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의 신흥 강국 - 말레이시아
[세계지역문화탐방]

[뽑은 글]
말레이반도와 보르네오섬 북부에 있는 동남아시아의 연방 입헌군주제 국가인 말레이시아는 다민족⋅다문화 사회이면서 독특한 정치 체제(선거군주제)를 가지고 있다.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브루나이 등과 인접하고 있고 풍부한 천연자원과 관광 자원 덕분에 ‘동남아시아의 신흥 공업국’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한눈에 보는 말레이시아

국기國旗

여행 정보

국명
말레이인의 땅
말레이시아Malaysia는 ‘Malay(말레이) + -sia(땅, 나라)’의 결합으로 흔히 ‘말레이인의 땅, 나라’ 정도로 이해되며, 말레이어로는 ‘말레이시아Malaysia’라고 그대로 표기한다. 다만 현대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중국계⋅인도계⋅원주민 등 다양한 민족을 포괄하는 다민족 국가라는 점에서, 국호는 역사적⋅문화적 핵심 집단을 가리키는 동시에 현대에는 포괄적 국가 정체성으로 재해석해 볼 수 있다. ‘말레이Malay’라는 표현은 ‘믈라유Melayu’라고도 통칭하는데 둘 다 어원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타밀어로 산을 의미하는 말랄Malal과 도시, 땅을 의미하는 우르ur의 합성어로 추정해 볼 뿐이다.

지리와 기후
말레이반도와 브르네오섬 북부로 나뉘어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인 말레이Malay반도(서말레이시아)와 보르네오Borneo섬 북부(동말레이시아)에 걸쳐 위치하며, 남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뉘어 있다. 북쪽으로 태국, 남쪽으로 싱가포르⋅인도네시아, 동쪽으로 브루나이⋅남중국해, 서쪽으로 믈라카 해협과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해상 교통의 요지로,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관문에 자리하여, 동서 무역로⋅에너지 수송로의 핵심 허브로서 높은 지정학적 중요성이 있다.
서말레이시아의 면적은 약 13만제곱킬로미터이고, 동말레이시아의 면적은 약 20만제곱킬로미터로 한반도보다 약간 작다. 면적이 더 작지만, 인구의 거의 80퍼센트는 수도가 위치한 서말레이시아(말레이반도)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수도 쿠알라룸푸르가 위치한 반도의 서부와 그 수도권 지역인 클랑 밸리Klang Valley의 집중화가 강해, 중앙의 산맥과 정글 너머의 반도 동부 지역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다.
적도의 바로 윗부분인 북반구 저위도 지역에 위치하여, 국토 대다수가 열대 우림으로 덮여 있어 연중 고온 다습한 기후가 유지되는데, 이러한 습한 날씨를 피해 시원한 고지대에서 휴식을 취하는 카메론 하이랜드Cameron Highlands와 같은 고원 휴양지가 발달하였다. 특히 보르네오의 키나발루Kinabalu산은 해발 4,095미터에 달하는 험준한 지형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어 있으며, 이곳에서만 자라는 세계 최대의 꽃 ‘라플레시아Rafflesia’는 말레이시아 자연의 신비로움을 상징한다.
역사 History
교역로의 중심지에서 성장한 국가
고대부터 해상 무역의 거점이었던 말레이시아는 15세기 믈라카 술탄국(Malacca Sultanate) 시절 국제 무역의 황금기를 구가하며 이슬람 문화를 꽃피웠다. 이후 450여 년간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 지배를 거치며 서구 문물과 동양의 전통이 복잡하게 얽히는 문화를 구축했다. 특히 영국의 지배 아래 대규모로 유입된 중국인과 인도인 노동자들은 오늘날 말레이시아의 다민족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축이 되었으며, 1957년 독립 이후 1963년 사바Sabah와 사라왁Sarawak을 포함한 연방을 결성하며 현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고대 및 힌두-불교 왕국 시대
(2~14세기)
말레이반도는 일찍부터 인도와 중국을 잇는 해상 무역의 거점으로 발달하였다. 7세기경 수마트라 기반의 스리위자야Sriwijaya 제국이 반도를 지배하며 힌두교와 불교 문화를 전파하였고, 랑카수카Langkasuka와 같은 초기 소왕국들이 해안가를 중심으로 번성하였다. 이 시기에 유입된 인도 문화는 오늘날 말레이시아 문화의 깊은 뿌리가 되었다.
말레이 왕실의 즉위식 절차나 용어, 그리고 혼례식에서 신랑과 신부를 하루 동안 왕과 왕비처럼 대접하는 ‘버르산딩Bersanding’ 풍습은 힌두교의 왕실 예법에서 유래하였다. 또한, 말레이어 단어 중 상당수가 산스크리트어에서 파생되어 언어적 기틀을 마련하였다.
믈라카 술탄국과 이슬람의 확산
(15세기~1511년)
1400년경 파라메스와라 왕이 건국한 믈라카(말라카) 술탄국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번영한 무역항으로 성장하였다. 왕이 이슬람교로 개종하면서 말레이반도 전역에 이슬람교가 급속히 퍼졌으며, 명明나라 정화 함대의 방문을 통해 중국과의 외교 관계도 공고히 하였다.
또한 중국 상인들과 현지 여성이 결혼하여 형성된 바바 뇨냐 문화*가 등장하여, 중국식 재료와 말레이식 향신료가 결합한 독특한 식문화와 의복(케바야kebaya)을 탄생시켰다.
*바바뇨냐Baba Nyonya 문화 - 혈통은 중국인이지만, 생활 방식은 말레이와 서구(영국)의 문화를 절묘하게 혼합한 페라나칸Peranakan 문화를 말한다. 중국인 남성과 말레이시아(말라카) 여성 사이의 혼인으로 형성된 집단을 ‘페라나칸’이라고 칭하며,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 중 남성을 ‘바바Baba’, 여성을 ‘뇨냐Nyonya’라고 부른다.

