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낱 먼지이자 별의 조각인 우리들 - 코스모스COSMOS
[이 책만은 꼭]
조아람 전임기자 / 부산온천도장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의 저서 『코스모스COSMOS』는 이름 높은 서적이니만큼 다양한 감상과 의견이 있겠지만 이 글을 쓰면서는 한때 많이 보이던 유행어 중 ‘너 뭐 돼?’라는 말이 떠올랐다. ‘네가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냐?’라는 뜻을 함축한 문장인데, 이 책은 ‘너 뭐 돼?’라는 질문에 대해 우주적인 관점에서 답을 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답변은 여러 각도에서 이루어지지만 압축하자면 이렇다. 천문학과 과학의 발전은 인간과 지구를 우주의 주인공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우주에서 태어나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는 존재로 자라났다. 또한 과학적으로 우리 인간은 별의 구성 성분으로 이뤄진, 우주와 별의 역사가 담겨 있는 유기체임이 드러났다.
천체물리학적으로 우주 앞의 인간은 한낱 먼지만도 못한 존재인 동시에 거대한 우주를 탐구하는 별의 조각들이다. 이 별 조각들은 그동안 자신들을 태어나게 한 이 세상과 우주를 어떻게 탐구하고 탐사해 왔을까? 우리보다 먼저 살았던 역사 속의 선배들은 인류사에서 어떤 발전과 착오를 겪었으며, 앞으로 우리 인류는 무엇을 위해 노력을 쏟고 어떠한 것을 염두에 두며 살아가야 할까?
이 책에서 제시하는 답변과 비전에 가슴 깊이 공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큰 감흥이 없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시대의 명저는 별의 자녀들로 하여금 깊이 고찰할 만한 내용을 한가득 퍼부어 준다. 독서와 거리가 먼 이들에게는 책의 두께부터가 도전을 망설이게 만들 만하다. 하지만 책장을 펼쳐 보면 생각보다는 내용이 말랑말랑하다고 느끼는 독자들이 제법 있지 않을까 싶다. 필자의 짧은 식견으로 봐도 이 정도로 깊이 있고 학술적인 내용을 이렇게 소화하기 쉽게 떠먹여 주는 책도 드물다. 책 소개를 시작하기에 앞서, 시간과 여력이 되는 분들께서는 직접 읽어 보기를 권한다.
1934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우크라이나 이민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인문학 학사, 물리학 석사, 천문학 및 천체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탠퍼드 대학교 의과 대학 유전학 조교수, 하버드 대학교 천문학 조교수,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 특별 초빙 연구원, 행성 협회의 공동 설립자 겸 회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자문 위원으로 보이저, 바이킹 등의 무인 우주 탐사 계획에 참여했고 과학의 대중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세계적인 지성으로 주목받았다.
행성 탐사의 난제 해결과 핵전쟁의 영향에 대한 연구로 NASA 훈장, NASA 아폴로 공로상, 구소련 우주항공연맹의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 훈장, 미국 천문학회의 마수르스키Masursky상, 미국 국립과학원의 최고상인 공공 복지 훈장 등을 받았다.
