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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B하이라이트]

    상생FOCUS | 종도사님께 듣는 대한역사관 ⑭

    다섯 번째 국통맥 - 신라(2) (91~97번 질문)



    Q91 신라 천 년 역사를 이끈 화랑 조직이 빠르게 체계화된 것은 ‘세속오계’라고 하는 계율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됩니다. 원광법사가 내려 주었다고 하는 ‘세속오계’의 구체적인 내용과 전수 과정을 말씀해 주십시오.


    ‘원광’은 우주 광명이라는 뜻입니다. 원광법사가 중국에 유학을 했는데 학문이 얼마나 방대한지 유학을 도통했습니다. 신라 왕가에서 이분을 모셔다가 모든 외교문서를 관장하게 했습니다. 거의 100살까지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이분을 찾아온 두 젊은이인 귀산과 추항이 “우리는 속세의 사람인데 사군자와 교유하는 데 필요한 심신 수양의 계를 알려 주십시오.” 하자 원광법사가 “불계로는 보살계가 있어 이를 십계로 삼고 있으니,… 지금 세속오계가 있으니…”라고 하면서 계율로 내려 준 것입니다. 이미 전해 오는 세속오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충忠, 효孝, 신信, 의義, 용勇이라는 것은 유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신교 경당 문화에서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원광법사는 환국, 배달, 조선에서부터 내려온 그 소도제천의 성지에서 우주 광명의 인간 심법을 전수하는, 경당에서 가르친 오상지도五常之道를 바탕으로 세속오계世俗五戒를 내려 준 것입니다.

    蘇塗之立(소도지립)에 皆有戒(개유계)하니 忠孝信勇仁(충효신용인) 五常之道也(오상지도야)라
    蘇塗之側(소도지측)에 必立扃堂(필립경당)하야 使未婚子弟(사미혼자제)로
    講習事物(강습사물)하니 蓋(개) 讀書(독서) 習射(습사) 馳馬(치마) 禮節(예절) 歌樂(가 악)
    拳搏(권박)(並劍術(병검술)) 六藝之類也(육예지류야)라
    - 『환단고기』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소도가 건립된 곳에는 모두 계율을 두었는데 충, 효, 신, 용, 인이라는 오상의 도가 그것이다. 소도 곁에는 반드시 경당을 세워 미혼 자제로 하여금 사물을 익히게 하였는데 대개 독서, 활쏘기, 말달리기, 예절, 가악, 권박(검술을 겸함)으로 육예의 종류였다.”



    Q92 신라 천 년 역사를 만들어 낸 모체 문화는 신교이고, 화랑도 신교문화를 바탕으로 탄생한 조직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라 최고의 문장가였던 최치원 선생의 ‘난랑비서문’에 이 신교에 대해 잘 나와 있다고 하는데, 내용이 궁금합니다.


    신라는 신교神敎를 모체로 해서, 전통문화를 모체로 해서 유교와 불교도 받아들이고, 도교와 함께 융합을 해서 신라 천 년 역사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의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에 보면 “국유현묘지도國有玄妙之道하니 왈풍류曰風流라”고 했습니다. “이 나라에는 아주 현묘한, 지극히 신령스러운 도가 있는데, 예로부터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풍류라 한다.”는 뜻입니다.

    본래 동방 문화, 즉 조선 문화의 본성이 풍류도風流道라는 것입니다. 신명神明의 도, 신도神道를 열어 인간의 밝은 본성을 회복하는, 신명을 열어 주는 도, 신명과 하나가 되는 도, 만물과 하나로 화해하는 신명의 도가 그것입니다. 이런 신교 문화의 전통에 따라 중국 호칭인 왕 대신 1세 박혁거세를 ‘거서간’, 2세 남해왕을 ‘차차웅’, 3세 유리왕부터는 ‘이사금’이라는 호칭을 썼는데 이 호칭은 전부 우두머리, 광명을 상징합니다.

