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개 민족, 천 개의 파고다(탑)의 나라 - 미얀마Myanma(버마Burma)
[세계지역문화탐방]

흔히 ‘황금의 땅’이라 불리는 미얀마Myanmar는 수많은 파고다Pagoda(탑塔)와 사원이 빛나는 나라이다. 특히 바간 지역에는 수천 개의 파고다가 펼쳐져 있어 ‘천 개의 파고다의 나라’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테라바다Theravada 불교(상좌부上座部 불교, 소승불교)를 믿으며, 사원과 불교 문화가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아 여행자들에게 신비롭고 영적인 분위기를 선사하고 있다.
또한 미얀마는 버마족을 비롯해 135개 이상의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의 땅이다. 오랜 군사 정권과 늦은 개방으로 인해 현대화가 더딘 편이지만, 그만큼 전통적인 생활 양식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세계 최대의 옥과 루비 산지로도 유명해 ‘보석의 나라’라는 별칭을 갖고 있으며, 여행자들에게는 시간이 멈춘 듯한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미얀마는 버마족을 비롯해 135개 이상의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의 땅이다. 오랜 군사 정권과 늦은 개방으로 인해 현대화가 더딘 편이지만, 그만큼 전통적인 생활 양식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세계 최대의 옥과 루비 산지로도 유명해 ‘보석의 나라’라는 별칭을 갖고 있으며, 여행자들에게는 시간이 멈춘 듯한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한눈에 보는 미얀마
국가 정보


이후 사회주의 정권의 톱니바퀴 깃발을 거쳐 현재의 국기는 미얀마 군사 정부에 의해 2010년 10월 21일에 제정되었다. 기존 1943년 버마국의 가로 삼색기(노란색, 초록색, 빨간색) 도안을 계승하면서도 공작새 대신 오각별을 적용하였다. 노란색은 결속, 초록색은 평화, 빨간색은 용기, 흰 별은 단일성을 상징한다. 오각별은 “모든 민족이 분열하지 않고 하나의 국가 안에서 굳건하게 단결한다.”는 화합의 의미다.

여행 정보

국명
미얀마연방공화국(The 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
현재 국호는 미얀마연방공화국(The 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이다. 1989년 6월 군사 정부가 국명을 버마Burma에서 현재 이름으로 바꿨다.
역사적으로 버마어 체계 내에서 ‘미얀마Myanma’와 ‘버마Burma’는 언어학적 근원이 일치한다. ‘미얀마’는 문법적 격식을 갖춘 문어적 표현이지만, ‘버마(구어체 표현은 바마Bama)’는 일상적인 대화에서 널리 쓰이는 구어적 표현에 해당한다.
국명 변경의 표면적 명분은 식민지 시절의 잔재 청산과 다민족 국가로서의 포용성이었다. 버마라는 이름이 영국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진 이름이고, 국토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버마족 중심의 국가가 아니라, 영토 내에 실재하는 135개 소수 민족 전체를 대등하게 아우르기 위해 보다 넓은 외연을 가진 문어체 국명 ‘미얀마’를 선택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아웅 산 수 치 국가 고문과 민주화 운동 단체들은 군부가 국민적 동의와 헌법적 합의 절차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국호를 변경했음을 지적하며 이에 강력히 불복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대립은 국제 사회로 확산되어 영국, 미국 등 서방 주요 국가들과 BBC를 비롯한 영향력 있는 언론들은 오랫동안 공식 석상에서 군정軍政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의미로 ‘버마’ 명칭을 고수하였다. 반면 UN이나 한국, 일본, 그리고 아세안 국가들은 외교적 실리를 고려해 군부의 발표대로 ‘미얀마’라는 국명을 수용했다. 2003년 아웅 산 수 치 여사가 방한했을 당시 한국 언론에 ‘버마’ 표기를 간곡히 요청했던 사건은 민주화 세력의 이러한 정체성 투쟁을 극명히 보여 준다. 2010년 11월 총선 직전 군부는 다시금 정식 국호를 ‘미얀마 연방 공화국’으로 변경하며 지배권의 영속화를 도모하였으나, 국가 명칭 변경의 이면에는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정치적 분열의 상흔이 존재한다.