대표 저서로는 영어로 출판된 과학책 중 가장 많이 판매된 『코스모스Cosmos』(1980년)와 퓰리처Pulitzer상을 받은 『에덴의 용(The Dragons of Eden)』(1978년)이 있고, 영화화된 소설 『콘택트Contact』(1985년)가 있다. 이 외에도 『우주의 지적 생명(Intelligent Life in the Universe)』(1966년), 『화성과 인간의 마음(Mars and the Mind of Man)』(1973년),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1994년) 등을 썼다. 평생 우주에 대한 꿈과 희망을 일구던 그는 1996년 12월 20일에 골수성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은 별의 자녀요 우주의 조성 원리와 역사가 그대로 담긴 존재들이다. 하지만 우주 앞의 인간은 기꺼이 들여다보거나 논할 가치가 있는지 회의감이 들 정도로 미미하고 약소해 보인다. 이는 본지 2024년 5월 호에서 다룬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사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하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우주 앞의 인간을 다시 바라보자. 1980년 방영된, 『코스모스』와 동명의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개념인데, 약 138억 년의 우주 역사를 1년 12개월짜리 달력(Cosmic Calendar)으로 환산해 보는 것이다. 이 달력은 1월 1일 00시 00분에 빅뱅으로 우주가 태어나면서 시작한다. 달력에서의 1초가 지구상의 400년쯤 되는데, 계산해 보면 9월 초에 지구가 만들어진다. 공룡은 12월 25일 무렵 나타났다. 그럼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12월 31일 밤 11시 52분에 탄생한 것으로 나온다. 갓 태어난 아이가 부모를 알아보고 손을 뻗듯이, 우리 인류는 태어난 지 8분 만에 현대 문명을 일구었고 과학이라는 도구로 우주의 역사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작은 육체와 짧은 수명을 갖고 태어나 우주 탐사선을 타고 지구를 바라보게 된 인류의 잠재력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개인의 성장 과정에서 자아 탐색이 필연적인 절차이듯, 인류도 ‘우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여정을 계속해 왔다. 인류가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기는 한편 핵무기 경쟁이 삼엄했던 냉전 시기, 칼 세이건은 과학의 대중화로 세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자 했다. 인류에 대한 그의 따스한 시각과 냉철한 지성을 디딤돌로 삼아 우리도 우주라는 망망대해에 발을 담가 보자.
공자는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서 ‘근취저신近取諸身 원취저물遠取諸物’이라 했다. 가깝게는 내 몸에서 멀게는 삼라만상을 통해 도道, 세상만사에 대한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과 우주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이러한 인식은 언뜻 동양철학이나 도가 사상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칼 세이건은 책 도입부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이후 제1장에서는 광막한 코스모스 안에서 서서히 지구를 향해 초점을 좁혀 간다. 무한히 펼쳐진 우주 속 그저 그런 은하 가운데 그냥저냥 작은 어떤 별(항성)의 주위를 도는 행성들 가운데 하나. 한편으로는 보잘것없을지언정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아름답고 귀한 보금자리인 지구. 책이 쓰인 1980년대까지, 그리고 현재까지도 인류의 과학 기술로는 아직 지구 밖의 생명체를 만나지 못했다. 우리의 지식 범주 내에서는 이곳 지구가 유일하게 생명이 약동하는 세계다.
그렇다면 칼 세이건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왜 우주의 역사를 연구하고 외계 생명을 찾으려 노력하는 걸까? 결국 이것도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자아 탐색이다. 나는 누구지? 우리는 과연 누구며 무엇이지? 나와 지구는 우주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존재인가?
나 혼자 있을 때의 내가 아는 내 모습과 다른 사람들을 접하고 관계를 형성하면서 알게 되는 나의 모습은 분명 같지 않다. 그렇듯 인류의 특성도 인류가 아닌 다른 존재들과의 비교를 통해 분명해진다. 먼저 지구상의 생명체들과 비교해 보자. 겉보기에는 서로 뚜렷하게 다를지언정 지상 모든 생물의 생명 현상은 분자 수준에서 동질성을 드러낸다.
지상의 모든 생물이 과거로 올라가면 단 하나의 조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코스모스 도처에 널려 있는 생명의 재료 물질들 사이에 일어난 화학 반응으로 생겨났다. 그렇다면 외계의 생명은 어떨까? 그들도 우리가 역사 속에서 거쳐 온 화학 반응과 분자 결합을 경험했을까? 우리는 그들과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를까?
결국 나를 알기 위해서 외계를 탐사하는 것이고, 별의 생멸 과정을 추적해 내 몸과 이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들이 생성된 기원을 찾아낸 것이다. 세이건이 말했듯 인간과 우주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가까운 내 몸에 우주의 생성 과정이 담겨 있고, 머나먼 우주에는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반 물질이 널려 있다. 별의 자녀요 우주의 후손인 우리에 대해 칼 세이건은 이렇게 정의한다.
