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멕시코 한류 천년의 흔적을 찾아서〉 1부

[진리코드로 문화 읽기]



고구려와 발해 멸망 이후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고 이동하였는데, 그들의 행적에 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15세기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 이후 정복자들이 남긴 기록에서 한민족의 흔적들로 볼 수 있는 놀라운 내용들이 발견됐다.

KBS 한국방송이 제작한 특집 다큐멘터리(이하 ‘다큐’) 〈멕시코, 한류 천년의 흔적을 찾아서〉는 배제대 스페인 중남미학과 손성태 교수를 중심으로 바로 이것을 추적해 나간다. 이 다큐는 2017년 1월 27일 KBS에서 방영되었고, STB 상생방송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다.

이러한 다큐 내용은 『환단고기桓檀古記』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되어, 이번 호에서는 다큐 2부작 내용 중 제1부 ‘아스텍의 이방인, 그들은 누구인가?’의 내용을 정리해 본다.


개미핥기 토우



다큐는 먼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간다. 고대선사관에는 신라에서 발견된 개미핥기 토우土偶가 있다. 신라 시대의 토우는 일제 강점기인 1926년, 야산으로 알았던 경주의 황남대총 옆에 있는 조그만 구덩이에서 발굴됐다. 흙으로 빚은 인형을 뜻하는 토우는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받지 않은 신라의 독자적인 유물이다. 삼국 가운데 유일하게 신라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고대 신라의 생활상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다.

10센티미터 내외의 작은 토우는 당시 신라인들의 생활상과 동물로 나뉜다. 토우를 통해 당시 신라인의 여러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늘, 산, 들, 바다에 서식하는 각종 동물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생물학자들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개미핥기 토우가 발견됐을 시점에 고고학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 당시 한반도에 살지 않는 동물의 형상이었기 때문이다. 약 3,000년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한 것으로 추측되는 개미핥기는 멕시코 남부를 비롯해 남미 대륙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큐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확실히 개미핥기를 닮았지만, 남미의 개미핥기가 어떤 경로로 신라까지 올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의문을 시작으로 제작진은 멕시코 아프리캄 사파리Africam Safari 동물원으로 향한다. 여기서 손성태 교수는 사육사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 주는데 사진을 보자마자 사육사는 “개미핥기인 것 같은데요?”라고 말한다. 사육사는 신라 토우의 동물이 개미핥기라고 확신했다.

첫째, 개미핥기의 주둥이가 길고요. 그리고 중요한 것이 꼬리가 몸통 크기만큼이나 길다는 점입니다. 걸어갈 때 꼬리를 치켜드는 것으로 보아 개미핥기라고 생각됩니다. 긴 발톱을 가지고 있어서 걸어갈 때 안쪽으로 굽어 있다는 점인데요. 걸어갈 때 발톱을 안쪽으로 말고 가는 것은 개미핥기의 또 다른 특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이 토우를 만든 사람은 개미핥기가 사는 곳에서 살았던 사람일 것입니다. 개미핥기의 특징을 매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사육사


이 토우가 한국의 왕족 무덤에서 발견되었다고 설명하자, 사육사는 “그가 오래전에 이곳, 멕시코에서 살았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겠네요.”라며 매우 놀라워했다.


부상은 멕시코인가




남미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멕시코 국립대학교 도서관은 멕시코를 비롯해 중미 고고학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역사서들을 보존하고 있다. 그중에 『중미 언어학 및 고고학에서 수집된 작업』(에드워드 셀러, 1916년)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에서 중요한 내용이 나온다.

중국 고승이 고대 한나라에서 2만 리 떨어진 부상fu-sang이라는 땅에 갔었다. 그 땅은 그동안 학자들 간에 멕시코라고 여겼었다. 특별히 그 땅에 사는 사람들 중에 고대 한국 고구려 관직의 이름(대대로)이 나오면서 한국 사람들이 그곳에 살았었다고 여겼다. 그러나 최근 일부 학자들 간에 부상이라는 땅이 미국이나 멕시코가 될 수 없다라는 이유 등으로 논란이 제기되었다.
- 『중미 언어학 및 고고학에서 수집된 작업』 중 1916년 미국 인류학계의 논쟁


대대로大對盧는 고구려高句麗 12관등 중 제1위의 관등으로서 국정을 총괄하는 임무를 지닌 고구려의 수상직首相職이다. 그 예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연개소문의 아버지 연태조淵太祚를 동부 혹은 서부 대인大人 대대로大對盧라 하였다.

