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랑대 강좌┃우주 근원 질서를 드러내는 수 이야기 첫 번째, 0 - “우주는 수학적 조화를 이루며 공명하는 거대한 악기”

[우주 근원 질서를 드러내는 수 이야기]
김영현 수호사 / 황금독서클럽 과학 분과 연구 팀장

본 기사는 #삼랑대 강좌#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우주 근원 질서를 드러내는 수 이야기 첫 번째, 0 2부#의 내용입니다. [편집자 주註]




피타고라스와 여러 책들이 전하는 수의 의미



우주의 질서가 수數로 드러난다는 것을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피타고라스Pythagoras입니다. 피타고라스는 우주가 수학적 조화를 이루며 공명하는 거대한 악기라고 말했습니다. 우주의 조화를 음악과 수로 표현했고, 더 나아가 만물은 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인들은 그 수를 ‘아리스모스Arithmos’라고 불렀는데, 조화와 리듬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또 그리스의 로고스Logos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진리라는 뜻으로 많이 쓰지만, 그 어원에는 ‘모으다, 배열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결국 수라는 것은 단순히 센다는 뜻이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뜻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가 보인다.”, “운수와 재수가 있다.”라고 할 때 모두 셀 수數 자를 쓰는데, 수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상수常數라는 말도 원래는 처음 정해진 운명이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상제님의 천지공사天地公事는 천지 도수대로 둥글어 간다고 하죠? 그렇게 꼭 되어지는 근원 질서, 운명인 도수度數라는 말 속에 모두 수數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주 수학에서 말하는 수는 결코 야만적인 양의 의미로만 해석해서는 안 되고, 그 안에는 우주의 근본 원리와 질서가 그대로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종교학 교수 오토 베츠Otto Betz의 책 『숫자의 감춰진 비밀』을 보면, 숫자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본질적인 숫자들인 1, 2, 3, 4를 해명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합니다. 1, 2, 3, 4는 생수生數인데, 생수의 분화 혹은 발산의 과정이 최고 정점에 도달하면 반드시 다시 수렴 쪽으로 기울게 된다고 합니다. 오토 베츠가 생장염장의 우주 순환 이치를 어느 정도는 깨달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숫자는 1에서부터 유래하여 무한대로 향해 흐르다가 다시 1로 회귀한다고 말합니다.

또 피터 벤틀리Peter Bentley가 쓴 『숫자, 세상의 문을 여는 코드』에서는 인간 역시 숫자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수천 년 전 과학과 종교가 하나였던 시절, 사람들은 수를 통해서만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죠. 숫자 속에 우주 구조의 비밀이 숨어 있는 것처럼 보였고, 부처와 피타고라스학파 모두 숫자가 우주의 근원이라 믿었다고 말합니다.

EBS 『문명과 수학』이라는 책에는, 이집트 람세스 2세의 무덤에서 나온 파피루스에 이런 내용이 있다고 소개합니다.
“모든 사물에 대한 완전한 탐구, 모든 존재에 대한 통찰, 모든 비밀에 대한 지식을 제시하고자 이 글을 쓴다.”
그리고 그 지식이 바로 수학이었다는 것입니다. 수가 모든 사물과 존재에 담겨 있는 진정한 통찰이라는 이야기지요.

이 깨달음은 근대에도 이어집니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자연이라는 우주에 담겨 있는 언어는 바로 수학이며, 등장인물은 삼각형과 원 같은 도형이라고 했습니다. 뉴턴Isaac Newton의 『프린키피아』도 제목 자체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입니다. 최근에는 MIT의 천체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Max Erik Tegmark도 #우주는 수학 그 자체#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근현대로 오면서 수학이 양적인 접근법에 치중해 있기는 하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우주가 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영0과 무극의 의미




본래의 수학, 고대에서 말하는 수학은 바로 우주 수학, 신성한 수학, 소프트 수학입니다. 소프트 수학은 수로서 펼쳐지는 우주의 구조와 생성 변화의 이치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1에서 10까지의 수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 1에서 10까지의 수의 시작은 0, 영零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영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저명한 수학자인 토비아스 단치히Tobias Dantzig는 0의 발견이 인류 문화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우주 수학에서 0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려면, 먼저 하도와 낙서를 떠올려야 합니다. 1에서 10까지의 수의 이치로 인생과 천지를 개벽하고 변화시켜 가는 원리를 담은 우주 창조 변화의 설계도가 바로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입니다. 그리고 그 근원이 되는 우주 수학의 원전이 바로 「천부경天符經」입니다.