주로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기는 했지만, 자신에게는 미개척지인 곳을 탐험하러 나서는 건 인류사에서 보편적인 일이었다. 혹자에게는 대침략의 시대였을지도 모를 대항해 시대를 겪으며 인류는 결론적으로 이전보다 통합된 인식을 갖게 되었고, 자신과 행성에 대한 이해 수준을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연결과 앎은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 해도 아직 우리의 거주 터전과 근교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지구가 우주 중심에 있고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며 뜨고 진다는 천동설天動說(Geocentricism)이 세상에 팽배했던 시절이 있었다. 흔히들 아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에 앞서서,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us가 모든 행성은 태양의 주위를 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6세기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가 활동하던 무렵까지도 천동설은 지배적인 학설이요 서구 사회의 근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에 대한 과학자들의 답변이자 임무는 우주의 중심 무대에서 지구를, 인류를 점차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지구가 태양 주위로 끌어내려졌다. 이후 우리의 위대한 태양이 밤하늘의 작은 별들과 같은 ‘별’에 불과하며, 다른 별들과 유일하게 다른 점은 우리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것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태양도, 태양이 속한 우리 은하도 정말이지 거대한 이 우주 내에서는 그저 그렇고 그런 개체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낙담하긴 이르다. 이쯤에서 세이건이 내린 이 단락의 결론을 보고 가자.
칼 세이건은 제9장을 시작하며 문득 부엌에서 우리에게 맛있는 애플파이를 대접한다. 그러면서 시나몬 가루를 툭툭 뿌리듯 자연스럽게 애플파이를 탄소, 산소, 수소 같은 원자들이 생겨난 우주의 부엌으로 가져온다. 갑자기 무슨 맛있는 이야기를 하는가 싶겠지만 제9장 도입부를 읽어 보면 정말 내용이 그렇다.
그 우주의 부엌은 다름 아닌 별이다. 그러면서 태초의 빅뱅 이래로 수소가 있었으되 수소를 제외한 나머지 원자들은 모두 별 내부에서 만들어졌다는 제법 어려운 이야기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전개된다. 애플파이를 거듭거듭 원자 단위까지 자를 때 눈치를 챈 감 좋은 독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원자와 부엌이라고 하니 원자라는 재료를 부엌에서 뚝딱뚝딱 원하는 형태로 요리하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가? 우리는 비교적 가까운 역사 속에서 이 같은 장면들을 많이 봐 왔다. 값싼 재료들을 잘 배합해 비싼 귀금속을 만들어 내겠다 호언장담하는 이들이 서로 속고 속이는 현장, 연금술鍊金術이다. 그러나 현대 화학도 바로 이 연금술에서 기인했으며, 허황되어 보일 수 있는 연금술은 사실 원자 형성 과정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
충분히 극도로 고온인 상황에서는 허무맹랑한 연금술 같은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다. 별의 중심부처럼 온도가 대략 1000만 도 이상 되는 상황에서는 수소 원자 네 개가 만나서 헬륨 핵이 하나 만들어지는 핵융합核融合이 발생한다. 어떤 물질을 다른 물질로 바꾸는 것이 연금술의 본질 아니던가.
이쯤에서 별의 생멸 주기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성간星間 구름의 수축으로 탄생한 새로운 별은 핵융합으로 빛나며 원소를 합성하는 한편 죽음을 맞으면서는 초신성超新星 폭발을 통해 우주 속에 각종 물질을 퍼뜨리며 새로운 별과 행성의 토대가 된다.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원소가 이러한 별의 탄생과 소멸 과정에서 일어나는 연금술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생명의 기원과 진화 역시 별의 역사와 깊이 얽혀 있다.
우리는 말 그대로 우주에서 태어났고, 우주 속에서 나의 위상이 어떠한지를 걸음마를 떼듯 깨달아 왔으며, 우주가 나를 어떻게 탄생시켰는지를 원자 단위까지 추적해 왔다. 우주의 후손이자 별의 자녀인 우리는 그럼 계속 이렇게 살아가면 되는 걸까? 이쯤에서 칼 세이건은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의 입을 빌려 제13장을 시작한다.
굳이 한 번 더 짚자면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1690년경에 위와 같은 글을 남겼다. 그런데 왜 저 문장들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굉장히 유효할 것만 같을까? 인류의 호전성, 극단적 이념, 광신과 맹목적 복종 등 인류 사회의 평화를 깨뜨리는 습성들은 어쩌면 이다지도 끈질기게 남아 있을까? 별의 재 속에서 태어난 인류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 우주를 탐험하기에 이르렀으면서도 왜 우주 탐사에 쓰이는 바로 그 기술들로 자신을 무장하고 적들을 짓밟으려 애쓰는가?
