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를 진작 알았더라면 헛고생을 안 했을 것”
[『환단고기에서 얻는 지혜』]
이기동 / 성균관대 유학대학 명예교수
영생이 무슨 소리냐,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고 한다면 영원히 산다는 건 무슨 말일까요? 오늘날 학교에서는 비과학적이라며 이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삼단논법에서도 우리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배웠죠.
그리고 석가모니는 “불생불멸의 진리를 얻어라.”라고 했습니다. 이게 불교 진리의 핵심입니다. 태어나지도 않고 사멸하지도 않는 진리라니, 우리는 이미 태어났는데 태어나지 않는 진리를 얻으라니 참 아리송한 말입니다.
또 이런 말이 있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럼 부활이 뭔가요? 죽은 뒤에 되살아나는 것을 부활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래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3일 후에 살아난 것을 부활하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하신 말씀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훨씬 전에 하신 말입니다. 그럼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요? 참 아리송합니다.
또한 “우주 만물은 리理와 기氣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은 조선 시대 성리학, 즉 주자학에서 배우는 말이죠. 거기서 우주 만물은 리와 기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참 아리송합니다.
사람의 두 요소는 마음과 몸이고, 마음이 리에 해당한다면 몸은 기에 해당합니다. 보통 우리는 마음이 몸을 움직인다고 하죠. 몸을 자동차에 비유하면 마음이라는 운전기사가 있어서 마음이 운전하는 대로 몸이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또 몸이 마음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고들 하는데, 아픈 사람은 마음대로 몸을 못 움직이니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다음에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그리고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또 무슨 소리일까요? 최근 어떤 가수분이 “너 자신을 알라.”고 툭 내뱉고 가 버렸는데, 소크라테스한테 물어봤더니 “나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는 노래도 있더군요.
이러한 난해한 문제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쉽게 이해가 될까요? 여기 참여하시는 분들 중 한 90퍼센트는 아시리라 생각되는데요, 해답은 『환단고기桓檀古記』를 보시면 됩니다. 놀라운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보고 너무 놀랐는데요, 이 『환단고기』를 누가 만들었을까요? 바로 한국인이죠. 그래서 한국인임이 자랑스럽습니다.
전에는 한국을 비난하는 한국인이 많았습니다. 민도가 낮다, 민주주의에 맞지 않다, 심지어 ‘헬조선’이라고 하며 비하하는 분위기도 있었는데, 『환단고기』를 보고 나니 우리가 정말 자랑스러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것이 이해가 되는지 한번 보시죠.
우리 몸도 우주 공간에 가득한 ‘기氣’라는 원물질이 모여 된 것입니다. 이 몸이 해체되는 것을 죽어 없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본질을 안다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죽어 없어진 게 아니라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가셨다. 영생의 개념을 갖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제가 공부했던 일본에서는 “없어지셨다.”고 하고, 영어로는 “멀리 사라졌다(Pass away).”고 표현하지만, 우리는 영생의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라는 본질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예수가 “일찍이 아브라함 시대에 나를 사랑해 주신 하나님” 이런 식으로 기도를 하니까 주위의 사람들이 “당신 나이가 얼만데 아브라함 시대 때 있었다고 하느냐?” 하니까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나는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미친 사람이라고 돌 던져서 도망을 갔는데요. 바로 이 ‘불생’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본질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없습니다. 진리의 본질은 본질적으로 불생불멸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질인 물임을 잊어버리고 서로 싸우는 얼음덩어리는 가짜 삶을 사는 것이고 죽은 것과 같습니다.
본질이 진실인데요. 진실에서 떨어져 있는 것은 꿈과 같죠. 꿈속에서 있었던 일은 없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본질, 진실에서 떨어져서 살아가는 것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죽은 것과 같다.
