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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주역과 무극대도 | 주역 마흔 번째, 선천 상극의 원과 한을 해원하는 뇌수해괘 ䷧


    봄을 만나 추운 한기가 풀어지니


    뇌수해괘雷水解卦(䷧)는 위는 우레인 진괘(震卦,☳)가 있고 아래는 험한 물괘(坎卦,☵)로 되어 있습니다. 진괘는 하늘의 뜻을 표징表徵하여 움직여 나간다는 의미이고. 감괘는 두 음 사이에 양이 갇혀 험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뇌수雷水가 어려움이 풀린다는 해解가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감수坎水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험난한 상황에서 우레가 움직여 밖으로 빠져나와 어려움이 풀리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아래 감괘는 북방, 겨울을 상징하고 위의 진괘는 동방, 봄을 상징하므로 추운 겨울이 지나 따뜻한 경칩이 오면 한기가 풀리는 해동解凍, 해빙解氷이 되는 이치를 보여 주기 때문이죠. 그리고 ‘해解’ 자는 ‘풀다,’ ‘깨닫다,’ ‘가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로 ‘解=角(뿔 각)+刀(칼 도)+牛(소 우)’ 자가 결합된 모습입니다. 칼로 소의 뿔을 해체하는 것을 표현한 것인데 해解 자에 하필 ‘牛[소]’가 들어 있는 것이 신기하네요. 아마도 선천 상극기운을 해소하는 데 ‘소(牛)’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해괘는 상제님의 진리로 볼 때 선천 세상의 억눌린 원과 한을 풀어 버리는 ‘해원시대解寃時代’와 우주 겨울(빙하기)에서 만물이 소생하여 우주의 봄이 열리는 ‘선천개벽先天開闢’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뇌수해괘(䷧) 바로 앞에는 어렵다는 수산건괘水山蹇卦(䷦)가 있습니다. 건괘蹇卦의 건은 ‘절 건蹇’ 자로 발(足)이 얼어서(寒) 절뚝거리니까 ‘어렵다’는 뜻인데요. 건괘 다음에 해괘가 놓인 것은 세상만사가 끝까지 어려울 수만은 없으므로 언젠가는 풀어진다는 의미에서 건괘 다음에 해괘가 왔습니다.

    그래서 해괘와 건괘를 서로 뒤집어 보면 건괘 ⇌ 해괘가 되어 도전괘倒顚卦가 됩니다. 마치 세상살이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말이지요.

    이처럼 뇌수해괘의 ‘해解’에는 ‘어려움이 풀리다(解決), 녹이다(解凍), 벗어나다(解脫), 낳다(解産), 흩어지다(解散), 분할하다(解剖), 깨닫다(理解)’ 등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때는 해원시대


    뇌수해괘는 상제님의 진리로 보면 뭇 창생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원한이 풀리는 ‘해원解冤’을 상징합니다. 선천시대에는 상극의 질서로 인해 누구나 가슴에 원한 맺힌 삶을 살아왔습니다.

    * 선천에는 상극의 이치가 인간 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道義)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에 넘치매 마침내 살기(殺氣)가 터져 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나니 (도전 4:16:2~3)


    그래서 무궁한 복록을 내려 주시는 상제님께서는 일체의 원과 한이 사라지는 무원無寃의 후천 상생 선경세계를 열기 위한 전前 단계로, 선후천 교역기간 동안 쌓이고 맺힌 원寃과 한恨을 다 풀 수 있게 하늘과 땅을 뜯어고쳐 난법해원亂法解寃 시대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즉 “이때는 해원시대”(도전 4:59:1)라는 시대정신을 천지에 질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 원래 인간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서 큰 병을 이루나니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일을 풀어 놓아 각기 자유 행동에 맡기어 먼저 난법(亂法)을 지은 뒤에 진법(眞法)을 내리니 오직 모든 일에 마음을 바르게 하라. (4:32:1~3)


    * 이제 천지도수(天地度數)를 뜯어고치고 신도(神道)를 바로잡아 만고의 원을 풀며 상생의 도(道)로써 선경의 운수를 열고 (4:16:4~6)


