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과 홍익인간(2)

[종도사님 말씀]
道紀 151. 6. 24(목), 2021 대한사랑·세계환단학회 국제학술문화제, 서울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

본론 1 : 「천부경」이 주는 인생의 참된 의미


인간의 존재 위격


이제 「천부경」의 실제적인 뜻으로 조금 더 접근해 들어가 보겠습니다.

상경 첫 구절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석삼극析三極 무진본無盡本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 일적십거一積十鉅 무궤화삼無匱化三”에서 우선 첫 다섯 글자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천부경」을 오래 읽어서, 적어도 몇십 년 읽어서 이 ‘일시무시일’이 무엇인지 알면 「천부경」 해석이 다 끝난 거예요. 정말로 깊이 사색하면서 또는 기도하고 수행하면서, 아주 깊은 밤에 천지와 마음으로 대화하면서 읽을 때 ‘일시무시일’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천부경」의 전체 논리에서 보면 ‘일시무시일’은 「천부경」의 근본 주제이고, 문제 제기이고, 답입니다. 나머지는 다 주석입니다. 전체 81자에서 이 다섯 글자 뺀 76자는 전부 주석, 주해라 할 수 있어요.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은 ‘일시一始’, 하나에서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는 우주 만유의 시작입니다. ‘하나’는 너와 나, 우리, 우주 만유의 어떤 근본 자리라는 거예요. 그래서 궁극으로 들어가 보면 「천부경」은 두 글자에 귀결됩니다. ‘하나’에서 왔다, ‘하나’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종교의 결론입니다. 그런데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 안 되고 있는 거예요. 그것을 이룬 자를 부처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고 별소리를 다 합니다. 그러나 이 존재의 궁극의 근본 자리에 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시무시일’, ‘하나’는 ‘무’에서 열렸는데, 이 하나와 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일’이라는 것은 ‘무’도 아니고 ‘유’도 아닙니다. ‘무’이면서 ‘유’이기도 합니다. 유무가 통합돼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을 어떤 실제적인 존재의 근본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과 ‘영零(nothingness)’의 차이는 무엇인가? 서양에서는 과학자들도 수학적으로 또는 건축학적 논리에서 ‘영’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서양의 뛰어난 학자들은 중세에 ‘영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했다고 정리했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천부경」에서는 인간의 존재 위격을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석삼극析三極 무진본無盡本’에서 ‘삼극三極’으로 말합니다.

‘석삼극析三極’이란 하나가 세 가지의 지극한 존재로 나눠졌다는 것입니다. 이 삼극설은 후대로 오면서 좀 더 체계적으로 사상사적으로 정리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삼극, 세 가지 궁극적이고 지극한 것을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이라 했습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과 인간입니다. 이 구절은 인간이 우주에서 가장 존재한 존재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변증하는 거예요. 하늘, 땅, 사람이 ‘천일, 지일, 인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 천지의 주인이기 때문에 ‘인일’이 아니라 ‘태일太一’이라 합니다. 우주의 주인인 인간은 피조물이 아니라 신神과 동격입니다. 인간이 살아 있는 신이라는 거예요. 이런 철학이 서양 기독교에 있나요? 제가 젊을 때 어느 성직자에게서 ‘우리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신이라는 말을 과감하게 하지 못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우리가 우주론을 논할 때 ‘양의 근본, 음의 근본은 천지부모’라 하고 ‘음양합덕陰陽合德’이라는 말도 합니다. 그런데 『환단고기』의 『태백일사』에서는 ‘천일생수 天一生水, 지이생화地二生火, 인삼생목人三生木’이라 했습니다. 하늘은 물을 낳고, 어머니 지구는 불을 낳고 그리고 사람은 1수水, 2화火가 합해져서 3목木이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수행론을 바탕으로 해야 풀 수 있습니다.

제가 연세대에서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할 때 「천부경」을 강론하면서 ‘일시무시일’의 ‘일’을 자세히 풀이했습니다. 수행론에 들어가서 보면 ‘일’이라는 것을 신성神性으로, 신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유식설唯識說로, 심론心論으로 볼 때는 우리의 마음, 절대 순수 의식, 일심一心으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우주 조화의 생명 에너지인 일기一氣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일삼人一三’에는 ‘인간은 살아 있는 조물주 신성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천지의 꿈과 이상을 성취하는 완전자’라는 뜻이 들어 있어요.

