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로 배우는 우주변화의 원리 | [기후변화로 심화된 선천의 상극 질서] 인류 자아 폭발의 역사 6,000년을 돌아본다 -역사 편(4)-

[한문화]

김덕기 / STB상생방송 작가

우주의 한 달(10,800년) 전에 신석기 시대가 열린 이후, 지구에는 크고 작은 기후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때마다 인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문화를 창조하고 역사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여명기에 평화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서로를 증오하며 전쟁을 끊임없이 벌이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선천의 상극 질서가 심화된 이유를 기후변화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의 역사 배경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제1항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평등권平等權에 관한 헌법 규정입니다. 그러나 근대 민주주의가 시작된 영국만 하더라도 18세기까지 차별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약간의 벌금만 내면 되는 범죄자나 소매치기, 좀도둑은 교수형을 당하였습니다. 심지어 교수형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관람하였습니다. 너무 가난한 부모들은 자식들을 소매치기로 만들어 구걸시키거나, 더 불쌍하게 보이기 위해 불구로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노예 제도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서 시장과 의회 의원이 노예무역업자를 겸했습니다.

그러던 중 18세기 후반부터 경이로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1765년에 영국에 반노예협회가 결성되어 노예 제도에 반대하는 운동이 광범위하게 벌어졌습니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며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사상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民主主義라는 개념이 전파되었습니다. 이런 사상을 강력하게 설파한 사람이 『사회계약론社會契約論』(Theory of Social Contract)을 쓴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런 사상을 창안하게 된 것은 그리스식 민주주의나 기독교의 교리와 무관하다고 합니다.

루소는 이전의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나 남태평양의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서 쓴 소개서들을 읽고 매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사회계약론』은 이어 미국을 건국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이들은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들의 ‘자연적 민주주의’에 대한 그들 자신들의 관찰에 의해서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 1776년 세계 최초의 현대적 민주주의가 나타났다. - 『자아 폭발』 396쪽, 스티브 테일러


아메리카 인디언의 삶과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은 민주주의만이 아닙니다. 1848년에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와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역사는 필연적으로 재산의 집단 소유·집단적 의사 결정·노동계급의 자치 정부 등이 이루어지는 완전한 평등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역사관을 담은 『공산당 선언共産黨宣言』을 출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또한 루이스 헨리 모건이 쓴 『이로쿼이족 연맹』 같은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 관한 보고서를 읽고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1)

*1) 이로쿼이 연맹(Iroquois Confederacy)은 이로쿼이어를 쓰는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5개의 연맹체로 오족연합(Five Nations)이라고도 한다. 일종의 연방제이자 양원제로 이루어져 있었던 이로쿼이 연맹의 정치 체계는 이후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과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등의 연구를 통해 미국 헌법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인류 사회는 어떻게 폭력과 타락의 질서로 전락했는가


당시 문명화되었다는 유럽인들이 차별과 갈등으로 얼룩져 있던 반면, 아메리카나 남태평양의 원주민들이 평화로웠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신석기 시대를 전후로 한 인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홀로세 기후 최적기의 역사
서기전西紀前(기원전; BCE) 9,000년 전부터 빙하 시대(영거 드라이아스기)가 끝나고 기온이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세기전 6000년부터 전 지구의 연평균 기온이 15도를 넘는 온난기에 돌입하였습니다. 두 번째 온난기는 서기전 3000년 무렵부터 약 1,00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이 시기를 ‘홀로세 기후 최적기’라고 합니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문명의 성쇠가, 농작물의 성장 조건을 결정하는 기후에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약 10,000년 전 농업혁명이 일어난 후에 잉여 식품을 저장할 정도로 식량 생산이 늘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인구도 더욱 빨리 증가하였습니다. 서기전 8000년에서 서기전 3000년 사이에 전 세계 인구가 600만 명에서 무려 5,000만 명으로 증가하였습니다.