    * 원한의 역사의 뿌리인 당요(唐堯)의 아들 단주(丹朱)가 품은 깊은 원(寃)을 끄르면 그로부터 수천 년 동안 쌓여 내려온 모든 원한의 마디와 고가 풀릴지라. (2:24)


    정리해 보면 ‘선천 상극시대: 해원寃恨시대 → 선후천 교역기: 난법亂法 해원解寃시대 → 후천 상생시대: 무원無寃시대’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제 괘사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解(해)는 利西南(이서남)하니 无所往(무소왕)이라 其來復(기래복)이 吉(길)하니
    有攸往(유유왕)이어든 夙(숙)하면 吉(길)하리라
    解는 서남쪽이 이로우니 갈 바가 없는지라. 그 와서 회복함이 길하니 갈 바가 있거든 일찍 하면 길하리라.


    해괘는 어려움이 풀린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괘라서 괘사의 어휘들도 좋은 단어들로 쓰여 있습니다.

    解利西南(해는 서남쪽이 이롭다): 방위를 나타내는 문왕팔괘도를 보면 우레(雷, 동방)와 물(水, 북방) 사이에 있는 동북방東北方(艮方: 산)은 험한 산악지대이며, 못(澤, 서방)과 불(火, 남방) 사이에 있는 서남방西南方(坤方: 평지)은 평평한 곳입니다. 험준한 바위산과 높은 산들이 많은 산악지대인 동북방보다는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는 서남방이 당연히 살기에 이로우며, 또한 곤방坤方의 곤坤은 부덕婦德을 상징하는 곤덕坤德으로 순조로워 이롭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남방이 바로 길성소조吉星所照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시간적으로 서남방은 미시未時를 지나서 후천시대를 상징하므로 주역식 표현으로 하면 ‘대천을 건넘이 이로우며(利涉大川)’ 모든 원한이 사라진 후천 선경시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과 관련하여 도전에 보면 “기동북이고수氣東北而固守 이서남이교통理西南而交通”(도전 6:51:1)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천지의 기氣는 동쪽(木,봄)과 북쪽(水,겨울)에서 굳게 지키고 변화 이치는 서쪽(金,가을)과 남쪽(火,여름)에서 서로 교통한다는 뜻입니다. 우주 일 년 과정에서도 겨울에서 봄[水生木]으로 넘어갈 때에는 기氣가 큰 변화를 일으키며, 여름에서 가을[火克金]로 넘어갈 때는 변화 이치가 바뀝니다. 종도사님 말씀으로 정리하면 “하도와 낙서를 비교해 보면 동(木,봄)과 북(水,겨울)만은 바뀌지 않고(固守), 서(金,가을)와 남(火,여름)은 서로 맞바꿔져(交通) 있다. 이를 정역에서는 선천개벽이 시작되는 봄에는 생명이 태어나기 때문에 기氣를 중심으로 말하고, 후천 개벽이 시작되는 가을에는 생명이 성숙되는 질적 변화를 하기 때문에 리理로 말하였다”(도전 6:51:1 측주).


    우주 하추 교역기에는 ‘분열에서 통일, 성장에서 수렴’으로 바뀌어 ⇨ 선후천이 바뀌는 것이며, 이는 질적 변화를 일으켜 우주 이법이 바뀌는 ⇨ 그런 과정에서 해원解寃이 됩니다.

    无所往(갈 바가 없다): 험난함에서 벗어났으므로 해결하러 갈 곳이 없어 할 일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즉 서남방이 길성吉星이 비치는 복지福地라는 것이죠.

    其來復吉(그 와서 회복함이 길하다): 다가오는 미래(후천)에는 누구나 본성을 회복해서 길운吉運을 누린다는 뜻인데요. 그렇습니다. 후천시대는 하늘로부터 받은 천부지성天賦之性을 회복하는 때이므로 후천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본성(본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본성을 회복한다는 지뢰복괘地雷復卦(䷗)에서 설명드렸듯이 “천지의 마음은 내 마음과 둘이 아니라 원래 한마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 아버지(상제님)와 땅 어머니(태모님)의 마음을 회복하여 진정한 태일太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본심은 어떻게 회복해야 하나요? 그 해답은 바로 ‘태을주’에 있습니다.