지리와 기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그리고 동아시아 대륙이 연결되는 접경지대
미얀마는 인도차이나반도의 서단에 자리 잡고 있어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그리고 동아시아 대륙 세력권을 연결하는 최전방 전략적 접경지대이다. 북동쪽으로 중국 윈난성, 동쪽으로 라오스와 태국, 서쪽으로는 인도 및 방글라데시와 맞닿아 있으며, 남쪽으로는 벵골만과 안다만해를 면하고 있다. 대륙 세력의 해양 진출을 위한 교두보이자 해양 세력의 대륙 진입을 막아 세우는 완충 지대로서 극히 높은 지정학적 가치를 지닌다.

서부 아라칸(라카인) 산맥 : 방글라데시 및 인도와의 국경을 자연적으로 획정하며 인도양으로부터 불어오는 기후적 장벽 역할을 한다.
동부 샨고원 및 테나세림 산지 : 타이계 민족들이 활발히 거주하며 태국과의 국경선을 구성하는 지하자원의 보고이다.
이라와디 삼각주 : 이라와디Irrawaddy강이 벵골만과 만나며 종결되는 하구 지대로, 세계적인 쌀 생산력을 자랑하는 영양 공급의 중심지이다.
중부 저지 평원 :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이라와디강 유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광활한 충적 평야 지대이다.
중부 평원은 다시 지리 기후적 특성에 따라 고온 다습한 남부의 ‘하下 미얀마’와 고온 건조한 북부의 ‘상上 미얀마’ 분지로 세분된다. 특히 상 미얀마 건조 지대는 서부 아라칸산맥이 남서 몬순의 습한 공기를 차단하는 전형적인 비 그늘(Rain shadow) 현상을 발생시켜 연중 비가 극도로 적고 매우 더운 열대 사바나 또는 건조 스텝 기후를 형성한다.
이러한 극한 환경 속에서도 이라와디강의 수계를 활용한 독창적인 관개 농업과 건조 지대에 특화된 밭농사가 일찍부터 발달하여, 고대 버마족 왕조들이 중앙 집권적 국가를 이룰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였다.

역사 History
문명의 길목에서 상좌부 불교의 영적 중심지 역할
미얀마의 역사적 궤적은 인도양과 유라시아 대륙 세력권이 교차하는 문명의 길목에서 독자적인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보존해 온 치열한 투쟁의 과정이다. 미얀마 땅에 정착한 여러 민족은 스리랑카 및 남아시아 지역과의 역동적인 교류를 바탕으로 상좌부 불교★를 수용하여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전파하는 영적 중심지 구실을 하였으며, 이는 현대 미얀마의 사회적 뼈대를 구성하는 중추가 되었다.
★상좌부上座部 불교 : 기존의 용어 소승 불교小乘佛敎 대신 부르는 공식 명칭이다. 영어로는 테라바다Theravāda라고 한다. 상좌는 수행을 오래 하거나 덕망이 높은 ‘어른 스님’을 뜻한다. 상좌부 불교는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과 수행 방식을 있는 그대로, 가장 보수적으로 엄격하게 지켜 온 불교 종파라는 뜻이다. 대응되는 개념은 대중부大衆部 불교(대승 불교大乘佛敎)다.
고대 역사
미얀마의 역사는 길기도 하지만, 이웃 국가들과 관련이 깊어 상당히 복잡하다.
미얀마 영토 내 인류 거주의 고고학적 기원은 구석기 시대인 약 75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샨주에 위치한 빠다린 동굴의 벽화는 이 지역에 매우 오래전부터 정교한 선사 문명이 존재했음을 알려 준다. 이라와디강 유역을 거점으로 정착 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기원전 1500년경 청동기 시대를 거쳐 기원전 500년경 철기 시대에 진입하며 조직적인 도시국가 연맹을 형성하였다.
고대 미얀마의 역사적 주도권을 쥔 최초의 세력은 남부 저지대에 정착한 몬Mon족과 중북부 이라와디 계곡 중류에 도래한 티베트⋅버마어족 계열의 쀼Pyu족이었다. 이들은 강력한 도시국가를 형성하며, 북쪽의 육로를 통해 유입된 불교와 힌두교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들은 9세기 초 이Yí족(彝族)과 바이Bai족(白族)이 세운 남조南詔(653~902년)의 여러 차례 대규모 침공을 받아 급격히 쇠퇴하고 소멸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남조 왕국은 지금의 윈난성雲南省 지방에 있는 천혜의 요새 태화성太和城에 중심을 두고 강력한 군사력과 찬란한 불교 문화를 이룩한 왕국으로 한때는 당唐나라의 청두까지 위협하였고 9세기에는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까지 세력을 넓혔던 강성한 왕국이었다.

