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로 문화읽기 | 영화 〈맨 프럼 어스〉와 ‘보병궁 복음서’

[칼럼]

한재욱 / 본부도장

영화 〈맨 프럼 어스The Man from Earth〉(2007년 제작)는 ‘스타트랙’과 ‘환상특급’의 시나리오를 맡았던 제롬 빅스비Jerome Bixby의 각본이 원작이다. 영화계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가 기획 단계부터 탐을 냈을 정도로 놀라운 내용이지만, 제롬 빅스비가 38년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다 1998년 4월, 제롬 빅스비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완성되었다. 영화를 연출한 리처드 쉔크만Richard Schenkman 감독은 “불법 다운로드 입소문으로 이 영화를 홍보해 준 관객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독립 영화로 제작되었으나 영화를 좀 아는 팬들에게는 어떤 메이저 영화보다 뛰어난 작품이다.

14,000년간 봉인되었던 인류의 진실이라는 테마


14,000년간 봉인되었던 인류의 진실이 밝혀진다! 10년간 지방의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던 중에 종신 교수직도 거절하고 돌연 이사를 가려는 존 올드맨John Oldman(데이비드 리 스미스David Lee Smith 분)은 그의 행동에 의심을 품고 집요하게 추궁하는 동료들이 마련한 환송회에서 갑자기 폭탄선언을 한다.

그건 다름 아닌 자신이 14,000년 전부터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 “만약에...”로 시작한 고백에서 그는 자신이 늙지 않는다는 것을 남들이 알아채기 전에 매번 10년마다 다른 신분으로 바꿔 이주하며 살아왔고 이곳에서도 10년을 채웠기 때문에 떠날 수밖에 없으며, 자신이 그동안 이동하면서 역사 속 많은 인물들과 사건에 관여했다고 주장한다.

맨 처음엔 그저 농담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이 게임 형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존이 논리 정연한 답변을 척척 해 나가면서 각 분야 전문가인 동료 교수들은 그의 주장에 점차 신빙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급기야 그가 자신이 석가 부처의 가르침을 중동에 전하려다 본의 아니게 예수가 되어 버렸다고 하자 존의 주장에 수긍해 주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동료의 분노를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존의 정연함에 동료들 모두가 괴로워하자 그런 동료를 위해 존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얘기가 다 거짓말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료들이 다 떠나고 나서 그의 주장에 대한 놀라운 진실이 밝혀진다. 그 흔하디흔한 시지CG(computer graphics)나 액션 장면 하나 없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관객의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지식인이다. 주인공 존 올드맨은 10개 분야의 학위가 있고 방대한 지식으로 역사학을 가르친다. 존의 집에 온 사람들은 고고학자(아트Art), 생물학자(해리Harry), 미술학자(이디스Edith), 인류학자(댄Dan), 정신과 의사 겸 심리학자(윌 그루버Will Gruber)인데, 다섯 개 분야의 전문가 7명이 주인공 1명의 이야기에 완벽하게 설득된다.

영화에 대한 커뮤니티 댓글을 보면 이 영화가 얼마나 화제였는지 알 수 있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해 보겠다.

이 영화는 세 가지 메시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메시지만 봐도 영화는 확실히 대단한 문제작이다. 영화 전체의 핵심 내용을 순서대로 간략히 살펴보며 정리해 보겠다.

올드맨과 일곱 명의 전문가가 벌이는 토론


갑자기 떠난다는 존에게 아쉬움이 남지만, 그냥 친구로서 잘 보내 주려던 찰나 인류학 교수 댄은 앵무부리 정을 발견한다.

댄 : “비스듬한 끄트머리가 마들렌기 초기 것 같은데.”


마들렌기란 약 1만∼2만 년 이전 구석기 시대 후기를 말하며, 앵무부리 정은 앵무새 부리 모양의 새기개로 부싯돌 도구이다. 마들렌기인은 후기 크로마뇽인이며, 이 정은 구석기 시대 후기의 마지막 문화라고 이야기한다. 존은 벼룩시장에서 산 거라고 둘러댔고, 친구들은 그가 왜 떠나려고 하는지, 무슨 사정인지에 대해 궁금해한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 박사, 교수들이다. 이들이 이 부싯돌을 보고 견해를 내놓자, 존은 흥미롭게 듣는다. 동료들의 재촉에 존은 드디어 입을 연다.

