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코드로 문화읽기 | 다큐멘터리 〈초원의 제국〉 리뷰(2) - 칸과 그의 친위 부대 코미타투스

[칼럼]
한재욱 / 본부도장


지난 호에는 2017년 방송했던 KBS 다큐멘터리 〈초원의 제국〉 제1부에서 신라 금관에 새겨진 비밀 코드를 탐구한 부분을 정리해 보았다. 이번 호는 제2부 ‘황금의 맹세’에서 유라시아에 존재했던 전사 집단 코미타투스Comitatus를 소개하는 내용에 대해 살펴본다.

주군을 모신 전사 집단, 코미타투스


다큐는 기사騎士 문화의 뿌리를 찾아간다. 먼저 독일 칼탄베르크Kaltenberg에서 매년 10만 명 이상이 찾는 세계 최대의 기사 축제(Knights Tournament)를 소개한다. 이 대회는 기사가 유럽인들의 자부심임을 보여 준다. 기사는 중세 봉건제의 통치 기반이기도 했다. 기사들은 왕을 위해 싸울 것을 맹세했고 대가로 작위와 영지를 하사받았다. 기사 제도의 기원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 북방에서 제국을 위협할 만큼 강성했던 게르만족에겐 전쟁의 선두에 서는 특별한 군사 동맹체가 있었다.

게르만족은 적진으로 돌진하는 특별한 전술이 있었습니다. ‘에베르코펜’이라 불리는 전술인데 최전선에 최고의 전사들을 배치해 적진을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 에를랑겐 뉘른베르크 대학 사학과 보리스 드레이어 교수


코미타투스Comitatus는 주군의 친위 전사 집단이다. 주군들은 누가 용맹한 코미타투스를 더 많이 거느릴지를 두고 경쟁이 벌어진다. 코미타투스가 전투에서 주군보다 용맹하지 못하면 불명예로 여겨졌다. - 게르마니아 책 중에서


이 특별한 군사 동맹체는 약 2,000년 전 로마인 타키투스Tacitus가 쓴 책 『게르마니아Germania』에도 등장한다. 게르만족이 가진 강력한 힘의 근원을 찾으려 한 타키투스는 자신이 목격한 게르만의 전사 집단에 코미타투스란 이름을 붙였다. 용감한 코미타투스를 더 많이 거느리기 위해 다투었던 게르만의 주군들에게 있어서 코미타투스의 숫자는 곧 그들의 힘이었다. 그런데 중앙 유라시아 연구의 권위자인 크리스토퍼 벡위드Christopher I. Beckwith 교수는 코미타투스에 대해 새로운 주장을 내놓고 있다.

티베트를 포함한 모든 중앙유라시아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중세 초기의 코미타투스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주군은 그들을 사랑하기로 맹세했습니다. 영원히 함께하는 거죠. 현생에서뿐만 아니라 다음 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미국 인디애나대학 중앙유라시아학과 크리스토퍼 벡위드 교수


코미타투스에 정통한 벡위드 교수의 주장대로 고대 유럽과 아시아는 별개의 지역이 아니었다. 게르만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게르만족의 유물 중엔 유목민들의 구리 솥인 동복도 발견된다. 동복銅鍑은 북방 유목민의 상징으로 말 등에 싣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 나무에 걸고 불을 때서 조리하던 취사도구다. 고대 게르만족은 흑해 연안까지 흩어져 살며 유목 민족인 훈족과 경합했고 일부는 흡수되기도 했다. 그 결과 고대 게르만 지역에선 유목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황금 장식들도 출토된다. 토비어스 슈프링어 국립 게르만 박물관 고고학자는 이런 장식들이 “동게르만족이 훈족을 통해 알게 된 중앙아시아의 세계관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벡위드 교수는 더 나아가서 코미타투스가 게르만의 것이 아닌 본래 유목 민족의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동양 역사와 『환단고기桓檀古記』 문화를 잘 모르는 한계점으로 인해 서양 역사 관점에서 스키타이 중심으로 말을 하고 있지만 코미타투스 문화가 유목 문화에서 왔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고대 유목민 초원의 무덤엔 으레 부곽副槨이 있고 그곳엔 주군을 수행한 코미타투스가 있다. 부곽에서 출토된 황금 장식은 죽음까지 함께했던 맹세의 증표였다.

