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

    [STB하이라이트]

    〈현대문명의 대전환〉인류의 미래와 질병 1강 전염병과 역사


    『지금 경계선에서』의 저자 레베카 코스타는 “지금 인류는 몰락과 진보의 경계선에 서 있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 인류의 미래는 극적으로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하루하루 바쁜 일상을 살다보면 우리를 둘러싼 자연환경과 문명의 커다란 변화에 무관심해지기 쉽습니다. 상생방송의 현대문명의 대전환이 시청자 여러분의 문명을 보는 안목을 열어주고 다가올 위기를 대처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STB
    (이 프로그램은 상생방송 홈페이지 www.stb.co.kr 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이현숙 교수 프로필] 이화여대 대학원 사학과 박사,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 수료, 연세대 의과대학교 박사후 과정 수료.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원, 현 연세대 의대 의학사연구소 연구교수
    【주요 저서】 공저 『한국의학사』 『고려전염병의 문화사』 『한국전염병사』 【주요 논문】 「한국의학사의 중세 기점」 「신라의학의 국제성과 의약교류」 「고려 일상생활의 질병과 치료」 「백제시대의 점복과 정치」외 다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합니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거죠. 과거 인류의 역사는 바이러스와의 전쟁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전염병이 많았습니다. 그 결과 인류가 수많은 전염병을 극복했다고 자신했지만 사스나 조류독감, 그리고 에이즈 같은 전염병들이 새롭게 나타났습니다. 과거 인류가 어떻게 전염병을 극복했는가를 통해서 앞으로의 질병에 대한 전망도 조망해볼 수 있습니다.

    푸에르토리코 원주민을 몰살시킨 전염병


    제가 전염병 연구만 10년 넘게 하고 있는데, 주로 고대와 중세의 전염병입니다. 전근대 시대의 전염병이죠. 왜 전염병에 관심을 가졌는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요.

    제가 1996년, 97년 2년 동안 푸에르토리코에서 살았습니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가깝고 아이티, 도미니카공화국, 쿠바 옆에 있는 카리브해의 조그만 섬나라입니다. 현재 미국의 식민지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유명한 가수 리키 마틴이나 미스 푸에르토리코, 미스 월드가 많이 나왔는데요. 아름다운 여성들이 많기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스페인의 후예 아니면 흑인의 후예입니다. 궁금해서 알아봤더니 원래 푸에르토리코 원주민은 남미 인디언과 마찬가지로 황인종에 속하는 원주민이었습니다. 그런데 콜롬부스가 1403년 푸에르토리코를 발견한 이후 1508년 스페인이 식민지화했는데요. 그후 스페인이 가지고 왔던 두창이라든가 인플루엔자 같은 무서운 전염병 때문에 거의 몰살하다시피 해서 현재 원주민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데려와 노예로 부리면서 대다수가 흑인노예의 후예이고 그리고 스페인에서 건너온 백인 지배층, 이렇게 이중으로 된 계층사회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야, 전염병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한 종족을 완전히 몰살시켜서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그런 무서운 위력을 가졌구나’ 라는 걸 제가 느꼈습니다.

