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바타스Devatās(신들의 나라) - 네팔연방민주공화국

[세계지역문화탐방]

이해영 전임기자 / 서울관악도장

히말라야의 얼굴 네팔은 종종 ‘천상의 나라(Land of the Gods)’라 불린다. ‘눈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히말라야Himalaya의 산은 단순한 산이 아닌, 신들의 궁전과 천상의 세계를 잇는 다리로 상징되었다. 힌두교와 불교가 공존하는 이 땅은, 수많은 신神들의 거처이자 수행의 성지이다.

특히 네팔 북부 히말라야에는 신화 속에서 시바Shiva 신이 명상에 잠든 곳으로 알려진 카일라스Kailas산이 자리하고 있다. 일명 수미산須彌山으로 여겨지는 이 산은 네팔인들에게는 여전히 신성한 산이다. 특히 히말라야의 강물은 신들의 눈물이자 생명의 흐름으로 여겨지며, 그 물로 제사를 지내고 몸을 정화한다.

인간의 삶과 신의 세계가 맞닿아 있는 장소, 인도⋅티베트 문명이 교차하는 고산 국가로, 왕국에서 공화제로 이행한 비교적 최근의 정치 변동과 다민족⋅다언어⋅다종교 사회라는 특징을 가진 네팔에 대해서 살펴보자.



한눈에 보는 네팔



국가 정보



여행 정보



국명


네파Nepa라는 부족명에서 유래


네팔Nepal은 산스크리트어 네팔라(नेपाल / nepāla)에서 국호가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어원은 확실하지 않다. 티베트어 계통에서 ‘양 떼가 있는 곳’ 또는 ‘산기슭 목초지’를 의미한다는 견해와 ‘#네파Nepa#’라는 지배 집단 혹은 현지 부족명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며, 통일 이전에는 카트만두 계곡이 ‘네팔’로 불렸다가 18세기 통일 후에 전체 왕국의 국호로 확대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지리와 기후


히말라야를 낀 고산 국가, 평균 고도 1,350미터


지정학적 위치


남아시아 히말라야 중앙부 내륙국으로, 해안선이 없는 내륙 고산 국가이다. 북쪽은 중국(티베트 자치구), 동⋅서⋅남쪽은 모두 인도와 접해 있다. 국토 면적은 약 147,516제곱킬로미터인데, 동서로 길고 남북으로 좁은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인도 갠지스 평원과 티베트고원을 연결하는 띠 같은 지형이다.

남부 테라이Terai는 인도 갠지스 평원의 연장선인 저지대 충적지로 농업과 인구가 밀집해 있고, 중부 구릉지의 도시 지대는 카트만두 계곡 등 비교적 온화한 고원 지대이다. 북부 히말라야산맥은 에베레스트 등 8,000미터급 고봉이 집중된 세계 최고봉 지역이다.

기후는 남부는 아열대 몬순, 중부는 온대, 북부는 고산 기후로, 남북 수십 킬로미터 사이에 열대에서 빙설까지 공존하는 극단적 고도 차이가 특징이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네팔에는 그 유명한 에베레스트Everest산을 비롯한 고봉들이 있다. 평균 고도가 1,350미터일 정도로 높은 산이 많다. 산지를 안내하는 셰르파Sherpa들도 굉장히 번창했다. 국토 면적 대부분이 산악 지형이고 고산 기후로 인해 항공 교통은 정말 열악하다.

관광을 위해 지역 도시로 이동하려면 중소형 중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안전한 교통수단이 아니기에 비행기 추락 사고 등 항공 교통 사고가 빈번하다. 대안으로 협궤 철도가 있기는 하지만 건설 및 관리 비용 외에도 환경 파괴 가능성이 있어 실현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지구상에 8,000미터가 넘는 봉우리가 14개가 있는데 이 중에서 8개가 네팔에 있다. 1위 에베레스트(8,848미터), 3위 칸첸중가(8,586미터), 4위 로체(8,516미터), 5위 마칼루(8,463미터), 6위 초오유(8,201미터), 7위 다울라기리(8,167미터), 8위 마나슬루(8,156미터), 10위 안나푸르나(8,091미터)가 네팔에 있다.

