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프리카의 교량, 모로코 왕국

[세계지역문화탐방]

이해영 전임기자 / 서울관악도장

모로코Morocco 왕국은 북아프리카의 서북단,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관문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럽과 가장 가까운 지리적 교량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수도는 라바트Rabat, 최대 도시는 카사블랑카Casablanca이다.

본래 이 땅의 주인이었던 아마지그Amazigh(베르베르Berber인)의 고유한 전통 위에 7세기 이후 유입된 이슬람 문명이 융합되면서 독창적이고 풍부한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했다.

현재 모로코는 국왕 모하메드Mohammed 6세의 영도 아래 안정적인 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풍부한 인광석燐鑛石(Phosphate rock) 자원과 전통 농업에 더해, 자동차⋅항공 부품 등 첨단 제조업과 태양광 신재생 에너지, 그리고 세계적인 관광업을 중심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현대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내고 있다.


한눈에 보는 모로코





국명



아랍 세계의 가장 서쪽에 있는 나라, 알마그립


공식 국명은 ‘모로코 왕국(Kingdom of Morocco)’이며, 아랍어로는 ‘알맘라카 알마그리비야(المملكة المغربية)’라 불린다. 알맘라카(المملكة)는 왕국, 알마그리비야(المغرب)는 서쪽의/마그립의라는 뜻이다. 모로코 사람들은 자국을 아랍어로 ‘알마그리브(المغرب, Al-Maghrib)’라고 부른다. 여기서 ‘{{알마그립Al-M}’은 ‘해 지는 곳’ 또는 ‘가장 서쪽의 땅’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아랍-이슬람 세력이 동쪽(아라비아 반도)에서 세력을 확장할 때, 북아프리카 최서단에 위치한 모로코 지역을 “해가 지는 땅의 끝”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국명에 자신들의 지리적 정체성이 드러나 있다. 한국어를 포함해서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용하는 ‘모로코’는 과거 역동적인 수도 역할을 했던 고도古都 ‘마라케시Marrakesh’의 이름에서 유래하여 유럽 각국을 거쳐 전해진 명칭이다.


지리와 기후


아프리카와 유럽을 잇는 지리적 교량


지정학적 위치


모로코는 북아프리카의 서북단에 위치하며, 지중해와 대서양을 동시에 접하고 있는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이다. 북쪽으로는 지브롤터Gibraltar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의 이베리아Iberia반도와 불과 14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아프리카와 유럽을 잇는 지리적 교량 역할을 한다. 국토를 가로지르는 아틀라스Atlas산맥은 높고 험준한 산세로 거대한 자연의 벽을 이루며, 그 남쪽으로는 아득히 펼쳐진 사하라Sahara 사막의 장엄한 모래 언덕들이 아프리카 대륙의 깊은 고요를 담아낸다.


기후


기후는 지형에 따라 매우 다채롭다. 북부 및 서부 해안 지대는 따뜻하고 건조한 여름과 온화하고 습한 겨울을 지닌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를 보인다. 반면 아틀라스산맥 안쪽의 내륙 지역은 고도가 높아 겨울에는 눈이 내릴 정도로 서늘하며, 산맥 남쪽의 사하라 주변 지대는 극심하게 건조하고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큰 사막성 기후가 나타난다.

역사 History



아프리카의 뿌리 위에서 베르베르 문화를 바탕으로 이슬람 문명을 꽃피운 동서양과 남북의 문화를 융합해 온 교차로


모로코는 유럽(지중해)과 아프리카(사하라), 중동(이슬람)을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要衝地에 자리하고 있다. 대륙과 해양 세력이 교차하는 한반도처럼, 모로코 역시 숱한 제국(로마, 포르투갈, 프랑스 등)의 침략을 받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모로코는 이슬람, 안달루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문화를 단순히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융합하여 페스Fez와 마라케시Marrakesh 같은 독보적이고 찬란한 문화유산을 꽃피웠다.


붉은 흙과 서풍의 서사 : 모로코 역사


모로코의 역사는 붉은 흙과 매서운 바람, 그리고 지중해의 파도가 교차하며 엮어 낸 거친 생존과 고결한 자유의 서사이다. 아틀라스산맥의 험준한 골짜기마다 민족의 자존심이 서려 있으며, 시대마다 대륙과 바다를 건너온 수많은 문명이 이 땅에 씨앗을 뿌리고 스러져 갔다.