    아즈텍인이 자발적으로 항복한 이유, 두창


    그런데 제가 한국에 돌아와서 공부를 하다보니 저와 같은 생각을 가졌던 학자가 있었습니다. 윌리엄 맥닐[그림]이라는 분인데, 시카고대학 역사학과 교수였습니다. 동서양의 역사를 아울러 거시적인 시각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이런 분을 제네럴 히스토리안이라 부릅니다. 이분이 1975년도에 썼던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분도 저와 굉장히 비슷한 경로를 앞서 겪으셨는데요. 이 책 서문에 뭐라고 썼냐 하면 멕시코사를 연구하기 위해서 공부하던 중 스페인이 멕시코를 쉽게 정복한 데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스페인이 당시 아즈텍에 도착했을 때 600명에 불과한 군사들밖에 없었다는 거죠. 600여명의 스페인 군사가 아무리 말과 총을 가지고 있었다 한들, 아즈텍인은 수백만명에 달하는 인구인데 어떻게 에르난도 꼬르떼즈를 비롯한 스페인 군사에게 무릎꿇을 수가 있는가. 이해가 안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윌리암 맥닐 교수가 연구를 하다 보니 바로 두창때문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코르테즈군과 아즈텍군 간의 대전투가 벌어졌는데요. 대전투 와중에 스페인에서 온 군인한테 두창이 발병했답니다. 그런데 전투를 하는 과정에서 이것이 아즈텍인에게 넘어가 전염이 된 거죠. 그래서 양쪽에서 다 같이 두창을 앓게 되었는데 스페인 군대는 사상자가 거의 없이 다음날에도 멀쩡하게 전투를 하러 나왔는데, 아즈텍인은 하룻밤 사이에 수만명이 죽어갔다는 거죠. 아즈텍인들이 생각하기에 ‘저 사람들은 신의 아들이다. 우리는 이렇게 수만명이 한꺼번에 죽어가는데 저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도 죽지 않고 창을 들고 다시 우리를 공격하러 나올 수 있는가.’ 그렇게 스페인 군을 신의 아들로 인정하게 되었다는 거죠. 그래서 자신들이 믿었던 종교도 다 버리고 적극적으로 카톨릭으로 개종하게 되었고 이들을 신처럼, 신의 아들처럼 모시게 되어, 완벽한 진심에서 우러난 항복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염병이 인간 역사에 끼친 영향


    이 책은 한국에서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또는 『전염병의 세계사』)라고 번역되어 있는데요. 원서 『Plagues and Peoples』[그림]라는 책을 1975년도에 썼는데,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게다가 동양과 서양 및 한국의 이야기까지 이 책 속에 들어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책이었는데요. 모든 것을 다 역병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 것입니다.

    이 분은 동양의 언어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영어나 서양의 언어로 된 책을 통해 중국, 한국, 일본의 자료를 읽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들이 좀 거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그분의 시각은 굉장히 참신하고 합리적이며 경청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전염병이 인간 역사에 끼친 영향이 지금까지 과소평가 되었다는 점을 이 책에서 초지일관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주장하시는 바가 결론적으로, 한 지역주민이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전염병에 노출되었을 때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가. 아즈텍인이라든가 또는 푸에르토리코 원주민처럼 거의 전멸당하는 민족이 있는 반면 어떤 민족은 잘 견뎌나가 다시금 문명을 발달시키는 경우도 있고. 선사시대부터 고대, 중세, 근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가의 사례를 들고 있었습니다.

    동양의 사례는 2차 사료를 봤기 때문에 정밀하지 못한 한계도 있었지만, 다른 하나는 플레이그Plagues라는 것이 우리말로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역병이라는 뜻이기도 하고요. 서양에서 역병이라는 것은 대표적으로 페스트를 생각합니다. 원래가 페스트에 대한 기억이 강렬했기 때문에 역병 자체가 페스트로 동일한 언어가 돼버렸거든요. 그래서 모든 것을 페스트로 몰아가는 폐단이 있었습니다. 사실 페스트라고 보기 힘든 것도 페스트라고 거칠게 다루는 측면이 있지만, 어쨌든 세계최초로 전염병이 역사에 끼친 영향을 주목하고 그 의미를 밝혔다는 점을 제가 인상깊게 읽었고 그로 인해서 지금까지 한국 전근대사회의 전염병에 대해 천착하면서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역병의 원인은 인수공통전염병


    연구에 따르면, 사람과 동물을 함께 감염시키는 질병을 인수공통전염병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전염병들은 인간이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수공통전염병, 즉 종을 타고 넘어오는 전염병의 경우는, 인체에 면역체계가 없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래서 이환율 곧 질병에 걸리는 감수성을 가진 인간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고, 그 다음에 사망률이 높게 되는 거죠. 면역체계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문제되고 있는 조류독감이라든가 신종플루라든가 사스, 이들이 실은 종을 타고 넘어온 질병입니다. 즉 가금류, 조류에서 오는 독감이라든가. 조류 같은 경우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앓다가 살아날 수도 있는 독감인데 인간에게는 면역체계가 없는 거죠. 그래서 조류독감이 인간에게 왔을 때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되는 것이죠.