    * 태을주는 본심(本心) 닦는 주문이니 태을주를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깊어지느니라. (11:282:2)


    有攸往夙吉(갈 바가 있거든 일찍 하면 길하리라): 해괘는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괘로 선후천관에서는 선천 상극의 원한의 올가미를 벗어던져 영원한 해원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도 “굽은 길과 갈림길이 많아 죽는 길로 쉽게 빠져드는데, 탄탄한 대도의 살 길이 없는 게 아니요, 바로 찾기가 어려울 뿐이다(多有曲岐橫易入이나 非無坦道正難尋이라)”(도전 6:61:2)라고 말씀하셨듯이 수많은 세상의 진리 중에서 찾기가 어려울 뿐이지 참생명의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조상의 음덕과 자손의 일심만 있으면 영원한 복록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 생명의 길을 찾았다면 좌고우면하지 말고 전부를 바쳐 대도의 금자탑을 반드시 세워야 합니다.

    * 믿으려면 크게 믿어라. 믿음이 없으면 신명들이 흔드느니라. 물샐틈없이 짜 놓은 도수이니 죽자 사자 따라가라. (8:112:4,6)


    이처럼 상제님의 천하사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억조창생을 건지는 성업聖業이기에 결코 게으름을 피울 수 없습니다. 우리들 발걸음에 따라 세상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 천하창생의 생사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느니라. (8:21:3)

    * 사람을 구제함에 어찌 일각을 지체하랴. (4:40:7)


    뇌수해괘의 괘사를 정리해 보면 ‘원한이 영원히 소멸되는 무원無寃의 후천으로 들어서는 길을 찾아 나서라. 그 생명의 길은 천지부모와 한마음을 가져야 길운이 비추나니 찾았거든 주저치 말고 모든 것을 바쳐 일심으로 믿어 나가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천지가 풀려 우레와 비가 일어나니


    다음은 괘사를 구체적으로 풀이한 공자의 단전을 보겠습니다.

    彖曰(단왈) 解(해)는 險以動(험이동)이니 動而免乎險(동이면호험)이 解(해)라
    解利西南(해이서남)은 往得衆也(왕득중야)오
    단전에 이르길 “해解는 험난함으로써 움직이는 것이니 움직여서 험함을 면한 것이 해解다. 해가 서남쪽이 이롭다는 것은 가서 무리를 얻음이요.

    其來復吉(기래복길)은 乃得中也(내득중야)오 有攸往夙吉(유유왕숙길)은 往有功也(왕유공야)라
    그 와서 회복함이 길하다는 것은 이에 중을 얻음이오.
    갈 바가 있거든 일찍 하면 길하다는 것은 가서 공이 있음이라.

    天地(천지) 解而雷雨(해이뇌우) 作(작)하며 雷雨(뇌우) 作而百果草木(작이백과초목)이
    皆甲坼(개갑탁)하나니 解之時(해지시) 大矣(대의) 哉(재)라
    천지가 풀려서 우레와 비가 일어나며 우레와 비가 일어남에 백과초목이 모두 껍질이 터져서 싹이 나오니 해解의 때가 크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해는 험난함으로써 움직이는 것이니(解險以動): 이는 해괘의 덕성, 즉 위의 우레괘(☳)의 움직임(動)과 아래의 물괘(☵)의 험난함(險)을 말하고 있습니다.

