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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B하이라이트]

    STB다시보기 | 배달의숙 명사초청특강 - 1회 동북아 역사 전쟁과 한국


    강사: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제가 이번에 말씀드릴 내용은 ‘동북아 역사 전쟁과 한국’이란 주제입니다. 동북아는 역사 전쟁 중입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공격하는 쪽이 있고 방어하는 쪽이 있습니다. 공격하는 쪽은 일본과 중국이고, 방어하는 쪽은 항상 한국입니다. 이것이 동북아 역사 전쟁의 독특한 지형입니다. 동북아 역사 전쟁의 핵심은 모두 한국의 역사를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일제의 식민사학을 바탕으로, 한국사의 시공간을 일본과 중국이 축소하려는 것입니다. 그중에 한국사의 공간이 어떻게 축소가 되었는지 자료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축소된 고려의 영토를 가르치는 역사교육


    역사는 대단히 상식적인 체계입니다. 그래서 상식을 가지고 교과서에 있는 지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도를 보면 고려라는 나라의 강역은 한반도를 다 차지하지 못하고 한반도의 3분의 2 정도만 차지한 볼품없는 나라로 그려 놓고 있습니다. 고려의 국경에 해당하는 천리장성 밖에는 인접국이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고려는 인접한 나라도 없는데 천리장성을 쌓고 군사들을 보내 지켰다는 얘기인데 이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그리고 지도에 보면 고려의 북방 강역을 북계와 동계로 나눠 놨는데 먼저 동계를 보면 경상도까지 강역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상한 행정구역이 어디 있느냔 말입니다. 『고려사』 「지리지」를 보면 이 동계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비록 연혁과 명칭은 같지 않지만 고려 초로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공험公嶮 이남에서 삼척三陟 이북을 통틀어 동계라 일컬었다.’고 나옵니다. 즉 동계의 남쪽 경계를 삼척이라고 했는데 여기 교과서에는 경상도까지가 삼척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계의 북쪽 경계인 공험公嶮은 『세종실록지리지』에 ‘함길도 길주목 경원도호부’ 조: 두만강에서 공험진까지 688리’로 정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학계는 이런 기록이 있음에도 고려의 강역을 한반도 내로 엄청 축소시켜서 지금도 청소년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내용은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한 것들인데 역사학계는 그것을 그대로 계승해서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민왕의 북방 영토 회복 운동의 진실


    이 지도를 보면 공민왕의 북방 영토 회복 운동이 공민왕 5년 5월에 발생했습니다. 『고려사』에서 공민왕의 명령을 보면 ‘평리評理, 인당印璫 등에게 압록강 서쪽 지역의 8개 참站을 공격하게 하였다.’고 나옵니다. 공민왕의 북방 영토 회복은 압록강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압록강 북쪽이 아닌 압록강 남쪽 함경남도를 회복하는 것처럼 교과서에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한 내용을 한국 역사학계가 아직도 그대로 추종하고 있습니다.

    동북아 역사 전쟁의 핵심 내용 세 가지


    동북아 역사 전쟁의 핵심 내용은 중국과 일본에 의한 우리 역사의 시공간 축소입니다. 이 핵심 내용을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단군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하고 보니 단군을 부정하지 않으면 식민 통치를 계속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고 그래서 단군을 부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는 반도사관을 만들어서 한국사에서 대륙과 해양을 다 삭제하고 반도로 가둬 놓은 다음에 반도의 북쪽에는 고대 한나라, 즉 중국의 식민지인 한사군이 있었고, 반도의 남쪽에는 고대 야마토의 식민지인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는 겁니다. 한반도의 북쪽은 중국의 식민지, 한반도의 남쪽은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 통치는 당연한 역사의 귀결이니 독립운동을 하지 말라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이 논리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단군을 부정한 일본의 식민사학자들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이 아주 조직적으로 단군을 부정합니다. ‘가야=임나’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역사학자인 나카 미치요는 1894년에 “단군은 불교가 전파된 뒤에 중들이 날조한 망령된 이야기다.”라고 했습니다. 나카 미치요는 정한론의 뿌리가 되는 사람입니다. 정한론은, 1870년대 전후부터, 한국을 정벌해야 한다는 논리를 말합니다. 한국을 실제 점령하기 이전부터 일본에서 주장한 논리가 단군을 부정하고 가야가 임나라고 하는 논리입니다.

