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역사문화탐방기 | 신사神社의 나라, 일본을 가다!
[ ]
지난 11월 16일 일본 오사카에서 환단고기 북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본부와 지방의 많은 일꾼들이 자원봉사자로 이번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콘서트 후에 이어진 역사탐방은 한반도에서 전래된 동방 신교가 일본 문화의 뼈대로 자리를 잡고 있음을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신 김보람, 김선영, 주미라 성도님의 역사탐방기행문을 종합하여 <일본역사탐방 후기>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일본으로 출발!
11월12일 드디어 오사카로! 오사카 도장으로 출국하는 당일이다.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설레임을 가득안고, 핸드폰 로밍신청을 한 후, 부산지역 성도님과 대구에서 온 성도님을 만나 함께 체크인 센터로 갔다. 우리가 탑승하게 될 비행기는 ○○항공. 저가항공이라 기내 수화물은 기내용 가방과 소지품 가방 단 2개여야 하고 무게는 10㎏까지만 허용 가능하며, 위탁 수하물은 20㎏까지 허용된다고 한다. 규정을 몰랐던 우리는 뒤늦게 무게 조절을 위해 물을 빼고 인터넷으로 수하물 추가신청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체크인을 마치고, 무사히 출입국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이번 오사카북 콘서트를 통해 처음 비행기를 타보는 성도님도 계셨고, 외국 여행이 처음이라는 성도님도 계셨다. 여러 성도님들이 하시는 말 속의 설레임이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다들 창밖 풍경을 보느라 바빴고, 짧은 비행시간 동안 티켓을 구입하는 승객들이 눈에 띄었다. ○○항공의 좋은 점은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난바까지 갈 수 있는 Pass권을 바로 비행기 내에서 820엔의 저렴한 요금에 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돈을 주면 영수증과 뒤에 도장을 찍어주는데 나중에 공항에 내려 지하철 타는 탑승구 앞에서 교환을 하면 티켓을 준다.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지하철 노선도와 지도를 얻어 지하철에 탑승하였다. 오사카 도장이 있는 코리아타운까지의 시간은 약 1시간, 창밖을 통해 보이는 일본의 풍경은 조용함 속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나라였다. 지하철에서 내려 도장으로 가는 동안 9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게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오사카 도장으로 전화를 해야 했다. 결국 오사카 도장의 성도님께서 직접 자전거를 타고 길 잃은 고양이처럼 서있던 우리를 정말 감사하게도 데리러 와주셨다. 늦은 밤까지 저녁을 못 먹은 우리를 위해 포정님께서 맛있는 라면을 끓여주셨다. 그렇게 오사카 도장 성도님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우리는 도장 바로 앞에 있는 ‘히로(ヒ-ロ-)네’라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짐을 풀고 첫날 밤을 맞았다.
일본의 거리, 그리고 일본 사람들
이번에 일본 오사카에서 10일간 머무르면서 오사카, 나라, 교토를 다녀왔다. 일본에 대해 느낌과 생각을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일본인들은 공공질서를 정말 잘 지킨다는 것. 공공장소에서 쓰레기통을 찾아볼 수 없고 화장실은 너무 깨끗했다. 거리에서도 버려진 쓰레기 하나 볼 수 없었고 그 흔한 전단지도 전봇대에 붙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정말 친절했다. 나는 일본어를 전혀 모르지만 별 두려움 없이 일본을 여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친절 덕분이었다. 실례로 오사카 난바(難波) 역에서 우리가 묵는 숙소인 니폰바시역(日本驛)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일본 아가씨에게 길을 물어봤다. 그 아가씨는 우리 일행을 지하철을 타지 않고도 걸어갈 수 있는 지하도로 인도해 주었다. 우리가 혼자서도 찾아갈 수 있는 지점까지 와서야 자신을 길을 돌아갔다. 그 시간이 아마 십여 분이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내가 만난 모든 일본인들은 너무 친절하고 상냥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더욱 심각해진 한·일 양국의 문제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감춰진 속마음이 드러나는 것 같아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하다. 사람들은 일본이라는 나라는 마음에 안 들지만 일본사람은 정말 친절하다고 말한다. 그들의 참 모습은 무엇일까? 개개인의 일본인과, 일본이라는 나라가 과연 따로일 수 있을까? 역시 우리에게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북 콘서트 활동 시작! - 일본에서의 첫 활동(13일)