원시 및 베르베르 고대 시대 (선사 시대~서기 7세기)


이 땅의 본래 주인은 스스로 ‘자유로운 사람’이라 부르던 ‘아마지그Amazigh(베르베르Berber인)’였다. 그들은 수천 년 동안 거친 산맥과 사막을 삶의 터전으로 삼으며 자생적인 고유문화를 일구었다. 기원전 1천 년경부터 페니키아Phoenicia인들이 해안가에 무역 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이어 카르타고Carthago와 로마Roma 제국의 영향력이 뻗어왔다. 로마 제국은 이곳을 ‘마우레타니아 틴기타나’주州로 삼아 정교한 도시를 건설했으나, 아틀라스산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아마지그 부족들이 지닌 거센 자유의 의지까지 완전히 복속시키지는 못했다.


이슬람화와 이드리스 왕조 (7~11세기)


7세기 말, 아라비아Arabia반도에서 불어온 이슬람Islam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바람이 마그립 땅을 덮쳤다. 789년,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Muhammad의 후손인 이드리스 1세가 페스Fez를 중심으로 모로코 최초의 이슬람 왕조인 이드리스Idris 왕조를 창건했다. 이 시기 모로코는 베르베르 고유의 야성적인 문화와 이슬람 문명이 깊이 융합되기 시작했고, 페스는 학문과 예술, 신앙이 찬란히 꽃피는 북아프리카의 영적 중심지로 거듭났다.


대제국의 황금기: 알모라비드와 알모하드 왕조 (11~13세기)


사하라 사막의 유목민 부족들로부터 시작된 알모라비드Almoravid 왕조는 ‘붉은 도시’ 마라케시를 건설하고 이베리아반도 남부까지 세력을 확장하며 대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뒤이어 등장한 알모하드Almohad(무와히드Muwaḥḥid) 왕조 시기, 모로코는 북아프리카 전체와 안달루시아Andalusia(스페인 남부)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며 역사상 가장 찬란한 황금기를 맞이했다. 당시의 건축과 학문은 스페인과 북아프리카를 이어 주는 위대한 문화적 다리가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고도의 미학적 유산으로 남아 숨 쉬고 있다.


쇠퇴와 와타스⋅사아디 왕조 (14~17세기)


이베리아반도의 레콘키스타Reconquista(국토 회복 운동)가 막을 내리며, 삶의 터전을 잃은 안달루시아의 이슬람교도와 유대인들이 모로코 지역에 대거 이주해 왔다. 이들의 이주는 모로코 문화에 새로운 예술적 섬세함을 더해 주었다.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중반까지 모로코는 베르베르계 와타스Wattas 왕조가 다스렸고, 이어 17세기까지 통치했던 아랍계 사아디Saadi 왕조 시기에는 포르투갈의 침략을 카사블랑카 인근 ‘알카세르 퀴비르 전투*’에서 완파하며 국권과 자존심을 지켜 냈으나, 잇따른 내분과 유럽 강대국들의 해양 진출로 인해 점차 국력이 약화하였다.
*알카세르 퀴비르 전투(Battle of Alcácer Quibir) - 1578년 8월 4일 모로코 북부 알카세르 퀴비르 인근(와디 엘마카진)에서 벌어진 전투로, 포르투갈 국왕 세바스티안 1세가 직접 십자군 원정을 이끌고 참전했다가 모로코⋅오스만 연합군에 대패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 전투는 참전한 군주 세 명(포르투갈 국왕, 폐위된 모로코 술탄, 새로운 모로코 술탄)이 모두 사망하거나 실종되어 ‘삼왕三王의 전투’라고도 불린다.


알라위 왕조의 성립과 근대 (17~19세기)


1666년, 현재까지 모로코를 통치하고 있는 알라위Alawite 왕조가 성립되었다. 왕조의 기틀을 다진 물레이 이스마일Moulay Ismaïl왕은 강력한 중앙 집권 정책을 펼치며 외부 세력의 침입을 막아 내고 나라의 정체성을 강화했다. 그러나 19세기에 접어들며 산업혁명으로 거대해진 유럽 제국주의 세력의 이권 침탈이 본격화되었고, 모로코는 열강들의 거센 다툼 속에서 점차 입지가 줄어드는 고난의 시기를 맞이했다.