중세와 근세의 다층적 분열 및 통일 과정
쀼족의 몰락 이후 9세기경 윈난의 남조 왕국으로부터 이라와디 계곡으로 이주한 버마족은 본격적인 국가 형성 단계에 돌입하였다. 이들은 비옥한 관개 시설을 구축하며 건조 지대의 주인공으로 부상하였고, 1044년 아나우라타Anawrahta왕의 즉위와 함께 바간Bagan 왕조를 새로 시작하여 미얀마 최초의 통일 제국을 완수하였다. 바간 왕조는 1057년 몬족의 수도 타톤을 점령한 후 상좌부 불교를 국교로 공인하였으며, 짠지타Kyanzitta왕의 치세에는 몬 문자에 기초한 버마 문자를 창제하여 독자적인 고등 문화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국가 재정의 지나친 사원 귀속과 1287년 몽골 쿠빌라이 칸의 대대적인 침공은 결국 바간 제국의 종식을 가져왔다.
이후 미얀마는 고지 버마를 지배하며 버마족화된 샨Shan족의 잉와Inwa 왕국(1364~1555)과 저지 버마를 통제하며 몬족화 된 샨족의 한따와디Hanthawaddy(버고) 왕국(1287~1540), 그리고 서부의 아라칸Arakan 왕국 등으로 분열되어 약 2세기가 넘는 혼란기를 겪었다.
1527년 샨족이 잉와를 점령하며 세력 균형이 깨지자, 잉와로부터 독립한 따웅우 왕국의 민찌뇨 왕과 그 후계자들은 따웅우Taungoo 왕조(1510~1752)를 건설하며 제2차 대통합을 달성하였다. 이후 건국된 꼰바웅Konbaung 왕조(1752~1885)는 대외 정복 전쟁을 통해 서부 아라칸 왕국까지 완전히 병합하며 현대 미얀마의 국경선을 사실상 획정하였다.

식민지 통치와 현대사
영국-버마 전쟁의 결과로 1885년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미얀마는 인도 제국의 한 주로 편입되어 전통적인 왕정 체제와 불교적 사회 질서가 해체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일본 제국의 괴뢰국인 버마국(State of Burma, 1942~1945) 시기를 거쳤다가 1948년 우 누U Nu를 초대 총리로 임명한 ‘버마 연방’(Union of Burma)으로 공식 독립하였다. 그러나 민간 의회 정치는 소수 민족과의 갈등으로 표류하였고, 1962년 네 윈Ne Win 장군이 단행한 쿠데타로 군사 독재와 폐쇄적인 사회주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1988년 ‘8888 항쟁’을 통한 민주화 열망은 신군부의 유혈 진압으로 무력화되었고, 국호는 현재의 ‘미얀마 연방’(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으로 개칭되었다. 2010년 총선 이후 수립된 테인 세인Thein Sein 정부의 개혁 조치로 2015년 아웅 산 수 치Aung San Suu Kyi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연맹(NLD)이 압승하며 첫 민간 정권이 탄생하였다. 그러나 2021년 2월 민 아웅 홀라잉Min Aung Hlaing 총사령관이 이끄는 군부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현재 미얀마 시민들은 시민방위군을 결성하고 소수 민족 무장 단체들과 연대하여 군부 정권에 맞서 치열한 저항을 이어가고 있다. 2026년에도 군부가 주도한 반쪽 총선이 치러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치 제도
- 군부에 의해 형성된 이중 권력 구조
2008년 헌법
미얀마의 헌정 질서와 국가 운영 메커니즘은 2008년 군부가 자신들의 정치적 기득권을 제도적으로 수호하기 위해 설계한 ‘2008년 헌법’에 의해 강력히 제약받고 있다. 이 헌법은 형식상 다당제 민주주의와 양원제 의회를 규정하고 있으나, 군부에 국가 최고의 안보 및 초헌법적 거부권을 부여하는 독특한 이중 권력 구조를 내포하고 있다.
하원에 해당하는 인민원은 총 440석의 의석 중 330석은 소선거구제 민선으로 선출되나, 25퍼센트에 해당하는 110석은 군 총사령관이 직접 임명하는 현역 군인에게 사전 할당된다. 상원에 해당하는 민족원은 각 주와 도에 균등 배분된 총 224석 중 168석은 민선 의원이며, 나머지 25퍼센트인 56석은 마찬가지로 군 총사령관의 지명을 받은 군인 의원들로 채워진다.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연방의회 재적 의원 75퍼센트를 초과하는 압도적인 찬성이 필수적이므로, 의회 의석의 25퍼센트를 원천 확보한 군부는 헌법 제도를 수정하려는 모든 민주적 시도에 대해 완벽한 합법적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또한 본인이나 부모, 배우자, 자녀가 외국 시민권을 소지한 인물의 대통령 임명을 원천 금지하는 헌법 제59조 (f)항은 아웅 산 수 치 여사의 권력 장악을 직접 통제하는 핵심적 차단 장치였으며, NLD 정권은 이를 우회하기 위해 대통령의 상위에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국가 고문’직을 신설하는 비상 구조를 가동해야만 했다.