칼 세이건은 냉전 체제 당시 핵무기 경쟁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인류는, 적어도 지도층은 확실히 전쟁과 불신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으며 핵무기 경쟁 속에서 스스로 협박범이자 인질이 되었다. 이 상황을 한발 떨어져서 살펴보면 어떻게 보이겠는가. 외계인의 시선에서 본다면 우리 문명은 자기 파괴의 위험 앞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에서는 노예제가 폐지되고, 흑백 분리 정책이 철폐되었으며, 또한 세계적으로 여성 권리가 확장되는 등 세계사는 점진적으로 진보해 오기도 했다. 이러한 긍정적인 면모에도 시선을 기울이며 칼 세이건은 인간이 자신의 야수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견해에 힘을 실어 준다.
인류는 앞서 말한 여러 부정적인 측면 외에도 연민과 사랑, 지적 탐구에 대한 열정 등 긍정적인 측면도 많이 가지고 있다. 태양계 외곽에서만 바라봐도 고작 창백한 푸른 점에 지나지 않는 작은 행성 위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미래로 나아가야 하겠는가. 인류는 이미 가족 단위, 마을과 부족 단위, 국가 단위로 사랑과 신뢰와 충성의 범위를 넓혀 온 전적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로 파괴가 아니라 이해와 생존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별에서 태어나 별을 사유하는 유기체로 거듭났다. 이제 우리 인류는 우주 시민으로 거듭나 우리를 낳은 코스모스에 대한 책임과 감사 속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포용해야 하지 않을까. 이와 관련된 증산도 『도전道典』 성구를 함께 살펴보며 글을 마친다.
형제가 환란이 있는데 어찌 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사해四海 내에는 다 형제니라. (도전道典 8:93:5) ■


우리, 생각보다 우주적으로 뭐 되는 존재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의 저서 『코스모스COSMOS』는 이름 높은 서적이니만큼 다양한 감상과 의견이 있겠지만 이 글을 쓰면서는 한때 많이 보이던 유행어 중 ‘너 뭐 돼?’라는 말이 떠올랐다. ‘네가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냐?’라는 뜻을 함축한 문장인데, 이 책은 ‘너 뭐 돼?’라는 질문에 대해 우주적인 관점에서 답을 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답변은 여러 각도에서 이루어지지만 압축하자면 이렇다. 천문학과 과학의 발전은 인간과 지구를 우주의 주인공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우주에서 태어나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는 존재로 자라났다. 또한 과학적으로 우리 인간은 별의 구성 성분으로 이뤄진, 우주와 별의 역사가 담겨 있는 유기체임이 드러났다.
천체물리학적으로 우주 앞의 인간은 한낱 먼지만도 못한 존재인 동시에 거대한 우주를 탐구하는 별의 조각들이다. 이 별 조각들은 그동안 자신들을 태어나게 한 이 세상과 우주를 어떻게 탐구하고 탐사해 왔을까? 우리보다 먼저 살았던 역사 속의 선배들은 인류사에서 어떤 발전과 착오를 겪었으며, 앞으로 우리 인류는 무엇을 위해 노력을 쏟고 어떠한 것을 염두에 두며 살아가야 할까?
이 책에서 제시하는 답변과 비전에 가슴 깊이 공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큰 감흥이 없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시대의 명저는 별의 자녀들로 하여금 깊이 고찰할 만한 내용을 한가득 퍼부어 준다. 독서와 거리가 먼 이들에게는 책의 두께부터가 도전을 망설이게 만들 만하다. 하지만 책장을 펼쳐 보면 생각보다는 내용이 말랑말랑하다고 느끼는 독자들이 제법 있지 않을까 싶다. 필자의 짧은 식견으로 봐도 이 정도로 깊이 있고 학술적인 내용을 이렇게 소화하기 쉽게 떠먹여 주는 책도 드물다. 책 소개를 시작하기에 앞서, 시간과 여력이 되는 분들께서는 직접 읽어 보기를 권한다.