보호령 시대와 독립 투쟁 (1912~1956)


1912년 페스 협약을 통해 모로코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보호령으로 분할 점령을 당하는 비운을 맞이해야만 했다. 이는 1910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국권을 강제로 피탈당한 대한제국의 비극과 겹쳐 보인다.

그러나 모로코인들은 외세의 지배에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 리프 산악 지대의 압드 엘 크림Abd el-Krim을 필두로 한 격렬한 무장 항쟁이 일어났고, 도시에서는 지식인과 왕실을 중심으로 독립의 염원이 들불처럼 번졌다.

1953년 프랑스 당국이 독립의 상징이던 무함마드Muhammad 5세 국왕을 강제 망명시키자 국민적 분노는 폭발하였고, 치열한 저항 끝에 1956년 마침내 완전한 독립을 쟁취해 냈다.

외세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했던 리프 산악 지대의 ‘압드 엘 크림’과 모로코 민중들의 무장 항쟁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자발적으로 일어났던 한국의 의병義兵 운동 및 독립군 항쟁과 그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을 스스로 ‘자유로운 사람’이라 부르며 척박한 아틀라스산맥에서 수천 년간 정체성을 보전시켜 온 아마지그(베르베르인)의 끈질긴 생명력은, 수많은 외침 속에서도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지켜내 왔다.


현대 모로코 (1956~현재)

독립 후 무함마드 5세와 뒤를 이은 하산Hassan 2세는 입헌군주제의 틀을 잡고 국가 재건에 매진했다. 특히 하산 2세는 1975년 ‘녹색 행군(Green March)’을 통해 서사하라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국위를 선양했다.

1999년 즉위한 무함마드 6세는 대대적인 사회⋅경제 개혁과 여성 권리 신장, 근대적 기반 시설 구축을 추진하며, 모로코를 전통과 현대가 아름답게 공존하는 북아프리카의 가장 안정적이고 역동적인 국가로 이끌고 있다.


‘서사하라’를 두고 벌이는 알제리와의 갈등


현재 서사하라 지역은 모로코가 실제 영토의 약 80퍼센트 이상을 실효 지배하고 있다.
알제리Algérie는 모로코의 아프리카 북서부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서사하라 독립군(폴리사리오 전선)에 자금, 무기, 거점을 전폭 지원하고 있다.

과거 알제리와 모로코는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1962년 알제리가 독립한 후 국경선 정리 과정에서 모로코가 영토 소유권을 주장하며 1963년 ‘모래 전쟁(Sand War)’이라는 국경 충돌이 발생했다. 1975년, 서사하라를 지배하던 스페인이 철수하자 모로코는 ‘녹색 행진(Green March)’을 통해 대규모 주민을 이주시키며 서사하라를 점령했다. 이에 반발한 서사하라 독립운동 단체 ‘폴리사리오 전선(POLISARIO Front, 1973년 결성)이 게릴라전을 시작했다. 이들은 1976년 ‘사하라 아랍민주공화국(SADR, Sahrawi Arab Democratic Republic)’을 선포했다. 알제리는 ‘폴리사리오 전선’을 적극 지원하며 국경 지대인 ‘틴두프Tindouf’에 난민 캠프와 거점을 마련해 주었다.

폴리사리오는 1982~1985년 사이에 5,000명 이상의 모로코군을 죽였다고 주장했다. 알제리 당국은 자국 내의 사흐라위Sahrawi(서사하라 원주민) 난민 수를 16만 5천 명으로 추산했다. 모로코와 알제리와의 외교 관계는 1988년에 정상화되었다. 1991년 서사하라에서 유엔의 중재로 휴전이 시작되었지만, 영토가 어느 나라에게 돌아갈 것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고 있다.

모로코 안의 스페인 도시 ‘세우타’와 ‘멜리야’


모로코의 두 도시 ‘세우타Ceuta’와 ‘멜리야Melilla’는 스페인 식민 지배의 흔적이다. 이곳은 아프리카 대륙에 존재하지만 역사적으로 스페인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스페인의 자치 도시(유럽연합의 아프리카 내 유일한 육상 국경)이다.

