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으로 보는 문화 이야기 |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 - 음양(1) -

[한문화]

본부 김덕기

들어가는 말


아침이 되면 동쪽에서 해가 뜨고, 저녁이 되면 서쪽에서 해가 집니다. 봄이 되면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하고, 가을이 되면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합니다. 만물은 대자연이 연출하는 시공간의 리듬을 타고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역易 철학에서는 우주 만유가 변화 운동하는 근본 법칙을 음양오행陰陽五行이라고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음양陰陽’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음양야 천지지도야 만물지강기 변화지부모
陰陽也 天地之道也 萬物之綱紀 變化之父母
음양이란 천지의 도道이니, 삼라만상을 통제하는 기틀이며, 모든 변화를 주재하는 부모이다. - 『황제내경黃帝內經 소문素問』 「음양응상대론陰陽應象大論」


반대말로 배우는 음양의 상대성


“엄마, 아빠.” 옹알이하는 아기에게 엄마가 처음 가르쳐 주는 말입니다. 그 후로도 엄마는 아기에게 ‘하늘과 땅, 해와 달,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등 반대말을 가르칩니다. 아기에게 처음 하는 교육이 반대말이라는 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반대되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렇게 사물의 서로 반대되는 성질을 통틀어서 ‘음양陰陽’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배우는 말이 ‘음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한글을 배워서 단어가 익숙해지면 ‘끝말잇기’라는 새로운 놀이가 등장합니다. 끝말잇기는 두 명 이상의 사람이 돌아가면서 앞 사람이 제시한 낱말의 마지막 글자로 시작하는 낱말을 말하는 놀이입니다. 두 글자부터 네 글자의 낱말을 주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놀이를 하다 보면 의외로 두 글자로 이루어진 낱말이 많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말이 대부분 두 글자의 한자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천지天地, 일월日月, 남녀男女, 상하上下, 좌우左右’같이 두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 중 상당수가 반대말, 즉 음양으로 이루어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글과 말을 통해 이 세상을 인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음양의 상대성相對性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인식하도록 단어를 음양 짝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천지에 독음독양獨陰獨陽은 만사불성이니라.(도전道典 6:34:2)”라고 하신 증산 상제님 말씀처럼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야 사물이 구성되어 변화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럼 한자를 통해 음양의 반대되는 성질을 알아보겠습니다.

낮[주晝]에는 하늘[천天]에 해[일日]가 뜨고, 밤[야夜]에는 달[월月]이 뜹니다. 아침이 되어 해가 서서히 떠오르면 해가 비치는 땅[지地]은 밝고[명明], 그림자가 진 곳은 어둡습니다[암暗]. 그러면 양달은 따뜻해지고[온난溫暖], 음달은 아직 춥습니다[한랭寒冷]. 시간이 좀 더 지나면서 양달은 마르고[조燥], 음달은 여전히 축축[습濕]합니다. 낮이 되면 나뭇잎에 맺힌 이슬이 하늘로 증발되어 올라가고[상승上昇], 밤이 되면 물이 나뭇잎에 내려앉아[하강下降] 이슬이 맺힙니다. 그리고 해가 뜨면 만물이 활동[동動]하기 시작하고, 해가 지면 활동을 멈추고 휴식[정靜]을 취합니다.

이슬이 하늘로 증발되어 올라가는 건 햇볕을 받은 이슬이 팽창膨脹해서 가벼워지기[경輕] 때문이고, 응결되어 땅으로 내려앉는 건 수축收縮해서 무거워지기[중重] 때문입니다. 이는 풍선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풍선에 공기를 불어 넣으면 공기가 안쪽[내內]에서 바깥쪽[외外]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면 풍선의 부피가 커지면서[대大] 하늘로 올라갑니다[상승上乘]. 반대로 공기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나아가서 빠지면, 풍선의 부피가 작아지면서[소小] 땅으로 내려옵니다[하강下降]. 하늘은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無形으로 양에 속하고, 땅은 만질 수 있는 유형有形으로 음에 속합니다.