- 서기전 9000~4000년 : 타락 이전
서기전 9000년경부터 일어난 지구 온난화는 인간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높아지는 해수면으로 인해 내륙의 고산 지대로 이동해야 했고, 바뀐 환경에 창의적으로 적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인류학 연구에 따르면, 후기 구석기 시대(서기전 4만 년~서기전 1만 년)부터 서기전 8000년까지 전쟁의 흔적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량의 도구와 도기가 발견되었지만, 무기는 전혀 없었습니다. 서로 간에 억압하지도 않았으며, 여성을 지배하거나 착취하지도 않았습니다.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서기전 8000년경부터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식량 조달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이 때문에 수렵 채집에서 농업으로 삶의 방식이 전환되었습니다. 소, 돼지, 양 등의 가축을 길들여 유목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일어난 농경 시대로의 전환은 더 많은 시간과 노동을 했음에도 식단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신석기 시대의 첫 단계에 해당하는 서기전 8000년부터 서기전 4000년까지는 평화와 조화의 시기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평화롭고 평등하였으며, 여성을 숭배하고 자연과 일체가 되어 살았습니다. 물질을 축적하거나 권력에 집착하지 않아서 근본적인 불행이 없었고, 정신적인 불화로 고통받지 않았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석기 시대가 시작되고 나서 처음 9만 5,000년 동안(기원전 4000년까지), 인간이 조직화된 집단 폭력의 수준은 고사하고, 어떤 수준에서든 전쟁을 벌인 흔적은 없다. 도무지 살육의 흔적은 거의 없다. - 인류학자 리처드 가브리엘(『자아 폭발』 47쪽에서 재인용)


- 서기전 6000~4000년 : 타락의 역사
그럼 언제부터 고통과 혼돈의 역사가 펼쳐진 것일까요? 서기전 6000년대 말부터 중동 지역 전역에서 요새와 유적지의 파괴층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항시적인 전쟁과 대규모의 사회적인 억압, 남성 지배 같은 사회적 폭력이 고착화된 건 서기전 4000년경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학자들은 상극의 역사가 펼쳐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자연환경의 변화에서 찾고 있습니다.

지난 6,000년 동안 인류는 일종의 집단적 정신병을 앓아 왔다. 역사가 기록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인류는 -최소한 어느 정도는- 정신 이상이었다. … 이러한 모든 광기는 내가 “타락(The Fall)”이라고 부르는 사건-6,000년 전 중동 지역과 중앙아시아에서 발생한 환경 재앙의 결과 대다수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심리 변환을 겪게 된 사건-의 결과물이다. 이 사건 이후 개인성에 대해 보다 분명하게 자각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체험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인류가 탄생하였다. 새로운 인류의 탄생에는 진보적인 측면이 있다. … 그러나 새로운 인류는 동시에 전쟁^남성 지배^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병리 현상들을 초래하였다. - 『자아 폭발』 12~13쪽, 스티브 테일러


북아프리카에서 중동을 거쳐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사하라시아saharasia라고 합니다. 서기전 4000년까지 사하라시아는 강과 호수, 인간과 동물로 가득 차 있던 삼림에 가까운 초원이었습니다. 지금도 이곳에는 마을이 있었던 흔적들과 초원 지대에 살았던 동물 화석, 그리고 동물과 식물이 그려진 동굴 벽화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하라시아가 말라 가면서 주민들은 유목민이 되어 새로운 고향을 찾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후변화를 경험한 그들이 기존의 신석기인들과 달랐다는 것입니다. 자연을 숭배하지 않고, 대신 전쟁과 폭력을 숭배했습니다. 여성을 억압하고 세계 최초의 노예제를 만들어서 불평등과 사회적인 억압을 조장하였습니다. 이제 전쟁, 사회적 계급 분화, 가부장제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자연보다 전쟁이, 삶보다 죽음이 상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사하라시아의 자연환경 변화로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정신이 파괴적으로 바뀌면서 상극의 역사가 초래된 것입니다.
*5)

