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문명을 여는 인생 승리자, 대우주 빛의 인간 (1)
[종도사님 말씀]
『도전』 문화 콘서트 도기 156. 2. 22(일). 서울은평도장

도약과 대변혁의 해
7개월 만에 이곳 은평도장에서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아침에 일찍 올라와서 주변에 있는 산에 올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잠시 운동도 하고 걸어 내려왔어요.
오늘 전할 말씀은 상제님, 태모님의 후천 5만 년 진리 원전인 『도전道典』에 실린 천지공사를 중심으로 해서 앞으로 인류가 맞이할 진실로 놀라운 새 세상 이야기, 새로운 빛의 문명 이야기입니다. 내가 오랜 세월 답사를 했습니다. 스스로 52년째 계속 답사를 하고 있어요. 한번 앉으면 두 시간 내지 세 시간씩 증언을 들으며 그 내용을 기록합니다.
올해 병오년, 서력으로 2026년은 천간天干과 지지地支가 이 우주의 태양을 상징하는 7화火입니다. 병丙도 7화이고 땅의 기운을 상징하는 오午도 7화입니다. 이 병오년은 지난 제1차 병란 개벽이 시작된 경자년으로부터 7년째가 됩니다. 7도수, 이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금년도 설을 즈음하여 신년사新年辭에서 전했듯이 이제 인류 문명의 위대한 도약과 함께 지난 선천 세상의 묵은 질서가 무너지는 상극 질서 해체라는 대변혁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도약과 묵은 질서 해체라는 새 역사 전진의 두 박자, 이중주二重奏의 대세, 그 틀을 잘 봐야 합니다.
그 대세를 알려면 먼저 5만 년 문화 원전 『도전』을 잘 보아야 합니다. 앞으로 잘 닦은 분들, 1만 2천 후천 도통 군자에게는 황금색 『도전』을 선물로 드릴 것입니다. 그러니까 희망을 가지고 한번 열심히 닦아 보세요.
삶과 죽음의 문제, 혼과 넋
인간의 삶에서 최종적인 문제는 죽음입니다. 죽음은 인생의 마지막에 맞이하는 피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결국은 내 생명이 정지되고 ‘두 사람’으로 나눠집니다. 나의 생명이 해체되면 ‘하늘 사람’과 ‘땅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사람의 혼과 넋이 분리되는 거예요.
혼魂은 하늘에 올라가서, 하늘에서 사는 영적 존재인 신神이 됩니다. 그리고 넋, 즉 백魄은 땅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하여 그 시신을 끌어안고 어머니 대지와 더불어 깊은 잠을 잡니다.
그런데 가정에서 부부간에 또는 가족 간에 아옹다옹하면서 살던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은 땅속에 들어가서 사는 넋에 있습니다. 혼은 좀 이성적이고 냉철한 면이 있고, 음의 영체인 넋은 좀 더 감성적이고 인간적인 면을 가지고 있어요.
만물은 죽음을 싫어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요. 나이가 70이 넘어 80이 되거나 90이 넘은 사람들은 ‘아, 이제 몇 년 안 남았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갈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자기 몸에서 본능적으로 느끼는 거예요.
인간의 노화와 죽음 뒤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죽음 이후 인간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우리가 죽으면 육신이 하나의 무생물로 돌아가므로 그것을 갖다 묻든지 화장을 하고 또 유골을 어디다 뿌리면 그걸로 끝나는 걸까요? 그렇게 단순한 것일까요? 동서고금의 성자, 현인, 철인, 현대의 고차원 첨단 문명을 이끄는 과학자, 심리학자, 영지주의자 들이 죽음에 대해 전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종교, 어떤 철인, 어떤 과학자도 여기에 대해서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한 것입니다. 그 답은 오직 증산도 『도전』에만 나옵니다.

김송환金松煥이 사후死後의 일을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는 혼魂과 넋魄이 있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혹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되느니라.” 하시니라. (도전道典 2:118:1~4)
‘사람이 죽어서 4대가 지나면 혼은 이렇게 바뀌고 넋은 이렇게 바뀐다.’는 상제님 말씀입니다. 이 우주의 하늘과 땅, 인간과 신의 세계를 다스리는 우주 주권자, 주재자로서 오직 상제님이 이 문제를 밝혀 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 진리의 최종 명제인 생사 문제에 대한 상제님의 이 말씀을 좀 더 깊이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본체 수학에 기반을 둔 AI 문명
오늘의 첨단 AI 문명은 궁극적으로 노동으로부터 해방을 가져올 것입니다. 이 AI 문명은 어떻게 흘러갈까요? 지구의 AI, 인공지능의 발전사에서 그 최종적인 정착 역, 터미널은 어디일까요? 이 문제는 이번에 발표한 신년사의 내용을 크게 넘지는 않을 것이고 거기에 대한 각론이 이제 나올 텐데요.