저자 소개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우크라이나 이민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인문학 학사, 물리학 석사, 천문학 및 천체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탠퍼드 대학교 의과 대학 유전학 조교수, 하버드 대학교 천문학 조교수,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 특별 초빙 연구원, 행성 협회의 공동 설립자 겸 회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자문 위원으로 보이저, 바이킹 등의 무인 우주 탐사 계획에 참여했고 과학의 대중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세계적인 지성으로 주목받았다.
행성 탐사의 난제 해결과 핵전쟁의 영향에 대한 연구로 NASA 훈장, NASA 아폴로 공로상, 구소련 우주항공연맹의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 훈장, 미국 천문학회의 마수르스키Masursky상, 미국 국립과학원의 최고상인 공공 복지 훈장 등을 받았다.
대표 저서로는 영어로 출판된 과학책 중 가장 많이 판매된 『코스모스Cosmos』(1980년)와 퓰리처Pulitzer상을 받은 『에덴의 용(The Dragons of Eden)』(1978년)이 있고, 영화화된 소설 『콘택트Contact』(1985년)가 있다. 이 외에도 『우주의 지적 생명(Intelligent Life in the Universe)』(1966년), 『화성과 인간의 마음(Mars and the Mind of Man)』(1973년),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1994년) 등을 썼다. 평생 우주에 대한 꿈과 희망을 일구던 그는 1996년 12월 20일에 골수성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찰나의 작은 몸으로 무한한 세계를 꿈꾸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은 별의 자녀요 우주의 조성 원리와 역사가 그대로 담긴 존재들이다. 하지만 우주 앞의 인간은 기꺼이 들여다보거나 논할 가치가 있는지 회의감이 들 정도로 미미하고 약소해 보인다. 이는 본지 2024년 5월 호에서 다룬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사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하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우주 앞의 인간을 다시 바라보자. 1980년 방영된, 『코스모스』와 동명의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개념인데, 약 138억 년의 우주 역사를 1년 12개월짜리 달력(Cosmic Calendar)으로 환산해 보는 것이다. 이 달력은 1월 1일 00시 00분에 빅뱅으로 우주가 태어나면서 시작한다. 달력에서의 1초가 지구상의 400년쯤 되는데, 계산해 보면 9월 초에 지구가 만들어진다. 공룡은 12월 25일 무렵 나타났다. 그럼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12월 31일 밤 11시 52분에 탄생한 것으로 나온다. 갓 태어난 아이가 부모를 알아보고 손을 뻗듯이, 우리 인류는 태어난 지 8분 만에 현대 문명을 일구었고 과학이라는 도구로 우주의 역사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작은 육체와 짧은 수명을 갖고 태어나 우주 탐사선을 타고 지구를 바라보게 된 인류의 잠재력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인류는 겁도 없이 우주라는 바다의 물맛을 보았고 그것이 자신의 기호에 딱 들어맞는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인간의 본성이 우주라는 큰 바다와 공명을 이루며 인류의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한 뜨거운 그 무엇이 우주를 자신의 편안한 집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사람이 별의 재에서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일까? 인류의 기원과 진화가 우주에서 진행된 모든 사건들과 밀접하게 묶여 있기 때문은 아닐까?
- 『코스모스』 책 13장 631쪽
- 『코스모스』 책 13장 631쪽
개인의 성장 과정에서 자아 탐색이 필연적인 절차이듯, 인류도 ‘우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여정을 계속해 왔다. 인류가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기는 한편 핵무기 경쟁이 삼엄했던 냉전 시기, 칼 세이건은 과학의 대중화로 세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자 했다. 인류에 대한 그의 따스한 시각과 냉철한 지성을 디딤돌로 삼아 우리도 우주라는 망망대해에 발을 담가 보자.