존 : “말 같지도 않은 질문을 하나 던져 보고 싶네요. 만약에 후기 구석기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현재까지 생존했다면 어떨 것 같아요?”


각 분야의 전문가, 지식인들이 모여서 친구를 떠나보내기 전, 이야깃거리를 찾고 있었는데 존이 던진 이 한마디에 토론이 시작된다. ‘만약에’를 전제로 했으니 가벼운 대화나 SF 소설 주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중에 상상도 못했던 충격으로 몰고 가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

1만 4천 년을 죽지 않고 살려면 세포가 완전 재생되는 몸을 가졌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면서 불로장생에 대해서는 넘어가게 된다.

존이 자신이 보아 왔던 대륙과 지형 변화들을 이야기하자 이 지식인 친구들은 홍적세 말기(지질학적인 용어로, 가장 최근의 빙하기가 시작된 1만 2천 년 전까지의 시기)에 유럽의 변화(영국과 프랑스 사이)와 일치한다고 보았다. 반쯤은 농담처럼 SF 소설에 아이디어를 제공하듯 각자의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진지하게 존의 이야기를 신빙성을 검증해 가며 토론을 이어 간다. 어떤 말을 던져도 존은 능숙하게 자신이 진짜 겪은 일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답을 했다.

콜럼버스와 항해를 했고, 반 고흐에게 그림을 선물받았다 하고, 구석기 동굴 벽화를 그릴 때 그 장면을 직접 보았다는 이야기 등이 오가면서 동료들은 막힘없는 존의 대답과 근거 제시, 현장감 있는 묘사에 점점 빠져든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존의 얘기는 다른 차원으로 진입한다.

존 : “그러다가 동쪽으로 향했어. 세상에 눈을 뜨게 된 거지. 따뜻할 것 같아서. 거기서 바다를 본 거야. 지중해였을 거야. 청동기 시대 초기 무렵, 무역로를 따라서 동쪽으로 갔지. 가면서 언어도 익히고, 각양각색의 수많은 신들. 그렇게 2천 년을 수메르인으로 살았어. 나중엔 함무라비 치하의 바빌로니아에 있었고, 한동안은 페니키아인으로 항해를 했어. 중앙 집권적인 도시국가들에서는 옮겨 다니는 것이 더 힘들어졌지. 계속 동으로 향했어. 인도까지. 운 좋게도 부처가 살던 시대였어. 그는 내가 알았던 그 누구보다 특별했어. 그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것들을 배웠어. 내가 뭔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어. 말 안 했지.”


해리 : “부처의 제자였다고?”
댄 : “매혹적이군. 사실로 믿고 싶을 만큼.”
이디스(기독교인) : “왜 이런 얘기를 했나.”
존 : “작별 인사를 하고 싶어서. 자기 자신으로서.”


모두들 흥분 상태로 당황해한다.

존 : “믿어 주리라는 기대를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당신들이 보기에 나는 미쳤고, 당신들은 멀쩡하니까요.”
이디스 : “아멘”


여기서 존의 논리가 아주 부드럽고 효과적이다. 논리적이면서 품격을 갖추고 있다. 여기 모인 전문가들이 설득될 만큼. 이쯤 되자 사람들은 더 이상 농담이나 수다 정도가 아니라고 느낀다. 서로의 가치관에 따라 의견이 충돌되면서 분위기가 심각해진다. 특히 자기 학문 분야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보다 신앙을 내세우는 이디스에 의해 갈등이 커진다.

이디스 : “1292년엔 어디 있었어?”
존 : “일 년 전 오늘 어디 있었어요?”


이디스는 종교적 신념에 거부감을 느껴 째려보면서 존의 논리를 깨 보려 하지만, 존의 역질문에 할 말을 잃는다.

댄 : 종교사에 등장하는 인물을 만난 적이 있나? 성서 속 인물이라든지.


신약성서의 메시지는 100자 이내로 다시 쓸 수 있다


댄의 이 질문 한마디에 이야기는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존은 이 질문은 그냥 넘어가 달라고 한다. 이야기에 푹 빠져 있던 이들은 넘어갈 수 없었고 재촉한다. 모세냐, 12사도였냐, 등등의 이야기를 이어 가다가, 존이 “베드로는 어부였지만 낚시 베테랑은 아니었다.”는 말에 아트는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질문한다.