2021년 쿠데타 이후의 정세와 반쪽뿐인 총선거 강행
2021년 2월 1일 발생한 쿠데타는 미얀마의 점진적 민주화 여정을 완전히 중단시켰다. 민 아웅 흘라잉 선임 장군이 이끄는 국가통치평의회(SAC)는 아웅 산 수 치 국가 고문과 윈 민 대통령을 강제 구금하고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입법⋅사법⋅행정 전권을 장악하였다.
군부는 지배의 합법성을 획득하기 위해 2023년 기존 여당인 민족민주연맹(NLD)을 정당 등록 미이행을 이유로 강제 해산하였고, 주요 소수 민족 정당인 샨 민족민주연맹(SNLD) 역시 선거 참여 거부를 선언하며 군정의 선거 기획에 정면으로 저항하였다. 연방선거관리위원회(UEC)는 2025년 대지진 피해와 지속적인 교전 국면 속에서도 2026년 1월 11일 일부 행정구역(100개 읍면 중심)을 대상으로 2단계 총선거를 강행 시행하였다. 이 선거는 민주 진영과 유력 소수 민족 정당이 완전히 배제된 철저한 ‘반쪽 선거’였으며, 아세안ASEAN 회원국들과 국제 사회는 이를 군부의 불법적인 독재 연장 수단으로 규정하고 선거 결과를 전면 거부하겠다는 단호한 외교적 성명을 발표하였다.

