줬으면 그만이지!

[이 책만은 꼭]
이해영 객원기자 / 서울관악도장


어른 김장하 선생의 나눔과 베풂에 대한 삶의 철학


●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습니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핍니다. - 책 341쪽

●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야.” - 155쪽
- 장학금을 받은 한 시민이 인사드리러 와서 특별한 사람이 되지 못해 미안해하자 한 말씀. 이 시민은 묵묵히 사회의 질서를 지켜 MBC 양심 냉장고의 주인공이 된 김종명 씨다.

●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 불행한 사람들에게 거둔 이윤이기에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해 써선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 본교 설립의 모든 재원이 세상의 아픈 이들에게서 나온 이상, 이것은 당연히 공공인 것이 되어야 함이 마땅합니다. - 198쪽 (명신고 이사장 퇴임식 때 말씀)

● 내가 배운 게 없으니, 책이라도 읽는 수밖에 – 28쪽

● 당시 문형배 부산고법 수석부장판사는 자신이 책을 많이 읽는 이유에 대해 “무지, 무경험, 무소신 등 3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판사로 살아온 그의 궤적이 그냥 머리 좋고 공부 잘한 여느 판사와 달랐던 것은 이처럼 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채우려 노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앞서 김장하 선생이 “내가 배운 게 없으니, 책이라도 읽을 수밖에”라고 대답한 것과 상통한다. - 134쪽

● 인생은 역경 속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결심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바꾸며 살 수 있다. - 341쪽



가벼우면서 묵직한 책


이번 호에 다룰 책은 『줬으면 그만이지』 (부제 :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 이다. 출판사의 리뷰와 책 소개 등에는 “가난 속에 일군 부 아낌없이 내놓은 김장하. 이만큼 베푼 사람은 많지만 이만큼 드러내지 않은 이는 없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한 분의 독지가에 대한 취재기처럼 보이는데, 단순한 미담 정도의 얘기만은 아닌 듯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

책 내용은 참 쉽다. 술렁술렁 읽히고 심지어 가볍다는 생각마저 들 수도 있다. 그만큼 김주완 작가는 탁월한 필력으로 김장하 선생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 내고 있다. 처음에는 뭐 이런 사람이 있나 하다가, 읽어 나가면서 깊은 감동과 여운을 느끼게 된다. 다 읽은 뒤에는 이 어른 좀 만나서 인사라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쉽게 읽히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말없이 무거워지고, 책이 담고 있는 인물의 삶과 철학을 만나게 되면 마음도 묵직해진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가치관이 붕괴한 요즘, 살아가기 퍽퍽하고 힘들다고만 하는 우리에게, 진정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 좌표를 알려 주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래서 이 책 『줬으면 그만이지』는 많은 사람이 읽어야 하고, 그를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상 〈어른 김장하〉는 더 많은 사람이 시청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이제 어른 김장하 선생을 만나러 가 보자.


남성南星 김장하 선생에 대해서



남성당 한약방
김장하金章河 선생의 호는 남성南星이다. 이는 유학자이셨던 할아버지 김정원金顁元(1889~1971) 선생이 지어 주셨다. 김장하 선생은 “남성南星(=남두육성南斗六星)은 목숨[壽]을 맡은 별이므로, 남성이 비치는 곳에서는 오래 산다는 속설이 있다. 약방에서 지어 준 약을 먹고 다들 오래 살자는 뜻이 담겨 있다.”라고 말했다.

선생은 1944년 1월 16일 경상남도 사천시 정동면 장산리 노천 마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 김씨로 할아버지는 고성 향교의 장의掌議(지금의 학교 교감 정도의 직위)를 지냈다. 집이 가난하여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후 친구들이 학교에 다닐 때 삼천포의 한 한약방에서 점원으로 일하면서 낮에는 약재를 썰고 밤에는 공부를 했다. 만 18세 전국 최연소 나이로 한약업사 시험에 합격하였고, 처음에는 사천에 학약방을 개업했다가 1972년 진주시 동성동으로 이전했다. 직원들 월급은 가장 많고 약값은 제일 싼 한약방, 바로 〈남성당한약방〉이었다. 품질 좋은 약재를 쓰고 약의 효험도 좋다는 입소문이 나서, 연일 전국에서 몰려드는 손님들에게 새벽부터 대기 번호를 나눠 줘야 할 만큼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약 50년간 운영한 남성당한약방은 2022년 5월 30일 선생이 은퇴하면서 영업을 종료했지만, 진주시는 건물을 매입해 ‘진주 남성당 교육관’을 열기로 했고, 1층은 지역민의 바람대로 한약방 원형을 보존하고 2층과 3층은 형평운동 같은 진주 역사 콘텐츠 전시와 교육실로 운영된다고 한다. 2025년 10월에 개관할 예정이다.

