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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주역과 무극대도 | 주역 열세 번째 상제님의 진리[天火]와 하나[同人]가 되는 천화동인괘 ䷌


    한태일(인천구월도장 교무도군자)

    같이하는 사람들(同人)


    천화동인괘天火同人卦(䷌)는 주역 13번째 괘로서 위에는 하늘괘(天,☰)가 있고 아래는 불괘(火,☲)가 있습니다. 동인同人이라 함은 어떤 일에 뜻을 같이하여 모인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하늘(天)과 불(火)이 뜻을 같이(同)하는 사람(人)이 되는 것일까요? 천화天火가 동인同人이 되는 이유는 하늘은 위에 있고, 불은 위로 타올라 결국 하늘로 올라가니 ‘하늘과 불[天火]이 서로 같이하는 것[同人]’이죠. 동인의 뜻과 유사한 의미를 주역에서 찾아보면 “하늘에 근본한 것은 위와 친하고, 땅에 근본한 것은 아래와 친하니 곧 그 무리를 따른다(本乎天者親上 本乎地者親下 則各從其類也 「중천건괘, 문언전」).”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처럼 천화동인괘는 같은 부류나 같은 속성을 가진 만물이 함께하는 것(유유상종類類相從)으로 그중에서 특히 사람을 내세워 ‘동인同人’이라 하였습니다.

    동인괘 바로 앞에는 천지가 막혀 있다는 천지비괘天地否卦(12번째 괘)가 놓여 있는데요. 「서괘전」에 보면 세상 이치가 끝까지 막히는 것은 없기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힘을 합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동인괘가 왔다고 합니다.

    또한 「계사전」에 있는 ‘궁窮·변變·통通’이라는 말로 풀어 보면 즉 ‘천지가 막혀 버리면 궁窮하게 되고, 그러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변혁變革시켜 마침내 막힌 세상을 통通하게 만든다’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세상만사라는 것이 결국 뜻있는 사람들 손에 의해 해결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동인괘 바로 뒤에는 화천대유괘火天大有卦(14번째 괘)(䷍)입니다. 동인괘에서 하늘과 불이 서로 상하 위치를 바꾸면 ‘크게(大) 두었다(有)’는 대유괘입니다. 태양이 하늘보다 높은 데서 온 세상을 다 비춰 주니 대유大有인 것이죠.

    그리고 천화동인괘와 비교되는 것이 바로 지수사괘입니다. 천화동인괘天火同人卦(䷌)는 ‘하늘과 불이 같이한다(同)’는 괘이며, 지수사괘地水師卦(䷆)는 ‘땅속에 물이 모인다(師)’는 괘입니다. 두 괘를 보면 ‘천天 ⇔ 지地, 화火 ⇔ 수水, 동인同人 ⇔ 사師’가 서로 비교되는데요. 즉 하늘(天)과 땅(地), 불(火)과 물(水)은 서로 반대 개념이며, 하늘과 불은 양기陽氣로 위에서 서로 어울리며, 땅과 물은 음기陰氣로 아래에서 같이 어울려서, 뜻이 통하는 사람(同人)이 되거나 혹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군대(師)가 되니 그 의미는 똑같습니다. 참고로 ‘사師’는 주周나라 때 2,500명 규모의 군대 조직을 뜻하는 말입니다.


    ★ 상제님 대도진리: 천화동인괘는 대도진리로 보면 ‘하늘(天)의 광명(火)의 도道로써 세상 사람들과 함께(同人)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인괘의 의미를 확대하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상생相生의 정신’과도 상통합니다. 동인괘 바로 앞에는 천지가 막혀 있어 선천을 상징하는 천지비괘가 놓여 있고 그다음에 오는 괘가 천화동인괘입니다. 그러므로 천화동인괘는 선천 상극 세상을 종결짓고 상생의 새 세상을 열기 위해 ‘천하사 일꾼은 상제님의 진리[天火]와 하나[同人]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태상종도사님의 도훈 말씀으로 동인괘의 뜻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주 변화 법칙이라는 것이 금화교역金火交易, 하추교역夏秋交易이 될 때는 우주의 주재자, 이 세상을 다스리는 절대자 주인공이 오신다. 상제님께서 상극이 지배한 선천 세상에 천지에 가득 찬 원신과 역신을 다 묶어서 조화정부를 만들어 천지개벽 공사로 신명해원을 시켜서 새로운 상생의 문화, 상생의 세상을 연다는 것을 가르쳐 줘야 한다. 상제님 신도는 그것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그것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것이 증산도의 존재 이유이다. 우리는 능력이 허락하는 한계 내에서 상제님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해서 같이 상제님 신앙을 하고 개벽철에 같이 살아야 한다.”


