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바뀐다 하더라도 바뀔 수 없는 상제님 진리

[태상종도사님 말씀]

하늘이 바뀐다 하더라도 바뀔 수 없는 상제님 진리



도기道紀 135년 5월 4일(수),
제126주기 태모님성탄치성 도훈, 태을궁


천지에 정해진 이치


오늘은 내가 천지의 정리定理, 천지에 정해진 이치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려고 한다. 다시 말해 자연 섭리, 우주 원리, 역천불변易天不變하는, 하늘이 바뀐다 하더라도 다시 변하지 않는, 바뀔 수 없는 그런 진리에 대해 전해 주려고 한다.

천지에서 정해진 이치라 하는 것은 우주년이 억만 번 바뀐다 하더라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자연 섭리는 다시 변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증산도甑山道는 증산 참 하나님, 증산 상제님의 진리를 집행하는 단체다. 상제님 진리는 자연 섭리요, 자연 섭리는 상제님의 진리다.

봄에 물건 내고 가을철에 죽이는 것은 천지의 이법이다. 천지라 하는 것은 천지의 목적이 있어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이부시周而復始해서 둥글어 간다. 우주년도 똑같은 자연 섭리, 천지에서 정해진 이치대로만 둥글어 간단 말이다.

천지 이치는 억만 분지 1프로도 바뀔 수가 없이 그렇게 정해져 있다. 다시 말해서 천지는 생장염장生長斂藏을 틀로 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봄에 물건 내고 여름철에 기르고 가을에 결실을 하고 겨울에 폐장을 하는 것이다. 금년도, 명년도, 10년 전도, 100년 후도, 억만 년 후도 그렇게만 둥글어 간다. 무슨 재주로 그걸 바꾸겠는가?

그러면 천지의 목적}이라는 것은 뭐냐? 일 년, 지구년도 춘생추살春生秋殺을 하고, 우주년도 춘생추살을 한다. {{우주 원리를 묶어서 말하면 봄에 물건 내고 가을철에 죽이는 춘생추살이다. 다시 말해 봄에 물건 내서 여름철에 길러서 가을에 그 진액을 전부 뽑아 모아서 열매를 맺는다. 통일을 해서 알맹이를 맺는 것이다. 가을에 알맹이를 맺어 놓고서 겨울에 폐장을 한다. 다 죽여 버린다. 다음 새해가 되면 봄철에 다시 물건을 낸다. 그게 지구가 태양을 안고 한 바퀴 돌아가는 지구년이다.

우주년도 역시 지구년과 똑같은 방법으로 둥글어 간다. 지구년은 초목 농사를 짓고 우주년은 사람 농사를 짓는다. 사람 농사를 짓는 것도 지구년에 초목 농사를 짓는 것과 같이 똑같은 방법으로, 그런 이치를 바탕으로 해서 주이부시周而復始한다.

그런데 천지에서 사람 농사 지은 것을 결실할 때, 사람이 천지를 대신하여 집행한다. 천지는 말도 없고 수족도 없고, 대자연 섭리는 진리 그대로만 둥글어 간다. 천지의 열매를 누가 따 담느냐? 누가 집행하느냐? 사람이 천지를 대신해서 집행한단 말이다. 천지에서 사람 농사를 지어서 이번에 그 알갱이를 추수하는데 그것을 사람이 한다. 상제님 진리를 집행하는 대행자代行者, 대역자代役者는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천지를 대신해서 그 일을 집행하기 위해 증산도를 신앙하는 것이다.

선천에서 후천으로 건너가는 생명의 다리


내가 야박한 소리를 하기 싫어서 이해가 되도록, 좋게 이야기를 하는데 천지에서 개벽을 하는 때에 상제님을 믿어서 상제님 진리로써 죽을 세상에 산다. 개벽하는 세상에 살아남는다는 말이다.
증산도 진리, 상제님의 진리를 한마디로 묶어서 말하면 개벽 사상이다. 상제님 9년 천지공사의 총결론이 의통醫統이다. 개벽 때 사람을 살려서 통일하는 것이다. 선천 역사를 누구에게 갖다 맡겨도 상제님이 천지공사를 보신 그런 방법으로 사람을 건지고, 신명도 해원시키는 수밖에 없다. 신명을 해원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천지공사 틀을 짜는 수밖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그래서 판이 그렇게 짜인 것이다.