책의 주요 내용
코스모스로 향하는 작은 코스모스
공자는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서 ‘근취저신近取諸身 원취저물遠取諸物’이라 했다. 가깝게는 내 몸에서 멀게는 삼라만상을 통해 도道, 세상만사에 대한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과 우주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이러한 인식은 언뜻 동양철학이나 도가 사상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칼 세이건은 책 도입부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우리도 코스모스의 일부이다. 이것은 결코 시적 수사修辭가 아니다. 인간과 우주는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연결돼 있다. 인류는 코스모스에서 태어났으며 인류의 장차 운명도 코스모스와 깊게 관련되어 있다. 인류 진화의 역사에 있었던 대사건들뿐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까지도 따지고 보면 하나같이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기원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 책 머리말 22쪽
- 책 머리말 22쪽
이후 제1장에서는 광막한 코스모스 안에서 서서히 지구를 향해 초점을 좁혀 간다. 무한히 펼쳐진 우주 속 그저 그런 은하 가운데 그냥저냥 작은 어떤 별(항성)의 주위를 도는 행성들 가운데 하나. 한편으로는 보잘것없을지언정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아름답고 귀한 보금자리인 지구. 책이 쓰인 1980년대까지, 그리고 현재까지도 인류의 과학 기술로는 아직 지구 밖의 생명체를 만나지 못했다. 우리의 지식 범주 내에서는 이곳 지구가 유일하게 생명이 약동하는 세계다.
돌이켜 보건대 인류는 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잠시 지구라 불리는 세계에 몸을 담고 살고 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원초적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감히 그 기나긴 여정의 첫발을 내딛고자 하는 것이다.
- 책 1장 46~47쪽
- 책 1장 46~47쪽
그렇다면 칼 세이건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왜 우주의 역사를 연구하고 외계 생명을 찾으려 노력하는 걸까? 결국 이것도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자아 탐색이다. 나는 누구지? 우리는 과연 누구며 무엇이지? 나와 지구는 우주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존재인가?
나 혼자 있을 때의 내가 아는 내 모습과 다른 사람들을 접하고 관계를 형성하면서 알게 되는 나의 모습은 분명 같지 않다. 그렇듯 인류의 특성도 인류가 아닌 다른 존재들과의 비교를 통해 분명해진다. 먼저 지구상의 생명체들과 비교해 보자. 겉보기에는 서로 뚜렷하게 다를지언정 지상 모든 생물의 생명 현상은 분자 수준에서 동질성을 드러낸다.
지상의 모든 생물이 과거로 올라가면 단 하나의 조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코스모스 도처에 널려 있는 생명의 재료 물질들 사이에 일어난 화학 반응으로 생겨났다. 그렇다면 외계의 생명은 어떨까? 그들도 우리가 역사 속에서 거쳐 온 화학 반응과 분자 결합을 경험했을까? 우리는 그들과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를까?
결국 나를 알기 위해서 외계를 탐사하는 것이고, 별의 생멸 과정을 추적해 내 몸과 이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들이 생성된 기원을 찾아낸 것이다. 세이건이 말했듯 인간과 우주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가까운 내 몸에 우주의 생성 과정이 담겨 있고, 머나먼 우주에는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반 물질이 널려 있다. 별의 자녀요 우주의 후손인 우리에 대해 칼 세이건은 이렇게 정의한다.
인류는 대폭발의 아득히 먼 후손이다. 우리는 코스모스에서 나왔다. 그리고 코스모스를 알고자, 더불어 코스모스를 변화시키고자 태어난 존재이다.
- 책 1장 61쪽
- 책 1장 61쪽
우물 안 개구리가 만난 무한한 세계

주로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기는 했지만, 자신에게는 미개척지인 곳을 탐험하러 나서는 건 인류사에서 보편적인 일이었다. 혹자에게는 대침략의 시대였을지도 모를 대항해 시대를 겪으며 인류는 결론적으로 이전보다 통합된 인식을 갖게 되었고, 자신과 행성에 대한 이해 수준을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연결과 앎은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 해도 아직 우리의 거주 터전과 근교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지구가 우주 중심에 있고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며 뜨고 진다는 천동설天動說(Geocentricism)이 세상에 팽배했던 시절이 있었다. 흔히들 아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에 앞서서,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us가 모든 행성은 태양의 주위를 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6세기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가 활동하던 무렵까지도 천동설은 지배적인 학설이요 서구 사회의 근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에 대한 과학자들의 답변이자 임무는 우주의 중심 무대에서 지구를, 인류를 점차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지구가 태양 주위로 끌어내려졌다. 이후 우리의 위대한 태양이 밤하늘의 작은 별들과 같은 ‘별’에 불과하며, 다른 별들과 유일하게 다른 점은 우리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것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태양도, 태양이 속한 우리 은하도 정말이지 거대한 이 우주 내에서는 그저 그렇고 그런 개체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낙담하긴 이르다. 이쯤에서 세이건이 내린 이 단락의 결론을 보고 가자.