역사 History


인도-티벳 교역로의 중심지에서 성장한 국가


석가모니가 태어난 룸비니Lumbinī가 오늘날 네팔 남부에 있어서 네팔의 역사는 기원전 이전부터 매우 길지만, 이웃 국가 인도와 마찬가지로 기록의 양이 매우 부족한 편이다. 윤회 사상에 기반한 고대 남아시아 문화 특유의 세계관, 현세보다 내세를 중시하는 사고방식으로 인해 정식 역사서를 편찬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고 파편적인 기록도 보존성이 부족한 패엽貝葉(종려수 또는 야자수의 잎으로 만든 종이)으로 남겨 많이 사라진 탓이다.


고대


네팔의 역사에서 가장 이른 통치 집단으로는 소 떼 목축 집단인 고팔라Gopala, 마히샤팔라Mahishapala 왕조가 언급된다. 산스크리트어로 ‘고Go’는 소, ‘팔라Pala’는 수호자나 목자를 뜻한다. 즉, 고팔라족은 ‘소 치는 목동’이라는 뜻이다.

전설에 의하면 고팔라족의 소 한 마리가 매일같이 특정 지점에 가서 자신의 우유를 땅에 쏟아부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목동들이 그 땅을 파 보았더니, 그곳에서 빛나는 시바 신의 상징(링감Lingam)이 발견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고팔라족의 ‘부미 굽타Bhumigupta’가 왕으로 추대되었다. 네팔 최초의 왕조인 고팔라 왕조가 시작된 것이다.

고팔라족의 뒤를 이은 것은 마히스팔라Mahispala족이다. 고팔라가 ‘소’를 키웠다면, 마히스팔라는 ‘버펄로(물소)’를 키우던 집단이다. 고팔라족의 마지막 왕에게 후사가 없자, 같은 목축 세력이었던 마히스팔라족이 자연스럽게 권력을 승계하며 네팔의 두 번째 왕조를 이어 가게 된다. 두 왕조의 이야기는 〈고팔라라즈 밤사발리Gopalraj Vamsavali〉 같은 고대 연대기나 구전 신화에 의존하고 있다.

이후 기원전 7세기 무렵부터 인도-몽골로이드 계통의 키라트Kirat족이 카트만두 계곡 일대를 다스린다. 네팔 역사에서 실질적으로 기록된 최초의 왕조다. 키라트족은 자연 숭배와 샤머니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고 수렴과 농경을 주로 했다.

그리고 4세기경부터 8세기까지 리차비Licchavi 왕조가 이어진다. 네팔이 인도-티베트 교역로의 중심지로 번영하고 불교⋅힌두 문화가 함께 발달하여 고도화된 문명 국가로 도약한 시기다. 고대 네팔은 마우리아⋅굽타 등 인도 제국과 교류하면서 브라만 힌두교와 불교가 함께 전파되었고, 이후 네와르 불교와 같은 독자적인 불교 전통도 형성되었다.

이어 12~18세기까지 있었던 말라Malla 왕조는 카트만두⋅파탄⋅바크타푸르라는 세 도시를 중심으로 각 도시국가가 경쟁하며 예술⋅건축의 황금기를 이루게 된다.

프리트비 나라얀 주도의 통일 왕국 성립


네팔의 본격적인 역사를 네팔의 통일로 잡는 경우가 적지 않다. 1768년 작은 산악 왕국 구르카Gurkha(또는 고르카Gorkha)의 통치자 #프리트비 나라얀 샤#Prithvi Narayan Shah는 카트만두 계곡 끝자락에서 네팔 통일의 꿈이 임박했음을 음미하고 있었다. 인드라 자트라Indra Jatra 축제 기간을 틈타 카트만두 계곡을 침공하여 지루한 공격 끝에 1769년 말라 왕조의 세 개 왕국으로부터 항복을 얻어 내고 수도를 카트만두로 옮겨 샤Shah 왕조를 열고, 네팔을 통일했다.