    움직여서 험함을 면한 것이 해이다(動而免乎險解): 해괘는 험한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을 우레로 움직여서 빠져나와 험난함을 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상제님 진리로 설명하면 물괘(坎,☵)로 상징되는 험한 선천세상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우레괘[震,☳ : 제출호진帝出乎震, 즉 하느님이 震方(동방)의 한반도(出)로 오심]가 상징하는 하느님의 무극대도로 선천을 극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해이서남은 가서 무리를 얻음이오(解利西南往得衆也): 서남쪽이 이롭다는 것은 서남방은 곤방坤方으로 평탄하여 살기에 이로우며, 중지곤괘重地坤卦에서 서남西南은 득붕得朋이라 하여 벗들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설괘전에서도 곤을 무리(衆)로 풀이하고 있어 서남쪽은 무리를 얻는 것입니다. 이는 해괘의 네 번째 효(九四)가 두 번째 효(九二)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일을 해결해 주어 민심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그 와서 회복해서 길함은 이에 중을 얻음이오(其來復吉乃得中也): 마음을 다스려 본심을 회복하여 길하다는 것은 깊은 물과 높은 산의 수산건괘水山蹇卦로 상징되는 선천 시대에는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살다 보니 본심을 잃어버리고 방황하였으나 곧 다가올 후천의 무원無寃 시대를 맞아 천지부모의 본심을 회복하니 중도中道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 천지는 나와 한마음이니 사람이 천지의 마음을 얻어 제 마음 삼느니라. (2:90:4)


    특히 이에 중을 얻는다는 것(乃得中也)은 상제님의 은총으로 우주 가을철을 맞아 천지의 주인인 인간이 조화신성造化神性을 회복하여 궁극의 깨달음인 중통인의中通人義의 도통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갈 바가 있거든 일찍 하면 길한 것은 가서 공이 있음이라(有攸往夙吉往有功也): 선천 상극의 원한이라는 올가미에 묶여 있는 창생들을 하루빨리 벗어나게 해 주어 후천 가을 인존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인도함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공덕을 쌓는 것입니다.

    천지가 풀려서 우레와 비가 일어남에 백과초목을 지으니 껍질이 터져서 싹이 나오니 解의 때가 크도다(天地解而雷雨作雷雨作而百果草木皆甲坼解之時大矣哉): 뇌수해괘는 우레괘와 물괘로 되어 있는데 이는 천둥, 번개와 비로 나타나며 추운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볕이 내리쬐면 산과 들에는 온갖 초목들이 땅을 뚫고 나와 싹을 내밉니다. 지구 일 년 사계절뿐만 아니라 우주의 겨울에서 봄이 열리는 선천개벽 때도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지상의 초목만 싹이 트는 게 아니라 인간농사의 싹도 이때에 뿌려집니다. 이처럼 12만 9천6백 년 만에 오는 우주 봄개벽을 상징하는 뇌수해괘야말로 그 의미가 크다 할 수 있겠습니다.

    허물은 용서하고 죄는 감하니


    이어서 대상전을 보겠습니다.

    象曰(상왈) 雷雨作(뇌우작)이 解(해)니 君子(군자) 以(이)하야 赦過宥罪(사과유죄)하나니라
    대상전에 이르길 “우레와 비를 짓는 것이 해解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작은 허물은 용서하고 큰 죄는 감하여 주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뇌수해괘의 괘상을 보면 위는 우레괘, 아래는 물괘가 있습니다. 초목이 소생하는 봄철에는 우레와 봄비가 만물의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죽은 듯이 앙상한 나무와 황량한 땅에서 싹이 나고 새순이 돋아납니다. 이처럼 천지도 때가 되면 풀리듯이 세상을 다스리는 군자 또한 따뜻한 봄볕 같은 어짊의 정치를 펼쳐서 작은 허물은 용서해 주고 큰 죄는 감형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상생(相生)의 도로써 지난 선천 세상의 원한과 악척이 맺힌 신명을 해원(解寃)하고 만백성을 조화(調和)하여 후천 오만년 지상 선경(地上仙境)의 성스런 운로를 밝게 열어 주시니라. (11:76:7~8)


    다음은 육효사의 내용입니다.

    初六(초육)은 无咎(무구)하니라
    초육은 허물이 없느니라.