모로코는 이 두 지역을 ‘스페인이 점령 중인 자국 영토’라고 주장한다. 모로코는 스페인과의 외교적⋅정치적 갈등이 생길 때마다 국경 경비를 완화하거나 통제를 풀어, 난민 유입을 일종의 ‘지정학적 압박 카드’로 활용하곤 했다.

최근(2026년 7월 30~31일) 모로코에서 세우타 해안을 통해 약 6만 명에 달하는 인원이 한꺼번에 바다를 헤엄치거나 방파제를 넘어 무단 진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바다에 빠지거나 압사하는 등 최소 70여 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이는 스페인 대법원이 “해상을 통해 들어온 미등록 이주민을 국경에서 즉시 강제 송환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SNS에 “세우타에 상륙하기만 하면 스페인에 영구 체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국경 통제가 풀렸다.” 등의 허위 정보가 순식간에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EU 회원국들은 ‘솅겐조약(Schengen Agreement)’에 의해 국경 검문을 철폐하고 인적⋅물적 이동을 자유롭게 보장받는다. 하지만 세우타 지역은 ‘솅겐 영역’에서는 예외적인 특별 지위를 갖기 때문에 세우타에 도착했다고 해서 유럽 본토로 바로 들어갈 수 없다. 별도의 여권, 신원 검사를 더 거쳐야 한다.

스페인 일각에서는 자국의 페드로 산체스Pedro Sánchez 총리가 모로코의 라이벌 국가인 알제리를 전격 방문한 직후 사태가 터지자, 모로코 당국이 외교적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 국경 감시를 의도적으로 방관(밸브를 열어 줌)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치 제도


국왕이 실권을 행사하는 입헌 군주제 국가


모로코는 국왕이 강력한 실권을 행사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국왕은 국가의 수반이자 정치적 최고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아미르 알무미닌Amir al-Mu'minin(신자들의 최고 지도자)’으로서 종교적 최고 권위까지 겸비한다. 실질적인 국가의 통일성과 안보, 외교 분야에서 국왕의 입지는 절대적이다.

입법부는 양원제로 운영된다. 하원(의회)은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며, 상원은 지방 의회 및 직능 단체 대표들로 구성된다. 행정부는 다수당의 추천을 받아 국왕이 임명하는 총리가 이끌며 내정을 담당한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무함마드 6세 국왕이 선제적으로 헌법을 개정하여 의회와 총리의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다수의 아랍 국가와 달리 정치적 안정을 성공적으로 유지해 냈다.

행정구역과 주요 도시



모로코는 지방 분권화를 위해 전국을 12개 주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라바트Rabat : 모로코의 정치적 수도로, 행정 기관과 왕궁이 밀집해 있다. 고풍스러운 성벽과 현대적인 관공서가 조화를 이루며 정갈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풍긴다.

카사블랑카Casablanca : 모로코 최대의 도시이자 경제, 상업, 금융의 중심지이다. 대서양을 바라보는 웅장한 하산 2세 모스크가 자리 잡고 있으며, 현대적 마천루와 전통 미로가 공존한다.

마라케시Marrakesh : ‘붉은 도시’라는 별칭을 가진 모로코 최고의 관광 도시이다. 제마 엘프나Jemaa el-Fnaa 광장을 중심으로 활기찬 전통 시장(수크)과 화려한 궁전들이 자리하여 여행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페스Fez : 모로코의 영적⋅문화적 수도로, 세계에서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알 카라위인Al-Qarawiyyin(또는 알카라윈) 대학교와 차를 몰고 들어갈 수 없는 거대한 미로 도시 ‘메디나’가 있다. 메디나Medina는 아랍어로 ‘도시’를 뜻하며, 모로코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슬람 양식의 구시가지’를 말한다.

탕헤르Tangier :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을 마주 보는 북부의 항구 도시로,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여전히 교차하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민족 구성 및 언어


‘아랍-베르베르인’이 전체 인구의 99퍼센트 이상을 차지


모로코 인구의 대다수는 아마지그(베르베르인)와 아랍인의 혼혈 형태를 띠고 있다. 본래 이 땅의 주인이었던 아마지그족이 7세기 이후 이라크 및 아라비아반도에서 유입된 아랍인들과 장기간에 걸쳐 피를 섞고 문화를 공유하면서 형성된 ‘아랍-베르베르인’이 전체 인구의 99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이 외에 과거 안달루시아에서 건너온 유대인 후손들과 서아프리카 출신의 민족들이 소수 거주하고 있다.

