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에 순종하는 참신앙

[태상종도사님 말씀]
道紀135년 양력 1월 269일, 살막군령 제13호, 수원 인계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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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천지성공시대


우리 신도들을 다시 만나게 돼서 참 반가운데, 오늘 저녁에는 교육이라고 하기 이전에 좌담, 정담 삼아서 여기 앉았는 종도사도 상제님 신도고 우리 신도들도 상제님 신도고, 다 같이 참하나님을 믿는 신도의 위치에서 우리의 사명, 상제님의 신도로서 어떻게 신앙을 해야만 멋진 신앙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한번 즐겁게 얘기해 보자.

신앙은 사상신앙을 해야 된다. 기복(祈福)신앙이라 하는 것은 신앙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역사적인 문화권이 다 기복을 하는 문화권이 돼서 기복신앙이라는 참 웃지못할 문구도 나온 것이지만, 우리 상제님 신앙은 상제님 진리대로 행동을 해서 상제님 진리대로 사는 그런 신앙이 되어야 한다. 생활화 체질화가 돼야 된다는 말이다.

왜 그러냐 하면, 오늘날 이 세상이라 하는 것은 2천 년, 3천 년 전 세상이 아니다. 지금은 오늘날 세상만큼 자연섭리가 성숙이 됐고, 자연섭리가 성숙됨에 따라서 인류역사도 성숙이 됐다.

한마디로 묶어서 상제님 진리로써 정의를 내리면, 이때는 "천지성공시대"다. 어째 하필이면 이때만 천지성공시대인가? 천지라 하는 것은 둥글어 가는 틀이 있어서 언제고 주이부시(周而復始)해서 천 년, 만 년, 2만 년, 5만 년 자꾸 둥글어 가는 것인데 왜 이때만 천지성공시대냔 말이다. 우리는 그걸 잘 해석해야 한다.


지금은 사람 씨종자를 추리는 때


상제님께서 "이때는 서신(西神)이 사명(司命)해서 만유를 지배하여 뭇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른바 개벽이라."(道典 4:21:12)고 하셨다. 묶어서 이때는 개벽시대다.

그걸 다시 풀이해 보면, 이 천지라 하는 것은 둥글어 가는 틀이 있다. 우리 증산도에서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우주변화원리. 천지라 하는 것은 생장염장(生長斂藏)이라는 틀을 바탕으로 주이부시해서 둥글어 간다. 천지의 틀이 봄에 물건 내고 여름철에 기르고, 가을철에는 봄에 물건 내서 여름철에 기른 진액을 전부 뽑아 모아 결실을 해서 알캥이를 맺고, 겨울에는 폐장을 하고 다시 또 새봄이 오면 새싹을 낸다.

일 년이라 하는 것은 가을 결실철에 알캥이 하나 맺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가을에 알캥이 하나 맺지 못할 것 같으면 봄여름이라 하는 것은 있어야 한 푼어치도 필요치 않은 과정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점은 바로 일 년 초목농사를 지어서 가을철에 알캥이를 추수하는 것과 같이, 천지에서 사람농사를 지어서 사람개벽을 하는, 사람 씨종자를 추리는 때다.

천지에서 봄에 사람 씨종자를 던져서 여름철에 초목이 만지편야(滿地編野)하듯이 사람을 길러냈다. 지구상을 다니면서 보면 땅 한 평 노는 데가 없이 사람 씨알이 가득 찼다. 여기 어지간한 사람은 다 세계여행을 해봤을 것 아닌가. '저 산 너머 가면 어디 한가한 땅이 조금이라도 있을라나?' 하고 가보면 거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다니면서 보면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곳곳이 주차장이다. 여름철이 되면 지구상에 발 들이밀 틈도 없이 풀이 자라듯이 사람 종자가 그렇게 꽉 들어찼다. 우선 우주변화원리를 따지기 이전에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보면 사람이 초만원이다. 사람이 더 생겨나면 살 수도 없다.


개벽문화가 나온다


옛날 고고학을 보면 "인장상식(人將相食)"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 인 자, 장수 장 자(이 자를 '장차'라고도 한다), 서로 상 자, 먹을 식 자, '장차 사람이 사람을 먹고 산다.'는 말이다. 지금 지구상에 그렇게 많이 사람 씨알이 퍼졌다.

