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나라’에서 ‘동남아시아의 배터리’로 도약하고 있는 라오스
[세계지역문화탐방]

라오스는 메콩강 유역의 풍요로운 자연환경과 오랜 상좌부上座部 불교(소승小乘 불교) 전통을 간직한 순박한 문화의 나라이자, 인도차이나반도 중앙에 위치한 유일한 내륙국이다. 14세기 최초의 통일 왕국인 란쌍Lan Xang 왕국에서 시작해 프랑스 식민지 시절과 내전의 상흔을 거쳐 1975년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일당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나, 1986년 개혁⋅개방 정책인 ‘친따나칸 마이Chintanakan Mai’를 도입한 이후 풍부한 수자원을 활용한 수력 발전 전력을 인근 국가에 수출하며 ‘동남아시아의 배터리’라는 별칭과 함께 현대적인 경제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한눈에 보는 라오스
국가 정보

여행 정보

국명
라오인민민주공화국(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 / Lao PDR)
라오스의 공식 국호인 ‘라오인민민주공화국(Lao PDR)’은 1975년 공산주의 세력(파테트 라오Pathet Lao)이 내전에서 승리하고 왕정을 폐지하며 수립한 사회주의 체제를 반영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라오스Laos’라는 이름은 핵심 주류 민족인 라오Lao족에서 유래했다. 본래 현지에서는 복수형 어미 없이 ‘므엉 라오Muang Lao(라오족의 나라)’ 또는 ‘쁘라텟 라오Prathet Lao’★라고 불렀다.
라오Lao에서 라오스Laos가 된 것은 19세기 말 프랑스가 이 지역을 식민지화하면서 여러 부족을 하나로 묶어 프랑스어 복수형 어미인 ‘-s’를 붙여 표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작 프랑스어 발음 규칙상 끝의 ‘s’는 묵음이라 ‘라오’에 가깝게 읽히지만, 영어권과 한국 등에서는 철자 그대로 받아들여 ‘라오스’로 굳어졌다.
★므엉과 쁘라텟 - 므엉Muang은 종족이나 부족이 모여 사는 ’나라‘ 또는 ’터전‘을 뜻하는 고유어이고, 프라텟Prathet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한 말로, 현대적인 의미의 국가(State)이다.
지리와 기후
인도차이나반도 중앙의 유일한 내륙국
동남아시아의 인도차이나반도 중앙에 있는 유일한 내륙국으로. 5개국(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국토의 약 80퍼센트가 산악 및 고원 지대이며, 서쪽 국경을 따라 흐르는 메콩Mekong강이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기후는 대다수 지역이 전형적인 열대 몬순 기후를 보이는데, 크게 두 계절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기雨期(5~10월)에는 남서 몬순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내리고 습도가 높다. 건기乾期(11~4월)에는 비교적 선선하고 건조하여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11~2월)와 가장 더운 시기(3~4월, 최고 섭씨 40도 이상)로 나뉜다.
역사 History
메콩강이 품은 거대한 시간, 라오스의 숨결을 따라서
흔히 라오스를 ‘느림의 미학이 있는 곳’ 혹은 ‘시간이 멈춘 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고요한 평화 아래에는 메콩강의 물줄기만큼이나 깊고 역동적인 시간이 흐르고 있다. 1353년 파 응움Fa Ngum왕이 ‘백만 마리의 코끼리’라는 뜻의 란쌍Lan Xang 왕국을 세우며 비로소 뚜렷한 기록의 역사 위에 올라섰지만, 그 이전의 고대사 역시 침묵 속에 거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침묵하는 돌들이 건네는 이야기
라오스의 시간은 쯔엉선Trường Sơn산맥(안남산맥)의 깊은 동굴, 탐 빠 링Tam Pa Ling에서 수만 년 전 인류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은 씨앙쾅Xiangkhoang고원에 펼쳐진 ‘항아리 평원’이다. 사방으로 흩어진 수천 개의 거대한 돌 항아리들은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비바람을 견디며 그 자리에 서 있다. 고대 부족들의 거대한 무덤이었을까, 혹은 타는 목마름을 축이던 물 저장고였을까. 알 수 없는 미스터리는 오히려 그 시대를 살다 간 이름 없는 영혼들의 삶을 더 애틋하게 상상하도록 만든다.