    또 우리나라의 강단사학계에서 지금도 대단히 존경하는 인물인 시라토리 구라기치도 1894년에 “대저 단군의 사적은 원래 불설에 근거한 가공의 선담仙譚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단군을 부정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한 인물로 유명한 이마니시 류가 있습니다. 이 이마니시 류도 우리 강단사학계가 매우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이마니시 류는 사료 조작의 달인입니다. 1929년에 “단군은 고려 인종(1122)부터 고종(1259) 사이에 만들어졌다.”라고 해서 단군의 역사를 모두 가짜로 몰았습니다.

    단군은 실존의 역사


    하지만 『삼국사기』 동천왕 21년 조를 보면 ‘평양은 본래 선인仙人 왕검王儉의 땅이다.’라고 나옵니다. 여기서 선인은 단군왕검을 의미합니다. 즉 고구려인들은 단군왕검이 민족의 시조였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또 『삼국유사』에 보면 ‘성은 고씨고, 이름은 주몽이다. 추모라고도 한다. 단군의 아들이다.’라고 나옵니다. 이렇게 삼국사기 이전부터 단군을 가리켜 선인, 선인왕검으로 기록이 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단군을 부인하지 않으면 한민족을 통치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조직적으로 단군을 가짜 인물로 몰아붙였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에 역사 권력을 잡은 식민사학자들이 단군을 가짜라고 계속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심각한 역사학계의 현주소


    지금의 역사학계는 더 개탄스러운 상황입니다. 일제 시절보다 더 상황이 악화되었습니다. 최남선의 사례를 보면 해방 후 친일 행위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걸려서 마포 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당시 자신에게 어떤 비난을 해도 좋지만 “단군을 부인했다는 오명만은 씌우지 말아 달라.”고 자혈서를 썼습니다. 이 최남선의 사례를 통해 지금이 일제 강점기보다 역사의식이 훨씬 퇴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 왜곡 프로젝트


    중국의 역사 공정의 핵심은 현재 중국의 강역 내에서 발생한 모든 과거사는 중국사라는 논리입니다. 중국인들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고대 중국 역사인 하-은-주 시대 중에서 주周나라만 실제 역사라고 인정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의 하남성 안양현에서 은殷나라 도읍지가 발굴되면서 엄청나게 많은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자 은나라도 실제로 있었던 역사라고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은나라는 중국인들도 인정하는, 동이족의 역사입니다. 여기서 중국은 고민에 빠집니다. 은나라가 중국 최초의 고대국가라고 설명하다 보니까 중국사는 동이족에서 시작한 것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은나라 전의 역사인 하夏나라를 실제 역사로 만드는 역사 프로젝트를 했고 이를 ‘하상주 단대공정’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나라가 서기전 2070년에 건국되었다고 확정을 짓고 중국사 교과서에 실으면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황오제를 역사적 사실로 만드는 역사 연구 프로젝트인 ‘중화문명 탐원공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이런 역사 왜곡 프로젝트를 계속 해 봐야 우리가 조금만 바로 서면 다 무너지는 논리입니다. 삼황의 첫 번째 인물이 태호복희씨인데, 태호복희씨는 중국인들도 모두 인정하는, 동이족입니다. 그런데 중국 역사학계에서 우리 역사학계를 지켜보니, 우리 역사학계가 오히려 더 중국을 옹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감을 가지고 ‘중화문명 선전공정’이라는 이름으로 그간의 역사 공정 내용을 중국 및 전 세계에 전파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 왜곡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이 만리장성 지도를 보면,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중국 감숙성 가곡관 장성박물관에도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내려와 있고 이렇게 홍보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이 만리장성은 평양까지 내려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만리장성의 실제 위치가 어디인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만리장성이 가장 동쪽 끝까지 온 곳이 산해관이라는 곳입니다. 만 명이 왜곡해도 제대로 된 한 사람이 지적하면 만 명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게 역사입니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을 무너뜨릴 수 있는 논리가 중국 고대 사료에 있습니다.

    만리장성과 낙랑군의 위치는 한반도가 아니다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를 보면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리장성의 위치나 낙랑군의 위치가 모두 같은 지역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후한서』에 보면 ‘낙랑군은 요동에 있다.’고 나옵니다. 즉 만리장성의 동쪽 끝과 낙랑군이 모두 한반도가 아닌 요동에 있다는 것입니다.