    象曰(상왈) 剛柔之際(강유지제)라 義无咎也(의구무야)니라
    소상전에 이르길 “강과 유가 서로 사귐이라. 뜻이 허물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초육은 맨 처음 나온 약한 음으로 해방, 해원의 초기로 아직 체계가 서지 않아 무질서한 상태입니다. 초육은 백성의 자리라서 크게 허물 지을 일을 하지 않습니다. 초육과 응하는 구사九四 또한 서로 음양 응應이 잘 되어 힘없는 초육에게 허물을 짓게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강한 구사와 약한 초육이 서로 화합하니 힘 있는 구사의 도움을 받아서 초육이 허물이 없는 것입니다.

    九二(구이)는 田獲三狐(전획삼호)하야 得黃矢(득황시)니 貞(정)하야 吉(길)토다
    구이는 사냥해서 세 마리 여우를 잡아서 누런 화살을 얻으니 바르게 함이 길하도다.

    象曰(상왈) 九二貞吉(구이정길)은 得中道也(득중도야)일새라
    소상전에 이르길 “구이의 바르게 함이 길하다는 것은 중도를 얻었기 때문이다.”고 하였습니다.


    사냥해서 세 마리 여우를 얻어(田獲三狐): 세상에는 여우처럼 영악하게 자기 욕심을 채우는 데만 혈안이 되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원한寃恨이 생기지 않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우 같은 사회악을 제거해야 합니다.

    누런 화살을 얻으니(得黃矢): 여우를 잡기 위해서는 활과 화살이 필요한데요. 구이가 속한 감괘(☵)는 주역에서 활(弓)로 풀며 내호괘인 리괘(離卦,☲)는 화살(矢)로 풀이합니다. 그런데 구이는 내괘에서 중中을 얻어 누런 화살(黃矢)이 됩니다. 이렇게 중도를 지키는 구이가 패악을 끼치는 여우를 제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구절과 관련하여 부루扶婁단군 때 지은 제천가祭天歌인 ‘어아가於阿歌’가 생각납니다. 한민족 최초의 애국가로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삼신상제님의 은덕을 찬양하는 노래로 광개토대왕이 병사들과 함께 부른 군가이며, 일제 강점기에는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투사들이 함께 부르며 대한의 백성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아~아! 어~아!
    착한 마음 큰 활 되고 악한 마음 과녁을 이루었네.
    백백 천천 우리 모두 큰 활같이 하나 되고, 착한 마음은 곧은 화살처럼 한마음이 되리라.
    백백 천천 우리 모두 큰 활처럼 하나 되어 수많은 악의 과녁 꿰뚫어 버리리라 .


    바르게 함이 길하도다(貞吉): 험난한 선천 세상을 살다 보면 본성을 잃어버려 중도中道를 상실하니 정직하게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중직中直하지 못한 여우들을 잡으니 이젠 자연히 바르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이가 바르게 본심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어느 쪽에도 휩쓸리지 않는 중도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利끗에만 몰두하니


    六三(육삼)은 負且乘(부차승)이라 致寇至(치구지)니 貞(정)이라도 吝(인)이니라
    육삼은 (등에) 져야 할 것이 (오히려) 또 올라탐이라. 도적을 이르게 했으니 바르더라도 인색하리라.

    象曰(상왈) 負且乘(부차승)이 亦可醜也(역가추야)며 自我致戎(자아치융)이니 又誰咎也(우수구야)리오
    상전에 이르길 “(등에) 져야 할 것이 (오히려) 또 올라탐은 또한 가히 추한 것이며, 나로부터 도적을 이르게 하였으니 또 누구를 허물하리오.”라고 하였습니다.


    육삼은 양자리(세 번째 자리)에 음효가 와서 제자리도 아니고(不正) 중中도 얻지 못했으며 또 내괘의 끝자리에 있어 불안한 자리입니다. 구이에서 말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여우가 바로 육삼입니다. 뇌수해괘의 육효에서 육삼의 모습을 보면 아래에 있는 구이九二를 올라타 있고 위로는 구사九四를 짊어지고 있습니다(負且乘).

