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으로 보는 문화 이야기 | 봄에 씨를 뿌려야 가을에 거둔다 - 태극 -

[한문화]
김덕기 / 본부도장

들어가는 말


지구는 생명체로 가득한 행성입니다. 무수히 많은 동물과 식물은 천지부모가 낳은 자식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씨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동물은 암컷의 난자와 수컷의 정자가 만나서 생긴 수정란에서 탄생했습니다. 식물은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과 만나서 생긴 씨에서 탄생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천지 만물을 낳은 씨앗인 ‘태극太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위대한 숫자 0의 발견


1, 2, 3, 4, 5, 6, 7, 8, 9, 10. 어릴 적 숫자를 배우는 건 호기심 가득한 즐거운 놀이였습니다. 덧셈이라도 배울라치면 열 손가락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하나둘씩 배운 숫자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을 뜻하는 숫자 0은 여간 이해하기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게 더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숫자 중에서 0이 가장 늦게 발견된 걸 보면, 옛사람들도 0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무척 힘들었나 봅니다. 우리는 사과가 없을 때 “사과가 0개 있다.”고 하지 않고, “사과가 없어.”라고 합니다. 0이 없어도 큰 불편함이 없고, 더하거나 빼 봤자 변화가 없는 0을 굳이 계산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메소포타미아, 바빌로니아, 그리스, 마야 등 각 문명권에서는 숫자를 발견해서 각자의 방식으로 표기했습니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음수陰數도 발견했습니다.*1) 그럼에도 숫자 하나가 발견되지 못했습니다. 물론 36과 306을 구분하기 위해 빈자리에 채워 주는 0과 같은 기호(구분자: place holder)는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비어 있는 자릿수를 표시하기 위한 기호(digit)일 뿐, 수(numbers)는 아니었습니다.
*1) 오래전부터 중국과 인도 사람들은 2-2가 0이므로 2-3은 -1이라는 것을 알았고, ‘(-2)×(-2), (-2)÷(-3)’과 같은 계산도 할 줄 알았다. - 국립중앙과학관, 「수의 역사」


숫자 0의 고향은 인도입니다. BCE 4세기, 인도를 침략한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는 바빌로니아의 수 체계를 인도에 전했습니다. 이때 구분자(place holder)로서의 0도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0이 구분자 외에도 수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최초의 인물은 인도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아리아바타Āryabhata(476~550)였습니다. 그가 쓴 『아르야바티야Aryabhatiya』에는 0이나 10진수에 해당하는 숫자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는 ‘0은 같은 두 수를 뺄셈하면 얻어지는 수’라고 정의하고 ‘그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 즉 무無의 상태를 실제 수’라고 주장했습니다.

0의 발견은 수의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이제 어떤 수의 뒤에 0만 표시하면 숫자는 무한대로 뻗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작은 0으로 가장 큰 수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뒤늦게 발견된 0은 대수학代數學(algebra)의 아버지라 불리는 페르시아의 수학자 알 콰리즈미Alkhwarizmi(780?~850?)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0을 포함해 모두 10개의 기호를 사용한 인도의 기수법은 아라비아를 거쳐 11세기경에 스페인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라비아 숫자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과 만나기 위해 발견한 0


0은 ‘없음’을 ‘있음’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수많은 문화권에서 수많은 언어로 수를 셌지만 ‘없음’을 세는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듭니다. 왜 수학이 발달했던 그리스에서는 숫자 0을 발견하지 못한 것일까요?
‘없음’을 뜻하는 무無는 ‘비존재, 허무, 공허’를 의미합니다. 그리스인들은 공허와 혼돈을 ‘절대적인 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공허와 혼돈에서 우주가 탄생했으므로, 언젠가는 공허와 혼돈이 우주를 집어삼킬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에게 무는 세상의 종말을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0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수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은 무한과 진공을 거부했습니다. 0은 진공, 빈 공간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니 나타내서도 안 되는 것이었죠. 따라서 그들은 플레이스 홀더(place holder)로서의 0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 EBS 다큐프라임 ‘넘버스’