인간의 몸과 마음과 영혼


중경으로 들어가면 “천이삼天二三 지이삼地二三 인이삼人二三”이 있는데, 여기서 ‘천이天二 지이地二 인이人二’라는 것은 태극의 음양운동을 합니다. ‘하나’는 일태극一太極인데 이것이 현상 세계에서는 음양으로 나타납니다. ‘하나’가 ‘둘’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음양을 떠나서 태극이 또 있는 게 아니에요. ‘유’ 속에 ‘무’가 있고, ‘무’ 자체가 곧 ‘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무’라는 것은 ‘유’를 통해서 자기를 드러냅니다. ‘유’ 속에서, ‘유’를 통해서 ‘무’가 자기 존재의 의미라든지 목적을 성취하는 거예요.

그래서 ‘유’는 단순한 ‘유’가 아니라 ‘무’를 바탕에 둘 때, 그 ‘무’의 정신 자체, 그 본성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유’ 속에 있는 그 ‘무’가 체득되고, 본성이 체험되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은 유한하지만 그 몸과 마음 속에 무한한 어떤 것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삼랑三郞 문화, 신선 문화인데요. 「천부경」에서 암시하는, 도교 이전의 인류 원형문화입니다.

하경에 “본심본태양本心本太陽 앙명昻明”. ‘본심本心’, 이것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우선 ‘근본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우주의 근본이라는 것은 마음이다’ 해서 “The basis of the universe is the mind.”로 번역이 됐어요. ‘본심’을 달리 번역하면 ‘the original mind’입니다. 이것은 ‘본래 마음’, 우리의 본마음입니다. 감각 작용을 하기 이전, 그러니까 사물을 접하기 이전의 그 마음입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일체의 사념을 끊을 때, 그때 마음을 본성, ‘성性’이라 합니다. 그것을 영어로 ‘nature’라 쓰는데, 그것은 ‘자연’과 같은 거예요.

그러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느냐? ‘본심본태양’이니까, 그 본심은 우주광명 자체입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완전히 끊고 진정한 본래 마음 경계에 쑥 들어가면 거기는 우주의 빛의 세계입니다. ‘본심’을 유식설로 말하면 궁극의 아말라식입니다. 그것은 우주의 광명 의식이에요.

제가 『환단고기』를 접하고 ‘야, 이것을 증명하자. 지구 동서양을 가 보자, 오대양 육대주를 다 가 보자’ 해서 저 아프리카로부터 스코틀랜드를 넘어서 중동, 인도, 중앙아시아, 그다음에 저 남아메리카, 인디안 문화까지 뒤져 보니까 그게 다 『환단고기』에서 말한 우주 광명문화였어요.

그래서 『환단고기』는 뭘 얘기하는가? 『환단고기』 첫 문장을 다 함께 한번 외쳐 보겠습니다.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 (복창) “오환건국.” (복창)

「천부경」이 ‘일시무시일’ 다섯 자, ‘일시’ 두 자이듯이 『환단고기』도 ‘오환건국 최고’(『삼성기 상』)라 해서 여섯 자인데 여기 보면 ‘오환吾桓’ 두 글자예요. ‘오환, 우리는 환이다.’ 너도 우주광명 환 자체이고 나도 우주광명 환 자체이고, 우리는 모두 이 살아 있는 우주의 빛 그 자체라는 거예요. ‘오환건국이 최고라’, 우리가 빛의 인간이 돼서, 광명의 존재가 돼서 나라를 건설한 것이 가장 오래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환국입니다. 환국은 인류 최초의 나라였어요.

그리고 환국은 우리 한국 사람만의 문화 조국이 아니라, 동서 인류의 조국입니다. 저 이집트, 아프리카 대륙, 유럽, 중동에 사는 사람들의 조국이에요. 수메르 문명, 인도 문명도 우주광명이라는 문화 원형을 가지고 있어요.

『삼국유사』에도 ‘석유환국昔有桓國’, 옛적에 환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오환건국이 최고라’라고 한 안함로安含老라는 분은 『삼국유사』가 나온 고려 때보다 훨씬 앞선 신라 때의 고승입니다. 수나라에 유학까지 하고 석가모니 부처님 이상으로 도통한 안함로는 『삼성기』 첫 문장에 ‘오환건국최고吾桓建國最古’를 말했어요. 그런데 ‘환국桓國’이 아니라 ‘환인桓因’이라고 주장한 논문을 쓴 학자도 있습니다. 1,400년 전 신라 때 고승도 ‘오환건국’이라고 환국을 노래했는데, 그게 환국이라는 나라가 아니었다고 부정하려는 거예요. 어떤 학자가 그렇게 주장한다고 해서 전 인류의 문화 조국이 어떻게 부정될 수 있을까요?