    임나일본부설의 실체


    동북아 역사 전쟁의 핵심 주제 세 번째가 일본의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입니다. 임나일본부설은 고대 야마토가 4세기인 서기 369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를 설치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내용은 『일본서기』에만 나오고 『삼국유사』, 『삼국사기』에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4세기 후반까지 일본에는 국가가 없었습니다. 지방 봉건 세력들이 있었고 국가라고 부를 만한 정치세력 자체가 없었습니다. 국가가 없었는데 어떻게 바다를 건너와서 가야를 점령하고 식민지를 설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우리 대한민국의 강단사학계에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일본 역사문화의 뿌리는 한민족


    일본 고대사는 조몬繩文 문화에서 야요이彌生 문화로 넘어가는데 야요이 문화는 서기전 4세기, 5세기 무렵에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야요이 문화를 만든 사람들은 모두 우리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미국 사람의 원류가 영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라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국과 미국은 역사에 대해서 다툴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일본인들은 한반도에서 문화가 건너갔다는 것에 대해서 부인하고 오히려 거꾸로 일본에서 한반도로 건너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본 열도에는 지금도 고구려, 백제, 가야 계통의 지명이 많습니다. 일본에 당唐, 한韓이라는 이름이 있는 지명은 모두 가야계 지명입니다. 이 당唐, 한韓을 일본어로 읽을 때 ‘가라’라고 읽습니다. 그리고 백목白木이라고 쓰여 있는 지명은 신라계 지명으로 일본어로 읽을 때는 ‘희라계’라 읽습니다.

    이런 지명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고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 선조들이 계속 살아갔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거꾸로, 일본의 신공황후가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일본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 신공황후가 가야를 점령하고 고구려, 백제, 신라 왕이 전부 와서 항복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식적이지 않고 황당한 이야기를 우리 강단사학계는 그대로 인정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일왕의 뿌리는 가야계


    일본 규슈九州 지역의 역사 관련 유적지를 답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희가 답사한 역사 유적지를 일왕이 모두 다녀갔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답사한 유적지들은 모두 우리 역사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서 갔던 곳들인데 이런 유적지를 일왕이 모두 다녀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제가 느낀 것은 일본 왕가에 자신들의 뿌리를 찾는 프로그램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의 사이토바루 철갑옷과 가야의 철갑옷이 사진에서 보시는 것과 같이 똑같습니다. 또 사이토바루 유적(일본 왕실의 뿌리)에서 나온 철모와 대가야가 있었다고 하는 고령 지산동의 가야 철모가 똑같습니다. 즉 사이토바루 유적은 가야계가 건너가서 만든 유적이며, 일본 왕가의 뿌리는 가야계란 이야기입니다. 일본 유쿠하시시에서도 가야계 유물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북한학자인 김석형이 “임나는 가야가 아니라 가야계가 일본에 진출해서 세운 분국이다.”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 논문으로 일본 역사학계가 초토화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때 만약 남한학자들도 이 김석형의 논리에 힘을 실었다면 임나가 가야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지금까지 논쟁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한국 역사학계를 한탄한 ‘존 카터 코벨’ 박사


    미국의 존 카터 코벨 박사는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서 일본 고대 미술사로 박사 학위를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의 고대 미술을 연구해 보니 전부 가야계, 백제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쓴 글에 “어째서 일본은 그들이 한국 문화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그토록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그러한 사실이 놀랍기 그지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존 카터 코벨 박사가 1981년에 “무엇 때문에 한국의 학계는 그렇게 소극적인가? 지금의 나이 든 학자들은 과거 일본 사람 밑에서 공부했기에 그들에 대한 무슨 의리나 의무 같은 게 있어서 그러는 것인가? 아직 서른이 안 된 젊은 학도들은 누구에게도 빚진 것 없을 테니까 이들은 박차고 일어나 진실을 밝혀서 케케묵은 주장들을 일소해 버렸으면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 학고재 中)라고 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역사학이 필요한 때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한 사람이 진실을 발견하면 만 사람의 거짓을 이기는 것이 역사학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역사학으로 다시 돌아가면 됩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해방 이후에 친일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지 않고 백범 김구 선생 중심으로 정권을 잡았으면 제가 주장하는 이 모든 내용들이 초중고에서 가르치는 보편적인 역사학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이 잘못된 역사학계의 현상을 빨리 끝내고 독립운동가들이 만든 역사학으로 돌아가면 우리 대한민국이 21세기에 전 세계를 주도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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