황금인간의 맹세


중앙유라시아의 광활한 초원 지대인 카자흐스탄의 이식Esik에는 600여 개의 고분이 밀집해 있다. 1969년 이곳에서 역사적인 대발굴이 있었다. 도굴꾼의 침입을 피한 작은 무덤에는 놀랍게도 인골과 부장품이 매장된 상태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인골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황금을 두르고 있었다. 목관 안을 빼곡히 채운 황금 장식들은 하나하나가 놀라운 보물이었고 양도 엄청났다. 작은 무덤의 주인공은 ‘황금인간’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세계 고고학계를 흥분시켰다.

황금인간은 약 4,000개의 황금 장식과 함께 묻혀 있었다. 수천 년 전의 황금인간은 목재에 금박을 씌운 놀라울 만큼 섬세한 기술로 만든 것이었다. 작은 무덤의 주인이지만 화려한 황금의 칼집은 왕의 지위를 방불케 한다. 인류학자들의 분석 결과 황금인간은 15~18세 남성이며 키는 168cm이고 복장은 평상복이 아닌 예복으로 사령관들이 행진할 때 입는 제복과 같은 역할을 했다. 황금인간은 약 2,400년 전에 살았으며 젊은 나이에 부상으로 사망했다. 그는 초원에서 일어난 스키타이족의 강력한 전사 집단 코미타투스의 일원이었던 것으로 밝혀진다.

그들(코미타투스)은 고도로 훈련된 전사들입니다. 평범한 병사가 아닙니다. 하나의 코미타투스 집단이 적의 군대 전체를 이길 수 있을 정도입니다. 코미타투스는 언제나 기마병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핵심 그룹은 약 500~1,000명으로 작은 규모가 아니었습니다. - 크리스토퍼 벡위드 교수


최정예 전사 집단 코미타투스를 탄생시킨 기마 유목 민족의 주력은 기마병이었다. 그들은 말에 안장을 얹고 위에서 자유자재로 활을 쏠 줄 알았다. 스키타이의 기마 전사들은 거침없이 초원을 누볐다. 전 중앙유라시아가 그들의 무대였다. 황금을 숭상한 스키타이는 자신들의 삶과 믿음을 금 세공품에 남겼다. 스키타이의 왕은 코미타투스 전사들에게 황금의 세공품을 하사하기도 했다. 유물에 새겨진 황금의 맹세, 그것은 충성의 대가이자 목숨을 건 계약의 증표였다.

(황금 유물에) 스키타이족의 전우애 의식이 묘사돼 있습니다. 두 전사가 팔에 상처를 내어 서로의 피를 한 용기에 담아 함께 마시는 장면입니다. 이 의식을 통해 둘은 형제가 되고 서로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는 약속을 맺습니다.
- 예르미타시 박물관 고고학자 옐레나 코롤로바



황금인간의 의미


이제 다큐에서 밝히지 못한 황금인간의 진짜 의미를 살펴보자. 제1 황금인간의 의상은 4천여 개의 금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자 위에는 4개의 화살이 있다. 이것은 정동서남북으로 국경을 수호하고 천하로 뻗어 나간다는 개척 정신을 상징한다고 한다. 문양은 화살촉 모양의 금제 삼각 장식으로 대세가 삼각형으로 되어 있다. 허리에는 허리띠 장식이 세 개가 있는데 그리핀griffin 형태의 봉황鳳凰새가 있다. 그리핀은 동양의 봉황이 변형된 문화이다. 이 문양들은 칸Khan을 모시고 텡그리Tengri(천신天神)를 받들면서 나라와 백성을 지키고 칸과 생사를 함께한다는 정신을 상징한다. 그런데 여기 화살촉 모양 장식의 원형을 알 수 있는 활과 화살 문화에 대한 노래가 있다. 바로 단군조선檀君朝鮮 초대 단군인 단군왕검의 아들 부루 태자가 지은 노래 어아가於阿歌이다. 이것은 「단군세기檀君世紀」에 기록된 어아가의 핵심 구절에서 살펴볼 수 있다.

“어아 어아 착한 마음 큰 활 되고 악한 마음 과녁 되네. 어아 어아 백백천천 우리 모두 큰 활처럼 하나 되어 수많은 과녁을 꿰뚫어 버리리라.” 이 세상의 모든 어둠, 악을 걷어 낸다. 인간이 마지막으로 날려야 되는 생명의 근원, 진리의 근원, 삶의 근원을 향한 진정한 인생의 화살은 어디를 향하는 것인가. 그것이 어아가 노래인데, 어아가 속의 큰 활의 의미가 황금인간의 의전용 옷에 잘 나타나 있다. - 〈환단고기 북콘서트〉 카자흐스탄 편


『환단고기』에서 보면 유목 문화 역사 정신의 근본이 ‘우리는 우주 광명, 환의 존재이고(오환吾桓), 우리 모두는 텡그리 신과 하나다.’라는 것이다. 그것이 기하학적으로 표현된 것이 원방각圓方角이다. 원(◯)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고 조화를 이루는 아버지 하늘을 상징했고, 방(□)으로 생명을 한없는 사랑으로 길러 내는 어머니 땅을 상징했다. 그리고 인간은 하늘땅과 한마음, 한 몸이 될 때 텡그리 삼신상제님의 영원한 아들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각(△), 삼각형으로 상징했다. 삼각형으로 가득한 황금인간의 문화 정신은 하늘과 땅과 인간은 한마음으로 일체라는 것이다.