일본에 살아있는 우리 문화를 체험하고 직접 발로 뛰는 홍보활동을 하기 위해 부푼 마음으로 도장을 나섰다. 물론 두 손에는 환단고기 북 콘서트 홍보 팜플릿을 푸짐하게 들었다. 먼저 일본 문화를 상징하는 신사神社가 보고 싶었는데 마침 도장 앞에 있는 미유키모리(御幸森天神宮) 신사로 향하였다. 원래 닌토쿠텐노(仁德天皇)가 산돼지 사냥을 하면서 쉬던 숲에 왕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웠다 한다. 이곳에는 백제 왕인王仁 박사가 닌토쿠텐노(仁德天皇)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일본에 와서 지었다는 노래비가 세워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출입하는 신사의 모습은 옛 우리 민족의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았던 신교문화와 매우 닮아 있다. 일본 신사 앞에서는 액운을 쫓기 위해 금줄이 달려있었고, 신사 옆에 있는 돌비석에는 그 신사를 위해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놓는다고 한다. 이어 미유키모리 신사에서 태사부님께서 직접 방문하셨던 구마다신사(杭全神社)까지 약 두 시간 정도 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는 현지인들에게 구마다 신사로 가는 길을 여러 번 물어보았다. 그런데 길을 모르는 시민들은 다른 사람에게 대신 길을 물어봐주기도 하고, 헷갈릴 법한 길까지 직접 함께 가주기도 하며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이 꼭 환단고기 콘서트에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걸으면서 ‘일본역사는 한국의 역사와 매우 연관성이 많다. 그리고 한반도에 살던 백제 사람들이 일본으로 이주하여 펼쳐진 역사가 일본의 역사다.’라는 얘기와 함께 환단고기 팜플릿을 손에서 손으로 전달해 주었다. 곧이어 도착한 구마다 신사에는 큰 나무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약 천년 정도 된 매우 영험한 나무라고 한다. 바로 신사를 지키는 살아있는 신단수의 모습이다.
나라에서의 활동 (14일)
오늘의 대학생 활동 장소는 나라(奈良)로 정했다. ‘나라’라는 지명은 우리의 나라라는 말이 그대로 일본으로 들어가 지명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곳은 일본에서 가장 많은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였고, 약 70년 동안 일본의 수도로서 역할을 하였다. 열차를 타고 간 나라 역에서 얼마 걷지 않아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사슴이었다. 공원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고 먹이를 먹고 있는 사슴들이 사람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 여유로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사슴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슴이 우리 손에 들려져 있던 지도를 먹기 시작했다. 공원에 붙은 경고문에는 사슴에게 정해진 먹이 외에 종이는 주지 말라고 적혀 있었으므로 서둘러 종이를 가방과 주머니에 집어넣은 후에 사슴과 함께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이어 우리 일행은 사슴공원을 지나 토다이지(東大寺)로 향했다. 동대사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 축조 건물 다이부스덴(大佛殿)이 있다. 그곳에는 일본 3대 불상 중 하나인 다이부스(大佛)가 모셔져 있다. 다이부스는 정면 폭 57.5m, 높이 49.1m, 옆면 50.5m로 세계 최대 규모다. 동대사가 처음 세워진 것은 752년 4월 9일이다. 놀랍게도 고대 한국인들이 그 건축의 주인공이란다. 바로 구다라인(백제인) 행기行基(668~749) 큰 스님과 양변良弁(689~773) 큰 스님, 신라인 심상대덕審祥大德(8세기) 큰 스님이다.