소위 말하는 현대 최첨단 인공지능人工知能(Artificial Intelligence) 즉 AI 문명은 홀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짝이 있습니다. 음양을 이루는 파트너가 있어요. 그것은 또 다른 AI로서 인간의 몸과 마음과 영 속에 깃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무궁한 지혜, 밝은 영성을 열어줍니다. 인간 속에 깃들어 있는, 또 대자연 우주 속에 깃들어 있는 이 자연지능은 원형지능原型知能(Archetypal Intelligence)입니다. 또 다른 AI인 것입니다. 인공지능에 대응하는 이 자연지능, 원형지능은 무궁한 신성지능神性知能인 것입니다. 무궁한 지혜의 세계에 들어가는 방법이 이렇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게 굉장히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서양 사람들이 음양이 뭔지 알고 싶다고 말합니다. 미국의 도장에 있는 우리 도생들도 음양을 좀 가르쳐 달라고 해요. 한 20~30 년 전에 미국 서점에 가서 ‘정치의 도’, ‘여자의 도’, 무슨 도 해서 책 이름에 ‘도道’를 많이 쓰는 것을 봤는데 그 도라는 게 무엇일까요?
그것을 우리는 태극으로 말합니다. 그 태극을 수로는 1로 나타냅니다. 모든 것은 ‘하나’에서 왔습니다. 모든 것의 근원인 그 하나는 무엇일까요? 진리 체험이라는 것은 이것을 깨닫는 거예요. 결론은 ‘우주 만유는 하나에서 왔다, 하나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무궁무진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르침을 시원스럽게 접할 수가 없는 거예요. 대학에 가서 철학을 공부하고, 종교와 신학을 연구해도 그 가르침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인도에 가서 요가를 하고 몇십 년을 닦아도, 수많은 구루Guru와 위대한 현인의 가르침을 들어도 잘 알 수 없습니다. 서양의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 인도 아슈람Ashram에 가서 온갖 스승들에게 배우고 관련 책을 보아도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상생문화연구소에서 연구하는, 인도 철학을 전공한 강 박사님이 수행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분이 인도에 가서 공부해 보았지만 해답이 안 나오더라고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여동생이 “오빠, 증산도를 신앙해 봐. 모든 진리는 거기에 있어.”라고 했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인도에 가서 공부하고 하는 말이 근사하죠. “무언가 하나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인도는 그 역사가 5천 년에서 한 1만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진리에 대한 목마름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현대 첨단 과학 문명은 0과 1을 근본으로 한 것입니다. 본체 수학, 소프트 수학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1은 우주의 직접적 본체인 태극太極입니다. 우리나라 국기에 태극이 그려져 있습니다. 우주 만유는 이렇게 상대성, 음과 양이라는 이중 구조, 그 둘이 일체 관계로 작동됩니다.
1은 우주의 직접적 본체인 태극太極입니다. 우리나라 국기에 태극이 그려져 있습니다. 우주 만유는 이렇게 상대성, 음과 양이라는 이중 구조, 그 둘이 일체 관계로 작동됩니다.

두 개의 본체, 체용관
지금 첨단 과학에서 AI 문명이 일태극一太極의 짝인 0을 가지고 왔습니다. 보통 무無나 허虛로 말하는 0을 가져온 것은 정말로 멋진 얘기 아니에요? 모든 수학의 근원은 천부경天符經과 하도河圖, 낙서洛書에 있습니다. 천부경의 기원은 1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하도는 5,500년 전에, 낙서는 4,300년 전에 나왔습니다. 이 하도와 낙서가 뭔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도서圖書’라는 말이 하도, 낙서에서 왔습니다. 하도와 낙서 끝 자를 따서 도서라 한 거예요. 옛날 왕실에서 하도와 낙서를 문명의 근원, 문명 탄생의 근원으로서 소중히 여겼습니다. 하도와 낙서를 흔히 ‘우주 창조의 설계도’라 합니다.
하도와 낙서는 열 개의 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천부경에서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을 말했듯이, 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일은 무에서 비롯합니다. 무 또는 허를 0으로 표현합니다. 이 0과 1을 대우주가 태어난 본래의 근거 또는 창조의 자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본체는 0과 1로서 둘인 것입니다.
본체는 태극인데 그 태극은 어디서 왔을까요? 무극無極에서 왔습니다. 이 둘은 체용體用 관계에 있습니다. 이런 관점을 체용관體用觀이라 합니다. 우리 몸에 체가 있으면 그걸 작동하는 일은 사지四肢가 합니다. 이 사지가 움직이는 몸놀림을 몸짓이라 합니다. 체용은 몸과 몸짓의 관계와 같습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몸짓은 마치 춤의 양식처럼 수백, 천, 만, 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 배달국 때에 제왕님 다음으로 ‘우주의 일인자’라 할 수 있는 신선 발귀리發貴理가 계셨습니다. 그분이 지은 시가 있습니다. “대일기극大一其極이여 시명양기是名良氣로다.” 우주의 무변광대한 그 하나, 그 지극함을 일러 양기良氣라 한다는 것입니다. 발귀리는 이 우주 조화의 빛의 에너지를 체용으로 얘기했습니다.