*5) 『자아 폭발』(저자 스티브 테일러) 참고



- 서기전 3500년경 : 도시의 탄생
농업 생산력이 좋아진 결과, 인구가 늘어나면서 서기전 3500년경에는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대륙의 강 유역에서 고대 문명이 탄생하고 최초의 도시들이 발생하였습니다. 중동 지역에서는 최초의 수메르 도시 우루크Uruk가 세워졌습니다. 도시 생활을 하면서 인간 사이에 계층화된 위계질서가 확고해졌습니다. 도시들이 중앙 집권화된 국가로 변모해 가면서 도시들 사이에서 전쟁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갑작스러운 기술 발전도 함께 일어나서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바퀴, 쟁기, 동물을 이용한 농사법, 바람을 이용한 돛단배, 문자와 수에 관한 복합 체계, 그리고 달력이 발명되고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청동기 시대가 진행되면서 전쟁의 발생 빈도와 전쟁 희생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하였습니다. 문명은 풍요와 안전을 가져다주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달픈 삶을 살았습니다.

- 서기전 2000~1500년경 : 약탈과 침략의 일상화
서기전 3000년 전부터 서기전 1500년까지는 현재보다 약 0.1~0.3도 정도 기온이 높았습니다(2차 홀로세 기후 최적기). 그러나 서기전 2000년경부터 거대한 화산 폭발이 자주 일어나서 기후가 한랭 건조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식량이 부족해지자 문명화된 세상이 오히려 정치, 경제,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켰습니다. 그 결과 서기전 2004년에 수메르를 지배하던 우르가 이란 지역에서 온 엘람인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우르가 멸망한 후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약탈과 침략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수메르의 기후에 대한 최근 연구 결과, 수메르 북쪽 지역에서 기원전 2200년에 일어난 거대한 화산 폭발로 인해 화산재가 상당 기간 동안 햇빛을 가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같은 시기에 무려 278년 동안 건기가 시작됐다. 최초 도시들에서의 생활도 환경의 변화에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 『빅히스토리』 166쪽, 신시아 브라운

서기전 1500년 전부터는 평균 기온보다 낮아지기 시작하여 서기전 1000년경에는 현재보다 약 0.5도 정도 낮아졌습니다. 1차 홀로세 기후 최적기처럼, 2차 홀로세 기후 최적기에도 적당한 기후 환경으로 인해 식량 생산이 증대되어 인구가 증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 변화로 기후가 다시 악화되면서 사람들의 자아의식이 더욱 확고하게 굳어졌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선천의 상극 질서가 더 심화되고 고착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運이라.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하늘과 땅에 전란戰亂이 그칠 새 없었나니 그리하여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우므로 이제 이 상극의 운을 끝맺으려 하매 큰 화액禍厄이 함께 일어나서 인간 세상이 멸망당하게 되었느니라. (도전道典 2:17:1~4)


기후변화로 인해 좋은 기후를 향유하던 지역들이 쇠락하였습니다. 서기전 1500년경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아리안Aryan족이 남하하여 인더스 문명을 일으켰던 드라비다Dravida족을 몰아내고 인도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피부색에 따른 위계질서인 바르나(색깔), 즉 카스트Caste 제도를 만들어서 아리안족이 성직자, 전사 통치자, 경제적인 부의 생산자를 차지하였습니다. 정복당한 드라비다인들은 농노와 노동자로 이루어진 수드라가 되거나 불가촉천민이 되었습니다.

- 서기전 1250년경 : 철기 시대의 폭력성
서기전 1250년경에 철기 시대가 시작되자, 중동 지역은 충동적으로 전쟁이 일어날 정도로 재앙에 대한 근심과 공포로 가득 찼습니다. 이제 삶은 점점 더 야만스러워지고 불안해졌으며, 폭력과 고통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서기전 13세기에는 정체불명의 바다 민족이 지중해 전역을 파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근 100년 동안 미케네Mycenae 문명이 파괴되고, 히타이트Hittite 제국과 이집트Egypt 제국이 몰락하였습니다. 이후로도 사하라시아가 계속 메말라 감에 따라, 사하라시아인들은 서로를 죽이고 정복하면서 서쪽으로 유럽을 향해 이주해 갔습니다. 이러한 침략은 서기 300년에서 600년 사이에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기후 대격변으로 인한 ‘대이주’가 오늘날의 유럽을 만든 것입니다.
*6)