    그리고 종도사님께서도 동인괘에 대한 말씀을 내려 주셨습니다.

    “동인괘는 하느님이 나타나시고 그 아래에 진리 태양이 떠 있어요. 온 천하 사람에게 천주님을 믿으라고, 인간으로 오신 도솔천 천주 미륵님을 믿으라고 하는 괘인 것입니다. 동인은 모든 사람을 내가 믿는 진리로 동화同化하게 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이번에 동인당同人堂 당주가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통일 문화 역사, 남북통일의 역사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손을 잡아야 동인同人이 되고, 또 서로 사랑하는 동인同仁이 되어 결국에는 상생의 세상인 대인대의大仁大義한 대동세계大同世界를 건설할 수 있는 것입니다.

    * 모든 나라가 다 손을 잡아야 조화되느니라. 손을 하나만 내두르면 소리가 없고, 두 손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어떻게 하든지 서로 화목이 되어 합심(合心)을 해야 한 손을 잡느니라. (道典 5:375:1~3)



    동인同人이 되어야 대동大同


    ☯ 괘 사
    同人于野(동인우야)면 亨(형)하리니 利涉大川(이섭대천)하며 利君子(이군자)의 貞(정)하니라
    들에서 사람들과 같이하면 형통하리니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우며 군자의 바름이 이로우니라.


    ☞ 들에서 사람들과 같이하면 형통하리니(同人于野亨): 같이하는 사람을 동인同人이라 하며, 같이하는 사람 중에서 뜻이 같은 사람을 동지同志라 합니다.

    그리고 친소의 차별 없이 평등하게 사랑하는 것을 동인同仁이라 하며, 천하가 화평한 것을 일러 유가에서는 대동大同이라 합니다. 이 네 가지 사동四同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자주 같이 동인同人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동지同志가 되며 똑같이 대해 줘야(동인同仁) 크게 하나가 되는 대동大同 세계를 이룰 수 있습니다. 즉 우리들이 성취해야 할 대동 세계도 결국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같이함(同人)’에 달려 있습니다.

    * 내가 이제 후천을 개벽하고 상생의 운을 열어 선(善)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리라. 만국이 상생하고 남녀가 상생하며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화합하고 분수에 따라 자기의 도리에 충실하여 모든 덕이 근원으로 돌아가리니 대인대의(大仁大義)의 세상이니라. (2:18:3~5)


    사람과의 관계에서 소통이 중요합니다. 그에 못지않게 동인 입장에서는 소통의 방법 또한 중요하죠. 몇몇 사람이 모여서 밀실 담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게 공개적이고 민주적 절차에 의해 공정公正하게 해야(于野) 구성원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습니다(亨).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단체, 사회나 모두 사람들과 함께해야 오래 존속할 수 있습니다.

    ☞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우며(利涉大川): 주역에서는 64괘의 상황의 추이를 주로 ‘큰 내를 건너는 것(涉大川)’으로 표현하는데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利)’, 혹은 ‘이롭지 않다(不利)’로 나타냅니다. 여기 동인괘의 경우, 이롭다(利)는 ‘할 수 있다, 가능하다(能)’의 뜻으로 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동인괘는 함께하는 사람의 마음이 같아서 어떤 일도 능히 극복할 수 있기에 큰 내를 건널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 군자의 바름이 이로우니라(利君子貞):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기에 일평생 동인同人을 해야 합니다. 오래도록 동인을 하려면 무엇보다 ‘바르게(貞 = 正)’ 해야 하죠. 만나는 사람들과 올바르게 동인해야 좋은 관계가 지속됩니다.