그러나 인도인들은 달랐습니다. 공허를 없는 게 아니라 있는 것으로 봤습니다. 힌두교에서는 ‘우주가 무에서 탄생했다.’고 합니다. 힌두교 최고의 신 브라마Brahmā(범천梵天)는 우주를 창조한 신입니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무를 추구하며 신에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인도에서는 0을 ‘수냐’라고 부릅니다(산스크리트어로는 Śunya, 팔리어로는 Suñña). 수냐는 ‘공백, 없음, 하늘, 창조되지 않은 것, 사유되지 않은 것’ 등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일체의 더러움과 그릇됨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힌두교에서는 브라만(범梵)과 니르바나(열반涅槃)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대승불교에서는 반야사상般若思想을 상징하는 중심 용어가 되었습니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될 때 수냐는 ‘영零, 무無, 공空’으로 번역되었습니다.*2)
*2) 영零에는 ‘떨어진다, 풀이 마른다’는 의미가 있다. 0을 절대적인 무가 아닌 상대적인 무, 즉 사물의 상태 변화로 봤다는 걸 알 수 있다.


꼬리잡기 놀이에 담긴 용 신화


공기, 자치기, 줄넘기, 오징어….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하는 놀이만큼 재미있는 건 없었습니다. 공터만 있으면 삼삼오오 모여서 놀이를 즐겼습니다. 그중에 ‘꼬리잡기’라는 게 있습니다. 넓은 마당에서 아이들이 허리를 잡고 한 줄로 늘어섭니다. 맨 앞의 머리 쪽 아이는 맨 뒤의 꼬리 쪽 아이를 잡으려고 하고, 꼬리 쪽 아이는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을 다닙니다. 중간의 아이들은 허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빙글빙글 돕니다. 그러다 머리 쪽 아이가 꼬리 쪽 아이를 잡는 순간 원이 만들어지면서 놀이가 끝이 납니다.

물이 증발하면 구름이 되어 비가 내립니다. 물의 순환은 생명을 살아 있게 합니다. 지구는 해를 중심으로 순환하고, 달은 지구를 중심으로 순환합니다. 하루는 아침⋅점심⋅저녁⋅밤을 한 주기로 순환합니다. 전 세계의 고대 문명에서는 자연의 무한한 순환을 공통의 문양으로 상징화했습니다. 꼬리잡기처럼 자신의 꼬리를 먹으며 자라는 ‘우로보로스Ouroboros’가 그것입니다.
우로보로스는 우주적인 용(뱀)으로 신성한 원을 상징합니다. 원圓은 무한히 회전하므로 완전성과 전체성, 불멸성, 동시성 등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하느님이 만든 우주, 하늘을 원으로 표상합니다.

우로보로스와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벤젠Benzene은 투명하면서 달콤한 냄새가 나는 가연성 액체입니다. 플라스틱이나 살충제, 세제 등의 원료로 쓰입니다. 벤젠은 탄소 원자 여섯 개와 수소 원자 여섯 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1825년에 이미 벤젠의 실험식은 C6H6로 알려졌지만, 원자들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벤젠의 분자 구조를 알아낸 사람은 독일의 화학자 아우구스트 케쿨레Friedrich August Kekulé von Stradonitz(1829~1896)입니다.

벤젠의 구조를 알아내기 위해 그는 매일 서너 시간만 자면서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탄소와 수소를 배열한 화학식을 셀 수 없이 많이 그렸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밤, 깜빡 졸고 있던 케쿨레는 꿈을 꿨습니다.

꿈속에서 눈앞에 떠다니는 탄소 원자와 수소 원자가 여러 모양으로 변했습니다. 어느 순간 원자가 한 마리 뱀으로 변해서 빙글빙글 돌더니 자기 꼬리를 물고 둥근 고리를 만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깨어난 그는 연필을 들고 탄소 원자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이를 정리해 1865년 벤젠 고리 구조를 세상에 발표했습니다.

인류 역사를 바꾼 바퀴


지금은 집이 없어도 자동차는 있어야 하는 마이카my car 시대입니다. 현대 문명의 필수품인 자동차가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를 수 있는 건 바퀴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퀴가 언제 처음 발명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바퀴는 BCE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유적에서 발굴된 전차용 원판 바퀴입니다. 통나무를 둥글게 잘라서 만들었습니다. 이후 바퀴 테의 둘레를 가죽이나 구리로 둘러싼 형태를 거쳐 현재와 같이 바큇살이 있는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바퀴는 가운데 있는 축을 중심으로 둥근 테가 회전합니다. 그래서 바퀴는 모든 존재의 순환과 끊임없는 변화와 생성을 상징합니다. 윤회輪廻는 산스크리트어 삼사라saṃsāra를 번역한 말로 ‘바퀴가 돈다.’는 뜻입니다. 우주는 존재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무한히 순환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삶과 죽음의 바퀴를 굴리면서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의 세계를 오가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회전하는 원은 대우주의 윤회일 뿐만 아니라 소우주의 윤회이기도 합니다. 윤회는 자이나교, 힌두교, 타로 등에서 ‘존재의 수레바퀴’라는 개념과 상징물로 나타납니다. 신화 속의 우로보로스가 종교 시대에 윤회 사상으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문화에서 바퀴로 상징되는 원은 자연의 보편적인 주기와 순환, 궤도, 규칙성, 진동, 리듬을 나타낸다. - 마이클 슈나이더, 『자연, 예술, 과학의 수학적 원형』 12쪽