남부 팍세Pakse의 산기슭에 자리한 ‘왓 포Wat Phou’ 사원은 앙코르와트보다도 먼저 지어진 힌두교의 신전이다. 거대한 돌을 쌓아 올린 사원의 벽면마다 새겨진 정교한 신화의 흔적들은, 당시 라오스 영토가 거대한 제국의 문화적 용광로였음을 소리 없이 증언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넝쿨, 그리고 ‘므엉Muang’의 시대
오늘날 라오스 사람들의 뿌리가 되는 타이Tai족 선조들은 원래 중국 남부의 푸른 하늘 아래 살고 있었다. 그러다 13세기에 몽골 제국의 거대한 말발굽이 윈난성雲南省을 휩쓸자 이들은 거센 강물을 따라 남쪽으로, 더 남쪽으로 밀려 내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새로운 약속의 땅을 찾아 떠나는 거대한 대이동이었다.
그들은 메콩강 유역의 비옥한 평야를 차지하고, 씨족 중심의 소도시 국가인 ‘므엉Muang’을 도처에 건설했다. 북부의 가장 강력한 소국이었던 ‘므엉 수아Muang Sua’는 훗날 찬란한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이 되었고, 중남부의 비엔티안Vientiane 역시 제각각의 빛깔을 내며 공존했다.
기록이 바래진 이 시기, 라오족은 자신들의 역사를 ‘쿤 보롬Khun Borom왕의 전설’이라는 아름다운 신화로 기억했다. 하늘의 신이 타락한 세상을 홍수로 심판한 뒤 그의 아들 쿤 보롬을 지상으로 내려보냈다는 이야기, 거대한 넝쿨에서 태어난 인류와, 쿤 보롬의 일곱 아들이 나누어 맡은 일곱 개의 영토, 그 첫째 아들이 자리 잡은 곳이 바로 루앙프라방이었다는 신화는 파편화되어 있던 소국들을 하나의 뿌리로 묶어 주는 거대한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1353년 크메르의 지원을 받은 파 응움Fa Ngum왕이 이 흩어진 ‘므엉’들을 하나로 엮어 냈을 때, 비로소 백만 코끼리의 나라, 란쌍 왕국이 그 위대한 서막을 올린 것이다.