샤 왕조의 계승자들은 왕국을 확장해 카슈미르와 티베트까지 뻗어나갔다. 그리고 인도 동부의 시킴Sikkim까지 점령했지만, 1792년 티베트와 벌인 전쟁에서 패하면서 영토 확장도 중단되었다. 샤 왕조는 1769년부터 2008년 갸넨드라Gyanendra 국왕이 권력을 포기할 때까지 네팔을 통치했다.


라나 일족의 지배


1846년 젊은 체트리족 출신 귀족인 정 바하두르Jung Bahadur가 카트만두 왕궁에 모인 55명의 귀족을 살해하고 권력을 차지하는 일이 발생한다. 바하두르는 총리대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자신의 가문 이름을 라나Rana로 바꾸면서 자신의 지위를 후손들에게 계승한다는 법령을 공표하는 등 샤 왕조를 무력화시켰다. 라나 가문은 왕족과 동등한 지위를 누렸으며 실질적인 권력을 차지하였다. 라나는 1세기 이상 네팔을 지배하였으며 샤 왕족과 혼인해 혈연관계를 맺었다.

라나 일족은 유럽에서 대리석 바닥재나 크리스털 샹들리에를 수입하면서 호화로운 유럽식 왕궁을 지었으며, 오늘날에는 라나 일족이 지은 왕궁들이 대개 정부 청사나 호텔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라나 일족의 지배는 인도로 망명했던 트리부반Tribuvan 국왕이 1951년 복권되면서 종료되었다.

영국과의 전쟁, 수가울리 조약


1810년 네팔과 영국은 인도 국경과 마주한 테라이Terai 지역을 둘러싼 분쟁으로 전쟁에 돌입했다. 1814년 이웃한 인도를 식민화한 영국이 침략했지만, 구르카를 필두로 저항한 끝에 영국과 종전 협정을 맺고 평야 지대의 남부 영토 일부를 영국에게 할양한 대신 독립을 유지했다. 양국은 1816년 수가울리Sugauli에서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에 의해 네팔은 시킴, 꾸마온, 가르왈 및 테라이 지역을 대부분 상실하고 동서의 길이가 오늘날과 같이 축소되었는데, 1857년 인도의 저항을 진압할 때 협력한 대가로 테라이 지역은 되찾게 되어 오늘날의 국경선이 성립되었다.

현대의 네팔


1959년 네팔 최초의 민주주의 총선거가 실시되었으나, 1960년 왕 마헨드라가 쿠데타를 일으켜 판차야트Panchayat 체제가 도입되었다. 이 체제는 정당을 금지하고 각료회의와 연방의회에 대한 권한을 포함한 모든 정부 권력을 국왕의 독점적인 권한 아래 두는 사실상의 절대 군주제였다. 이후 1990년 인민 운동으로 다당제 입헌 군주제가 부활하지만 정치 불안이 이어지고, 1996년부터 공산당(마오주의자)의 무장 투쟁이 시작돼 10여 년에 걸친 내전으로 비화했다.

2001년 왕실 학살 사건, 2006년 제2차 인민 운동 이후 왕정은 급격히 지지를 잃고, 2008년 제헌의회가 왕정을 폐지하며 #네팔 연방 민주공화국#이 탄생했다. 이후 2015년 새 헌법이 제정되어 연방제 공화국 체제가 법적으로 정착되었다.

현재 네팔 국회에서는 왕정복고를 주장하는 정당이 국회 원내 4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자국민들마저도 현 공화 정권을 지지하는 계층과 왕정의 복고를 주장하는 계층들로 크게 분열되어 있다. 이들의 상호 적대감 또한 매우 심각하다고 한다.

