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으로 육임을 짜라

[태상종도사님 말씀]
도기道紀 133년 11월 19일(수), 특명 7호 도훈 발췌

개벽기에 살아남는 길


인류 역사를 통해서 모든 신앙이라 하는 것은 진리를 믿는 것이다. 불교는 석가모니의 진리를 믿고, 기독교는 예수 진리를 믿고, 각색 종교에서 자기네 진리를 다 바쳐서 신앙했다. 마찬가지로 우리 증산도도 상제님의 진리를 신앙한다. 우리 증산도는 첫째 기본적으로 봉청수奉淸水를 하고, 주문 읽고, 기도한다. 기도 생활을 게을리하는 신앙은 있을 수 없다.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은 신명이 주체가 되는 세상이다. 상제님이 천지공사天地公事 내용 이념대로 신명세계를 건설해서, 다시 말해서 신명정부神明政府를 조직해서 거기서 이 세상 둥글어 갈 프로그램, 시간표, 이정표를 짜 놓으셨다. 그것이 인간 세상에 그대로 역사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현실 세상은 상제님이 신명정부에서 짜 놓으신 틀 그대로만 둥글어 간다. 그렇게 신명세계가 주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상제님 진리를 신앙한다. 상제님 진리는 한마디로 묶어서 복록福祿도 성경신誠敬信이요 수명壽命도 성경신誠敬信이다. 잘살고 못사는 것도 상제님을 얼마만큼 잘 믿느냐 하는 성경신에 달려 있고,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도 상제님 신앙을 얼마만큼 잘 하느냐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말로는 신앙한다고 하고, 행동으로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신앙이 아니다. 상제님 진리를 신앙하는 사람은 청수淸水를 모시고, 주문도 읽는다. 청수를 모시는 것은 상제님을 뵙고, 모든 신명, 조상들을 만나는 것이다.

여태껏 역사적인 신앙은 다만 기복 신앙에 그쳤다. 헌데 우리 상제님 신앙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사를 결정짓는 일이다. 진리가 그렇고 사실이 그렇다. 상제님께서 “천지의 대덕大德이라도 춘생추살春生秋殺의 은위恩威로써 이루어지느니라.”(道典 8:62:3)라고 하셨다. 상제님 말씀을 빌리기 이전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둥글어 가는 것을 보더라도 봄에는 물건 내고 가을철에는 죽여 버리고, 춘생추살을 거듭한다. 봄에는 물건 내는 정사政事만 하고 가을은 물건을 죽이는 정사만 하는 것이다.

초목 농사를 짓는 데도 가을철에는 개벽을 한다. 봄에 물건 내서 여름에 기른 진액을 전부 뽑아 모아서 열매를 맺어 놓고 다 죽여 버리지 않는가. 개벽을 하는 것이다. 우주에서 사람 농사 짓는 것도 일 년에 초목 농사를 짓는 것과 똑같은 방법, 똑같은 이법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역천불변逆天不變하는, 하늘이 변한다 하더라도 다시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원리다. 천지가 둥글어 가는 법도가 그렇게 되어 있다. 금년에 초목 개벽을 하는데, 그러면 낙엽이 다 떨어질 것 아닌가. 헌데 초목 개벽이 작년도 그랬고, 10년 전도 그랬고, 천 년 전도 그러했다. 명년도 금년하고 똑같다. 지구년에 초목 농사 짓는 것이 그렇듯이 우주년에 사람 농사 짓는 것도 똑같은 이치다.

우리가 사는 이 시점은 우주의 여름이 가을로 바뀌는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다. 지금은 만유를 성숙시키면서 한편으로 다 죽이는 때다. 일 년 농사지은 것을 결실한다. 우주년에서 사람 농사를 지어서 이번에 사람 종자, 알갱이를 결실한단 말이다. 자기 조상에서 적덕積德하고 남을 위해서 봉사를 많이 한 좋은 혈통의 자손, 그 씨알만 천지에서 추리는 것이다.

우리는 우주의 주재자 상제님, 참 하나님의 진리권에 매달려 있다. 그 이상 더도 덜도 없다. 우리는 상제님 진리를 신앙함으로써 ‘죽을 세상’에 산다. ‘개벽하는 세상’에 사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 길을 찾다가 ‘살 수 있는 길’, 상제님 진리를 만났다.

후천 새 세상을 여는 열매기 진리


가을개벽기에 사람 씨알을 추리기 위해서 우주의 주재자 상제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 인류 역사를 통해 왔던 많은 성자들은 상제님이 내려보내신 것이다. 상제님께서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보냈느니라.”(道典 2:40:6)라고 하셨다. 봄과 여름철, 분열·발달하는 과정에서 성자들을 보내신 것이다. 상제님은 본래 천지의 주재자이시면서 통치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 증산도 진리는 선천 종교의 진액을 다 거둬들여서 통일을 한다. 모든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다 내던진다. 그래서 증산도 진리는 사유비유似儒非儒, 유교 같으면서도 유교가 아니고, 사불비불似佛非佛, 불교 같으면서 불교가 아니다. 또 사선비선似仙非仙, 선도 같으면서도 선도가 아니다.

상제님 진리는 사실 그대로, 종합적이고 성숙한 열매기 진리, 알갱이 진리다. 그 알갱이 진리를 믿는 사람이라면 다 바쳐서 신앙해야 할 것 아닌가? 어느 신앙도 다 마찬가지지만 신앙은 다 바쳐서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증산도 신도라면 누구도 다 필수적으로 청수를 모시고 주문을 읽는다. 태을주의 태을천太乙天 상원군上元君님은 전 인류의 뿌리이시다. ‘하나님의 하나님’이시다. 태을주는 묶어서 말해 자기 조상, 저기 뿌리를 찾는 주문이다.