그것을 묶어서 말하면 선천先天에서 후천後天, 봄·여름 세상에서 가을·겨울 세상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 시간대는 개벽을 하는 때, 금화교역金火交易을 하는 때다. 여름, 불[火] 세상에서 가을, 금金 세상이 된다. 화극금火克金 해서 개벽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으로 토土가 매개를 해서 가을 금 세상으로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매개하는 토가 바로 10미토未土, 상제님이시다. 상제님이 불을 수용해서 거기서 토생금으로 다음 세상을 열어 주시는 것이다.

상제님은 서신사명西神司命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다음 세상으로 넘어가는 생명의 다리를 놓아 주셨다. 신미辛未, 10토로써 선천 춘하春夏 세상에서 후천 추동秋冬 세상으로 건너가는 생명의 다리를 연결해 놓으셨다.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상제님의 생명의 다리를 타고서만 다음 세상을 가게 돼 있다. 그게 천지에서 정해진 진리다. 이것은 개인 강증산 상제님의 진리라기보다 천지의 이법이 그렇게 되어 있단 말이다. 만유 생명은 천지의 진리에 수용당해서 왔다 가는 것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이 우주년 금화교역기에는 그런 정해진 이치대로만 되는 것이다. 먼저 우주년도 그러했고, 다섯 번 전 우주년도 그러했다. 이번에도 그렇고, 앞으로 다섯 번, 열 번 그 우주년에도 역시 그러한 정리대로 된다.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천지 이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알기 쉽게 다시 강조하면 오늘도 동쪽 그 자리에서 태양이 나왔고 어저께 떨어진 그 서쪽으로 해가 떨어진다. 작년에도 춘하추동 사시가 있었고 금년에도 그렇고 다가올 미래에도 그렇다.
천지의 이치라는 것은 사람이 거역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천지 이법이라는 것이 저 위해서 생긴 게 아니다. 만유 생명은 천지 진리 속에 수용을 당해서 그렇게 왔다 간다. 저 잘난 척을 해도 소용없고 천지에 수용당해서 좋게, 바르게 살아야 천지신명들한테 도움도 받고 세상 사람들한테도 도움을 받는다.

각 문화권에서 찾아 온 바로 그 상제님


천지에서 사람 농사를 지어서 사람 결실을 하는데, 이번에 상제님 일꾼들이 그 일을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3천 년 전 석가모니가, ‘앞으로 미륵 부처가 알맹이 진리를 가지고 나온다.’고 했다. 석가모니가 자기 아들보고도 “미륵불을 믿어라. 내 진리가 다가 아니다.”라고 했다. 기독 사회에서 예수가 “내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가 장차 오신다.”라고 했다. 사도 요한이 “백보좌 하나님이 오신다.”라고 했다. 또 유가에서는 옥황상제를 찾았다. 바로 그분이 우리 증산 상제님이시다. 그네들 문화권이 서로 달라서 그렇게 달리 호칭했지만 바로 상제님 한 분을 그렇게 지적한 것이다. 우주의 주재자 하나님, 상제님이 그런 하나인 열매기 이념, 총체적인 이념, 정치⋅종교⋅경제⋅문화⋅사회가 하나인 알맹이 문화, 통일 문화를 들고 나오시는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다 상제님의 그 알맹이 진리를 위해서 모인 것이다. 이 진리는 가치관으로 해서 인류 역사에 가장 좋은 진리다. 그 진리에 매달려야 개벽철에 살 수가 있다. 그러면 내가 사는 성스러운 진리로 나도 살고, 남도 살려 주고, 가족도 살려야 할 것 아닌가. 세상의 선량한 사람도 다 상제님 진리를 갈망하고 있다.