인간 삶의 목적


그다음에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을 보면 우리의 존재 목적, 이 우주의 존재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로 끝납니다. 이 ‘일종무종일’은 「천부경」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일종一終’은 ‘하나’에서 끝난다는 것인데, 그 ‘하나’는 어떻게 해서 실제로 이루어지는가? 그 ‘하나’는 ‘무종일無終一’, 무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일종무종일’에서 그 ‘하나’는 ‘무’에서 성취되는 ‘하나’입니다. 이것은 미래적 차원에서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가 있어요.

이 ‘무’라는 것을 나중에 동학에서 무극無極이라 했는데요. ‘무극대도 닦아 내니 5만 년 운수로다. 무극의 운수가 닥친 것을 너희들이 어찌 알 수가 있느냐’고 했습니다. 무극의 운수라는 것은 이 우주가 새로운 평화의 질서, 상생 해원의 질서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최수운崔水雲이 「천부경」에 근본을 둔 무극을 말한 것입니다. 신라 시대 때 세계적인 대학자였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천부경」을 발굴하여 한문으로 번역했는데, 그 최치원이 신교를 부활시키라는 삼신상제님의 명을 받아서 최수운으로 다시 왔어요.

『환단고기』를 보면 『태백일사』에서 우주의 실체를 말했는데, “일기기이삼기신一其氣而三其神”이라고 했어요. ‘일기기一其氣’, 우주의 기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이 우주의 생명의 바다에 ‘하나의 기’라는 에너지가 있다는 거예요. 그 속에는 우주의 생명의 바다를 움직이는 신이, 어떤 신성이 있는데 그것을 ‘삼기신三其神’, 셋이라 했습니다. ‘일기기一其氣 삼기신三其神’, 이것이 지금 우리 몸에 그대로 들어와 있는 거예요. 이걸 알아야 「천부경」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변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무리 잘해도 별 볼 일 없고, 체험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본론 2 : 「천부경」의 우주관


「천부경」의 깊은 뜻 : 본체와 작용


「천부경」을 몇 가지로 정의해 볼 수 있습니다.

「천부경」은 창세 원형문화 진리 원전입니다.

「천부경」과 『도전』은 인류 문명 경전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천부경」은 삼신상제님이 내려 주신 최초 계시서입니다.

「천부경」은 제왕문화의 원전입니다. 조선조의 정조正祖까지도 천부보전天符寶篆인 「천부경」을 알고 있었습니다. 황궁의 내밀한 문서에 「천부경」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천부경」은 우주 신학의 원전입니다. 우주란 무엇인가? 신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하나님은 어떤 존재이며, 인간과 어떤 관계인가? 이런 문제를 알려 줍니다.

끝으로 「천부경」은 도통 문화, 신선 문화의 원전입니다. 인간과 우주, 인간과 신이 어떻게 합일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진정한 진리의 최초 원전입니다.

그러면 「천부경」의 본뜻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볼까요?

다시 상경으로 들어가서 보면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석삼극析三極 무진본無盡本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 일적십거一積十鉅 무궤화삼無匱化三” 해서 ‘일’로 시작합니다. 마지막 구절도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일’로 끝납니다. 그래서 「천부경」은 일자一者에 대한 경전이라 할 수 있어요.

대우주는 하나입니다. 물론 요즘은 유니버스universe가 아니라 멀티버스multiverse라 하여 다차원의 우주가 무한대로 펼쳐져 있다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내면을 관통하는 근본은, 우주의 어떤 근본정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창조 본체에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천부경」을 전체적으로 읽으면 그것을 짐작할 수 있지만,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시一始’ 하면 ‘우주는 하나에서 나왔다’는 것인데 이것은 ‘시원始原 본체’입니다. 하늘과 땅, 인간과 신이 전부 하나에서 왔는데 그 하나가 바로 시원 본체인 것입니다.

그런데 ‘일적십거一積十鉅’, 하나가 계속 생장 운동을 하며 궁극을 향해서 갑니다. 그 궁극에 이르면 폭발이 확 일어나서 ‘용변부동본用變不動本’, 변혁이 일어납니다. 우주 질서에 어떤 전환의 변곡점이 와서 새로운 질서가 탄생하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적’이라는 것은 ‘근본根本 본체’입니다. ‘일시무시일’과 ‘일적십거 무궤화삼’에 ‘일’이 같이 나오지만, ‘일시무시일’에서 ‘일’은 일태극一太極과 같은 것이고, ‘일적십거 무궤화삼’에서 ‘일’은 전통적인 오행으로 말할 때 일수一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하경 첫 구절 “일묘연一玅衍 만왕만래萬往萬來”. ‘일묘연’, 이 ‘하나’가 오묘하게 팽창 운동을 합니다. 그러면서 ‘만왕만래’, 영원히 순환 운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일묘연 만왕만래’ 하는 것은 ‘현상現象 본체’입니다. 그러니까 우주 만유의 어떤 에너지의 근본으로서 근본 본체가 있고, 현상 세계에서 작동하는, ‘일묘연 만왕만래’ 할 때의 현상 본체가 있는 것입니다.