서구 열강의 침입과 식민 지배 시대
(1511~1941)
1511년 포르투갈이 믈라카를 점령한 이후, 네덜란드를 거쳐 18세기 말부터는 영국의 본격적인 식민 통치가 시작되었다. 영국은 주석과 고무 산업을 위해 중국인과 인도인 노동자를 대거 유입시켰으며, 이는 말레이시아가 다민족 국가로 변모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서구의 교육 체계와 사법 제도가 도입되었으며, 크리스마스와 같은 기독교 축제가 공휴일로 포함되었다. 각 민족이 섞여 살면서도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오픈 하우스Open House’ 정신이 이 시기의 갈등 속에서도 서서히 싹트기 시작하였다.
일본 점령기와 독립 투쟁
(1941~1957)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영국군을 몰아내고 3년여간 말레이시아를 점령하였다. 이 시기에 자행된 일본의 가혹한 수탈은 역설적으로 말레이인들의 민족 자결주의를 자극하였고, 전쟁 종료 후 영국 체제로 복귀하는 대신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는 운동으로 이어졌다. 전쟁의 고통을 함께 겪으며 ‘말레이시아인’이라는 집단 정체성이 강화되었다. 일본군에 저항했던 경험은 독립 이후 국가 안보와 애국심을 강조하는 문화적 토대가 되었으며, 1957년 8월 31일 독립 선언 당시 울려 퍼진 ‘머르데카Merdeka(독립)!’라는 외침은 오늘날까지도 국가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연방 결성과 현대 국가 시대
(1963~현재)
1963년 말라야 연방에 사바(북보르네오), 사라왁, 싱가포르가 합쳐져 ‘말레이시아 연방’이 탄생하였다(1965년 싱가포르 탈퇴). 말레이시아는 1970년대 이후 경제 개발 정책과 1980년대 마하티르Mahathir 총리의 ‘룩 이스트 정책’(Look East Policy: 일본, 한국 등 동북아 국가들의 성장 사례를 배우자는 동방 정책)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으며, 현대적인 이슬람 국가의 모델로 성장하였다.
현대 말레이시아는 첨단 기술과 전통이 공존한다. 쿠알라룸푸르의 마천루 아래에서 전통 시장이 활기를 띠며,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젊은 층도 명절에는 전통 의상을 갖춰 입고 고향을 찾는 ‘발릭 캄풍Balik Kampung(귀성)’ 풍습을 철저히 지킨다. 또한, 힌두교 축제인 타이푸삼Thaipusam 때 바투Batu 동굴에서 행해지는 고행 의식은 이제 단순한 종교 행사를 넘어 말레이시아의 다채로운 문화를 보여 주는 세계적인 관광 자원으로 발전하였다.