    등에 짊어져야 할 사람이 수레에 올라탔다는 것은 자기 분수를 넘어 욕심이 과해서 모든 걸 가지려는 것이며, 그런 육삼이 추하다고 하였습니다(亦可醜也). 결국 그러한 과욕이 도적을 불러들였고(自我致戎) 이제 와서 뒤늦게 바르게 한다 한들 인색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육삼이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이니 누굴 원망하겠습니까(又誰咎也).

    상제님 진리로 보면 아래 괘(물괘)는 선천 세상인데 육삼 자리는 선천 중에서도 상극 기운이 극에 달한 말기末期입니다. 그러니 육삼은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고 발버둥 치는 영악한 여우 같은 우리 현대인들의 자화상입니다.

    돈 버는 데만 올인(All-in)하는 선천의 철부지 창생들을 가엾게 여기시는 상제님의 탄식이 가슴에 저며 옵니다.

    * 이제 천하창생이 진멸(盡滅)의 경계에 박도하였는데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이(利)끗에만 몰두하니 어찌 애석치 아니하리오. (2:45:2)


    또한 “선천 영웅시대에는 죄로 먹고살았기에”(도전 2:18:6)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치고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기가 어려웠습니다. 가련한 창생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 내려는 자애로우신 어머니 하느님의 애절한 독백도 들리는 듯합니다.

    * 세상 사람이 죄 없는 자가 없어 모두 제 죄에 제가 죽게 되었으니 내가 이제 천하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건지리라. (11:83:2)


    九四(구사)는 解而拇(해이무)면 朋至(붕지)하야 斯孚(사부)리라
    구사는 엄지발가락에서 풀면 벗이 이르러 이에 미더우리라.

    象曰(상왈) 解而拇(해이무)는 未當位也(미당위야)일새라
    소상전에 이르길 “엄지발가락에서 푼다는 것은 자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뇌수해괘에서 선천에 해당하는 아래 물괘(초육~육삼)에서는 해괘임에도 초효에서 삼효까지 푼다는 ‘해解’ 자가 단 한 글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후천을 상징하는 위 우레괘(구사~상육)에서는 세 효사에 모두 ‘해解’ 자가 나옵니다.

    구사九四는 푼다는 해괘의 우레괘(雷,☳)의 맨 아래 양효(⚊)로 움직임이 가장 큽니다. 구사의 직책이 임금 아래 대신大臣으로, 얽혀 있는 국정을 풀어야 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푸는 것은 밑에서부터 푸는 것이 순리이기에 구사와 응하는 맨 밑의 초육 자리(백성)부터 풀어야 합니다.

    맨 밑의 초육은 인체에서는 엄지발가락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구사는 양효가 네 번째 음 자리에 와서 제자리가 아니므로(未當位也) 제대로 힘을 못 씁니다. 그래서 어려운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친구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 친구가 바로 아래에 있는 구이입니다. 그 친구가 옴(朋至)으로써 문제가 풀리게 된다(斯孚)고 하였습니다.

    六五(육오)는 君子(군자) 維有解(유유해)니 吉(길)하고 有孚于小人(유부우소인)이리라
    육오는 군자가 오직 풀림이 있으니 길하고 소인에게 믿음이 있으리라.

    象曰(상왈) 君子有解(군자유해)는 小人(소인)의 退也(퇴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군자에게 풀림이 있다는 것은 소인이 물러감이라.”고 하였습니다.


    육오는 외괘에서 중을 얻었지만 다섯 번째 양 자리에 음효(⚋)가 오니 유약한 왕이라서 군자로 표현하였습니다. 강력한 임금은 아니지만 나라의 문제를 풀 수 있다면 길한 일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왕을 믿고 따른다면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임금이 백성의 신뢰를 얻어 난제를 해결해 나가면 소인배 같은 정치꾼들은 물러나 군자의 시대가 열립니다.