사람이라는 대의명분大義名分에 입각해서도 사람을 많이 살려야 할 것 아닌가. 지나간 세상에도 성자聖者는 봉사를 많이 한 사람이었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많이 봉사한 사람이 성자가 됐다. 우리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전 인류를 위해서 봉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상제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그러면 상제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느냐? ‘시어간종어간始於艮終於艮’이라. 이 하늘이 열린 후로 우리나라에서 처음 인류 문화가 열렸다. 5,700년 전에 태호복희씨太昊伏羲氏가 시획팔괘始劃八卦, 팔괘를 처음 그었다. 1, 3, 5, 7, 9는 양이요 2, 4, 6, 8, 10은 음이라. 무극無極이 생태극生太極하고 태극이 생양의生兩儀하고 양의가 생사상生四象하고 사상이 생팔괘生八卦해서 팔팔은 육십사, 육십사괘六十四卦가 나왔다. 그게 인류 문화의 모태다. 그걸 바탕으로 해서 각색 종족, 혈통들이 자기 나름대로 문화를 계발했다.

우리나라는 인류 문화의 모태가 된다. 알기 쉽게 말해서 여기서 처음 꽃이 피었단 말이다. 문화의 꽃이 우리나라에서 피었기 때문에, 열매도 꽃 핀 데서 여물 것 아닌가. 꽃이 여기서 피었기 때문에 열매도 여기서 여문단 말이다.

그래서 상제님이 열매기 진리를 가지고 우리나라에 오신 것이다. 그것은 신인神人이 합일하는 통일 문화다. 사람은 신명을 만나야 되고 신명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앞 세상은 신인이 합일해서 백성까지도 백성 노릇을 할 만한 도통을 다 한다. ‘시천주侍天主 조화정造化定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 하나님을 모시고 조화를 정하니 영세 만년토록 만사를 아는 것을 잊지 못한다는 그런 열매기 문화다. 그것은 ‘불점이지길흉不占而知吉凶하고 불학이능문장不學而能文章’ 하는, 점치지 않고도 좋고 그른 것을 알고 배우지 않고도 능히 문장이 되는 그런 문화다.

가을철이 되면 무명지초無名之草, 이름 없는 풀도 다 열매, 씨알을 맺는다. 종자를 여물고 싶어서 여무는 게 아니다. 천지 이치가 가을철에는 다 씨를 맺게 해 준다. 그래서 그 씨가 다음 해 봄이 되면 다시 새싹을 낸다. 그렇게 해서 여러 천 년, 여러 만 년을 지금까지 계계승승해서 내려왔다.

개벽기에 사는 이치


그동안 선천에는 상극이 사배司配해서 인간 두겁을 쓰고 온 사람치고 자의自意대로 살다 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다 타의에 의해서 죽어 넘어갔다. 선천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 그 틈바구니에서 역사적 인물들은 다 원신寃神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 원한을 안고 죽었다. 그래서 상제님 말씀대로 원신과 역신이 천지에 가득하기 때문에 신명들부터 먼저 해원을 시켜야 앞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 수가 있다.

선천 역사의 틀, 판도가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 온다 하더라도 증산 상제님이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보신 그런 방법밖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단 말이다. 그렇게 해원解寃을 시켜야 상생相生도 된단 말이다.

가을철은 원시반본原始返本을 하는 때다. 가을에는 만유 생명이 다 제 모습을 찾는다. 봄철에 각색 곡식을 심어 놓으면 가을철에 가서 제 모습을 찾는다. 콩 심으면 콩 열매를 여물고, 팥 심으면 팥이 생겨나고, 깨를 심으면 거기서 깨알이 생겨난다. 가을은 그렇게 원시반본을 한다. 백 번도, 천 번도, 만 번도 가을철이 되면 그렇게 원시반본을 한단 말이다. 그것이 정해진 이치다. 진리라 하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이번에는 자손이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면 5천 년 전, 6천 년 전 그 처음 시조 할아버지서부터 신명도 다 죽어 버린다. 자손이 못 살았는데 무슨 재주로 그 조상 신명들이 살 수가 있나? 천 년, 오백 년 묵은 고목나무도 수냉이 하나라도 있어야 그 나무가 살아난다. 이파리 하나 없이 다 쥐어뜯어 놓으면 고사枯死하고 만다. 숨구멍이 막혀서 죽어 버린단 말이다.