정치 제도


의회 민주주의 국가 중 공산당의 영향력이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네팔의 정치 체제는 ‘네팔 연방민주공화국(Federal Democratic Republic of Nepal)’이라는 국호에 담겨 있다. 2015년 9월 20일에 새 헌법을 제정해 군주제를 폐지하고 연방제, 공화국제를 공식화했다.

국가 원수로서 대통령은 5년 중임으로 상징적⋅의전적 역할이 중심이며, 의회에서 선출된다. 실제 행정부 수반은 총리로 하원 다수당(또는 연립)의 대표가 맡는다. 의회는 하원(대표의회, House of Representatives)과 상원(국가의회, National Assembly)으로 나뉘어 양원제 연방의회를 구성한다.


중앙 정치의 특징


의회 민주주의 시스템이 돌아가는 나라 중 공산당의 영향력이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가 네팔이다. 의회에서 가장 유력한 네 곳 중 세 곳이 공산주의 정당이다. 따라서 공산당과 공산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해 공동 여당이 되었는데 제1야당이 공산당인 경우도 있다. 공산당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전체적으로 좌파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국가로, 3개의 공산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들도 대체로 범좌파 사회주의 계열에 속한다.

네팔 의회는 양원제 의회로 상원 정원은 59명, 하원 정원은 275명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과 마오주의 공산당, 네팔 회의, 이 3당이 의석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2015년부터는 아예 이 3당이 번갈아 여당으로 집권하고 이 3당의 당 대표들이 돌아가며 총리직을 맡고 있다.

2015년 제정된 헌법은 의회에 여성 의원을 3분의 1 이상, 대통령과 부통령 중 한 명은 여성, 정부와 위원회에도 여성을 반드시 포함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행정구역과 주요 도시



행정구역은 7개 주(province)와 77개 구(district)로 나뉘며, 지방 정부에 권한을 분산한 연방⋅지방자치 체제를 갖고 있다. 77개 구 아래에는 카트만두를 포함하는 광역시 6개, 준광역시 11개, 지방자치단체 276개, 시골 지방자치단체 460개가 있다.

광역시, 준광역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시장과 부시장을 선출하고 시골 지방자치단체는 시장과 부시장 대신에 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한다. 시장/의장과 부시장/부의장은 러닝메이트가 아니라서 시장과 부시장이 다른 정당에서 선출될 수도 있다.



민족 구성


주민의 90퍼센트 이상이 인도계


헌법은 네팔을 다민족⋅다언어⋅다문화 국가로 규정하며, 수십 개의 민족 집단이 공존한다.

네팔리스Nepalis


네팔에 주로 거주하는 민족을 네팔리스Nepalis라고 하는데, 네팔의 민족은 크게 인도 아리아인 계열, 몽골리안 계열, 그리고 토착민 계열이 있으며, 약 90퍼센트가량이 인도계이다.

아리안 계열은 전형적인 인도인들과 비슷한 사람들로 주로 바훈(브라만 계급)과 유라시안Eurasian에 속하는 체트리(크샤트리아 계급) 사람들이고, 몽골리안은 동아시아 사람들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 토착민 계열은 피부가 매우 검은 흑인과 같은 사람들을 포함한다.


카스트 제도


네팔에도 카스트Caste 제도가 존재한다. 네팔인의 80퍼센트 이상이 힌두교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카스트 신분이 다르다고 사람을 구타하거나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등의 극단적인 성향은 없다. 이는 적잖은 수의 인구가 티베트 불교와 토속 신앙을 믿고 있고, 아리아인이 인구 비율에서 압도적인 위치에 있지 않아서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네팔의 성씨


같은 성씨면 같은 민족이나 민족 출신을 뜻한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성씨 혈통과 비슷하지만, 네팔의 경우 민족, 즉 성씨가 다르면 외모도 좀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같은 성씨인 사람들끼리 사용하는 언어가 따로 있으며, 외모를 보고 성씨나 카스트를 맞힐 수도 있다. 많은 세월이 지나며 가족들끼리 섞이다 보니 5개 정도의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도 흔하다.


