전前 회장이 소아과 의사로 활동할 당시에는 모유와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해 영양실조로 죽는 아이들이 많았다. 정 전 회장은 “아이가 자기 엄마 젖을 먹는데 죽는다는 건 말이 안 되거든.”이라며 안타까워하다가 미국 유학 과정에서 ‘유당불내증’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유당불내증乳糖不耐症은 유당(젖당, lactose)을 분해, 소화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정 소아과’를 개원하고 어릴 때 엄마가 끓여 주던 콩국물에 착안해 아내와 함께 우유 대용식을 개발하기 시작해 3년간의 실험과 연구 끝에 두유를 만들었고, 병상의 아이들도 기력을 회복하는 결과를 보였다.

결국 젊은 의사 정재원은 ‘정식품’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두유를 만들기 시작했다. 베지밀은 ‘야채(vegetable)+우유(milk)’라는 뜻이다. 정 전 회장의 ‘인류 건강 문화에 이 몸 바치고저’라는 창업 이념은 〈콩, 인류를 살리다〉라는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에 아주 잘 부합하는 철학이다. 다큐멘터리 3부에는 발효 두유에 대해서도 소개하는데 일반 두유보다 발효를 시킨 두유가 인체의 중성지방, 콜레스테롤, 혈당 수치를 떨어뜨리는 데 큰 효과가 있다는 실험 결과도 보여 준다.

다큐멘터리 2부에서는 전 세계의 두부 문화를 소개한다. 중국의 썩은 두부라 불리는 발효 두부 문화, 홍두부, 얇은 포두부, 일본 오키나와의 장수 비결이라는 두부 요리, 한국 두부 요리 서리태 흑두부, 태국의 토아나오, 인도네시아의 템페tempeh, 벨기에 훈제 템페, 독일의 두부 등 콩이 얼마나 인류의 건강과 식량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 준다.

콩의 영양소


콩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영양소는 이소플라본isoflavon이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분자 구조가 비슷해서 폐경기 여성들의 증상과 골다공증을 예방해 줄 수 있는 물질이다. 그 외에도 콩의 다양한 기능성 물질들은 화장품 개발로도 이어진다.

세계에서 콩나물을 주식으로 먹는 사람들은 한국인밖에 없다. 뜨거운 국물과 밥, 콩나물이 어우러진 콩나물국밥은 출출할 때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서민 요리의 대명사다. 저렴하면서도 몸에 좋은 영양소는 한가득해 거의 모든 국밥 요리에 콩나물이 들어간다.

국내산 대두는 씻으면 유난히 거품이 많이 나는데요. 피를 맑게 해 주는 사포닌saponin이 많기 때문입니다. 콩일 때는 없다가 콩나물이 되면 새로운 영양소가 생기죠. 비타민 C와 숙취 해소에 좋은 아스파라긴산asparagine酸인데요. 이것이 바로 콩이 만들어 내는 발아의 신비입니다. - 다큐멘터리


사포닌은 항암제 혹은 면역 보조제로서 종양 세포에 다양한 효과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콩과 식물의 뿌리에 사는 뿌리혹박테리아는 공기 중의 질소를 뿌리에 모아 콩이 단백질을 합성하는 데 도움을 주고 땅을 기름지게 한다. 그래서 콩에는 질소 비료를 줄 필요가 없다. 콩을 더 실하게 수확하기 위해 콩잎을 따 주는 작업도 하는데 이렇게 딴 콩잎도 나물, 장아찌, 쌈으로 먹기도 했다.

김형채 파주 NFC(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 조리장은 태극 전사의 먹거리를 책임진다. 그는 훈련 땐 열량 많은 고기, 경기 전엔 된장국으로 부담을 덜고, 경기가 끝난 뒤엔 김치찌개로 회복하게 하는 식단을 짠다고 한다. 특히 경기 당일에는 필승 메뉴로 항상 소화가 잘되는 된장국을 내놓곤 한다. 가장 기본적이면서 한국적인 음식 된장국은 선수들이 특별한 보양식을 먹지 않아도 체력을 다질 수 있었던 원천이다.