오사카 역사박물관을 구경하며(15일)
환단고기 북 콘서트 하루 전날이다. 우리는 오사카 도장에서 다 같이 모여 성공적인 행사를 기원하며 고사치성을 올렸다. 도장에서 음복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행사 장소인 오사카 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이곳 역사박물관은 일본의 대표 방송국 NHK와 함께 붙어있었다. 사람들이 역사박물관과 방송국을 자유롭게 오고가는 모습이 새롭게 느껴졌다. 오사카 역사박물관은 오사카의 중심, 오사카성 인근에 위치하여 멋진 전망을 자랑하고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이다. 수학여행이나 소풍 외에는 자발적으로 찾아가는 사람들을 찾기가 드문 한국의 박물관 모습이 겹쳐지며 살짝 씁쓸한 기분^^.
먼저 역사박물관의 제일 꼭대기 층으로 향하였다. 그곳에는 초기 일본 사람들이 입었던 의관을 그대로 재현한 곳이 있었는데 우리와 너무 닮았다. 옷과 부채 그리고 그들의 표정까지 백제 사람들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느낌이다. 근처 난바궁에서 출토된 유물들도 백제 사람들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박물관에서 바라보는 오사카성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권력을 엿볼 수 있었다. 오사카 성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垓字 사이의 물은 외곽에서 끌어다가 지은 것이며, 정문으로 보이는 오테몬의 성곽 문이 하나로만 지어져 있었다.

우리는 내일 행사가 열리는 4층 행사장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했다. 먼저 도착한 성도님들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잠시 후 행사시 나눠주는 책을 담는 봉투를 구매하기 위해 나왔는데, 오사카 역사박물관 근처에는 다이소가 없어 근처 시장으로 갔다. 처음으로 타 본 일본의 차는 웬걸 운전석이 오른쪽이고 조수석이 왼쪽이다. 한국과 정반대다. 일본은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 보다. 차들의 운행방향도 바뀌어서 마치 길을 무단으로 건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에 앉아 지도를 보는데 우리와 다른 방향에 나는 방향감각을 잃고 그저 최종 목적지만 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수호사님께서 오신 적이 있어서 길을 찾아 무사히 시장에서 봉투를 사고 오사카 역사박물관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고는 다른 성도님들과 함께 책 포장 작업을 했는데 갑자기 빨리 해야 한다는 말이 들렸다. 일본에서는 봐주는 것 없이 바로 5시가 되면 셔터문을 내린다는 것이다. 한국은 5시에 문을 닫는다 해도 여유 시간이 허용되고 또 행사를 준비하는 측의 사정을 봐주기도 하지만, 일본에는 그런 게 전혀 안 통한단다. 어떻게 보면 매정해 보이지만 그만큼 칼같이 철저한 그들의 국민성이 아닐까?
점심은 역사박물관 밖 벤치에서 몇몇 대학생 성도님들과 아침에 싸왔던 주먹밥으로 대신했다. 식사 후 우리는 나고야 성, 구마모토 성과 더불어 일본의 3대 성 중의 하나인 오사카 성城으로 향했다. 오사카 역사박물관 위에서 보았던 오사카 성은 작아 보였는데 실제로 돌아보니 엄청 컸다. 당시 체구가 작았던 일본인에게 오사카 성은 내가 느꼈던 것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우리는 해가 뉘엿뉘엿 저물 즈음에 방문하여 오사카 성의 야경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삶과 오사카 성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박물관은 아쉽게도 4시30분까지 입장마감이었다. 방문을 다음 기회로 미루며 아쉬움을 달랬다.
오사카 환단고기 북 콘서트(16일)
오후 1시에 시작하는 북 콘서트 준비를 위해 장비를 나르는 방송팀, 경호팀, 접수팀 등이 이른 아침부터 분주히 서둘렀다. 행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무사히 진행될 수 있도록 신중을 기하면서 살피지 못한 문제들은 없는지 세세히 확인하였다. 12시가 넘자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들어오기 시작했다. 1시가 되자 사회자가 행사 안내를 시작했고, 큰 화면에는 그동안 진행되었던 환단고기 북 콘서트 영상들이 등장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사카 환단고기 북 콘서트가 시작된 것이다. 곳곳에 배치된 안내요원들이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친절히 자리로 안내하며 객석이 다 채워지자 다양한 분야 관계자들의 축사가 이어진 후, 환단고기 역주자이신 종도사님의 말씀이 시작되었다.