    지난번 한국사회를 거의 패닉으로 몰아넣었던 신종플루의 처음 이름은 스와인플루였습니다. 곧 돼지독감. 돼지는 독감에 걸리면 뭐 죽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그들에게는 일상적인 감기였는데, 그것이 인간한테 넘어오면서 아주 치명적인, 그야말로 발병한 지 2,3일 만에 급작스럽게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전염병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인수공통전염병이 인간에게는 주로 역병으로 작용했다 합니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질병의 수를 나열해보면요.[그림] 가금류, 즉 조류나 집에서 키우는 새나 닭 이런 종류들에 나타나는 질병의 26가지가 인간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이고. 쥐의 경우는 52가지, 그 다음에 말의 경우는 35가지, 돼지의 경우는 42가지, 소의 경우는 50가지, 개는 65가지, 양과 산양의 경우는 46가지. 이렇게 굉장히 많은 질병들이 인간과 동물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역사상 가장 치명적이었던 질병을 들면 쥐의 경우는 페스트입니다. 쥐 설치류에게 페스트는 어떻게 보면 상존하고 있던 질병인데, 이것이 인간과의 접촉을 통해서 넘어오게 되면 인간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질병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원숭이의 황열병, 소의 결핵, 조류와 돼지의 인플루엔자, 개의 홍역, 이런 것들이 인간에게 오면 아주 치명적인 역병으로 발전한다고 합니다.

    역병은 왜 발생하는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다는 거죠. 사회적인 다양한 조건이 맞아떨어져서 갑자기 대폭발하는 것이 바로 역병입니다. 어느 한가지 조건만을 가지고, 병원균 자체만 가지고 폭발하는 게 아닙니다. 그 병원균에 대한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들이 30만 내지 50만, 굉장히 많이 있는 상태에서 그것이 계속 먹이사슬로 넘어가고 넘어가고 하면서 대폭발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그야말로 먹이인 거죠. 인류가 문명을 발달시키면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자연에 거스르는 활동으로 역병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역사상 문제가 되었던 것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종간에 넘어온 전염병이 되겠습니다.

    ■전염병, 역병이라는 용어
    전염병, 역병, 질병, 이런 다양한 용어를 쓰고 있는데 제가 여기서 얘기하고 있는 개념은 역병입니다. 즉 윌리엄 맥닐이 썼던 플레이그Plagues, 곧 역병. 동시다발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걸리고 이환율도 높고 치사율도 높은 그런 무시무시한 전염병을 역병이라 한다면, 왜 역병이라는 용어를 안 쓰냐면 오늘날에는 전염병이라는 용어를 훨씬 더 가깝게 느껴서 전염병이라고 치환해서 쓰지만 사실은 정확한 용어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무좀도 전염병이거든요. 성병도 전염병이고. 그렇기 때문에 역사에서 문제가 되었던 그런 전염성 질환은 사실 역병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전염병이라는 용어는 영어로는 인펙셔스 디지즈infectious disease, 컨테이져스 디지즈contagious disease, 또는 에피데믹epidemic, 이렇게 번역됩니다.

    서양의학이 들어오고 서양문화가 들어오면서 동양에서 이것을 동양의 언어로 치환하는 일이 19세기 말에 있었습니다. 이때 일본에서 전염병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동양의 역사서를 보면 전염병이라고 쓴 것은 없습니다. 주로 염병이라고 사용했죠. 즉 전염이 되는 병이다 해서 염병(染病)이라는 말을 썼는데, 「수호지」에 처음 나온다고 합니다. 지금도 우리나라 말에 욕으로 쓰는 ‘염병할!’ 이런 용어가 있는데, 조선시대에 염병이라고 하면 오늘날의 장티푸스입니다.

    서양에서는 플레이그plagues라는 말을 썼는데, 14세기에 페스트가 유행하면서 페스트를 대신하는 용어로, 페스트의 또 다른 용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동양에서 왜 역병(疫病), 역질(疫疾)이라고 했느냐 하면, 우리가 지금도 병역(兵役)의 의무라고 하듯이 역이라는 건 어떤 의무, 국민으로서 국가에 져야 되는 의무를 뜻하는데 이처럼 모든 사람이 걸리는 병이라서 한나라 때 역(역疒+역役=역疫)이라고 썼다고 합니다.