현상 본체는 실제적으로는 ‘삼극三極’입니다. ‘일석삼극一析三極’, 하나가 셋으로 나눠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과 인간이 현상 본체예요. ‘삼극’, ‘대삼大三’, ‘삼합三合’ 이런 것은 현상 본체를 말한 것입니다. 하늘은 ‘천일’, 땅은 ‘지일’, 사람은 ‘인일’인데 그것들은 우주의 본체로서 조물주와 같은 것입니다. 현상에서는, 하늘은 창조주 아버지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어머니 땅, 어머니 지구는 모든 생명의 실제적인 조물주예요. 그 아들딸인 모든 인간은 여러 가지 시련을 매 순간 극복하면서 그 궁극의 목적인 ‘십거’를 향해서 가는 살아 있는 신이요, 살아 있는 우주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일시무시일’을 한번 깊이 생각해 보세요. 서양은 영零을 받아들이는 데 거의 2천 년이 걸렸습니다. 기독교의 창조와 피조로 양분된 논리, 이원론의 사슬을 깨트리지 못하고 그렇게 된 거예요. 오늘날의 양자론, 상대성 원리라든지 만사형통의 통일장 이론은 모두 영과 연결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류의 문명사에서 보면, 인간의 마음을 일체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영을 발견한 것은 아주 경이로운 일입니다. 「천부경」은 이 영零과 무無, 무한대의 문제를 제시하고 있어요.

‘일적십거 무궤화삼’에서 ‘적積’이라는 것은 적분 개념입니다. ‘일적십거’는 ‘하나’가 시작되어서 끊임없이 변화해서 그 변화된 힘이 모두 쌓여서 터지는 것입니다. 인류 문명사를 보면 전쟁이 계속되고 원한이 쌓였습니다. 환경오염도 2003년도에 이미 어머니 지구가 견딜 수 있는 임계치를 지났다고 합니다. 이제 지구촌 인류가 노력을 해도 환경문제를 극복할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오늘날 성숙한 사람,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 공동체와 더불어 살려는 사람도 많지만 이 병란 개벽에서 과연 누가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인가? 이 문제를 알려면 우주론을 좀 더 체계 있게,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합니다.

‘일적’은 선천개벽 이후 우주의 1년 사계절에서 봄여름입니다. ‘십거’는 여름에서 가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주의 근본이 되는 일태극 수기水氣가 분열을 해서 봄에 목기木氣 시대, 여름에 불의 시대를 거쳐서 이제 가을로, 후천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이 가을의 완전한 조화 통일, 완전한 균형무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나간 선천 봄여름의 과정, 다시 말해서 태극을 넘어서 무극으로 들어가는 과정에는 ‘화삼化三’, 즉 삼신의 조화 손길이 한순간도 빠짐없이 작용했습니다.

‘일시무시일’, 하나에서 왔다고 하면 존재론이 제기되고 ‘석삼극 무진본’ 하면 생성론이 제기됩니다. 「천부경」은 존재론과 생성론을 동시에 제기합니다. 우주가 만물을 낳는 진리 구성의 틀은 무엇이며, 하늘과 땅, 일월 같은 자연계가 어떻게 구성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전체 논리 틀에서 볼 때 변화론이 동시에 제기됩니다.

중경을 보면 “천이삼天二三 지이삼地二三 인이삼人二三 대삼합육大三合六 생칠팔구生七八九”를 말합니다. ‘천이 지이 인이’, 하늘과 땅과 인간은 태극의 음양운동을 합니다. 그런데 존재하는 것을 살펴보면 ‘천삼 지삼 인삼’, 하늘에도 셋, 땅에도 셋, 인간에도 셋이 있다는 것입니다.

셋으로 존재하는 것은 여러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늘의 중심별은 북극성, 삼태성, 북두칠성 세 가지입니다. 우리의 영혼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은 『환단고기』에만 나오는데 ‘생혼生魂, 각혼覺魂, 영혼靈魂’이라는 삼혼三魂이 있다는 거예요. 본래 우주에서 처음 태어날 때의 모습은 생혼이고, 윤회를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각혼입니다. 죽어서 자기 조상에게 갈 때는 각혼으로서 가는 거예요.