그래서 현실로 해서도 사람 씨종자를 추릴 때가 됐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산아제한(産兒制限)을 한다. 사람을 안 낳으려고 한단 말이다. 그 숱한 얘기는 다 할 수도 없는 게고, 때는 바야흐로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결실기다. 우리 간부 신도들은 만날 교육 받고 듣고, 또 자기네들이 뇌까리고 해서 여기 앉았는 종도사, 종정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요런 시점에 살고 있다. 사람이라 하는 것은 그 시의(時宜), 때 시 자, 마땅 의 자, 시의에 맞는 행동을 하고 시의에 맞는 노릇을 해야 복 받고 잘살 수 있다. 종교문제를 떠나서도 그렇다.

또 종교라 하는 것은 새 문화라야 한다. 2천 년, 3천 년 전 문화 가지고서는 지금은 안 맞지 않은가? 지금 여름과 가을이 바꿔지는 이 때, 이 시의에 맞는 문화가 나와야 한다.

상제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때는 천지성공시대다. 천지가 열매기를 맞는다. 천지에서 사람농사 지은 것을 추수를 한다. '서신이 명을 맡아 만유를 지배해서', 만유의 생명을 지배한다는 것은 다스린다는 말이다. '뭇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천리(天理)와 지의(地義)와 인사(人事)에 합리적인 최선한 방법으로써 뭇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하나인 문화권으로 크게 이루나니 이른바 개벽이다. 묶어서 개벽문화가 나온다는 말이다.


제 모습, 제 뿌리를 찾아야


그러면 이때에는 지구상에 사는 모든 중생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상제님이 "이때는 원시(原始)로 반본(返本)하는 때다."라고 하셨다. '제 모습을 찾는 때'라는 뜻이다. 봄에 씨알을 던져 여름내 커서 가을철에 가면 콩은 콩을 열고 팥은 팥을 여물고, 전부 각자의 제 모습, 제 씨알, 제 알캥이를 맺는다. 억만분지 1프로도 틀리지 않다.

"환부역조(換父易祖)하고 환골(換骨)하는 자는 다 죽는다." 이게 상제님 말씀이다. 애비를 바꾸고 할애비를 바꾸고, 제 뼈를 바꾸는 자는 다 죽는다는 말씀이다. 가을은 원시반본하는 때, 제 모습을 찾는 때가 돼서 제 뿌리를 배반하면 죽는 것밖에 없다. 알기 쉽게 바늘만 한 쬐그만 풀이라도 그 진액을 제 뿌리로 돌려보내야지, 그렇지 않고 진액을 흩어버리면 새봄이 돼도 거기서 다시 생명체를 낼 수가 없다. 새싹이 돋아나질 않는다. 제 조상, 제 뿌리를 배반하면 죽는 수밖에 없다.


사상신앙을 하라


천지이치라는 것이, 이번에는 사상신앙을 하지 않으면 신앙하는 의미가 없다. 이율배반적인 신앙은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 신도들이 신앙을 제대로 하려면 진리를 알아야 될 것 아닌가. 진리를 알면 진리대로 신앙을 해야 된다.

그런데 알고서 보면 "만유를 지배해서 뭇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룬다."는 말씀대로 상제님 진리는 이 세상 둥글어 가는 틀이다. 상제님이 천지공사에서 판 짜 놓으신 그대로만 이 세상은 둥글어 간다. 우리는 『도전』이나 교육을 통해 들을 때도 '그저 그렇게 되는가 보다.' 하고 무슨 옛날 소설 읽는 것처럼 생각할 게 아니라, '실제로 우리 참하나님, 증산 상제님이 천지공사에서 이 세상이 그렇게 둥글어 가게끔 틀을 짜 놓으셨다.' 하는 걸 실감나게 알아야 한다. 그건 잘못 알면 안 된다.