태을주를 읽어서 누구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읽으면 저 자신이 좋은 것이다. 상제님께서 “우리 일은 부자 형제간이라도 운수가 각각이니라.”(道典 8:108:1)라고 하지 않으셨는가. 물론 신앙을 잘하는 사람이 가정에 있으면 그 운수, 그 도력이 미쳐서 그 가정의 어지간한 화액을 면할 수도 있다.

신앙인은 명실공히 부끄럽지 않은 신앙을 해야 한다. 하늘땅 생긴 이후로 인류 역사를 통해 사람은 누구나 부귀영화를 꿈꾸었다. 헌데 부귀富貴라는 것을 어떻게 그냥 얻을 수 있는가. 부富는 녹줄 아닌가? 녹줄은 노력의 대가다. 알기 쉽게 말해서 하루 일하면 일한 만큼 녹을 창출하는 것이다. 귀貴도 마찬가지다. 귀도 자신이 창출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제 행동을 뜯어먹고 산다’고 하는 것이다.

앞으로 상제님 진리를 잘 신앙하면 우선 개벽하는 세상에 살고, 복 받고, 개인적으로 창업 시조도 된다. 후천 5만 년, 전 인류가 사당을 군데군데 지어 놓고서 “참말로 고맙습니다.” 하고 떠받들어 준다. 5만 년 동안, 그 혈손이 여러 만 명 생겨나겠지. 시조 할아버지, 창업주 할아버지 덕에 그 자손도 잘살고 말이다.

상제님 진리의 틀, 군사부


지난 역사를 보면 정치제도가 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 발전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런 것이 아니다. 황제왕패이적금수皇帝王霸夷狄禽獸로 내려왔지만 이제 다시 황皇 자리로 돌아간다. 알갱이는 한번 여물면 그만 아닌가? 이번에 한번 알갱이를 여물면 다시 변동하지 않는다. 그 알갱이를 맺기 위해서, 쓸 자손을 추리기 위해서 역사가 조성돼 흘러왔다. 이번에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혈통’의 알갱이를 천지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그렇게 한번 정해 놓으면 변동이 없다. 진리의 틀은 군사부君師父다. 군사부의 틀이 뭐냐 하면, 상제님 진리로써 도성덕립道成德立이 되니까 상제님이 군君도 되고, 또 상제님 진리니까 상제님이 스승[師]도 된다. 그리고 개벽하는 세상에, 천지에서 죽이는 때에 살았으니 상제님이 아버지[父]도 되는 것이다. 이처럼 상제님은 군도 되고, 스승도 되고, 아버지도 되신다.

우주의 주재자 하나님, 상제님의 진리를 믿어서 죽을 세상에 살고, 살고 나서 잘도 되려고 하면 다 바쳐서 손색없는 신앙을 해야 한다. 욕심만 갖고서 건성으로 신앙하면 되겠는가?

개벽을 넘는 남조선 배질, 꼭 육임을 짜라


상제님 말씀으로 묶어서 말하면, 공功 중에 가장 큰 공은 천지에 쌓는 공이다. 공은 포덕布德이 가장 크다. 포교를 많이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나보다 더 잘 믿는 신도를 만들어라. 개벽 때에 내가 사는 성스러운 진리를 가지고서 가족도 포교하고, 친지도 포교하고, 인아족척姻婭族戚도 포교해야 할 것 아닌가. 또 전 인류도 살릴 수 있고 말이다.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신앙하지 말고, 다 바쳐서 믿어라. 그리고 교육을 잘 시켜라. 교육을 시켜 놓으면 누구도 상제님 진리 밑으로 복종을 한다. 그리고 포교를 하지 말라고 해도 한다. 상제님 말씀과 같이 우리 일은 한마디로 묶어서 말해 ‘뿌리장사’다. 장사 중에 가장 이利 많이 남는 장사가 뿌리장사다.

그리고 봉사 정신을 가져라. 봉사 정신이 결여되면 증산도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사회, 어떠한 단체를 막론하고 수용될 수가 없다. 어느 누가 나를 위해서 생겨났는가? 남을 위해서 세상에 봉사한 것만큼 자기 설 자리가 마련되는 것이다. 성자들은 봉사 정신을 가진 것만큼 큰 성자가 됐다. 그런데 그 바탕이 뭐냐 하면, 바로 일심一心이다.

상제님께서도 “이 일은 남조선 배질이라. 혈식천추 도덕군자의 신명이 배질을 하고 전명숙全明淑이 도사공이 되었느니라. 이제 그 신명들에게 ‘어떻게 하여 만인으로부터 추앙을 받으며 천추에 혈식을 끊임없이 받아 오게 되었는가.’를 물은즉 모두 ‘일심에 있다.’고 대답하였다.”(道典 6:83:4~5)라고 말씀하셨다. 또 “인간의 복록을 내가 맡았느니라. 그러나 태워 줄 곳이 적음을 한하노니 이는 일심 가진 자가 적은 까닭이라. 만일 일심 자리만 나타나면 빠짐없이 베풀어 주리라.”(道典 9:1:7~9)라고 하셨다. 이것은 상제님, 하나님의 말씀이다. 시공時空을 통한 일심, 시공을 초월한 일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내가 상제님 대행자로서 말한다. 우리 신도들은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꼭 육임을 짜라. 내가 두 손 모아서 우리 성도들에게 축복을 하고, 고루고루 부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