영토의 동서 분리: 식민 지배의 유산과 연방의 형성
말레이시아가 지리적으로 약 600킬로미터 이상의 남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영국 식민 지배의 확장 과정에 있다. 19세기 영국은 말레이반도뿐만 아니라 보르네오섬 북부 지역까지 세력을 넓혔는데, 당시 반도는 영국 정부가 직접 혹은 간접 통치했던 반면, 보르네오의 사라왁은 영국인 제임스 브룩James Brooke 가문이 세운 ‘백인 술탄국’이, 사바는 ‘북보르네오 회사’라는 상업 자본이 지배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이 지역들을 정리하며 독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인종적⋅문화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이들 지역을 하나의 연방으로 묶기로 합의하면서 오늘날의 독특한 ‘두 개의 영토’ 구조가 완성되었다.
이러한 지리적 분리는 말레이시아에 다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정치⋅사회적으로는 반도 중심의 중앙 정부와 보르네오 지역(사바⋅사라왁) 사이의 자치권 분쟁이 지속적인 화두가 되고 있다. 보르네오 지역은 반도와는 다른 독자적인 이민 통제권과 자원 관리권을 보유하며 강한 자치성을 띠게 되었다. 경제적으로는 동말레이시아의 풍부한 천연가스, 석유, 석탄 등 천연자원이 국가 재정의 큰 축을 담당하게 되었으나, 동시에 기반 시설 개발 격차라는 숙제도 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문화적으로는 이슬람 중심의 반도와 달리, 토착 부족과 기독교 비중이 높은 동말레이시아의 특성이 더해지면서 말레이시아는 더 복합적이고 풍성한 다원주의 사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싱가포르의 말레이시아 연방 가입과 분리 독립 과정
1963년 싱가포르Singapore는 공산주의 세력의 위협을 막고 경제적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말라야 연방, 사바, 사라왁과 합쳐져 ‘말레이시아’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나 통합 직후부터 리콴유가 이끄는 싱가포르 자치 정부와 쿠알라룸푸르의 중앙 정부는 국가 운영 방침을 두고 격렬하게 대립하였다. 말레이인의 특권적 지위를 옹호하는 중앙 정부의 정책에 맞서, 싱가포르는 모든 인종의 평등을 주장하며 정치적 충돌을 빚었다. 결국 인종 폭동까지 발생하며 갈등이 극에 달하자,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였던 툰쿠 압둘 라만Tunku Abdul Rahman은 연방의 안정을 위해 싱가포르의 축출을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1965년 8월 9일, 싱가포르는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강제로 분리되어 독립 국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정치 제도
역사적 흐름에서 태어난 독특한 운영체제
말레이시아는 연방 입헌 선출군주제(constitutional elective monarchy)와 의원내각제라는 매우 독특한 형태의 정치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국가 원수는 5년 임기의 국왕 ‘양 디페르투안 아공Yang di-Pertuan Agong’으로, 9개 말레이 세습 술탄 가운데서 순번제로 선출되는 세계 유일의 순번제 입헌군주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왕권과 영국의 의회 민주주의를 결합한 독특한 형태이며, 국왕은 국가의 통합과 이슬람교의 수호자로서 국민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는다.
정부 수반은 총리로, 의회 다수파를 이끄는 인물이 국왕에 의해 임명되며 내각을 구성한다. 실질적인 정치는 다수당의 영수인 총리가 주도하며, 복잡한 인종 구성만큼이나 민족 간의 권력 분점과 화합이 정치 운영의 핵심 과제로 다루어진다.
선출형 순번제 입헌군주제
‘선출형 순번제 입헌군주제’는 1957년 독립 당시, 각 지역을 다스리던 전통적인 통치자(술탄)들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민주적인 연방제를 결합하기 위해 고안된 타협의 산물이다. 현 국왕 선출은 통치자 회의를 통해 공식화되며,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미리 정해진 차례로 왕위가 계승되는데, 이러한 방식은 특정 왕가의 독점을 막고 각 주의 평등과 통합을 상징하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국왕은 헌법상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에 따라 실질적인 행정권은 총리에게 맡기고 본인은 국가의 통합을 상징하는 의례적인 임무를 수행한다. 국왕은 이슬람교의 수호자이자 군 통수권자로서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총리 임명권과 의회 해산 승인권 같은 형식적인 권한을 보유한다. 그러나 최근 말레이시아 정치권에서 정당 간의 세력 균형이 무너지고 연립 정부 구성이 난항을 겪을 때마다, 국왕이 중재자로서 직접 총리를 지명하거나 정치적 위기를 해결하는 등 그 영향력이 과거보다 실질적으로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말레이시아의 왕정은 단순한 전통의 보존을 넘어, 다민족⋅다종교 사회에서 갈등을 조율하고 국가의 안정을 유지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치 발전의 걸림돌
말레이시아에는 한 정당의 장기 집권과 선거 부정, 정치 극단주의, 국수주의, 태형과 같은 전근대적인 형벌 제도, 제노포비아Xenophobia(외국인 혐오증) 정책, 인종 차별, 이슬람 근본주의에 입각하는 불공정한 판결과 정책, 낮은 언론 자유도와 정부의 언론 탄압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존재하여 정치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입법⋅행정⋅사법
입법부는 양원제 의회로, 하원(Dewan Rakyat, 국민의회)은 국민 직선, 상원(Dewan Negara, 국가 회의)은 주의회 선출 및 국왕 임명으로 구성된다.
행정권은 총리와 각 부처 장관이 구성하는 내각이 행사하며, 사법부는 형식상 독립이지만 판사 임명 등에 행정부 영향력이 존재한다는 평가도 있다.