내가 가끔 입버릇처럼 얘기하지만 내가 아홉 살 먹어서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이요 청풍명월금산사(淸風明月金山寺)라", '일만 나라의 살 계획은 오직 남쪽 조선이요 맑은 바람 밝은 달 금산사더라.'(道典 5:306:6) 하는 상제님의 성구가 하도 좋아서 모필로 입춘서를 써서 상기둥 나무에 붙여놨다. 그때는 입춘날이 되면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는 입춘서를 써서 붙일 때다. 아홉 살 먹은 사람이 글씨를 쓰면 얼마나 잘 썼겠나? 나름대로 글씨를 써서 그걸 상기둥 나무에다 떡 하니 붙여놨다.

내가 새해가 되면 여든네 살인데 거기서 9년을 빼면 얼마인가? 칠십 몇 년 전, 참 오랜 옛날 얘기다. 그때 남조선 북조선이 어디 있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동양이고 서양이고 하늘 밑에 이루어진 모든 게 다 우리 참하나님, 우리가 믿는 바로 그 증산 하나님이 틀로 짜 놓으신 것이다. 그걸 달리 보면 안 된다.

삼팔선도 우리 상제님이 만드신 것이다. 그때는 삼팔선이 뭔지도 모를 때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미국이 오지도 않았을 때고 뭐이가 있나? 그 하나하나가 다 상제님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상제님 진리를 무슨 영화관에서 영화 보면서 "야, 그것 참 멋지다. 옳거니. 잘도 싸운다." 하듯이 그렇게 보지 마라. 우리가 신앙하는 우리 하나님이 이 세상의 판을 그렇게 짜 놓으셨다. '이 세상은 이렇게 둥글어 가거라.' 하고 상제님이 시간표, 이정표를 짜 놓으셔서 그 시간표, 이정표대로만 현실 역사가 둥글어 간다. 이걸 실감나게 "야, 우리 증산 상제님은 과연 진짜 참하나님이시다. 진짜로 그랬던가? 진짜다." 하고 알아야 한다. 나보고서 "진짜지?" 하고 물어봐라. 내 정답이 '진짜'다. 아주 참 진짜다.


참하나님의 강세


2천 년 전 예수가 "나도 하나님이 보내서 왔다."고 했다. 저 옥경에 계신 참하나님, 옥황상제, 우리 증산도 신도들이 얘기하면 증산 상제님, 그때 하늘에 계신 바로 그 하나님이 예수를 내보내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가 "새 하늘 새 땅이 열리는 때는 돌 하나도 안 남고 다 넘어간다."고 했다. '새 하늘 새 땅'이란 딴 세상이라는 말이다. '돌 하나도 안 남고 다 넘어간다.' 그건 개벽이지. 예수는 또 "그 때는 내가 아닌 딴 하나님, 새 하나님이 온다."고 했다. 그게 바로 우리 상제님이 오신다는 것을 얘기한 것이다.

헌데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예수가 한 소리를 알지도 못하고 믿는단 말이다. 우리 신도들은 이걸 제대로 알아라. 확실히 그렇게 되어져 있다. 의문 나는 게 있으면 나보고서 물어라. 내가 지금 즉석에서 다 대답을 해 줄 테니까.

석가모니 부처도 한마디 했다. 불가에서 '부처'라 하는 소리는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저희 조상도 부처고 저희들이 믿는 대상도 다 부처다. 불자들도 물론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 헌데 불교진리는 어머니, 아버지를 인정 안 한다. 성(姓)도 반납하고 쓰들 않는다. 불자들보고 성이 뭐냐고 물어봐라. 그네들은 법명(法名)이라 해서 불가에서 쓰는 이름밖에 없다. 그러고서 부처라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그 부처도 "나를 믿지 말고 미륵 하나님을 믿으라."고 했다. 자기 진리는 결실을 못 하는 진리라는 것이다. "결실 진리, 알캥이 진리는 미륵님이 들고 나온다."고 다 얘기했다. 공자도 얘기를 했다.

이 개벽시대에는 불교에서 말한 미륵님, 기독교 서교에서 말한 참하나님이 오셔서 새 진리를 설정해서 새 세상을 건설하신다.