부상扶桑이라는 것이 해 뜨는 곳, 또는 해 뜨는 나라 등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될 수가 있는 건데, 그것은 자기가 서 있는 위치에서 항상 동쪽을 보면 해 뜨는 곳, 해 뜨는 나라가 되는 거거든요. - 복기대 교수


18세기 영조 때 만들어진 지도책 『해동지도海東地圖』를 살펴봤다. 이 책에는 당시 조선의 지도뿐만 아니라 원형으로 된 세계 지도인 천하도天下圖가 함께 수록되어 있었다. 천하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오른쪽에 작은 글씨로 부상扶桑이라는 한자가 보인다. 그런데 이곳이 오늘날 아메리카 대륙이라고 한다.

18세기 프랑스의 지도학자가 부상이라는 지역이 캐나다 서부다, 또는 캘리포니아다 이런 설을 주장하게 됐고요. 그렇게 되면서 서양 고지도에도, 18세기에 제작된 프랑스의 고지도에도 중국식 발음으로 푸상이라고 하는 지명이 그려져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지리사상(지리관)이 들어오면서 1750년대에 만들어진 전통적인 천하도의 그 부상이라는 지명이 아메리카 쪽으로 비정되어서 새로운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 성신여대 지리학 교수, (전)대한지리학회 회장



아즈텍 지도층의 복장



다큐는 부상이라는 나라가 멕시코라는 가정하에 멕시코에서 한민족의 흔적을 찾아간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멕시코의 역사 지구 촐룰라Cholula는 2,500년 역사를 바탕으로 아즈텍Aztec, 올멕Olmec, 톨텍Toltec 등의 다양한 라틴아메리카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을 점령한 스페인은 이 지역에 성당을 세우는데 한때는 360개가 넘는 성당이 있었다고 한다. 성당들은 아즈텍의 문화 유적을 허물고 세워졌다. 그리고 아즈텍인들은 그들의 문화와 종교, 언어를 말살당했다. 수많은 아즈텍인들이 이 땅을 떠났지만 그래도 촐룰라에는 아직도 순수 아즈텍의 후예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다큐에서는 성당 앞에서 만난 아즈텍 후예를 인터뷰하는데 “우리는 아시아로부터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라고 망설임 없이 얘기한다.

촐룰라 성당 중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산 가브리엘San Gabriel 수도원은 고문서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도서관장의 협조를 얻어 후대 사람들이 아닌 촐룰라에 살던 아즈텍인들이 직접 기록하고 그림으로 남겼다는 책을 살펴본다. 이 책들에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이전의 아즈텍인들 모습이 담겨 있었다.

도서관장은 한국 선비들의 모습과 멕시코 원주민 족장의 모습이 비슷한 걸 보면서 “볼리비아 원주민들도 이런 모자를 썼던 것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라고 증언했다. 또한 이 책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역사학자 끌락또아 교수는 『촐룰라의 고문서』라는 책에서 이 사진의 주인공이 ‘지역의 원주민 성직자’라는 내용을 보여 준다.

손성태 교수는 이 그림과 매우 흡사한 한국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 주는데, 우리나라의 갓과 양반의 복장을 본 끌락또아 교수는 한국과 멕시코의 복식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복장의 주인공이 아즈텍을 다스리던 지도층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아시아로부터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상투머리는 이곳 아즈텍 원주민 남자들과 군인들이 했습니다.” - 과다라마 도서관장



연지 화장 여신 벽화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은 멕시코의 거대 유적으로 신대륙 발견 이전의 아메리카 대륙에 세워진 가장 거대한 피라미드 건축물들이 위치해 있는 곳이다. 그러면서도 누가 지었는지, 언제 지었는지 확실하게 알려진 것 하나 없는 수수께끼 유적이다. 다큐는 이곳에서 고대 한민족이 멕시코에 살았을지도 모를 단서가 있다고 했다.

양 볼에 연지臙脂 화장을 한 멕시코 고대의 여신女神이 그것이다. 테오티우아칸 유물 보관 연구실은 취재진에게 테오티우아칸의 도록인 『톨테카족의 수도 테오티우아칸』이라는 책에서 이 벽화의 위치와 정보를 알려 준다.

식민지 이전 방식의 혼례에서 신부가 양 볼에 빨간색 색조 화장을 했습니다. 볼연지 화장을 했습니다. - 호르헤 멕시코 국립대 연구원


이 벽화가 주목받는 것은 우리나라 전통 신부 화장법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고구려 무용총舞踊冢 수산리修山里 벽화(평안남도 남포시)의 여인들이 연지 화장을 한 것으로 보아 고구려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아즈텍 여신은 어떤 이유로 연지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멕시코 학자들에게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가체와 상투, 같은 헤어스타일



중남미 최대 규모로 불리는 멕시코 인류학 박물관의 도서관에는 중남미 역사에 대해 방대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 멕시코 국립 인류학 박물관 도서관장 발타사르 브리토 과다라마는 이렇게 말한다.