    ★ 상제님 대도진리: 세상에는 수많은 동인이 있습니다. 동인괘에서 말하는 동인은 누구든지 쉽게 만나 친목을 도모하는 세속의 동인이 아니라, 추살 개벽기에 창생들을 살려 내기 위해 ‘천하사 일꾼들이 하느님과 ‘동同(함께하는) 인人(사람들)’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화동인괘는 ‘천상에 계시는 하느님[天,☰]의 대도를 받들어 현실 역사에서 일월의 지도자[火,☲]와 일꾼들이 고락을 함께[同人,䷌]하며 가을개벽의 대업을 성취한다’는 괘입니다. 새 세상을 열고 창생을 구원하는 천지대업에 동참하는 동인同人이 되어야 형통(亨)하여 후천이란 강을 건널 수 있는데(利) 이는 오직 일꾼의 바른(貞) 심법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 일심이면 천하를 돌리는데 다른 무엇이 필요하겠느냐? (8:81:3)


    ► 우야于野: 만인이 볼 수 있는 들에서 사람들과 같이한다는 것은 공정과 명분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대도진리로 보면, 천도는 공평무사公平無私하기에 상제님께서도 지공무사至公無私하게 천리天理를 집행하십니다.

    * 천리는 지공무사(至公無私)하여 털끝만큼의 사욕도 없느니라. (3:305:6)

    * 나의 일은 추호도 사정(私情)이 없으니 부디 죄를 짓지 마소서. (2:105:9)


    ► 괘사에 가을을 의미하는 ‘利(이롭다)’가 두 번씩 나오는 함의: 첫째로 ‘대천이란 우주 가을(후천)로 넘어가는 데 이로우며(利涉大川)’, 둘째로 그냥 군자가 아니라 ‘후천 가을의 도통군자(利君子)’를 상징한다고 봅니다. 즉 이번 가을 개벽철에는 상제님의 가을 추수 진리와 동인을 해야 이로우며, 또 이번 후천 개벽기의 주인공은 인간 씨종자를 추리는 상제님의 핵심 일꾼인 일만 이천 도통군자라는 것입니다.

    동인同人이 상생相生


    ☯ 단 사
    彖曰(단왈) 同人(동인) 柔(유) 得位(득위)하며 得中而應乎乾(득중이응호건)할새 曰同人(왈동인)이라
    단전에 이르길 “동인은 유柔가 제자리를 얻으며 또 중中을 얻어 건乾에 응하는 것을 일러 동인이라 한다.

    同人于野亨利涉大川(동인우야형이섭대천)은 乾行也(건행야)오
    同人于野亨利涉大川은 건乾의 행함이요.

    文明以健(문명이건)하고 中正而應(중정이응)이 君子正也(군자정야)니
    문채 나고 밝음으로써 강건하고, 중정에 응하는 것이 군자의 바름이니

    唯君子也(유군자야) 爲能通天下之志(위능통천하지지)하니라
    오직 군자라야 능히 천하의 뜻과 통할 수 있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 동인은 유가 제자리를 얻었으며 또 중을 얻어 건에 응하는 것을 동인(同人柔得位得中而應乎乾曰同人)이라 한다: 유柔가 제자리를 얻었다는 것은 동인괘의 하괘에서 육이六二(음효)가 음 자리에 와서 제자리를 얻었다는 뜻이며. 중을 얻은 것은 육이가 하괘에서 득중하였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중정中正한 육이가 상괘인 건괘(乾,하늘괘,☰)에서 중정한 구오九五와 서로 상응하고 있는 것이 동인괘라고 하였습니다.