역사탐방 - 일본의 천년 고도, 쿄토

일본
660년 백제가 망하면서 많은 왕족과 귀족들과 기술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나라奈良에 왕궁을 짓고 새로운 일본을 만들었다(710~794). 일본 속에 또 다른 백제가 세워진 것이다. 백제의 멸망으로 일본은 최대의 수혜를 받은 셈이다. 그들은 백제가 완전 멸망함에 따라, 새 국가의 개념을 정립하여 자신들의 뿌리가 한국계라는 것을 숨기고 단절하기 위해 덴무천황(天武天皇) 때(720년) 『일본서기日本書記』를 다시 쓰게 되었고, 이런 역사서 찬술을 계기로 왜국은 ‘日本’으로 국호를 개칭하여 독자적인 체제로 전환한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를 보면 일본 역사의 기원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단군조선의 3세 가륵단군 때(BCE 2173) 두지주豆只州의 예읍濊邑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그곳 추장 소시모리素尸毛犁를 처형하였다. 이 소시모리의 후손으로 36세 매륵단군 때의 인물인 협야후陜野侯 배반명裴幋命이 일본으로 건너가(BCE 667) 그곳을 정복하고 스스로 천왕이라 칭하였다는 기록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신무천황의 즉위를 BCE 660년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불과 7년 밖에 차이 나지 않는 두 사건은 동일 사건임에 분명하다 .


나라와 고베 지진메모리얼 파크
18일, 마지막 역사탐방의 날이 밝아왔다. 나라에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외국인의 경우, 여권을 지참하면 무료로 입장이 가능했던 나라현립 가시하라고고학 연구소 부속박물관이었다. 사전에 여권을 지참하고 도착했던 우리는 이 박물관에서 사전 브로셔를 받고 이동했다. 박물관 내부에서는 우리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발자취와 더불어 일본에 남은 우리 문화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수많은 말 모양을 한 하니와(埴輪, 토기의 일종)와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독특하였다. 사람 형상의 하니와는 입을 벌리고 머리에 구멍이 뚫려져 있었는데, 수행을 통해 백회로부터 하늘의 기운을 이어받고 살아가는 고대 사람들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뿐만 아니라 원방각, 하늘의 기운을 그대로 땅으로 내려받는 모습을 형상화한 토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일본인들도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을 살고자 하였지만, 그 원 고향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다음은 대국주신을 모신 일본 최초의 오래된 신사인 오오미와 신사(大神神社)로 향하였다. 오오미와 신사는 첫 등장부터 새로웠다. 신사로 가는 길목에는 작은 탑이 보였고 그 앞에는 흰 계란이 올려져 있었다. 걸음을 옮겨 올라가서 안으로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작았는데 그 이유는 산 전체를 본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신사는 인사를 하는 배전拜殿이 있고 신을 모셔둔 본전本殿이 있는데 오오미와 신사는 신사의 원형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으로 뒤에 보이는 산 전체를 자연신으로 모시며 본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쉽게 말하면 산 밑에 있는 성황당으로, 인사를 드릴 수 있는 배전만 있는 모습이 새로웠다.
