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모신 종도사님 | 그분의 곁에서 바라본 천하사 심법
[종도사님 선화 특집]
강한진 / 본부도장
종도사님의 삶을 증언해 달라는 요청을 처음 받았을 때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분의 삶을 저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컸습니다. 하지만 종도사님을 보내 드린 지금, 제가 곁에서 보고 느낀 모습들이 우리 도생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는 2010년 본부로 발령받아 10년 동안 종도사님을 가까이에서 모셨습니다. 평범한 한 인간이 진리의 태양과도 같은 분을 곁에서 모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시간은 제 삶에서 다시 얻기 어려운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가까이에서 뵌 종도사님은 무엇보다 효심이 깊으셨습니다.
평소에 종도사님과 태상종도사님은 친구 같은 부자지간이셨습니다.
종도사님께서는 태상종도사님의 옥체가 미령하실 때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찾아뵙고 불편하신 곳은 없는지 살피셨습니다. 곁에서 모시는 도생들에게도 세세하게 당부하시며 정성을 다해 보살펴 드리셨습니다.
태상종도사님께서 어천하신 뒤에도 그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디를 가시든 태상종도사님의 영체를 모신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셨고, 끼니때마다 상식을 올리고 잠자리까지 마련하셨습니다.
산책을 나가실 때도 태상종도사님께서 쉬실 자리와 드실 음료를 준비하셨습니다. 종도사님은 마음으로 단 한순간도 태상종도사님과 떨어져 계신 적이 없었습니다. 인류 창세 역사와 원형 문화를 밝히기 위해 세계 곳곳을 답사하실 때에도 언제나 그 정성을 함께하셨습니다.
종도사님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디를 가시든, 설령 새벽에 숙소에 도착하실 때라도 목욕재계하시고 수도복을 갖춰 입으셨습니다.
바닥에 깨끗한 천이나 수건을 정갈하게 펴고 청수를 모신 뒤 사배심고를 올리시고는 한참을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답사 중 영적인 의미가 있는 장소나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면 잠시 멈추어 기도를 올리고 주문을 읽으셨습니다. 돌이켜 보면 종도사님께서 시간을 허투루 보내시는 모습을 저는 거의 본 기억이 없습니다.
뜨겁게 한평생을 사신 분이셨지만 정작 식사는 늘 식은 음식을 드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식고를 올리시는 데 10분, 20분, 때로는 30분이 걸렸습니다. 댁에서는 업무를 보시느라 한두 시간이 지난 뒤에야 식사를 하시는 날도 적지 않았습니다. 해외 순방 때 미국의 도생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도생을 가까이 부르셔서 종도사님과 함께 배우자의 상식上食(고인께 식사를 올리는 의례)을 올릴 수 있도록 배려도 해 주셨습니다.
종도사님께서 문득 눈을 뜨시고는 “왜 다들 안 먹고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종도사님께서 안 드시니 아무도 못 먹고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리면, 그제야 웃으시며 “어서 들어.” 하시고 먼저 수저를 드셨습니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장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장면 속에는 자신의 식사보다 상제님과 태모님을 비롯한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리시는 종도사님의 정성이 있었고, 그런 종도사님을 우러러 기다리는 일꾼들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 때문에 식사를 못 하고 기다리는 도생들에게 미안해하시며 멋쩍게 웃으신 뒤 서둘러 수저를 드시는 따뜻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그런 작은 장면 하나하나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세계 원형 문화 답사를 다니실 때면 손바닥만 한 작은 노트를 열 권, 스무 권씩 챙겨 가셨습니다. 현지 가이드의 문화 해설을 끊임없이 적고, 때로는 그림까지 그려 가며 기록하셨습니다.