언어


네팔어와 함께 123개의 언어 사용


헌법상 공용어는 네팔어(Nepali)다. 네팔어는 인도-아리아 어군에 속하는 산스크리트계 언어이다. 문자는 데바나가리Devanagari 문자를 사용한다. 마이틸리Maithili, 보즈푸리Bhojpuri, 타루Tharu어, 네와르Newar어(Nepal Bhasa), 타망Tamang어, 셰르파Sherpa어 등 각 민족의 고유 언어가 지역별로 사용되고 있다. 헌법은 네팔어를 국가 공용어로, 각 주와 지방 정부가 지역 언어를 행정⋅교육 언어로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네팔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은 네팔 전체 인구의 44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며, 남아시아 국가들이 으레 그렇듯 실질적인 공용어는 당연히 영어이다. 대한민국보다 인구가 적은 나라임에도 나라에서 쓰이는 언어가 무려 123개나 된다고 한다. 네팔이 문화, 혈통으로도 인도와 관련이 있고 거기에다 인도로 일하러 가는 사람들도 많다 보니 힌디Hindi어를 배우는 경우도 많이 있는 편이다.

주요 인물


현대사의 거인 B. P. Koirala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釋迦牟尼의 탄생지 룸비니Lumbini와 성장한 곳인 카필라Kapila 성이 모두 현 네팔의 영토에 있다. 물론 네팔은 예나 지금이나 인도 문화권이라 석가모니가 인도인이란 말도 틀린 건 아니다. 중국인들과 파키스탄인들은 인도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석가모니가 네팔인이라는 네팔 측의 주장을 지지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이 존경하는 주요 인물들을 살펴보자.


역사와 건국의 아버지


프리트비 나라얀 샤Prithvi Narayan Shah(1723~1775) : 18세기 구르카 왕국의 왕으로, 현대 네팔의 기틀을 다진 ‘네팔의 국부’이다. 18세기에 수많은 소왕국으로 쪼개져 있던 네팔을 하나로 통합하여 ‘고르카 왕국(현재의 네팔)’을 건설했다. 네팔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유명 정치인과 인도주의자


비슈웨슈와르 프라사드 코이랄라Bishweshwar Prasad Koirala(1914~1985) : 네팔 현대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거인이다. 1940년대 인도에서 네팔 의회당(Nepali Congress, NC)을 창립하여, 100년 넘게 네팔을 통치하던 라나Rana 가문의 세습 총리직을 폐지하는 혁명을 주도했다. 1959년 네팔 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총선에서 승리하여 네팔의 첫 민주 선출 총리가 되었다. 네팔 민주화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면서 동시에 네팔의 ‘심리 소설’을 개척한 문학의 선구자로도 불린다.

아누라다 코이랄라Anuradha Koirala(1949~ ) : CNN 히어로로 선정되기도 했던 인권 운동가이다. 인신매매 피해 여성과 아동들을 구출하고 재활을 돕는 ‘마이티 네팔Maiti Nepal’을 설립하여 전 세계적인 존경을 받고 있다.

히말라야의 전설들


텐징 노르가이Tenzing Norgay(1914~1986) :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와 함께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밟은 셰르파이다. “우리는 팀으로 올라갔다.”는 겸손함과 용맹함으로 전 세계 산악인들의 영웅이 되었다.

니르말 님스 푸르자Nirmal Nims Purja(1983~ ) : 전직 영국 육군 구르카 용병 출신으로, 세계 8,000미터급 14개 봉우리를 최단 기간에 정복한 기록을 세운 현대의 전설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기록: 불가능은 없다〉를 통해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세상을 밝히는 의사


산두크 루이트Sanduk Ruit(1954~ ) : ‘시력의 신’이라 불리는 안과 의사이다. 저렴하고 혁신적인 백내장 수술법을 개발하여 네팔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빛을 선물했다.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기도 한 네팔의 자랑이다.