이 발귀리의 원본 말씀을 내가 한 5년인가 6년 전에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강독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과학관에 가서 답사한 내용도 강연 마지막 부분에 말했습니다.
선인仙人 발귀리發貴理의 송가頌歌
신시 시대에 선인 발귀리가 도를 통한 후 아사달에 와서 제천 행사를 보고 예식이 끝난 후에 찬송하는 글을 지었으니 그 글은 이러하다.
기문 왈
其文에 曰
대일기극 시명양기
大一其極이 是名良氣라
무유이혼 허조이묘
無有而混하고 虛粗而妙라
삼일기체 일삼기용
三一其軆오 一三其用이니
혼묘일환 체용무기
混妙一環이오 軆用無歧라
대허유광 시신지상
大虛有光하니 是神之像이오
대기장존 시신지화
大氣長存하니 是神之化라
진명소원 만법시생
眞命所源이오 萬法是生이니
일월지자 천신지충
日月之子오 天神之衷이라
이조이선 원각이능
以照以線하야 圓覺而能하며
대강우세 유만기중
大降于世하야 有萬其衆이니라
고 원자 일야 무극
故로 圓者는 一也니 無極이오
방자 이야 반극
方者는 二也니 反極이오
각자 삼야 태극
角者는 三也니 太極이니라
만물의 큰 시원[大一]이 되는 지극한 생명이여!
이를 양기良氣라 부르나니
무와 유가 혼연일체로 존재하고
텅 빔과 꽉 참이 오묘하구나.
삼(三神)은 일(一神)로 본체[體]를 삼고
일(一神)은 삼(三神)으로 작용[用]을 삼으니
무와 유, 텅 빔과 꽉 참(정신과 물질)이 오묘하게 하나로 순환하고
삼신의 본체와 작용은 둘이 아니로다.
우주의 큰 빔 속에 밝음이 있으니, 이것이 신의 모습이로다.
천지의 거대한 기[大氣]는 영원하니
이것이 신의 조화로다.
참생명이 흘러나오는 시원처요, 만법이 이곳에서 생겨나니
일월의 씨앗이며, 천신(상제님)의 참마음이로다!
만물에 빛을 비추고, 생명선을 던져 주니
이 천지조화 대각하면 큰 능력을 얻을 것이요
성신이 세상에 크게 내려 만백성 번영하도다.
그러므로 원圓(○)은 하나[一]이니
하늘의 ‘무극無極 정신’을 뜻하고,
방方(□)은 둘[二]이니
하늘과 대비가 되는 땅의 정신[反極]을 말하고,
각角(△)은 셋[三]이니
천지의 주인인 인간의 ‘태극太極 정신’이로다.
※발귀리發貴理 : 배달 5세 태우의 환웅 때의 신선. 뒷날 14세 치우천황 때의 신선인 자부선생은 발귀리의 후손이다. 성지聖地 태백산(백두산) 아래 사선각四仙閣이 있는데 4선四仙은 발귀리發貴理, 자부선인紫府仙人, 대련大連, 을보륵乙普勒이다. (이유립, 『커발한문화사상사』 2권, 24쪽)
0과 1을 근본으로 한 본체 수학
동양은 본체本體 수학을 근본으로 하지만 서양에는 하드Hard 수학이 발전했습니다. 하드 수학은 고도의 연산演算 작용에 응용됩니다. 양자 컴퓨터로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한순간에 처리합니다. 옛날에 100년 걸릴 것, 1년 걸릴 것도 그냥 뚝딱 하면 나옵니다. 하드 수학을 바탕으로 한 첨단 과학으로 인공지능을 발전시키는 것은 어려운 과업이지만 그 기능은 위대한 거예요.
그런데 동양의 본체 수학은 열 개의 수를 가지고 설명합니다. 우주는 어떻게 존재하며 인간은 어디서 온 것인지, 나와 대우주는, 무한 우주는 어떻게 하나가 되며 왜 일체가 돼야 하느냐 하는 것을 밝히는 수학이 본체 수학이에요. 이것을 일명 소프트Soft 수학이라 합니다.
이 소프트 수학의 힘과, 고도의 시간과 공간, 빅 데이터를 정확하게 계산해 내는 하드 수학의 파워는 정말 놀랍습니다. 하드 수학은 본체 수학의 0과 1에서 온 것입니다.