『도전』 성편을 위한 답사를 가서 큰 노트에 증언자의 말씀을 받아 적으실 때는 한자리에서 세 시간, 네 시간씩 몇십 페이지에 이르는 내용을 기록하셨는데, 손이 저려 더 이상 쓰기 어려울 때까지 펜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답사 중 비가 오는 길을 걸으실 때도 종도사님의 손에는 노트가 들려 있었습니다. 걸으시면서도 지난 답사의 기록을 다시 살펴보거나, 눈앞에 보이는 새로운 사실을 기록하셨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보시든 그것을 진리와 인류 원형 문화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고민하고 또 기록하셨습니다.
식당에 가셔도 늘 곁에는 노트와 책이 놓여 있었습니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늘 책을 보시고 줄을 긋거나 기록하신 노트를 확인하셨으며 때로는 눈을 감고 묵상을 하셨습니다. 화장실에 다녀오실 때조차 책이나 자료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습니다.
늦은 밤 답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시면 주요 도정 현안과 직접 결재하셔야 할 사항을 보고받으셨고, 시간이 남으면 국내외 주요 뉴스를 주무시기 전까지 들으셨습니다.
돌아보면 종도사님의 일상은 진리와 문화 사업을 떠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지역을 답사하실 때에는 반드시 그 지역의 대표 박물관과 서점을 일정에 넣으셨습니다.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원형을 가능한 한 깊이 이해하고자 하셨습니다.
특히 서점에 가시면 무척 즐거워하셨습니다. 한번 들어가시면 좀처럼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끼니를 잊은 채 몇 시간 동안 책을 살피고, 그 가운데 문화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골라 몇 상자씩 구입하시곤 했습니다. 사고 싶은 책을 모두 살 수 없으니 표지만 사진으로 남겨 두신 책도 수천 권에 이를 것입니다.
선천 문명의 진액을 모아 진리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문화 원전과 세상의 지식을 살펴보셨는지 몇 마디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녹취팀을 운영하며 확인한 것만 보더라도 뉴스, 역사, 건강, 과학, 의학, 예언, 자기 계발 등 종도사님께서 직접 보시다가 표시해 두고 녹취를 지시하신 자료가 지난 5년 동안 5,600건이 넘습니다.
TV를 보시든 유튜브를 보시든 그 안에서 진리와 문화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을 찾고 자료를 모으셨습니다. 어떻게든 세상의 문화 정수를 취해 도생들에게 전해 주려는 일념이셨습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나 〈개벽 북콘서트〉를 준비하실 때면 수십 일 동안 원고를 준비하셨습니다.
수십 시간 분량의 강연 원고를 직접 불러 주시고, 콘서트 당일 아침까지 내용을 직접 수정하고 다시 불러 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준비하신 자료가 너무 많아 실제 강연에서는 3분의 1도 소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현장에서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실무진이 난감해하는 일도 생겼습니다.
곁에서 실무를 맡은 사람으로서 때로는 힘에 부칠 때도 있었고, ‘왜 이렇게까지 하실까.’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보면 종도사님께서는 언제나 백척간두百尺竿頭에 홀로 서 계신 듯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결국 그 모든 열정과 절박함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는 종도사님께서 언제까지나 곁에서 지도해 주시고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주시기에 ‘조금만 천천히 가시면 안 될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이런 생각만 남습니다.
‘종도사님께서는 그렇게 질풍처럼 내달릴 수밖에 없으셨구나.’
종도사님을 모셨던 시간들을 하나씩 되짚다 보면 상제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이렇듯 어렵게 받아 난 몸으로 꿈결같이 쉬운 일생을 어찌 헛되이 보낼 수 있으랴.”(도전道典 2:119:3)
어떤 날은 새벽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곁에서 모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종도사님의 삶에는 헛되이 흘려보낸 시간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종도사님께서는 꿈속에서도 쉬지 않으셨던 것은 아닐까.’
이런 몇 마디 말로 그분의 삶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종도사님은 참으로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누구를 만나시든 자신을 낮추시며 반갑고 정겹게 맞아 주셨고, 일꾼 한 사람도 쉽게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잘못한 사람이 있어도 다시 세워 쓰기 위해 여러 번 기회를 주셨습니다.