인류사의 위대한 발견과 대면하게 될 때마다 우주에서 인류의 지위는 점점 강등됐다. …… 그리고 우리 가슴과 가슴 깊숙한 곳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초점이며 지렛대의 받침목이기를 바라는 아쉬움이 아직 숨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녕 코스모스와 겨루고자 한다면 먼저 겨룸의 상대인 코스모스를 이해해야 한다. …… 우리의 행성 지구가 우주에서 중요한 존재로 남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지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용기와 던져진 질문에 대한 깊이 있는 답변만이 우주에서 지구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 책 7장 386쪽
- 책 7장 386쪽
별들의 생애 주기 속에서 태어난 인류
칼 세이건은 제9장을 시작하며 문득 부엌에서 우리에게 맛있는 애플파이를 대접한다. 그러면서 시나몬 가루를 툭툭 뿌리듯 자연스럽게 애플파이를 탄소, 산소, 수소 같은 원자들이 생겨난 우주의 부엌으로 가져온다. 갑자기 무슨 맛있는 이야기를 하는가 싶겠지만 제9장 도입부를 읽어 보면 정말 내용이 그렇다.
그 우주의 부엌은 다름 아닌 별이다. 그러면서 태초의 빅뱅 이래로 수소가 있었으되 수소를 제외한 나머지 원자들은 모두 별 내부에서 만들어졌다는 제법 어려운 이야기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전개된다. 애플파이를 거듭거듭 원자 단위까지 자를 때 눈치를 챈 감 좋은 독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원자와 부엌이라고 하니 원자라는 재료를 부엌에서 뚝딱뚝딱 원하는 형태로 요리하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가? 우리는 비교적 가까운 역사 속에서 이 같은 장면들을 많이 봐 왔다. 값싼 재료들을 잘 배합해 비싼 귀금속을 만들어 내겠다 호언장담하는 이들이 서로 속고 속이는 현장, 연금술鍊金術이다. 그러나 현대 화학도 바로 이 연금술에서 기인했으며, 허황되어 보일 수 있는 연금술은 사실 원자 형성 과정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
충분히 극도로 고온인 상황에서는 허무맹랑한 연금술 같은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다. 별의 중심부처럼 온도가 대략 1000만 도 이상 되는 상황에서는 수소 원자 네 개가 만나서 헬륨 핵이 하나 만들어지는 핵융합核融合이 발생한다. 어떤 물질을 다른 물질로 바꾸는 것이 연금술의 본질 아니던가.
성간 공간에 이렇게 공급된 물질들은 별의 핵융합 반응에서 쉽게 합성된 원소들로 구성돼 있다. 즉 거의 모든 별의 내부에서는 수소에서 헬륨이, 헬륨에서 탄소와 산소가 만들어진다. 질량이 비교적 큰 별들에서는 헬륨의 핵이 단계적으로 첨가되면서 네온, 마그네슘, 규소, 황 등의 순으로 무거운 원소들이 합성된다.
- 책 9장 456~457쪽
- 책 9장 456~457쪽
이쯤에서 별의 생멸 주기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성간星間 구름의 수축으로 탄생한 새로운 별은 핵융합으로 빛나며 원소를 합성하는 한편 죽음을 맞으면서는 초신성超新星 폭발을 통해 우주 속에 각종 물질을 퍼뜨리며 새로운 별과 행성의 토대가 된다.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원소가 이러한 별의 탄생과 소멸 과정에서 일어나는 연금술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생명의 기원과 진화 역시 별의 역사와 깊이 얽혀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잘 알고 지내는 원소들의 과거를 되돌아보자. 그것들은 일단 별 내부에서 합성되어 성간 공간으로 나간 다음, 거기서 성간운의 구성 성분으로 남아 있다가, 그 성간운에서 중력 수축이 이루어지면 그 결과 차세대의 별과 행성의 구성 성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것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 곁에 가까이 올 수 있었다. 사실 원자적 수준에서 본다면 우리도 그런 경로를 거쳐서 여기에 와 있는 것이다. …… 우리의 DNA를 이루는 질소, 치아를 구성하는 칼슘, 혈액의 주요 성분인 철, 애플파이에 들어 있는 탄소 등의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조리 별의 내부에서 합성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별의 자녀들이다.