천자문으로 배우는 음양의 조화


교육방송 EBS에서 ‘동과 서’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행동 방식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규명하였습니다. 그중에 다음 두 가지 그림을 보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피는 실험이 있었습니다. 서양인은 주위 사람들의 표정에 상관없이 가운데 있는 아이가 행복해 보인다고 답했고, 동양인은 두 번째 그림의 아이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왜 세상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동양인과 서양인이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동양인이 세상을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장場’과 같은 공간으로 보는 데 반해, 서양인은 각각의 개체가 모여 집합을 이루고 있는 공간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동양인은 관계성을 중시하고, 서양인은 개체성을 중시합니다. 동양인은 동사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서양인은 명사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동양인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인식하는 것에 익숙한 데 반해, 서양인은 미시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인식하는 데 익숙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잘 드러내 주는 것 중 하나가 주소를 적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전체에서 내가 있는 곳을 향해 주소를 적는 데 반해, 서양에서는 내가 있는 곳에서부터 전체를 향해 주소를 적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족을 나타내는 성을 먼저 쓰고 이름을 쓰는 데 반해, 서양에서는 개인을 뜻하는 이름을 먼저 쓰고 이어서 성을 씁니다.

한글 표기 – 대한민국 세종특별자치시 한누리대로 1000
영어 표기 - 1000, Hannuri-daero, Sejong-si, Republic of Korea

이런 차이는 교육에서도 나타납니다. 동양에서는 전체를 먼저 가르친 후에 개개 사물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서당에서 학동들을 처음 가르칠 때 ‘천지, 우주’로 시작하는 『천자문千字文』을 가르쳤습니다. 이에 반해 서양의 교육법은 개개 사물을 먼저 가르치고 전체로 나아갑니다. 지금 우리는 서양의 방식을 따라 ‘자동차, 자전거, 소, 말’ 등의 개별 사물을 먼저 가르치고 있습니다.

천지현황 우주홍황
天地玄黃 宇宙洪荒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 거칠다. - 『천자문千字文』


그런데 『천자문』의 구성 방식에서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반대되는 사물을 나열한 후에, 이들의 성질과 작용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전자가 음양의 상대성을 알려주는 것이라면, 후자는 음양의 균형 속에서 일어나는 사물의 변화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서양에서는 주로 사물의 반대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음양의 조화로 일어나는 상생相生보다, 음양의 상대성으로 발생하는 상극相克에 더 중점을 둔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류의 시원 문화, 천제


2021년 방영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Squid Game)〉은 전 세계에 K-놀이문화를 알렸습니다. 특히 이 드라마는 우리도 잊고 있었던 ‘원방각圓方角’을 소재로 하여 더욱 주목받았습니다.
원방각(○□△)은 본래 하늘과 땅과 사람을 상징하는 도형입니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하늘은 원융무애圓融無礙하고*1) 땅은 방정方正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천지를 인식하는 기본 틀이자 인류 문화 형성의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1) 원융무애圓融無礙 - 막힘과 분별과 대립이 없으며 일체의 거리낌이 없이 두루 통하는 상태.


천원지방 도재중앙
天圓地方 道在中央
하늘은 원융무애하고 땅은 방정하니 도가 그 가운데 있다. -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


원은 선이 한 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방(네모)은 선이 네 개지만, 가로와 세로로 분류하면 두 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삼각형)은 선이 세 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더하기 2를 하면 3이 됩니다. 인간을 숫자 3으로 상징하는 이유는, 아버지 하늘[1]과 어머니 땅[2]이 낳은 자식[3]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꿈을 이루는 것처럼, 인간은 천지부모의 이상을 실현하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늘은 만물을 낳고[생生], 땅은 만물을 기르고[장長], 인간은 만물을 경영하는 우주의 주체입니다[성成].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이유는 사람이 이성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영장靈長이란 말 그대로 영성靈性으로 충만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하늘, 땅, 인간을 똑같이 공경하며 모셔 왔습니다. 이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문화가 그 은혜에 보답하는 제사祭祀입니다. 천지인에게 드리는 제사에는 원방각圓方角 문화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하늘에 올리는 천제天祭는 원형圓形의 제단(원구圓丘)에서 올리고, 땅에 드리는 지제地祭는 방형方形의 제단(방단方壇)에서 드립니다. 그리고 조상님 제사는 윗부분을 삼각형三角形으로 만든 신주를 모시고, 자손이 삼각형 형태의 굴건屈巾을 쓰고 지냅니다.*2) 종묘에 모신 조선 왕조의 신주神主에는 윗부분을 사각뿔로 만든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사각뿔을 옆에서 보면 삼각형입니다.
*2)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드릴 때는 하늘과 가까운 구릉(丘)이나 산꼭대기에 원형의 제단을 만들고 행했으므로 원구제圓丘祭(또는 환구제圜丘祭)라고 한다. 지신地神에게 제사를 드릴 때는 평평한 땅 위에 방형의 제단(방택단方澤壇)을 쌓고 행한다.