    ☞ 同人于野亨利涉大川은 건의 행함(乾行也)이요: 동인이 형통하고 대천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는 것은 동인괘의 상괘인 건도乾道(☰)의 성정이 강건하고 스스로 굳세어 쉼이 없어 그렇게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문채 나고 밝음으로써 강건하고 중정에 응하는 것이 군자의 바름(文明以健中正而應君子正也): 이 구절은 동인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말하고 있습니다. 문명文明한 것은 하괘(불괘,離卦,☲), 강건한 것은 상괘(하늘괘,乾卦,☰)의 괘덕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상하괘의 2효와 5효는 서로 중정中正으로 상응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도(乾道)는 강건하기에(乾은 健也, 「설괘전」) 스스로 굳세어 쉼이 없습니다(自彊不息, 「건괘, 대상」). 그리고 중정지도中正之道를 가지고 있어야 올바른 군자의 표상이죠.

    ☞ 오직 군자라야 능히 천하의 뜻과 통할 수 있는 것이다(唯君子也爲能通天下之志): 밖으로는 밝은 지혜를, 안으로는 어떤 외압에도 꺾이지 않는 강건한 기상을 가진 군자만이 하늘의 뜻을 올바르게 받아 내릴 수 있으며, 뭇사람들과도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 상제님 대도진리: 동인괘 단전에서 ‘동인은 이번 개벽기에 창생들을 살려 내는 일을 같이(同)하는 사람들(人), 즉 천하사 일꾼들을 상징’하며, 현실 역사에서 천하사 일꾼들이 천도天道의 주관자이신 천주天主님의 무극대도無極大道로써 의통성업醫統聖業을 집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창생을 살려 내는 일을 같이하는(同人) 일꾼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천화동인괘의 하괘인 리괘는 환한 불과 밝은 해를 나타내어 문명을 상징하고, 상괘인 건괘는 하늘의 도(乾道)를 상징하며 강건합니다. 그러므로 일꾼은 내면으로 명철함과 변치 않는 믿음, 외적으로 강건한 심법으로 천하사에 임하여야 합니다. 강유剛柔를 겸비한 일꾼이 되어야만 세상 사람들과 동인할 수 있습니다.

    * 마음은 성인의 바탕으로 닦고 일은 영웅의 도략을 취하라. (2:58:6)

    * 대사업을 하자면 덕(德)과 유(柔)만 가지고는 할 수 없다. (11:106:10)


    불(火)은 하늘(天)과 친하므로 동인同人할 수 있지만 신기하게도 주역에서 ‘리離는 건괘가 된다(離는 爲乾卦, 「설괘전」)’고 합니다. 즉 리괘離卦가 건괘乾卦가 된다는 것이죠.

    그 이유는 선천 복희팔괘의 일건천(一乾天,☰) 자리에 후천 문왕팔괘의 이허중(離虛中, ☲)이 와서 그렇습니다만, 진정한 의미는 ‘천하사 일꾼들(火, 離卦, ☲)이 하느님(天, 乾卦, ☰)과 하나가 되어야(同人) 대업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결론적으로 ‘상제님의 혼이 되고 증산도의 수호신이 되어야’ 천지대업을 이룰 수 있습니다.

    ☯ 대 상
    象曰(상왈) 天與火(천여화) 同人(동인)이니 君子(군자) 以(이)하여 類族(유족)으로 辨物(변물)하느니라
    대상전에 이르길 “하늘과 더불어 불이 동인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같은) 무리와 족속끼리 함으로써 물건을 분별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 하늘(天)과 불(火)이 같이하는 것이 동인同人입니다. 세상 만물을 들여다보면 모두 같은 것끼리 함께하고 있습니다. 즉 만물은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같은 종류種類와 족속族屬으로 같이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 또한 ‘같은 사람끼리(同人)’ 어울립니다. 즉 혈연으로 동인하거나, 지연으로 동인하거나, 혹은 갖가지 이유 등으로 동인하고 있습니다. 군자는 동인괘에서 ‘끼리끼리(類) 같이하는(族)’ 동인의 이치를 깨우쳐 만물을 분류分類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동인을 문門에서 해야


    ☯ 육효사
    初九(초구)는 同人于門(동인우문)이니 无咎(무구)리라
    초구는 동인을 문에서 함이니 허물이 없으리라.

