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산채지가 연재에 앞서 | 최수운 대신사가 이름을 바꾸신 까닭

[기고]
김남용 / 본부도장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豹死留皮 人死留名)는 속담俗談은, 살아생전 헛되지 않은 삶을 영위한 사람은 그 명예로운 이름이 길이 남는다는 만고의 성담聖談입니다. 이름이 곧 그 사람인데, 그 이름을 바꾸는 것은 과거의 삶과 결별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강한 의지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불자들이 법명法名을, 가톨릭에서 세례명을, 연예인들이 예명藝名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저는 이름이 운명에 영향을 주니까 될 수 있으면 좋은 이름으로 개명해야 한다는 작명가나 개명예찬론자가 아니지만, 우리 역사 속의 특별한 한 분을 소개하기 위해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최수운 대신사를 기억하시나요


지금부터 약 200년 전 태어난 최수운崔水雲 대신사大神師(1824~1864) 이야기입니다. 익히 알고 계신 것처럼 조선 조정이 그를 사도난정邪道亂正으로 몰아 처형한 관계로 그분의 생애 자료 자체가 매우 단편적입니다.

우리가 그를 수운水雲 대신사大神師라고 높여 부르는 것은, 조선이 1905년 11월 일본에 외교권外交權을 빼앗기고, 1907년 7월 군권軍權마저 내주고, 12월에 13도 의병의 한양 탈환 작전마저 실패하고 난 다음에야 가능하였습니다. 1908년 4월 천도교 부구部區총회에서 “대신사大神師”라고 부르자고 결의한 것입니다.

최수운 이전, 최수운 이후 인류 지성사의 흐름에서 최수운 대신사는 우주의 주재자 하나님(상제님, 천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대화를 나눈 빛나는 분입니다. 7~8개월 지속된 이 사건을 천상문답天上問答이라고도 부르는데 동서양의 어떤 기록을 막론하고 유일한 사건입니다. 이를 통하여 수운은 인류에게 상제님을 모시는(侍天主) 시간대를 열어 주었습니다.

그동안 상제님은 나라님이 천제를 지낼 때나 거명되는, 아주 존엄하고 범접하기 어려운 대상이었습니다. 글 한 줄 읽을 줄 모르던 이 땅의 수많은 하층민들이 강경 뻘판에 삼례 들판에 서슴없이 모여들어 체면 가리지 않고 함께 먹고 소통하면서 시천주侍天主를 노래하였음은 오직 그로 인함이었습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경부 경의 철도는 거의 무임금에 가까운 노동력을 기꺼이 제공한 시천주꾼들에 의하여 가능하였습니다.

서양의 이름 없는 철학자도 우리나라에 오면 빛을 보는 이때, 그의 삶은 백번 조명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저는 간단하나마 수박 겉 핥기 수준으로 그의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1859년 10월 최수운은 처가가 있던 울산에서 힘을 기울이던 사업에 크게 실패하고 낙망하여, 가족들을 이끌고 일찍이 부친이 마련해 둔 경주 용담에 돌아온 터였습니다. 용담은 구미산 산중에 있는 제대로 된 집도 아니요 다만 비바람만 막을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초겨울에 괴나리봇짐만을 챙긴 채 산중으로 들어오는 발걸음은 너무도 무거웠습니다. 수운은 그때의 정상이 하도 애처로워 까막까치조차도 자신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고 참담한 심경을 술회하였습니다. <용담가. 1860년 4월 하순>

1859년 겨울 경주 구미산 속 춥고 배고픈 어려운 상황에서 최수운 행장을 다룬 기록은 아주 간단합니다. 우선, 중한 맹세를 다시 하였다(기도생활을 말합니다). 이름을 제우濟愚로 고쳤다. 불출산외不出山外 네 글자를 문 위에 써 붙였다. 하루 세 번 집 앞 용담정에서 청수를 길어 모시고 기도했다. 이듬해(1860년) 봄에는 ‘도기장존사불입道氣長存邪不入 세간중인부동귀世間衆人不同歸’라는 입춘시立春詩를 지어 벽에 붙였다.

이때 수운은 생애 가장 쓸쓸한 생일(10월 28일)을 보냈을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할 도道를 깨치지 못하면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는 뜻’(不出山外)을 문 위에 써 붙이고, 청수를 모실 때마다 쳐다보며 결의를 다지고, 기도에 올인을 합니다. 처자妻子들의 고생담은 아예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입춘에 벽壁 위에 써 붙인 글은 “도道의 기운이 오래 있으니 사악함이 들어오지 못하고 세상의 중인衆人과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내용으로, 그의 의지가 더욱 확고해졌음을 새삼 알리고 있습니다. 봄이 왔지만 경주 용담 최수운이 기도하는 곳에 누가 감히 얼씬거릴 수 있었을까요?