종교


여전히 힌두교 왕국


헌법상 세속 국가이지만, 힌두교⋅불교⋅이슬람⋅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다종교 사회이다. 전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이 힌두교 신자이며, 과거에는 ‘세계 유일의 힌두 왕국’으로 불리기도 했다. 카스트 제도, 다신 숭배, 숲⋅강을 신성시하는 전통이 강하다.

석가모니의 탄생지 룸비니가 있고, 티베트 불교⋅네와르 불교 등 여러 불교 전통이 공존하고 있다. 힌두교와 불교가 사원⋅축제를 공유하는 사례가 많아, 일상에서는 두 전통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공화정 전환 후 힌두교가 헌법상 국교의 지위는 내려놓았지만, 개종 금지법을 통해 보호받는 등 여전히 국교에 준하는 대접을 받고 있다.


경제


1인당 GDP가 1,397달러에 불과한 최빈국


네팔은 1인당 GDP가 1,397달러에 불과한 최빈국으로 유엔이 지정한 최빈개도국(Least Developed Country: LDC)으로 분류됐다. 2026년경 LDC 졸업(격상)이 예정되어 있어 점진적 성장을 이어 가고 있다. 네팔의 경제는 타국에 크게 의존한다. 주로 인도 등의 원조를 받고 있다.

노동 인구 상당수가 농업에 종사하며, 쌀⋅옥수수⋅차⋅카르다몸⋅채소 등이 주요 생산물이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를 소유하고 있어 산악 트레킹⋅등반, 문화유산 관광이 핵심 외화 수입원이다. 앞으로 수력 발전 잠재력이 매우 커서, 이를 기반으로 한 전력 수출과 연관 산업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는다.

외교


인도와 중국 사이의 균형 외교


네팔은 인도와 중국 사이에 있는 지정학적 특성상, 두 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외교를 펼치고 있다. 특히 인도와는 경제⋅교통⋅노동이 강하게 연결된 최대 파트너이지만, 국경 문제와 경제 의존도에 따른 긴장도 존재하고 있다. 티베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기반 시설⋅에너지 개발에서 중국 투자가 늘고 있다. 1955년 유엔에 가입했다.

대한민국과의 관계

1974년 한국이 카트만두에 대사관을 개설하며 네팔과 공식 외교 채널을 구축했고, 네팔은 2007년 서울에 주한 네팔 대사관을 설치했다. 한국의 고용허가제(Employment Permit System: EPS)를 통해 다수의 네팔 노동자가 한국 제조업⋅농축산⋅서비스업 등에서 일하고 있다. 실제 네팔 내에서 EPS-TOPIK(고용허가제 한국어능력시험)은 ‘제2의 대입’이라 불릴 만큼 열기가 뜨겁다.

또한 한국인들의 네팔 방문도 관광⋅트레킹, 유학, 선교⋅NGO(비정부기구) 활동을 통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네팔의 LDC 졸업(2026년 예정)에 맞춰, 대한민국은 에너지(특히 수력 발전), 기반 시설, ICT(정보통신기술) 등 분야에서 민관 협력을 확대하며 ‘좋은 친구(ramro sathi)’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국과 네팔의 최근 협력 사례


주요 음식


네팔의 음식은 남아시아답게 인도 요리, 파키스탄 요리와 겹치는 것이 많긴 하나 내륙국, 고산 지대에 기후도 많이 다른지라 세세하게는 차이가 난다.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특성상 티베트 요리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달 바트가 대표적인 음식이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네팔 음식 거리와 에베레스트 레스토랑에서 네팔 전통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네팔 음식은 향신료가 크게 거부감이 없고 매콤해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