삼한고속 개시월상일 국중대회
三韓古俗이 皆十月上日에 國中大會하야
축원단이제천 제지즉방구 제선즉각목
築圓壇而祭天하고 祭地則方丘오 祭先則角木이니라.
삼한의 옛 풍속에, 10월 상일上日에는 모두가 나라의 큰 축제에 참여하였다.
이때 둥근 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땅에 대한 제사는 네모진 언덕에서 지내며,
조상에 대한 제사는 각목角木에서 지냈다. - 『환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太白逸史」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


천단과 지단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그것들은 모두 천단과 지단이 서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천단과 지단이 일체로 합쳐진 제단은 우리나라의 참성단塹星壇이 유일합니다.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지천태괘地天泰卦(䷊)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참성단은 단군조선부터 지금까지 우주의 주재자이신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린 제천 성소입니다. 천지부모의 자식이자 우주 경영의 주체인 사람이 참성단에서 천제를 올림으로써 천지인 합일合一의 원방각이 완성됩니다.

우주는 시공간 연속체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환경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큽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과 분리된 존재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여기고 훼손한 결과 지구뿐만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생물 종 전체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대우주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태극太極은 그 자체 내에 음양을 품고 있습니다. 우주도 하나의 통일체로서 태극입니다. 그래서 우주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음양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宇와 주宙는 모두 ‘집’을 의미합니다. 그중에서 ‘우宇’는 공간, ‘주宙’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삼라만상은 우주라는 시간과 공간을 집으로 삼아 존재하고 있습니다. 무형無形인 시간은 양에 속하고, 유형有形인 공간은 음에 속합니다.

왕고래금위지주 사방상하위지우
往古來今謂之宙 四方上下謂之宇 - 『회남자』 「제속훈齊俗訓」


공간은 다시 음과 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무형인 하늘은 양에 해당하고, 유형인 땅은 음에 해당합니다. 하늘은 만물을 낳고, 땅은 만물을 기릅니다. 이를 ‘천생지성天生地成’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이런 천지의 덕성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그래서 양인 아버지가 정자를 생하면, 음인 어머니가 난자로 정자를 싸서 형체를 완성합니다.

시간도 음과 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오전과 오후, 1년은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눠집니다. 시간의 단위는 ‘연월일시年月日時’입니다. 해가 떴다 지면 하루가 되고, 해가 태양을 한 바퀴 돌면 1년이 됩니다. 연年과 일日은 해와 관련이 있습니다.*3)
동양에서는 하루를 12진辰으로 계산했습니다. 1년은 12달입니다. 이렇게 12를 주기로 월月과 시時를 계산하는 것은 달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을 통해 천지는 공간을 형성하고, 일월은 시간을 형성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때 공간은 세로축[경經]으로 체體가 되고, 시간은 가로축[위緯]으로 용用이 됩니다.
*3) 연年을 ‘해’라고 하고, 하루는 해를 뜻하는 ‘일日’로 쓴다.



천지일월은 만물이 살아가는 보금자리이자 생명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그 은혜에 보은하고자 황제와 백성들이 천단에서 황천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지단에서 땅의 신인 황지기皇地祇에게 지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일단에서는 해님에게, 월단에서는 달님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형태가 중국 북경에 남아 있습니다. 자금성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천단天壇, 북쪽에는 지단地壇, 동쪽에는 일단日壇, 서쪽에는 월단月壇이 있습니다. 천단을 남쪽에 배치한 이유는 우주의 주재자이신 상제님이 남방에 자리하고, 상제님을 배알하는 황제가 북쪽에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호천금궐 상제오좌
昊天金闕 上帝午坐
호천금궐의 상제님은 남방(午)에 앉아 계시고 (도전道典 2:57:2)


군지남향 답양지의야
君之南鄕 答陽之義也
임금이 남향하는 것은 하늘에 보답하는 예이다. -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生」


