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 속에 담긴 시간과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우리말 시간 여행
오늘의 우리말 [배달]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가장 신기해하는 문화 중 하나는 단연 ‘배달’입니다. 음식부터 생필품까지 클릭 몇 번이면 집 앞까지 오는 놀라운 시스템이죠. 하지만 오늘 이야기할 ‘배달’은 물건을 전해 주는 서비스가 아닙니다. 똑같은 발음이지만,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역사가 담긴 전혀 다른 의미의 ‘배달’입니다.

먼저 ‘배달’의 언어 구조를 살펴볼까요? 이 말은 ‘밝다’를 뜻하는 ‘밝’과 ‘땅’이나 ‘곳’을 의미하는 ‘달’이 합쳐진 순우리말입니다. ‘밝’은 시간이 흐르며 ‘박’, ‘백’, ‘배’로 변화했고, ‘달’은 고구려 지명 등에서 ‘산山’이나 ‘고처高處’, ‘높은 곳’을 뜻하는 말로 쓰였습니다. ‘아사달阿斯達’, ‘달구벌達句伐’에서 보듯이 말이죠. 결국 ‘배달’은 ‘밝은 땅’, ‘빛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배달민족’, 즉 밝은 땅에 사는 겨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배달’은 언제부터 우리와 연결되었을까요?
고대 사서들에 따르면 고조선 이전에 ‘배달국倍達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환웅천황이 3천 명의 개척단과 함께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세운 나라죠.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비롯해 『환단고기桓檀古記』 『응제시주應製詩註』등 여러 사서에는 배달국이 18세를 이어 1,565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흥미로운 연결 고리 하나가 더 있습니다. 단군왕검檀君王儉이 나라를 세웠다는 신단수神檀樹, 그 박달나무도 ‘배달’과 같은 뿌리입니다. 박달나무의 ‘박달’은 ‘밝은 달’에서 온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박달나무를 신성시하여 건국 신화에도 단군왕검이 박달나무 아래서 신시를 열었다고 전해지고, 단군의 ‘단’도 박달나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배달’, ‘박달’, ‘단’이 모두 ‘밝은 것, 광명光明’과 관련된 말이라는 것이죠.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빛과 밝음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배달’, 이 작은 말 속에는 우리 겨레의 뿌리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근대에 들어와서 ‘배달’이라는 말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소중한 용어가 되었습니다.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은 일제가 ‘국어’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하자, 우리의 말과 글을 ‘배달말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1911년에는 아예 학회 이름을 ‘배달말글몯음’으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의 주도로 만주와 중국 곳곳에 배달촌, 배달농장, 배달학교가 세워졌고, 배달학회, 배달청년회, 『배달공론』이라는 잡지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이들에게 ‘배달’은 단순한 역사 용어가 아니라 조국 광복의 염원을 담은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고대의 밝은 땅에서 시작해서, 배달국과 고조선을 거쳐,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정신의 상징이 되었고, 오늘날에는 또 다른 의미로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음식을 주문하실 때, 잠깐 이런 생각을 해 보면 어떨까요?
‘아, 내가 지금 배달민족의 후손으로서 이 밝은 땅에서 살고 있구나.’
우리가 쓰는 말 하나하나에 깊은 역사가 담겨 있다는 것, 기억하며 살아갑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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