존은 덧붙여지고 부풀려져서 과장됐다며 실제 신약성서의 메시지는 100자 이내로 새로 쓸 수 있다고 하자, 드디어 사람들은 존이 자신을 예수였다고 말한다고 확실히 느낀다. 독실한 신앙을 가진 이디스는 신성 모독이라며 화를 낸다.

그런데 여기 모인 학자들은 모두 성경은 수없이 고쳐 쓴 것이라 말한다. 각 버전의 성경들마다 서로 자신이 진실이라고 주장한다는 데 동감한다. 십계명도 함무라비 법전을 시대에 맞게 고친 것이라며 열린 마음으로 들어 보자고 이디스와 서로를 다독인다.

존 : “부처를 만난 사내는 그의 가르침이 좋았고 설법을 한동안 곱씹어 봤어요. 한 500년 정도 지중해 쪽으로 되돌아가면서요. 그러다가 그 사내는 에트루리아인으로 로마 제국에 흘러들었죠. 로마 제국은 거대한 살인 기계가 되어 있었죠. 되돌아가면서 생각하길 ‘부처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모습으로 전하면 어떨까.’ 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해 봤죠. 혼자서 로마에 반기를 들었고 로마가 이겼죠. 나머지는 역사대로죠.


평소 지적이고 신뢰가 깊은 인품을 지닌 존의 이런 말들에 모두들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으나 이야기를 계속 진행하기를 원한다.

댄 : “십자가 처형은?”
존 : “티베트와 인도에서 배운 통각 차단 기술을 썼죠. 남들이 눈치 못 챌 실력으로 신진대사를 저하시키는 법도 배웠던 거고요. 모두 그가 죽은 줄로 알았고 추종자들이 그를 십자가에서 내려 어느 동굴에 두었죠. 수련한 대로 육신 상태를 회복시켜 몰래 빠져나가려 했지만 열성 추종자들에게 들키고 말았죠. 설명해 보려 했지만 모두 극도의 흥분 상태라 전 부활한 남자가 되어 버렸어요.”


이디스는 신성 모독이라며 참신앙을 모욕하지 말라 한다. 그러면서도 정말 그럴지 모른다는 복잡한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당신은 성경 속 이야기 하나하나를 모두 문자 그대로 믿는가.”라는 질문에도,

이디스 : “맞아. 숱하게 바뀌어 왔다는 점은 나도 알지만 하느님은 늘 사람을 통해 말씀하심으로써 당신의 복음을 조금 더 명쾌하게 전하신 거야.”


이른바 성경무오설聖經無誤說(Biblical inerrancy) 인데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다며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는 전통 개념이다. 이디스는 점점 곤란해한다. 열심히 방어하지만 그럴수록 역설적으로 더 인정해 가는 모습이다.

여기서 인류학자 댄은 결정적인 말들을 한다.

댄 : “예수의 철학적 가르침은 히브리 느낌을 살린 불교 철학인 셈이지. 선의와 관용, 형제애와 사랑 등 매혹적인 이야기야. 용감하게도 불교를 서구에 전파하려 하다니 실패할 만했겠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으니. 예수의 공백기(성경에 나오지 않는 12세에서 30세까지의 행적)도 설명이 되지. 자네가 전문가 네 사람을 완전히 충격에 빠뜨렸어.”


이쯤 되자 이제 사람들은 존이 정말 예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지만, 존은 논리적이고 편안하며 지혜로운 말들로 능숙하게 답한다. 점점 사람들은 설득당한다. 이디스는 “자네는 예수가 아니야.”라고 외치며 마지막까지 반박해 보려 하지만 직접 겪은 듯 말하는 해박한 고고학, 역사학, 지리학, 생물학적 지식과 성경에서 그려진 본래 모습에 대한 존의 설명을 듣고는 마침내는 무너져 내린다. 존은 선택하게 한다. “성경 속 예수는 이렇게 말했죠.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저도 그러죠. 여러분이 판단하도록.”