원은 변화가 없는 형태인 데 반해, 우로보로스는 원을 그리며 무한히 회전하는 형태입니다. 원이 회전할 수 있는 건 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심이 없다면 원을 유지하지 못하고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축을 중심으로 원이 회전하는 형태가 바퀴입니다.

‘원’과 ‘운동 방향을 가진 원’, ‘중심이 있는 원’,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원’의 차이는 아주 미묘해서 구분하는 게 쉽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역 철학과 인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들을 세심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축구장의 비유를 다시 들어 보겠습니다.

22명이 축구를 하려고 모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팀이 나뉘지 않았습니다. 축구장도 장소만 있을 뿐 골대도 없고 중앙선도 그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처럼 양극과 음극의 극성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를 ‘무극無極’이라고 합니다. 도형으로 나타내면 ‘원’과 같습니다.

이제 경기장에 테두리와 중앙선이 그어졌습니다. 22명의 선수도 11명씩 양 팀으로 나뉘어서 중앙선을 기준으로 양편에 섭니다. 이렇게 양극과 음극의 극성이 나타난 상태를 ‘공태극空太極’이라고 합니다. 도형으로 나타내면 ‘상승과 하강의 운동 방향이 생긴 원’과 같습니다.

'공空'자를 취상取象할 때에 ㅆ穴ㅆ工한 것은 '공工'이라는 기술자가 혈穴 속에 숨어 있는 상을 취하기 위한 것이다. …… 그러나 이것은 수水를 창조하는 시초의 상인 것뿐이고 아직까지 이것만으로서는 수水는 아니다. 우주 만물은 물로써 형성될 때에 동動하기 시작하는 것이나 여기에는 아직까지 동動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즉 이곳이 바로 낡은 동動이 끝나고 또 새로운 동動이 시작하려는 공간인 것이다. - 『우주변화의 원리』 388쪽


심판이 공을 운동장의 가운데에 놓고 공격과 수비를 정합니다. 이제 선수들의 모든 관심이 공에 집중됩니다.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심판의 호각 소리를 기다리며 긴장감만 흐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음과 양의 구심점이 생겨서 때가 되면 즉시 동動할 수 있는 상태를 ‘수태극水太極’이라고 합니다. 도형으로 나타내면 ‘중심축이 있는 원’과 같습니다.

심판의 호각 소리로 경기가 시작되면 양 팀 선수들이 공을 중심으로 활발히 움직입니다. 둥근 공의 향방과 선수들의 운동에 따라 다양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중도中道에 따라 시의적절하게 변화하는 상태를 ‘황극皇極’이라고 합니다. 도형으로 나타내면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원’과 같습니다.*4)
*4) 무극⋅태극⋅황극의 삼극이 모두 드러난 상을 표현한 것이 삼태극도이다. 그러므로 삼태극도는 삼극도라고 할 수 있다.


바퀴가 회전할 수 있는 이유는 바퀴의 축이 힘의 원천인 엔진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불교의 상징물인 ‘법륜法輪(진리의 수레바퀴)’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법륜의 중심에는 삼태극이 자리하고 있고, 바깥으로 8개 또는 12개의 바큇살이 있습니다. 삼태극에서 솟아난 생명력이 팔방위(팔괘八卦)로 뻗어 나가 우주 만유를 운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태극은 우주 만유를 변화 운동하게 하는 생명력의 근원입니다.#

