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오브 헤븐

[영화산책]


글ㆍ문성숙 (서울 신촌도장)


은 <글레디에이터>와 같은 전형적인 영웅담은 아니다. 영화에 흐르는 감독의 균형적이고 조화로운 시각, 역사와 현실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전형적인 영웅을 탄생시키는데 제동을 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이름 아래 자행된 성전(聖戰)의 의미와 그 시대의 흐름을 현대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이해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영화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영화에 상제님의 진리와 인류의 마지막 전쟁, 상씨름에 대한 이해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역시 진리란 하나로 통한다는 보편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참회를 위해 참여한 십자군 원정길
십자군 원정은 서기 905년, 교황 우르반 2세가 신의 뜻이라며 7세기 이후 중동을 장악한 이슬람 군대의 지배하에 있던 예루살렘 탈환 전쟁을 벌이게 된 것이 그 시초다. 1차 원정에서 탈환된 예루살렘은 한동안 기독교 왕국에 의해 통치됐고 그중 이 영화의 배경은 8차에 이른 십자군 원정 중 3차 원정이 시작되던 12세기 말로, 볼드윈 4세가 통치할 때다.

이때는 기독교 왕국들의 분열과 이슬람의 강력한 지도자 출현으로 기독교-이슬람간의 아슬아슬한 평화공존이 붕괴 위기에 놓여있던 시기로, 십자군 기사들이 기독교도들이 통치하고 있던 예루살렘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영화의 초반부는, 전쟁으로 아이를 잃은 슬픔 때문에 아내가 자살하고 홀로 남아 대장간 안에서 묵묵히 철을 두드리는 주인공의 머리 위로 '영웅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 라는 글귀가 걸려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발리안은 가난한 대장장이일 뿐이지만, 자살한 아내를 비판한 사제를 죽이고, 그 죄사함을 받기 위해, 진정한 영웅이 되기 위해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도입부에서 사제의 죽음은 종교의 본 소명이 상실됐음을 상징한다. 발리안은 상극이 지배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원죄를 지닌 인간의 원형이며 그의 원정길은 참회와 구도의 길이 된다.

또한, 발리안의 잊혀졌던 아버지인, 십자군 기사 고프리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죄사함을 받기 위해 출정하는 장면은 선천의 모든 죄악의 근원을 뿌리로부터 찾아 해결하려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이념을 적용시킨 듯하다. 그러나 고프리는 발리안을 잡으러온 기사단과의 접전 끝에 아들에게 영주와 기사의 작위를 물려주고 사망한다.


평화도 사랑도 없었던 예루살렘!

예루살렘! 고프리가 발리안에게 들려주듯 양심이 지배하는 땅, 전쟁 대신 평화가, 증오 대신 사랑이 있는 곳…. 그러나 험한 여정 끝에 찾아간 그곳 역시 아슬아슬한 평화와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면죄받기 위해 찾아간 땅에서도 그 어떤 죄사함도, 영원한 안식도 찾지 못한 발리안에게 예루살렘의 국왕 볼드윈 4세의 여동생 시빌라와의 사랑이 찾아온다. 왕이 죽으면 여왕의 자리를 물려받는 시빌라는 이성의 상대로만 치부하기에는 심오한 상징적 인물이다.

여왕은, 물질적 풍요로움, 비옥함을 상징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두운 면도 갖고 있다. 임종을 앞둔 예루살렘 왕은 예루살렘 사수를 위해 발리안에게 시발라와의 결혼을 통해 왕위를 물려주려 한다. 그러나 발리안은 "몸은 권력에 복종해도 영혼은 자신의 것" 이라며, 예루살렘을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할 불가피한 전쟁을 거부하며 시빌라와의 결혼을 거절한다. 이로써, 그는 여왕이 주는 세속적인 권력과 풍요로움을 마다하고, 자신의 양심을 지킴으로써, 진정한 영웅이 되기 위한 조건을 갖추게 된다.

여기서 또 주목할 것은 발리안에게 왕위를 권유하는 예루살렘 왕의 모습이다. 문둥병으로 인해 가면을 쓴 그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일까? 이상적인 평화를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인간의 양심, 신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의 표현인 이 국왕의 모습은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다. 그것은 인류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일그러진 신에 대한 인식이며, 예루살렘 왕의 죽음은 평화를 향한 인류의 마지막 제어력이 사라짐을 의미하지 않을까.


최후이자 최상의 해원판, 전쟁
발리안 대신 왕위를 소유하게 된 기드 르 루지앵은 자신의 탐욕을 드러낸다. 이도교 처단이라는 명목 하에 평화로운 공존을 이루고 있었던 이슬람 세계의 군주 살라딘의 동생을 살해함으로써, 본격적인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그의 십자군은 살라딘의 군대에게 처참하게 패하게 되고 전쟁에 동참하지 않고 예루살렘 성에 남아있던 발리안은 의로운 수호자로서 살라딘과의 전투를 치르게 된다.

예루살렘 왕국의 마지막 성벽을 앞에 두고 싸우는 발리안과 살라딘의 모습은 어찌 보면 모순적인 대결구도를 이루고 있다. 그 속에는 종교적 가치를 위해서라기 보다, 가족과 백성을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발리안과 살해당한 여동생의 한을 풀기 위한(성지를 빼앗긴 이슬람세력의 오랜 한도 포함되지만) 살라딘이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영화는 발리안의 입을 빌려 종교를 악용하는 위정자들과 성직자들을 비난한다. 제각기 '신의 뜻' 이라 외치며 일으킨 성전(聖戰)은 신을 핑계로 영토와 재물을 빼앗기 위한 인간의 탐욕이라고 쏘아붙이는가 하면, '신이 이해 못하면 신의 뜻이 아니다'고 반박하며 더 이상 신을 팔아 전쟁을 일삼지 말라고 충고한다.