그러다 노력을 통해 본질을 되찾으면 비로소 삶으로 돌아온 것이니, 이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예수가 죽은 뒤 3일 후에 부활한 것만 말하는 게 아니라, 참된 본질을 찾은 상태 자체가 부활이자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당신들은 지금 죽어 있잖아요. 본질을 잊어버리고 서로 싸우느라고 정신이 없죠. 그런데 내 말을 들으면 본질을 알게 해 주겠다.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거다. 여러분 중에도 안 싸우는 사람도 있잖아요. 본질을 잊어버리지 않은 사람, 특히 어린이들은 거의 그렇습니다. 그 어린이들도 현재는 본질을 갖고 있지만 자라면서 본질을 잊어버리죠. 그러면 그 가짜의 생명 없는 삶을 살게 되는데 본질을 잊어버리기 전에 나를, 내 말을 들으면 본질을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 유지한다는 거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우주 만물이 리理와 기氣로 구성되어 있다.’는 성리학의 설명이 난해한 이유는, 하늘의 요소인 성⋅명⋅정 세 요소를 두 요소로 잘못 정리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마음이 리理라면 말씀과 몸은 기氣에 해당하는데, 마음은 안 보이지만 움직이고 있죠. 그런데 외부에서 보면 몸만 움직이지 마음은 안 움직이는 것 같아 보일 뿐이지 마음도 움직입니다. 몸이 움직이는 건 뭐 기정사실이고요. 이를 리理와 기氣로만 나누다 보니 이조 500년간 수많은 논란이 생겼습니다. 원래 세 가지 요소였다는걸 알면 그렇게 혼란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환단고기』를 진작 알았더라면 그런 헛고생을 안 했을 것입니다.
단군조선 3세 가륵 단군 시대의 신인과 같은 인물인 을보륵乙普勒의 말씀에 ‘지아구독知我求獨’, ‘나를 알아서, 하나인 본질을 구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는 ‘나’는 남자, 한국인, 직업 등인데, 이는 본질을 잃어버린 나입니다. 진짜인 ‘나는 우주의 원물질인 기氣’이며, ‘나는 우주다.’, ‘나는 하늘이다.’라는 것입니다. 다른 분들도 본질은 하나죠. 그러니까 ‘너는 나다.’ 이런 말이 됩니다. 우주 전체가 나라는 ‘하나’, 천부경의 일자一者를 깨닫는 것입니다.
나의 그 두 가지 모습을 안다면 가짜의 나로서 살아가고 있는 이 ‘나’는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나는 진짜를 구해야죠. 그래서 독獨이라는 말을 씁니다.
석가모니의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도 우주 가득한 하나가 바로 나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제 『환단고기』에 있는 그 지혜로운 말씀을 더듬어서 우리의 갈 길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과거에는 서구 중심의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로 생존 경쟁을 하며 지식을 쌓아 왔지만, 이제는 코로나 사태처럼 지식만으로 해결 안 되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앞으로는 지혜를 가지고 해결하는 시대이며, 그 지혜의 보고寶庫가 바로 『환단고기』입니다.
하느님의 몸은 정精이라고 했는데 그 모양이 있는 거냐? 얼음들이 엄청나게 이렇게 떠 있어도 물은 모양이 없죠. 그것처럼 얼음의 세계에서 보면 본질이 물인데요. 그 본질의 몸인 물이 하느님의 몸처럼 비유적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우주 공간에 빈틈없이 꽉 차 있는 원래의 물질이 있다고 할 때 그것이 하느님의 몸인데 그거는 정밀하다고 해서 정精 자를 썼습니다. 그럼 빈틈없이 꽉 차 있다면 진공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냐? 미국의 과학자가 진공 속에도 빈틈은 없다는 거예요. 공기가 없을 뿐이지. 그것을 정이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하늘의 마음 그러면 오늘날 굉장히 생소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과학 시대에 ‘하느님’ 그러면 없는 걸로, 부정하는 것으로 우리들이 배워 와서 그렇습니다. 오늘날 “하느님이 있느냐?” 이러면 이제 한 구십몇 프로는 “없다.”라고 답을 하는데요. 스티븐 호킹이 『위대한 설계』란 책에서 “신은 없다 우주는 우주의 자연법칙에 의해서 움직일 뿐이다.” 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하늘입니다. 대자연의 섭리가 있죠. 그것이 하늘입니다.
그러면 그 대자연의 섭리, 하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부모 마음하고 똑같은 것입니다. 살리고 싶은 마음을 성性이라고 하고요. 살리도록 명령을 하는 것을 명命이라고 하는데, 그 하늘의 세 요소하고 사람의 세 요소가 같은 겁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도 성性이 있습니다. 그것이 본성입니다. 사람에게 하늘의 요소 성명정性命精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하늘하고 똑같으니까요.
그런데 사람에게는 하늘이 없는 요소가 더 붙어 있습니다. 선악善惡, 청탁淸濁, 후박厚薄이 덧붙어서 사람이 된 겁니다. 그래서 그 하늘의 마음인 성하고 선악을 합해서 마음(心)이라고 하고요. 명하고 청탁을 붙여 가지고 기氣라고 합니다. 정하고 후박을 합해서 몸(身)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마음과 기와 몸이 있는 것입니다.