    象曰(상왈) 出門同人(출문동인)을 又誰咎也(우수구야)리오
    소상전에 이르길 “문에 나가서 동인하는 것을 또 누가 허물하리오?”라고 하였습니다.


    ☞ 동인괘는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는 괘입니다. 함께한다는 것은 어디서, 어떻게 만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초구는 첫 효라서 문門에서 만나는 것이며, 양 자리에 양효가 와서 바른 자리에 있으므로 허물 지을 일도 없으니 누가 허물할 수도 없습니다. 만약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만나거나, 혹은 밀실에서 단둘이 만난다면 공정하지 못하며 오해의 소지가 있죠.

    九二(구이)는 同人于宗(동인우종)이니 吝(인)토다
    구이는 동인을 종당에서 함이니 인색하도다.

    象曰(상왈) 同人于宗(동인우종)이 吝道也(인도야)니라
    소상전에 이르길 “동인을 종당에서 하는 것은 인색한 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 육이六二는 하괘에서 가운데 있고 음 자리에 음효가 와서 제자리에 있으므로 중정中正한 자리입니다. 동인괘에서 육이는 유일한 음효로서 나머지 다섯 양효와 함께할 수 있으며, 모든 양효들이 하나밖에 없는 음효(육이)와 동인을 원하지만, 정작 육이는 자기와 정응正應 관계인 구오九五하고만 동인을 하고자 합니다. 동인괘는 뭇 사람들과 함께 여민락與民樂하여야 하는데 구오 혼자하고만 동인하니 인색한 것이 되죠.

    종宗은 종가宗家나 종단宗團 등 어떤 집단의 중심이 되는 것을 뜻하므로 대동단결을 추구하는 동인괘의 취지로 볼 때는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반대편까지 포함하여 뭇 사람들을 포용해야 하는 동인괘의 성격과는 맞지 않아 인색하다고 하였습니다.

    ★ 상제님 대도진리: 세상 사람들과 두루 사귀어야 세상 물정과 인심에 눈떠 천하사 사업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도 천하를 유력하시며 세상사를 직접 경험하셨습니다.

    * 증산께서 여러 해 동안 각지를 유력하시며 친히 만상(萬相)을 둘러보신 후에 (2:1:1)


    상제님의 대도진리는 어느 특정 계층이나 부류에 국한해서 전할 선천의 묵은 진리가 아니라 창생들을 살려 내고 새 세상을 여는 하느님의 진리라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크고 작고 깊고 얕음이 천층만층 구만층”(8:3)인 세상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동인을 해야 합니다.

    *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 속에서 살아야 귀를 얻는 것인데 몹쓸 놈들은 사람을 피해서 사니 말을 들어도 무슨 소리인 줄을 모르느니라. 사람이 귀를 얻어야 좋은 소리, 낮은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나니 사람이란 사람이 많은 곳으로 뻗쳐야 하느니라. (8:3:3~4)

    * 대인을 배우는 자는 세상 사람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해야 하느니라. 두루 놀아야 신선(神仙)이니라. (8:4:3~4)


    九三(구삼)은 伏戎于莽(복융우망)하고 升其高陵(승기고릉)하야 三歲不興(삼세불흥)이로다
    구삼은 군사를 가시덤불 속에 숨겨 놓고 높은 언덕에 올라 3년이 되어도 일어나지 못하도다.

    象曰(상왈) 伏戎于莽(복융우망)은 敵剛也(적강야)오 三歲不興(삼세불흥)은 安行也(안행야)리오
    소상전에 이르길 “군사를 가시덤불 속에 숨겨 놓음은 적이 강함이오, 3년을 일어나지 못함은 어찌 행할 수 있으리오.”라고 하였습니다.


