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울 도수와 숙구지 도수

[종도사님 말씀]
道紀 135년 양력 2월 24일, 본부 조례

최덕겸(崔德兼) 성도는 누구인가?
새울 도수의 전도사다.
새울 도수에서 포교를 하는 사람,
이 세계에 진리를 전해주는 사람의 상징 모델이다.
상제님의 모든 사업은 덕으로 시작해야 한다,
덕이 커야 한다는 의미다.
그다음 신원일(辛元一) 성도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새울 도수가 지향하는 궁극의 목적,
즉 천하통일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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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두리(德斗里)에 담긴 뜻


7절을 보면, 날이 새어 보름날이 되자 신원일 성도를 데리고 백암리로부터 새울에 이르신다. 후천 오만년 상제님 대학교 도수를 맡은 김경학 성도의 집에서 최창조 성도 집으로 오신 것이다.

그리고는 신원일 성도에게 "백암리에서 가져온 당성냥과 두루마리를 덕겸에게 전하라."고 하신다.

최덕겸(崔德兼) 성도는 누구인가? 새울 도수의 전도사다. 새울 도수에서 포교를 하는 사람, 이 세계에 진리를 전해주는 사람의 상징 모델이다.

그러니까 상제님께서 최덕겸 성도를 통해 선언하신 새울 도수의 본래 뜻은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다. 그 전도사가 바로 덕두리에 사는 최덕겸 성도다.

덕두리(德斗里)는 큰 덕 자에 말 두, 북두칠성의 두 자다. 즉 진리 전도, 조직 경영, 일꾼 교육 등 상제님의 모든 사업은 덕으로 시작해야 한다, 덕이 커야 한다는 의미다.

최덕겸(崔德兼) 성도의 존명을 보라. 문자 그대로 덕을 겸한다는 뜻이다. 일꾼에게는 덕을 겸하는 것이 첫 번째요, 가장 큰 일이다. 아무리 말을 잘하고 포교를 많이 해서 사람을 많이 살렸어도, 천록 헌성을 많이 했어도 덕이 부족하면 큰 자리를 못 간다. 큰 인물로 쓰이질 못한다는 말이다.


신원일 성도의 함자에 담긴 뜻


그다음 신원일(辛元一) 성도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새울 도수가 지향하는 궁극의 목적, 즉 천하통일을 상징한다.

신원일(辛元一) 성도의 존명에서 신(辛) 자는 가을의 정신인 수렴, 완성, 열매, 성숙을 상징한다. 으뜸 원(元)에 한 일(一) 자, 이것은 천하통일, 인간 역사의 만만세를 뜻한다.

조선은 제후국이라고 해서 '천세천세천천세(千歲千歲千千歲)!'라 하고, 중국은 만승천자국(萬乘天子國)이라 하여 '만세만세만만세(萬歲萬歲萬萬歲)!'라고 했다. 신원일 성도의 원(元) 자, 일(一) 자는 바로 이 '만세만세만만세(萬歲萬歲萬萬歲)!'를 뜻한다. 즉 천지 역사가 무궁토록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상제님께서 일찍이 천자부해상 도수를 보실 때, 신원일 성도에게 "원일은 태전에 가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라."고 하신 바 있다. 신원일 성도의 존명 그대로 이 태전에서 뜻이 성취된다. 천지역사가 바로 여기에서 열매를 맺고 통일이 된다.

열매와 통일! 이것이 바로 신(辛)이라는 성과 원(元) 자, 일(一) 자라는 함자에 담겨 있는 근본 뜻이다.


태을주 포교의 출발, 시천주(侍天主)


8절을 보면 상제님께서 신원일 성도에게 '백암리에서 가져온 당성냥과 두루마리를 최덕겸 성도에게 전하라.'고 하신다. 당성냥은 무엇인가? 당성냥은 을 상징한다. 그리고 두루마리는 문명을 상징한다. 그 두루마리를 펴니까 태을주(太乙呪)가 있다.