비록 온전치 못한 자손이라도 살아남아야 그게 숨구멍이 돼서 그 조상신들이 살아남을 수가 있다. 천지도 일월이 아닐 것 같으면 빈껍데기요, 일월도 사람이 아닐 것 같으면 빈 그림자다. 사람이 천지일월의 알맹이다. 천지에서 사람 농사를 지어서 이번에 사람 개벽을 하는데 그 주체가 바로 사람이다.

일꾼의 자세


우리 신도들은 신앙을 하면서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주인 정신을 가져야 된단 말이다. ‘종일통곡終日痛哭에 부지不知 하何마누라 상사喪事’로, 내가 온종일 울고도 누구 때문에 울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을 차리라는 것이다.

‘물유본말物有本末하고 사유종시事有終始하니 지소선후知所先後면 즉근도의則近道矣리라.’ 본말本末과 종시終始를 잘 알아야 한다. 먼저 할 일이 있고 뒤에 할 일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그 사람은 두서를 모른다.’라는 말을 한다. 두서頭緖를 모르고 일하면 만날 허둥지둥하고 개갈이 안 난다.

포교하기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정성만 있으면 백출기계百出奇計라. 온갖 기이한 꾀, 교묘한 정책을 낼 수가 있다. 정성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다.

상제님이 “세상이 막 가르쳐 준다.”라고 말씀하셨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때를 알 수가 있다. 지금은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다. 급한 것이 지금 문턱에 걸려 있다. 또 ‘초미지급焦眉之急’이라. 눈썹에 불이 붙었단 말이다. 눈썹에 불이 붙은 것 같은 급박한 상황이다. 모르면 오히려 편안한 것이다. 철학이나 연구하고 딴전이나 보는 것이다. 그러나 한 것만큼만 차례가 간다. 절대 더도 덜도 없다.

내가 마지막으로 상제님 성구로써 마무리 지어 주겠다.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이요 청풍명월금산사淸風明月金山寺라.”(도전道典 5:306:6) “이 일은 남조선 배질이라. 혈식천추血食千秋 도덕군자道德君子의 신명이 배질을 하고 전명숙全明淑이 도사공이 되었느니라. 이제 그 신명들에게 ‘어떻게 하면 천추에 혈식을 받을 수 있느냐?’ 하고 물어보니 모두 ‘일심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한다.”(도전道典 6:83:4~5) 일심一心, 시공을 통한 일심이다.

“일심만 가지면 못 되는 일이 없느니라.”(도전道典 8:52:2) “인간의 복록을 내가 맡았으나 태워 줄 곳이 적음을 한하노니 이는 일심 가진 자가 적은 까닭이라.”(도전道典 9:1:7~8)라고도 하셨다. 누구도 일심을 가지면 유루遺漏 없이, 하나도 빠짐없이 한 것만큼 고루 태워 주신다는 것이다. 또 “일이 안 되는 것을 한하지 말고 일심 못 가진 것을 한해라.”라는 말씀도 있다. 결론적으로 일심을 못 가졌기 때문에 일이 안 되는 것이란 말이다. 남에게 왜 의뢰를 하려고 하나? 내 힘을 남에게 빌려줘야 되지 왜 남에게 의뢰를 하는가? ‘남아가 영사寧死이언정 남의 말 궁둥이는 되지 말라.’고, 왜 남에게 의존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지금은 여남동권女男同權도 부르짖는 세상이다. 이 좋은 세상에, 호풍환우呼風喚雨할 수 있는, 세상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의롭게 살면 천지신명이 옹호해 준다. 천지신명한테 보호를 받는 사람이 되란 말이다. 언제고 죽을 준비를 하고 살아도 천하사를 하는 사람은 신명들이 붙어서 옹호해 준다. 그러니 어디를 가든 정의롭게 살아라. 정의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에는 정의보다 더 무서울 것이 없다. 이것을 꼭 명심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