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우리말 [학을 떼다]

[STB하이라이트]
※ 말 속에 담긴 시간과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우리말 시간 여행


오늘의 우리말 [학을 떼다]




여러분, “이번 프로젝트 때문에 팀장님이 몇 날 며칠을 잠을 못 자게 해서 정말이지 학을 뗐어. 이제 좀 살겠다.” 이런 말 들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여기서 ‘학을 뗐어’의 ‘학을 떼다’라는 표현이 전염병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아시는지요? 그것도 예부터 한국 땅에서도 유행했던 전염병으로 ‘오한惡寒이 오락가락하는 병’으로 묘사되었다는 것을요.

오늘의 우리말은 관용어 ‘학을 떼다’입니다.


먼저 ‘학을 떼다’의 뜻을 살펴볼까요?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괴롭거나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느라고 진땀을 빼거나, 그것에 거의 질려 버리다.’라고 정의되어 있어요. 여기서 ‘학’은 바로 질병의 하나인 ‘학질瘧疾’의 줄임말입니다. 학질은 모기를 통해 전염되는 말라리아를 뜻하는 우리말이에요. 그리고 ‘떼다’는 ‘벗어나다’, ‘이겨내다’는 의미죠.

이 표현은 시제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의미 차이가 있어요. ‘학을 떼다’는 현재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는 뜻이고, ‘학을 뗐다’는 그런 일을 이미 겪었거나 그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뜻이죠. 예를 들어 “요즘 상사 때문에 학을 떼고 있어.”라고 하면 지금 힘든 상황이고, “지난 프로젝트 때문에 정말 학을 뗐어.”라고 하면 이미 끝난 괴로운 경험을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왜 ‘학질을 앓다’가 아니라 ‘학을 떼다’일까요?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어요. 이 표현은 학질에 걸렸을 때가 아니라, 그 무서운 병을 이겨 내고 회복되었을 때 사용하는 말이거든요.


“휴, 이제야 학을 뗐구나!”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입니다. 이런 회복의 경험이 반복되며 자연스럽게 ‘학을 떼다’는 말이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학을 떼다’는 전염병이 우리 언어문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사례예요. 인간의 삶과 질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언어가 이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거죠.

우리 조상들은 학질을 포함해 다양한 전염병과 함께 살아왔어요. 그 과정에서 병을 이겨 내는 것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고, 그것이 일상의 어려움까지 표현하는 관용어로 승화된 것이죠.

이런 표현들을 보면,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현실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희망적인 사고를 했는지 알 수 있어요. 아픈 것도 받아들이되, 그걸 이겨 내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었던 거죠. 그리고 그 경험이 오늘날까지 우리 언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