    고운 최치원 「난랑비서鸞郞碑序」 : “풍류風流 설교說敎”

    國有玄妙之道(국유현묘지도)하니 曰風流(왈풍류)라.
    設敎之源(설교지원)은 備詳仙史(비상선사)하니 實內包含三敎(실내포함삼교)하여
    接化群生(접화군생)이라. 且如入則孝於家(차여입즉효어가)하고 出則忠於國(출즉충어국)은
    魯司寇之旨也(노사구지지야)요, 處無爲之事(처무위지사)하고 行不言之敎(행불언지교)는
    周柱史之宗也(주주사지종야)요, 諸惡莫作(제악막작)하고 諸善奉行(제선봉행)은
    竺乾太子之化也(축건태자지화야)라.
    -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조
    나라에 지극히 신령스러운 도가 있으니 풍류라 한다. 그 교를 창설한 내력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으니, 실은 삼교三敎를 포함하고 모든 생명을 접하여 교화하는 것이다.
    들어와서 가정에 효도하고 나가서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魯司寇(공자)의 뜻과 같은 것이요, 함이 없이 일을 처리하고 말없이 가르침을 행함은 주주사周柱史(노자)의 종지와 같은 것이요, 악한 일은 하지 않고 선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태자竺乾太子(석가)의 교화와 같은 것이다.


    Q93 경주에 있는 ‘포석정’은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애왕이 술잔치를 벌이다가 견훤에게 공격을 받아 자살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너무도 수치스러운 역사가 아닐 수 없는데요. ‘포석정’에 대한 역사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포석정에 대한 심각한 역사 왜곡입니다. 이 포석정을 1963년에 국가 지정 사적 제1호로 정했습니다. 국보 1호 남대문, 보물 1호 동대문, 그다음에 사적 1호 포석정은 일제와 식민사학자들에 의한 역사 왜곡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후백제의 견훤이 경주 바로 옆 영천까지 쳐들어왔는데 추운 음력 11월에 야외에서 술잔을 띄워 놓고 술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 1999년에 이곳이 단순한 유흥지가 아니라 실제로는 제례를 위한 성스러운 공간이었다는 증거들이 속속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경애왕은 고려 왕건에게 구원병을 요청하고 아무런 희생도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는 제사, 천제를 올렸던 것입니다.

    포석정은 원래 술판을 벌이고 노는 정자가 아닙니다. 『화랑세기花郞世紀』 기록에도 포석사飽石祠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천제를 올렸고, 김춘추와 김유신의 동생 문희가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정의롭고 의기가 강한 화랑의 화신, 8대 풍월주 문노文努를 여기에다 모셨습니다. 그런데 이 포석정에 물이 내려가는 모양으로 해 놓은 유적의 형상은 하늘에 있는 천원, 하늘 정원 별자리를 모방하여 그대로 따 놓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있는 유적입니까.

    이 포석정 옆으로 남산에서 물이 내려오는데, 지금은 그 위에 보를 막아 동네에서 물을 끌어다 쓰니까 물이 안 내려옵니다. 옛날에는 바위를 덮을 정도로 물이 힘차게 많이 흘렀을 겁니다. 그래서 왕족들이 거기서 목욕재계를 하고 길례를 올렸습니다. 국가 안녕을 위해서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포석정 입구 왼쪽 간판에는 술잔치를 벌이고 여흥을 즐겼다는 내용이 붙어 있습니다.

    Q94 신라의 대표적인 유적지 중 하나인 첨성대는 천문을 관측한 천문 관측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첨성대는 우주 광명 문화역사의 원형정신이 함축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이 궁금합니다.


    첨성대瞻星臺를 보면 우주 광명의 문화역사 원형정신이 거기에 그대로 함축되어 있습니다. 첨성대 아랫부분을 보면 정사각형으로 돼 있습니다. 이것은 어머니 땅의 정신, 어머니 품을 근본으로 한 것입니다. 황도대라든지 태양이 지나가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포물선을 그리면 건물이 이런 형상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첨성대 전체는 361개 반의 돌을 세우고, 또 천상 28수 별자리를 본떠서 돌을 28단으로 했습니다. 또 둥근 것은 하늘 아버지의 마음, 생명, 신성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 천지부모天地父母 사상이 있습니다.

    첨성대는 이 대우주 천지부모의 몸체를 상징하고 그 성신을 축약해 놓은 겁니다. 거기에다가 28수 황도대의 별자리를 축약하고 1년 열두 달, 360일, 한 달 30일이라는 날수, 책력을 집어넣었습니다. 이런 천문, 시간과 공간의 근본정신을 첨성대에 모두 담아 놓고 제일 위에 우물 정井 자로 천정석天井石을 세웠습니다. 이 신라의 첨성대를 본떠서 후대에 개성에도 천문대가 있고, 조선 왕조 기록을 보면 평양 남쪽에도 똑같은 이름의 첨성대가 있었습니다. 개성의 천문대도 우물 정 자 식으로 해서 네 개 기둥을 박아 놨습니다.