행정구역과 주요 도시
행정구역은 13개 주(State)와 3개 연방 직할구(Federal Territory)로 구성되어 있다. 주 정부는 주 헌법⋅주 의회⋅멘트리 베사Menteri Besar(주 수상) 또는 수석장관을 통해 교육⋅종교⋅토지 등 일부 권한을 행사한다.
13개 주: 조호르Johor, 케다Kedah, 켈란탄Kelantan, 믈라카Melaka(말라카Malaka), 네게리셈빌란Negeri sembilan, 파항Pahang, 페락Perak, 페를리스Perlis, 페낭Penang(피낭Pinang), 사바Sabah, 사라왁Sarawak, 슬랑오르Selangor, 트렝가누Terengganu.
3개 연방직할구: 수도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 행정수도 푸트라자야Putrajaya, 보르네오의 라부안Labuan.
현대적인 마천루가 즐비한 수도 쿠알라룸푸르는 세계적인 랜드마크인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Petronas Twin Towers를 중심으로 화려한 도시미를 자랑한다. 반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페낭(조지타운)과 믈라카(말라카)는 과거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과 벽화가 어우러져 있어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과 같다. 특히 페낭은 동서양의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가옥 구조와 활기찬 야시장 문화로 전 세계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는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민족 구성
여러 민족의 혼합체
말레이계(부미푸트라Bumiputera), 중국계, 인도계가 공존하는 말레이시아는 각 민족의 정체성을 존중하면서도 하나의 국가로 뭉치는 ‘오픈 하우스Open House’ 풍습이 발달하였다. 이는 명절 때 자신의 집을 개방하여 인종과 종교에 상관없이 이웃과 음식을 나누는 문화로, 말레이시아만의 독특한 공동체 의식을 보여 준다.
또한, 말레이인들은 오른손으로 식사하고 왼손을 부정하게 여기는 등 종교적 관습을 엄격히 따르며, 일상에서 타인의 종교적 금기 사항을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깊이 뿌리박혀 있다. 언어는 국가 공용어인 말레이어(Bahasa Malaysia)를 기반으로 하지만, 교육과 비즈니스에서는 영어가 필수적으로 통용된다. 각 민족은 고유의 방언을 유지하고 있다.
주요 인물
파라메스와라Parameswara(1344~1414) : “말라카 발견”
수마트라의 왕자였던 그는 외세의 침공을 피해 도망치던 중, 나무 아래서 쉬다가 작은 사슴(Mouse Deer)이 사냥개를 강물로 차 버리는 광경을 목격한다. 이를 ‘작은 자가 강한 자를 이기는 길조’로 여겨 그 나무의 이름인 ‘말라카Malacca’를 따서 나라를 세웠다. 말라카 해협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국제 무역항으로 발전시켜, 당시 중국 명明나라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말레이반도의 황금기를 열었다.
항 투아Hang Tuah(15세기) : “무사의 도道와 충성”
15세기 말라카 술탄국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무사다. 충성심과 용맹함의 상징으로, 말레이시아 초등 교육 과정에서부터 반드시 배우는 국민 영웅이다. 항 투아를 포함한 다섯 명의 형제 같은 친구들은 말라카 술탄국을 수호하는 최정예 무사 집단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인 항 제밧Hang Jebat이 술탄에게 반기를 들었을 때, 항 투아는 개인적인 우정보다 군주에 대한 충성을 택해 그를 처단한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무조건적인 충성’과 ‘정의를 위한 저항’이라는 주제로 말레이시아 사회에서 뜨거운 토론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재 말레이시아의 모든 지폐(링깃ringgit) 앞면에 그려져 있는 인물이다. 원래 네게리셈빌란Negeri Sembilan주의 통치자였으며, 1957년 말레이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초대 국왕으로 선출되었다. 입헌군주제 국가로서 말레이시아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케다Kedah주의 왕자로 태어나 영국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신분은 높았지만 서민들과 소통하는 것을 즐겼던 소탈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무력 충돌 대신 영국과의 끈질긴 협상을 통해 1957년 8월 31일, 말레이시아(당시 말라야 연방)의 독립을 이끌어 냈다. 영국령 말라야 연방의 마지막 총리이자 독립한 말레이시아 연방의 초대 총리를 지냈다, 독립의 아버지 또는 국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제4대와 제7대 총리를 지냈고, 강력한 지도력으로 국가 개조를 단행하였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 성장을 모델로 삼은 ‘동방 정책(Look East Policy)’을 추진하여 말레이시아를 신흥 경제 강국으로 도약시켰다.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당시 세계 최고층 빌딩), 행정수도 푸트라자야, 국산차 ‘프로톤Proton’ 등을 통해 말레이시아인의 자부심을 고취했다.
양자경楊紫瓊(Michelle Yeo Choo Kheng, 1962~ )
화교이며 미스 말레이시아 출신으로 1980~1990년대 홍콩에서 액션 배우로 활동했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미국과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미국에선 당연히 동떨어진 말레이시아 사람이 아닌 익숙한 홍콩 출신 배우로 인식한다. 2023년에 아시아계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니콜라스 테오Nicholas Teo(장동량張棟樑, 1981~ )
화교 출신의 가수. 말레이시아 노래 경연 대회에서 입상한 후 중국 및 대만 등 중화권과 이웃 싱가포르에서 활동하고 있다.
종교
열린 종교 수용의 나라
이슬람교가 국교로서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힌두교, 불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며 각자의 대형 축제를 국가 공휴일로 즐긴다. 이슬람의 최대 명절인 하리 라야 아이딜피트리Hari Raya Aidilfitri에는 성대한 축제가 열리며, 힌두교 축제인 타이푸삼Thaipusam 기간에는 수많은 신자가 고행의 의식을 치르며 쿠알라룸푸르 인근의 바투 동굴로 행진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또한, 중국 설날에는 화려한 사자춤과 붉은 장식물이 온 거리를 뒤덮어 다채로운 종교적 색채를 뽐낸다.