나눔과 베풂, 음덕의 삶
김장하 선생은 한약방을 운영하여 번 돈을 개인을 위해 쓰지 않고, 지역사회를 위한 지원으로 돌렸다. 그의 말 없는 나눔과 베풂 그리고 드러내지 않는 음덕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 것이다. 아마 선생은 도움을 주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선생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남몰래 장학금을 주었고, 그에게 이런 도움을 받은 이는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 대행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가 장학생으로 선발된 이유는 성적이 우수해서가 아니라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였다.
이후 1983년 학교법인 남성학숙을 설립하고, 이듬해 개인 재산을 들여 명신고등학교를 만들었다. 학생 복지와 교직원 처우 측면에서 지역 최고 수준으로 지원하였다고 한다. 이후 체육관과 도서관 등 모든 학교 시설 건립을 완비한 뒤, 1991년 국가에 기부채납을 하여 공립학교로 전환했다. 전환 당시는 전국적인 전교조 해직 사태가 터졌을 때다. 정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직원을 그대로 고용 승계하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고 한다.


조건 없는 지원
이후 선생의 조건 없는 지원은 사회, 문화, 예술, 역사, 여성, 인권 등 지역사회의 모든 영역에 걸쳐 이루어 졌다. 특히 1923년 진주를 기반으로 시작된 전국적 신분 차별 철폐 운동인 형평운동衡平運動 연구에 관심을 기울여, 형평운동 기념사업회장을 맡아 오랫동안 지원하였다. 1990년대 창간했던 옛 〈진주신문〉의 주주⋅이사로 참여했고, 1995년부터 27년간 ‘진주 가을 문예’를 지원했다. ‘진주문화를 찾아서’라는 문고 발간 사업도 계속하였다. 진주 문화연구소와 남성문화재단을 통해 문화 사업 후원 및 장학 사업도 꾸준히 진행하는 등 건강한 지역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남모르는 지원은 계속 이어졌다.

이외에도 지금은 진주를 대표하는 지역 서점이 된 진주문고가 어려웠던 시기 이를 살리기 위해 두 차례나 큰 도움을 주었고, 민족문제연구소를 후원하며 친일 인명사전 제작과 진주 지역의 친일 반민족 행위자 관련 연구도 지원했다. 여성평등기금 조성을 통해 가정 폭력 피해 여성 지원에도 힘썼으며, 호주제 폐지 운동에도 참여하는 등 여성 인권 운동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극단 ‘현장’이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을 때도, 진주여성민우회가 창립될 때도 김장하의 도움이 있었다. 남명학, 진주오광대, 진주 솟대 놀이가 재조명되는 데도 그의 손길이 닿았다.


선생과 함께한 사람들
김장하 선생은 2000년에 설립한 남성문화재단을 통해 다양한 후원을 이어 오다 2021년에 재단을 해산하고 남은 기금 전액을 국립 경상대학교에 기탁하며 사회에 환원하였다. 놀랍게도 키다리 아저씨 같은 선생의 남모르는 덕행은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 김장하〉와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늘 자신을 낮추고 드러내지 않으며, 어떤 조건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모습이었고, 나라에서 주는 훈장 수여식도 “약방을 비울 수 없다.”라며 거절하였지만 당시 관선 교육감의 사정으로 겨우 참석했다고 한다. 당연히 사진이나 언론 인터뷰도 없었다. 이런 선생의 덕행이 조금 알려진 2019년 1월에는 본인도 몰랐던 생일 잔치에 진주 시민사회의 각계각층 120명이 모이는 뜻깊은 자리도 있었다.

2022년 5월 은퇴 후, 묵묵하게 내조해 준 부처 같은 아내 최송두 여사와 4남매, 손주들과 함께 사는 평범한 할아버지로 돌아온 김장하 선생은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자신의 호 남성南星처럼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와 함께하길 기원해 본다.