천기를 받는 세시 풍습


하늘에는 태양과 달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별과 은하가 있습니다. 이들은 지구에 생명의 기운을 전해 주는데,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운을 천기天氣라고 합니다. 사람은 호흡을 통해 천기를 받습니다. 호흡에는 범식凡息호흡과 진식眞息호흡이 있습니다. 범식호흡은 빠르고 깊지 못한 호흡으로 건강을 해치고 수명을 단축시킵니다. 수행을 통해 하단전까지 깊이 들이쉬는 진식호흡을 할 때 천기를 온전히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천기를 받기 위해 하는 행위가 또 있습니다. 양력 1월 1일 새해에 전국에서 행해지는 ‘해맞이 축제’가 그것입니다. 이날 전국의 해맞이 명소에는 새벽부터 새해에 처음 뜨는 해님을 맞이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밝은 빛으로 세상을 환히 비추는 해님에게 새해의 소원이 성취되기를 빌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해님의 광명한 기운을 받아 생명력을 충전하기 위함입니다.

해는 양 기운이 가장 크므로 태양太陽이라고 하고, 달은 음 기운이 가장 크므로 태음太陰이라고 합니다. 우리 전통문화는 양기를 받는 풍습뿐만 아니라, 음기를 받는 풍습도 함께 발달했습니다. 음력 1월 15일은 정월 대보름입니다. 이날을 대보름이라고 하는 이유는 새해 들어 처음 맞이하는 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월 대보름은 상원上元, 음력 7월 15일 보름은 중원中元(백중百中날), 음력 10월 15일 보름은 하원下元이라고 합니다.

새해에 해맞이를 한 것처럼, 정월 대보름에는 ‘달맞이’를 합니다. 새해에 처음 뜨는 달님을 보며 한 해의 평안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대보름에 달의 음기를 받기 위해 하는 전통 놀이로는 생솔가지 등을 쌓아 올린 무더기를 불로 태우며 떠오르는 달을 맞이하는 ‘달집태우기’가 있습니다. 빨갛게 불꽃이 피어오르면 모두 모여 신나게 농악을 치면서 불이 다 타서 꺼질 때까지 춤을 추며 주위를 돌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합니다.

대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이고, 불은 모든 부정과 삿된 것을 살라 버리는 정화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달집이 탈 때 고루 한꺼번에 잘 타오르면 풍년, 불이 도중에 꺼지면 흉년이 든다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또, 달집이 다 타서 넘어질 때 그 방향과 모습으로 그해 풍흉을 점치는 수도 있습니다.*4)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고


달집태우기와 함께 ‘쥐불놀이’도 정월 대보름 풍속입니다. 쥐불놀이는 음력 정월의 첫째 자일子日(쥐날)에 농부들이 들판에 쥐불을 놓아 해충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행했던 풍년 기원의 민속놀이입니다. 또한, 음력 1월 14일이나 대보름날 밤에 횃불놀이를 겸해서 합니다. 쥐불놀이에는 ‘달의 광명한 기운을 받아 삿된 기운을 없애고 봄을 신성하게 맞이하며 풍작을 기원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새해의 해맞이 행사와 정월 대보름의 달맞이 행사는 언제부터 유래한 것일까요? 우리 역사서에서 그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옛 풍속에 광명을 숭상하여 태양을 신으로 삼고, 하늘을 조상으로 삼았다. 만방의 백성이 이를 믿어 서로 의심하지 않았으며, 아침저녁으로 경배함을 일정한 의식으로 삼았다. 태양은 광명이 모인 곳으로 삼신께서 머무시는 곳이다. 그 광명을 얻어 세상일을 하면 함이 없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하여, 사람들은 아침이 되면 모두 함께 동산東山에 올라 갓 떠오르는 해를 향해 절하고, 저녁에는 모두 함께 서천西川으로 달려가 갓 떠오르는 달을 향해 절하였다.(古俗이 崇尙光明하야 以日爲神하고 以天爲祖하야 萬方之民이 信之不相疑하고 朝夕敬拜하야 以爲恒式하니라. 太陽者는 光明之所會요 三神之攸居니 人得光以作하면 而無爲自化라 하야 朝則齊登東山하야 拜日始生하고 夕則齊趨西川하야 拜月始生하니라.) - 『환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太白逸史」 환국본기桓國本紀


