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에 순종하는 참신앙

[태상종도사님 말씀]
道紀135년 양력 1월 269일, 살막군령 제13호, 수원 인계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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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는 이 가을에 천지의 열매요 우주의 결실이다.
천지에서 농사지은 것을 증산도에서 우리 신도들이 매듭을 짓는다.


진리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이번에는 하늘을 쓰고 도리질 하는 사람이라도 상제님 진리권에 수용당하지 않으면 도저히 다음 세상을 못 가게 되어져 있다. 이 자리에 앉은 우리 성도들은 너무너무 잘 알잖은가. 사실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렇건만 사회도덕상 "다 죽는다. 개벽을 한다. 오다 죽고 가다 죽고 서서 죽고 밥 먹다 죽는다. 묶어낼 자가 없어서 쇠스랑으로 찍어다가 끌어다 묻는다."고, 차마 그런 소리는 할 수 없잖은가. 그러나 우리 신도들끼리는 통정하면서 얘기를 교환할 수 있다. 사실이 그러니까.

헌데 우리 신도들은 내도지사(來到之事), 곧 닥칠 문제를 알면서도 앉아서 쳐다만 본다. 죽는 걸 기다리는 건가? 그건 그럴 수는 없잖은가. 우리가 믿든지 안 믿든지, 행동에 옮기든지 말든지 천지이치라 하는 것은 그냥 그렇게만 둥글어 간다.

증산도는 이 가을에 천지의 열매요 우주의 결실이다. 천지에서 농사지은 것을 증산도에서 우리 신도들이 매듭을 짓는다. 천지의 역사를 대신하기 때문에 '사역자다, 천지의 역군이다'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다. 그걸 위해서 신앙을 하고, 그걸 하기 위해서 여기 매달렸고, 그걸 함으로써 우리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 진리 속에서 사는 게고.

이 개벽시대에는 우리들 자신부터도 상제님 진리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내가 한마디로 묶어서 얘기하면, 상제님을 믿어야 나도 산다. 상제님을 신앙함으로써 상제님 진리 속에 수용을 당해서 사는 것이다.

나도 나 살기 위해서 상제님을 믿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증산도 종도사가 되고 세상에서 상제님 사업을 하고 그런 생각이 없었다. 일을 하다 보니 누가 하는 사람도 없고 이건 반드시 해야 되는 일이고 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지금이라도 나 이상 잘할 사람 있으면 내가 자리를 내놓겠다. 누구 할 사람 있으면 대신해라. 내줄 테니.


포교는 인간의 도리


상제님을 신앙함으로써 이 개벽하는 세상에 나도 산다. 그러면 내가 사는 성스러운 진리를 가지고 남도 살려줘야 될 것 아닌가. 어떻게 나만 사나? 한 가정에서도 가장 고마운 아버지, 어머니를 살려드려야 될 게고, 내 처자도 살려줘야 될 게고, 여성 신도들은 남편과 아들딸도 살려줘야 한다.

헌데 내 가족만 살려주면 되나? 매가, 처가, 외가, 인아족척도 있잖은가. 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사회 속에서 만난 그 많은 사람들, 그들도 살려줘야 한다. 양심에 가책되어서도 어떻게 나 혼자만 사는가.

같이 살자고 힘쓰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죽어서 "응, 너 혼자만 살았구나." 그럴 것 아닌가. 신명들이 쫓아와서 "참 얄밉다. 왜 너 혼자만 살았냐? 나보고는 얘기도 않고." 할 게다. 그건 있을 수 없잖은가.

우리는 냉혈동물이 아닌 온혈동물이다. 몸에 더운 피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남을 동정하고 인정을 베풀고 살려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사람이 죽는데 인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어떻게 눈만 멀뚱멀뚱 뜨고 가만 앉아 있을 수 있는가 말이다.


천하창생의 생사가 우리들 손에


용기를 내서 뛰어라. 상제님 진리는 진짜 진리다. 여기 앉았는 종도사가 맹세코 진리의 사도로서 진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내가 별스럽지 않은 나이지만 80이 넘은 사람이다. 이렇게 오래 살면서 상제님 진리를 바탕으로 이 세상 둥글어 가는 것을 맞춰봤다. 상제님 진리, 천지공사에서 틀 짜 놓은 대로, 이 세상은 그렇게만 둥글어 간다.

다시 상제님 말씀으로 한마디 하면, "천지에서 십 리에 한 사람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이는 때에도 씨종자는 있어야 쓰지 않겠냐?"(道典 8:21:2)고 하셨다. 이번에는 누가 죽이는 게 아니다. 천지에서, 자연한 이치로, 다시 얘기해서, 자연섭리에 의해서 죽는 것이다.

'십 리에 사람 하나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여 버린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 씨종자는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이게 끊어질 절(絶) 자 부르짖을 규(叫) 자, 상제님의 절규다.

또 상제님 말씀이 "천하만민의 생사가, 이 세상 사람들의 생사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道典 8:21:3)고 하셨다. 상제님 위치에서 나를 신앙하는 신도들,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는 말씀이다. "너희들이 잘하면 많이 살릴 수도 있고 잘못하면 다 죽이는 수밖에 없다. 세상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 그런 말씀이다.

상제님을 신앙하면서, 상제님의 은총으로 자기네들이 살면서 남 죽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 혼자만 살겠다? 만일 그런 신도가 있다면 상제님의 은총으로써 살아남을지는 모르지만 그건 복을 받을 수 없는 신앙인이다.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고생스럽다 하더라도 신도(信徒)로서 생명을 다 바쳐서, 우리 능력이 허락하는 한계 내에서 가족을 비롯해서 이웃 사람들, 인아족척, 이 세상에 와서 사귄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 좋은 사람들 많잖은가. 같이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