때로는 도업을 위해 크게 호통치고 엄하게 경책하셨지만, 항상 그 뒤에는 “누가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하시며 위로도 해 주셨습니다. 그러한 모습은 오직 일꾼의 성장과 상제님 태모님의 천지 살림, 도업을 위함이셨습니다.
일상에서는 해맑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 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종도사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눈앞에 선연합니다.
성혼하시기 전의 종도사님에게서는 때때로 깊은 외로움이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일꾼들과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신 뒤 다시 홀로 대문을 나서셨습니다. 동네를 한참이나 돌고 또 도셨습니다. 그러다 제게 “내가 친구가 없어 너에게 이런 말을 한다.” 하시며 마음속 말씀을 몇 마디 건네신 뒤 다시 한참을 걸으셨습니다. 그런 날이면 종도사님 곁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습니다.
종도사님은 참으로 천하사에 최선을 다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종도사님께만 매달리는 것은 오히려 염치없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평생을 다 바쳐 상제님, 태모님의 진리를 이 땅에 세우시고, 상생방송과 진리 서적 편찬, 수많은 진리 콘서트, 태라천궁 건립과 ‘후천 조화신선 도통 수행법’ 전수에 이르기까지 후천 문화를 열어 갈 수많은 기반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토록 자신을 불태우신 분께 다시 “더 해 주세요. 더 고생해 주세요. 더 내려 주세요.”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야말로 일꾼들이 성사재인成事在人을 실현할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종도사님이 그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우리가 사모님을 모시고, 종도사님께서 걸어가신 삶을 닮아 그 뜻을 현실 속에서 이루어 가야 할 때입니다. 그것이 곧 천지일월 부모님의 뜻을 받드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종도사님께서는 수시로 도정에 대한 고민과 걱정으로, 때로는 수행으로 밤을 지새우셨습니다.
“수행에 참여한 도생들 얼굴을 보는 게 낙樂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며 여러 화면을 한꺼번에 띄워 놓고 수행에 참여한 도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눈과 가슴에 담으려 하셨습니다.
종도사님께서 마침내 남은 일을 사모님과 우리 일꾼들에게 맡기고 선화하셨습니다.
저는 종도사님께서 천상에 계신 지금도 편히 쉬고만 계시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제가 종도사님을 모시며 갖게 된 신앙적 믿음입니다. 상제님과 태모님, 정수부님과 김수부님, 태상종도사님과 도모님을 모시고, 천지신명과 더불어 천지 대업을 위해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실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태모님, 그리고 어천하신 뒤 김형렬 성도에게 내려 주신 시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이 말씀을 전하시며 그 믿는 마음에 어김이 없을 것이라 강조하셨습니다.
도생님 여러분.
종도사님을 모시던 그 마음으로 이제는 함께 사모님을 모시고, 종도사님을 그리워하는 그 마음으로 사모님을 더욱 잘 보필하며 도업을 집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부이신 종도사님을 진정으로 기리는 제자의 길이며 도생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사실 저 역시 아직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가슴 한가운데가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합니다.
종도사님께서 선화하신 뒤 어린 아들이 가끔 제게 말합니다.
“아빠, 종도사님이 보고 싶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그러나 그리움 속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종도사님께서 평생을 바쳐 보여 주신 일심과 정성, 기록과 공부, 기도와 수행, 그리고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이제 우리가 이어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종도사님께서 남기신 뜻을 받들고, 사모님과 함께 천지의 일을 이루는 천지보은天地報恩의 일꾼이 되겠습니다. 보은. ■
종도사님의 삶을 증언해 달라는 요청을 처음 받았을 때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분의 삶을 저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컸습니다. 하지만 종도사님을 보내 드린 지금, 제가 곁에서 보고 느낀 모습들이 우리 도생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는 2010년 본부로 발령받아 10년 동안 종도사님을 가까이에서 모셨습니다. 평범한 한 인간이 진리의 태양과도 같은 분을 곁에서 모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시간은 제 삶에서 다시 얻기 어려운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효심이 깊으셨던 종도사님
제가 가까이에서 뵌 종도사님은 무엇보다 효심이 깊으셨습니다.