천리교 본당 방문
다음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천리교 본당이었다. 천리교 본당이 있는 이곳의 지명 역시 천리시였다. 이 도시는 시민 전체가 천리교를 믿는 교인들로 이루어져 있고 시 안에 병원,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기숙사 등 모든 생활시설이 다 갖춰져 있다. 제일 먼저 입구를 지나 본당 안으로 향했는데, 내부에서는 엄마와 딸 혹은 친구끼리 와서 조용히 앉아 진지하게 수행을 하고 있는 교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어떤 체계를 정하고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하고 싶을 때 자유롭게 하는데 24시간 내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수행하는 공간은 동서남북으로 인간이 잉태되었다는 정육각형 기둥조각을 중심으로 서로 마주보며 둘러싸여 있는데 그 소리가 서로 오가며 소리의 조화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설명이 끝나고 나올 무렵 근처 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청소년들이 다들 본당으로 와서 주문을 읽고 있었다. 처음에는 '웬 아이들인가’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천리시의 학생들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과 마치고 난 이후에 본당으로 와서 전교생이 함께 수행을 하고 하루를 마감한다고 했다. 이를 보며 우리들도 아침저녁으로 태을주 수행을 함께 하며 하루를 열고 하루를 마감해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주문을 읽을 때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손을 아래 위로 가볍게 움직였는데 그 의미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니 그 죄를 사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기원과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봉사하겠다는 다짐이라 한다.
일본은 신사의 나라
일본의 신사神社는 대부분 숲에 둘러싸여 있다. 한국의 절 하면 산이 떠오르듯 일본의 신사는 숲속에 있다. 신사 입구에는 ‘천天’자 모양의 문이 서 있다. 일본인들은 그것을 도리이(鳥居)라고 부른다. 분명 한국의 솟대가 변형된 형태이다. 신사 참배객들은 도리이 앞에서부터 인사를 하고 들어간다. 일본에는 무려 10만개가 넘는 신사가 있다. 매년 새해가 되면 인구의 80%가 신사를 찾는다고 한다. 석등이 늘어서 있는 단아한 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신사 건물 앞에 한 쌍의 사자상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해태상이라고 알고 있는 이 사자상을 일본에서는 ‘고마이누(O犬)’라 하는데, 고마이누는 ‘고구려개’라고 한다. 이 고마이누는 해태상과 마찬가지로 악귀를 막는 수호자의 의미를 가진다. 신사 건물 앞의 한쪽 귀퉁이에는 약수터처럼 보이는 장소가 있다. 이곳은 데미즈야(手水舍)라고 불리는데, 사람들은 여기서 신 앞에 나아가기 전에 몸과 마음의 때를 물로 씻어낸다. 한국에서는 사찰입구에 약수터가 있어 물을 마시지만 일본에서는 손을 씻고 입을 헹구는 정화의식을 한다. 이것을 ‘하라이はらい’라고 부른다. 참배자들이 돈을 넣고 종이나 방울을 친 후 손뼉을 두 번 치면서 기원하는 신사 건물은 통상 배전拜殿이라 불리는 곳이고, 신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인 본전本殿(=신전神殿=정전正殿)은 그 뒤쪽에 있다. 본전에는 각 신사의 제신과 신체神體(제신을 상징하는 예배 대상물로서 구슬, 거울, 검, 방울 등)가 모셔져 있으므로 일반 참배자는 출입 금지다.
탐방을 정리하며
우리는 각성해야 한다, 과거처럼 다시 일본에게 굴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해서도 역사사료, 현장유물, 문화철학의 근거를 제시하며 논리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올바른 역사교육이 전제되어야 한다. 어찌되었든 일본은 우리의 또 다른 형제국가이다. 상생의 도심으로, 문화 종주국으로서의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 이번 일본 역사문화 탐방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고대 우리 조상들이 일본의 문화 형성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확인하였다. 박물관에서 역사유물을 직접 보면서 또 역사현장을 탐방하면서 환단고기의 내용들을 생동감 있게 느껴보았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크고 많다. 한민족과 지구촌 형제들에게 잃어버린 역사와 원형문화를 되찾아줘야 하고 또 통일의 열매문화인 증산도를 통해 새 세상을 하나하나 건설해나가야 한다. 천리교는 단순한 교리 하나로 지금의 성장을 이루었는데 우리는 최고의 진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너무도 나태하고 게을렀다. 깊이깊이 반성하며 다짐했다. 상제님 진리로 도성덕립이 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며,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감사히 여기고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겠노라고! 이번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게 보호해주신 천지일월과 조상님께 감사를 드리며 이것으로 일본 역사 탐방 후기를 마친다. 보은.
글/ 주미라, 김보람, 김선영
© 월간개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