진리에 순종하라


학술상으로 우주원리를 연구해 보더라도 그 동안에는 주역(周易)의 세상을 살았다. 여태까지 타원형 궤도, 계란 같은 형 지구 위에서 살았단 말이다. 헌데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은 정역(正易) 세상이다. 지구가 공같이 동그란 지구가 되는 것이다. 계란 같은 형의 지구가 공 같은 형의 지구로 바꿔지려면, 다시 얘기해서 궤도 수정을 하려면 지구 어떤 곳은 바다가 육지로 솟는 데도 있을 게고, 육지가 물속으로 빠져서 바다 되는 데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개벽이다.

이것을 거짓말처럼 들으면 안 된다. 이번에는 그렇게 신앙하면 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그걸 알아야만 된다. 알고서 믿어야 한다. 그러니 사상신앙을 하라는 말이다.

상제님 진리가 이 세상을 몰고 가다가다 도리가 없어서 삼팔선을 그어놓고 거기에다 세상 심판하는 운명을 걸어놨다.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병으로써 매듭을 지어버렸다. 그 자세한 것은 『도전』이나 교육을 통해서 이 자리에 앉았는 우리 성도들이 더 잘 알 게다.

이번에는 진리대로 신앙해서 진리에 복종(伏從)을 해야 한다. 엎드릴 복 자, 좇을 종 자, 복종이다. 다시 얘기하면 순할 순 자, 순종(順從)을 해야 한다. 진리에 순종하지 않고 어떻게 신앙을 할 수가 있나. 그 진리가 내내 자연섭리다.


여름과 가을을 이어주는 십미토 상제님


상제님이 짜신 진리는 하늘이치를 다스리는 거지, 상제님이라고 해서 천리를 거슬러서 짜 놓으신 게 아니다. 그래서 상제님 진리는 자연섭리요, 자연섭리가 상제님 진리다.

내가 근래에 와서 그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천지도 음양오행 원리로 순리대로 둥글어 가게 되어 있다. 천지 둥글어 가는 틀이, 수생목(水生木)하고 목생화(木生火)하고 화생토(火生土)하고 토생금(土生金)하고 금생수(金生水)하고, 그렇게 짜지지 않았는가?

그런데 가을 추운(秋運)이 돌아오는 이때는 여름 하절기의 불[火]과 가을의 추금(秋金)이 상극이 돼서 개벽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틀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화극금(火克金)이 돼서 금화교역(金火交易)이 되들 않는단 말이다. 금하고 불하고는 생이 안 되잖는가.

허면 그 개벽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화생토, 토생금으로 토가 다리를 놓아준다. 그 토가 바로 10미토(十未土), 상제님이시다. 무극 상제님. '무극대운'이라는 말씀도 10토에서 나왔다. 10무극, 바로 그 신금(辛金), 신미(辛未)의 참하나님이 오셔서 화를 흡수해서 토생금으로 금을 생하여 가을 세상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증산도에서 만든 책자를 보면 도표 그려놓은 것도 있지 않은가. 그려놨나, 틀이 그렇게 됐지. 천지 둥글어 가는 틀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 이치를 문자로 알기 쉽게 표현해 놓았다. 문자라는 것은 의사를 전달하는 암호이다.


세상 둥글어 가는 틀


대우주 천체권이 형성될 때부터 이 우주, 천지라 하는 것은 이런 궤도로 이렇게 둥글어 간다 하는 것이 아주 틀이 짜여져 있다. 그러고는 꼭 그렇게만 둥글어 간다. 달리 둥글어 갈 무슨 방도가 없잖은가. 그건 알기 어렵고도 알고 보면 그렇게 참 쉬운 것이다. 저 초등학생들도 한번만 알려주면 "옳거니, 나도 알았어!" 한다. 그렇게 쉽다.

그게 얼마만큼 쉬우냐 하면, 내가 늘 얘기하는 것 있잖은가. 저 애들한테 "하나에서 둘 보태면 얼마냐?" 하고 물으면 "셋이요!" 하거든. "그러면 하나를 세 번 모아 놓으면 얼마냐?" "그것도 셋이요." 지금 내가 얘기한 천지 둥글어 가는 틀이 그것만큼 쉽다. 수학 가지고서 "하나에서 둘 보태면 얼마냐?" "셋이요." 또 "하나, 하나, 하나 해서 세 번 하면 얼마냐?" "그것도 셋이요." 그건 못 속이지 않는가? 애들도 안 속는다. 그것과 같이 우주 둥글어 가는 것이 그렇게 쉽단 말이다. 그 틀 된 것이.