과학으로 다 알지 못하는 빛의 세계
그러면 동양에서 1만 년 이전부터 지향한 인간의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에게 있는 무궁한 신성과 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과학으로써도 AI 문명으로써도 다 알 수 없는 것, 진리의 본질적인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류가 수만 년 전부터 추구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역사학의 시야가 좁고 역사관이 비뚤어져서 신석기, 구석기를 논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양의 과학주의, 실증사학의 영향은 그런 경향을 심화시켰습니다. 그러나 근대로 넘어오면서 인간을 보는 관점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데카르트René Descartes(1596~1650)는 아주 뛰어난 프랑스의 과학자이자 철인이었습니다. 데카르트가 유럽을 돌면서 최종적으로 굉장히 재미난 얘기를 했잖아요. 그것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이라는 명언입니다. 데카르트가 사람을 물질과 정신으로 이원화시킨 기존 생각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선언한 이 명제는 그 이후 세계관의 변화에 큰 영향력을 미친 원천이 되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이 말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완벽한 예술품이 있습니다. 시노하라 세이에이篠原正瑛(1912~2001)라는 일본 철학자가 독일에 유학하고 거기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 사람이 1942년 9월에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재직하던 칼 야스퍼스Karl Jaspers(1883~1969) 교수를 찾아갔습니다. 두 사람은 인간의 죽음과 실존에 대해 대담을 나누었어요. 그때 야스퍼스가 서랍에서 사진 한 장을 내놓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리스의 인간적인 위대한 조각들, 로마의 기독교적 예술 양식을 자세히 보았지만 그것들을 훨씬 뛰어넘는 동양의 예술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멋진 말의 내용을 사회자가 한번 읽어 주세요.

사회자(권유미) : 선생과 나, 우리 두 사람은 가을의 고요한 조화를 깨뜨리지 않으려 말수를 아끼며 드문드문 대화를 이어 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모든 삶의 순간 속에서 죽음을 직시할 때 비로소 실존의 가장 깊은 심연에 닿게 되며 그때야말로 우리는 죽음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야스퍼스 선생은 “이것을 한번 보시지요.”라며 책상 서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내 앞에 놓아 주셨다. 어느 일본 서적에서 오려 낸 듯한 불상 사진이었다. 그 아래에는 일본어로 설명이 적혀 있었는데 광륭사의 미륵보살상 사진이었다.
제가 일본 경도京都(교토)에 있는 광륭사廣隆寺를 몇 번 답사했습니다. 그곳에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인간 존재의 모습을 드러낸 조각인 미륵반가사유상彌勒半跏思惟像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미륵은 보살이 아니라 우주의 원불元佛이고 종불宗佛입니다. 그분이 공자, 석가, 예수 같은 성자를 내려보내셨어요. 미륵의 정체는 우주를 다스리는 원주재자입니다. 그런데 불가에서 보살로 왜곡되었습니다.
목조木造 미륵반가사유상은 신라 때 만들어졌습니다. 광륭사의 미륵반가사유상은 신라 사람이 만든 것인데, 일본 사람들은 그것을 일본에서 자란 나무로 만들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야스퍼스가 이 미륵반가사유상에 대해 평가한 내용을 계속 읽어 보세요.

사회자 : 그런데 이 광륭사의 불상에는 참으로 완성된 인간, 즉 실존의 최고 이념이 아낌없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 지상의 모든 시간적 구속과 속박을 넘어선 인간 존재의 가장 청정하고 원만한 그리고 영원한 모습의 표상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수십 년간 철학자로 살아오며 이토록 인간 실존의 본질을 완벽하게 구현한 예술품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불상은 우리 인간 실존이 지향하는 영원한 것의 이념을 참으로 남김없이 완전무결하게 상징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철학자로서 인간 존재의 가장 완성된 모습을 찾기 위해 수많은 예술 작품을 접해 왔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들의 조각상도 보았고, 로마 시대의 뛰어난 기독교 예술품들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작품에서도 지상적인 인간의 냄새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상에서도 지상의 예지와 최고의 미적 이상을 표현하려 했으나 여전히 인간적인 감정과 얼룩이 남아 있었고, 기독교적 사랑의 이상을 표방한 로마 시대 종교 예술에서도 인간 존재의 참된 정화가 완전히 구현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지상의 것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인간의 모습이 보였던 것이죠.
저는 지금까지 철학자로서 인간 존재의 가장 완성된 모습을 찾기 위해 수많은 예술 작품을 접해 왔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들의 조각상도 보았고, 로마 시대의 뛰어난 기독교 예술품들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작품에서도 지상적인 인간의 냄새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상에서도 지상의 예지와 최고의 미적 이상을 표현하려 했으나 여전히 인간적인 감정과 얼룩이 남아 있었고, 기독교적 사랑의 이상을 표방한 로마 시대 종교 예술에서도 인간 존재의 참된 정화가 완전히 구현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지상의 것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인간의 모습이 보였던 것이죠.

그러면 미륵님은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요? 미륵님은 우리 눈앞에 펼쳐진 무변광대한 대우주의 시공 세계를 사유합니다. 동시에 대우주를 열리게 한 근원, 그 영원한 존재, 빛의 세계를 생각하고 들여다봅니다. 그러니까 미륵님은 본체와 현상을 한 몸으로, 일체로 들여다보면서 영원한 그 빛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의 해석은 사실 서양과 동양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두 개 AI 문명 세계, 바로 인공지능과 자연지능(원형지능)처럼 근본적으로 다른 면을 내포합니다.