해맞이와 달맞이는 우리 조상들이 고대로부터 행해 온 풍습입니다. 광명을 숭상한 조상님의 성품이 자손의 유전자에 아로새겨져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옛적에는 태양을 신으로 삼고 하늘을 조상으로 삼았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옛적에는 매일 해맞이와 달맞이를 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연중 한 번 하는 축제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해와 달의 광명한 기운을 받아 소원 성취하고자 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지 기운을 받는 음식 문화


하늘에서 지구에 생명의 기운을 전해 주면[생生], 지구는 이를 바탕으로 만물을 길러 냅니다[성成]. 지구에서 발생한 기운을 지기地氣라고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좋은 지기를 받기 위해 길한 땅을 가려 조상의 묘를 쓰고, 집을 지어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음택 풍수와 양택 풍수가 일상에서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람은 땅이 길러 준 음식을 먹으면서 지기를 흡수하여 생명을 유지합니다. 제사를 지내면 신명이 음식의 기운을 흠향歆饗하는데, 사람도 음식에서 기운만 취하고 나머지 물질은 대소변으로 배출합니다. 따라서 신명과 사람은 지기를 취하는 방식만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은 지기를 적극적으로 받기 위해 음식 문화로 정착시켰습니다. 일양시생一陽始生, 즉 양기陽氣가 처음 발동하는 동지冬至에는 ‘붉은 팥죽’을 먹습니다. 붉은색은 오행으로 화火에 속합니다. 그래서 붉은 팥죽에는 ‘삿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보다는 ‘음식을 통해 해의 광명한 양기를 받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팥죽에 넣는 새알이 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새해에 먹는 ‘떡국’도 해의 광명한 양기를 받고자 하는 풍속입니다. 가래떡으로 떡국을 만드는 이유는 기다란 가래떡에 장수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보다는 ‘둥근 떡이 해를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합니다.

음식을 먹어서 해의 양기를 받고자 한 것처럼, 달의 음기도 음식을 먹어서 받고자 했습니다. 새 생명의 본격적인 활동을 알리는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과 함께 부럼, 귀밝이술을 먹고 마십니다. ‘귀밝이술’은 아침 식전에 소주나 청주를 차게 해서 마십니다. ‘이 술을 마심으로써 귀가 밝아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명이주明耳酒, 이명주耳明酒, 치롱주癡聾酒(治聾酒), 총이주聰耳酒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5) 귀는 음수陰水에 속하고, 술은 양화陽火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내 몸에 대보름달의 광명한 기운을 불어넣고자 귀밝이술을 마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박록담, 『한국의 전통명주 1 : 다시 쓰는 주방문』 참고


달의 광명한 기운을 받고자 하는 전통문화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음력 8월 15일 보름에 조상님께 햇곡식으로 제사를 올리는 추석(한가위)도 그중 하나입니다. 추석秋夕은 ‘가을의 달이 유난히 밝은 밤’이라는 뜻으로 월석月夕이라고도 합니다. 달의 명절로도 일컬어지는 추석에는 풍요를 기리는 각종 세시 풍속이 행해집니다.

추석날 아침에는 햇곡식으로 빚은 송편과 각종 음식을 장만하여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합니다. ‘가을 맛은 송편에서 오고 송편 맛은 솔 내에서 온다.’는 말도 있듯이, 송편을 찔 때는 켜마다 솔잎을 깝니다. 소나무 잎을 깔고 찐 떡이라 하여 송병松餠이라고 불렀던 것이 시간이 지나 송편松䭏이 되었습니다.