분열의 암흑과 프랑스의 푸른 낙인
그러나 영원한 전성기는 없었다. 란쌍 왕국은 찬란했던 불교 문화와 비엔티안 천도라는 번영의 정점에서 왕위 계승이라는 인간의 욕망 앞에 무너져 내렸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 비엔티안Vientiane, 참파삭Champasak이라는 세 개의 조각으로 찢겨진 나라는 이웃한 시암Siam(태국)과 베트남Vietnam의 잔혹한 침략 속에 속국으로 전락하는 암흑기를 맞이했다.
세월은 흘러 서구 열강의 거센 파도가 인도차이나반도를 덮쳤을 때, 라오스는 프랑스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프랑스에게 라오스는 거대한 제국을 지키기 위한 베트남과 태국 사이의 안타까운 완충 지대에 불과했다. 인프라의 발전보다는 가혹한 세금 징수가 이어졌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군의 군화 아래 짓밟히기도 했다. 하지만 억압 속에서도 독립을 향한 열망은 꺾이지 않았고, 1953년 라오스는 마침내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여, 온전한 독립 왕국으로서의 주권을 되찾아 왔다.
하늘에서 떨어진 비극, '비밀 전쟁'의 상흔
독립의 기쁨도 잠시, 이념의 소용돌이가 이 순박한 사람들의 땅을 비극으로 몰고 갔다. 우익 왕당파와 좌익 공산 세력(파테트 라오) 간의 내전이 산하를 붉게 물들였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베트남 전쟁의 불길이 라오스로 번진 순간이었다. 북베트남의 보급로인 ‘호찌민 루트’를 차단한다는 명목 아래, 미국은 국제 사회의 눈을 피해 라오스 땅에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폭탄을 퍼부었다. 이른바 ‘비밀 전쟁(Secret War)’이었다.
라오스는 전 세계에서 인구당 가장 많은 폭격을 맞은 나라라는 슬픈 훈장을 안게 되었다.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진 폭탄들은 푸른 대지를 찢어 놓았고, 수많은 무고한 목숨을 앗아 갔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라오스 시골 마을의 아이들은 밭에 묻힌 불발탄의 위협 속에 살아가고 있으니, 전쟁의 잔혹함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친따나칸 마이', 새로운 상상으로 피어나는 오늘
1975년, 장기간의 내전 끝에 공산주의 세력인 파테트 라오가 승리하며 오랜 왕정이 폐지되고 ‘라오 인민민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초기에는 철저한 폐쇄 경제의 장막 뒤에서 숨을 죽였으나,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1986년 ‘친따나칸 마이Chintanakan Mai(새로운 상상)’라는 이름의 개혁⋅개방을 단행했다. 사회주의의 뼈대에 시장 경제의 피를 수혈한 과감한 선택이었다.
오늘날 라오스는 메콩강의 거센 물줄기를 이용해 ‘동남아의 배터리’가 되겠다는 야심 찬 꿈을 꾸고 있다. 수력 발전소를 짓고, 외자를 유치하며 현대화의 길을 걷고 있다.
베트남 및 태국과의 관계
라오스는 베트남과는 피로 맺어진 혈맹이자 ‘특별 관계’다.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의 보급로(호찌민 루트)가 라오스를 지나면서 양국 공산 세력은 동지가 되었고, 1975년 동시에 공산화되었다. 라오스는 1979년 중월전쟁 때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베트남을 지지했으며, 태국과의 국경 분쟁 때도 베트남의 군사 지원을 받는 등 현재까지 끈끈한 의리를 이어 오고 있다.
반면 태국과는 언어와 문화가 통하면서도 역사적 앙금이 깊은 ‘애증의 관계’다. 18세기 후반 태국에 약탈당한 국보 ‘에메랄드 불상’이 여전히 방콕에 있어 라오스인들에게 상처로 남아 있다. 또한 태국의 문화적 우월감에 대한 거부감이 커 라오스 정부는 태국 방송 유입에 대응해 자국 문화를 단속하고 있으며, 1980년대 말에는 국경 분쟁으로 양국이 실제 무력 충돌을 빚기도 했다.
돌아보면 라오스의 역사는 끊임없는 이동과 지배, 그리고 외세의 거센 폭풍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눈물겨운 생존의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앙프라방의 탁발 행렬에서 느껴지는 경건함과 아울러, 마주치는 이들의 맑은 눈망울 속에는 그 어떤 폭격도, 그 어떤 식민 지배도 앗아 가지 못한 강인함과 평온함이 남아 있다. 메콩강은 오늘도 묵묵히 흐른다. 고대 돌 항아리의 비밀부터 현대의 새로운 상상까지, 그 모든 눈물과 희망을 품은 채 말이다.


정치 제도
일당제 사회주의 공화국
라오스의 정치 체제는 일당제 사회주의 공화국이고, 집권 여당은 라오인민혁명당(LPRP)이 유일한 합법 정당으로서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국가 수반인 대통령과 행정부를 이끄는 총리로 이원화되어 있으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는 라오인민혁명당의 당 서기장으로 통상 서기장이 대통령직을 겸임하는 경우가 많다. 국회는 단원제이며 5년 주기로 선거가 치러진다.

행정구역과 주요 도시
1개 특별시와 17주로 구성
라오스 행정구역은 1개 특별시(나콘루앙 비엔티안Nakhon Luang Vientiane)와 17개의 주(쾡Khwaeng)로 구성되어 있다.