*6) 『자아 폭발』(저자 스티브 테일러), 『빅히스토리』(저자 신시아 브라운) 참고



축의 시대 : 인류 사상사의 대전환


17, 18세기에 유럽에서는 이성적인 사고와 자유로운 탐구를 중시하는 계몽사상이 출현하였습니다. 그런데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1883~1969)는 “계몽주의보다 더 거대한 사상적 전환이 서기전 800년부터 서기 200년 사이에 일어났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를 ‘축의 시대(Die Achsenzeit, The Axial Age)’라고 불렀습니다. 이 시기에 중국의 공자와 노자, 인도의 석가모니,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팔레스타인의 엘리야와 예레미야, 그리스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현자와 선지자들이 탄생하였습니다. 그래서 야스퍼스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모든 정신적 기원이 축의 시대에 생겨났다.”고 하였습니다. 선사 시대부터 종교적인 사고와 의식이 있었지만, 체계적인 의식과 경전 등을 갖춘 종교가 탄생한 것은 이때부터라는 것입니다. 약 1,000년 동안 일어난 사상의 전환은 오늘날까지 인간의 사고와 문명의 틀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축의 시대는 기록된 역사 가운데 지적^심리적^철학적^종교적 변화가 가장 생산적으로 이루어졌던 때로 꼽힌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근대를 창조한 ‘서구의 대전환’ 이전에는 이에 비길 만한 시대가 없을 것이다. - 『축의 시대』 <머리말>, 카렌 암스트롱


그런데 이때 왜 인류 사상사의 대전환이 일어난 것일까요? 이 또한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서기전 8세기부터 서기전 3세기까지, 전보다 혹독한 기후로 인해 농업 생산량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식량 부족으로 민족의 이동이 빈번해지면서 민족 간에 충돌도 많아졌습니다. 여기에 더해 철제 무기와 말이 끄는 전차로 인해 전쟁은 더 참혹해졌습니다. 사람들은 끝없는 고통 속에서 생존을 위한 작은 희망이라도 찾아야 했습니다.

다행히 서로 다른 사상을 가진 민족들이 만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상이 싹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새롭게 탄생한 종교와 철학은 모두 “네가 싫어하는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는 자선과 자비의 가르침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들이 전한 교리와 사상은 전쟁과 배고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상극의 고된 현실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8)

*8) ‘기후가 가장 불안정했던 축의 시대와 소빙기’(「한겨레」 2020.12.31) 참고



약 1만 년 전 농업이 시작된 이후 가장 극심했던 기후로 인류가 고통받았던 시기는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까지 ‘축의 시대’(Axial age)와 14세기에서 19세기까지 ‘소빙기’였다. 이때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도약의 발판을 닦은 시기이기도 했다. - ‘기후가 가장 불안정했던 축의 시대와 소빙기’, 「한겨레」 2020.12.31.


중세 소빙하기 : 근대 역사


지금 한민족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역사가 한반도에만 국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과거에 활동했던 강역을 과학적으로 복원해 보면 X축은 우랄산맥에서 일본 열도까지, Y축은 시베리아에서 동남아시아 일부에 이르는 엄청난 영역이었습니다.