- 책 9장 457~458쪽
- 책 9장 457~458쪽
우주와 별의 자녀로서 나아가야 할 길
우리는 말 그대로 우주에서 태어났고, 우주 속에서 나의 위상이 어떠한지를 걸음마를 떼듯 깨달아 왔으며, 우주가 나를 어떻게 탄생시켰는지를 원자 단위까지 추적해 왔다. 우주의 후손이자 별의 자녀인 우리는 그럼 계속 이렇게 살아가면 되는 걸까? 이쯤에서 칼 세이건은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의 입을 빌려 제13장을 시작한다.
지구 도처에서 끔찍한 음모를 꾸미고 끝없는 바다를 정복한다고 법석을 떨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가 그런 짓을 하면 할수록 지구의 모습은 바깥세상의 천체들에 비해서 더욱더 초라해 보일 뿐이다. 제왕과 왕자들은 반성할지어다. 그대들은 하나의 점에 불과한, 그래서 어쩌면 불쌍해 보이기조차 하는 보잘것없는 한구석의 주인이 되고자 그렇게도 많은 인명을 희생시켜야만 하는가?(크리스티안 하위헌스, 『천상계의 발견』, 1690년경)
- 책 13장 629쪽
- 책 13장 629쪽
굳이 한 번 더 짚자면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1690년경에 위와 같은 글을 남겼다. 그런데 왜 저 문장들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굉장히 유효할 것만 같을까? 인류의 호전성, 극단적 이념, 광신과 맹목적 복종 등 인류 사회의 평화를 깨뜨리는 습성들은 어쩌면 이다지도 끈질기게 남아 있을까? 별의 재 속에서 태어난 인류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 우주를 탐험하기에 이르렀으면서도 왜 우주 탐사에 쓰이는 바로 그 기술들로 자신을 무장하고 적들을 짓밟으려 애쓰는가?
칼 세이건은 냉전 체제 당시 핵무기 경쟁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인류는, 적어도 지도층은 확실히 전쟁과 불신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으며 핵무기 경쟁 속에서 스스로 협박범이자 인질이 되었다. 이 상황을 한발 떨어져서 살펴보면 어떻게 보이겠는가. 외계인의 시선에서 본다면 우리 문명은 자기 파괴의 위험 앞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에서는 노예제가 폐지되고, 흑백 분리 정책이 철폐되었으며, 또한 세계적으로 여성 권리가 확장되는 등 세계사는 점진적으로 진보해 오기도 했다. 이러한 긍정적인 면모에도 시선을 기울이며 칼 세이건은 인간이 자신의 야수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견해에 힘을 실어 준다.
인류는 앞서 말한 여러 부정적인 측면 외에도 연민과 사랑, 지적 탐구에 대한 열정 등 긍정적인 측면도 많이 가지고 있다. 태양계 외곽에서만 바라봐도 고작 창백한 푸른 점에 지나지 않는 작은 행성 위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미래로 나아가야 하겠는가. 인류는 이미 가족 단위, 마을과 부족 단위, 국가 단위로 사랑과 신뢰와 충성의 범위를 넓혀 온 전적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로 파괴가 아니라 이해와 생존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별에서 태어나 별을 사유하는 유기체로 거듭났다. 이제 우리 인류는 우주 시민으로 거듭나 우리를 낳은 코스모스에 대한 책임과 감사 속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포용해야 하지 않을까. 이와 관련된 증산도 『도전道典』 성구를 함께 살펴보며 글을 마친다.
형제가 환란이 있는데 어찌 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사해四海 내에는 다 형제니라. (도전道典 8: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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