아니, 그렇게 쉽게 얘기해서도 못 알아들으면 그걸 뭐라고 할까. 바보라고 하나, 멍청이라고 하나? 그게 바로 이 세상 둥글어 가는 틀이다. 그건 거짓말도 할 수 없는 게고, 어떻게 속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필연적으로 개벽이 오게 되어져 있다. 일 년 초목개벽도 그렇고, 우주에서 사람개벽하는 것도 그렇고, 가을에 가서는 반드시 개벽이 일어난다.

세속 중생들이 너무 제 생각에 집착해서 꼭 해야 될 것도 용단을 못 내려서 안 믿으려고 하고 꿈적대고 하는데, 천지 이치가 그렇게 되어져 있다. 지금은 이것을 알아야 한다.


진리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이번에는 하늘을 쓰고 도리질 하는 사람이라도 상제님 진리권에 수용당하지 않으면 도저히 다음 세상을 못 가게 되어져 있다. 이 자리에 앉은 우리 성도들은 너무너무 잘 알잖은가. 사실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렇건만 사회도덕상 "다 죽는다. 개벽을 한다. 오다 죽고 가다 죽고 서서 죽고 밥 먹다 죽는다. 묶어낼 자가 없어서 쇠스랑으로 찍어다가 끌어다 묻는다."고, 차마 그런 소리는 할 수 없잖은가. 그러나 우리 신도들끼리는 통정하면서 얘기를 교환할 수 있다. 사실이 그러니까.

헌데 우리 신도들은 내도지사(來到之事), 곧 닥칠 문제를 알면서도 앉아서 쳐다만 본다. 죽는 걸 기다리는 건가? 그건 그럴 수는 없잖은가. 우리가 믿든지 안 믿든지, 행동에 옮기든지 말든지 천지이치라 하는 것은 그냥 그렇게만 둥글어 간다.

증산도는 이 가을에 천지의 열매요 우주의 결실이다. 천지에서 농사지은 것을 증산도에서 우리 신도들이 매듭을 짓는다. 천지의 역사를 대신하기 때문에 '사역자다, 천지의 역군이다'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다. 그걸 위해서 신앙을 하고, 그걸 하기 위해서 여기 매달렸고, 그걸 함으로써 우리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 진리 속에서 사는 게고.

이 개벽시대에는 우리들 자신부터도 상제님 진리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내가 한마디로 묶어서 얘기하면, 상제님을 믿어야 나도 산다. 상제님을 신앙함으로써 상제님 진리 속에 수용을 당해서 사는 것이다.

나도 나 살기 위해서 상제님을 믿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증산도 종도사가 되고 세상에서 상제님 사업을 하고 그런 생각이 없었다. 일을 하다 보니 누가 하는 사람도 없고 이건 반드시 해야 되는 일이고 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지금이라도 나 이상 잘할 사람 있으면 내가 자리를 내놓겠다. 누구 할 사람 있으면 대신해라. 내줄 테니.


포교는 인간의 도리


상제님을 신앙함으로써 이 개벽하는 세상에 나도 산다. 그러면 내가 사는 성스러운 진리를 가지고 남도 살려줘야 될 것 아닌가. 어떻게 나만 사나? 한 가정에서도 가장 고마운 아버지, 어머니를 살려드려야 될 게고, 내 처자도 살려줘야 될 게고, 여성 신도들은 남편과 아들딸도 살려줘야 한다.

헌데 내 가족만 살려주면 되나? 매가, 처가, 외가, 인아족척도 있잖은가. 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사회 속에서 만난 그 많은 사람들, 그들도 살려줘야 한다. 양심에 가책되어서도 어떻게 나 혼자만 사는가.