이디스는 결국 울음을 터트린다. 모두들 너무도 괴로워하거나, 심각해진다.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충격적이며 달리 반박할 만한 방법도 없다.

모두가 너무 충격을 받고 괴로워하자 존은 이 모든 게 장난이었고 거짓말이었다고 말한다. 가치관을 흔들 정도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거짓말이라고 하자 누구는 배신감으로, 누구는 의혹 속에서, 누구는 자신의 신앙심에 안도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각자 집으로 향한다.

존을 사랑하는 그의 조교수 샌디Sandy는 이게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존은 샌디에게는 솔직하게 얘기한다. 60년 전쯤 보스턴에서 거주하며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할 때 존 토마스 파티라는 이름을 썼다고 하는데, 하필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의사 윌 그루버가 이야기를 엿듣는다.

윌 : 잠깐 보스턴이라고? 존 파티라고? 화학 교수는 아니었겠지?
존 : 어머님 성함이 ‘놀라’ 맞지?
윌 : 맞아, 우리 어머니시지. 이럴 수는 없어! 강아지 이름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길렀는데.
존 : 우피.
윌 : 맞아, 우피.
존 : 그루버, 어머니는 재혼하셨니?
윌 : 당신이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고 하셨어.
존 : 미안하구나. 옮겨야만 했어.


극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윌은 젊은 존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고 상담해 주고자 와 있었다. 그런데 존이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것을 알게 된 윌은 이 갑작스러운 충격에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한다. 충격적인 결말이다.

영화를 몇 줄로 요약하면 존은 1만 4천 년을 살아왔고, 유럽에서 티베트와 인도로 건너갔는데 거기에서 석가 부처를 만나 가르침을 받았고, 로마로 돌아와 불교의 가르침을 폈으나 실패했고, 신화가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티베트와 인도에 남아 있는 예수의 전설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히말라야에서 만난 예수의 흔적과 보병궁 복음서


디스커버리Discovery 채널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히말라야에서 만난 예수의 흔적〉(Jesus In The Himalaya)은 바로 이 내용을 주제로 한다. 인류학자 제프 잘츠는 이른바 ‘예수의 여정’을 따라 성서 시대의 무역로를 따라간다. 그가 인도의 구릉 지대와 17,000피트에 이르는 고산 지대를 넘고 티베트의 국경을 향해 세찬 물결을 건너는 동안 안데스와 히말라야산맥에 묻혀 있던 이야기들이 그 신비를 드러낸다.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은 12세부터 30세까지의 전설이 있는데, 이 전설에 의하면 젊은 예수는 사막의 대상들과 함께 중앙아시아를 건너 인도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는 인도를 가로질러 티베트에까지 이르렀고 그곳에서는 스님들과 수도하기도 했다고 전하죠. 예수가 따라간 그 길을 제프가 따라갈 것입니다. 잔스카르 계곡을 통과하여 예수의 동방 견문을 기록한 티베트의 고대 문헌에서처럼 수도인 레Leh 근방의 불교 수도원을 탐방할 것이며, 그 여정은 세계에서 가장 외딴 지역 중의 하나인 누브라 계곡에서 끝날 것입니다. - 다큐 해설


이 다큐에서는 예수가 기존에 알던 상식과는 달리 인도와 티베트를 여행했고 고문헌을 공부하고 수행했다는 전설을 소개하며, 그 기록과 증언을 조사하고 있다. 직접 현지를 이동하면서 해설해 주는 내용들은 실감 나고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장면은 다큐에서 예수가 이동했을 거라고 예상한 여정을 표시한 지도이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상세하고 구체적인 예수의 이동 경로를 지도에 담은 책이 있다. 100년 전 미국의 기독교인이었던 목사 리바이 도우링이 영적 계시로 쓴 『보병궁 복음서』(The Aquarian Gospel of Jesus the Christ)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 동안 그가 인도와 티베트 등지에서 유학을 했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혀 준다. 여기서는 상생문화연구소에서 가장 최근 번역해 나온 『예수 그리스도의 보병궁 복음서』를 참고했다.