경제
동남아시아 신흥 공업국
중상위 소득 수준의 개방형 시장 경제로, 제조업⋅서비스업⋅자원 산업이 균형을 이루는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 수출 주력 산업은 전기⋅전자(반도체, 전자 부품), 팜유, 석유⋅가스, 고무, 목재 및 가공품 등이며, 관광도 중요한 외화 수입원이다.
과거 천연고무와 주석의 최대 생산지였던 말레이시아는 현재 팜유 생산 세계 2위이자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전자 제품 수출국으로 탈바꿈하였다. 특히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을 바탕으로 국가 재정을 확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할랄 산업과 이슬람 금융 분야에서 세계적인 허브 구실을 하며 경제 구조를 고도화하고 있다.
보르네오 앞바다인 남중국해는 빙하기에 육지였던 대륙붕 지역으로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 말레이시아는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로 유명한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나스Petronas에서 이를 채굴하고 있다.
과거에는 고무나무 플랜테이션도 많았고 20세기 중반까지는 세계 1위의 독보적 천연고무 산지였으나, 태국과 인도네시아에 밀려나면서 더 수익성이 높은 팜유 생산이 늘어났다. 그리고 바나나와 사탕수수도 여기서 많이들 재배한다. 천연자원으로는 석유⋅천연가스, 팜유, 목재, 주석⋅보크사이트 등 광물이 풍부하며, 이는 경제 발전의 중요한 기반이 되어 왔다.