달이 유난히 밝은 추석에 ‘송편’을 먹는 이유도 달의 광명을 받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송편을 반달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중국 사람들도 추석에는 둥근달 모양으로 흰떡을 만들어서 먹는데 ‘중추월병仲秋月餠’이라고 합니다. 먼저 달님에게 바친 다음 친척과 친지들에게 추석 찬품으로 선물하고 있습니다. 송편이 쌀을 재료로 반달을 형상하는 데 비해, 월병은 밀가루나 보릿가루를 재료로 보름달을 형상합니다.*6)
*6)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의자왕 때, 궁궐 마당에서 ‘백제는 둥근달 같고 신라는 초승달 같다.’는 글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무당을 불러 의미를 물으니 “둥근달 같다는 것은 가득 차 기울어진다는 뜻이고, 초승달 같다는 것은 점차 가득 차게 된다는 뜻이니, 백제는 망하고 신라는 흥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때부터 신라 사람들이 나라의 번창을 기원하기 위해 반달 모양의 송편을 빚어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추석과 같은 보름 명절에는 ‘강강술래’와 같은 환무還舞가 행해집니다. 보름달 아래서 15~16세쯤 되는 처녀들과 새댁들이 손에 손을 잡고 원형으로 둘러서서 빙빙 돌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경상도에서는 월월이청청月月而淸淸이라고 합니다. 남자들이 환무를 추며 노는 놀이로는 쾌지나칭칭이 있습니다. ‘쾌지나칭칭’은 경상도 민요 ‘월월이청청’에서처럼 달이 밝다는 뜻으로 보고 있습니다.

농경 사회에서 보름달은 풍요를 상징하며 이는 여성과도 관련됩니다. 여성은 생산의 주체이므로 여성 자체가 풍요를 상징하는 존재이며, 대보름의 만월滿月은 만삭의 여성으로 비유됩니다. 따라서 대보름날에 하는 강강술래는 여성들이 풍요의 달 아래에서 논다는 의미에서 풍요의 극치를 이룹니다.*7)
*7)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고



음양이란 무엇인가?



우주 만물의 근원을 도道, 또는 하나님(신神)이라고 합니다. 과학에서는 우주알에서 우주가 빅뱅Big Bang으로 탄생했다고 합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하나’에서 우주 만물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일자一者, 본체)는 어떻게 삼라만상(다자多者, 현상)으로 벌어지게 된 것일까요? 『주역』에서는 그 이치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일음일양지위도
一陰一陽之謂道 - 『주역周易』 「계사상전繫辭上傳」 제5장


‘한번은 음 운동을 하고 한번은 양 운동을 하는 것을 도라고 한다.’, 또는 ‘한 번 음이 되도록 하고, 한 번 양이 되도록 하는 힘의 근원(역원力源)을 도라고 한다.’라는 뜻입니다. 도의 구체적인 운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역유태극 시생양의 양의생사상 사상생팔괘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역에는 태극이 있으니, 태극이 양의를 생하고, 양의가 사상을 생하고, 사상이 팔괘를 생한다. - 『주역周易』 「계사상전繫辭上傳」 제11장


하나(도)가 변화 운동할 때는 둘(음양)로 나뉘어 운동하고, 둘은 다시 넷(사상)으로, 넷은 팔(팔괘)로, 8은 16으로, 16은 32로, 32는 64(64괘)로 나뉘어서 운동합니다. 이런 분화는 무한대로 이루어져서, 우주 만물은 거시 세계에서 미시 세계에 이르기까지 둘(음양)로 분화되면서 변화 운동하게 됩니다.

이는 진리의 수레바퀴(다르마 차크라Dharmachakra)가 굴러가면서 우주를 창조하여 변화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수레바퀴의 한 점이 움직이는 궤적을 보면 음과 양을 반복하면서 태극의 형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진리의 본체가 태극이므로, 현상으로 드러난 작용도 태극의 형상을 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도가 변화 운동할 때는 반드시 음과 양으로 분화되어서 작용하는 것이 우주 변화의 원리입니다.

만물이 하나에서 둘로 나뉘어 변화하는 과정은 한자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음陰과 양陽에는 모두 ‘언덕 부阝’ 자가 들어 있습니다. 어두운 밤에 언덕은 하나로 보입니다. 그러나 해가 뜨면 하나였던 언덕은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둘로 나눠집니다. 햇볕을 받아서 밝은 쪽은 양달, 그림자가 져서 어두운 쪽은 응달(음달)이라고 합니다.

해는 양을 대표하고, 달은 음을 대표합니다. 그래서 ‘언덕 부阝’ 자에 ‘해 일日’ 자를 붙여서 ‘양阳’ 자를 만들고, ‘달 월月’ 자를 붙여서 ‘음阴’ 자를 만들었습니다.*8) 지금 쓰고 있는 음양陰陽은 철학적인 의미를 덧붙여서 만든 글자입니다. 한자의 약자略字나 중국 간자체簡字體에서는 아직도 ‘阳과 阴’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8) 전창선ㆍ어윤형, 『음양이 뭐지?』참고