“선수들이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긴장해서 음식을 소화시키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어요. 된장과 청국장은 다양한 효소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소화기 계통에는 굉장히 우수한 식품이어서 항상 선수들한테 시합 전날이나 시합 날에는 필히 된장국을 줘서 경기력에 지장이 없도록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 [다큐멘터리] 김형채 국가대표팀 조리장


발효의 시대


“이제 세계는 발효 식품의 시대가 될 것이다. 제1의 맛은 소금, 제2의 맛은 양념, 제3의 맛은 발효의 맛이다. 세상은 서서히 발효의 시대로 옮아가고 있다.”
- 미래 학자 앨빈 토플러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그의 저서 『부의 미래(Revolutionary Wealth)』에서 미래 먹거리를 이렇게 내다봤다. 그냥 짠맛에서 양념 맛으로 발전하고 이제 깊은 맛과 건강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성숙한 맛을 찾는 시대가 왔다고 할 수 있다. 발효 음식의 선진국인 한국의 4대 발효 음식은 김치, 장류, 젓갈, 식초를 꼽는다. 전통 제조법은 모두 자연 발효법에 의해 만들어졌다. 케이푸드(K-food)라고 불리는 우리 밥상의 맛 대장 삼총사인 된장과 간장, 고추장을 세계인이 주목하고 있다.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의 장 수출이 날개를 달았다. 2002년 한식 세계화 사업 이후 장류 수출량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 따르면 간장, 된장, 고추장 수출액은 2008년 3,016만 달러에서 2018년 6,044만 달러로 두 배 커졌다. 이 중 고추장은 네 배 가까이 늘었다. 미국, 일본, 중국 등 교민 위주 시장에서 매운맛 열풍이 불면서 현지인 시장으로도 수요가 확대됐다.

2022년 기준으로는 고추장 수출은 지난 4년 새 63% 성장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조사에 의하면 해외 소비자는 비빔밥, 김치, 인삼 등은 건강에 좋고 기능적으로 유용한 식품으로 보는 반면 고추장은 BTS 등 케이팝 스타가 즐기며 OTT에 등장하는 ‘힙한 식문화 콘텐츠’로 본다는 것이다. 또한 쌈장은 최근 외국인들 사이에서 ‘매직 브라운 소스’, ‘원더풀 브라운 소스’로 불리며 인지도를 높여 가고 있다.

고기에 쌈을 싸 먹을 때만 먹는 우리와는 달리, 외국에서는 햄버거나 핫도그에도 쌈장을 발라 먹는다고 한다. 고추장보다 달고 된장보다 냄새가 덜해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에 있는 한국계 유명 셰프 데이비드 장David Chang은 쌈장을 미국인 입맛에 맛게 쌈 소스로 개발했는데, 언론들은 쌈 소스가 새로운 케첩이라는 평가도 내놓고 있는데 실제로 현지에서는 피자에까지 뿌려 먹는다고 한다. 쌈장은 매년 26%씩 수출이 증가하는 추세다. 해외에서 마법의 브라운 소스brown sauce로 불리는 ‘쌈장’은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장류 세계화의 포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장차 우리나라 말과 글을 세계 사람이 배워 가리라. ······ 장차 신문명이 나타나리라. ······ 우리나라 문명을 세계에서 배워 가리라. (도전道典 5:11:3,5,6)


상제님께서는 우리나라 문명을 세계에서 배워 간다고 하셨다. 병란 개벽의 시대에 면역력 증강에 도움이 되는 발효 음식의 선진국인 한국, 그 맛의 중심에는 콩이 있다. 콩의 종주국으로서 뿌리를 찾아 돌아오는 원시반본의 이치를 여기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다음 회에는 콩의 종주국 두 번째 글로 검은콩, 청국장, 간장과 소금의 건강한 역할 및 콩에 담긴 철학을 살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