두 세력의 접전지인 예루살렘의 성벽에는 인간의 탐욕스러움, 100년 전 무참하게 짓밟혀 쫓겨난 이슬람인들의 원과 한, 종교의 대립, 인간의 도덕성과 양심, 그 모든 것이 녹아있다. 이들이 펼치는 마지막 전투 장면은 아비규환의 지옥도를 연상케 한다. 예루살렘 성의 마지막 보루인 성벽이 무너지고, 적과 아군이 한데로 뒤엉켜 공멸에 이를 무렵, 두 세력의 지도자는 타협점을 찾기에 이른다.

이 장면에서 문득 도전의 성구가 떠올랐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종이에 태극 형상의 선을 그리시며 "이것이 삼팔선이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씨름판대는 조선의 삼팔선에 두고 세계 상씨름판을 붙이리라. 만국재판소를 조선에 두노니 씨름판에 소가 나가면 판을 걷게 되리라." (道典 5:7)

영화의 설정은 현실세계의 상황과 너무나도 그럴 듯하게 맞아떨어진다. 지금까지 종교전쟁은 이 땅 위에 (신이 주시는) 평화를 심는다는 이름으로 정당화 시켜왔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현 세계정세 또한 자유와 정의의 실현이라는 허울좋은 명분을 앞세워 석유자원 확보와 경제적 이권을 독점하려는 목적 하에 이라크 침공을 감행하고, 북한이 핵보유국이라는 이유로 한반도 전쟁을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행동 또한 본질에 있어서는 종교전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상제님께서 100여 년 전에 짜놓으신 한반도의 3·8선, 그곳에 세우신 만국재판소 공사는 바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3(陽數)과 8(陰數)이 수리(數理)적 의미로 목(木)의 상징이요, 도덕(道德)이라는 뜻을 간직한 것처럼, 휴전선은 '3·8도덕선'으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가르는 이데올로기의 마지막 대립선이 된다.

평화수호라는 베일 뒤에 숨겨진 강대국들의 야욕과 모순,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마지막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공존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곳. 영화에서 상징하는 예루살렘 왕의 가면처럼, 3·8선을 지탱하는 일그러진 인간의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이 무너지고 그 야욕을 드러낼 때, 세계의 3·8선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전쟁만이 전 인류의 공감과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는 화해장이 될 수 있으며, 인류사의 상극의 모든 문제를 가름하는 최후 최상의 대결구도이다. 따라서 인간의 죄악과 모순, 그로 인해 생겨난 원과 한을 끌러낼 수 있는 한풀이장 또한 바로 이곳이 될 것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치열한 전투 끝에 만난 발리안과 살라딘, 두 세력의 지도자에게선 선악의 구분이 느껴지지 않는다. 백성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예루살렘을 순순히 넘겨주는 발리안의 모습을 보고 '저것이 진정한 영웅의 모습인가?' 하고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가 전쟁과 계급투쟁이라는 사실을 상기해볼 때, 영웅은 칼을 빼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 영웅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인물이며, 나아가 진정한 상생의 시대는 인간의 모든 원과 한을 씻어냄으로써만이 비로소 열린다는 자연의 섭리, 역사의 섭리를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로써, 발리안은 진정한 구원을 찾게 된다. 첫 번째는 자신의 죄를 대속하여 죽어간 아버지의 죽음으로써, 두 번째는 세속적인 모든 가치의 최고의 상징인 왕이 되기를 거절함으로써, 세 번째는 진정한 구원은 예수가 죽어간 곳에 세워진 예루살렘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희망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함으로써 삼변성도(三變成道)의 원리에 의해 구원이 완성된다.

영화는 반영웅적인 영웅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의 이상향이었던, '하늘의 왕국'은 선(善)과 의(義)를 행하는 인간의 머리와 가슴속에 있다. 또한, 역사의 주체는 신의 뜻을 왜곡하는 수동적이고 편협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역사의 주인이 되어 모든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인존사상을 말하고 있다.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人尊時代)니라. 이제 인존시대를 당하여 사람이 천지대세를 바로잡느니라. (道典 2:22)

천지의 해가 떨어지는 2005년 을유년, 천지의 불을 묻는 세계 대전쟁, 남북 상씨름의 시운이 코앞에 닥쳐왔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영웅이란 무엇인가? 어설픈 정치가의 달변인가? 허울좋은 이념에 사로잡힌 이데올로기인가? 아니면, 가공할 만한 첨단무기인가?

그것은 바로 선천역사 속에서 이루지 못했던 진정한 인간의 구원, 그것을 이루게 해줄 상제님의 진리의 군사가 아니겠는가. 지난 역사 속에서 인간이 자의적으로 해석해왔던 신의 계시가 아닌, 진리의 말씀으로 상제님께서는 이를 우리에게 명확히 일러주고 계신다.

이 우주의 진정한 절대자, 통치자 상제님의 지고하신 천명을 다시금 되새겨보며 글을 갈음한다.

너희들은 손에 살릴 생(生) 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道典 8: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