“멕시코의 이주 역사는 아시아와 아메리카 간의 베링 해협을 통한 접근이었습니다. 약 1만 5천 년에서 2만 년 전 일이라는 것이 그동안 가장 많이 알려진 이론입니다. 얼마 전 프랑스 학자가 섬과 섬, 바다를 통해 이주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 과다라마 관장


그의 말을 들으면 멕시코에서도 아시아인의 이주 역사가 자신들의 뿌리라는 사실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손 교수는 한국 선조들의 대표적인 머리 모양을 보여 주는데 여성의 가체加髢와 비녀이다. 도서관장은 이걸 보고 매우 흡사하다고 말하는데, 특히 “멕시코 여성의 머리 모양은 여성의 혼인 관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한국에도 같은 의미가 있나요?”라고 말한다. 한국에서도 가체 머리는 결혼식과 같은 특별한 행사에서 여성들이 올림머리 위에 착용하여 아름다움을 더하는 역할을 했다. 가체를 올리거나 비녀 장신구로 머리를 장식한 스타일을 보면 아즈텍 여인들과 우리 선조들이 너무도 흡사하다. 남자들이 상투머리를 하고 있다는 점도 비슷했다. 과다라마 관장은 한국과 아즈텍의 문화가 비슷한 것이 아주 많다며 흥미로워했다.

“일반적으로 상투머리는 이곳 원주민 남자들과 군인들이 했습니다. 아즈텍 전시장을 보면 전사들도 머리를 묶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근본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멕시코의 원주민들이 아시아에서 왔다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 과다라마 관장



맥이족의 이동



맥이족이 아즈트란에서 820년에 출발해서 902년에 이곳 멕시코에 도착했다.
- 『멕시코 원주민의 신앙과 역사』(환 토바르Juan de Tovar, 1500)


늙고 신령한 맥이족 지도자가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했다. 그들 자신이 바다가 갈라진 곳을 통하여 떠나온 첫 번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했다. 바다가 갈라져 있는 곳을 통과해 왔다. 그 바닷물이 이쪽과 저쪽으로 나뉘어져 있는 곳을 통하여 맥이족이 이곳으로 왔다.
- 『맥이족과 다른 집단들의 이동 역사와 멕시코 정복 역사』


1500년 환 토바르Juan de Tovar에 의해 작성된 책에 의하면 맥이족은 아시아 아즈트란에서 서기 820년에 출발하여 서기 902년에 멕시코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들 역사에 의하면 아즈트란은 아즈텍인들의 고향으로 추정되는 전설의 땅이었다. 손성태 교수는 아즈트란이 고조선의 수도였고, 이곳에서 두 가지 루트를 통해 멕시코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바로 베링 해협(Bering Strait)과 알류산 열도(Aleutian Islands)를 통한 이주이다. 두 번째 책에는 그들이 바다가 갈라진 곳을 통하여 왔고, 그것은 아시아와 아메리카로 생각하기에 적합하다.

아사(아시)는 ‘최초의’라는 뜻이 있고, 아사달은 ‘탁 터진 큰 땅, 최초의 땅, 밝은 땅’ 이런 뜻이다. 멕시코에 스페인 군대가 쳐들어와서 원주민들에게 “당신들은 어디서 왔소?” 하니까 “우리 선조들은 아스단에서 배를 타고 왔소!”라고 했다. 아스단, 아사달, 아스타나는 전 지구의 여러 곳에 있다. 또 멕시코 사람들은 자신들을 아스테카Azteca(하얀 사람)라고 한다. 이것은 환국의 우주 광명 인간을 상징한다. 아즈텍 전사들은 상투를 틀고 있다. 이들은 지게를 지고 애들을 업어 키운다. 우리 한국인의 옛 풍속을 멕시코 사람들이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 〈환단고기 북콘서트〉 카자흐스탄 편


종도사님께서는 〈카자흐스탄 환단고기 북콘서트〉에서 아즈트란, 아즈텍, 아스테카, 아스단 등의 지명과 인물 등의 상징은 모두 단군조선의 수도 아사달에서 기원했음을 밝혀 주셨다. 따라서 이 다큐는 『환단고기』 문화가 아메리카 대륙까지 전해졌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되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아스단에서 배를 타고 왔소!” - 멕시코 원주민
멕시코 사람들은 자신들을 아스테카Azteca(하얀 사람)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환국의 우주 광명 인간을 상징한다.



