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사관의 진실 | 환단고기가 처음 밝혀 주는 역사 진실(17)
[역사X파일]
환단고기는 한중일 삼국 성씨의 기원을 밝혀 주는 족보학의 원전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우리 역사, 문화의 원형을 밝혀 주는 보배로운 사서이다. 특히 환단고기는 다른 사서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역사 사실이 많이 실려 있다. 『환단고기 역주본』(상생출판)의 해제 편에서는 ‘환단고기에서만 전해 주는 새로운 역사 진실’이라고 하여 이를 52가지로 정리하여 밝혀 주고 있다. 이를 중심으로 환단고기의 진정한 역사적 가치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45 태호복희씨의 혈통과 성씨의 기원에 대해 밝혀 준다!
밀기 왈 복희 출자신시 세습우사지직 후 경청구낙랑
密記에 曰 伏羲는 出自神市하사 世襲雨師之職하시고 後에 經靑邱樂浪하사
수사우진 병여수인유소 입호어서토야 후예 분거우풍산
遂徙于陳하시니 並與燧人有巢로 立號於西土也시라 後裔가 分居于風山하야
역성풍 후 수분위패·관·임·기·포·리·사·팽팔씨야
亦姓風이러니 後에 遂分爲佩·觀·任·己·庖·理·姒·彭八氏也오
『밀기密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복희는 신시에서 태어나 우사雨師의 직책을 대물림하고 뒤에 청구와 낙랑을 거처 마침내 진陳에 옮겨 수인, 유소와 나란히 그 이름을 서방에 빛내었다. 그 후예가 풍산에 나뉘어 살았으니 역시 풍風으로 성을 삼았다. 뒤엔 마침내 갈라져 패佩⋅관觀⋅임任⋅기己⋅포庖⋅리理⋅사姒⋅팽彭의 여덟 씨족으로 나뉘어졌다’ (『환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太白逸史」 신시본기神市本紀)
密記에 曰 伏羲는 出自神市하사 世襲雨師之職하시고 後에 經靑邱樂浪하사
수사우진 병여수인유소 입호어서토야 후예 분거우풍산
遂徙于陳하시니 並與燧人有巢로 立號於西土也시라 後裔가 分居于風山하야
역성풍 후 수분위패·관·임·기·포·리·사·팽팔씨야
亦姓風이러니 後에 遂分爲佩·觀·任·己·庖·理·姒·彭八氏也오
『밀기密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복희는 신시에서 태어나 우사雨師의 직책을 대물림하고 뒤에 청구와 낙랑을 거처 마침내 진陳에 옮겨 수인, 유소와 나란히 그 이름을 서방에 빛내었다. 그 후예가 풍산에 나뉘어 살았으니 역시 풍風으로 성을 삼았다. 뒤엔 마침내 갈라져 패佩⋅관觀⋅임任⋅기己⋅포庖⋅리理⋅사姒⋅팽彭의 여덟 씨족으로 나뉘어졌다’ (『환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太白逸史」 신시본기神市本紀)
『환단고기』가 인류 원형 문화의 원전原典으로서 가진 또 하나의 커다란 가치는 ‘한⋅중⋅일 3국의 성씨에 대한 기원’을 자세히 밝혀 준다는 사실이다. 원래 신교의 도가 사학은, 인류 최초의 성씨로 5,600여 년 전의 인물인 동이족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의 성姓인 풍風씨가 나왔으나 직계는 15대 만에 끊어져 전하지 못하고, 그 후손이 패佩⋅관觀⋅임任⋅기己⋅포庖⋅리理⋅사姒⋅팽彭씨로 나뉘어 살았다고 가르친다. 그 후에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가 강수姜水에 살면서 성을 강姜씨로 삼았는데, 이 ‘강姜씨가 곧 인류 성씨의 기원’이다.
천자 문화의 종주국은 당연히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이다. 따라서 배달국에서 성씨 문화가 처음으로 발원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복희씨는 풍성風姓을 당시 배달국 7세 천황이었던 다의발多儀發 환웅으로부터 받았을 것이다. 혈통으로 보면 다의발 환웅은 태호복희씨의 가장 큰 형님이 되신다.