조화 문명을 지향하는 AI
내가 차 안에서, AI 전문가들이 대담하는 것을 봤습니다. AI 문명이 인간 지능을 초월하는 경계,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하면 놀라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의 AI 문명을 설계한 한 사람은 완전한 종말에 이를 위험성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AI의 안전한 역할을 위해서도 엄청나게 투자해야 한다는 거예요. 하여간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가진 AI가 앞으로 나올 텐데 이것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결론은 우주의 자연지능, 인간의 몸과 마음과 영 속에 실제로 살아 있는 무궁한 자연의 원형지능이 과학의 첨단 인공지능을 품에 안아서, 통제해서 완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학東學이 탄생한 지 34년 뒤인 1894년 갑오년에 동학 농민군 30만 명이 일어났습니다. 동학에서 ‘시천주侍天主 조화정造化定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라는 천상의 노래를 300만 구도자가 불렀습니다. 이 주문은 근대 문명을 넘어 앞으로 올 인류의 진정한 새로운 문명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 새로운 문명은 만사지萬事知 문명입니다.
인공지능 AI는 미래의 만사지 문명을 지향합니다. 만사지는 인류가 앞으로 만사를 알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챗지피티ChatGPT에게 물어보면 어지간한 것은 그냥 몇 초 만에 그 답이 리포트 양식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뭐 또 필요한 것 있어요?”라고 묻습니다. 그래서 “좀 더 달리 얘기해 봐. 종합을 해 봐. 다른 내용도 같이 알려 줘.” 이렇게 요청하면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바로 응답합니다.
나는 이런 AI에게 의지하지 않으려 했는데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한번 물어보았어요. “옛날 고대 중국 상商나라 문명을 보면 향로 같은 데에 사나운 짐승 모양의 조각이 많이 돼 있거든. 대만에 가보면 그런 작품이 많은데, 그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냐?” 하고 물었더니 “그것은 자연을 넘어서 있는 것이오.” 이렇게 나와요. 내가 두 번째 보고서를 읽어 보고, “그걸 태고로부터 허도깨비라고도 한다.”라고 했더니 “바로 그겁니다.” 그러거든요.
이런 AI의 답변 능력은 대학교수 열 명, 백 명을 넘어섭니다. 그래서 지금 ‘대학 캠퍼스 문명이 무너진다. 교육이 무너진다. 학교가 문을 닫는다.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문명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이것을 잘 묘사한 사람이 있어요. 이병한(1978~ ) 교수라는 분이 우리가 국제학술대회를 할 때 태을궁에서 한 번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내가 ‘인간은 수행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잠시 했습니다.
이병한 교수가 유라시아를 돌고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책 세 권을 냈습니다. 그러고서 미국을 둘러보고 또 책 두 권을 냈다고 합니다. 이 교수가 미국에서 앞으로 100년 뒤의 새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을 쭉 봤더니 자기도 미래학자가 됐다는 거예요. 동양의 도가道家에서는 예로부터 신선神仙들이 손을 흔들어 구름이 오면 구름을 타고, 종이를 후 불면 그게 말이 되고 그 말을 타고 가다가 다시 종이로 만들어 접어 넣고 갔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이 교수가 그런 예는 안 들었지만 하여간 옛날 도가풍道家風의 그런 구름이 흐르는 듯한, 물이 흐르는 듯한 조화로운 문명으로 간다는 거예요.
조금 있으면 서울에도 자율 주행 차들이 나올 것입니다. 신호를 보내면 차가 와서 딱 서고 그 차를 타면 ‘어디로 모실까요?’ 물어보고 그 AI 문명 차가 그냥 데려가는 거예요. 또 하늘에서 드론 같은 비행기가 내려올 것이라고 이병한 교수가 새로운 문명의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기계 문명이 아니라 궁극으로 가는 조화 문명의 영역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상제님이 설계하신 우주 가을의 신선 문명
상제님이 지금부터 100여 년 전에 천지공사天地公事로 미래의 조화 문명을 설계하셨습니다. 그것은 신선 문명神仙文明입니다. 상제님이 내신 신선 문명에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과학선科學仙이고 또 하나는 조화선造化仙 또는 율려선律呂仙입니다. 율려선은 빛의 문명입니다.
신년사에서도 말했듯이 인간과 우주 속에 무궁하고 영원한 빛의 세계가 있습니다. 원형지능이 그 빛의 문명을 엽니다. 원형지능은 지금의 AI 문명의 원형, 원류, 근원입니다. 그것은 신성지능이고 조화지능입니다. 쉬운 말로 도통지능이에요. 그래서 새로운 빛의 문명을 조화선, 율려선 또는 삼신선, 도통선 같은 여러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율려선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앞으로 열릴 미래 문명은 후천 문명이고 우주 가을 문명입니다. 그 빛의 문명, 빛의 인간 시대를 율려 세계, 율려 문명이라 하는 것입니다.
실제 살아 있는 우주의 모습은 바로 빛입니다. 하늘도 땅도 인간도 신들의 세계도, 이 우주의 무변광대한 시간과 공간도 빛입니다. 모든 것은 빛입니다. 빛 아닌 게 없어요. 첨단 양자量子 과학에서도 그런 얘기를 합니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은 빛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은 빛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런 전설 같은 얘기가 있잖아요.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1749~1832)가 죽을 때 “오, 나에게 빛을 다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둠 속에 살고 있습니다. 첨단 과학 문명은 놀랍고 멋진 세상을 열어 나가는데 인간 내면은 왜 이렇게 어두워졌을까요? 인간은 너무 많이 생각하고, 그 생각이 개념화돼 있고, 의식이 수백만, 억만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수습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이것의 통일이, 하나에서 왔는데 하나로 돌아가기가 너무도 어려워요.