「삼일신고」에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재앙을 받는다.”는 말이 있는데요. 그런데 현실을 보면 악한 사람이 더 잘되는 것 같고, 거짓말 잘하고 못된 사람이 출세하는 것 같고, 세상이 불공평해 보이기도 하죠. 악한 사람이 잘돼 보이는 것, 돈 많고 권력 가진 사람이 행복해 보이는 것, 그런 장면을 우리는 많이 봅니다. 그런데 돈을 가져 보면 어떻습니까? 1억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가도 막상 가지면 만족을 못 하고 10억, 100억을 바라게 됩니다. 가질수록 욕심이 커지고 스트레스도 같이 커집니다.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채우면 행복할 것 같은데 더 갖고 싶어집니다. 가진다는 게 반드시 행복이라는 생각은 착각일 수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이 반드시 행복한 건 아닙니다. 그리고 악한 사람은 진실한 본래의 모습으로 사는 게 아니라 거짓된 삶을 살고 있는 거죠. 살아도 사는 게 아니고, 행복해도 행복한 게 아닙니다.
그러면 숙제가 생기죠. 악한 마음을 버리고 착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 이게 첫째 숙제입니다.
본질을 잊어버리지 않고 사는 사람은 ‘모두 하나’라는 판단으로 살아갑니다. 본심으로 살게 되고 서로 사랑을 합니다. 그런 삶이 행복한 삶이고, 유학에서는 그런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합니다.
반대로 본질을 잊어버리면 전부 남남이 되고, 경쟁해야 되고, 무한 경쟁을 해도 결국 늙고 죽어야 합니다. 그런 삶은 성공해도 불행할 수밖에 없고, 그런 사람을 소인小人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과제는 짐승 같은 삶에서 벗어나 사람의 삶을 회복하는 것, 군자가 되는 것, 이것이 가장 큰 숙제입니다. ■
본 기사는 #STB상생방송 배달의숙 명사초청특강 5회# 내용을 정리한 강좌입니다. #『환단고기에서 얻는 지혜』 1부 난해한 문제들#의 내용입니다. [편집자 주註]
상생방송 명사초청특강
환단고기에서 얻는 지혜 – 1부 난해한 문제들
[이기동 명예교수]


영생이 무슨 소리냐,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고 한다면 영원히 산다는 건 무슨 말일까요? 오늘날 학교에서는 비과학적이라며 이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삼단논법에서도 우리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배웠죠.
그리고 석가모니는 “불생불멸의 진리를 얻어라.”라고 했습니다. 이게 불교 진리의 핵심입니다. 태어나지도 않고 사멸하지도 않는 진리라니, 우리는 이미 태어났는데 태어나지 않는 진리를 얻으라니 참 아리송한 말입니다.
또 이런 말이 있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럼 부활이 뭔가요? 죽은 뒤에 되살아나는 것을 부활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래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3일 후에 살아난 것을 부활하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하신 말씀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훨씬 전에 하신 말입니다. 그럼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요? 참 아리송합니다.
또한 “우주 만물은 리理와 기氣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은 조선 시대 성리학, 즉 주자학에서 배우는 말이죠. 거기서 우주 만물은 리와 기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참 아리송합니다.
사람의 두 요소는 마음과 몸이고, 마음이 리에 해당한다면 몸은 기에 해당합니다. 보통 우리는 마음이 몸을 움직인다고 하죠. 몸을 자동차에 비유하면 마음이라는 운전기사가 있어서 마음이 운전하는 대로 몸이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또 몸이 마음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고들 하는데, 아픈 사람은 마음대로 몸을 못 움직이니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다음에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그리고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또 무슨 소리일까요? 최근 어떤 가수분이 “너 자신을 알라.”고 툭 내뱉고 가 버렸는데, 소크라테스한테 물어봤더니 “나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는 노래도 있더군요.
이러한 난해한 문제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쉽게 이해가 될까요? 여기 참여하시는 분들 중 한 90퍼센트는 아시리라 생각되는데요, 해답은 『환단고기桓檀古記』를 보시면 됩니다. 놀라운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보고 너무 놀랐는데요, 이 『환단고기』를 누가 만들었을까요? 바로 한국인이죠. 그래서 한국인임이 자랑스럽습니다.
