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 모시는 곳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 외(강찬수, 최연수, 송문선)

[입도수기]

조상님 모시는 곳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


강찬수(남, 75) / 광주오치도장 / 151년 음력 6월 입도

정화수 떠 놓고 비셨던 어머님
저는 전남 강진군 병영면 상락리 시골 농촌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3살이 되던 해 6.25 전쟁이 발발하였고, 경찰이셨던 아버님은 저희 지역에 출몰한 남로당 빨치산들과 교전 중 전사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할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였고, 아버지 모습은 기억 속에서 떠오르지도 않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저는 할아버지로부터 가정교육을 엄하게 받고 자랐으며, 할아버지의 지도와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제가 이런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장남이신 저의 아버지를 대신해 제가 장자의 자리를 지키게 해야만 집안이 평안하다는 신념이 강하셨던 분이십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는 저를 앞세워 다니셨으며 특히 조상을 돌보지 못한 자식들은 복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저에게 주지시키셨습니다.

그러면서 기제사 날 자식들이 참석을 하면 “지금은 서열이 밑에 있지만 앞으로 내가 죽은 후에 제사의 주관자는 손자인 찬수가 되며, 차례 서열도 내 자리는 손자인 찬수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저희 집안에서 결정권자는 저였으며 모든 대소사 일들에 대해서 저의 의견을 들어 가면서 결정하곤 했습니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어머님과 할머님의 손을 잡고 절에 따라다니면서 두 분의 불공 드리는 모습을 보았고, 집에서는 이른 새벽 정화수를 떠 놓고 천지신명님께 두 손 모아 빌고 계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종교 생활의 준거, “조상을 섬겨야 된다”
목포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먼 친척 누나를 따라 전도관을 다니며 교리 공부를 했었고,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는 친구 권유로 여호와증인 교리 공부를 하였으나 저의 생각과는 많이 달라 중도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천주교를 다니면서 영세 직전 단계까지 갔으나, 영세는 받지 않았습니다. 조상 제사 문제가 저에게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여러 사람들로부터 교회나 성당에 함께 다니자는 권유를 많이 받았지만, 어린 시절 저를 길러 주신 할아버지의 “조상을 섬겨야 된다.”는 유언을 따르지 못하는 행위가 될까 봐 거절하곤 했습니다.

제가 건축사가 되고 사찰. 교회. 성당 등의 설계 일을 할 때도 목사님이나 신부님 등과 면담하면서 직접적으로 종교 생활을 권유받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저는 교회를 다닐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길러 주신 홀어머님께서 제가 방학 중이나 사회생활 중에 고향 집에 가면 “요놈의 교회에 빠져 조상님 제사를 지내기나 할까?” 하는 걱정을 먼저 하시는데 “어떻게 교회를 다닐 수 있겠습니까?”라고 되묻기도 했습니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은 유일신이라고 하지만 저를 사랑해 주시고 길러 주신 아버지,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는 순간 잡신이 되고 마는 겁니까?” 하고 되물었던 것입니다.

이 진리는 조부와 모친의 유언과 일치하니
2010년 6월 9일 모든 집안일을 주관해 온 저의 아내가 5년여 동안 암이라는 병고에 시달리는 생활을 해 오다 소천했습니다. 함께 사는 동안 사소한 일로 인한 이해 부족으로 가슴에 못을 박고 말았던 죄책감과 잘못했던 기억들로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태로 1년 정도 보내면서 사후에라도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그 방법을 찿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TV 채널을 바꾸어 가면서 보게 된 것이 상생방송이었습니다. 이 방송을 보는 순간 여기가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즉시 인터냇 검색으로 알게 된 증산도 광주오치도장에 연락하여 찾아뵙고 상담을 하였으며,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그 내용이 저의 할아버지와 어머님의 유언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저의 마음은 평안하기만 합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수행하고 정성껏 기도하여,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진리를 찾는 세상 사람들에게 상제님 진리를 전함으로써 천지에 보은하고 조상님께 보은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보은! ◎

모두가 믿던 그분, 마침내 찾은 그 진리


최연수(여, 54) / 대구수성도장 / 151년 음력 6월 입도

상생방송으로 선조들이 믿던 그분을 찾아
저는 어릴 때부터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저렇게 수많은 별들 중에 어떻게 이 지구, 이 집에 태어나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이 있어도, 세월이 흘러도, 애매모호할 뿐 속 시원한 답을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보며 “하늘에 계셔서 하느님입니까? 한 분이라서 하나님입니까?  기로 작용하기 때문에 좋은 세상이 되는 게 더딘 것입니까?”라는 여러 의문을 던지며 한탄하기만 했습니다.