    ☞ 구삼九三은 하괘의 끝자리이며 양 자리(3효)에 있는 양효(⚊)로 비록 기운은 강하지만 중中도 얻지 못하였고, 욕심 또한 많아서 바로 밑에 있는 유일한 음효인 육이를 차지(同人)하려 합니다. 그래서 원래 육이와 정응正應하고 있는 구오와의 관계를 끊게 하려고 구삼이 작전을 펼칩니다. 그런데 구오는 군왕이라서 워낙 강하기 때문에 정공법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숲속에 군사를 매복시켜 공격하려 합니다. 그래서 3년 동안 높은 구릉에 올라가 기회를 엿보았지만 끝내 군사를 출동시키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만큼 구오가 강해서 삼 년 동안 구삼은 출동 한 번 못 해 봤으니 ‘이제 무엇을 행할 수 있으리오’라며 탄식을 하고 있네요.

    九四(구사)는 乘其墉(승기용)하나 弗克攻(불극공)이니 吉(길)하니라
    구사는 그 담장에 올랐으나 능히 치지 않으니 길하니라.

    象曰(상왈) 乘其墉(승기용)은 義弗克也(의불극야)오.
    其吉(기길)은 則困而反則也(즉곤이반칙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그 담장에 올라탄 것은 의리가 이기지 못함이오. 그 길함이란 즉 곤란해서 원칙대로 돌아옴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사九四는 음 자리(4효)에 양효(⚊)가 와서 제자리가 아니라서 구삼九三처럼 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군왕(구오) 밑에 있는 자리라서 스스로 자중自重하고 있네요. 처음에는 육이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에 주군主君인 구오를 공격하려 담장 위에 올라섰으나 주군을 공격한다는 것은 의리상 할 바가 아니라는 판단하에 담장에서 내려오니 길하다고 하였습니다. 소상전에서도 담장에 올라탄 것은 육이와 동인을 맺고 싶은 마음에 그랬으나 의리상 실행에 옮기지 않았으며, 그런 과정에서 심적 갈등이야 겪었겠지만 본심을 회복하여 원래 자리로 돌아가니 길하다고 하였습니다.

    ★ 상제님 대도진리: 이 풍진세상을 살다 보면 천하사 일꾼 또한 감정을 지닌 사람인지라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 좌절도 합니다. 그래도 사람은 본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살펴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인 철부지들에게 개벽 소식을 전해 대도진리와 동인해 주려 하건만, 돌아오는 것은 냉대와 무시뿐입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도 “천하사를 하는 자는 넘어오는 간을 잘 삭여 넘겨야 한다.”(8:33:1)고 하시면서 “남의 비방과 조소를 잘 이기어 받으면 내 세상에 복(福) 탈 것이 크다.”(8:33:4)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금란지교金蘭之交


    九五(구오)는 同人(동인)이 先號咷而後笑니(선호도이후소) 大師克(대사극)이라야 相遇(상우)로다
    구오는 동인이 먼저 부르짖어 울다가 뒤에는 웃으니 대군으로 이겨야 서로 만나도다.

    象曰(상왈) 同人之先(동인지선)은 以中直也(이중직야)오 大師相遇(대사상우)는 言相克也(언상극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동인지선同人之先은 중직함으로써요, 대사상우大師相遇는 서로 이김을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구오는 중정한 자리에 있는 군왕으로 동인괘에서 육이와 유일하게 잘 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육이를 독차지(同人)하고자 하는 많은 양효들, 그중에서 특히 구삼과 구사는 군사까지 동원하여 둘을 못 만나게 하니 슬퍼합니다. 그렇지만 숱한 역경을 헤치고 결국에는 서로 만나게 되어 웃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참사람과 같이한다(同人)는 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하듯 치열한 싸움에서 이겨야 가능한 일이죠.

    소상전에서 먼저 부르짖고 우는 것은 구오가 중정하여 중도를 지키며 올바르게 하는 것이고, 대군으로 이겨야 서로 만난다는 것은 군사를 이끌고 삿된 구삼과 싸워 이긴 후 육이를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인괘 구오는 중요해서 공자가 주역 「계사전」에서 다음과 같이 보충 설명을 하였습니다. “동인이 먼저 부르짖어 울다가 뒤에 웃는다.”고 하니 공자 왈 “군자의 도가 세상에 나가 벼슬길에 나서기도 하고 초야에 물러나 있기도 하며 침묵하기도 하고 할 말을 하기도 한다(君子之道或出或處或黙或語), 두 사람이 마음을 하나로 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을 수 있으며(二人同心其利斷金). 두 사람이 마음을 하나로 하여 말하면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同心之言其臭如蘭).”고 하였습니다.