공식 언어는 아랍어와 아마지그어(베르베르어)이다. 실생활에서는 아랍어의 모로코 방언인 ‘다리자Darija’가 널리 쓰이는데, 이는 표준 아랍어에 베르베르어, 프랑스어, 스페인어가 섞여 있어 다른 아랍 국가 사람들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한 음운 체계를 갖추고 있다.

프랑스 보호령 시절의 영향으로 프랑스어가 행정, 비즈니스, 고등교육, 언론 등에서 사실상의 상용어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북부 지역에서는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스페인어가 통용되기도 하며, 최근에는 관광업과 정보통신 산업의 성장으로 청년층을 중심으로 영어 사용 인구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주요 인물


자유로운 영혼, 이븐 바투타의 나라


이드리스Idris 1세(?~791)


789년 모로코 최초의 이슬람 왕조인 이드리스 왕조를 창건한 인물이다. 선지자 무함마드의 증손자로서 아라비아반도의 탄압을 피해 북아프리카로 건너와 아마지그 부족들을 통합하고 페스 도시의 기틀을 다졌다. 모로코라는 국가적 정체성과 이슬람 문화가 결합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역사적 인물로 추앙받는다.

이븐 바투타Ibn Battuta(1304~1368)


탕헤르 출신의 세계적인 탐험가이자 여행가이다. 21세의 어린 나이에 성지 순례를 떠난 것을 시작으로 약 30년에 걸쳐 아프리카, 중동, 인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중국에 이르는 약 11만 7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여행했다. 그의 여행기 〈명승지와 여정의 이상함에 대해 보는 자에게 주는 선물(원제: Rihla)〉은 14세기의 전 세계 풍속과 역사를 증언하는 인류 사상 위대한 사료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무함마드Muhammad 5세(1909~1961)


현 모로코 왕국의 기틀을 다진 국왕이자 독립의 영웅이다. 프랑스 보호령 시기 외세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국민과 함께 독립운동을 지지하다가 마다가스카르로 강제 망명을 당했다. 이 사건은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그가 귀환하면서 모로코는 독립을 차지하였다. 모로코 국민에게는 깊은 존경을 받는 ‘현대 모로코의 아버지’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비시Vichy 정권이 반유대주의 법령을 강요하자 “모로코에는 유대인 시민만 있을 뿐 차별은 없다.”라며 나치의 박해로부터 자국 내 약 25만 명의 유대인을 보호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무함마드Muhammad 6세(1963~현재)


1999년 즉위한 현재 모로코의 국왕이다. 즉위 이후 개혁 성향을 바탕으로 여성의 권리를 획기적으로 신장시킨 가족법(Mudawana) 개정을 이끌었고, 고속철도 개통 및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 건설 등 국가 기반 시설의 선진화를 주도했다. 실용적 외교와 경제 개혁을 통해 모로코를 북아프리카의 현대적 강국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종교


인구의 99퍼센트가 이슬람 수니파


국교는 이슬람교이며, 인구의 약 99퍼센트가 이슬람 수니파(말리키 학파)를 믿는다. 모로코의 이슬람은 신비주의적 전통인 ‘수피즘Sufism’의 영향을 깊게 받아 성자(마라부트) 숭배 문화가 공존하며, 대체로 온건하고 포용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어 소수의 크리스천 커뮤니티와 역사적으로 깊은 뿌리를 지닌 유대인 사회가 존재한다. 특히 모로코는 아랍 세계 중 유대인 문화유산을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보존하고 우대하는 보기 드문 국가 중 하나이다.