    새매를 쏘아 잡으니


    上六(상육)은 公用射隼于高墉之上(공용석준우고용지상)하야 獲之(획지)니 无不利(무불리)
    로다
    상육은 공이 높은 담 위의 새매를 쏘아 잡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도다.

    象曰(상왈) 公用射隼(공용석준)은 以解悖也(이해패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공이 새매를 쏨은 거슬리는 것을 푸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상육은 어려움이 풀린다, 해원이 된다는 해괘의 마지막 효사입니다. 뇌수해괘의 모든 문제가 바로 상육에서 해결이 된다는 것으로 선후천 개벽관에서도 아주 중요한 괘입니다.

    공公: 육오에서는 군자君子가 해결하고 상육에서는 공公이 해결합니다. 육오는 세운의 지도자라서 국민의 신뢰를 얻어 정치로 해결하는 것이며, 상육은 도운의 지도자로 종교의 통일로 선천을 최종 해결합니다.

    여기서 공公은 원한으로 점철된 선천 세상을 종결짓는 1만 2천 도통군자의 수장首長입니다. 선천의 마지막 괘인 중화리괘重火離卦(䷝)의 선천판을 판몰이하시는 육오에 등장하는 공公과 같은 인물이지요. 소상전에서 공이 새매를 잡음으로써 도의道義에 어그러져 있던 선천세상을 후천 새 세상으로 해결한다고 하였습니다.

    공자께서도 뇌수해괘의 상육을 중히 여겨 계사전에 자세히 언급하였습니다. 역에 말하길 “공이 높은 담 위의 새매를 쏴서 얻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고 하니 공자가 말씀하시길 “새매라는 것은 새요, 화살은 그릇이요, 쏘는 것은 사람이니 군자가 그릇을 몸에 간직해서 때를 기다려 동動하면 어찌 이롭지 않음이 있으리오? 움직임에 막히지 않음이라. 이로써 잡음이 있나니 그릇을 이룬 후에 움직이는 것을 말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높은 담 위의 새매를 쏘아 잡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도다(用射隼于高墉之上獲之无不利): 이 구절을 대산大山 선생은 선천 종교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새매(隼)는 수리과의 조류로 ‘隼(새매 준)’은 隹(새 추) 밑에 十(열 십) 자로 교회의 십자가이며 기독교로 상징되는 선천의 종교들을 나타내고 있다고 합니다.

    선천 상극 세상을 종결짓는 인사의 대권자(公)와 천하사 핵심 일꾼인 1만 2천 도통군자가 선천 종교를 극복하여 하느님의 무극대도로 종교문화를 통일한다는 의미입니다. 후천 가을개벽은 기존 성자들이 전한 선천 종교의 가르침을 뛰어넘어 공자, 석가, 예수를 내려보내신 우주의 통치자 하느님이신 상제님의 무극대도로써 열 수 있습니다.

    * 이제 최수운은 선도(仙道)의 종장(宗長)이 되고 진묵은 불도(佛道)의 종장이 되고 주회암은 유도(儒道)의 종장이 되고 이마두는 서도(西道)의 종장이 되어 각기 그 진액을 거두고 모든 도통신(道統神)과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려 각 족속들 사이에 나타난 여러 갈래 문화의 정수(精髓)를 뽑아 모아 통일케 하느니라. (4:8:2~6)


    거슬리는 것을 푸는 것이다(以解悖也): 선천은 모든 인사가 도의에 어그러져서 온갖 패륜과 불의로 세상을 어지럽혀 왔습니다. 이제 후천시대를 맞이하여 우주의 원주인이신 상제님께서는 억조 신명들의 원과 한 그리고 창생들의 피맺힌 원한들을 풀어버리게끔 난법 해원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인간과 신명들의 원한이 사라진 무원無寃의 후천 선경세계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선천의 종교, 문화 등을 정리하고 후천 인존 문명을 열기 위해서는 충분한 역량을 길러 천하사 일꾼인 1만 2천 도통군자를 비롯하여 ‘다 함께 태을랑! 다 함께 판몰이!’로 선경세계를 건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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