점 위에 꼿꼿이 서 있는 닫힌 컴퍼스는 신화 속의 세계축, 세계 산맥, 많은 문화의 신성한 중심지, 창조를 지지하는 상징적인 기둥 또는 척추를 나타내며, 모든 것은 그 주위를 경배하며 돈다. …… 점은 전체 중의 전체의 근원이다. 그것은 이해의 경지를 넘어서는 알 수 없는 대상이며,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향해 접혀 있다. 그러나 점은 마치 씨앗처럼 팽창해 나가 원으로 자신을 완성한다. …… 원 내부의 점은 이집트와 중국과 마야 문명에서는 ‘빛’을 상징했다. - 마이클 슈나이더, 『자연, 예술, 과학의 수학적 원형』 8~10쪽


콩 심은 데 콩 난다


우리 몸은 약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먹지 않고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지만, 물 없이는 보통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고 합니다. 물은 체내 장기와 세포를 구성하고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몸과 마음의 균형과 건강을 위해서는 하루에 6~8잔 이상의 물을 마실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지구에 무수한 생명이 넘쳐 날 수 있는 건 지구가 물의 행성이기 때문입니다. 물이 표면적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지하 깊은 곳에서도 거대한 바다가 발견됐습니다. 그런데 달과 화성, 목성의 위성, 혜성과 소행성에서도 물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우주는 가히 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물에서 태어나서 물을 먹고 자랍니다. 역 철학에서는 물과 그 성질을 수태극水太極이라고 합니다. 태太 자에는 ‘크다, 처음, 콩’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콩을 통해 태극의 성질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콩은 생명의 모체인 씨를 대표합니다. 씨는 껍질(종피種皮)과 떡잎이 되는 씨젖(배유胚乳), 뿌리와 싹으로 자라나는 씨눈(배아胚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씨젖은 태극처럼 둘로 나뉘어 있습니다. 축구 선수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삼태극을 이루고 있습니다. 씨앗의 핵심은 잎과 줄기, 뿌리로 자라나는 씨눈(씨핵)입니다. 축구 경기의 중심인 공과 같습니다. 이를 보면 ‘콩과 공, 공태극’의 글자가 비슷한 건 우연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따스한 봄이 되어 겨우내 잠들어 있던 씨를 심으면 뿌리와 싹이 납니다. 씨는 한여름 철에 뙤약볕을 맞으며 무럭무럭 자라서 이내 꽃이 핍니다. 꽃이 지면서 열매가 맺히면 가을철에 그 속에서 씨가 영급니다. 겨울철이 되면 씨는 겨울잠을 자면서 다음 봄을 기다립니다.

이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씨는 식물의 가장 작은 형태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자라날 식물의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봄여름에 새싹이 나서 자라는 건 씨가 분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식물은 무한히 분열하지 않습니다. 열매를 맺고 새로운 씨앗을 만드는 게 최종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분열을 끝막고 통일로 전환하는 최초의 형태가 꽃입니다. 달리 말하면 꽃은 식물이 최대로 분열한 것으로 음과 양의 성질마저 사라진 상태입니다. 꽃과 같이 분열의 극에서 통일로 전환하는 마디를 무극無極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배우게 될 십간으로는 기토己土, 십이지로는 미토未土에 해당합니다.

이제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힙니다. 십간으로는 경금庚金⋅신금辛金, 십이지로는 신금申金⋅유금酉金에 해당합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그 속에서 씨가 생깁니다. 하지만 아직 물 덩어리 같은 형태만 있을 뿐 씨눈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 상태를 공태극空太極이라고 합니다. 십간으로는 임수壬水, 십이지로는 술토戌土에 해당합니다.*5)
*5) 공태극은 수태극이 생겨난 근원이다. 그래서 공태극을 ‘수원水原’이라고 한다.


이제 씨가 더 압축 통일되면 씨눈(핵核)이 생겨서 새 생명으로 자랄 수 있게 됩니다. 이 상태를 수태극水太極이라고 합니다. 십간으로는 계수癸水, 십이지로는 해수亥水⋅자수子水에 해당합니다. 수태극은 생명체의 모든 가능성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숫자로는 1로 나타냅니다.

보통 우리네 인생을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합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뜻으로, 불교 의식집인 『석문의범釋門儀範』에 수록된 구절입니다. 불교에서는 ‘우주 만물이 인연에 의해 일시적으로 생겨나서 곧 없어지고 마는 것이므로 영원하고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물의 실상은 자성自性이 없으므로 공空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手’ 자에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따라서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를 역 철학으로 풀이하면 ‘만물의 씨앗인 공에서 사람이 나와서, 공으로 사람이 돌아간다.’로도 풀 수 있을 것입니다. 태극은 우주 만물을 낳고 기르는 생명의 모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