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우주를 보다 허블 망원경

[기고]
박규상 / 교무종감, 진주도장

우주를 탐색하려 했던 과학자들은 예로부터 망원경을 통해 우주의 별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우주의 구성원들을 관측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인류의 노력은 더 발전하여 아득한 우주로 망원경을 쏘아 보내게 되었다. 우주로 나간 망원경은 다채로운 우주의 사진을 찍어 전송함으로써 과학자들에겐 새로운 발견에 의한 흥분을, 일반인에게는 직접 볼 수 없는 우주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이번 호에서는 허블 망원경과 허블 망원경이 보여준 신비한 우주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우주로의 여행을 떠난 망원경, 허블 망원경


허블망원경은 무게 12.2t, 주 거울 지름 2.4m, 경통 길이 약 13m의 반사망원경이다. 1990년 4월 24일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 실려 발사되었고, 지구상공 610km 궤도에 진입하여 우주관측활동을 시작하였다. 지구에 설치된 고성능 망원경들과 비교해 해상도는 10∼30배, 감도는 50∼100배로, 지구상에 설치된 망원경보다 50배 이상 미세한 부분까지 관찰할 수 있다. 따라서 빅뱅(Big Bang:대폭발) 후 빛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우주공간이 투명해진 대략 5억 년이 지난 시점부터 우주의 중심에서 초속 18만 6000마일의 속도로 이제 막 지구에 도착하기 시작한 빛까지 포착할 수 있다.

올해로 25주년을 맞은 허블망원경은 지금까지 150만 장이 넘는 사진들을 지구로 보내왔다. 그 중에는 우주를 보는 인류의 시각을 획기적으로 바꾼 유명한 사진이 적지 않다. 허블 망원경이 보낸 사진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지식을 통째로 뒤흔들기도 하고, 추측에 불과했던 가설들을 사실로 입증해 주기도 했다. 허블 망원경이 생기기 전에는 우주의 나이가 100억 년인지 200억 년인지 밝힐 수 없었지만, 지금은 우주의 나이뿐 아니라 우주의 시작과 끝에 관해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허블 망원경은 24시간 쉬지 않고 관측 자료를 지구로 전송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논문이 매주 8편씩 발표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허블 망원경은 우주에서 시시각각 천문학을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는 셈이다.

허블망원경이 밝힌 우주의 모습들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 대부분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암흑 에너지나 블랙홀 같은 암흑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허블 망원경이 포착한 증거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우주를 보는 법을 알아볼 수 있다. 허블 망원경이 보낸 생생하고 경이로운 우주의 사진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빅뱅 이론, 블랙홀, 별과 행성의 차이 등 천문학에서 기본이 되는 개념들을 쉽게 머릿속에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1. 첨단기술로 재탄생한 창조의 기둥
일반인에게 가장 유명한 허블망원경 사진은 1995년 4월 1일 촬영한 독수리 성운, 이른바 ‘창조의 기둥’이다. 여름철 남쪽 하늘에 보이는 뱀자리의 꼬리 부분에 있는 독수리 성운은 지구에서 약 6500광년(1광년=약 9조 4607억㎞) 거리에 있다. 이 성운은 고밀도의 수소와 먼지로 채워져 있으며 이 가스와 먼지가 중력에 의해 서로를 끌어당기면서 뭉쳐져 별을 탄생시킨다. 사진에서도 세 기둥 위쪽에서 새로 탄생한 별들이 쏟아내는 강렬한 빛을 볼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 사진에 별이 태어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창조의 기둥(Pillars of Creati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가장 큰 왼쪽 기둥의 길이는 4광년이나 된다.

2. 일반상대성 이론을 입증한 중력렌즈
올해는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담은 논문을 발표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 6일자에 일반상대성이론을 입증하는 한 장의 천체사진을 실었다. 바로 지난해 11월 허블 우주망원경이 촬영한 ‘레프스달(Refsdal)’ 초신성 사진이다. 사진에서 가운데 확대된 부분에 있는 네 개의 별은 실제로는 하나의 별이다. 레프스달 초신성은 지구에서 93억광년 거리에 있다. 이 초신성과 지구 사이에는 엄청난 중력을 가진 거대 은하들이 모여 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시간과 공간을 휘게 하여 시공간을 지나는 빛도 휘게 한다. 은하들이 거대한 중력을 내면서 렌즈처럼 빛을 휘게 하는 이 현상을 ‘중력렌즈(gravitational lens)’라고 한다.

초신성과 은하, 지구가 일직선으로 있으면 초신성 빛이 강력한 중력을 가진 은하를 지나면서 은하 바깥쪽으로 균일하게 휘어져 마치 둥근 고리처럼 빛이 난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이 중력렌즈 효과를 예측해, 이를 ‘아인슈타인 고리’라고 부른다. 하지만 초신성과 렌즈 역할을 하는 은하, 그리고 지구가 일직선에 있지 않으면 초신성 빛은 둥근 고리 모양이 아니라 네 갈래로 갈라져 허블 망원경에는 각기 다른 4개의 별 모양으로 관측된다. 4개의 별이 십자가 모양을 이루기 때문에 이 역시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따서 ‘아인슈타인 십자가’라고 부른다.