숙구지 도수에서도, 상제님께서 숙구지 도수의 전도사, 숙구지 도수가 지향하는 성숙한 일꾼, 인존을 상징하는 전태일에게 봉서를 하나 주셨다. 가서 펴 보니까 태을주다.

그러니까 상제님 천지사업의 지도자의 심법, 그 삶을 본받아 지구촌에 진리를 전하는 일꾼들은 최덕겸, 신원일 성도와 전태일이라는 양반처럼 태을주를 중심으로 포교를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신앙의 출발은 새울 도수에서 전하는 핵심 뜻, 시천주다. 상제님을 제대로 잘 모시는 것이다.

내가 상제님을 잘 모시면, 모실 시(侍)자가 제대로 되면 내가 바로 증산 상제님의 심법과 기개와 하나 되어 그 경계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숙구지 도수는 어떻게 열리는가


전태일이 태을주를 읽었더니 하룻저녁에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따라 읽었다. 사실 이것은 개벽 실제상황의 문턱으로 마악 들어가는 급박한 상황, 그런 경계에서 인사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 상제님께 와서 아뢰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하룻저녁에 태을주를 다 따라 읽습니다."하고. 그러자 상제님께서, "이는 문공신(文公信)의 소위라. 숙구지는 곧 수(數) 꾸지라. 장래 일을 수놓아 보았노라. 아직 시기가 이르니 그 기운을 거두리라."고 하셨다.

문공신 성도는 진주 도수를 맡은 분 아닌가. 열다섯 수, 십오진주 도수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문공신 성도는 신명계에서 진주 도수를 맡은 분이다. 실제 숙구지 도수는 인사로서 십오진주 도수를 맡은 그 주인공이 여는 도수다. 다시 말해서 십오진주의 숙구지 도수라는 말이다.

'숙구지는 수 꾸지다, 수를 놓아 보았다.' 앞으로 개벽을 할 때 몇 사람이 태을주를 읽는지 수를 놓아보았다, 그런데 아직 시기가 이르니 기운을 거둔다는 말씀이다.

상제님께서는 숙구지 도수의 기운을 확 열어놓고 거두셨다. 이것이 실제 인간 역사에서는 어떻게 열리는가? 일꾼에 의해, 성사재인(成事在人)의 과정을 통해 열린다. 그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이것을 잘못 알면, '가만히 있어도 된다. 때가 되면 다 태을주를 따라 읽는다.' 이런 착각에 빠지게 된다.

절대로 그냥 되는 게 아니다. 태을주를 읽도록 씨를 뿌려놔야 한다. 진리의 씨를 뿌려서, 그 사람들이 책을 보고 진리를 알아서, '아, 개벽이 오는구나. 태을주를 읽어야 되는구나.' 이렇게 아는 것이다. 숙구지 도수의 전도사 전태일처럼, '아, 태을주를 읽어야 사는구나. 개벽해서 다 죽을 때, 천지추살로 다 죽는 괴병이 일어날 때, 지축이 설 때, 그 위급한 상황에서 태을주를 읽어야 살아남는구나. 살고 잘되기 위해서는 증산도 책을 읽어야 되는구나. 상제님 신앙을 해야 되는구나.' 이런 기초적인 깨달음을 얻는다.

따라서 선천 역사를 마무리 짓고 후천 오만년 역사를 여는, 작게는 9년 천지공사를 끝마무리 짓는다는 원론적인 뜻으로 볼 때, 우리가 바로 전태일이라는 전도사가 돼야 하고, 최덕겸이라는 전도사가 돼야 하고, 최창조 성도의 함자 속에 들어 있는 정신, 도기(道氣), 그 진리 생명을 열 수 있는 전도사가 되어야 한다.

항상 덕을 품고 다니고 항상 하나로 가는, 그리고 항상 모든 것을 번창하게 하고 조직을 성장시키는, 그리하여 진정 천지의 복을 받는 상제님 진리의 전도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