전에는 한국을 비난하는 한국인이 많았습니다. 민도가 낮다, 민주주의에 맞지 않다, 심지어 ‘헬조선’이라고 하며 비하하는 분위기도 있었는데, 『환단고기』를 보고 나니 우리가 정말 자랑스러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것이 이해가 되는지 한번 보시죠.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

영생이란 무엇인가

우리 몸도 우주 공간에 가득한 ‘기氣’라는 원물질이 모여 된 것입니다. 이 몸이 해체되는 것을 죽어 없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본질을 안다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죽어 없어진 게 아니라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가셨다. 영생의 개념을 갖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제가 공부했던 일본에서는 “없어지셨다.”고 하고, 영어로는 “멀리 사라졌다(Pass away).”고 표현하지만, 우리는 영생의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라는 본질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불생불멸의 진리

예수가 “일찍이 아브라함 시대에 나를 사랑해 주신 하나님” 이런 식으로 기도를 하니까 주위의 사람들이 “당신 나이가 얼만데 아브라함 시대 때 있었다고 하느냐?” 하니까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나는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미친 사람이라고 돌 던져서 도망을 갔는데요. 바로 이 ‘불생’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본질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없습니다. 진리의 본질은 본질적으로 불생불멸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질인 물임을 잊어버리고 서로 싸우는 얼음덩어리는 가짜 삶을 사는 것이고 죽은 것과 같습니다.
본질이 진실인데요. 진실에서 떨어져 있는 것은 꿈과 같죠. 꿈속에서 있었던 일은 없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본질, 진실에서 떨어져서 살아가는 것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죽은 것과 같다.
그러다 노력을 통해 본질을 되찾으면 비로소 삶으로 돌아온 것이니, 이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예수가 죽은 뒤 3일 후에 부활한 것만 말하는 게 아니라, 참된 본질을 찾은 상태 자체가 부활이자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당신들은 지금 죽어 있잖아요. 본질을 잊어버리고 서로 싸우느라고 정신이 없죠. 그런데 내 말을 들으면 본질을 알게 해 주겠다.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거다. 여러분 중에도 안 싸우는 사람도 있잖아요. 본질을 잊어버리지 않은 사람, 특히 어린이들은 거의 그렇습니다. 그 어린이들도 현재는 본질을 갖고 있지만 자라면서 본질을 잊어버리죠. 그러면 그 가짜의 생명 없는 삶을 살게 되는데 본질을 잊어버리기 전에 나를, 내 말을 들으면 본질을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 유지한다는 거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우주 만물이 리理와 기氣로 구성되어 있다.’는 성리학의 설명이 난해한 이유는, 하늘의 요소인 성⋅명⋅정 세 요소를 두 요소로 잘못 정리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마음이 리理라면 말씀과 몸은 기氣에 해당하는데, 마음은 안 보이지만 움직이고 있죠. 그런데 외부에서 보면 몸만 움직이지 마음은 안 움직이는 것 같아 보일 뿐이지 마음도 움직입니다. 몸이 움직이는 건 뭐 기정사실이고요. 이를 리理와 기氣로만 나누다 보니 이조 500년간 수많은 논란이 생겼습니다. 원래 세 가지 요소였다는걸 알면 그렇게 혼란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환단고기』를 진작 알았더라면 그런 헛고생을 안 했을 것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

단군조선 3세 가륵 단군 시대의 신인과 같은 인물인 을보륵乙普勒의 말씀에 ‘지아구독知我求獨’, ‘나를 알아서, 하나인 본질을 구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는 ‘나’는 남자, 한국인, 직업 등인데, 이는 본질을 잃어버린 나입니다. 진짜인 ‘나는 우주의 원물질인 기氣’이며, ‘나는 우주다.’, ‘나는 하늘이다.’라는 것입니다. 다른 분들도 본질은 하나죠. 그러니까 ‘너는 나다.’ 이런 말이 됩니다. 우주 전체가 나라는 ‘하나’, 천부경의 일자一者를 깨닫는 것입니다.
나의 그 두 가지 모습을 안다면 가짜의 나로서 살아가고 있는 이 ‘나’는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나는 진짜를 구해야죠. 그래서 독獨이라는 말을 씁니다.