그런데 이 육신에는 일곱 가지 넋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하늘과 땅에 혼과 넋으로 나뉩니다. 혼은 천상에 올라가 있는데 넋은 무덤에서 나와서 자기의 원한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신을 한 1,000 〫C에서 소각하면 넋이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윤회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지구에는 신성한 산이 있습니다. 유라시아에 삼신산三神山이 있고, 한반도와 전라도에도 삼신산이 있어요. 우리 인간의 의식과 혼 그리고 인체의 구성 원리도 이처럼 삼수三數로 돼 있어요.

“대삼합육大三合六 생칠팔구生七八九.” 이건 좀 더 복합적인데, 하늘과 땅과 인간이 합일이 될 때는 7, 8, 9라는 새로운 차원이 구성됩니다.

우리 얼굴에는 칠규七竅가 있습니다. 두 귀, 두 눈, 두 콧구멍, 입 하나가 있죠. 그래서 얼굴에다가 칠성을 붙이고 다닌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수행을 해서 신선이 되기 전에, 인간 몸속에 여덟 잎으로 된 어떤 것이 은밀하게 핍니다. 전 지구를 다녀보면 #8은 신선, 생명, 불사를 상징#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방위도 8방위를 말합니다. 『삼성기』를 보면 그 첫 페이지에 ‘동녀동남童女童男 800명을 데리고 왔다’는 구절이 있어요. 이 800명은 인류 창세역사를 수놓은 환국을 개창한 삼랑들입니다. 전부 팔수八數 문화예요. 우리 치아를 보면, 중간치에서 왼쪽으로 여덟 개, 오른쪽으로 여덟 개가 있습니다. 팔음팔양八陰八陽으로 돼 있어요. 윗니와 아랫니가 모두 ‘팔팔’로 돼 있는 거예요.

9는 ‘지존의 수’, ‘황제 수’ 등 여러 가지로 말합니다. 우리 몸 전체에는 9개 구멍이 있어요.

그다음 “운삼사運三四 성환오칠成環五七.” 우주의 운동, 모든 생물계 운동은 3, 4의 구성 원리를 갖습니다. 그 성환, 순환은 5와 7의 구성 원리를 갖는다는 구절이에요.

일체삼용一體三用이라는 원리가 있습니다. 봄에 심고 여름에 기르고 가을에 거둡니다. 그리고 겨울은 쉬는 때입니다. 이런 시간의 구성 원리도 일체삼용입니다. 우리 몸의 구성 원리도 그렇죠.

그다음에 ‘성환오칠成環五七’이라는 것은 황극皇極 운동입니다. 우리가 오행으로 보면 중앙에 5토五土가 있거든요. 우리 몸에서는 비장과 위장이 토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비위脾胃가 고장 나면 몸이 급속도로 나빠집니다. 이 비위가 튼튼해야 천지 에너지를 잘 섭취해서 건강하게 됩니다. 그리고 7은 7화火, 태양으로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합니다.

“일묘연一玅衍 만왕만래萬往萬來 용변부동본用變不動本.” ‘용변부동본’은 선천 우주의 작용이 변해서 ‘부동의 본’, 변하지 않는 본체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상극에 따른 비극, 전쟁, 투쟁이 없는 이상적인 새로운 우주 질서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후천개벽을 암시합니다.

개벽을 동학에서 선언했고 그것을 완성하는 것이 참동학 곧 증산도 문화입니다. 이 후천개벽 문화는 실제적인 선천개벽과 후천개벽, 상극과 상생을 말합니다. 상생相生이라는 말을 정치판에서도 쓰지만 그 본래 뜻을 살리지 않고 ‘그냥 너하고 나하고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 함께 잘 살자’는 의미로만 쓰고 있어요.