같이 살자고 힘쓰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죽어서 "응, 너 혼자만 살았구나." 그럴 것 아닌가. 신명들이 쫓아와서 "참 얄밉다. 왜 너 혼자만 살았냐? 나보고는 얘기도 않고." 할 게다. 그건 있을 수 없잖은가.

우리는 냉혈동물이 아닌 온혈동물이다. 몸에 더운 피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남을 동정하고 인정을 베풀고 살려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사람이 죽는데 인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어떻게 눈만 멀뚱멀뚱 뜨고 가만 앉아 있을 수 있는가 말이다.


천하창생의 생사가 우리들 손에


용기를 내서 뛰어라. 상제님 진리는 진짜 진리다. 여기 앉았는 종도사가 맹세코 진리의 사도로서 진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내가 별스럽지 않은 나이지만 80이 넘은 사람이다. 이렇게 오래 살면서 상제님 진리를 바탕으로 이 세상 둥글어 가는 것을 맞춰봤다. 상제님 진리, 천지공사에서 틀 짜 놓은 대로, 이 세상은 그렇게만 둥글어 간다.

다시 상제님 말씀으로 한마디 하면, "천지에서 십 리에 한 사람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이는 때에도 씨종자는 있어야 쓰지 않겠냐?"(道典 8:21:2)고 하셨다. 이번에는 누가 죽이는 게 아니다. 천지에서, 자연한 이치로, 다시 얘기해서, 자연섭리에 의해서 죽는 것이다.

'십 리에 사람 하나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여 버린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 씨종자는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이게 끊어질 절(絶) 자 부르짖을 규(叫) 자, 상제님의 절규다.

또 상제님 말씀이 "천하만민의 생사가, 이 세상 사람들의 생사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道典 8:21:3)고 하셨다. 상제님 위치에서 나를 신앙하는 신도들,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는 말씀이다. "너희들이 잘하면 많이 살릴 수도 있고 잘못하면 다 죽이는 수밖에 없다. 세상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 그런 말씀이다.

상제님을 신앙하면서, 상제님의 은총으로 자기네들이 살면서 남 죽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 혼자만 살겠다? 만일 그런 신도가 있다면 상제님의 은총으로써 살아남을지는 모르지만 그건 복을 받을 수 없는 신앙인이다.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고생스럽다 하더라도 신도(信徒)로서 생명을 다 바쳐서, 우리 능력이 허락하는 한계 내에서 가족을 비롯해서 이웃 사람들, 인아족척, 이 세상에 와서 사귄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 좋은 사람들 많잖은가. 같이 살아야 한다.


상제님 진리는 거짓 없는 참 진리


인류역사를 통해서 봉사를 많이 한 사람성자(聖者)라고 한다. 공자가 윤리 도덕을 밝혔기 때문에, 사회에 그만큼 봉사를 했기 때문에 지금 2천5백 년이 되도록 '공자님, 공자님' 하고 떠받든다. 석가모니 진리가 좋고 그르고를 떠나서 부처님이라 해서 3천 년을 두고 그 수많은 사람들이 석가를 찾고 있다. 또 예수 진리가 비록 단편적일지언정 '주님'이라고 하면서 받든다. 예수 진리가 뭐 있는가? '황토 흙 파서 사람을 만들었다, 남자 갈빗대를 추려서 여자를 만들었다', 그게 진리다. 그 진리가 2천 년이 됐는데도 거기 매달린 사람이 얼마인가. 진리가 좋건 그르건 그네들이 다 인류의 봉사자들이다.

사람은 봉사 정신이 있어야 한다. 우리 증산도 신도들도 서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해서 능력이 허락하는 한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사람을 살려야 한다.

내가 요새 이런 얘기를 했다. 직장에 나가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하다면 하루 일과의 80프로를 포교하는 데 할애(割愛)하라고. 신앙인으로서 양심에 고백을 하고, 진리에 호소를 해라. 우리 일은 진짜로 사람 살리는 일이다. 허면 예수, 석가 믿는 사람들 신앙의 10분의 1턱이라도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신앙을 떠나서도 우리는 인간이다. 인간인지라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전 인류를 위해서 사람을 살려야 한다. 상제님 진리는 거짓이 없는 참진리다. 아주 참 그렇게만 되는 진리다. 누가 막을래야 막아지지도 않고 세상은 그렇게만 둥글어져 간다. 그런 자연섭리, 참진리다.