하지만 통일신라 시대부터 기세가 꺾이기 시작하여, 조선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에 달하는 약 550여 년 동안 국력이 쇠퇴하고 역사와 문화가 퇴보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수백 년에서 길게는 1천 년 이상의 주기를 갖는 기후변화 양상에 따라 온난기의 주류 집단과 한랭기의 주류 집단 사이에 권력 교체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확히 1300년대 말 고려가 패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던 시점에서부터 1800년대 말 조선이 무너지고 일제 강점이 시작되던 때까지 500년간을 기후변화 역사에서는 소빙하기라 부른다. 기후변화 주기 가운데 한랭기에 속하며, 1만 2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이후 가장 추웠던 시기이다. - 『지구 위에서 본 우리 역사』 91쪽, 이진아


홀로세 기후 최적기가 끝난 서기전 2000년 이후, 지구에는 한랭기와 온난기가 규칙적으로 반복되었습니다.
*9)
대체로 ‘기후가 변화할 때 온난기에는 바다를 무대로 활동하는 해양족이 득세하고, 한랭기에는 육지를 무대로 활동하는 대륙족이 득세하였다.’고 합니다.
*9) 기후는 영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 말 이래로 비교적 안정을 보이지만, 지난 1만 년 동안 끊임없이 작은 진동이 있었다. ‘본드 이벤트(Bond events)’로 알려진 이런 진동은 매 1,500년마다 발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후빙기後氷期’ 참고)



서기전 500년경 한랭기에 당시 무적의 해양족이었던 페니키아Phoenicia와 카르타고Carthago가 쇠퇴하였습니다. 그에 반해 로마Roma는 다른 지역보다 풍부했던 목재를 이용하여 배를 만들어서 지중해 지역을 석권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 기후 최적기’(로마 온난기, 서기전 200년~서기 200년)에 국력이 절정에 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한랭기가 이어지면서 서기 500년에 이르러 로마 제국이 몰락하였습니다. 유럽에서 중세 암흑기로 불리는 이 시기에, 지중해 동쪽 끝에서는 아랍의 이슬람 세력이 일어나서 지중해를 석권하였습니다.

중세 온난기(950년~1350년)에는 기후 조건이 좋았습니다. 농업 생산량이 증가하여 9세기 초에 2억 명이었던 전 세계 인구가 13세기 말에는 4억 명으로 2배 늘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의 기독교 세력이 성장하여 지중해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14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지구가 다시 추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중세 암흑기를 일으킨 한랭기보다 더 혹독한 소빙하기(Little Ice Age)가 시작된 것입니다. 1400년부터 1850년까지 지속된 중세 소빙하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건과 큰 변화가 발생한 시기였습니다. 가장 추운 시기에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겨울 평균 기온이 현재보다 2도 정도 낮았고, 북반구 전체의 연평균 기온은 약 1도 낮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화산 폭발도 자주 일어나서 식량이 부족해지고 면역력이 약해져서 전염병이 창궐하였습니다. 기근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유입되면서 전염병이 여러 도시로 퍼져 나갔습니다. 또한, 왕조 간의 다툼과 종교 갈등이 고조되어 전례 없는 폭동과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거시적인 환경 지표가 불안정해지고 지구 생태계가 열악해지면서 당시 사람들이 더 공격적으로 변해 간 것입니다.
*10)

*10) 『지구 위에서 본 우리 역사』(저자 이진아) 참고



당시 사람들은 소빙하기 고통이 마녀 때문이라고 믿었다. 17세기까지 대략 20만~50만 명이 마녀사냥으로 죽임을 당했다. 그중 3분의 2가 여성이었다. 마녀사냥이 극에 달했던 해는 거의 언제나 소빙하기의 춥고 가혹했던 기간과 일치했다. - ‘대재앙 소빙하기 극복 과정 과학·산업혁명 이뤄 근대 이행’, 「경향신문」 2019.01.17.


그런데 열악한 자연환경이 오히려 서유럽 사람들에게는 세계를 제패할 기회로 작용하였습니다. 포르투갈을 필두로 유럽 각국이 튼튼한 배를 만들어서 전 세계로 뻗어 나가 식민지를 건설한 것입니다. 이른바 대항해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소빙하기 내내 지구촌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소빙하기 동안 유럽 지역은 비교적 따뜻하고 안정된 날씨와 춥고 가뭄이 계속되는 혹한의 기후가 번갈아 계속되었다. 그러나 조선을 비롯한 동양은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어 기근에 허덕였는데 당시 가뭄이 없었던 일본은 힘의 발로로 조선을 침략하게 되었고 이것이 임진·정유 왜란이다. … 마녀사냥 등 종교적 갈등도 극심하여 견디다 못한 유럽인들은 새로운 세계를 찾아 대항해를 시작하게 되고 그 결과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다. - 「중세 소빙하기(LIA) 기후변화의 영향과 산업혁명」, 한국환경산업기술원 IP 오성남