    우리말에 천정天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정이 낮다든지 천정이 높아서 멋있다고 합니다. 조선 왕조 궁궐에 가 보면 임금님이 계신 곳은 지상의 천하를 다스리는 옥좌이고, 그 위는 바로 우주, 하늘 천정입니다. 그런데 왜 그걸 하늘 천 자, 우물 정 자라고 하느냐? 천문으로 보면 정井은 견우성의 중심 별자리라 하는데,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나오는 우주의 별자리, 그 별자리의 구조 질서를 그대로 신라 왕도에다가 투영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첨성대가 있는 것입니다. 천문대 수장 정도 되면 왜 첨성대 위에다가 천정석을 놓았는지 그 비밀이 무엇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인간이 몸을 받아 가지고 태어나는 우주 역사의 가장 신성한 중심별, 바로 그것이 북녘 하늘의 별인 북두칠성입니다. 우물 정井 자의 비밀은 인간과 신의 세계를 다스리는 우주 통치자의 천상 궁전이 있는 칠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Q95 첨성대의 우물 정井 자가 북두칠성을 상징한다는 말씀이 너무 놀랍습니다. 우물 정井 자가 상징하는 또 다른 역사적인 의미와 문화가 더 있는지 궁금합니다.


    『환단고기』를 보면 환국과 배달의 역사에서, 우주 광명의 환국의 문화역사 정신을 가져온 환웅이 제일 먼저 한 것은 “착자정여정어천평鑿子井女井於天坪”, 천평, 하늘 평야에다가 자정과 여정을 팠습니다. 이것을 남자의 우물, 여자의 우물로 소탈하게 해석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자정과 여정이 견우와 직녀라든지, 28수의 별자리라든지, 북두칠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우물 정井 자는 솟대를 네 개 세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 자체는 팔각, 여덟 개의 기둥 형상입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탄생한 나정蘿井을 보면 거기에 한 글귀가 있습니다. 입구 간판에 영문으로 같이 쓴 것을 보면, 여기에서 국가 의식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정을 어떤 신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정井 문양은 전 세계적으로 나옵니다. 수메르 문명권에서도 우물을 ‘우문umun’이라 해서 말이 비슷합니다. 그런데 첨성대 천정석처럼 저렇게 우물 정 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홍산 옥기 가운데 태양신을 상징하는 것을 보면 거기에 우물 정 자 무늬가 있습니다. 태양신의 머리 쪽에 왜 우물 정 자가 있는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이 우물 정井 자 문화의 원형은 바로 우주의 원십자原十字 문화입니다. 원십자는 ‘천지와 인간은 한마음이다, 하늘과 땅과 인간의 마음은 사방으로 반듯하다’는 사정방의 마음, 우주 시공간의 본성인 사정방의 바른 마음, 도심, 우주의 도의 마음, 생명의 마음, 영원불변의 진리의 마음, 신성한 그 마음을 상징합니다. 이 우주의 원십자 문화에서 절을 상징하는 만卍 자가 나왔습니다.

    Q96 우물 정井 자가 하나님의 별인 북두칠성을 상징한다고 하셨는데요, 북두칠성은 어떤 별인지 또 인류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합니다.


    칠성의 별을 보면 대괴 탐랑, 거문, 녹존, 문곡, 염정, 무곡, 파군으로 칠성입니다. 상제님께서 계신 별과 그 아들이 되는 천자의 별을 좌보우필左輔右弼이라고 해서 별이 두 개가 더 있습니다. 그래서 북두칠성北斗七星을 북두구진北斗九辰이라고 합니다. 첫째 탐랑과 거문, 녹존, 문곡 이 네 개, 머리에 있는 네 개 별을 ‘선기琁璣’라 하고, 그 뒤 세 별을 ‘옥형玉衡’이라 합니다.