    재밌는 것은, 에피데믹epidemic이라는 영어는 원래 그리스어에서 나온 겁니다. 그리스에서도 역병이 창궐해서 이런 용어들이 만들어졌는데, 에피epi란 그리스말로 어폰upon, 오브of, 뭐뭐 위에, 이런 뜻이고요. 데믹demic이라는 말은 데모스demos에서 왔는데, 데모스는 피플peopld, 사람이라는 그리스말이라 합니다. 사람 위에 있는 것, 그래서 어떻게 보면 모든 사람이 다 걸리는 질병이라는 뜻이죠. 서양과 동양이 같은 개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 시대의 역병기록


    특정한 시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걸리는 질병 중에서 역병이 가장 정치적인 질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겠지만 신종플루에 걸렸을 때 3일 만에 아이가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서양의 중세 때 페스트에 걸린 기록을 보면, 아침에 밥을 같이 먹었는데 점심때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밤에 죽었다는 거예요. 아침에 멀쩡하게 건강했던 사람이 갑자기 밤이나 다음날 아침에 죽었을 때, 주위 사람이 느끼는 공포나 심리적인 공황상태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바로 천벌의식이죠. 저 사람은 살았는데 왜 나는? 또는 왜 저 사람은 갑자기 죽어야만 하는가. 이랬을 때 이것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거든요.

    그랬을 때 본능적으로 느끼는 게 ‘아, 내가 무슨 하늘의 벌을 받았나보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사실 요즘에도 암에 걸렸을 때 가장 먼저 하는 말이 내가 무슨 전생에 무슨 잘못을 했길래, 또는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병에 걸리나.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오거든요. 그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갑자기 역병에 걸려서 심하게 앓거나 또는 죽게 되었을 경우, 사람들이 공포에 떨면서 이것은 ‘하늘이 우리에게 내리는 징벌이다’ 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이것은 사실 원시시대부터 계속되었던 인식이죠. 오늘날 의학과 과학문명이 아무리 발달하고 세균, 병균이 이러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발병되었다 아무리 설명해도 왜 그게 나에게만, 또는 너에게만 일어났는가 하는 뿌리깊은 인식이 있기 때문에, 천벌의식은 떨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런데 역병이라는 이런 급성전염병에 걸려 수천, 수만, 수백만 명이 한꺼번에 죽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누구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정치가 잘못됐기 때문에, 사회를 이끄는 사람이 잘못됐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역사상 정치지도자들은 역병이 있었다는 사실을 가능하면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정통성이 없거나 왕권이 강력하지 못한 시기는 거의 대부분 역병이 발생했다고 하지 않아요. 기근이 들어서 굶어죽었다 또는 천재지변이 나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이런 식의 표현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연구할 때는 굉장히 조심해서 전후좌우를 잘 살펴봐야지 ‘아, 역병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상자가 났구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성군으로 유명한 조선 세종대에 천재지변 기사도 많고 전염병 기사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분은 자신감이 있고 국정을 다 잘 이끌어갔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들을 죄다 기록한 것이죠. 그렇지 않았던 시기에는 제대로 적지를 않습니다. 다른 핑계를 대죠. 그리고 역병에 걸려서 죽는 사람들이 과거에는 실제로 마지막에는 굶어죽었습니다. 그러니까 굶어죽었다는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닌데, 그래도 동양 역사서에 보면 길거리에 죽은 사람이 서로 포개져 있을 만큼 많았다, 해골이 길거리에 너무 많았다, 이런 식의 표현이 많습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면, 특히 가난한 지방의 경우는 밤에 몰래 뒷골목 같은 곳에 갖다버리는 거죠. 무시무시한 역병이 돌았다는 이야기보다는 굶어서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길거리에 시체가 즐비한 상황. 이것을 동양의 사서에 굶어죽었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결국 역병은 굉장히 정치적인 질병이다. 가능하면 기록에 남기고 싶어하지 않았던 질병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에 남아 있는 역병들은 정말로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역병이었던 겁니다.