그를 기록하려는 노력
2022년 연말 MBC 경남 유튜브와 TV를 통해 동시 공개된 〈어른 김장하〉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뒤 호평이 이어지자, 설 연휴 전국 방송을 통해 해당 프로그램이 재방영되었다. 또한 이 TV 다큐멘터리는 별도의 영화 버전으로도 제작되어 2023년 11월과 2025년 4월 두 번에 걸쳐 개봉이 된 바 있다. 다큐멘터리의 감독 김현지는 김장하 선생을 “살아 움직이는 사회보장제도”라고 표현했다.

한편 이 책을 기록한 김주완 기자는 2010년대 중반 온라인 매체를 통해 채현국, 방동규, 김장하 등을 조명하는 글을 연재하면서 적지 않은 반향이 일었고, 이후 『별난 사람 별난 인생』이라는 책으로 엮여 나왔다.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는 이 책의 한 부분이었다. 이후 7년 넘게 김장하의 주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꾸준한 취재를 한 결과 결국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책을 쓰게 된 것이다.

김주완 기자의 인터뷰에 응한 사람의 숫자만 대략 100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김 기자는 김장하 선생과 함께 산을 오르거나 모임에 참석하면서 곁에서 그를 바라봤고, 카메라 없이 갔다가 휴대전화로 부랴부랴 촬영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취재한 사람 김주완



1964년생.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전무이사로 있던 중 2022년에 정년을 3년 앞당겨 퇴직했다. 경영진으로서 깜냥도 안 될뿐더러 좀 더 긴 호흡으로 깊고 넓은 취재를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자로 일할 때 역사와 사람에게 관심이 많았고 지금도 그렇다. 인생 2막에서는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동안 닮고 싶은 사람으로 삼아 왔던 멋진 어른을 첫 탐구 대상으로 정했다. 썼던 책으로는 『풍운아 채현국』, 『별난 사람 별난 인생』, 『지역출판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80년대 경남 독재와 맞선 사람들』, 『토호 세력의 뿌리』 등이 있다.


김장하 선생이 평생 삶의 좌표로 삼았던 두 문장



김장하 선생은 평생 살아오면서 좌표로 삼았던 두 개의 문장이 있다. 불가의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집착 없이 남에게 베풀어 주는 일)를 행하는 보살의 모습과 달리 유교 경전의 문장들이다.

첫 번째는 『맹자孟子』의 ‘군자삼락君子三樂’에 나오는 문장으로, 두 번째 즐거움을 가리키는 구절이다.
앙불괴어천仰不愧於天 부부작어인俯不作於人

하늘에도 사람에게도 부끄럽지 않도록 자신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는 군자의 자세를 이르는 말이며, 흔히 ‘앙불괴어천’으로 줄여 쓴다. 참고로 첫 번째 즐거움은 부모가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탈한 것이고, 세 번째 즐거움은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다.

김장하 선생은 이 군자삼락을 다 이룬 분이 아닐까 싶다. 이미 명신고등학교를 세워 인재를 교육하였고, 가족과도 관계도 좋다. 가장으로서 의무도 다한 그였다. 그가 부모를 봉양하고 형제들과 우애 있는 모습에서 군자의 첫 번째 즐거움을 누렸다. 주변 사람들은 김장하 선생을 보살이라고 하지만, 그 부인인 최송두 여사는 부처라고 한다. 숨어서 음덕을 베푼 김장하 선생 옆에는 더 덕이 많은 부인이 계셨다.

김장하는 8세에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자랐으며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다. 20세에 사천 석거리에서 남성당한약방을 연 후 사실상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다. 27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석거리에 모셔 부양했고, 29세에 자신을 길러 준 계모의 장례를 치렀다. 30세에는 홀로 된 아버지를 위해 새어머니를 모셔 왔고, 42세에 아버지를 보내고 남은 새어머니에게는 아버지와 함께 살던 집을 팔아 노후를 보장해 드렸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아래 동생들을 키우고 시집⋅장가 보내는 것도 장하의 몫이었다.
- 50쪽 [‘아버지와 어머니’ 중에서]


“1987년 2월에 제1회 명신고등학교 졸업식이 열렸을 때였다. 키가 그리 크지 않으신 아주머니께서 운집한 학부형들의 뒤쪽에서 앞이 보이지 않아 까치발로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한 교사의 눈에 띄었다. 이사장 부인이셨다.