사복음서四福音書에는 예수의 탄생과 공생애의 기록이 있으나 예수가 12세 때 성전에 들어가서 선생들과 함께 질문하고 답하는 내용(누가복음 2:42~52) 외에는 12세 이후로 30세가 되어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하기 전의 이야기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예수의 소년 시절 이후 갈릴리에서 공생애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구도 과정과 여행담이 풍부하게 기록되어 있다. 예수는 인도, 네팔, 티베트, 파키스탄, 페르시아(현 이란), 아시리아(현 이라크), 그리스와 이집트 등지를 여행하면서 성자들을 만나 가르침을 받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했다. 그 지역의 사람들을 가르치고 치유하기도 했다. 예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다양한 사상들과 종교 그리고 문화들을 경험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보병궁 복음서』


12세부터 30세, 예수의 잃어버린 18년이라고 한다. 12세가 된 예수는 목수가 되어 아버지 요셉을 돕고 있었는데, 이때 남부 인도 오리사주州의 왕족인 라반나가 유대의 제례祭禮에 참석하러 왔다가 성전에서 만난 예수의 총명함에 반하여, 예수의 부모를 찾아가 그에게 동양의 지혜를 배우도록 인도 유학을 청원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해제에서는 충격적이게도 예수의 가르침이 인도와 티베트 그리고 중동의 종교 문화에서 왔으며, 더 나아가 기독교에 기반한 서양의 이러한 종교 문화는 환국과 배달의 동방 원형문화에서 기원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것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는 보병궁 복음서 전반에 걸쳐 많이 발견된다고 한다.


예수의 인도 여행은 진실일까?


‘예수의 이동 경로’ 지도에 나타난 설명을 보면 예수는 엄청난 거리와 나라들을 거쳐 수많은 스승과 현자들 및 도인들을 만나 함께 수행하고, 책을 읽고 토론하며 배우고 익혔다.

아마도 영화 〈맨 프럼 어스〉의 원작자는 보병궁 복음서나 이런 전설들을 접했기 때문에 작품에 성경상 예수의 공백기가 인도의 여정이었다고 설정해 놓았을 것이다.

약 20년 전 티벳을 여행할 때 라사에 있는 달라이 라마Dalai Lama의 관저에 들른 적이 있어요. 달라이 라마가 했던 말 중에 “예수가 불교 기록에 존재했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그것은 히말라야 산맥에 전해지는 예수의 전설에서 또한 근거를 찾을 수가 있죠. - 다큐 중 제프 잘츠


인류학자 제프는 달라이 라마로부터 직접 들은 말을 전해 준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티베트의 정신적인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도 예수의 불교 기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2세기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바비슈야마하 푸라나를 발견했는데요. 학계에서도 잘 알려진 이 책자에 의하면 1세기경 카슈미르의 왕이 서쪽에서 온 하얀 의복을 갖춰 입은 사람을 만났었고, 그가 자신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으며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은 자이며 신의 아들이라 얘기했다고 전하고 있어요. 이 여행자의 이름이 이사Isa라고 했는데 인도에서는 바로 예수님을 일컫는 이름이었죠. - 제프 잘츠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라는 책에 의하면 예수가 인도에 살며 활동했던 행적은, BCE(기원전) 5세기부터 CE(기원후)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교 문헌에서 끊임없이 인용되어 온 힌두족의 오래된 이야기 선집選集 『푸라나Purana』에도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처음으로 히말라야의 예수 전설을 들은 사람은 19세기의 여행자였다고 한다. 인도 라다크에서 가장 숭배받는 하미스 곰파(곰파Gompa란 수도원과 사원이 복합된 요새 형태의 티베트 불교 건축물)라는 수도원이 있는데 이곳에서 1887년에 역사를 바꿀 만한 대발견이 있었다. 니콜라스 노토비치라는 러시아 탐험가가 불교 문서를 찾으러 히말라야에 왔었는데 예수가 인도에 있었음을 증명할 만한 증거물을 발견했다고 한다.