또 개인적인 삶은 뒤로하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몸을 바치신 분들이 역경과 고난을 겪으신 것을 생각하면, ‘왜 그렇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지?’라는 의문이 들고 참으로 모순덩어리 세상이라고 여겨지면서 답을 구하지 못해 답답했습니다.

답을 찾지 못한 의문을 가슴에 담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홍익인간 재세이화’라는 큰 가르침을 주신, 우리 조상님들께서 믿어 온 그분을 믿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TV 리모컨을 들고 앉다가 넘어지면서 채널이 바뀌어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화면 우측 상단에 무궁화꽃이 있어 국회방송인가 보다 생각하며 역사 강의를 시청하였습니다. 그런데 거기 나오는 첫 도전 성구 말씀이 “나는 옥황상제니라.”였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방송을 자세히 보니 국회방송이 아닌 상생방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불현듯 엄마에 대한 추억이 생각났습니다. 어릴 적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빌던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아서 “엄마 누구한테 빌어?”라고 물으니 “칠성님께 빈다.”고 하셨던 기억이 떠오른 것입니다.

이렇게 만난 상생방송을 통해 종도사님의 <개벽문화 콘서트>와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시청하면서 제대로 된 역사를 알게 되어 무척 좋았습니다.

두 번의 두드림 끝에 신앙의 길로
그 뒤 증산도를 방문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인터넷 검색 후 대구수성도장에 연결이 되어 방문을 하였습니다. 정헌주 도생님과 담화를 나누고 환단고기와 소책자, 주문지를 받았고 『춘생추살』 책을 구입했습니다. 상생방송을 보면서 심고문과 주문을 읽는 생활 신앙에 대해 배웠고 『춘생추살』을 완독하였으며, 쉽게 가르침을 주셔서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좋았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태상종도사님의 말씀으로 원시반본과 생장염장 이치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잘 맞지 않고 몸도 약하고 신앙하기 힘든 사람인가라는 생각으로 수원에 있는 딸에게 신앙을 권유하여 작년 10월에 입도 교육과 21일 정성 수행을 했지만 아닌 것 같다고 하여 마음을 접었습니다. 몇 년 동안 마음에만 담아 두고 가족들이 원치 않아 상생방송을 보지 못하는 세월을 보내다가, 유튜브를 통해 다시 증산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구수성도장에 재차 방문하여 입도해야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정헌주 도생님께 연락을 드려서 이번에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입도하기 위해 7일 동안 105 배례와 전 주문, 태을주 합송으로 한 시간 반의 정성수행과 팔관법 교육(병란 대비 5강)을 통해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졌고, 방송을 통해 알고 있었던 내용을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입도 진행을 도와주신 한승철 수호사님과 김자영 포감님께 감사드리며, 거룩하신 상제님의 상생의 무극대도를 일심으로 잘 닦아 천하사 일꾼이 되어 보은하겠습니다. 보은!!! ◎

진리의 놀라움은 감동이 되어


송문선(남, 59) / 안양만안도장 / 151년 음력 6월 입도

인도자의 따뜻한 마음과 성품에 감화되어
제가 인도자이신 이의준 도생님을 처음 만난 때는 3년 전 과일 장사를 시작할 때였습니다. 과일 도매상을 하고 있던 당시 이의준 사장님은 저에게 친절하게 장사 방법을 가르쳐 주었기에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이 사장님은 당시 효심사라는 절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분의 따뜻한 마음과 성품에 감화되어 저도 함께 효심사를 다녔습니다.