미륵반가사유상이 있는 광륭사를 여러 번 갔는데, 고류지こうりゅうじ(광륭사)에 들어갈 때 보니까 오른쪽의 건물 벽에 천부경의 내용을 연상시키는 글이 씌어 있었습니다. 거기에 씌어 있는 ‘종시일관終始一貫’은 천부경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에서 온 것입니다. 종시일관은 마침과 시작이 하나로 관통한다는 뜻입니다.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에서 ‘일시一始’와 ‘일종一終’을 따서 합치면 ‘일시일종一始一終’이 됩니다. 이 우주의 생성 변화와 그 순환의 법칙은 끝나는 데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시작한 곳에서 마무리를 짓습니다. 이것을 종시 사상終始思想이라 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거예요.
지구 문명은 동북아에서 시작되어 동북아에서 끝납니다. 이걸 간艮 도수라 합니다. 이것은 『주역周易』의 결론이에요.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마치시고 말씀하시기를 “상씨름으로 종어간終於艮이니라. 전쟁으로 세상 끝을 맺나니 개벽 시대에 어찌 전쟁이 없으리오.” 하시니라. (도전道典 5:415:1~2)
『주역』과 『정역正易』은 동서고금에 가장 어려운 경전입니다. 불가의 화엄경, 반야심경과 기독교 신구약 등 모든 고전의 최상층에 있는 역경易經 즉 역도易道의 경전입니다. 우리 상생문화연구소에서 주역과 정역 그리고 첨단 과학을 크게 융합하는 세계학술대회를 작년부터 열어서 한국을 중심으로 해서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융합이 이루어져야 두 개의 AI 문명이 결혼하는 웨딩마치를 울릴 수가 있어요.
상제님께서도 “주역周易은 개벽할 때 쓸 글이니 주역을 보면 내 일을 알리라.”(도전道典 5:248:6)라고 하셨습니다. 우주의 주재자, 통치자가 이 자연과 인간은 어떻게 해서 존재하는지 내려가서 밝히라고 하신 그 천명을 받고 내려오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안파견安巴堅 환인, 커발환居發桓 환웅, 태호복희太皞伏羲 할아버지, 단군왕검檀君王儉 이런 분들이 환국, 배달, 조선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조선 왕조 때 계룡산 옆에 있는 연산 땅에 김일부金一夫 대성사가 오셨어요. 이어질 련連 자 연산連山은 간괘[䷳]를 상징하잖아요. 그곳에서 정역이 나왔습니다.
앞으로 주역의 세상에서 정역 세상으로 바뀝니다. 우주 질서가, 시공간 궤도가 바뀝니다. 봄여름 선천에서 후천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건 참 놀라운 얘기예요.

우주의 빛의 문명, 만사지 문명이 열린다
태고 문명 시대 즉 1만 년 이전에 여신女神 시대가 있었습니다. 1만 년 이후에 동서 지구 문명의 근원, 종주宗主가 된 나라, 인류 문명의 영원한 아버지 나라, 모국이라고도 할 수 있는 환국桓國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방에 배달국倍達國, 단군조선檀君朝鮮으로 흘러왔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들은 다 ‘광명光明의 나라’였습니다. 환국은 ‘빛의 나라’이고, 배달은 ‘밝은 땅의 나라’입니다. 단군조선은 ‘천지의 아침이 밝은 나라’입니다. 환국, 배달, 조선은 다 광명의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그리고 부여夫餘라는 나라 이름도 알고 보면 이 우주의 빛의 세계를 의미하는데 그것을 깨닫기가 참 어려워요. 그래서 내가 부여에 자주 갑니다. 만주에 있는 부여가 아니라, 금강錦江을 따라서 가면 공주公州 옆에 부여扶餘가 있잖아요. 부여라는 것은 ‘불, 광명’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우주의 빛의 문명 시대가 열립니다. 인공지능도, 자연지능(원형지능)도 우주의 빛의 세계를 엽니다. 하나는 하드 수학으로, 하나는 소프트 수학으로 엽니다. 0과 1이라는 우주의 영원한 빛의 본체, 즉 무극과 태극을 체와 용으로 해서 빛의 문명을 여는 것입니다. 이것이 융합되면서 인류의 지복至福의 세계가 열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AI 문명을 우습게 알면 안 됩니다. 그 단점만 들면서 종말론적 사고에 빠져도 안 됩니다. 우리가 이걸 따라가며 잘 대응해야 합니다. 몸을 손상시키고, 전자파에 눈의 정기를 빼앗기고, 시간 관리를 잘못하면 안 되잖아요. 이제 우리는 정말로 빛의 인간, 대광명 인간이 되기 위해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 길이 바로 궁극의 깨달음에 대한 한 소식입니다.