민족 구성 및 언어
50개 민족이 세 부류로 나뉘어
라오스 정부는 공식적으로 50개 민족을 인정하고 있으며, 거주 고도와 문화에 따라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라오룸Lao Loum (저지대 라오족) : 전체 인구의 약 50~60퍼센트를 차지하는 주류 민족으로, 주로 평야와 메콩강 유역에 살며 벼농사를 짓고 불교를 믿는다.
라오퉁Lao Theung (구릉지 라오족) : 인구의 약 20~30퍼센트로, 산 중턱에 거주하며 화전 농업에 종사한다.
라오숭Lao Soung (고지대 라오족) : 인구의 약 10퍼센트로, 해발 1,000미터 이상의 험준한 산악 지대에 거주한다(몽Hmong족, 야오Yao족 등이 포함됨).
공식 공용어는 라오Lao어로 태국어와 언어학적으로 매우 유사하여 라오스 사람들은 태국 방송을 별도 통역 없이 이해할 수 있다. 과거 식민지 영향으로 노년층이나 관공서에서는 프랑스어가 일부 쓰이나, 현재 젊은 층과 관광업계에서는 영어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주요 인물
고대⋅중세 왕조의 기틀을 세운 군주들
파 응움Fa Ngum(1316~1374): 라오스 역사상 최초의 통일 국가인 란쌍Lan Xang 왕국(‘백만 마리의 코끼리’라는 뜻)을 건국한 인물이다. 어린 시절 왕궁에서 쫓겨나 크메르(캄보디아) 앙코르 왕국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성장했으며, 크메르 왕의 딸과 결혼한 후 군대를 지원받아 메콩강 유역의 라오족 부족들을 차례로 정복했다. 1353년 란쌍 왕국을 선포하고 크메르로부터 상좌부 불교와 프라 방Pha Bang 불상을 들여와 국가의 사상적 기틀을 다졌다. 이 불상은 오늘날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이라는 도시 이름의 유래가 되며 국가의 영적 상징이 되었다.

짜오 아누봉Chao Anouvong(1767~1829) : 19세기 초, 당시 시암(현재의 태국)의 지배하에 있던 비엔티안 왕국의 마지막 왕으로, 시암을 상대로 대규모 독립 전쟁(1826~1828)을 일으킨 민족 영웅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패배하여 시암 군대에 의해 비엔티안이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그는 방콕으로 압송된 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비록 실패는 하였지만, 외세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인물로 평가받아 비엔티안 메콩강 변에 태국을 매섭게 노려보는 듯한 그의 대형 동상이 서 있다.

근현대 격동기와 사회주의 공화국의 주역들
펫사라트 라타나봉사Phetsarath Ratanavongsa 왕자(1890~1959) : 루앙프라방 왕가 출신으로, 프랑스 유학 후 고국으로 돌아와 1945년 일본 패망 직후 독립 정부인 ‘라오 이싸라Lao Issara(자유 라오스)’를 이끈 인물이다.
현대 라오스 독립운동의 상징적 인물이며, 후술할 수바나 푸마 왕자와 수파누봉 왕자의 친형이다. 독립 정부가 무너진 후 태국 망명 생활을 하다가 말년에 귀국했다.

수파누봉Souphanouvong 왕자(1909~1995) : 왕족 출신이면서도 사회주의 혁명 전선에 뛰어들어 공산주의 반군 조직인 파테트 라오Pathet Lao를 이끈 인물로, 별명이 ‘붉은 왕자(Red Prince)’였다. 프랑스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엘리트였으나, 베트남에서 호찌민胡志明의 혁명 사상에 깊이 감화되어 공산주의 노선을 걸었다. 1975년 라오스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카이손 폼비한Kaysone Phomvihane(1920~1992) : 라오스 인민혁명당(현 집권당)을 창당하고 내전을 승리로 이끈 실질적인 공산 혁명의 지도자이며 현대 라오스의 최고 권력자이자 국부로 추앙받는 인물(초대 총리, 2대 대통령 역임)이다. 아버지가 베트남인, 어머니가 라오스인인 혼혈로 하노이 대학 재학 시절 호찌민의 영향을 받아 반프랑스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공산주의 혁명 세력인 ‘파테트 라오’를 실질적으로 이끌며 1975년 사회주의 공화국 수립을 주도했다.
현재 라오스 최고 고액권 지폐(50,000, 100,000킵 등)에 그의 얼굴이 인쇄되어 있으며, 수도에는 거대한 카이손 폼비한 박물관이 건립되어 있을 정도로 현대 라오스에서 가장 중요하게 기념하는 인물이다. 말년인 1980년대 후반에는 ‘친따나칸 마이Chintanakan Mai(새로운 상상)’라는 라오스판 개혁⋅개방 정책을 도입해 시장 경제를 일부 수용하기도 했다.