평소에 종도사님과 태상종도사님은 친구 같은 부자지간이셨습니다.
종도사님께서는 태상종도사님의 옥체가 미령하실 때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찾아뵙고 불편하신 곳은 없는지 살피셨습니다. 곁에서 모시는 도생들에게도 세세하게 당부하시며 정성을 다해 보살펴 드리셨습니다.
태상종도사님께서 어천하신 뒤에도 그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디를 가시든 태상종도사님의 영체를 모신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셨고, 끼니때마다 상식을 올리고 잠자리까지 마련하셨습니다.
산책을 나가실 때도 태상종도사님께서 쉬실 자리와 드실 음료를 준비하셨습니다. 종도사님은 마음으로 단 한순간도 태상종도사님과 떨어져 계신 적이 없었습니다. 인류 창세 역사와 원형 문화를 밝히기 위해 세계 곳곳을 답사하실 때에도 언제나 그 정성을 함께하셨습니다.
구도의 표상이셨던 종도사님의 모습
종도사님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디를 가시든, 설령 새벽에 숙소에 도착하실 때라도 목욕재계하시고 수도복을 갖춰 입으셨습니다.
바닥에 깨끗한 천이나 수건을 정갈하게 펴고 청수를 모신 뒤 사배심고를 올리시고는 한참을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답사 중 영적인 의미가 있는 장소나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면 잠시 멈추어 기도를 올리고 주문을 읽으셨습니다. 돌이켜 보면 종도사님께서 시간을 허투루 보내시는 모습을 저는 거의 본 기억이 없습니다.
뜨겁게 한평생을 사신 분이셨지만 정작 식사는 늘 식은 음식을 드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식고를 올리시는 데 10분, 20분, 때로는 30분이 걸렸습니다. 댁에서는 업무를 보시느라 한두 시간이 지난 뒤에야 식사를 하시는 날도 적지 않았습니다. 해외 순방 때 미국의 도생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도생을 가까이 부르셔서 종도사님과 함께 배우자의 상식上食(고인께 식사를 올리는 의례)을 올릴 수 있도록 배려도 해 주셨습니다.

종도사님께서 문득 눈을 뜨시고는 “왜 다들 안 먹고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종도사님께서 안 드시니 아무도 못 먹고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리면, 그제야 웃으시며 “어서 들어.” 하시고 먼저 수저를 드셨습니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장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장면 속에는 자신의 식사보다 상제님과 태모님을 비롯한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리시는 종도사님의 정성이 있었고, 그런 종도사님을 우러러 기다리는 일꾼들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 때문에 식사를 못 하고 기다리는 도생들에게 미안해하시며 멋쩍게 웃으신 뒤 서둘러 수저를 드시는 따뜻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그런 작은 장면 하나하나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배움과 기록을 멈추지 않으셨던 이유

세계 원형 문화 답사를 다니실 때면 손바닥만 한 작은 노트를 열 권, 스무 권씩 챙겨 가셨습니다. 현지 가이드의 문화 해설을 끊임없이 적고, 때로는 그림까지 그려 가며 기록하셨습니다.
『도전』 성편을 위한 답사를 가서 큰 노트에 증언자의 말씀을 받아 적으실 때는 한자리에서 세 시간, 네 시간씩 몇십 페이지에 이르는 내용을 기록하셨는데, 손이 저려 더 이상 쓰기 어려울 때까지 펜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답사 중 비가 오는 길을 걸으실 때도 종도사님의 손에는 노트가 들려 있었습니다. 걸으시면서도 지난 답사의 기록을 다시 살펴보거나, 눈앞에 보이는 새로운 사실을 기록하셨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보시든 그것을 진리와 인류 원형 문화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고민하고 또 기록하셨습니다.