살며시 다가가 단 위의 자리로 옮기실 것을 권하자 극구 사양하시면서 자기가 여기 온 것을 어디에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셨다. 이윽고 졸업식이 마치자, 이사장 부인께서는 조용히 버스를 타러 학교 문을 나서는 것이었다. 남편의 필생 사업인 학교의 첫 졸업식에 와 보고 싶은 마음이야 인지상정이겠지만, 행여 누가 보고 폐를 끼칠지 보아 조심하는 모습에서 그들 가족의 마음 씀이 참으로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 92쪽 [‘그 남편에 그 아내’ 중에서]


두 번째는 『논어論語』에 나오는 문장이다.
기소불욕己所不慾 물시어인勿施於人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말은 쉬운데 행하기는 참 어려운 구절을 김장하 선생은 평생을 지켜 왔다.
많이 배우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독서하고 배운 바를 실천에 옮긴 그의 모습을 살펴보노라면, 흡사 ‘유학자는 이론에 매몰되지 말고 현실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지식을 알면 바로 행해야 한다.’라며 실천궁행의 뜻을 피력했던 영남 지역의 거유巨儒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을 보는 듯하다.


이 책을 읽은 우리는


다짐해 보자. 김장하 선생처럼 살아갈 자신도 없고, 감히 따라갈 수도 없지만, 지금보다는 조금 더 세상이 나아지는 방향으로 나의 삶을 전환해 보는 건 어떨까. 거창한 결심보다는 나는 지금,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되새기며, 작지만 지속 가능한 선덕을 쌓고, 이조차도 잊어버리는 수행을 하기로 말이다.

이미 제2의 김장하가 많이 있다. 상주초교 하남칠 교장은 ‘장학금 돌려주기’ 차원에서 모교 학생들에게 오랜 세월 매년 장학금을 주고 있었고, 본문에 등장하진 않지만, 명신고 출신 건축가 박범주 씨도 문화 예술계의 든든한 후원자로 김장하를 닮아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책에 등장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등장하지 않은 사람들은 작은 김장하가 되어 그 나눔과 베풂, 음덕의 선행을 하고 있다. 이런 선순환이 돌고 돌아 김장하 선생이 꿈꾸는 모두가 잘사는 세상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그리고 두말할 필요가 없다. 상식적인 대한민국과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 보시고, 선물하시고, 많은 분이 함께 나누시길 바란다.

더불어 이 책과 함께 추천하는 작품은 유튜브와 TV, 영화 버전으로 나와 있는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이다. 김장하 선생의 말투, 눈빛, 걸음걸이, 삶의 태도는 활자가 전하지 못한 감동을 고스란히 전한다. 침묵 속에서도 선명하게 전해지는 철학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


『줬으면 그만이지』 책 목차

제1부 생애
취재의 시작
이어지는 모임
삶의 지표를 정해준 할아버지
한약업사 시험 합격
아버지와 어머니
조용한 소년 김장하
사천 석거리의 젊은 한약사
도시로 나온 남성당한약방
문전성시
그 남편에 그 아내

제2부 전달식 없는 장학금
장학사업의 시작
투사가 된 장학생들
이어지는 우연과 인연
헌법재판관 문형배의 경우
무한한 믿음과 지지

제3부 학교 설립과 헌납
전 재산을 털어 설립한 고등학교
교육부 감사와 세무조사를 받다
이 학교의 두 가지 불법행위
다 있는데 이사장실만 없는 학교
전교조 해직 교사가 없었던 이유
100억대 학교를 무상헌납한 까닭

제4부 공동체를 치유하다
알고 보니 나도 그 돈을 받았네
행동하는 시인 박노정과 진주신문 가을문예

친일청산과 평등세상을 위하여
지역문화공간 토종서점을 살려내고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기 위해
남강을 지키고 지리산을 살리는 일
남명학관 건립 비사(祕史)
학대받는 여성을 구조하라
여성평등기금과 농민열사 장례비
진주정신과 진주문화를 찾아서
수십억 남은 재산 기부하고 60년 만에 은퇴

제5부 김장하의 기질
권력과 정치를 멀리하는 이유
감시받고도 빨갱이 콤플렉스가 없는 노인
검사의 폭탄주를 거절한 지역유지
처음으로 화를 낸 이유

제6부 줬으면 그만이지
진정한 보시의 삶이란
비방과 험담, 그리고 비판

제7부 김장하의 철학
운명을 바꾸며 살자
진주정신에 관한 소고
생활신조와 인생관

닫는 말

김장하 선생 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