노토비치는 예수의 잊힌 시대에 관한 문헌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이 문헌을 찾기로 결심해 여행을 떠나는데,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채로 하미스 수도원으로 실려 갔다. 수도승들은 친절하게 그를 간호해 주었고, 노토비치는 몇 주 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문헌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수도승들은 낡고 변색된 책자 두 뭉치를 가져왔고, 수도승이 그것을 읽자 노토비치는 주의 깊게 받아 적었습니다. 믿기 힘든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는데 이사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신성한 아이이며 13살에 고향을 떠나 인도로 왔다고 합니다. 문헌에는 그 경로가 나와 있고,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기 전에 힌두교 및 불교의 지도자와 함께 공부를 했다고 써 있죠. 노토비치의 발견은 서양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정통파는 그것을 모독이라고 했고 그의 발견을 무너뜨리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 문헌들은 이후 실종됐고, 지금까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존재 여부도 불확실하죠. - 다큐 중 제프 잘츠


다큐에서 제프는 실제로 하미스 곰파를 찾아가서 수도승들에게 이사의 전설을 들어 본 적이 있는지 묻는다. 나이 든 수도승이 이렇게 말한다.

“아, 예, 있습니다. 이사가 이 수도원을 방문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 다큐


그에 관한 문헌을 찾아볼 수 있는지 묻지만, 특별한 라마만이 열 수 있어서 불가능했다. 제프는 이런 식으로 가는 곳마다 통역이나 마부, 수도승 등 모든 사람에게 예수의 전설을 아느냐고 묻는데 곳곳에서 자기들의 조상들에게서나 라마, 스승들에게 들어 봤다는 사람들을 만났다. 아마도 인도, 티벳 등지에서는 흔하게 내려오는 전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영화 〈맨 프럼 어스〉에서는 존이 십자가 처형의 고통을 견뎌 낼 수 있었던 건 티베트와 인도에서 배운 통각 차단술을 썼고, 신진대사를 저하시키는 방법을 썼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병든 사람들을 낫게 해 준 적은 좀 있는데 동쪽에서 배웠던 의술을 쓴 거예요. 그뿐이에요.”라는 말도 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병궁 복음서』에는 실제로 예수가 인도에서 의술醫術을 배운 기록이 나온다. 갠지스강 변의 마을 베나레스는 브라만교의 성지로서 문화와 학술이 고도로 발달된 곳이었다. 예수는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 당시 인도 최고의 의원이었던 우드라카Udraka의 제자로 입문했다고 한다. 우드라카는 물, 식물, 흙, 더위와 추위, 햇빛과 그늘, 빛과 어둠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쳤다.

“자연법칙은 건강 법칙이므로 이 법칙에 따라서 생활하는 사람은 결코 아프지 않다. 이 법칙을 어기는 것은 죄악이며, 이러한 죄를 짓는 사람은 병이 든다. 이 법을 지키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신체를 균형 있게 유지한다. 따라서 이것은 진정한 조화를 보증한다. 조화는 건강이다. 반면에 부조화는 병이다. 사람의 모든 부분을 조화롭게 해서 건강을 보증하는 것이 약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보병궁 복음서』


예수의 본질적 가르침


영화 원작자는 자그마치 38년 동안 시나리오를 수정했다고 한다. 영화의 내용을 보면 이 기간 동안 보병궁寶甁宮 복음서와 이사의 전설, 노토비치의 책 중에 어느 하나라도 접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신으로 번역된 상생출판의 『예수 그리스도의 보병궁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삶과 스승들의 가르침에 천부경과 인류 원형문화의 핵심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한다.

『보병궁 복음서(The Aquarian Gospel of Jesus the Christ)』는 미국의 리바이 도우링Levi H. Dowling 목사가 영靈으로 아카샤Akasha(우주심宇宙心)의 기록을 베껴 썼다고 밝혔다. 『보병궁 복음서』는 『신약성서』의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 내용을 수용하면서도 배치背馳되는 부분이 거의 없고, 동양 종교의 정신적 틀까지 담고 있어 기독교뿐만 아니라 동양의 정신세계를 모색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예수가 인도에서 지낸 12~30세까지의 구도 생활이 나와 있어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때문에 『보병궁 복음서』를 좋지 않게 보는 경우가 있으나 예수의 잃어버린 생애에 얽힌 문제가 신과 인간에 대한 예수의 본질적 가르침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며, 예수의 종교적 위상을 손상시키는 것도 전혀 아니다.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요한복음 7:28~29)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보냈느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2:40:6)


예수는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대로 온 게 아니라고 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분명히 계시고 그분이 참이시다. 나는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다.”라고 확실히 말했다.