석가모니의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도 우주 가득한 하나가 바로 나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제 『환단고기』에 있는 그 지혜로운 말씀을 더듬어서 우리의 갈 길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과거에는 서구 중심의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로 생존 경쟁을 하며 지식을 쌓아 왔지만, 이제는 코로나 사태처럼 지식만으로 해결 안 되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앞으로는 지혜를 가지고 해결하는 시대이며, 그 지혜의 보고寶庫가 바로 『환단고기』입니다.
사람의 현재 모습

하느님의 몸은 정精이라고 했는데 그 모양이 있는 거냐? 얼음들이 엄청나게 이렇게 떠 있어도 물은 모양이 없죠. 그것처럼 얼음의 세계에서 보면 본질이 물인데요. 그 본질의 몸인 물이 하느님의 몸처럼 비유적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우주 공간에 빈틈없이 꽉 차 있는 원래의 물질이 있다고 할 때 그것이 하느님의 몸인데 그거는 정밀하다고 해서 정精 자를 썼습니다. 그럼 빈틈없이 꽉 차 있다면 진공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냐? 미국의 과학자가 진공 속에도 빈틈은 없다는 거예요. 공기가 없을 뿐이지. 그것을 정이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하늘의 마음 그러면 오늘날 굉장히 생소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과학 시대에 ‘하느님’ 그러면 없는 걸로, 부정하는 것으로 우리들이 배워 와서 그렇습니다. 오늘날 “하느님이 있느냐?” 이러면 이제 한 구십몇 프로는 “없다.”라고 답을 하는데요. 스티븐 호킹이 『위대한 설계』란 책에서 “신은 없다 우주는 우주의 자연법칙에 의해서 움직일 뿐이다.” 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하늘입니다. 대자연의 섭리가 있죠. 그것이 하늘입니다.
그러면 그 대자연의 섭리, 하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부모 마음하고 똑같은 것입니다. 살리고 싶은 마음을 성性이라고 하고요. 살리도록 명령을 하는 것을 명命이라고 하는데, 그 하늘의 세 요소하고 사람의 세 요소가 같은 겁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도 성性이 있습니다. 그것이 본성입니다. 사람에게 하늘의 요소 성명정性命精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하늘하고 똑같으니까요.
그런데 사람에게는 하늘이 없는 요소가 더 붙어 있습니다. 선악善惡, 청탁淸濁, 후박厚薄이 덧붙어서 사람이 된 겁니다. 그래서 그 하늘의 마음인 성하고 선악을 합해서 마음(心)이라고 하고요. 명하고 청탁을 붙여 가지고 기氣라고 합니다. 정하고 후박을 합해서 몸(身)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마음과 기와 몸이 있는 것입니다.

「삼일신고」에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재앙을 받는다.”는 말이 있는데요. 그런데 현실을 보면 악한 사람이 더 잘되는 것 같고, 거짓말 잘하고 못된 사람이 출세하는 것 같고, 세상이 불공평해 보이기도 하죠. 악한 사람이 잘돼 보이는 것, 돈 많고 권력 가진 사람이 행복해 보이는 것, 그런 장면을 우리는 많이 봅니다. 그런데 돈을 가져 보면 어떻습니까? 1억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가도 막상 가지면 만족을 못 하고 10억, 100억을 바라게 됩니다. 가질수록 욕심이 커지고 스트레스도 같이 커집니다.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채우면 행복할 것 같은데 더 갖고 싶어집니다. 가진다는 게 반드시 행복이라는 생각은 착각일 수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이 반드시 행복한 건 아닙니다. 그리고 악한 사람은 진실한 본래의 모습으로 사는 게 아니라 거짓된 삶을 살고 있는 거죠. 살아도 사는 게 아니고, 행복해도 행복한 게 아닙니다.
우리의 과제

그러면 숙제가 생기죠. 악한 마음을 버리고 착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 이게 첫째 숙제입니다.
본질을 잊어버리지 않고 사는 사람은 ‘모두 하나’라는 판단으로 살아갑니다. 본심으로 살게 되고 서로 사랑을 합니다. 그런 삶이 행복한 삶이고, 유학에서는 그런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합니다.
반대로 본질을 잊어버리면 전부 남남이 되고, 경쟁해야 되고, 무한 경쟁을 해도 결국 늙고 죽어야 합니다. 그런 삶은 성공해도 불행할 수밖에 없고, 그런 사람을 소인小人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과제는 짐승 같은 삶에서 벗어나 사람의 삶을 회복하는 것, 군자가 되는 것, 이것이 가장 큰 숙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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