선후천 개벽사상의 원형


선후천 개벽사상의 원형이 「천부경」에 있는데 그 실제적인 개벽은 인간 역사 속에서 어떻게 오는가? 어떻게 남북통일이 되는가? 어떻게 후천 5만 년의 놀랍고 새로운 문명세계가 지상에 펼쳐지는가? 이런 문제를 밝힌 원전이 바로 1만 년 문명사의 마지막 경전 『도전道典』입니다. 『도전』을 아주 열심히 보세요. 그 속에 정말로 놀라운 내용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천부경」을 완성한 주문, 만트라는 갱생주更生呪입니다. 강증산 상제님이 「천부경」을 가지고 갱생주를 노래하신 거예요. 지금은 하늘도 다시 태어나고, 땅도 다시 태어나고, 사람도 다시 태어나는 때입니다. ‘갱생更生’, 새롭게 태어나는 때예요. 그래서 새롭게 태어나야 됩니다. 너도 나도, 온 우주도 새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을 상제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천인천지천천天人天地天天 지인지지지천地人地地地天 인인인지인천人人人地人天.” 선천 봄여름 세상과 앞으로 올 후천 가을 세상을 ‘천인천지천천’이라 노래하신 것입니다. 봄 세상에는 하늘에서 사람을 내고, 하늘에서 땅도 디자인하고, 하늘에서 봄의 하늘을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문명은 여름, 선천 말 불의 문명입니다. 그래서 ‘지인지지지천天人天地天天’, 어머니 지구, 이 땅이 그 중심이 됩니다. 어머니 지구, 땅이 각 지역에서 사람을 내고 그 사람들이 지구의 각 지역에서 삽니다. 그리고 이 땅의 변화가 하늘의 질서를 규정짓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가 조상에게 4대四代 봉사奉祀를 한다면 조상에서도 그렇게 제사를 받는 거예요.

그동안 천지부모가 인간을 낳아서 길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을철로 들어가니까 제대로 된 열매 종자를 추립니다. 그래서 조상계에서, 몇천 년 전 윗대 조상부터 쭉 모여서 초비상 회의를 열고, 우리 자손줄에서는 어떤 후손을 살려야 된다고 의논을 합니다. 『도전』을 보면 이런 문제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인인지인천人人人地人天’, 사람이 지금 이 인간 세상을 새롭게 구성하고, 파괴되고 오염된 자연과 환경도 새롭게 정리하고, 저 천상 세계 질서까지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존시대입니다.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人尊時代니라.”(道典 2:22:1)라는 상제님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은 인간이 하나님 이상의 노릇을 해야 되는 때입니다. 그렇게 고달파졌어요. 그러나 진리적으로 보면 인간의 사명이 그만큼 존귀해진 것입니다.


본론 3 : 「천부경」의 홍익인간관; 도통과 신선 문화 원전


홍익인간이란 어떤 인간인가


그러면 오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천부경」의 홍익인간관과, 도통과 신선 문화 원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과 같은 병란 개벽 상황에서는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가? 이 병란 시대에 어떻게 면역력을 증강할 것인가? 이 치유의 문제에 대해서, 제가 존경하는 인도 출신의 미국 의사로서 뉴욕에서 활약하는 디팍 초프라Deepak Chopra(1947~ )가 최근에 한 저서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파라셀수스Paracelsus(1493~1541)라는 500년 전의 외과 의사가 한 말을 소개한 것입니다.

정통 의학이야말로 의학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다. 오직 환자와 네이처nature를 관찰하며 진실을 추구한다. 치유의 힘은 의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네이처에서 온다. 그러므로 의사들은 열린 마음으로 네이처에서 출발해야 한다.


인간도 자연이고, 자연의 최종 작품인데 증상에 따른 치료, 예를 들면 여기 암세포가 있다고 하면 무조건 잘라 내야 된다는 식의 치료만 추구하는 의학은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이 발전된 자연 치유 의학의 진정한 첫째 원전은 「천부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9천 년 전에 탄생한 「천부경」, 1만 년 이전의 문화에 근원이 있는 이 「천부경」에 바탕을 둔 수행법의 핵심은 앞으로 삼랑대학에서 체계 있게 전하기로 하겠습니다.

「천부경」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상, 홍익인간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단군세기』 3세 가륵 단군 조에 “대천신이왕천하代天神而王天下하야 홍도익중弘道益衆하야 무일인실성無一人失性하며”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을 대행해서 천하를 다스리는데, 옛날에 환인, 환웅, 단군께서 도를 깨쳐서 널리 폈다는 것입니다. 홍도익중弘道益衆은 모든 창생에게 진리를 체험하게 해서 유익하게 한다, 삶의 모든 고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는 거예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구절, ‘무일인실성無一人失性’입니다. 한 사람도 자기의 본래 참마음, 자기 몸속에 있는 우주의 신성, 하나님의 신성 이것을 잃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환국, 배달, 조선의 역대 제왕들이 국가를 통치할 때 이것을 제1의 사명으로 삼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환국, 배달, 조선 그리고 북부여, 고구려의 성왕들이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참마음을 보게 했다는 거예요. 자기 몸속, 마음속에 있는 우주의 대광명, 빛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통 문화를 개방한 것입니다.

우리 국내외 학자 가운데 홍익인간에 대해서 정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박금해라는 분은 ‘홍익인간 사상은 성통공완性通功完의 사상을 이상으로 하는 사상’이고 ‘홍익인간은 신인합일神人合一을 이룬 존재’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근원을 「천부경」으로 보았습니다. 또 김용환이라는 분은 ‘홍익인간은 도통군자, 득도한 인간이며 결국 영성 차원으로 살아가는 인간’이라 했어요.