행정구역과 주요 도시
7개의 구, 7개의 주, 연방 직할지 네피도
미얀마의 연방 행정구역은 7개의 구區(Region, 버마어: Tine)와 7개의 주州(State, 버마어: Pyine), 그리고 연방 직할지인 네피도Naypyidaw로 구성된다. 이러한 행정 분할 방식은 미얀마가 내포한 심층적인 종족 갈등 구조와 지배 전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구(Tine, Region) : 다수 민족인 버마족이 인구의 절대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이라와디 분지와 중부 평원 지대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주(Pyine, State) : 각 소수 민족의 고유한 영토적 지배권을 인정하는 형태로 국경과 험준한 산악 고원 지대에 획정되어 자치권을 둘러싼 갈등이 상존한다.
행정구역의 면적 측면에서는 동부 국경 전체를 통제하는 샨Shan주가 가장 방대하며, 양곤Yangon도가 가장 협소하다. 반면 인구 밀도와 경제 활동 규모 측면에서는 양곤도가 압도적인 밀집도를 보이고 있으며, 산악 지대인 카야Kayah주는 인구 밀도가 가장 희소하여 지역 간의 구조적 개발 불균형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주요 도시
미얀마는 행정⋅군사, 상업⋅외교, 그리고 문화⋅정치적 역사성에 따라 명확히 나뉜 세 개의 중심 도시를 축으로 작동하고 있다.
네피도Naypyidaw : 미얀마의 공식 행정 수도이다. 군사 정부는 2005년 11월 양곤에서 중부 내륙의 핀마나 인근 산악 지대로 행정 기구를 전격 이전하였고, 이듬해 이곳을 네피도로 명명하였다. 이는 외부의 해양 침공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영토 내 소수 민족 무장 세력에 대한 물리적 군사 통제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철저한 안보 기획 도시이다.
양곤Yangon : 미얀마 최대의 경제 중심지이자 상업, 금융, 외교의 심장부이다. 비록 수도 지위는 네피도로 이전되었으나, ‘적을 완전히 격퇴하여 평화를 얻는다.’라는 역사적 어원과 미얀마 불교의 최고 성지인 쉐다곤 파고다를 품고 있어 미얀마 국민에게 여전한 영적⋅실질적 수도로 인식된다.
만달레이Mandalay : 꼰바웅 왕조의 마지막 왕궁이 실재하는 미얀마 전통 예술과 문화의 고도이자, 상 미얀마 상업 교통의 핵심 허브이다. 그러나 2025년 3월 만달레이 인근에서 발생한 규모 7.7의 초강력 지진과 여진은 도시 유적 파괴와 인명 피해를 일으켰고, 군정 치하에서 지진 피해 복구 지원이 극도로 더디게 전개되면서 인도주의적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민족 구성
65퍼센트의 버마족과 135개의 소수 민족
미얀마는 전체 인구의 약 65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는 다수의 버마족(Bamar)과 이를 둘러싼 135개 이상의 소수 민족 사이에 복잡다단한 갈등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대표적인 다민족 모자이크 국가이다. 미얀마의 주류 민족인 버마족과 소수 민족 간의 갈등이 폭발한 계기는 영국의 식민 통치 시기의 소수 민족 우대 및 민족, 종교 간 분열 정책 때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독립 영웅 아웅 산Aung San 장군이 소수 민족의 자치를 약속했던 ‘판롱 협정’이 존재했으나, 그가 암살당한 이후 군부에 의해 이 협정이 파기되면서 다인종적 인구 구조는 연방 붕괴와 내전의 결정적 화근으로 변모했다. 네 윈 군사 정부는 소수 민족을 연방의 단합을 저해하는 위협 요소이자 격멸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버마화(Burmanization)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에 저항하여 카친독립군(KIA), 카렌민족해방군(KNLA) 등은 국경 지대의 풍부한 광물, 보석, 티크 목재, 그리고 악명 높은 골든 트라이앵글의 마약 밀매와 불법 도박⋅성매매 시장을 통제하며 독자적인 자금줄을 확보하고 장기 항전을 이어 왔다.
소수 민족 문제
동남아 여러 나라들이 그러듯이 미얀마는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과 탄압이 극심하다. 소수 민족이 당하는 차별 사례 중 하나로, 소수 민족이 사는 지역에는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도로도 포장되어 있지 않을 정도로 인프라가 열악하다. 특히 군부 소유의 기업들이 소수 민족의 지역에 있는 자원들을 가져가며 막대한 돈을 버는데도 소수 민족에게는 돈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열악한 기반 시설을 개선해 주지도 않았다.
또한 불교 사원에 대한 건축 허가는 잘해 주지만,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건축 허가를 제대로 해 주지 않는다. 가장 나쁜 것은, 소수 민족 반군과의 전쟁 과정에서 군경이 반군과 아무 상관이 없는 소수 민족 민간인에게 학살, 강간, 고문, 약탈, 강제노동을 저지르면서도 이에 대한 조사와 처벌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이슬람 계열인 카친Kachin족, 카렌Karen족 등의 일부 반군 조직도 여전히 미얀마 정부와 투쟁하며 유혈 사태를 일으키고 버마족을 보복 살해하며 저항할 정도로 원수지간이다. 다만 카친족과 카렌족은 미얀마 정부군에게 탄압받아도 최소한 미얀마 정부에서 자국민으로 인정하지만, 로힝야Rohingya족은 그마저도 없다.
세계에서 가장 박해 받는 민족 - 로힝야 문제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이슬람교도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이 수십 년간 차별과 박해를 받아왔다. 이들은 버마어와 계통이 전혀 다른 방글라데시 치타공 지역의 벵골어 계열 방언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언어적 이질성은 이들을 ‘불법 이주자’로 규정하여 배척하려는 버마족 민족주의와 군부의 배타적 정책을 강화하는 결정적 빌미가 되었다. 이들은 1982년 시민권법에서 배제되어 사실상 무국적자가 되었다.
특히 2017년 미얀마 군부의 대규모 학살과 탄압으로 70만 명 이상이 방글라데시 등으로 피난한 사건이 국제적으로 ‘인종 청소의 교과서적 사례’로 규정되었다. 현재도 100만 명 이상이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 캠프에서 열악한 환경 속에 생존을 이어 가고 있다.