    서양의 역병사례1 천연두, 아테네문명을 몰락시키다


    서양의 역사에서 이런 무시무시한 역병이 언제 있었는가. 역병은 대부분 전쟁과 함께 옵니다. 왜냐하면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들이 밀집한 상태에서 단체생활을 하잖아요. 서로 다른 곳에 거주하던 각국의 군인들이 수만, 수십만 명이 한 장소에 모여서 전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각자 가지고 있던 풍토병을 교류하는 그야말로 질병의 교환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전투나 전쟁이라는 것이. 그래서 어느 시기의 전쟁이라도 질병 특히 전염병이 만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다른 지역의 군사들이 가지고 온 풍토병은 우리 지역에는 없던 새로운 전염병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면역체계가 발달하지 않은 것일 수가 많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갑자기 전쟁터에서 역병이 터져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초의 사례로 들 수 있는 것이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간에 벌어졌던 역병입니다. 이 전쟁은 기원전 431년에서 404년에 걸쳐 오랜 기간 일어났는데 수차례에 걸친 전투가 있었으며 장기간에 걸친 전쟁이었는데, 바로 그리스의 종주권을 놓고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맞선 전쟁입니다. 그런데 이때 전쟁 초기에 기원전 430년에서 429년에 아테네에서 역병이 발생했습니다. 역사가에 따라서 해석이 조금 다르기도 합니다만 3분의 1이 죽었다, 4분의 1이 죽었다 하는데 하여튼 상당수의 군인들이 한꺼번에 몰살한 것은 확실합니다. 이로 인해 아테네가 제대로 싸우질 못하게 됐고 스파르타에 패하게 됩니다. 결국 아테네의 영광의 시대는 가고 스파르타가 그리스의 패자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이때 전염병이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됐느냐 하면, 모든 것은 기록이 있어야 알 수 있습니다. 아니면 고고학적인 발굴을 통해서 질병을 연구하기도 하지만 사실 뼈에 흔적을 남기는 질병(전염병) 이외에는 알기가 어렵습니다. 뼈에 흔적을 남기는 질병은 척추결핵이라든가 몇 가지밖에 안 됩니다. 그래서 인골 연구를 통해서 역병을 알기는 쉽지 않고요. 바로 투키디데스[그림]라는 사람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이분 덕분에 알 수가 있는데요. 투키디데스의 전염병 기록을 보면, 펠레폰네소스 전쟁에 대한 아주 장기간에 걸친 기록을 쭉 썼는데 그중 전염병 기록만 소개를 해드리면 이렇습니다.

    사실 이것만 가지고 무슨 질병인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질병에 발진성 질환들이 많거든요. 발진티푸스도 종기발진이 나타나고, 수두도 발진이 나타나고, 스몰팍스smallpox라고 하는 무서운 두창도 발진이 나타나고, 홍역도 발진이 나타나고, 하여튼 고열에 시달리면 발진이 나타나는 질병들이 아주 많습니다. 중간에 사라지는 것도 있고 끝까지 가는 것도 있고 그런 차이가 있는데, 그것을 알기에는 너무 애매모호하게 적은 것이죠.

    이렇게 역병에 걸린 환자가 생기니까 감염을 두려워하여 병자들에게 가까이 접근하려 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집이 빈집처럼 돼서 간호사도 없이 병자 홀로 남아 죽어갔다. 즉 환자는 병 때문에 아파서 죽은 것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굶어죽은 거예요. 다 도망가버리고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 거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어나가고, 또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람들은 ‘지금 살아있을 때 즐기자’는 막가파식 삶의 태도를 갖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거죠. 그래서 가장 찬란하고 뛰어났던 아테네의 문명, 아테네의 문화가 거의 붕괴되다시피 해버렸다는 거죠.

    이에 대한 학자들의 학설이, 나중에 농포가 생기고 검푸르고 하니까 아, 이것은 천연두다 하는 사람도 있고 이게 딱지 얘기도 없고 하니까 이건 발진티푸스다, 그리고 어떤 학자는 아니다, 이건 탄저병이다, 뭐 아주 학설이 분분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천연두일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합니다.

    서양의 역병사례2 페스트, 유럽의 중세시대를 문닫다



    다음에 등장하는 병은 정말 무시무시한 역병이었습니다. 하나의 도시국가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전 유럽사회를 다 파괴했고 마침내 사회체제가 완전히 붕괴되어 중세사회가 무너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이 바로 흑사병입니다. 왜 흑사병이라고 하냐면, 환자들이 나중에 검푸르게 변해서 죽어가거든요. 그래서 흑사병이라고 하는데 영국에 남아 있는 기념비에 써 있습니다. [그림]