3. 우주의 새벽을 촬영하다
허블 우주망원경이 우주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우주의 새벽'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이 놀라운 이미지는 미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이 중력 렌즈를 사용해 잡아낸 초창기 원시은하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원시 은하는 빅뱅 이후 6억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 태어난 것으로, 허블 망원경이 이제껏 잡아낸 어떤 은하보다도 먼 거리에 있는 은하들이다. 우주에서는 시간이 곧 공간이므로 이 은하들의 나이는 130억년이 넘는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이 작은 은하들이 지금의 우주를 만든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스위스 로잔 공과대학의 하킴 아텍 교수가 이끄는 국제적인 연구진은 빅뱅 이후 6억년에서 9억년 사이의 공간에서 이와 같은 작은 은하들을 250개 이상 발견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은하들 중 가장 오랜 은하들이다. 이들 은하에서 출발한 빛은 적어도 120억년 이상의 시간을 날아서 망원경에 포착된 셈인데, 이는 곧 천문학자들이 120억년 이전의 과거에 존재했던 아기 우주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허블 망원경이 잡은 심우주深宇宙(deep space)의 은하들 중에서 이보다 더 오랜 은하들은 없습니다.”라고 프랑스 리옹 천문대의 요한 리차드가 밝혔다. 이들 은하에서 온 빛을 모아 분석해본 결과, 연구진은 이 원시 은하의 빛이 초창기 우주의 역사에서 미스터리에 싸인 기간, 곧 재이온화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초기 원시우주에서 탄생한 최초의 별(항성)과 은하가 우주 공간에 강력한 자외선을 방출하면서 우주 온도가 높아지면, 우주는 다시 이온화의 과정을 겪게 되는데, 이를 ‘재이온화’라고 부른다. 재이온화가 진행되면 수소의 양성자에서 분리된 전자로 인해 우주는 다시 빛이 직진할 수 없는 불투명한 상태가 된다.

이번 연구에서 관측된 원시은하의 자외선을 조사하면 이 은하들이 진화의 과정에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연구진은 상당한 확신을 가지고, 이들 원시은하들이 초창기 우주를 투명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재이온화 시기는 빅뱅 이후 7억년 시점에서 끝났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같은 발견의 뒤에는 연구진이 활용한 중력 렌즈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허블 심우주 관측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연구진은 심우주에 있는 3개의 은하단을 중력 렌즈로 활용했다. 연구진은 이 중력 렌즈를 이용해 해상도 높은 원시은하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제1세대 은하를 관측, 연구하려면 이 중력 렌즈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심우주의 은하단은 강력한 천연 망원경이다. 이들의 도움이 없으면 초창기 우주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고 스위스 로잔 공과대학의 얀-폴 크나이브 박사가 밝혔다.

허블 망원경의 뒤를 잇다. 차세대 우주 망원경


지구 바깥의 우주는 우리에게 여전히 밝혀진 것보다 질문이 더 많은 미지의 공간이다. 그렇지만 당장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계속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설명을 찾게 될 것이다. 뉴턴,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들이 그랬듯, 세계를 관찰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연습을 한다면 말이다. 허블 망원경은 궤도에 오른 뒤 25년간 천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오는 2017년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허블 망원경의 뒤를 이어 허블 망원경보다 성능이 뛰어난 차세대 우주망원경이 준비 중에 있다.

달 너머의 궤도에 올려 보낼 차세대 우주망원경은 허블 우주망원경보다 10배나 크면서도 무게는 적게 나가는 반사경이 달리게 된다. 이 반사경은 마치 꽃잎처럼 발사 시에는 접혀 있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활짝 펴지게 된다.

이 망원경은 자외선에서 근적외선에 달하는 파장의 허블우주망원경과는 달리 근적외선에서 중간 적외선을 목표로 관측한다고 한다. 적외선용이기 때문에 정확도가 좀 떨어져도 크게 지장이 없으므로 자주 수리하지 않아도 되어 경비를 줄일 수 있다. 또한 망원경에 대형 빛 가리개를 달아 태양이나 지구로부터 나오는 적외선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허블 우주망원경은 구경(口徑)이 2.4m인 데 비해 차세대 우주망원경은 구경이 8m나 되어 허블 우주망원경보다 1000배나 강력하므로, 행성의 형성 또는 생명의 기원에 대하여 획기적인 단서가 될 만한 발견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차세대 우주망원경이 본격적으로 우주개발에 이용되는 것은 2010년경으로, 이후부터는 우주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크게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연구 중인 차세대 우주망원경의 종류에는 NASA Goddard, Ball Aerospace, Lockheed-Martin, TRW 등이 있다. (감수 김영현 / 종감, 본부도장)


<참고도서>
『빛의 물리학』, EBS 다큐프라임 빛의 물리학 제작팀, 2014년 5월
『마음의 미래』, 미치오 가쿠, 김영사, 2015년 4월
〈조선일보 기사〉, 2015년 3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