소빙하기는 비록 고통스러웠지만, 인류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네덜란드는 자연재해로 수확량이 떨어지자 휴경지 농법을 고안하고 농작물 재배를 다양화하는 등 영농 혁신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사회가 계몽되면서 기상이변과 흉작, 전염병의 원인을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영농 혁신에 실패한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이 일어나서 봉건제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탄생하였습니다.

산업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소빙하기에 유럽에서는 나무 장작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습니다. 특히 영국에서는 난방과 건축, 초기 산업에 필요한 목재의 수요가 증가한 결과 공급이 고갈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재를 대신하여 석탄에 의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증가하는 석탄 수요에 맞춰 생산을 늘리기 위한 혁신 과정에서 증기기관이 발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소빙하기는 지구 평균 기온의 작은 변화라고 할지라도 엄청난 사회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었습니다.
*11)

*11) ‘대재앙 소빙하기 극복과정 과학⋅산업혁명 이뤄 근대 이행’ ( 「경향신문」2019.01.17.), ‘기후가 가장 불안정했던 축의 시대와 소빙기’( 「한겨레」 2020.12.31.) 참고





사하라 사막은 하마의 고향이었다
뜨거운 열기와 황량한 모래로 가득한 사하라Sahara 사막! 그런데 과거에는 사하라 사막이 푸른 숲과 호수에 다양한 생물이 살았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실제 사하라 사막에 초원 생태계가 있었고 지금보다 훨씬 습한 곳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지막 빙하기 이전, 사하라는 사막이었습니다. 그러다 11,000년 전부터 6,000년 전까지 강우량이 증가하여 녹색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6,000년 전부터 천천히 건조화되어 약 1,100년 전에는 현재의 상태에 도달했다.(캐나다 국립과학연구소 피에르 프랑쿠스 교수)’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막 사하라와 녹색 사하라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알려진 바로는 ‘지구의 궤도 변화로 인해서 사하라 사막이 건조화되었다.’고 합니다.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는 약 41,000년마다 약 22도에서 25도 사이로 변합니다. 그리고 지구 자전축의 세차운동은 약 26,000년을 주기로 변합니다. 현재 북반구는 겨울철인 1월에 태양과 가장 가깝습니다. 그러나 세차운동 때문에 녹색 사하라 기간에는 북반구가 여름철인 8월에 태양과 가장 가까웠습니다.

이 때문에 여름철에 북반구에는 태양 복사열이 지금보다 더 많이 증가하였습니다. 태양 복사열의 증가는 육지와 바다의 온도 차이를 일으켜서 아프리카의 몬순monsoon(계절풍)을 증폭시켰습니다. 그 결과, 대서양의 수분을 사막으로 유입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서 사하라 사막을 풀과 관목으로 덮인 대초원으로 변모시켰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세차운동으로 인해서 북반구가 겨울철인 1월에 태양과 가장 가까워졌습니다. 여기에 더해 지축의 변동도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NASA 고다드 우주연구소의 기후 과학자 개빈 슈미트Gavin Schmidt에 따르면 “약 8,000년 전에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가 약 24.1도에서 현재의 23.5도로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2)
그 영향으로 몬순이 감소하고 초목이 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식물이 사라지자 비가 적게 내리면서 사하라가 사막화되었습니다.
*3)

*2) 자전축의 변동 시기에 관한 자료가 더 많이 있을 것으로 보이나, 필자의 한계로 인해 아직 찾지 못하였다. 정확한 시기를 알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료를 찾아서 비교 검증할 필요가 있다.