    여기 「계사전」의 구절에서 ‘금란지교金蘭之交’라는 사자성어가 나왔습니다. 이 말은 ‘단단하기가 쇠와 같고 아름답기가 난초 향기와 같은 사귐’이라는 뜻으로,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마음이 맞고 친분이 두터워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헤쳐 나갈 만큼 우정이 깊은 사귐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친구 사이의 굳은 우정을 이르는 말인 금란金蘭을 붙여 친한 친구끼리의 모임 이름도 금란계金蘭契로 만들어 친목을 다져 갔습니다. 비슷한 말로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말도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도 “친구를 삼으려면 아주 삼아야 하고 같이 죽고 같이 살기로 삼아야 한다.”(8:49:3)고 하셨으며, “친구를 둬도 사생결단死生決斷을 같이할 다정한 놈을 두어야지, 친구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8:49:7)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런 친구야말로 금란지교金蘭之交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상제님 대도진리: 천화동인괘는 하늘(天)과 불(火)이 같은 길을 걷게 되는(同人)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도진리로 설명하면 ‘현실 역사에서 천하사 일꾼들(火,☲)이 천상의 하느님(天,☰)과 하나가 될 때(同人) 천지대업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대업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겪겠습니까!

    ► ‘먼저 부르짖어 울다가 뒤에 웃는다(先號咷而後笑)’: 이 구절은 상제님 도문에 들어오는 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제님의 진리와 동인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이죠.

    * 나는 해마(解魔)를 주장하는 고로 나를 따르는 자는 모든 복마(伏魔)가 발동하나니 복마의 발동을 잘 받아 이겨야 복(福)이 이어서 이르느니라. (9:2:1~2)

    * 삼생(三生)의 인연이 있어야 나를 따르리라. (2:78:8)


    ‘상제님 진리를 만나는 것’이 바로 동인괘에서 말하는 진정한 ‘동인同人’입니다. 모사재천하시는 상제님이 성사재인하는 추수자를 만나시는 것도 동인이요, 일월의 지도자가 천하사 일꾼을 만나는 것도 동인이며, 그 일꾼이 인연 있는 자를 만나는 것 또한 동인입니다.

    ► 대군으로 이겨야 서로 만나도다(大師克相遇): 이 구절은 어떻게 상제님과 동인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동인하는 방법은 ‘대군(大師)으로 이겨야(克) 만날 수 있다(相遇)’는 것입니다. 이 말은 비사秘辭로 ‘대사大師’는 상제님 대도 사업을 인사적으로 추수하시는 ‘대사부大師父’를 일컫는 말이며, ‘극克[ = 十(무극제) + 兄(=口+儿: 하늘을 향해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사람 ⇨ 축문祝文을 읽는 제주祭主)]’은 무극제이신 상제님 개벽사업의 장자長子라는 뜻입니다. 즉 상제님의 천하사를 매듭짓는 추수도운의 대사부이신 ‘일월의 두 분 지도자를 통해서 상제님의 무극대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上九(상구)는 同人于郊(동인우교)니 无悔(무회)하니라
    상구는 동인을 들에서 함이니 뉘우침이 없느니라.

    象曰(상왈) 同人于郊(동인우교)는 志未得也(지미득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동인을 들에서 한다는 것은 뜻을 얻지 못함이다.”고 하였습니다.


    상구는 동인괘의 끝자리로 세상 사람들하고 동인하지 않고 멀리 떨어져 지내는 자리입니다. 사람들하고 더불어 지내지 않으니 후회할 일도 크게 없는 것이죠. 초야에서 홀로 은둔해 지내니 세상사에 큰 욕심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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