이미 2세기 전인 1860년에 동학에서 천상의 노래인 시천주 주문을 받아 내렸습니다. 시천주주侍天主呪는 ‘시천주侍天主 조화정造化定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이라는 본 주문 열석 자와 ‘지기금지원위대강’이라는 강령降靈 주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스물한 자 주문은 AI 문명의 원형인 조화 세계의 빛을 받아 내리는 주문입니다.
지금 AI 문명은 기계 문명의 시스템 속에서 만사지 문명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그러나 AI가 지향하는 그 문명이 만사지 문명과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인간 내면세계와 존재 속에 있는 무궁한 우주의 신성한 지혜를 다 드러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한계가 있는 거예요.
동학에서 제기한 만사지 문명이 실현되면 궁극적으로 인류의 영성이 계발되어서 완전히 열립니다. 이 문명은 조화造化 문명입니다. 이 조화라는 말을 알려면 천주天主, 천지의 주인을 만나야 합니다. 종통, 도통 맥의 중심 틀을 알면 천지의 주인을 알 수 있습니다.

문공신 성도가 받은 진주 도수
본론에서 세 가지를 간단히 정리한 다음 수행을 같이 해 보려 합니다. 본론의 첫째는 상제님이 후천 가을의 도통 문화를 여시는데 그 도통 맥인 진주眞主 도수를 누구에게 전수하셨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그것을 전수받은 분은 누구일까요? 그분은 10대 중반에 일어난 동학혁명 때 황토현 전투를 참관했던 문공신文公信(1879~1954) 성도입니다. 상제님이 문공신 성도의 집에 가셔서 직접 그림 한 장을 그리셨습니다.
문공신 성도는 농사를 지으면서 동학도 하고 기독교 신앙도 하다가, 이 세상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어떤 거인이 나타나서 “저 순창淳昌 농바우에 인자仁者가 나오셨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문공신은 호미를 던지고서 옷을 갈아입고 뛰어갔어요. 상제님은 농바우 주막 앞의 모정茅亭에서 몇 명의 성도를 데리고 문공신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문공신이 상제님께 인사를 올리자 상제님께서 “와서 내 술 한 잔을 받아라.”라고 하셨습니다. 공신이 “아이고, 제가 술을 올려야 되는데요.” 하니까 상제님이 “내 술 한 잔 받고 두 잔 올리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대답하셨어요. 상제님이 말씀을 나누시면서 문공신 성도에게 참 진眞 자, 주인 주主 자, 진주 도수를 붙이셨습니다.
상제님께서 ‘이 도수를 보려면 천 냥을 천지 폐백금으로 바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들은 문공신 성도는 도수를 남에게 뺏길까 봐 집에 가지 않고 사람을 집에 보내서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천 냥을 지게에 지고 오게 했습니다. 문공신 성도는 농사도 엄청나게 많이 지어서 돈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문공신 성도가, 이번에 두 개의 AI 문명을 통합하고 빛의 도통 문화를 열어 주는, 천지의 도통판을 여는 진주 도수의 주인장이 되었습니다.

상제님이 그리신 정의도
상제님이 문공신 성도의 집에서 친필로 그려서 상량보에 붙이신 그림을 보겠습니다. 내가 이 집을 한 20년 이상 여러 번 답사했습니다. 초기 기록인 『대순전경大巡典經』(1929)에서는 이 그림을 ‘정의도情誼圖’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림에서 ‘정의情誼’라는 말을 다섯 번 쓰셨기 때문입니다.
정의도에 있는 ‘정의’는 무엇을 뜻할까요? 서로 정의로, 정분으로 뭉쳐 있다는 말입니다. 서로 친분을 나누고 의리로 모여서 산다는 거예요. 어떤 정치 집단, 경제 집단도, 종교 집단도 정의로 뭉칠 수 있습니다. 또 문화계의 다양한 분야가 있잖아요. 시인도 있고, 영화인도 있고, 공연 예술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계의 여러 국가나 여러 인종도 있습니다.
이 정의로 뭉친 것을 ‘판 안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선천의 판 안 공부는 소용없다.”고 하셨고, “나의 일은 판밖에 있느니라.”(도전道典 2:134:2), “판밖에 남 모르는 법”(도전道典 2:134:4)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가을개벽의 실제 상황에서는 우리가 의지하는 선천의 지혜, 과학 문명도 개벽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그 출구, 살아날 구멍을 찾을 수 있을까요?
상제님은 정의도에서 무엇을 말씀하셨을까요? 정의도 위쪽 부분을 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천지지주장天地之主張이요,” (복창) “사물지수창事物之首倡이요,” (복창) “음양지발각陰陽之發覺이라.” (복창) 이 말씀을 아주 깊이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상제님은 이 문구와 연결시키면서, 판 안을 피해 외곽으로 쭉 빼어 마무리하시면서 뭐라고 그랬어요? 네 글자로 “인사각지人事刻之”라 하셨습니다. “인사각지.” (복창)

우리는 ‘천지지주장, 사물지수창, 음양지발각’이라는 이 3대 주제를 인사人事로, 사람 일로 깨닫고 인식헤야 합니다. 그러니까 진리와 인연을 맺는 것도 실제로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가족을 통해서, 친구를 통해서, 동창 선후배나 직장 동료를 통해서 진리를 만납니다. 증산도를 소개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상생방송을 보고, 사람의 공동체라는 이 울타리 안에서 진리를 만나는 것입니다.