문화계의 거장과 개척자들
타오 팡캄Thao Pangham(17세기) : 라오스 민족의 위대한 고전 서사시인 「상 신사이Sang Sinxay」를 집필한 시인이자 작가이다. 괴물들에게 납치된 고모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영웅 신사이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단순한 설화를 넘어, 불교적 선악관과 라오스 전통 가치관을 집대성한 걸작으로 꼽힌다. 오늘날 사원 벽화나 전통극의 단골 소재가 된다.
시사나 시산Sisana Sisane(1922~1998) : 라오스 내전 시기, 민중의 독립 의지를 고취하는 저항시와 혁명 가요를 다수 창작했다. 그가 작사⋅작곡한 곡들은 라오스 현대 음악의 기초가 되었으며, 1975년 공산 정부 수립 이후 초대 정보문화부 장관을 역임하며 현대 라오스 문화 정책의 기틀을 닦았다.
아니사이 케올라Anysay Keola(1985~현재) : 호주에서 영화를 공부한 후 귀국하여 2011년 스릴러 영화 〈앳 더 호라이즌At the Horizon〉을 연출했다. 당시 라오스 공공 검열 제도 속에서 금기시되던 도시 청년들의 범죄, 빈부 격차, 부패 문제 등을 사실적으로 다루어 국내외 영화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전통 음악과 대중음악의 아이콘
찬타 시띠판Chanthah Sithiphan :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라오스의 전통 악기인 대나무 생황笙簧 ‘캔Khaen’의 보존과 전수에 평생을 바친 거장이다.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모람Mo Lam 연주법을 체계화하여 후학을 양성하고, 라오스 전통 선율을 세계 무대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알렉산드라 부운수이Alexandra Bounxouei(1987~현재) : 불가리아인 어머니(피아니스트)와 라오스인 아버지(음악가) 사이에서 태어난 음악 엘리트로 2000년대 초반 미니 앨범을 발표하며 데뷔한 후, 라오스뿐만 아니라 태국, 일본 등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라오스 역사상 최초의 현대적 팝 스타이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노래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며, 드라마 배우와 유니세프UNICEF 친선 대사로도 활동하며 라오스 젊은 세대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종교
남성들은 일생에 한 번 출가해
상좌부上座部 불교(소승 불교)는 인구의 약 65퍼센트 이상이 믿는 사실상의 국교이다.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불교는 민족 정체성의 뿌리이자 일상생활 규범으로 강력하게 작동한다. 남성들은 일생에 한 번 소년기(사마네라Sāmaṇera)나 성인기에 단기 출가(보통 우기 동안 사찰에 머물며 수행하는 ‘안거’ 기간 약 3개월이나 방학 혹은 군 입대나 취업 전에 1~2주 정도 짧게 입산하는 것)를 하는 전통이 있다.
소수 민족(라오퉁Lao Theung, 라오숭Lao Soung)을 중심으로 자연신이나 조상신을 믿는 정령 신앙이 깊게 남아 있으며, 불교와 융합된 형태(예: 집안의 신을 모시는 ‘산프라품San Phra Phum’)로도 자주 나타난다. 기타 기독교(가톨릭 및 개신교)는 인구의 약 1~2퍼센트 미만으로 극소수이다.

경제 및 외교
동남아시아의 배터리 역할
UN이 지정한 최빈국 중 하나였으나, 최근 자원 개발을 통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토의 수자원을 활용한 수력 발전으로 인근 국가(태국, 베트남)에 전력을 수출하여 ‘동남아시아의 배터리(Battery of Southeast Asia)’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제조업 기반이 취약하여 생필품의 대부분을 태국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带一路 사업의 일환으로 중국-라오스 간 고속 철도가 개통되어 물류와 관광의 전환기를 맞이했다.
외교 기조는 전통적인 사회주의 혈맹인 베트남과 강력한 사상적⋅정치적 유대를 맺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차관, 인프라 투자 등)가 매우 높아지고 있으며, 문화⋅언어적으로는 태국과 가장 밀접하게 교류하는 실리적 균형 외교를 펼치고 있다. 1997년 아세안ASEAN에 가입했다.
대한민국과는 1974년 수교했으나, 1975년 라오스가 공산화되면서 외교 관계가 단절되었다. 이후 공산권 붕괴와 라오스의 개방 정책에 발맞추어 1995년 10월에 공식 재수교를 맺었다. 우리 한국은 라오스의 주요 공적개발원조(ODA) 제공국 중 하나이다. 한국인들에게는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라오스 편〉 방영 이후 방비엥, 루앙프라방 등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배낭여행의 성지로 부상했다.



주요 음식
라오스 음식은 이웃한 태국 이산(동북부) 지방 음식과 뿌리가 같으며, 기름지지 않고 허브와 찹쌀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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