식당에 가셔도 늘 곁에는 노트와 책이 놓여 있었습니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늘 책을 보시고 줄을 긋거나 기록하신 노트를 확인하셨으며 때로는 눈을 감고 묵상을 하셨습니다. 화장실에 다녀오실 때조차 책이나 자료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습니다.
늦은 밤 답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시면 주요 도정 현안과 직접 결재하셔야 할 사항을 보고받으셨고, 시간이 남으면 국내외 주요 뉴스를 주무시기 전까지 들으셨습니다.
돌아보면 종도사님의 일상은 진리와 문화 사업을 떠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지역을 답사하실 때에는 반드시 그 지역의 대표 박물관과 서점을 일정에 넣으셨습니다.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원형을 가능한 한 깊이 이해하고자 하셨습니다.
특히 서점에 가시면 무척 즐거워하셨습니다. 한번 들어가시면 좀처럼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끼니를 잊은 채 몇 시간 동안 책을 살피고, 그 가운데 문화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골라 몇 상자씩 구입하시곤 했습니다. 사고 싶은 책을 모두 살 수 없으니 표지만 사진으로 남겨 두신 책도 수천 권에 이를 것입니다.
선천 문명의 진액을 모아 진리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문화 원전과 세상의 지식을 살펴보셨는지 몇 마디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녹취팀을 운영하며 확인한 것만 보더라도 뉴스, 역사, 건강, 과학, 의학, 예언, 자기 계발 등 종도사님께서 직접 보시다가 표시해 두고 녹취를 지시하신 자료가 지난 5년 동안 5,600건이 넘습니다.
TV를 보시든 유튜브를 보시든 그 안에서 진리와 문화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을 찾고 자료를 모으셨습니다. 어떻게든 세상의 문화 정수를 취해 도생들에게 전해 주려는 일념이셨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준비하셨던 진리 콘서트
〈환단고기 북콘서트〉나 〈개벽 북콘서트〉를 준비하실 때면 수십 일 동안 원고를 준비하셨습니다.
수십 시간 분량의 강연 원고를 직접 불러 주시고, 콘서트 당일 아침까지 내용을 직접 수정하고 다시 불러 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준비하신 자료가 너무 많아 실제 강연에서는 3분의 1도 소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현장에서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실무진이 난감해하는 일도 생겼습니다.
곁에서 실무를 맡은 사람으로서 때로는 힘에 부칠 때도 있었고, ‘왜 이렇게까지 하실까.’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보면 종도사님께서는 언제나 백척간두百尺竿頭에 홀로 서 계신 듯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결국 그 모든 열정과 절박함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는 종도사님께서 언제까지나 곁에서 지도해 주시고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주시기에 ‘조금만 천천히 가시면 안 될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이런 생각만 남습니다.
‘종도사님께서는 그렇게 질풍처럼 내달릴 수밖에 없으셨구나.’
종도사님을 모셨던 시간들을 하나씩 되짚다 보면 상제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이렇듯 어렵게 받아 난 몸으로 꿈결같이 쉬운 일생을 어찌 헛되이 보낼 수 있으랴.”(도전道典 2:119:3)
어떤 날은 새벽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곁에서 모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종도사님의 삶에는 헛되이 흘려보낸 시간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종도사님께서는 꿈속에서도 쉬지 않으셨던 것은 아닐까.’

따뜻한 지도자, 그리고 인간적인 모습
이런 몇 마디 말로 그분의 삶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종도사님은 참으로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누구를 만나시든 자신을 낮추시며 반갑고 정겹게 맞아 주셨고, 일꾼 한 사람도 쉽게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잘못한 사람이 있어도 다시 세워 쓰기 위해 여러 번 기회를 주셨습니다.
때로는 도업을 위해 크게 호통치고 엄하게 경책하셨지만, 항상 그 뒤에는 “누가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하시며 위로도 해 주셨습니다. 그러한 모습은 오직 일꾼의 성장과 상제님 태모님의 천지 살림, 도업을 위함이셨습니다.