*3) ‘How Earth's Orbit Shaped the Sahara’ by Anuradha K. Herath(「SPACE.com」2010.12.21.), ‘Could the Sahara ever be green again?’ by Donavyn Coffey(「Live Science」2020.09.27.) 참고


인구 증가로 일어난 전쟁의 역사
서기전 6000년 전부터 기온이 급상승하여 서기전 4000년 전까지는 현재보다 약 0.7도~0.5도가 높았습니다. 이를 1차 홀로세 기후 최적기라고 합니다. 지구 연평균 기온이 15도를 넘는 온난기로 신석기 시대가 꽃피는 황금기였습니다. 적당한 기후 환경 때문에 식량 생산성이 증대되고 인구가 늘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기전 4000년 전부터는 기온이 급강하해서 약 1,000년 동안 현재보다 기온이 약 0.2~0.6도 정도 낮았습니다. 이 때문에 1차 홀로세 기후 최적기에 늘어났던 인구는, 줄어든 식량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갈등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수렵 채취에서 농경으로 생활 방식이 전환되면서 인류에게 사회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농업혁명의 원인이 된 인구 증가가 사람들을 전쟁으로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4)
열악한 자연환경은 사람들이 자아를 자각하고 개인화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환국 말기에 인구 증가에 따른 물자 부족으로 인류가 새로운 땅을 찾아 이주한 것도 이때입니다.
*4)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농업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실수’라고 하였다. 역사학자 뉴콤은 ‘아주 실질적인 의미에서 진정한 전쟁은 농업혁명이 낳은 보다 중요한 결과의 하나로 보인다.’고 하였다.



지구 자전축의 세차운동에 따른 기후변화
『자아 폭발』의 저자 스티브 테일러Steve Taylor는 서기전 4000년경에 일어난 환경 변화로 인류의 자아가 폭발하고 갈등과 분열이 일어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김상일 교수는 서기전 2000년경에 청동기가 등장하면서 정신적 자아의식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서기전 4000년과 서기전 2000년, 두 시기에 인간 의식에 대전환을 일으킨 우주사적인 대사건이 일어났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전축의 세차운동 주기는 25,920년입니다. 이를 대년大年(Great Year)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2,160년은 대월大月, 72년은 대일大日입니다. 서기 2000년을 기준으로 3대월 전은 6,480년 전입니다. 그리고 2대월 전은 4,320년 전입니다. 그러므로 ‘서기전 4000년과 서기전 2000년에 발생한 대격변은, 3대월 전과 2대월 전에 지구 자전축의 세차운동 주기가 변동하면서 일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류 문명의 생장성生長成 : 인류의 복낙원復樂園은 가능한가
『성경』 「창세기」에 따르면, 여호와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을 창조하여 에덴동산에 살게 하였다고 합니다. 에덴동산은 온화한 기후에 평화로 가득 찬 낙원이었습니다. 먹을 게 풍부해서 채집만 해도 충분히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이브는 금지된 선악과를 따 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이후로 그들의 자손인 인류는 황야에서 고된 삶을 살며 에덴동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평안의 땅인 에덴동산이 가장 큰 비극의 무대가 된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하와(이브)는 자연의 풍족함을 누리지 못하고 양식을 얻기 위해 땀 흘려 일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카인과 아벨을 낳으며 출산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 농부인 카인과 그의 남동생인 양치기 아벨이 여호와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카인의 제물을 받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카인은 질투심에 아벨을 죽였습니다. 세상에 처음 태어난 아이가 살인자가 된 것입니다.

상극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역사를 시작한 인류는 에덴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백보좌 하느님이 ‘최후의 심판’을 통해서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 모두를 심판한다고 합니다. 그때 ‘생명책’에 이름이 적혀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에덴동산에서 살아가게 된다고 합니다.

에덴동산 신화는 크게 ‘낙원樂園 → 실낙원失樂園 → 복낙원復樂園’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실낙원 동안 인류가 상극의 세상 속에서 고난의 삶을 산다는 내용입니다. 『자아 폭발』의 저자는 이 과정을 ‘타락 이전 시대 → 타락 시대 → 타락 초월 시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가 타락하게 된 원인을 ‘서기전 4000년경부터 사하라시아가 사막화되면서 새로운 종류의 예민한 개인성이 점점 더 커진 것’에서 찾고 있습니다.