    일본의 역사는 이걸 그대로 따 간 것입니다. 삼신과 칠성으로 해서 일곱 신이 이 우주 역사와 인간의 창세 역사를 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뒤에 네 개 별의 신들을 부부로 배치해서 이자나기, 이자나미가 나와서 일본의 여덟 개 섬을 만들었다, 창세 역사를 열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아버지와 아들 성령 문화의 총 결론도 일곱 성령입니다. 요한이 천상에 올라가서 백보좌의 아버지 하나님을 직접 뵈었는데 그 아버지 하나님의 앞에 일곱 등불이 있었습니다. 일곱 개의 별을 본 것처럼 그대로 계시록에 기록해 놨습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靈이 성령인데 이 성령 문화도 잘못되어서 그냥 아버지 영, 아들 영으로만 이야기합니다. 올바른 성령 문화가 아직 안 나온 것입니다. 기독교 2천 년 역사에서도 성령은 일곱 영인데, 그 일곱 영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천문으로 볼 때는 바로 치우천황의 스승이신 자부紫府선사가 처음 칠성력 책력을 만들었고 이때부터 동아시아의 책력 문화가 구체화되었습니다. 이것이 6세기경에 일본에 전해져서 사람들이 실제 농사도 제대로 짓고 인간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틀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옛날부터 상투를 틀었고, 홍산문화에서도 5,500년 전 제사장의 무덤을 보면 상투를 꽂았던 옥고玉箍가 있습니다. 상투는 소도 신앙의 상징인데, 이 상투 문화가 바로 우물 정 자의 문화 정신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입니다. 내 몸에 우주의 생명과 신성과 진리와 영원한 마음, 도통 마음, 솟대를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 머리 위에다가 ‘나는 우주의 통치자, 우주 생명의 원주인原主人인 삼신상제님과 한마음으로 산다’는 뜻으로 상투를 틉니다. 이 상투가 내 마음에 세우는 내 몸의 소도인 것입니다.

    Q97 신교 문화를 중심으로 신라의 문화를 살펴보니 화랑의 계율을 비롯해서 첨성대와 포석정과 같은 유적지에 깃든 문화의 정신과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신교 문화의 핵심 중의 하나인 삼신상제 문화의 흔적이 신라 역사에도 남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신라의 삼신상제 문화를 보여 주는 예가 있습니다. 진평왕 즉위년에 천상에서 천사가 내려와서 ‘이게 상제님이 내려 주시는 옥대玉帶다. 이걸 받아라’ 해서 옥대를 받아 찼다는 것입니다. 이게 신라 호국 삼보의 하나입니다.

    卽位元年(즉위원년) 有天使降於殿庭(유천사강어전정) 謂王曰(위왕왈) 上皇命我傳賜玉帶(상황명아전사옥대)
    王親奉跪受(왕친봉궤수) 然後其使上天(연후기사상천) 凡郊廟大祀皆服之(범교묘대사개복지)
    - 『삼국유사』
    진평왕이 왕위에 오른 첫해에 하늘에서 천사가 궁전 뜰로 내려와 왕에게 말하였다. “상제께서 저에게 명하시어 이 옥대를 전하라 하셨습니다.” 왕이 친히 꿇어앉아 그것을 받자, 천사가 하늘로 올라갔다. 무릇 교외와 종묘에서 큰 제사를 지낼 때면 모두 이 옥대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표훈表訓(?~?)이라는 분이 신교 사상에 정통하여 삼신오제의 원리를 투철히 깨쳤습니다. 이분은 『환단고기』 첫 편을 쓴 안함로와 더불어 신라 10대 성인의 한 사람입니다.

    35세 경덕왕이 이 표훈이란 분에게 ‘내가 아들이 없으니까, 자네가 천상 상제님께 가서 아들을 좀 달라고 빌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상제님께서 ‘안 된다고 해라. 딸밖에 못 준다고 해라.’라고 하셔서 다시 상제님께 ‘딸을 아들로 바꿔 달라’는 사연을 고하니까, 상제님께서는 ‘아들이 내려가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경덕왕은 아들을 받았고 그 아들이 후에 36세 혜공왕이 되었는데, 어릴 때 여자 놀이를 하고 여자처럼 행동했다는 겁니다.

    환국, 배달, 조선, 북부여 이후에 이런 우주 원형문화, 우주 광명문화, 신교 삼신문화가 있었습니다. 왕의 옆에 있던 도승들이 삼신상제님의 천상 궁전을 오르내린 이런 야사 같은 이야기가 사서에 엄연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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