일상에서는 해맑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 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종도사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눈앞에 선연합니다.
성혼하시기 전의 종도사님에게서는 때때로 깊은 외로움이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일꾼들과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신 뒤 다시 홀로 대문을 나서셨습니다. 동네를 한참이나 돌고 또 도셨습니다. 그러다 제게 “내가 친구가 없어 너에게 이런 말을 한다.” 하시며 마음속 말씀을 몇 마디 건네신 뒤 다시 한참을 걸으셨습니다. 그런 날이면 종도사님 곁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
종도사님은 참으로 천하사에 최선을 다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종도사님께만 매달리는 것은 오히려 염치없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평생을 다 바쳐 상제님, 태모님의 진리를 이 땅에 세우시고, 상생방송과 진리 서적 편찬, 수많은 진리 콘서트, 태라천궁 건립과 ‘후천 조화신선 도통 수행법’ 전수에 이르기까지 후천 문화를 열어 갈 수많은 기반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토록 자신을 불태우신 분께 다시 “더 해 주세요. 더 고생해 주세요. 더 내려 주세요.”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야말로 일꾼들이 성사재인成事在人을 실현할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종도사님이 그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우리가 사모님을 모시고, 종도사님께서 걸어가신 삶을 닮아 그 뜻을 현실 속에서 이루어 가야 할 때입니다. 그것이 곧 천지일월 부모님의 뜻을 받드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종도사님께서는 수시로 도정에 대한 고민과 걱정으로, 때로는 수행으로 밤을 지새우셨습니다.
“수행에 참여한 도생들 얼굴을 보는 게 낙樂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며 여러 화면을 한꺼번에 띄워 놓고 수행에 참여한 도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눈과 가슴에 담으려 하셨습니다.
종도사님께서 마침내 남은 일을 사모님과 우리 일꾼들에게 맡기고 선화하셨습니다.
저는 종도사님께서 천상에 계신 지금도 편히 쉬고만 계시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제가 종도사님을 모시며 갖게 된 신앙적 믿음입니다. 상제님과 태모님, 정수부님과 김수부님, 태상종도사님과 도모님을 모시고, 천지신명과 더불어 천지 대업을 위해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실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태모님, 그리고 어천하신 뒤 김형렬 성도에게 내려 주신 시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무어별시정약월 유기래처신통조
無語別時情若月이언마는 有期來處信通潮라
말없이 이별할 때의 정은 으스름 달빛처럼 애련한 것이언만, 다시 올 기약 있어 믿는 마음은 조수처럼 어김이 없을진저.
(도전道典 10:7:4, 10:84:15)
無語別時情若月이언마는 有期來處信通潮라
말없이 이별할 때의 정은 으스름 달빛처럼 애련한 것이언만, 다시 올 기약 있어 믿는 마음은 조수처럼 어김이 없을진저.
(도전道典 10:7:4, 10:84:15)
상제님께서는 이 말씀을 전하시며 그 믿는 마음에 어김이 없을 것이라 강조하셨습니다.
도생님 여러분.
종도사님을 모시던 그 마음으로 이제는 함께 사모님을 모시고, 종도사님을 그리워하는 그 마음으로 사모님을 더욱 잘 보필하며 도업을 집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부이신 종도사님을 진정으로 기리는 제자의 길이며 도생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사실 저 역시 아직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가슴 한가운데가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합니다.
종도사님께서 선화하신 뒤 어린 아들이 가끔 제게 말합니다.
“아빠, 종도사님이 보고 싶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그러나 그리움 속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종도사님께서 평생을 바쳐 보여 주신 일심과 정성, 기록과 공부, 기도와 수행, 그리고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이제 우리가 이어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종도사님께서 남기신 뜻을 받들고, 사모님과 함께 천지의 일을 이루는 천지보은天地報恩의 일꾼이 되겠습니다. 보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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