누구에게나 살다 보면,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일도 허다하고, 하고 싶지 않지만 또 해야만 되는 일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최수운이 외롭게 구도하면서 다짐한 “산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를 깨뜨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경신년(1860) 4월 5일 마침 이날은 최수운의 장조카 최맹륜崔孟倫(1827~1882, 수운의 아버지가 들인 양자養子, 수운보다 3살 어리다)의 생일이었습니다. 맹륜은 산속에서 고생하는 삼촌에게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삼촌은 도道를 좋아하지만 앞뒤가 꽉 막힌 외골수는 아니었습니다. 울산에 계실 때 양산 통도사 근처의 천성산 내원암에 들어가 기도를 하였는데 47일째 숙부가 별세하는 체험을 하고 수행을 중단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삼촌은 고향에 돌아와 1년 시묘살이를 마치고 다시 이듬해 천성산 적멸굴로 가서 49일 입산 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때 2차 기도 후 울산에서 용광업을 경영하였는데 어쩌다 크게 실패하여 고향에 돌아와 은둔 중인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덕불고德不孤 최맹륜은 덕인德人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삼촌을 초대할 수 있을까에 대해 궁리 끝에 삼촌을 위하여 옷을 한 벌 짓고 갓도 준비하였습니다. 의관衣冠을 마련한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의지할 곳이 없어 산중에 칩거하는 이가 외출복이 있을 리 만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간에 맞추어 말을 보냈습니다. 적어도 수운이 출타를 거부할 외형적 명분이 없어졌습니다. 최수운이 얼마 동안 머뭇거렸을지 알 수 있는 자료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구도의 뜻을 품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때 최수운의 마음속에 소용돌이쳤을 망설임의 크기를 짐작할 뿐입니다. 말없이 가장家長의 의미 있는 출타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시선. 불출산외不出山外 글귀, 입춘서, 자신을 위한 의관과 대기하고 있는 말….

이날은 양력으로 5월 25일 화창한 초여름 날이었습니다. 용담정에서 맹륜이 사는 구미산 밑 지동芝洞까지는 1리里 정도 거리라고 합니다. 요새 학교 마당에 그려진 400미터 트랙 한 바퀴 거리를 울퉁불퉁한 오솔 산길로 상상하면 됩니다(지금도 흙길 그대로입니다). 약주 한잔이 그리워 가는 길이 아니고, 더구나 가족들의 희생을 담보로 자신이 세운 결의를 파기하러 가는 길은 더더욱 아닙니다. 몰락 양반의 자식으로 스무 살 때 처음으로 세상에 장사하러 나갈 때 바라보았던 주변 회상은 말 위에서 다시 둘러보아도 여전하기만 한데~, 일생을 관통한 다양한 감상들이 서로 겹쳐져 혼돈混沌의 의식 상태에 빠져들어 갑니다. 그랬을 겁니다.

그렇게 지척의 거리에 수운을 존경하는 조카가 있었습니다.
*1)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맹륜이 말을 보내고 국과 술을 덥히던 적당한 시간에 수운은 조카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말이 그렇지 세 살 터울의 삼촌, 20여 년간 한집에 같이 살았던 이물異物없는 사이인 그를 온 식구들이 나와서 기꺼운 모습으로 환대합니다. 용담 산속에 찾아와 칩거한 이후 처음으로 느껴 보는 환한 얼굴들! 경계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동안 수행의 내공과 경건함으로 가득한 수운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의 빛이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최수운 대신사는 수행 기간 중 일탈逸脫하여 조카 집에 출타한 이 사건事件을 그의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수운가사水雲歌詞』에 기록하지 않습니다. 수행자라면 누구나 암묵적으로 느끼는,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일말一抹의 불편한 진실? 인류 역사를 통하여 너무너무 중요한 마디일 수밖에 없는 이날 이때, 수운은 잠시 후에 일어날 일을 알지 못했습니다.
*1) 약 반년 후의 일이지만 이분(최맹륜)은 최수운을 스승으로 모시는 첫 입도자가 됩니다. 4년 뒤 최수운이 대구에서 처형되고 나서는 그 시신을 수습하여 용담 서원西原에 안장한 분이기도 합니다.



그날, 경신년 4월 5일, 낮부터 밤까지
사월이라 초오일에 꿈일런가 잠일런가 천지가 아득해서 정신수습 못할러라

공중에서 외는 소리 천지가 진동할 때 집안사람 거동 보소 경황실색驚惶失色 하는 말이

애고 애고 내 팔자야 무삼 일로 이러한고 애고 애고 사람들아 약藥도사 못해 볼까

침침칠야沈沈漆夜 저문 밤에 눌로 대해 이 말할꼬 경황실색 우는 자식 구석마다 끼어 있고

댁의 거동 볼작시면 자방머리 행주치마 엎어지며 자빠지며 종종걸음 한창 할 때

공중에서 외는 소리 물구물공勿懼勿恐 하여스라 호천금궐昊天金闕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 보냐

초야에 묻힌 인생 이리 될 줄 알았던가 개벽시開闢時 국초일國初日을 만지장서滿紙長書 나리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