보내신 분이 계시니 그렇다면 그분은 “내가 보냈다.”고 하신 분일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내가 공자, 석가, 예수를 보냈는데 쓰기 위해 내려보냈다.”고 하셨다. 쓰기 위해서라는 말씀은 사명을 주셨다는 뜻이리라. 예수는 나를 보내신 분이 계시다고 하고 상제님은 보내셨다고 했으니 열쇠와 자물쇠처럼 딱 맞는 말씀인 것이다.

물병자리(보병궁) 시대 생명의 메시지


점성학자인 페닉스 노아는 “보병궁 시대는 신비학자들에 의해, 세상을 깨끗이 맑히기 위한 ‘빗자루와 총채, 그리고 쓰레받기의 시대’라고도 불리는데 이것은 예언의 핵심을 찌르는 가장 인상적인 말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점성학에서는 태양계가 또 다른 중심의 태양을 안고 도는 기간을 12궁으로 나누고 한 단위의 별자리 시대를 약 2,000여 년으로 계산하는데 그중의 하나가 보병궁이다.

보병궁寶甁宮, 즉 물병자리[수병좌水甁座]로 상징되는 새 시대의 예고는 동양 우주관의 순환 원리와 대단히 중요한 연관성이 있다. 노아의 표현으로 지금의 인류는 쌍어궁雙魚宮 시대의 말기에서 보병궁 시대로 넘어가는 양쪽 사이클의 전환기인 프리즘 존prism zone에 살고 있다.

종도사님께서는 노아의 메시지를 종합해서 “천지에서 지상 인간의 마음속에 눌려 있는 도덕적인 모순을 대청소하는 ‘쓰레받기의 개벽 시대’이다.”라고 하셨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는 청소 도구이다. 적극적으로 해석해 보면 인류사의 모든 묵은 관념과 원한과 죄악들을 쓸어 내는 개벽 시대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페닉스 노아는 “인류를 실질적으로 구원해 주실 위대한 인물이 20세기에 탄생하리라.”라고 말한 수정구水晶球의 예언자 진 딕슨이 제시한 희망찬 미래를 언급하면서, 인류의 원대한 꿈이 현실화되는 새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였다.

지구는 지금 여명이 동트기 전의 어둠을 뜻하는 쌍어궁(Pisces) 시대를 마감하고, 생명의 물로 출렁이는 물병자리(Aquarius)의 빛 속으로 융화해 들어가고 있다. 물병자리에서 뿜어내는 생명 개벽의 물줄기에 의해 이 세상은 축복받고 순화되어, 조화調和와 지혜가 넘쳐 나는 새 시대가 펼쳐진다. 어둠이 물러가고 광명과 영적인 에너지로 충만한 세계로 넘어간다. - 『이것이 개벽이다』 상上권


물병자리는 그리스 천문도에서는 커다란 물병을 지닌 사람으로 묘사되고, 수메르나 이집트에서는 몸에서 물이 솟구쳐 나와 물병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묘사된다고 한다. 물은 생명 그 자체이다. 우리 몸의 대부분은 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지구도 환경적으로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우리의 삶도 원한과 스트레스로 불기운이 지배하고 있다.

상제님께서는 천지의 수기水氣를 돌리는 공사를 보셨다. 또한 천지 수기를 몸에 축적하는 시천주주侍天主呪와 태을주太乙呪 주문을 내려 주셨다. 두 주문을 읽으면 우주 본체 생명인 태극수太極水 기운을 강력하게 받아 내려 몸의 저항력과 면역력이 강화된다. 원숭이두창이 이미 국내에도 들어와 시두時痘(천연두)의 초입에 와 있음을 알려 주고 있는데, 가을개벽의 전령자인 시두는 인간 몸의 수기를 모두 말려 버리는 병이다.

인간 생명을 지속시키는 동력원은 신장腎臟의 수기인 ‘정精’이고, 우주가 진화해 온 역사의 전 과정이 내 몸의 정에 맺혀 있다. ‘천지 생명의 열매이자 핵인 내 몸의 정을 어떻게 잘 관리해서 대자연과 하나가 되느냐.’ 하는 것이 수행 공부의 핵심 과제인데 보병궁의 복음, 물병자리의 커다란 물병을 든 사람이 뜻하는 것이 바로 이것에 대한 메시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