「천부경」의 시작이자, 마고삼신麻姑三神 할머니께서 내려 주신 그 원형의 핵심이 바로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입니다. 일이 어디서 시작하느냐, 바로 무無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종도사님께서는 “우주의 창조 근원, 그 하나인 일一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바로 무無, 영零에서 비롯된 하나라는 것이다. 우주의 본체는 둘이다. 일一과 무無이다. 일태극一太極과 영무극零無極이다. 일一의 자기 존재의 근거가 무無이다. 그래서 일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현상계를 낳은 직접적인 본체, 즉 현상 본체이고, 무無는 우주 궁극의 근원이며 시원 본체이다. 수의 정신에서 우주는 전체의 일一(1)과 무수한 현상계가 있다. 그 근본과 현상의 더 근원이 무극無極이다. 숫자로는 영零(0)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삼신三神 망량魍魎님의 무의 세계를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 무극에서 태극의 질서가 열리는데, 이것이 개벽開闢이라는 것입니다.

대우주의 본질은 무극이기에 허虛하고, 그리고 이 자리에서 벌어져 현상화된 천지 시공의 본성은 태극인데 공空합니다. 이 공空에서 천지의 시간대를 이끌어 가는 우주 공간의 단일한 통일장인 1태극수太極水가 나오기 때문에, 우주 운동의 본성은 이 일수一數를 바탕으로 펼쳐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순역順逆을 반복하며 천지 스스로 순환 변화 운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대우주의 존재 실상은 무극과 태극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허하고 공합니다. 그래서 대우주와 하나 되는 길은 이 허허공공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고, 그것이 수행의 묘체이기도 합니다. 종도사님께서 상제님과 태모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전해 주신 말씀을 보면, 수행이 아주 잘되는 경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가르침이 바로 허허공공虛虛空空입니다. 모든 것이 텅 비어 있는 것, 그것이 대우주의 존재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적멸무궁寂滅無窮입니다. 완전히 생각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수행은 우주의 빛의 근원, 대우주와 나의 탄생의 근원, 존재의 근원인 빛의 조물주 세계, 그 망량님 세계에 들어가는 수행이기 때문에, 그 빛의 근원 세계에는 일체의 사념과 생각이 없습니다. 영원한 순수 빛의 존재 자체로만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허허공공과 적멸무궁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수행의 효과가 없다는 말씀을 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대우주와 하나 되는 길은 결국 대우주의 본질인 허허공공의 자리로 들어가느냐, 적멸무궁의 자리에 들어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 과학이 말하는 무無와 영0




영零(0)은 무無를 드러내는 수인데요. 재미있게도 숫자 0은 우주 무극의 성질을 여러 가지로 담고 있는 수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과학에서도 우주의 근원을 무無라고 말하곤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도 가장 위대한 것이 무無라고 했고, 현대 수학자들 역시 수학의 모든 것이 무無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현대 물리학도 우주가 무無에서 나왔다는 것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레너드 서스킨드Leonard Susskind 같은 현대 물리학자도 무無를 알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또 오늘날 과학에서 자연의 언어라고 이야기되는 수학이 바로 미적분微積分인데요. 미적분을 창시한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는 이진법을 발견했을 때, 0과 1의 나열로 모든 수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진법은 바로 무無로부터의 창조, 신神과 무無에 의해 우주가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놀라운 이야기지요. 나름대로 음양과 태극을 바탕으로 지금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 과학은 이 무無가 우주의 근원이라는 것까지는 알지만, 모든 것을 낳는 근원인 영零, 무無가 진정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그래서 2019년 5월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 같은 과학 잡지에도 “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크게 실리곤 했습니다.