경제


세계 최대의 인광석(Phosphate rock) 매장량


모로코는 비교적 다변화된 경제 구조로 되어 있으며,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석유 자원에 의존하지 않고 성장을 이뤄 낸 대표적인 국가이다. 세계 최대의 비료용 인광석燐鑛石(Phosphate rock)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어 관련 화학 산업이 국가 경제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농업은 전체 노동 인구의 상당수를 흡수하는 핵심 산업으로 올리브, 감귤류, 아르간 오일 등을 주로 수출한다. 최근에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탕헤르 메드Tanger Med 항구를 중심으로 유럽 자동차 브랜드들의 생산 공장을 유치하는 등 자동차 및 항공 부품 제조업을 급성장시켰다. 또한 풍부한 역사 유적과 사하라 사막, 천혜의 해안을 바탕으로 한 관광업은 국부 창출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외교


서사하라 지역의 영유권 인정을 최우선 순위에


모로코 외교의 핵심축은 아랍 세계, 아프리카 대륙, 그리고 유럽 연합(EU)과의 균형 잡힌 관계 유지에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프랑스, 스페인 등 서유럽 국가들과 강력한 경제적⋅문화적 협력 관계를 맺고 있으며, 미국과는 1777년 세계 최초로 미국의 독립을 승인한 국가라는 역사적 인연을 바탕으로 긴밀한 안보 동맹을 유지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의 지도력 강화를 위해 2017년 아프리카연합(AU)에 재가입했으며, 서사하라 지역에 대한 영유권 인정을 외교의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서사하라 독립을 지원하는 이웃 나라 알제리와는 장기간 갈등 관계를 이어 오고 있다. 2020년 모로코는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그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서사하라는 모로코의 영토”라는 인정을 취득했다.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민국과 모로코는 1962년 수교를 맺었다. 모로코는 1978년 북아프리카 지역 중 최초로 주모로코 한국대사관이 설립된 국가이기도 하다.

모로코는 1950년 6.25 당시 프랑스 보호령이었으나, 프랑스군 소속 모로코 병력(약 80여 명)이 유엔군 일원으로 전쟁에 참전한 인연이 있다. 또 모로코는 한국의 경제 성장 모델(‘한강의 기적’)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고 있는 나라다. 최근 양국은 철도⋅배터리⋅CEPA(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중심의 미래 첨단 산업에서 긴밀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북아프리카 최대 음악 축제인 라바트 ‘마와진Mawazine 페스티벌’에 한국 아이돌 그룹(에이티즈 등)이 K-팝 아티스트 최초로 메인 헤드라이너로 서면서, 현지 젊은 층 사이에서 한류와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높다.

주요 음식


모로코의 음식은 아랍의 향신료, 베르베르인의 투박한 지혜, 안달루시아의 섬세함, 그리고 프랑스의 식문화가 어우러진 다채로운 맛의 은하수이다.


타진Tajine 모로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요리로, 원뿔 모양의 흙으로 만든 토기에 고기(양고기, 소고기, 닭고기)와 채소, 향신료를 넣고 자작하게 졸여 낸 찜 요리이다. 재료 본연의 수분이 토기 안에서 순환하며 고기를 극도로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쿠스쿠스Couscous 으깬 듀럼밀을 증기로 익혀 만든 알갱이 식재료로, 그 위에 양념한 고기와 큼직하게 썬 채소, 콩 등을 얹어 먹는다. 모로코인들에게는 금요일 예배 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나누어 먹는 영혼의 음식이다.


민트 티Mint Tea ‘모로코의 위스키’라는 정겨운 애칭으로 불리는 전통차이다. 녹차 잎에 신선한 스피어민트 잎과 설탕을 듬뿍 넣고 끓여 내며, 높은 곳에서 찻잔으로 폭포처럼 떨어뜨려 거품을 내어 마신다. 손님을 환대하는 모로코인들의 따스한 마음이 담겨 있다.


파스티야Pastilla 안달루시아 문화의 유산으로, 얇고 바삭한 페이스트리 반죽 사이에 양념한 다진 고기(전통적으로는 비둘기고기, 현대에는 닭고기나 해산물)를 넣고 그 위에 슈거 파우더와 계핏가루를 뿌려 만든, ‘단짠’의 조화가 일품인 고급 요리이다.


하리라Harira 병아리콩, 렌틸콩, 토마토, 고기, 향신료를 넣고 푹 끓여 낸 든든한 스튜형 수프이다. 이슬람의 금식 기간인 라마단 기간에 하루 금식을 마치고 가장 먼저 위장을 달래기 위해 마시는 전통적인 정서가 담긴 음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