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공부 | 안경전 종정님 말씀

[종도사님 말씀]

새 세상을 여는 해원 상생의 대도

[편집자 주] 어록 및 월간개벽 등에 게재되었던 안경전 종정님 말씀 중, 해원 상생 등 인간론에 대한 말씀을 주제별로 발췌하여 소개합니다.


상생 문화가 뿌리내리려면?

최근 정치인들이 새로운 인간 관계나 정치 문화를 열기 위해 너도나도 '상생(相生)'이란 말을 쓰고 있다.
하지만 상생은 그것 자체만으로는 전혀 실현 불가능하다. 지금은 상생을 입으로만 얘기하지, 상생을 실천하는 사람도 없다.

왜? '개벽(開闢)'을 몰라서 그렇다. 상생은 반드시 개벽이 전제되고 '해원(解寃)'이 함께 실현될 때 이뤄지는 것이다. 해원의 실천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상생이 현실 삶의 모습으로, 조화로운 인간 관계로 실현된단 말이다.
이 상생을 제대로 알려면 가을개벽이 오는 걸 알아야 한다. 상생 문화는 앞으로 오는 가을개벽을 통해 이 세상에 뿌리내리게 된다.


선천의 모든 고통과 불행, 부조리가 일어나는 원인은?

선천 세상은 슬픔, 고통, 피와 눈물이 끊일 날이 없었다. 왜 그런가?
선천 봄여름 세상에는 '상극(相克)'이 하늘과 땅과 인간의 삶과 마음, 의식까지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 상극이 심해지면 어떻게 되는가? 서로 싸움도 하고 쳐죽여 버리기도 한다. 아주 교활한 자는, '저놈! 언젠가는 한번 맛을 보여주지.' 하고는 계획적으로 상대방을 거꾸러뜨리기도 한다. 그것이 인간 역사다. 그래서 이 세상은 피로 범벅이 된 것이다.

상극 질서에 의해 인류가 자기 민족 중심, 자기 중심의 개인주의, 지역주의로 돼서 결국 서로 부딪히고 전쟁을 한 것이다.


상극(相克)이란 무엇인가?

선천에는 인간도 만물도 상극 도수에 의해 태어난다. 태어나서는 비바람을 맞아가면서, 시련을 받으면서, 고통을 당하면서 이 사회의 경쟁의 바다 속에서 커 가며, 그 과정에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고, 남보다 조금이라도 앞서려고 발버둥친다. 그게 바로 상극의 원리다.

선천은 음양(陰陽)의 균형이 깨져있어서, 하늘과 땅이 상극하고 인간과 자연이 상극했다. 이 상극은 선천 우주의 이법이다. 봄여름 선천 세상에서 인간과 만물을 낳고 길러내는 자연의 제1의 법칙이다. 인간과 만물은 극을 받지 않으면 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극은 나쁘다, 상생은 좋다 하는 차원이 아니다.

그런데 이 극(克)이 인간의 자구적이며 현실적인 욕심이나 의도에 의해 발동될 때에는 남을 밀어내고, 해코지하고, 죽이고, 파괴하는, 갈등과 원한을 태동케 하는 비극의 근원 힘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문명의 단위에서 볼 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근원이 된 것이다.

이 상극을 천리적(天理的) 차원에서 해소하는 것이 바로 해원·상생의 도다.


상극으로 점철된 선천 역사 … 서양의 드라큐라(Dracula) 문화를 보면 그 원조가 피의 할아버지인 루마니아 공국의 블라드 체패슈(Blad Tepes, 1431∼1476)왕이다. 그는 터키군과 헝가리군을 잡아다 죽일 때, 말뚝을 깎아서 항문에다가 쳐서 입으로 나오게도 하고, 척추로 나오게도 했다. 그렇게 해서 수만 명을 죽였다. 피를 좋아해서, 사람이 피 흘리며 고통과 저주 속에서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며 즐겼다는 것이다.

또 16세기부터 약 3백여 년 동안, 6천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 흑인들이 잡혀서 노예로 팔리고 참혹하게 죽어갔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들이 말이다. 그들이 탈출하다가 잡히거나 또는 잘못을 저지르면, 기강을 잡는다고 백인들이 그들 귀에다 말뚝을 박고 사지를 찢어 죽여서 걸어 놓았다.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의 역사는 피의 목욕탕이다."라고. 지금도 저 중동 지방이나 아프리카에서는 동족끼리 서로 죽이고 죽는 비극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온 나라가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원(寃)과 한(恨)이란 무엇인가?

상제님은 "선천에는 상극의 질서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다스렸기 때문에 인간과 신명들이 원한을 맺지 않은 자가 없다."고 하신다.
원이라는 것은 원통할 원(寃) 자다. 원은 남에게 일방적으로,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당해 맺힌 걸 말한다. 또 자기 의지로써 저항해 보았지만 힘이 부족하고 주어진 여건이 좋지 않아 억울하게 당할 때 원이 맺힌다.

그런데 한(恨)은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다. 모든 생명에는 자생(自生)하는 어떤 본질적인 문제, 인생의 근본 과제 때문에 맺힌 나름의 한이 있다. 이 한의 구조는 굉장히 복잡하다.