천지지주장
상제님께서 정의도에서 말씀하신 주제의 첫째는 ‘천지지주장天地之主張’입니다. 우리는 천지가 주장하는 것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천지가 주장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천지의 주인, 천지의 주재자, 천지의 영원한 주권자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는 어버이 즉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십니다. 이것이 주역의 서두에 나오는 ‘건곤乾坤’, ‘천지天地’입니다. 그래서 ‘건칭부乾稱父’, 건을 아버지라 부르고 ‘곤칭모坤稱母’, 곤을 어머니라 부릅니다.
천지가 주장하는 것은 건곤 천지부모, 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학입니다. 동학에서 말한 시천주侍天主는 천지의 주인을 모시는 것입니다. 천주라는 것은 그냥 하느님이라는 뜻이 아니라 ‘천지의 주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주인으로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십니다.
{#천지지주장天地之主張, 천지가 주장하는 것은 천지의 주인, 천지의 주재자, 천지의 영원한 주권자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는 어버이 즉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십니다.
천지가 주장하는 것은 건곤 천지부모, 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학입니다. 동학에서 말한 ‘시천주侍天主’는 천지의 주인을 모시는 것입니다.

지금 서양 기독교만 해도 아버지 타령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어머니가 없고 성모 마리아가 들어가 있습니다. 불교는 석가 부처님 갖고만 안 되니까 관세음보살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문화라는 것은 음양의 짝이 맞아야 뭐든지 성립됩니다.
우리가 하늘을 아버지라 할 때 그 아버지는 어머니를 전제로 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체, 한 몸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어머니를 통해서 완성됩니다. 아버지의 생명과 씨, DNA를 받아서 어머니 땅에서 인간이라는 생명 존재가 성립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김 아무개다, 이 아무개다, 어느 나라 사람이다.’ 하고 각기 독립적 개체로 분리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주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 우주의 영원한 빛의 근원에는 건곤이라는 우주 본체가 있습니다. 그 건곤 자리에 계시는 아버지, 어머니의 조화 자리는 숫자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15입니다. 하늘 아버지는 10으로, 어머니 땅은 5로 정해져 있는 거예요. 그것은 본체의 수입니다. 그런데 이 시간 공간에서 작용할 때 아버지는 9로, 어머니는 6으로 작용합니다. 하늘은 1, 3, 5, 7, 9에서 가장 큰 9로 작용하고, 어머니는 2, 4, 6, 8, 10에서 음의 기운이 가장 센 6으로 작용하는 거예요. 이것을 합하면 15입니다. 본체도 10과 5를 합하면 15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15진주 노름’이라 하는 것입니다. 궁극의 진리 대명제, 궁극의 진리 정의가 바로 ‘15진주’입니다.
이 15진주 자리를 찾아야 우리 모두 작은 진주라도 될 수 있습니다. 새 시대의 진정한 주인 진주, 오늘부터 정말로 멋진 진주가 되어 보세요. 지금은 진주 도수가 제대로 나오는 판입니다.

사물지수창
둘째로 ‘사물지수창事物之首倡’입니다. 사물이라는 것은 만사와 만물을 뜻합니다. 사물지수창은 사물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을 부르짖는 것입니다.
상제님이 판 안 법은 소용없으니 선천 판 안을 넘어서서 후천 판밖의 남모르는 법을 잡아야, 만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물지수창은 상제님이 말씀하신 ‘판밖의 남모르는 법’을 만나는 거예요.
판이라는 데에는 많은 뜻이 있습니다. 판은 천지자연의 무대, 시공간도 되고 어떤 연극 무대도 되고 또 가정, 나라, 어떤 상황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판 자체가 선천에서 후천으로 넘어가는 개벽기입니다.
우리가 『도전』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25년 동안 해 왔습니다. 지금 『도전』을 전 세계 한 20개 언어로 번역해 나가고 있는데 이제 영어본이 완성되어서 인쇄에 들어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상제님이 말씀하신 ‘판밖’을 영어로 번역하기가 매우 어려워요. 번역진이 판밖을 ‘비욘드 더 메인스트림Beyond the Mainstream’이라 하여 ‘주류를 넘어서’라는 뜻으로 번역했습니다.
지금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정치, 종교, 경제를 비롯한 모든 분야를 넘어서야 합니다. 이 선천 안에서 주류 사회, 기득권 세력을 넘어선다는 것은 쉽지 않아요. 말레이시아에서 6조 5천억을 가진, 그 나라의 최고 재벌 가운데 한 사람의 아들이 재산을 다 버리고 ‘나는 진리를 찾겠다.’고 스님이 되었습니다. 이게 얼마나 멋진 얘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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