주요 인물
현대 미얀마의 건국 국부 아웅 산

그러나 일본이 점령군으로서 무자비한 수탈을 자행하자 즉각 항일 무장 투쟁으로 선회하여 영국의 복귀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았고, 런던에서 독립 합의를 쟁취해 내는 탁월한 외교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소수 민족과의 연방 연대를 실현하려던 독립 직전인 1947년 7월 19일, 행정참사회 회의 도중 정적 우 사우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들에게 서른둘의 젊은 나이로 사살당하며 미얀마 역사에 거대한 지도력 공백을 남겼다.

2016년 국가 고문으로 실질적 집권을 이루었으나, 집권 후 군부의 로힝야족, 카렌족을 비롯한 일부 소수 민족들 학살과 억압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들었다. 이로 인해 광주인권상을 비롯한 전 세계 유수의 인권 수상이 박탈되었다. 2021년 쿠데타 이후 군부에 의해 다시 구금되어 현재는 가택 연금 상태다.

우 인U In : 2007년 ‘샤프란 혁명’'(Saffron Revolution) 당시 미얀마 군부 독재에 맞서 싸운 불교 승려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샤프란 혁명은 2007년 미얀마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주화 시위로, 불교 승려들이 군부 독재와 경제난에 맞서 거리로 나서면서 국제적 주목을 받은 사건이다. 샤프란 색은 붉은빛이 도는 짙은 주황색 계열로 미얀마 승려의 가사 색깔이다. 그는 불교계의 도덕적 권위를 바탕으로 민주화 운동을 이끌며 군부의 폭력적 통치에 저항한 대표적 인물이다.
아노야타(아노라타Anawratha) : 미얀마 최초의 통일 왕조인 바간Bagan 왕조(파간 왕조)를 세운 군주(재위 1044~1077)로, 상좌부 불교를 국교로 삼아 미얀마의 종교⋅문화 정체성을 확립한 인물이다. 그는 남부 몬족의 타톤 왕국을 정복해 불교 경전과 승려들을 바간으로 옮겨와 불교를 제도화했으며, 동시에 토착 신앙인 낫Nat 신앙을 불교 체계 안에 통합했다. 인도의 아소카Asoka왕처럼 불교를 통해 정치적⋅정신적 통합을 이룬 군주로 평가된다.

종교
형식적으로는 종교의 자유 보장, 실질적으로는 불교 근본주의 나라
미얀마의 정신세계와 사회적 도덕규범을 지배하는 기둥은 인구의 약 85퍼센트가 신봉하는 상좌부 불교(Theravada Buddhism)이다.
미얀마 불교의 도입 경로는 다양한 역사성을 지닌다. 북부 쀼Pyu족은 육로를 통해 유입된 불교를 존중하여 백색 대불을 모시고 사원을 건립했으며, 남부의 몬Mon족은 벵골만을 가로지르는 해로를 통해 인도의 아소카 대왕 파견단으로부터 직접 상좌부 불교를 수용하여 체계화하였다. 이러한 고도의 종교 문화는 11세기 바간 왕조 시기 사회적 통합의 가장 강력한 접착제 구실을 해 왔다.
미얀마 불교의 특징은 토착 신령 숭배인 낫Nat(정령, 귀신) 신앙과의 유기적 공존에 있다. 불교 도입 이전부터 민간에 뿌리 깊게 정착해 있던 ‘낫’ 정령 숭배는 바간 왕조 아노야타왕에 의해 불교 세계관 아래의 우주적 보호신 구조로 공식 통합되었다. 이 덕분에 오늘날 미얀마인들은 파고다에서 부처의 해탈을 구하는 동시에, 사원 한구석에 마련된 낫 신당에서 현실의 기복과 가문의 안녕을 비는 복합 신앙을 자연스럽게 실천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배적 불교 정체성은 다문화 사회에서 강력한 종교 근본주의로 발흥하여 배타적 사회 갈등을 낳고 있다. 국경 지대에 거주하는 카친족, 친족, 카렌족 등 소수 민족의 기독교(약 7~8퍼센트) 신앙과 서부의 로힝야 이슬람교도 신앙은 불교를 국가 단결의 유일한 상징으로 강요하는 군부와 불교 극단주의 승려 조직에 의한 실질적인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헌법상 형식적인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나 실질적으로 근본주의 승려들의 집단 압박으로 인해 타 종교의 선교 활동과 예배 공간 건립이 법적으로 강력히 제약되고 있는 양상이다.
경제
농업 중심 국가, 외국 자본에 의한 에너지⋅자원 수출에 치중
미얀마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개방의 지체와 만성적인 정치적 불안정성으로 인해 기형적인 에너지⋅자원 수출 의존형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얀마는 전형적인 1차 산업 중심의 농업 국가였다. 가용한 풍부한 토지를 활용하여 아시아의 대표적인 쌀 수출국이었으며, 이라와디강 삼각주의 높은 농업 생산력을 토대로 2000년까지만 해도 농업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57.2퍼센트에 육박하였다. 이후 가공업 및 서비스업의 육성을 시도한 결과 이 비중은 2017년 23.4퍼센트, 2023년 기준 22.7퍼센트로 크게 하락하였으나, 여전히 전체 취업 인구의 대다수는 농업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미얀마 국가 재정과 외화 획득의 실질적 원천은 외국 자본 유치를 통한 에너지 가스전 개발 및 보석 광물 채굴이다. 천연가스는 국가 핵심 수입원으로 매장량은 세계 40위권 수준이며, 주로 인접국인 태국과 중국으로 육상 파이프라인을 통하여 장기 송출된다. 대표적인 프로젝트인 미얀마 중북부 해상의 ‘쉐Shwe 가스전’은 현지 전력 공급의 핵심 역할을 함과 동시에 군부와 외화 획득의 핵심 파이프라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얀마의 북부 카친주 롤링 산악 지대는 전 세계 최고 품질인 경옥(비취)의 약 70퍼센트를 생산하는 최대 매장지로 이는 보석을 선호하는 중국 자본과 직접 밀거래되어 공식 관세망을 우회하는 암시장 경제의 중추를 구성한다.
2021년 쿠데타 이후 서방 제재로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70퍼센트 이상 급감하고 해외 기업들의 탈출이 가속화되었다. 이에 더해 2025년 3월 미얀마를 강타한 대규모 지진으로 주요 산업 기반과 물류망이 파괴되면서 역성장의 늪에 빠져 있다.