예컨대 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영혼의 상처가 있다면, 그게 한이다. 이것은 원통함과는 다르다. 원통함은 피해의식이 붙지만, 한은 성숙해 나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입게 되는 상처를 말한다. 그런 상처가 축적되어 한이 맺힌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삶의 과정에서 쌓인 원초적인 한이 있는 것이다.

종도사님께서 언젠가 "인간은 본래 고독하다."고 하셨다. 그게 한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인간의 고독! 그것은 홀로 있기에 생기는 것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 속에 앉아 있어도 나 혼자뿐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이 내 생명의 근본에서 해소되지 않는 알 수 없는 한인 것이다.


원신(寃神)의 보복으로 빚어지는 재앙 … 인간이 살다가 지고한 원과 한을 맺고 죽으면 그 신명은 원통함을 품고 사는 원신(寃神)이 된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재앙, 즉 교통사고나 화재사건, 또는 전쟁의 배경을 보면 전부 원신들이 연관되어 있다.
남을 죽인 사람, 남을 못살게 군 사람들을 보면, 그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죽어서 자손 대까지 쫓아다니는 얘가 허다하다.

요새 사람들이 즐겨 보는 TV 프로 <무인시대>를 보면, 정중부(1106∼1179) 부자가 군권을 장악해서 태후 앞에서도 삿대질하며 소리지르고 또 태자비도 내쫓아버린다. 그래 경대승(1154∼1183)에게 그 부자가 죽임을 당하거든. 그런데 그 정중부 신명이 원한을 품고 척신이 돼서 경대승한테 덤벼들어. 경대승이 정중부 신명을 보고 놀래서 죽는다. 그게 역사의 실제 사건이다. 또 조선시대 때 세조(1417∼1468)가 어린 조카 단종을 내쫓고 왕이 돼서는 그 어린 조카에게 사약을 내려 죽이고, 시신은 강원도 영월 서강변에 버려지잖아. 그러니까 단종(1441∼1457)의 어머니 즉 문종의 왕비이면서, 조선 오백 년에서 가장 위대한 성왕으로 손꼽히는,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며느리가 나타나서 뭐라고 그래? 세조가 졸고 있을 때, "에이 나쁜 놈, 더러운 놈!" 하면서 침을 뱉어 버리거든. 그 뒤로 세조는 그 침 맞은 자리에 피부병이 생겨서 평생을 앓다가 죽었다.



원한의 파괴력은 얼마나 무서운가?

상제님은 "한 사람의 원한이 천지를 흔든다."고 하셨다.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을 당하고 죽은 한 사람의 피맺힌 원한이 하늘을 울린다, 천지를 마구 흔들어 놓는다는 말씀이다. 보통 그것을 저주한다고 한다.
원한이 사무치면 죽어도 몸이 쉽게 썩질 않는다. 천고의 원한을 맺고 죽은 사람은 몸이 새카맣다.

우리나라 역사만 보더라도 5천년, 1만년의 역사과정에서 전쟁 등으로 피 흘리며 죽어간 젊은이들, 또 남의 모함으로 죽은 신명, 사고로 불구자가 되어 인생을 포기하고 죽은 원통한 신명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의 원과 한이 천지간에 꽉 차 있다.

또 지금부터 한 5백여 년 전에 중세 서구를 피로 물들였던 기독교의 마녀 사냥 같은 걸 보면, 참으로 천지를 흔들 정도 아닌가. 천지를 천 번, 만 번, 억만 번을 뒤집을 수 있는 원한의 역사다.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보지도 못하고 뱃속에서 참혹하게 죽은 낙태아의 신명들도 있다. 이 죽은 애기 신명들은 그 계기가 어찌 되었건, 자신을 죽인 이들에게 영체가 멸할 때까지 보복을 한다.


선천 성자들의 한계는?

신화학의 대가 죠셉 캠벨(Joseph Campbell)은 『신화의 힘(The Power of Myth)』에서 이런 얘길 한다.
"『구약』을 보면 이쪽 페이지에선 야훼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자비를 선포하다가, 몇 페이지 넘어가면 '나의 명을 좇지 않는 자는 가서 쳐죽여라.' 이렇게 나온다."

그는 이런 신화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은 이제 새 역사의 가르침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불교나 기독교는 외짝 신앙이다. 이 세상의 문제가 자비나 사랑만 갖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걸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 싸우고 죽이는 경우가 많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중세 때 불란서에서는 우물에 독약을 풀어서, 다른 종교 믿는 사람들을 10만 명, 20만 명까지 독살해 버린 사실도 있다.

또 상제님께서는 "석가가 알고 했으나 원억의 고를 풀지 못했다."고 하셨다. 석가는 인간의 마음에 맺혀 있는 원을 풀어 주지 못해서, 인류의 마음의 문을 활짝 못 열어준 것이다. 원한이 맺혀 있는데, 그냥 마음을 열어라, 마음을 닦으라고만 한다고 해서 공부가 되겠는가?

