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독립을 외치다 - 조마리아 지사

[STB하이라이트]
※ STB 상생방송의 프로그램 중 다시 주목할 만한 방송 내용을 시청자 여러분과 함께 살펴봅니다.


조마리아 지사
대한 독립을 외치다




1862년 황해도 해주군에서 무반 가문의 둘째 딸로 태어난 조마리아는 같은 무반 가문의 동갑내기 안태훈과 혼인하여 안중근, 안성녀, 안정근, 안공근 등 3남 1녀를 두었는데요. 이들은 후에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하게 되죠. 1906년 봄, 조마리아 지사는 안중근安重根이 동생들과 함께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기 위해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운영할 때 필요한 재원을 적극 지원했고요. 1907년 일본에서 빌린 국채를 보상하는 운동을 벌일 때는 은장도, 은가락지, 은귀걸이 등 20원 상당의 은제품을 납부했습니다.


집안일은 생각지 말고 최후까지 남자답게 싸우라. - 조마리아 지사


1910년 10월 26일, 아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후, 그녀의 삶도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이 뤼순旅順 감옥에 갇히자 평양으로 가서 변호사에게 아들의 변호를 요청한 그녀는 결국 사형이 언도되자 재판을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죽음을 앞둔 아들을 면회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흰색 명주 수의를 보내 그 옷을 입고 최후를 맞이하도록 했을 뿐입니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다른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 조마리아 지사



안중근 의사의 의거 후에 남겨진 가족들은 일제의 혹독한 탄압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1910년 5월, 차남 가족과 함께 안중근의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러시아 연해주로 이동했습니다. 비록 남의 나라였지만 이곳에서도 그녀는 쉬지 않고 독립운동에 매진했는데요. 위대한 독립운동가의 어머니로서 러시아 동부 각지를 돌며 동포들의 독립 의식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강연 활동과 방문 활동을 전개한 것이죠.

그러던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일어난 후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는데요. 이때 아들 형제가 임정 요원으로 활약하게 되면서 그녀도 상해로 이주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백범 김구의 모친 곽낙원과 동기간처럼 지내며 동포들 간의 분란과 다툼을 중재하는 해결사 역할을 하였고, ‘임시정부 경제 후원회’ 임원을 맡아 후원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김구의 모친 곽낙원과 함께 상해 독립운동 진영의 안주인이자 어머니 역할을 했던 조마리아 지사. 그녀는 1927년 7월 15일 상해에서 향년 66세에 위암으로 별세했는데요.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