외교
중립적인 외교 노선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 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중립적인 외교 노선을 걷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아세안ASEAN 창립 회원국으로, 역내 협력과 비동맹⋅균형 외교를 지향해 왔다. 이슬람 협력 기구(OIC) 회원국으로서 이슬람권과의 연대에도 적극적이며, 미국⋅중국⋅일본⋅EU 등 주요 경제권과 경제⋅안보 관계를 병행하고 있다. 남중국해 문제에서는 자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EEZ)과 도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다자 협의 틀을 선호하는 편이다.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민국과는 1960년 수교 이래 매우 긴밀한 파트너십을 유지해 왔으며, 특히 1980년대 이후 한국은 말레이시아의 산업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 모형이자 협력자였다. 최근에는 K-컬처(BTS, 블랙핑크 등)의 선풍적인 인기와 함께 한국 화장품 및 가전제품이 시장 점유율을 높여 가고 있으며, 방산 분야에서의 협력도 강화되어 양국 관계는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교역⋅투자가 크게 확대되었다.
한국의 중요한 아세안 교역⋅투자 파트너 중 하나로, 전자⋅자동차⋅조선⋅플랜트⋅에너지⋅기반 시설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쿠알라룸푸르⋅슬랑오르⋅페낭 등에 한국인들이 집중되어 거주하며 ‘코리아타운Koreatown’도 형성되고 있다.

주요 음식
민족의 다양성은 곧 음식의 풍요로움으로 이어져, 말레이시아는 ‘식도락食道樂의 천국’이라 불린다.

© 월간개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