즉, ‘나’라고 하는 자아自我에 대한 인식이 폭발하면서 인간은 자연과 분리되고 의식이 분열되었으며, 그로 인해 남성 지배, 물질주의, 사회적 불평등, 격렬한 전쟁과 같은 상극성이 발현되었다는 것입니다.

타락이란 6000년경 전에 어떤 인류 집단의 정신에 발생한 어떤 변화를 칭한다. 타락은 이 사람들이 자아에 대하여 강하고 예민한 인식을 발달시킨 역사적 순간이었다. 타락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나” 또는 개인성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심화되는 것이다. - 『자아 폭발』 159쪽, 스티브 테일러


이와 비견되는 내용을 김상일 교수의 『카오스와 문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문명을 카오스라는 개념으로 규정짓고, 인류 문명사를 ‘알카오스(원原카오스)·비非카오스·얼카오스(초超카오스)’의 삼 단계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7)
알은 땅과 자연에서 나는 생물학적인 개념이고, 얼은 하늘과 신에서 나온 정신적인 개념입니다. 알카오스도 하나(one)의 상태이고, 얼카오스도 하나(One)의 상태입니다. 비카오스는 다양한 개체들로 쪼개진 여럿(many)의 상태입니다.

인간의 의식과 문명은 ‘하나’에서 나와 ‘여럿’으로 쪼개졌다가 다시 ‘하나’로 모이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류 문명은 알카오스에서 발현되어 비카오스의 과정을 경험하고 얼카오스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장성生長成의 삼 단계 과정을 통해 인류 문명이 성숙하는 것입니다.
*7) 초인격 심리학자인 켄 윌버Ken Wilber가 말한 ‘전자아, 자아, 초자아’에 대비하기도 한다.



카오스적 문명과 비카오스적 문명은 기원전 2000년경을 중심하여 나뉘어진다. 카오스의 의식 구조는 육체와 물질에 잠겨져 있던 문명이었다. 도구상으로 볼 때는 돌에서 구리로 그 연장이 바뀜으로 알카오스와 비카오스 문명은 갈라진다. - 『카오스와 문명』 250쪽, 김상일


그런데 『자아 폭발』의 저자는 ‘서기전 1000년대 초반부터 타락 초월의 시대로 진입할 수 있는 자양분이 싹트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합니다. 1차 물결은 ‘축의 시대’를 연 현자와 철인들이 정신적인 불화를 치유할 수 있는 종교와 사상을 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2차 물결은 18세기 후반부터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서구에서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노예제 불법화가 대두되고, 근대 민주주의, 여성 운동, 자연주의 등이 나타난 것입니다. 1차 물결이 작은 흐름이었다면, 2차 물결은 인류의 상당수가 포함된 대중 운동이었습니다.

그럼 타락 초월 시대는 선천에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선천 봄여름철은 만물이 분열 성장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분열을 통일로 되돌리는 타락 초월을 시작할 수는 있을지라도 완성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의식이 초자아로 성숙하는 것은 만물이 열매 맺는 가을 천지가 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복낙원하는 타락 초월 시대(얼카오스)가 바로, 조만간 열리게 될 후천 가을철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스스로를 치료하고, 태어날 때부터 가진 정신을 변형할 기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1차 물결 때처럼,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영적 수행은 진화적 긴급 사안이다. 당신이 앉아서 명상할 때마다, 당신이 요가를 하거나 기공 체조를 할 때마다, 또는 당신의 의식 에너지를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는 다른 행동을 할 때마다, 당신은 -아무리 작은 방법이라 할지라도- 인류 전체를 대신하여 그 행위를 하는 것이며, 우리를 구원할 진화적 움직임에 약간의 힘을 더하는 것이다. - 『자아 폭발』 427쪽, 스티브 테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