신라의 황금보검과 보로보에 단검


다시 다큐로 돌아오면, 신라 천 년 왕국의 고도 경주에 소재한 신라 왕족의 거대한 무덤 곁으로 놓여 있는 쪽샘지구라 불리는 작은 무덤군을 소개한다. 1973년 발견된 계림로 14호분은 작은 고분인데 이 한 곳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황금 유물들이 출토됐다. 가장 인상적인 황금 유물은 길이 36센티미터의 단검으로 유라시아 전체에서도 손꼽힐 만큼 수려한 보검이다. 화려한 금과 더불어 붉은 보석이 상감象嵌된 독특한 문양으로 신라와 초원 황금 문화의 연결 고리를 풀 수 있는 단서가 됐다.

얇은 금판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내고 고온의 열을 가하면 황금이 녹으며 표면 장력에 의해 작은 금구슬로 변한다. 이렇게 만든 미세한 금구슬을 강한 열로 고정한다. 그다음엔 잘게 빻은 보석을 채워 넣어 강한 열로 녹여 상감하는데 이는 신라에는 없던 세공 기술이라고 한다. 또한 장식에 박힌 석류석은 신라와 멀리 떨어진 동유럽에서 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석류석은 붉은색을 띄는 보석으로 4~6세기에 많이 쓰였습니다. 주로 발칸반도와 흑해 북쪽 지역에서 석류석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 지역에는 고트족(게르만족)과 훈족이 살았는데 그들은 석류석을 선호했습니다. 석류석의 붉은색이 황금과 잘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 불가리아 바르나박물관 고고학자 이고르 라자렌코


러시아의 예르미타시 박물관은 중앙유라시아 각지에서 출토된 황금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 전시된 세밀한 금구슬과 영롱한 붉은 석류석을 채워 넣은 문양의 이 황금 장식은 카자흐스탄 보로보에Borovoye에서 발굴됐는데 신라 황금보검黃金寶劍과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 신라 황금보검이 발굴되며 그보다 앞서 발굴된 이 황금 장식이 단검의 일부라는 게 밝혀졌을 정도다.

그 시기에 다양한 황금 기술들이 있지만 이렇게 똑같은 형태의 단검을 만들고 안에 상감으로 보석을 넣고 그 하나하나를 세공한 기술들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이것는 명백하게 중앙아시아에서 보검을 들여온 것으로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황금보검은 신라가 아니라 동로마 제국에서 제작되었다. 훈족을 연구한 이종호 박사(전 KIST 연구원)는 삼태극三太極이 새겨진 이 보검이 제작된 곳을 트라키아Thracia 지방이라고 단정한다. 경주에서 무려 8,0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다. 이종호 박사는 5세기 유럽이라면 훈족 왕 아틸라Attila가 패자로 군림하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황금보검은 아틸라가 보내 준 선물이었을지 모른다고 그의 책 『황금보검의 비밀』에서 주장하고 있다. 그는 2003년 신동아에 〈고대 유럽 호령한 훈족 수장 아틸라는 한민족〉이라는 제목의 글까지 기고했다. 그 근거로 수많은 유물과 문화의 유사성을 제시한다. 또한 종도사님 말씀에서 살펴보면 이 황금보검의 삼태극 문양은 환국에서 전해진 천일天一(천광명), 지일地一(지광명), 태일太一(인광명)의 삼수 정신을 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흉노, 훈족의 기원을 유일하게 밝혀 주는 『환단고기』


다큐에서는 동유럽의 헝가리에서 2년마다 유라시아 유목 민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쿠릴타이 축제를 소개한다. 초원 유목 민족의 부족 집회를 계승한 축제다. 유라시아의 여러 민족들이 총출동한 축제인데, 2016년 한국도 처음으로 초대받아 기마술을 선보였다고 한다. 이 축제가 헝가리에서 열리는 이유는 뭘까? 헝가리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훈족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단고기 역주본』(상생출판) 해제에서도 헝가리 마쟈르족(Magyars)의 시원이 흉노凶奴에서 기원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흉노는 중국 한漢나라 때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후에 흉노는 남북으로 분열되었다. 남흉노는 서진西晋의 쇠약을 틈타 화북을 침략하여 5호 16국을 세운 뒤 중국에 동화되어 사라졌으나 그 일부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헝가리 민족(마쟈르족)의 시원이 되었다. ······ 언어학적으로는 어순이 한국어와 유사하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을 먼저 쓰고 이름을 뒤에 쓴다. - 『환단고기』 해제