    1348년도에 흑사병이 영국의 항구를 통해 들어와 30 내지 50%에 달하는 인구를 살해했다 라고 기념비에 씌여 있는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전 인구의 50%라면 어마어마한 거죠.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30%인 데도 있고 50%인 데도 있고 어떤 데는 80%인 데도 있고 지역에 따라 차이가 많았어요. 최초의 발생기록은 1347년, 카파라는 도시에서 발생해서 제네바, 베니스를 거쳐서 전 이탈리아에 퍼진 다음, 다시 유럽으로, 북부 아프리카로, 나중에는 북유럽까지, 정말 수많은 유럽인들을 사망하게 만든 흑사병은 1700년대까지 100여 차례나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흑사병이 지금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몽고라든가 베트남이라든가 미국에서도 흑사병 환자가 간헐적으로 발생합니다. 물론 지금은 방역을 잘해서 중세와는 다른 생태조건 때문에 무시무시한 역병으로 발전하지 않는 거죠. 그러므로 바이러스 입장에서 봤을 때는 제일 좋은 것이 공생관계입니다. 인간의 몸에서 같이 조화롭게 지내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감기처럼 그냥 앓고 지나가고, 또 앓고 지나가고, 매년 감기 앓아도 인간이 죽지는 않거든요. 감기바이러스로서는 인간과 사이좋게 같이 공생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생존법인데, 흑사병처럼 독성이 너무 강한 병균일 경우는 자기 숙주를 다 죽여버리는 거죠. 그럴 경우에 사실은 자기도 공멸하죠.

    대부분의 역병은 처음에는 무시무시한 역병으로 나타났지만 이것이 100여 차례 이상 역사상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인간이 면역력을 갖게 되면 서로 사이좋게 공생관계로 지내는 질병으로 정착하죠. 우리는 이것을 지역에만 있는 풍토병, 또는 어렸을 때 한번 앓고 마는 소아전염병으로 정착하는 것이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가장 바람직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흑사병 같은 경우는 조절에 실패해서 인간과 공생을 못하게 된 것이죠.

    ■14세기 유럽의 페스트 발생 및 확대과정 (약5년)

    [그림] 연구에 따르면 전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죽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럼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당시 킵차크한국의 몽골군이 카파 시를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중세 도시는, 여러분 잘 아시겠지만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에서 침략하면 문닫고 농성을 합니다. 바깥으로 못 나가고 자기네가 갖고 있는 식량으로 침략군이 물러날 때까지 버티는 거죠. 이걸 농성이라고 하는데 그 와중에 몽고군에서 페스트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몽고군이 더 공격할 수 없어 퇴각하면서 죽은 몽고군의 시체를 저런 투석기(돌을 던지거나 여러 가지 물질을 던져 성을 파괴하는데 씀)에다 시체를 쏴서 성 안에다 던져넣고 가버렸다는 겁니다.

    [그림] 처음에는 카파 시민들이 ‘이게 뭐지? 왜 죽은 놈들을 여기다 쏘고 갔나’ 그랬는데 그 시체에서 페스트가 전염돼서 전 유럽에 퍼졌다는 것이죠. 여기 있는 크리미아 저쪽 동그란 데가 카파 시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이태리 제노바 시의 상인이 와 있었습니다. 몽고군이 가버리자 얼른 성을 빠져나와 배를 타고 본국으로 간 거예요. 그런데 이미 페스트에 감염된 사람들이 있었던 거죠. 이탈리아로 돌아가자마자 이미 뱃속에서부터 죽기 시작해서 도착하자마자 대부분 많이 죽었다는 겁니다. 사람들을 묻고 장례 치르고 하면서 이것이 제노바 시에 퍼지게 되고 인근 베니스에도 퍼지게 되면서 전 이탈리아로 퍼지게 됐다는 거죠.

    [그림] 제노바와 베니스의 기록에 보면, 1347년과 1348년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기록들이 나옵니다. 빠른 속도로 유럽으로 전파하는데요. 이것은 흑사병의 사망연도를 갖고 학자들이 만든 그림입니다. 정말이지 전 유럽으로 다 퍼져나가죠. 영국의 경우는 1348년 착륙하여 1349년 북쪽으로, 아일랜드까지 가고 다시 이것이 노르웨이나 스웨덴으로 넘어간 후 1352년에는 러시아에 도착합니다.