우리나라 경희대학교에서 외국인 교수를 지낸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Emanuel Pastreich(1964~ )라는 분이 쓴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2013)을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홍익인간 정신의 핵심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가치를 깨닫는 것이며 그 깨달은 가치를 나를 넘어서 다른 사람, 사회, 국가 그리고 이 지구를 위해서 쓰는 것이다.” 홍익인간 정신의 핵심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땅에 온 외국인 형제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놀랐습니다.

홍익인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과 교육법에도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4월에 대한민국 여당 국회의원 12명이 모여서, 교육법에 있는 ‘홍익인간’이라는 문자를 없애 버리자는 교육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어요.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교육 지표로 작용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홍익인간은 환국, 배달, 조선의 건국이념입니다. 건국이념은 국가를 통치하는 데 필요한 제1의 덕목이고 국가 헌법에도 있는 것인데 이걸 빼 버리자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일입니다.

「천부경」에는 홍익인간관이 넘친다


우리가 「천부경」을 보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너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런 존재가 되는가?’ 하는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홍익인간관으로 꽉 차 있어요.

‘너는 우주의 절대 근원 그 하나에서 왔다’는 것이 ‘일시무시일’입니다. 이 공간이라는 게 ‘무’예요. 공간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는 곧 ‘유’이고, 우리 육신도 얼마 지나면 ‘무’로 돌아갑니다.

이 대우주에 약 1조 개의 은하계가 있고 한 은하계에 3천억에서 5천억 개의 별이 있고, 그 별들이 팽창하면서 우주의 무의 공간을 더 확장한다고 합니다. ‘유’는 ‘무’를 만들고 ‘무’는 ‘유’를 만드는 거예요. 이것은 우주의 존재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뚱어리는 유한하지만 여기에 대우주를 담고도 남는 무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존재론을 전개한 것은 ‘석삼극析三極’입니다. 그 ‘하나’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늘과 땅과 인간으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이 삼극은 궁극의 인간의 존재 위상을 선언하고 있어요. ‘너는 삼극이다!’라고. 인간은 이 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세 가지 지극한 것의 중심에 있습니다. 육효六爻로 말하면, 어머니 땅이 제일 밑에 있고, 중앙에 있는 삼효와 사효가 사람이에요. 천지의 중심에 인간이 있는 것입니다.

‘인일삼’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나’와 ‘셋’입니다. 그 ‘하나’는 절대 근원입니다. 환국 시절부터 어머니들이 ‘아가야, 너는 하나와 셋이야. 너는 우주에서 가장 으뜸인 하나라는 거야.’ 이렇게 가르친 거예요.

그다음에 ‘본심본태양本心本太陽.’ ‘너의 마음은 태양이다. 너의 마음은 한없이 밝다’는 것입니다. “본심본태양 앙명 인중천지일 일종무종일.” ‘너는 천지와 하나다. 천지부모와 하나다.’ 이게 모두 홍익인간관입니다.

5,500년 전에 신선 발귀리發貴理가 “대일기극大一其極이 시명양기是名良氣라”라고 했습니다. ‘대일기극’ 즉 ‘대극大極’은 ‘태극太極’이라는 언어와 같습니다. 그러면 우주의 태극이라는 것이 ‘양기良氣’라는 것입니다. 발귀리가 말한 양기는 곧 ‘일기一氣’입니다. 동학에서는 양기, 일기 대신에 ‘지기至氣’를 써요.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 이제 지기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우주를 태어나게 하는 삼신상제님의 무궁한 도통 기운, 조화 기운을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일시무시일 석삼극 무진본’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궁극의 한 근원에서 왔습니다. 그 근원 자체는 헤아릴 수 없는 무한입니다. 영零이라는 것은 규정되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질량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무한, 무한대입니다. 제한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은 무한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홍익인간이란 그 생명의 본성이, 신성이 무극으로 화한 인간입니다. 무극의 생명으로 환원된 인간, 무한한 생명이 된, 무극의 주인이 된 인간입니다.

이 홍익인간의 인간론을 완성한 분은 단군조선 11세 도해道奚 단군과, 그분이 모신 스승 유위자有爲子입니다. 유위자의 제자 이윤伊尹은 중국 상商나라의 건국을 도운 인물입니다.