저는 어려서 부모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해 외로움을 많이 탔으며 술로 보낸 세월 또한 많았습니다. 5년 전 술을 끊고 이 사장님과 인연을 맺으며 살았는데, 어느 날 이 사장님이 대순진리회에 들어갔다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대순에 대해서는 조금 들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장님을 믿었기에 한번 따라가 봤는데, 막무가내로 가입하라는 듯이 강요하는 분위기가 싫었고 그들의 말 또한 앞뒤가 잘 안 맞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후 이 사장님께 연락조차 안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올봄 이 사장님이 증산도에서 수행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전부터 상생방송을 자주 보았던 터라 증산도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사장님께 바로 전화를 했고 나도 한번 가 보겠다고 얘기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인생을 고독하게 사시다 돌아가셨습니다. 불교를 믿으면 죽어서 극락에 간다는 말을 믿고 신앙하셨던 어머니가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히 계시리라 생각했지만 왠지 제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답답함이 풀리며 감동과 확신이 밀려와
그러던 차에 증산도 안양만안도장을 방문하였고, 낯선 분위기에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수호사님을 소개받아 짧은 시간이었지만 교육을 받았습니다. 대순진리회와는 분위기가 너무 다르고 도생님들도 밝게 맞이해 주셔서 마음도 편안했습니다. 상제님께서 “나를 잘 믿으면 너희 선령을 찾아주리라.” 하시며 조상님을 해원시켜 주시고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뭔가 답답했던 가슴이 풀리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9천 년의 역사가 있었고 원래 우리 민족이 상제님을 신앙해 왔으며 일제 강점기 때는 700만 명이나 신앙했던 국교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랐습니다. 수호사님 이야기를 들으며 상제님이 곧 하느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후 도장을 다시 방문하여 우주가 사람 농사를 짓는 우주 일 년 이야기와 함께 우주의 가을개벽 시기가 다가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통해 우리나라와 인류를 구하시는 틀을 짜 놓으셨고 그 틀대로 지금 세상이 펼쳐져 나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외 많은 것을 들으며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믿음을 크게 가져라’는 말씀의 뜻을 따라
처음 도장을 방문한 후부터 21일간의 새벽 수행을 권유받았습니다. 건강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아 수행을 시작하였는데, 새벽 수행에 참여하시는 분들의 진지한 모습과 정성을 지켜보며 상제님에 대한 믿음을 더욱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새벽에 일어나기가 어려웠고 배례도 따라 하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방석에 앉아 있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을 크게 가지라’고 하신 상제님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해 열심히 하였습니다.

치성에 참석하여 종도사님 말씀도 듣고 수호사님 강훈도 들으며 진리에 대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도전 말씀도 엠피쓰리(MP3)에 담아 차로 이동하면서 매일 들었는데 지금까지 6번 정도 들은 것 같습니다.

수호사님께서 보내 주신 팔관법 교육도 영상으로 다 이수하였습니다. 그 결과 모든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장에 다니고 수행을 하면서도 완전한 믿음이 없었는데, 수호사님과 공부하는 동안 상제님의 존재가 사실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과 상제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 후 도장에 오면 처음과 다르게 상제님과 태모님을 바라보는 제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또한 제가 입도 교육을 받고 매일 새벽 수행을 하면서 도장에 다니는 것이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입도라는 것이 개벽기에 병란으로부터 세상 사람들을 살리는 일임을 깨달았고, 상생방송을 보며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 말씀이 참진리 말씀이라는 것을 자각하였습니다. 늘 보던 상생방송이 다르게 느껴지며 감사한 마음이 커졌습니다. 특히 저의 인도자이신 이의준 도생님께 감사를 드리고, 조상님께도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입도를 하고 나면 불교의 극락보다 더 높이 계신 상제님 전으로 어머니를 인도해 드리는 천도식을 올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제님 진리를 소개하고 상생방송을 적극 권하며 진리 공부 또한 열심히 하여 세상 사람들을 구하는 태을랑이 되겠습니다. 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