상제님은 이 천지에 꽉 들어차 있는 인간과 신명의 깊고 깊은 원과 한을 풀어주지 않으면, 성과 웅을 겸비한 어떤 인물이 나와도 이 세상을 바로잡을 수 없다고 하셨다. 이런 선천 상극의 원과 한이라는 인간의 고통 문제를 놓고 보면, 선천 성자들의 진리의 한계를 알 수 있다.


왜 해원, 상생만이 궁극의 해법인가?

지난날 선천 상극의 질서 속에서 인간의 삶과 역사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난 죽음의 요소들, 비극의 근원이 되는 원과 한을 끌러 주어야만 새로운 세상이 실현될 수 있다. 그래서 상제님은 선천의 대자연 섭리인 상극을 넘어서는, 그것을 극복하는 삶의 도로써 해원과 상생의 문화를 열어주셨다.


인간을 부자유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원과 한이다. 원과 한에 끄달릴 때 우리의 영혼은 자유로울 수 없다. 내 마음 속에, 나의 인생사에, 내가 몸담고 있는 나의 가족사에, 그리고 한 민족의 역사에 깊고 깊은 원통함과 어찌해 볼 수 없는 뿌리깊은 한이 있는 한, 인간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해원의 해(解)는 푼다, 끌러낸다, 해소한다, 해결한다는 뜻이고 원(寃)이라는 것은 원통할 원 자다. 해원이란 뭇 생명의 원통함을 끌러내는 것이다. 해원은 본질적으로 인간 생명의 문인 마음을 치유하는 길이며, 또한 인간이 살고 있는 사회, 역사, 문명의 모든 구석, 자연까지 치유하는 생명의 도이다. 원과 한을 끌러냄으로써 본래의 내 진실된 모습, 내 생명의 본성, 대우주 만유와 한 몸이 되어 영원한 빛을 발하는 생명의 천성을 되찾아, 진정한 자유의 새 생명으로 태어날 수 있다.
원통함을 끌러낸다는 것, 이것은 너무도 강력하고 보편적인 구원의 도다.


상생(相生)의 상(相)은 서로 상 자이고, 생(生)은 상제님 말씀에 따르면 살려낼 생, 남 잘되게 하는 생 자이다. 그러니 '상생'하면 '남을 살린다, 남 잘되게 한다'는 말이다. 살리려고 하는 마음은 사랑이나 자비와는 차원이 다른 말이다. 상생은 고도의 실천적 개념으로 용서라든지, 자비라든지, 사랑이라고 하는 모든 종교의 어떤 도덕률도 다 포괄하고 있다. 상생 즉 살린다는 자체는 사랑·자비의 실천을 넘어서는 궁극적 이상의 실현을 의미한다.


상제님께서 직접 강세하시게 된 이유는?

상제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내가 서양의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았다."고 말씀하셨다. 하늘의 천지신명세계를 다 둘러보시고 '모두가 다 인간세상에서 원한을 맺고 왔다.'고 하셨다.

인간 세상의 수억조 창생이 다 원한을 맺고 죽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전쟁 등 온갖 참혹한 재앙이 한순간도 그칠 날이 없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과 신명, 둘 다 해원(解寃)을 시키는 수밖에 없다.

상제님은 병든 세상을 뜯어고치고, 나아가서는 천지의 상극 질서까지 바로잡아 상생의 도로써 새 세상을 여신다고 선언하셨다.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신 것은 선천 세상을 정리하고 신천지의 가을 우주를 열기 위해서다.


해원 상생의 최종 실현은 개벽으로 … 중동의 자살폭탄테러, 미국의 테러 등 테러의 본질도 전부 신명들의 보복으로 일어난 것이다. 이 천지 안에 있는 원 맺혀 죽은 인간과 신명들을 해원시켜 주지 않으면 새 세상을 열 수 없다. 새 세상이 올 수도 없다. 지축이 서서 자연적으로 가을개벽의 시간이 온다 할지라도, 그런 세상이 백 번 천 번 온다 할지라도 현실 세계는 선천 세상과 다를 바가 없다. 선천의 연장판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 역사를 만든다, 새로운 문명 질서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실적으로 해원 상생의 문화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 해원 상생의 역사 질서를 구현해야 한다는 말이다.

선천세상은 상극도수에 걸려서 하루도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그래서 천지 안에 꽉 들어차 있는 원신들, 천추의 한을 품은 원신들이 그 원한을 끄를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다니고 있다.

그런데 그 기회가 모든 천지신명들에게 주어지는 천시(天時)가 있다. 하늘에서 주는 기회! 그게 여름철 성장의 시간이 끝나고 가을 성숙의 새 질서로 넘어가는 하추교역의 개벽기 때다. 바로 이 때 원을 품은 천지의 모든 신명들이 인간을 잡아들인다.

낙태아의 원한을 비롯한 숱한 역신, 원신들의 원한이 도덕적으로 교화를 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겠는가? 안 된다. 그건 이미 우리의 손을 떠난 것이다. 결국 가을개벽으로 모든 인간문제가 크게 한 번 정리되어야 새 세상을 열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