1994년에 독일 TV ZDF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시리즈 〈스핑크스, 역사의 비밀〉 중 ‘잃어버린 고리 찾기’ 편은 375년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촉발해 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아시아 유목 민족인 훈족을 집중적으로 추적했다. 이 다큐는 훈족의 원류가 아시아 최동단, 즉 한국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실제 신라 및 가야인과 훈족의 유물, 유적 등을 비교해 편두扁頭(일명 납작머리)와 금관 머리 장식, 동복 등 여러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고 근거를 제시한다.

4세기에 발원한 초원의 제국 훈Hun은 당시 유럽의 심장 로마까지 진격한다. 훈족의 기마병 앞에 로마 보병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특히 유럽을 공략했던 지도자 아틸라Attila(훈족 최후의 왕, 유럽 훈족 중 가장 강력한 왕)는 그들에게 특별한 존재다. 아틸라가 대제국을 건설한 힘은 강하게 결속된 코미타투스에 있었다.

아틸라왕은 자신의 친구들과 추종자들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이들이 로가데스(훈족의 코미타투스)였습니다. 로가데스는 아틸라가 전쟁에서 획득한 전리품을 가장 많이 누린 집단이었습니다. 아틸라는 자신이 획득한 금과 재산을 로가데스에게 대부분 나누어 주었습니다. - 독일 예나대학 고고학과 교수 티모 슈티클러


『환단고기』에는 “3세 가륵嘉勒 단군 때 지방 장관인 욕살 삭정索靖을 약수 지역에 귀양을 보냈다가 나중에 풀어 줘서 그 땅에 봉했는데, 그 삭정이 흉노의 시조가 됐다.”(「단군세기」)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방에서 흉노족이라 하고, 서양에서는 훈족이라 부르는 이들은 유럽으로 이동하여 서양 역사 곳곳에 발자취를 남겼다. 흉노는 2,100년 전에 동흉노, 서흉노로 갈라지는데, 다시 동흉노가 남흉노, 북흉노로 갈라진다.

그리고 2세기 중반에 북흉노가 지금의 카자흐스탄 초원으로 들어가는데, 그 지역에서 4세기에 훈족이 게르만계 부족을 공격했다. 이에 대적할 수 없었던 게르만족은 훈족에 쫓겨 로마로 밀려 들어가면서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났다. 그 충격과 영향이 결국 서로마 제국을 붕괴시키면서 유럽은 고대 시대를 문 닫고 새 시대를 열게 되었다. 여기에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대왕이 아틸라이다.

아틸라는 단군조선에 뿌리를 둔 흉노족이 세운 훈 제국의 제왕이다. 훈HUN이라는 것은 최초의 나라 환국의 우주 광명 환桓과 같은 음가로 인간을 의미한다. 훈과 환은 광명을 상징하는 같은 계열의 소리이다. - 〈환단고기 북콘서트〉


훈족이 발원한 시기에 유라시아 동쪽 끝에서 신라의 지배자로 등장한 김씨 성姓의 마립간麻立干들은 금관과 함께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유물을 남겼다. 금령총金鈴塚에서 발굴된 기마騎馬 인물형人物形 토기다. 말은 안장과 등자 그리고 등에는 동복을 갖추고 있다. 기마 인물형 토기는 주인상과 하인상 두 개가 함께 발견됐다. 하인은 오른손에 방울을 들었는데 저승까지 주인을 안내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큐는 이렇게 기마 인물형 토기에서도 주군과 친위 부대 코미타투스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고 한다.

코미타투스 문화는 환국에서 기원한다


크리스토퍼 벡위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한반도에 코미타투스가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벡위드 교수의 주장대로 유라시아의 기마 전사 집단 코미타투스가 신라에도 있었을까? 6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보물 제1411호)에는 당시 신라에 등장한 귀족 청년들의 전사 집단 화랑花郞의 맹세가 새겨져 있다.