도해 단군 때 홍익인간의 도에 대해서 심법을 전수한 글이 바로 염표문念標文입니다. 염표문은 하늘과 땅과 인간을 규정하고 홍익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밝히고 있어요. 염표란 ‘너의 마음에 새겨라’는 뜻이고, 염표문은 ‘너의 마음에 이걸 새겨서, 진리 경계에서 하늘과 땅과 인간의 본래 모습을 보라’는 글입니다. 염표문은 ‘마음과 영혼에 새겨서 읽는 진리의 글’입니다. 이 글을 읽고 크게 도통한 분이 을지문덕 장군입니다. 을지문덕 장군이 ‘염표문을 잘 봐라’고 한 글이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 나와 있어요.

天(천)은 以玄默爲大(이현묵위대)하니 其道也普圓(기도야보원)이오
其事也眞一(기사야진일)이니라.
地(지)는 以蓄藏爲大(이축장위대)하니 其道也効圓(기도야효원)이오
其事也勤一(기사야근일)이니라.
人(인)은 以知能爲大(이지능위대)하니 其道也擇圓(기도야택원)이오
其事也協一(기사야협일)이니라.
故(고)로 一神降衷(일신강충)하사 性通光明(성통광명)하니
在世理化(재세이화)하야 弘益人間(홍익인간)하라. ( 『단군세기』)


이 염표문을 보면, 하늘도 땅도 인간도 한없이 크다(천대天大, 지대地大, 인대人大)고 했습니다. 그다음에 하늘은 ‘기도야보원其道也普圓’이요 땅은 ‘기도야효원其道也効圓’이라 했습니다. 하늘의 도는 원융무애圓融無礙하고, 땅은 그 하늘의 도를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하늘의 정신, 이법, 생명을 받아서 사람과 만물을 낳습니다. 다음에 사람은 ‘기도야택원其道也擇圓’이라 했는데, 이게 절묘한 표현입니다. 사람은 자유의지가 있고,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융무애하게 될까?’ ‘좀팽이로 살다 없어질까?’ 이것을 선택할 수 있어요.

하늘은 현묵玄默합니다. 너무도 깊고 아득해서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현묵위대以玄默爲大’, 아주 깊고 신비한 거죠. 알 수 없는 신비로움과 침묵으로써 한없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축장위대以蓄藏爲大’라 했습니다. ‘축장’이라는 것은 하늘 아버지의 모든 신비, 생명, 섭리를 전부 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물을 기르기 때문에 한없이 큽니다.

사람은 ‘이지능위대以知能爲大’라 했습니다. 사람은 지혜와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온 우주를 다스릴 수 있는 신성이, 카리스마가 있다는 거예요. 그 도는 ‘천지의 마음으로 갈 거냐? 어둠 속에 빠져서 없어질 거냐?’ 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염표문에는 ‘삼대三大’, ‘삼원三圓’, ‘삼일三一’이 나옵니다.

그러면 하늘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진일眞一’입니다. 참됨으로써 영원히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도를 닦을 때, 명상을 할 때 참된 마음을 가지면 자기 본래 모습으로 싹 돌아옵니다. 하늘과 신과 하나 되고, 모든 조상과 하나 되는 거예요. 얼마나 단순해요? ‘기사야진일其事也眞一’, 하늘이 하는 것은 단 하나 ‘참된 일’입니다.

어머니 지구는 ‘근일勤一’입니다. 쉬지 않고 기르는 것입니다. 어머니 지구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이 우주 허공을 비행하면서 나를 기릅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당장 파가산할 정도로 위기가 오더라도 ‘온 천지가 지금 너를 끌어안고 함께 가고 있으니 절망하지 말라’는 거예요.

사람은 ‘기사야협일其事也協一’, 함께 힘을 합쳐서 우주의 뜻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협일協一’입니다.

그러고서 이제 홍익인간을 선언합니다. “고故로 일신강충一神降衷하사 성통광명性通光明하니.” 일신一神이 실제 작용할 때는 ‘삼三’이니까, 이 일신은 삼신입니다. 조물주 성령께서, 삼신상제님께서 너에게 당신의 참마음을 빼 주셨다는 것입니다. 조물주의 마음을 그대로 다 주셨다는 거예요. 99.99%가 아니라 100% 그대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바로 삼신하나님, 조물주 삼신상제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동학에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못된 세계관은 거기서 그냥 다 정리되는 거예요.

‘일신강충하사 성통광명하니’, 인간의 마음은 본래 광명에, 우주의 빛에 통해 있어요. 결론적으로 ‘재세이화在世理化하야’, 세상에 태어나서 살면서 삼신의 도로 다스려서, 홍익인간弘益人間하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해야 합니다. 이 홍익인간을 ‘널리 유익하게 하는 인간’으로도 해석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