상제님 진리는 거짓이 없다. 억만분지 1프로도 거짓이 없는 진리다. 믿든 안 믿든 세상은 그렇게만 둥글어 간다.


살고 잘 되는 길


세속 중생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도 상제님 진리를 믿어야 한다. 또 살고 나면 잘 되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다. 그건 거짓이 아니다. 사람은 살고서 보면 '아이구, 나도 잘 돼야지.' 한다. 잘 되는 게 무엇인가? 바로 부귀영화(富貴榮華)다.

부귀영화라는 게 뭔지 하늘땅 생긴 이후로 인류역사를 통해서 부귀영화를 꿈꾸지 않고 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부귀영화를 하려면 잘 돼야 한다.

그런데 잘 되려면 잘 되는 것만큼 노력을 해야 한다. 그냥 잘 되는 게 아니다. 예컨대 사람은 하루도 그렇고 일 년도 그렇고, 뭘 하든지 돈이 있어야 좋거든. 지금 세상은 돈만 있으면 뭐이고 다 된다. 내가 무식한 얘기 한 마디 할 테니 들어봐라. 세상 사람들이 한 말이 있다. "유전(有錢)이면 사귀신(使鬼神)이라." 있을 유 자, 돈 전 자, '돈이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다. 그 대구(對句)로 상스러운 얘기를 덧붙이자면 "무전(無錢)이면 사구신(使狗腎)이라." , '돈이 없으면', 같을 사 자, 개 구 자, 콩팥이라는 신 자, '개신과 같다', 돈이 없으면 그건 참 시세도 없고 존재도 없고 값어치도 없다는 말이다. 그게 세상에서 하는 소리다.

지금 이 세계는 경제전쟁 시대다. 전 인류의 머릿속에는 돈밖에 안 들어 있다. 전 인류가 그렇게 돈 꿈을 꾸는데 그 돈은 어떻게 해서 생기느냐? 그건 노력의 대가다. 한 닢서부터 수많은 경제라는 게 다 노력의 대가다. 유형, 무형의 노력의 대가. 십 원을 벌려면 십 원어치만큼 노력을 해야 되고 백 원을 벌려면 백 원어치만큼 노력을 해야지 노력 없이 돈은 생길 수가 없다.

부자가 되고 귀한 사람이 되려면 노력을 해야 된다. 노력을 해서 그럴 만한 행위를 해야 돈도 생기고, 귀하게도 되는 것이다.


천지에서 가장 큰 공


우리는 상제님 성스러운 진리로 살고, 살고 나면 잘도 돼야 한다. 도통하는 것도 도통 값을 해야 되는 것이다. 그냥 되는 게 아니다. 도통하는 것도 에너지 소비를 해야 한다. 그것만큼 투자를 해야 되지 거저 되는 게 어디 있나?

개인으로 얘기하면 후손을 위하고, 부귀영화를 하고, 자기 씨족이 잘 살기 위해서는 그것만큼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방법이 무엇이냐? 바로 천지에 공을 쌓는 것이다. 상제님 말씀으로 얘기하면, "공 중에는 천지에 공 쌓는 것보다 더 큰 공이 없다."고 하셨다. 그게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사람을 많이 살려 놓으면 그건 돈보다도 더 좋다. 그 산 사람들이 전지자손(傳之子孫)해 가면서 만 년, 2만 년 이 하늘이 끝날 때까지 보은을 한다. "만 년 전, 2만 년 전에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도를 전해줘서 우리가 살았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도 있는 게다." 하고.

세상을 위해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신바람이 나서 한번 해보자. 어떤가? 그렇게 할 사람 어디 손 좀 들어봐라.

야, 참 됐다.

여기 있는 신도들이 증산도의 모범케이스가 돼서 한번 해보자. 하면 되는 것이다, 하면!