종도사님께서는 2019년 세계환단학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궁극의 무無는 시간도 공간도 없는 세계인데, 그것은 바로 시간과 공간의 생성 근원이다.”
이제 우리는 이것이 태허령太虛靈님의 마음 세계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대우주 시공간을 낳은 모체, 이미 율려 도수로 시공간의 질서를 그 안에 내재하고 있는 바로 태허령님의 마음 세계, 그것이 곧 궁극의 무無로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우주의 근원인 무無에 대해 상당히 시적으로 잘 정리한 현대 과학의 교양서로 K. C. 콜Cole의 『우주의 구멍』 같은 책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무無를 한계가 없어서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모든 것에 스며드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모든 것은 무無라는 바탕 위에 존재하며, 무無는 모든 창조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또 무無의 가장 인상적인 성질은 잠재성이라고 합니다. 무無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수 체계를 창조하고, 물질과 우주를 만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과학적이건 종교적이건 우주의 기원에 대한 모든 설명은 무無에서 시작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무無는 우리가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며, 무無가 변했을 때 우주가 탄생했고, 유有는 무無가 변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또 0은 1의 도움을 받아 우주를 창조했고, 0이 있는 곳에는 항상 음과 양이 있다고 말합니다.

숫자 0은 무無를 담은 그릇이라고도 하고, 무無는 구름처럼 가장자리가 없으며, 무無는 마음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도 말합니다. 우리가 무극 세계를 태허령님의 마음 세계라고 하는 것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또 오직 무無로 가득한 마음만이 모든 것에 열려 있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무無는 단순한 비어 있음이 아닙니다. 현대 물리학의 거장 존 휠러John Archibald Wheeler도 무無는 단순한 진공의 빈 공간과 혼동해서는 안 되며, 더 깊은 심오한 의미를 가진 무無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영零, 즉 0으로 모든 수를 나누면 무한과 연결된다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그래서 0은 필연적으로 무한과 연결됩니다. 0이 우주의 근원 무無를 드러내듯, 0과 연결된 무한 역시 우주 근원 세계의 본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어를 알면 수학이 보인다』에서도 모든 것에 관한 이론은 실제로는 무無에 관한 이론이라고 하고, 무無에서 우주가 탄생했고 무한도 탄생했다고 말합니다. 무한과 무無는 나란히 공존하는 창조주의 두 측면이라는 것입니다.

미적분학 역시 영零(0)과 무한無限의 개념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학 방법으로 이야기되며 0과 무한대는 동전의 양면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양자역학은 극미의 세계, 즉 0에 수렴하는 세계로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만나는 진공眞空은 무궁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상대성이론 역시 블랙홀의 특이점을 통해 0과 무한이 만나는 역설을 보여 줍니다. 이처럼 현대 물리학에서 우리는 0과 무한을 함께 만나게 됩니다.


종도사님께서는 우리가 시간의 흐름 속 인식의 경계에서 말하는 무無와, 그 경계를 완전히 넘어서 초월적 경계에 있는 본래의 무無를 구분해서 말씀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고삼신 할머니께서 전해 주신 말씀으로, “내가 말한 무無는 없을 무가 아니라, 한없이 밝고 밝은 대광명으로 충만하다는 뜻의 무다. 영원한 빛이 충만한 그 조화 세계를 말한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맺음말



동양 수학은 소프트 수학입니다. 가장 근본이 되는 1에서 10까지의 수로 인간과 우주 만유의 본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나온 모든 문화가 지금 인류 문화 속에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자연⋅예술⋅과학의 수학적 원형』은 이것을 종합적으로 잘 정리해 주는 책입니다.


종도사님께서는 우리가 나온 그 하나, 그 하나의 일一을 성취하는 존재가 바로 태일太一이라는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우주 가을개벽의 진리 태양이 떠오르는 이 병오년, 태허령님의 허허공공한 마음자리에 들어가서 내 자신이 일태극一太極 본체가 되어 태일太一을 향해 정진하시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