    흑사병이 전 유럽에 퍼졌을 때는 길거리에 사망자가 굉장히 많았다 합니다. 처음에 가족이 죽었을 때는 애도하면서 장엄한 장례를 치러주는데 가령 일가족이 몰살했을 경우는 묻어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렇지만 시체가 썩어가니까 이웃들이 해주는데 장례식이고 뭐고 없는 거죠. 그냥 구덩이를 파고 묻었는데 나중에는 구덩이를 팔 사람도 없는 거예요. 시체가 집안에서 썩거나 아니면 밤에 몰래 뒷골목에다 갖다버리는 거죠.[그림]

    길거리에 사망자의 시체가 널리게 되고 가족이 갑자기 다 몰살당하는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치미는 분노는 정치적인 지도자에게 가기도 하지만 보통은 어떤 특수한 사회집단에 뿜어내게 됩니다. 그래서 이때에는 거지나 유대인, 한센병 환자, 외국인, 이런 사람들이 역병을 가져왔다고 생각하기 쉽고, 그 중에서도 유대인은 자기네들끼리 집단으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박해가 굉장히 심했다 합니다. 즉 이들이 다른 신을 믿기 때문에 이런 질병을 갖고왔다 해서 이교도들을 불태워서 많이 죽였다고 해요. 그런 그림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그림]

    치료를 하기는 해야 되니까, 의사들이 온몸을 다 감싸고, 새의 가면을 쓰고 몸을 아무 데도 드러내지 않고 치료를 하러 다녔다 합니다.[그림] 일단 흑사병이 발생하면 대부분 가난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많이 발생하잖아요. 그럼 일단 거기는 딱 블록을 치고 못 나오게, 죽든 말든 그렇게 했고. 그리고 어떤 지역이 안전한가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해 먼저 가난한 여자를 들여보내 살아있는지 확인하고나서 그 지역에 다시 들어가는 방법으로 대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흑사병이 왜 이토록 사회적인 영향이 컸나 살펴봤을 때, 물론 쥐가(쥐벼룩) 페스트균을 옮기기는 하지만 단지 병균이 있다고 병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거든요. 여기에는 바로 14세기 초의 기후변화가 있었다 합니다. 기후가 급격히 한랭화하는 시기여서 날씨가 굉장히 추웠다고 해요. 인체가 약체화된 거죠. 지금 매년 기온이 조금씩 평균기온이 올라가고 있지 않습니까? 반대로 매년 기온이 조금씩 내려가면, 이 추세대로 한 10년, 20년 돼서 평균기온이 3,4도 내려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인체가 감당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굉장히 면역력이 약해진대요.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기후가 계속 추워지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흑사병이 침입한 것이죠. 더욱이 1315년과 1317년에 대기근이 발생하여 굶어죽은 사람이 많았답니다. 그러니까 영양이 불량하고 한랭화로 인해서 인체면역력 자체가 이상상황에 있을 때 흑사병이 도착을 한 것이죠. 이렇게 여러 가지 조건이 조합을 이뤄서 맞춰졌을 때 이런 대폭발이 일어나는 겁니다.

    이때 또 한몫을 한 것이 비위생인 유럽의 도시환경이라고 합니다. 유럽의 중세도시는 화장실이 없었어요. 오물을 그대로 길거리에다 내다버려서 파리의 거리가 똥오줌으로 질퍽거렸기 때문에, 여러분 하이힐의 유래를 아시죠? 높은 구두를 신지 않으면 길거리를 걸어다닐 수가 없었다 합니다. 그래서 귀족들은 남자나 여자나 하이힐을 신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만큼 유럽의 도시가 비위생적이었다는 거죠.

    초기 4년간 인구가 엄청나게 죽은 거죠. 인구의 거의 절반이 처음에 죽었고, 궁극적으로 1700년 전까지 전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감소하면서 노동력이 감소했겠죠. 그러니까 일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중세에는 영주한테 귀속된,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 농노들이 생산을 전부 담당했는데 이 사람들이 다 죽어버렸으니까 농노의 지위가 향상된 거예요. 경작할 땅은 많아지고 그래서 이들에게 토지를 나눠주게 되어 자영농이 증가하였고, 그러면서 근대 시민사회로 가는 시민계급이 성장하게 됐다는 거죠. 이렇게 중세 장원제가 붕괴하면서 서양의 중세 지배체제가 아주 근본적으로 붕괴하는, 그런 시대변혁의 결정적인 계기를 흑사병이 제공했다고 합니다.

    자, 여기까지는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에 나타난 두창으로 추정되는 역병과 중세유럽을 붕괴시켰던 흑사병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다음호 2강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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