지금은 성姓과 씨氏를 구분 없이 쓰지만 원래 성이 먼저 생기고 씨는 후에 생겨났다. 그리고 성은 씨보다 상위 개념으로 씨를 포함하는 의미가 있다. 개인의 성姓에 의하여 각자의 소속된 혈통을 분별할 수 있다. 반면 씨氏는 동일한 혈통의 사람들이 각지에 분산될 때에 각 지역에 분산된 일파를 표시하기 위한 표지標識였다. 즉 씨는 땅과 연계된 개념으로, 한국의 본관本貫과 유사하다.
9세기 초에 편찬된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에도 당시 일본의 지배 계급을 이루던 1,182개 성씨 대부분이 한국계로 기록되어 있다. 『환단고기』는 역사 문화 경전으로서 인류의 원형 문화를 밝혀 준다. 그중에서도 성씨 문화의 근원을 추적할 수 있는 여러 기록들을 제공해 준다. 『환단고기』의 지대한 가치를 다시금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46 이씨의 원조상 노자는 풍인風人이다!
계미 노인공구 적주 문예어노자이이
癸未에 魯人孔丘가 適周하야 問禮於老子李耳하니
이부 성 한 명 건 기선 풍인
耳父의 姓은 韓이오 名은 乾이니 其先은 風人이라.
계미(단기 1816, BCE 518)년에 노나라 사람 공자가 주나라에 가서 노자 이이李耳에게 예를 물었다. 이耳의 아버지는 성이 한韓이고 이름이 건乾인데, 선조는 풍이족 사람[風人]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太白逸史」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癸未에 魯人孔丘가 適周하야 問禮於老子李耳하니
이부 성 한 명 건 기선 풍인
耳父의 姓은 韓이오 名은 乾이니 其先은 風人이라.
계미(단기 1816, BCE 518)년에 노나라 사람 공자가 주나라에 가서 노자 이이李耳에게 예를 물었다. 이耳의 아버지는 성이 한韓이고 이름이 건乾인데, 선조는 풍이족 사람[風人]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太白逸史」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노자의 신원을 밝혀 주는 위 기록은 동북아 이씨 성의 기원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밝혀 준다. 노자의 혈통에 대해 『신교총화神敎叢話』에서는 노자는 원래 동방 사람인데 나중에 ‘동방의 아들(李=木+子)’이란 뜻으로 이씨로 바꾸었다고 한다.
도교道敎로 말하면, 노자老子가 스스로 성을 이李라고 하였는데 이李 자는 동방의 아들이란 뜻이다. 이것은 자기가 동방 사람임을 가리킨 것이 아니고 무엇이리오. (以道敎言之, 老子之初生而自指李[東方木也], 李字, 木子之意, 非東方而何!) - 『신교총화神敎叢話』
따라서 한성韓姓이 동방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또 한씨韓氏는 풍인風人의 후손이라고 했다. 즉 태호복희의 풍씨족의 후예이다. 이씨의 기원은 풍씨라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일설에 의하면 이씨가 원래 리理성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있다. 풍성에서 갈라진 팔성 중에 리理성이 있다. 그 리理성에서 한韓성으로 변하고 또 다시 이李성으로 변화한 것이다. 풍風성과 리理성, 한韓성, 이李성의 관계에 대해서는 앞으로 충분히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노자 이후 중국 역대 왕조에서 이李씨는 당나라 황실을 비롯하여 서하西夏를 세운 이원호李元昊와 후당後唐을 세운 이존욱李存勖 등 모두 60여 명의 이씨 황제가 15개의 왕조를 다스렸다.
이와 같이 우리 한민족 성씨의 유래, 특히 한⋅중⋅일 3국 성씨도 『환단고기』의 전거典據에 의하지 않고는 그 뿌리를 구체적으로 살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도 신교 문화의 원전으로서 도가 사서의 결정판인 『환단고기』는 깊이 연구할 만한 숱한 문제와 가치를 담고 있는 고대사의 보고寶庫라는 점을 다시 강조해 두고자 한다. ■
© 월간개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