맥이족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아즈텍 역사서에 등장한 맥이족은 누구일까? 만약 그들이 한국과 관련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삼국 시대에 고구려를 ‘맥’ 또는 ‘맥이’라고 기록한 문헌이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책인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과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에 관련 기록이 보입니다. 『삼국지』 동이전에는 고구려의 별종으로서 소수‘맥’이 있다. 소수小水 가에 산다고 해서 소수‘맥’小水貊이라고 부르고, 또 중국인들이 당시 그들을 가리켜 ‘맥인’이라고 했다라는 기록들이 보입니다. 『후한서』 동이전에도 역시 ‘맥’이라고 보이는데 조금 기록이 다른 것은 특이하게 고구려를 다른 말로 ‘맥이’라고도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맥족의 맥貊에 귀 이耳 자를 써서 ‘맥이貊耳’라고 쓴 기록이 보입니다.
- 고려대 한국사학과 박대재 교수


아즈텍을 찾아온 맥이족이 고구려인들일 수 있다는 놀라운 내용이다. 중국 역사서에 고구려의 역사를 비교적 자세히 기록한 책이 있었다. 당唐나라 건국부터 멸망까지 290년 동안의 당나라 역사를 기록한 『구당서舊唐書』 200여 권에는 고구려 멸망 이후의 상황도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안동安東에 있는 고구려의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어 돌궐이나 말갈이 사는 곳으로 이동했다. - 『구당서』


안동安東이라는 곳은 지금의 요동遼東 지역을 말한다고 한다. 대대로 고구려 요동 지역에 살던 우리 선조들이 점점 줄어들었는데 여러 집단으로 나눠서 돌궐이나 말갈이 사는 저 북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구당서』의 이 내용을 우리 민족이 북쪽으로 이동했다는 중요한 기록으로 본다.

고려와 발해가 활동했던 지역은 현재 남만주뿐만 아니라 동만주 일대입니다. 즉 연해주와 동만주를 포함한 지역인데요. 그 지역에는 고구려高句麗와 발해渤海(대진大震), 특히 발해의 주민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퉁구스계의 일원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당시나 지금도 현재 동만주부터 연해주를 거쳐서 캄차카Kamchatka반도까지 이어져 살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그들에 의해서라든가 아니면 고구려의 멸망 이후 또는 발해 멸망 이후에 그 유민들이 그들과 연계성 속에서 더 넓은 지역으로 진출하거나 이주하거나 또는 도피했을 가능성은 매우 큽니다.
- 동국대 사학과 윤명철 교수


그리고 중국 양梁나라의 역사서인 『양서梁書』에는 고구려 유민들의 이동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구려 유민들이 발해를 건국했고 또 발해 멸망 이후 그 유민들이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중 한 무리가 멕시코로 건너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499년에 제齊나라 고승 혜심慧深이 “부상국은 중국 한漢나라에서 2만여 리 떨어진 중국의 동쪽에 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일인자를 대대로라고 했다.”라는 말이 실려 있다.

고구려의 관제에 대해서 가장 먼저 기록한 것은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인데요. 거기에 보면 “고구려의 관제 중에 가장 높은 벼슬로서 대대로大對盧가 있었다.”라고 나옵니다. 그 뒤에 『후한서後漢書』라든지 『당서唐書』라든지 여러 기록을 통해 보면 고구려에는 12개 내지 14개 관등의 벼슬 등급이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모든 기록에서 고구려의 최고 관등 자리는 역시 대대로였습니다. - 고려대 한국사학과 박대재 교수


고구려의 가장 높은 벼슬로서 대대로大對盧가 있었다.
“부상국扶桑國은 중국 한漢나라에서 2만여 리 떨어진 중국의 동쪽에 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일인자를 대대로大對盧라고 했다” - 혜심慧深 스님


혜심 스님에 관한 기록은 오래전 외국 신문에도 실린 적이 있다. 부상국의 사회생활이 중국 사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고 하며 부상 식물은 멕시코 마과이 식물의 종류라고 기록했다. 그리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이라는 외국 지도를 인용하며 아메리카 대륙에서 부상국의 위치를 표시했다.


안데스산맥 미라의 유전자



아즈텍인과 고구려인의 유전학적 관계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가능성을 추론할 수 있는 단서는 제시되었다. 안데스Andes산맥에서 발견된 미라의 유전자 검사 결과 한국인과 대만인의 유전자 구조와 유사하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 유전자 검사로 모든 것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과 멕시코, 천 년 전의 교류와 관련한 수많은 흔적과 자료 중 하나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다큐는 이렇게 매우 흥미롭고 놀라운 내용으로 1부를 채우고 있다. 그 내용의 중요성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지면으로 이렇게 소개한다. 다음 호에는 제2부 ‘멕시코 태극의 비밀’을 통해 아즈텍 유물에서 드러나는 우리의 태극을 닮은 문양들과 원주민 후예들의 생활 풍습에 담긴 낯익은 우리의 문화를 정리해 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