주군에게 충성하는 것(사군이충事君以忠), 친구를 사랑하고 의리를 지키는 것(교우이신交友以信),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임전무퇴臨戰無退) 이런 것들이 모두 코미타투스의 특징입니다. 저는 복원된 화랑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궁술과 기마에 능했던 중앙유라시아의 코미타투스 전사와 매우 유사합니다.
- 크리스토퍼 벡위드 교수


벡위드 교수가 언급한 화랑의 정신은 원광법사의 세속오계世俗五戒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환단고기』의 기록에 의해 환국에서 내려온 오훈五訓, 오상지도五常之道에서 기원한다.

환국 시대에 오훈五訓이 있었고, 신시 시대에 오사五事, 고조선 시대에 오행육정五行六政, 부여에 구서九誓가 있었다. 또한 삼한의 공통된 풍속에 오계五戒가 있었으니, 곧 효도[孝]⋅충성[忠]⋅신의[信]⋅용맹[勇]⋅어짊[仁]이다. 모두 백성을 공명정대하고 평등하게 가르치고 무리를 조직하려는 뜻이 있었다. - 『환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太白逸史」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환단고기』에는 이렇게 상고 시대의 윤리 덕목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환국의 오훈五訓이란 첫째로 매사에 정성과 믿음으로 행하여 거짓이 없게 하고[성신불위誠信不爲], 둘째로 공경하고 근면하여 게으름이 없게 하고[경근불태敬勤不怠], 셋째로 효도하고 순종하여 거역하지 말고[효순불위孝順不違], 넷째로 청렴하고 의를 지켜 음란하지 말고[염의불음廉義不淫], 다섯째로 겸양하고 화평하게 지내어 싸움을 하지 말라[겸화불투謙和不鬪]는 것이다.

또한 삼한의 풍속이라는 ‘오계五戒’ 또는 ‘다물오계多勿五戒’는 사친이효事親以孝, 사군이충事君以忠,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勇], 살생유택殺生有擇[=仁]이다. 박은식의 『한국통사韓國痛史』에서는 ‘삼국통속오계三國通俗五戒’라 하였는데, 신라 원광법사의 ‘세속오계世俗五戒’와 같다. 원광법사가 “지금은 세속오계가 있다[今有世俗五戒].”라고 말한 것은 오계가 법사의 창안이 아니라, 한민족에게 전래되는 신교의 실천 윤리 덕목을 이어받은 것임을 시사한다.

원광법사의 법명 자체도 원광圓光, 즉 우주 광명이란 뜻이다. 이렇듯 세속오계는 불교의 가르침이 아닌 우주 광명의 인간 심법을 전수하기 위해 환국⋅배달⋅조선의 경당扃堂에서 가르쳤던 오상지도의 덕목인 것이다.

코미타투스의 최종 결론 태을랑


다큐 〈초원의 제국〉 2부는 이렇게 초원길 전체가 코미타투스의 전사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고, 한반도와 경주는 중앙유라시아 고대사의 큰 축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캅카스의 황금잔에서 보로보에 단검, 이삭 황금인간, 투바 황금단검, 신라 황금보검까지 초원길을 따라간 8,000킬로미터 곳곳엔 코미타투스의 흔적이 있었다.

코미타투스 문화는 환국에서부터 발원되었다. 환국 말기에 환인천제께서 누가 동방을 개척할 것이냐 하였더니, 환웅께서 동방 개척을 자원했다. 그래서 환웅천황이 백두산 쪽으로 갈 때 칸과 함께하는 창업 결사대 코미타투스 3천 명이 함께 떠났다. 무리 3천 명의 일가를 열 명씩으로 보면, 약 3만 명이 동방으로 떠난 것이다. 이 환웅의 3천 명 제세핵랑군濟世核郞軍은 세상을 건지고 새로운 문명으로 인도하는 핵랑군이다.

이어 단군조선은 그 전통을 받아서 국자랑國子郞이라고 했다. 북부여는 천왕랑天王郞, 고구려에서는 조의선인皂衣仙人이라 했고, 백제에는 무절武節, 신라에는 유명한 화랑花郞이 있었다. 그 화랑 조직을 기반으로 해서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저력이 나왔다. 이어 고려의 재가화상在家和尙, 조선 시대의 진유眞儒가 있었고 조선 왕조 말에 60만 동학군東學軍이 등장했다. 그로부터 한 세대 후에 증산도 문화에서 600만 명의 태을랑太乙郞들이 나왔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환국에서 대한민국까지 국통맥 속에 면면히 코미타투스가 있어 왔던 것이다.

코미타투스는 텡그리(삼신상제님)의 신성을 받아 칸과 생사를 같이한 문화 창조의 결사대이다. - 〈환단고기 북콘서트〉 카자흐스탄 편 종도사님 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