기회를 놓치지 말라


만약 포교를 하는데 그 사람이 척에 걸려서 상제님 진리권에 못 들어온다? 우리가 정성만 지극할 것 같으면 그 척신을 다 떼내 버릴 수가 있다. 사람이 강력하면 저승사자도 못 잡아간다. 우리 신도가 상제님을 신앙하는 정성만 지극하면, 일편단심으로 상제님을 신앙하면 삿된 기운이 범할 수가 없다. 상제님을 신앙하는 빨간 일편단심을 가지고 세상사람 좀 구해주면 얼마나 좋은가? 그 정성 두었다가 무슨 제사를 지내려는 건지, 이런 때 세상에 은혜 좀 베풀어주면 어떤가.

요 목을 지나면 암만 포교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때가 이미 늦어서 소용이 없다. 그것도 시기를 만나야 한다. 사람이 성공하는 때가 바로 국초국말(國初國末)이다. 한 나라가 망하고 새 세상이 들어설 때, 그때 공신도 생기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 지금이 바로 성공할 수 있는 시기다.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놓쳐버리면 어떻게 하나?

이 세상은 지금부터다. 대우주 천체권이 동결(凍結)돼서 일체 생물이 멸망당할 때까지 오만 년이 남았다. 지금 이 시기에 오만 년 동안 전지자손해서 누릴 복을 짓는다. 이번에 활동을 못 해서 공을 못 쌓으면 차례 갈 게 없다. 상제님 말씀으로 얘기하면 "천지공사 뿌리장사다. 장사 중에 뿌리장사가 그 중 이익이 남는다. 뿌리장사 이 남는 줄을 모른다."고 하셨다. 이번에는 사람을 살려서 천지에 공 쌓는 그 복 뿌리장사를 꼭 하자는 말이다.


오직 신앙을 위해 사는 사람


사실이 상제님 진리는 억만분지 1프로도 거짓이 없는 진리다. 나는 왜 그런지 어려서부터 상제님 진리를 알았다. 진리를 알고 보면 이 일은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 상제님 사업밖에는 할 게 없어서 죽고 살고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오직 상제님 신앙을 위해서만 사는 사람이다. 내가 잘 되고 못 되고를 떠나서 세상이 다 넘어가는데 어떻게 가만있을 수가 있나.

저 우임금 때에 9년 홍수가 있었다. 기독교에서는 그걸 노아의 홍수라고 한다. 그 때 우임금이 9년 동안 치수사업을 하러 다니는데 "삼과기문이불입(三過其門而不入)이라", 자기 집 옆을 세 번이나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거 몇 분이면 들어갔다 나올 수 있잖은가. 그런데도 한 번도 못 들어가고 말았다.

지금은 그때보다 몇 곱절은 더 바쁜 시기다. 하니까 다른 급한 것 있으면 두었다가 의통목 지나고 새 세상에 가서 해라. 앞으로는 여기 있는 사람들도 천 살 이상을 산다. 앞으로는 수(壽)도 그렇게 많이 한다. 그런 비결이 있다. 내 후제 알려주니까.

못다 한 일은 개벽 지난 다음에 하고 지금은 더 바쁜 일이 있다. 아니, 세상이 개벽을 해서 다 죽는데 그런 게 무슨 소용 있나? 포교를 해라, 포교를.

이 세상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지금은 사업할 게 상제님 사업밖에 없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알면, 글쎄 여기 있는 신도들이 얼마나 날랜지는 모르지만 차례가 안 간다. 세상이 얼마나 날랜지 아는가?

예전에 복부인들은 아파트 하나 따내려고 내일이 추첨 날이면 오늘 밤 열두시 전에 가서 신문 깔고 요대기 뒤집어쓰고 앉아서 거기서 잠자 가면서 기다린다. 그거 하나 당첨 받으면 돈이 생긴단 말이다.

세상이 그렇게 날래다. 하니까 내 말을 아주 진짜로 믿어라. 진짜 진짜다. 억만분지 1프로도 거짓이 없다. 이 세상 모든 문제는 상제님이 천지공사에서 판 짜 놓은 그대로만 둥글어 간다. 하니까 그런 줄들을 알고, 꼭 그렇게 할 사람 다시 한 번 손들어봐라.

알았다. 백 퍼센트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