외교
중립 비동맹주의 외교 노선에서 중⋅러시아 밀착 외교 노선으로
미얀마의 대외 정책은 역사적으로 강대국 사이에서 국가의 완전한 주권을 보존하기 위해 철저한 중립주의와 비동맹주의 노선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2021년 쿠데타에 따른 유혈 진압으로 서방 세계의 제재가 한층 격화되자, 미얀마의 지정학적 균형은 무너지고 중국 및 러시아와의 일방주의적 초밀착 안보 동맹으로 급속히 이행되었다.
중국과는 오랜 국경과 전략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며, 군부 쿠데타 이후에도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미얀마를 자국의 인도양 우회 통로를 확보하는 ‘일대일로’(Belt and Road)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삼고 있으며, 미얀마 군정은 국제적 고립 속에서 중국의 외교⋅경제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와 관계는 2021년 군부 쿠데타 이후 긴밀한 군사⋅외교 협력 관계를 맺고 있으며, 러시아는 미얀마 군정의 주요 무기 공급국이자 국제적 고립을 완화해 주는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기존 동남아 아세안ASEAN과의 관계는 최악의 냉각 상태이다. 아세안은 민간인 폭력 조기 종식과 평화적 해법 마련을 약속한 ‘5대 합의 사항’을 군정이 묵살하고 불공정 정당법에 따른 일방적 가짜 총선거를 강행하자, 군정 수뇌부의 아세안 정상회의 공식 참석권을 원천 박탈하고 선거 불복 성명을 발령하는 등 강경 대치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미얀마 관계는 1975년 수교 이후 우호적 교류가 이어졌지만, 미얀마 내 정치⋅인권 이슈(특히 2021년 군부 쿠데타 이후)로 인해 현재 외교적 긴장과 협력 조정이 병행되는 흐름이다.
[그림18] 미얀마 풍경 / 캡션 - #짜익띠요Kyaiktiyo 파고다# ‘황금바위’로 알려진 미얀마 3대 불교 성지 중 하나다. 부처님의 머리카락이 바위 속에 안치되어 있어 무게 중심을 잡아 주기 때문에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다. 몬Mon주 짜익띠요 마을에 위치.


#주요 음식#
미얀마 음식은 인도⋅중국⋅태국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며, 기름을 많이 쓰고 발효 식품과 찻잎을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모힌가’와 ‘라펫 토케’ 같은 음식은 미얀마인의 일상과 문화적 상징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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